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7.02 15:13

 

 

서강대학원121호최종.vol1.e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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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4.10 21:38

교직원은 인가?

 

박승일 기자

 

   교직원(校職員)들의 불친절한 대응, 고압적인 태도, 학생 무시, 업무 태만, 무사 안일주의, 행정 편의주의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서강사랑방에서 키워드로 교직원을 검색해보면, 교직원의 불친절한 태도를 문제 삼는 글을 여럿 확인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올라온 글의 내용이 최근의 글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때, 단지 몇몇 사건만으로 국한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잠깐 제목이라도 살펴보자. “교직원분 일을 왜 그렇게 처리합니까?”, “학교교직원 정말 배째라인듯”, “학교직원들 왜이리 불친절하나요?”, “학생 역시 교직원을 평가할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등등. 부서명이 명시된 글은 제외했음을 감안한다면 적은 수의 글이 아니다. 게시된 글의 내용을 살펴보니, 학생들을 학교의 주체이자 소비자로 이해하기 보다는 단지 행정적 처리 대상으로 보는 교직원의 태도를 문제 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연령주의 구도가 학생-교직원 사이에도 어김없이 개입되어, 마치 어른께 부탁을 드리듯이 그리고 어른이 학생을 지도하듯 업무가 진행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띄게 빈번하다. 그 밖에도 신경질적인 반응, 성의 없는 태도 등에 대한 비판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불만 글에 달린 책임자의 사과 글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종류의 글이 계속 올라오는 걸 보면, 문제의 원인이 개선되지 않았거나 혹은 다른 부서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학생들이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낯간지러우면서도 기계적인 대응을 바라는 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학생을 대하는 과정에서의 피곤함을 억누른 채 육체노동에 더해 감정노동까지 요구하는 것 또한 아닐 것이다. 바람은 생각보다 소박한데, 아마도 조금만 더 친절하거나 조금만 더 배려해주길 원하는 게 아닐까. 여기저기서 서비스 정신을 외치고 있는 마당에,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학생을 하대하는 지금보다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학생들의 무례함과 비례한 정도의 불친절함이 아니라 무례함이 머쓱해지는 친절함은 기대할 수 없을까. 우리 학교라는 공동체감이, 학교가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이, 서비스만족도 1위라는 자랑이, 순간 실망과 불쾌함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학생들의 염려어린 비판이야말로 학교를 지탱하는 힘임은 명백한 진실이다.

   교직원도 사람이기에 학생들의 무례함에 화가 날 수 있고 반복되는 질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게다가 업무가 많은 건 물론이고 학생들이 모르는 위로부터의 압박감 또한 무시 못 할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교직원들이 철밥통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받는 대우가 부당하다고만 여긴다. 괴리다. 문제는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누구보다 함께 연대했던 학생들이 교직원들에게도 과연 그만큼의 지지와 협력을 약속할 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대학에도 예외가 없어, 교직원 자리마저도 점차 비정규직과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교직원들이 학생들과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략의 답이 나온다. 그것은 지금의 불친절한 태도도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고객 관리도 아닌 학생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상호 인정의 모습이어야 함이 분명하다. 교직원들이여, 학생들을 적으로 돌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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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4.10 21:33

고시생 전용공간 토마스모어관 준공

학생복지 확충은 환영할 만하지만 서강형 인재 양성의 요람인지는 물음표

 

조성호 기자

 

지난 달 26, 서강에 토마스모어관(학습동)’이라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후문 쪽에 정하상관과 떼이야르관이 준공된 지 6개월여 만이다. 학습동의 준공은 부족한 공간에 아쉬움을 느끼던 학생들에게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학습동이라는 알쏭달쏭한 작명에 의문이 들지만 번듯한 신축건물은 정문의 허전함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학습동은 어떤 곳일까?

 

   학습동의 건립계획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623, 학교법인 홈페이지에 올라온 <(가칭)서강대학교 고시반 건물 신축 계획안>이 그 시작이다. 가칭이긴 하지만 고시동이라는 이름을 통해 건물의 용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데, 계획안은 신축 건물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재 공인회계사, 사법, 행정, 외무, 변리사 등 고시반 별로 분산되어 있는 고시준비실을 하나의 건물로 통합하여 관리하고, 시험 준비생들에게 보다 나은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현재 Law School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향후 변호사 시험 준비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자 함.” , 각종 자격 혹은 면허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마련된 건물이 바로 학습동이다.

   계획안이 발표된 이듬해인 2011224, 학교법인 홈페이지에 드디어 토마스모어관으로 명명된 신축 건물의 공사를 알리는 공지가 발표되었다. 뒤이어 구체적인 공사기간(201137일부터 20111231일까지)과 부지위치가 안내되었다. 공지가 발표된 지 두 달여가 지나서 총동문회 홈페이지에는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동문의 후원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애초 계획안 보다 연면적이 약 664(지하 1~지상 5)에서 약 837(지하 1~지상 7)으로 넓어지고 열람실 좌석도 396석에서 432석으로 늘어난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캠페인의 성과는 기부현황을 공개한 홈페이지(www.ilovesogang.org)에서 참고할 수 있는데, 현재 모금된 기부금 액수는 건립기금으로 쓰기에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진성현 기획예산팀 팀장은 학습동 건립에 총 38억여 원이 쓰였고 모두 법인이 부담했다고 밝혔다.

   학습동이 세워지기 전까지 각 고시반들은 학교 여기저기에 흩어져있었다. 공인회계사 고시반은 마태오관 3층에, 그리고 나머지 사법, 행정, 외무, 변리사 고시반은 김대건관 지하1층에 자리해 있었다. 이들 외에 언론사 입사시험과 중등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고시반도 각각 가브리엘관 5층과 정하상관 7층에 있었지만 이번 입주에서 임용시험 준비생들은 제외 되었다. 그 결과 학습동에는 사법, 행정, 외무, 회계사, 변리사, 변호사, 언론사 총 7개 고시반이 입주하게 되었다. 또한 학습동에는 학습 공간 외에도 휴게실, 수면실, 샤워실 등 복지시설이 갖추어져 학생들의 편의를 도울 계획이다.

   서강대는 고등교육법고등교육기관의 자체평가에 관한 규칙을 근거로 자체평가 보고서(2011년 대학자체평가 결과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여기에는 수험생에 대한 지원을 통해 대학의 성과를 일구어 낼 청사진이 담겨져 있다. 보고서에서 활용된 총 57개의 지표는 크게 투입, 과정, 성과로 구분된다. 이 중 성과 항목에서 취업(취업률, 진학률)’ 분야와 함께 측정한 것이 전문가 양성이라는 분야이다. 이 분야에서 평가되는 지표는 총 세 가지로 법학과 정원 대비 사시 합격률’, ‘경영학과 정원 대비 공인회계사 합격률’, 그리고 행정 및 외무고시 합격자 수등이다(보고서 14). 세 지표에 대한 자체 총평은 취업 분야에서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데 각 총평을 마무리하는 말이 눈길을 끈다. 거기에는 학습동의 건립을 통해 전문가인력 양성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면 각종 고시 합격자 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여져 있다(보고서 80~82). 고등교육법11조의2 4항에 따르면, “정부가 대학에 행정적 또는 재정적 지원을 하려는 경우”, 이러한 평가 또는 인증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 , 전문가 양성을 위한 대학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정부의 지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학습동의 준공은 서강대가 나아갈 장기적인 전략을 고민하는 시기에 등장한 하나의 중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습동이란 존재를 조금 삐딱하게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서강의 정책 방향이 등록금과 주거비 및 생활비에 대한 부담으로 휘청대는 대학생들을 위한 보편적 복지 대신, ‘투자할만한일부 수험생을 위한 선별적 복지로 전환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종욱 총장이 내건 비전 2035(Vision 2035)’를 다시 훑어보면 더 많은 의문이 든다. 5대 핵심전략 중 하나인 서강 고유의 전인교육강화고시반 활성화는 어떻게 양립 가능할 수 있을까? 고시반 활성화라는 목표가 지향하는 보다 상위의 목표인 취업률 제고가 정말 서강만의 특별함일까? 건립기금 캠페인에 표현된 대로 학습동은 서강형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될 수 있을까? 대학에서까지 제도적으로 고시를 장려하고 육성한다면 이는 스스로 신림동 고시촌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자 대학 교육의 방향 전환을 시인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대답은 쉽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다만 오랜 시험에 지친 학생들이 또 다른 시험에 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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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4.10 21:27

여전히 반복되는 교수들의 성폭력

고려대 대학원생들의 성폭력 피해 주장으로 다시금 주목받아

가해교수에게 관대한 제도부터 개선해야

 

조성호 기자

 

 

   지난 319, 고려대학교에 붙은 하나의 대자보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성폭력과 착취를 일삼는 H교수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해당 대학의 대학원 총학생회가 폭로한 사실은, 한 대학의 특수성을 넘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관계의 적나라한 실태라 할 수 있다(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홈페이지 참고). 1주일 후, 2차 대자보는 가해교수에 의한 학생들의 2차 피해를 우려하며 학교 측의 조속한 대응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악재가 대학에서 다뤄진 그간의 관례에 비춰보면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고려대 의대생들의 성폭력 사건만 하더라도, 학교 측은 사건 발생 후 4개월이 지난 뒤에야 가해학생들에게 출교처분을 내렸고 이후 전개된 소송에서 가해학생들이 상고하여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학생 사이에 발생한 성폭력에 비해, 교수와 학생(특히 여성 대학원생)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은 남성이라는 권력뿐 아니라 교수라는 지위 및 대학이라는 집단의 권력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게 사실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한국 사회를 변화시킨 10대 성폭력 사건>으로 서울대 사건(1993)을 꼽았다(여성신문, 201148). 가해교수에 맞선 조교가 6년간의 소송 끝에 승소한 이 사건은 교수 권력에 대한 경각심을 공론화함으로써 성폭행 관련법을 제정하는 데 기여하였다. 서울대 외에 거명된 나머지 대학은 동국대와 서강대이다. 정부 유관기관과 학교 측이 진상규명과 처벌과정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서강대 영상대학원의 K교수(재직 중)는 사건이 발생한 200110월 이후 해를 넘겨서야 징계(정직 3개월)와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2003년 복직 후 2차 가해로 결국 그 해 8월 해임되었다. 또 서강대 국문과 H교수는 20035월 학부생에게 성폭력을 가해 같은 해 7월에 파면되었다. 하지만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이하 재심위)는 징계수위를 낮춰 K교수와 H교수에게 각각 정직 3개월과 파면취소를 결정했다(<서강대 김 교수 사건, 서로 다른 두개의 시각>, 오마이뉴스, 2003123).

   애초 재심위가 가해교수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곳은 아니었다. 재심위는 1991년에 제정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법의 목적은 교원에 대한 예우와 처우를 개선하고 신분보장을 강화함으로써 교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교육 발전을 도모하는 것(1)”이다. 그런데 2005년에 개정된 법에 따라 재심위의 명칭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로 바뀌었다. 재심위가 교원의 권리구제가 아닌 징계를 위한 기관으로 인식된 데다 대학교원 재임용 거부에 대한 심사가 주요 업무로 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마련된 제도가 범법행위를 저지른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식으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학칙에 의한 징계처분에 반발해 복직이나 징계취소를 도모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 뒤집기, 이매진, 2011; <성폭력 교수들이 돌아온다고?>, 한겨레신문, 2004129; 김김보연, <대학강단에 성폭력을 허()하라?>, 월간말 213, 2004, 108-111).

   결국 대학 내 성() 관련 사건의 본질은 교수와 학생 사이의 권력 구조이다(<성추행 교수는 두려울 게 없다?>, 미디어오늘, 2010928; <대학원생 우린 여전히 지도교수의 노비”>, 경향신문, 2012112). 특히 여성 대학원생은 그러한 권력관계에서 더더욱 자유롭지 못하다. 대학 내에 성폭력 학칙이 제정되고 학내 상담기관이 생겨난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그리고 더 교묘하게 성폭력이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은 가해자의 낮은 의식 수준뿐만 아니라 법적 구속력의 결여 그리고 주변인들의 방관까지,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문제는 단지 어느 한 측면의 개선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해자를 피해자의 위치로 둔갑시키고 진짜 피해자를 외면하는 부조리한 제도라 할 수 있다. 누군가의 말대로 한국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엄연히 다른삶을 살고 있을 뿐 아니라(<술자리 폭력 대처 설명서>, 한겨레신문, 201242) 끊임없이 다른삶을 살도록 종용받고 있다. 그리고 대학원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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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4.10 21:25

등재지 제도 폐지 이후 학계에 불어 닥친 침묵의 봄

교과부의 학술지 평가 개선 방안 발표 이후 너무나 조용한 4개월

선택과 집중전략으로 우수 학술지 가능한 지 치열한 토론 필요해

 

조성호 기자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부설연구소인 법학연구소에서 1999년부터 발간한 학술지 서강법학연구20106월 제121호를 마지막으로 자체폐간 되었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한국연구재단(이하 연구재단)에 대한 국정감사를 통해 학술지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교과부와 연구재단은 201010월 말부터 서강대 로스쿨에 조사팀을 보내 실태조사를 벌였으나 학교 측은 자료제출을 거부하였다. 결국 두 달여 뒤 학술지는 자체폐간 되고 법학연구소장도 보직에서 물러났다. 서강대를 계기로 전국 대학의 로스쿨 20곳에서 발행하는 21종의 등재·등재후보지가 조사를 받게 되어 그 중 7종은 등재 취소, 5종은 경고, 9종은 주의 조치가 결정되었다. 그 후 연구 실적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 해당 학술지에는 논문 투고가 급감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었다.

   ‘로스쿨 학술지 파동이후 한국 학계의 현 주소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보도가 이어졌다. 2011420일과 21, 그리고 519일 동아일보는 기획기사를 통해 학계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연구재단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당시의 분석은 학계에서 생산되는 논문의 질적 향상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학술지 등재 제도’(이하 등재 제도)에 따른 현행 학술지 등급의 실효성 자체를 문제 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중앙일보가 2011821일 단독 입수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술지 평가제도 개선안은 한국 학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 신호탄이었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등재(및 후보)지의 논문 심사와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7종이 퇴출되고 40종이 경고 조치되었다. 그리고 2011127일 교과부는 개선안을 공식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교과부가 배포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학문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제도 정비 방안의 골자는 1998년부터 시행된 등재 제도의 폐기라 할 수 있다. 정부 산하의 연구재단에 의한 학술지 평가를 학계의 자율평가 체제로 전환하고, 소수의 우수한 학술지를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학계의 혼란을 막기 위해 등재 제도는 3년간의 이행 기간을 거쳐 201412월 말에 폐지될 예정이다. 당장 올해부터 등재(및 후보)지 신규선정은 중단되었다. 교과부는 등재 제도 실시 후 급격히 증가한 학술지 중 2012년에 10, 2013년에 15, 2014년에 20개의 우수 학술지를 선정해 매년 15000만원씩 5년간 지원할 예정이다. 이러한 정책 전환에 대한 자문을 위해 20111월에 구성된 학술진흥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왕상한(서강대 법학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논문의 양으로 평가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질적 평가로 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교수들 실적 쌓기용학술지 등재제도 없앤다>, 동아일보, 2011128).

   등재 제도의 폐지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한 공청회에서 왕 교수는 등재 제도의 문제점으로 학술성 훼손’, ‘학술지의 하향평준화’, ‘평가집행 및 결과적용의 어려움등을 근거로 꼽았다. 그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정부가 학술지의 세분화를 조장하고 난립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학술지 평가지표가 대부분 형식적인데다 규제적 속성이 강해 깊이 있는 연구보다 오히려 단타 연구를 장려한다고 지적했다. 또 평가집행에 대해서도 기관 편이의 평가제도가 평가를 준비하는 학술단체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여 일탈행위를 촉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학술성 훼손하는 평가제도 폐지하자”>, 교수신문, 2011829). 그러나 그 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재춘(영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등재 제도를 대신할 어떤 제도도 평가주체와 평가기준, 선발방식, 지원예산 및 성과에 대한 평가방식 등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술지 평가가 결국 등급화의 문제라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학회에 위탁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교과부의 공식발표 이후 지난 4개월여 동안 학계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학계 차원의 개선 노력이나 치열한 논쟁 같은 위기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혹자는 자율화 방안의 근본적인 장벽이 연구자들의 무관심과 편법 우선의 관행이라고 지적하며 학술지 편집위원장 협의회 설립을 제안했다(<학회 자율성 회복의 기회다>, 교수신문, 20111219). 또 다른 이는 정부의 정책이 학문 생태계의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인용지수 같은 논문식 글쓰기위주의 평가 외에 다양한 평가항목의 마련이 필요함을 역설했다(<인문학 생태계 획일화는 안 된다>, 교수신문, 201212). 지난 2,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가 주관한 토론회에서는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부족한 정책이 지적되면서 기존 제도의 소규모 유지 또는 제도 폐기의 속도조절이 거론되기도 했다(<“학술지 등재 제도 점진적 축소를”>, 교수신문, 2012213).

   그간 연구재단의 관리로 오히려 학문의 몰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한국 학계의 현실이다(고부응, 문화과학, 2012년 봄호, 262-271).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 단칼에 무 자르듯이 제도 하나 없애면 학술지의 질적 향상과 학계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낙관적 예측은 지나치게 단순한 정책적 접근이 아닐까? 학술지의 부실한 관리를 엄중히 꾸짖는 연구재단 역시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3년간 445억 날린 한국연구재단>, 중앙일보, 20111018). 20096월 출범 이후 이사장들의 임기가 1년을 못 넘기는 연구재단에 한국 학문의 미래를 맡기는 게 못내 불안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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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4.10 20:30

 

 

 

결혼들

결혼, 에로틱한 우정에 대한 몇 가지 소고

 

양경언 (문학평론가, 서강대 국문과 박사과정)

 

강요된 종착지로서의 결혼사랑이라는 필요조건

 

   어쩌면 당신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오해를 동반한 채 결혼이라는 말()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그 오해를 달리 표현해 사랑이라 하자. 사회가 부여한 하나의 제도로서, 혹은 삶의 필수적인 지표로서 결혼을 무리 없이 포장할 수 있는 배경이 바로 사랑이다. 하여 결혼은 연애 이후 지속가능한 사랑의 실현을 위한 진전된(?) 관계 맺기의 방식으로 논해지거니와 생애주기에서 응당 거쳐야할(?) 과정이므로 기왕이면사랑하는 사람과 맞이해야만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요컨대 결혼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말로 편리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니. 이만큼 정의가 불확실한 말이 또 어디 있나. 우리들의 곤궁은 결혼의 필요조건으로 거론되었던 사랑의 가능조건을 질문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을 매개하는 사랑이란 무엇을 일컫는가. 어디까지나 이성애에 국한된 것이자, 또한 이후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데에 불편이 없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것이기도 하다. 이는 정상성을 획득한 가족 관계의 확립을 위해서 사랑을 동원해왔던 그동안의 사정을 눈치 채게 한다. 한마디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선택했다고 여기기에는, 그에 개입하는 사회적인 맥락들이 너무나 많아 이 선택이 과연 자연스러운 생의 과정의 일부인지 의심하게 한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논의에서 유달리 사랑이란 말을 강조했던 의도가 무엇이었겠나. 아마 사랑에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그를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대한 요구가 팽창하고 있음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서구사적으로 봤을 때에도 결혼은 성욕을 관리하고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또한 사회적인 재생산을 담당하기 위한 방편으로 진행되던 것이었다. 오히려 사랑을 위한 결혼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다. 이 과정을 통해 부권의 창출을 위한 섹슈얼리티의 관리와 젠더 역할의 고정화가 유지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다른 결혼은 가능한가?’라고 질문했을 때, 이 질문이 간과하고 있는 두 가지를 짚어낼 수 있어야겠다. 첫째, ‘결혼이라는 관문이 인생에서 반드시 도달해야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에서, ‘결혼그 자체의 당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질문할 수 있는가. 혹은 질문하기에 대한 시도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둘째, ‘다른 결혼이라는 표현이 젠더 역학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랑의 문법을 창안해내는 데에 종래에는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으며, 그 때 사랑은 어떤 관계로 실현 가능한가. 그 관계는 굳이 결혼이라는 표현을 빌려와야만 설명이 가능한 것인가. 최근 비혼(非婚)’을 고민하고, 제도 밖의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고민을 하는 이들이 이전에 비해 가시화되는 일련의 과정은 어쩌면 결혼에 대한 진지한 성찰 및 논쟁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경보일지도 모른다. 관련된 성찰 및 논쟁이 아예 없었단 말이 아니라, 더욱 정치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적인 이유나 정서적인 안정 등 다양한 이유로 파트너와 함께 삶을 꾸려나갈 것을 선택한 이들에게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결혼이 전형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한 부담감(?)을 갖는 이들의 고민이나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를 실험하고 있는 이들의 생활이 그 자신들의 삶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에 유동적인 관계와 역할을 수용하는 것은 아님에도, ‘어른들이 보기에 이들은 결혼이 제공하는 안락한 측면을 거부하는, 상대적으로 자유를 선호하는 이들로 비춰지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의 결혼이 아니면 안된다는 고정관념과 한편 다양한 관계의 가능성이 결혼이라고 묶이는 순간 차단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어떤 이들의 고정관념 사이에서 결혼에 대한 담론은 위태롭게 길항하고 있다. 사이, 창궐하는 것은 결혼을 하기 위해 수행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연애 각본에 대한 이야기(가령 프로포즈를 하지 않는 남성은 죄악시 되거나, 혹은 연애하기에 적합한 여성과 결혼하기에 적합한 여성은 따로 있다는 방식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사이트들이며, 또한 결혼정보회사, 결혼식을 올리는 데에 복무하는 각종 업체(예식장, 웨딩촬영업체, 신혼여행 담당 업체 등)가 내놓는 패키지 상품들, 당사자들이 원치 않는다 해도 부모의 체면 때문이라며 진행되는 막대한 비용의 결혼식이다.

   사랑의 실현 방식 중 선택할 수 있는 하나로 결혼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식의 애매한 문장을 긍정하기에는, 한국 사회에서 이 결혼이라는 말과 결혼을 매개하는 사랑이라는 말은 확실히 너무 많은 겹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결혼이라는 방식과 그 관계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삶에서 정상성의 규범으로 용인 받는 관계에 대한 질문과 다름 아니다. 결혼의 정상성에 대해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을 때, 결혼은 사랑의 불변하는 종착지로 기능한다.

 

결혼을 질문하기, ‘사랑을 재고하기

 

   한국이 아닌 사회에서 다른 결혼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을까.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결혼, 에로틱한 우정은 프랑스 사회에서 결혼이 수반하는 문제와 그에 대한 대안을 나름대로 강구한 책이다. 브뤼크네르는 프랑스 사회가 현재 사랑과 결혼을 혼동한 나머지 결혼을 길들이고 사랑을 마음껏 풀어놓는 바람에, 사람들이 결혼은 덜 하고 이혼은 더 많이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저자의 문제의식은 결혼이 명백히 필요하다고 전제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결혼자체의 당위를 질문해야 하는 한국 사회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입장이다.

   프랑스 정부는 1999년에 팍스(PACS)’라는 공동생활약정을 법안으로 채택해, 18세 이상의 동거인들에게 결혼하지 않고도 법적 부부가 누리는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있다. 팍스는 구속력이 강한 결혼과 자유로운 동거의 중간에 해당하는 것으로 동성애자 커플에게도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제도 밖 형태의 가족은 가족으로 조차 인정받지도 못할 뿐 아니라 한부모가정에 대한 사회적 배려 및 인식이 아직도 낮은 수준에 불과한 한국의 실정과 비교해 보았을 때, 프랑스 사회는 한 단계 진일보한 차원의 복지 수준을 갖추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가 불안해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법적으로 동거가 자유롭게 허용되고, 이혼 절차 역시도 간소화되어 있는 프랑스 사회는 사람들이 제도로부터 중압감을 덜 받는 대신에, 개인이 관계에서 지녀야 할 책임감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사랑의 변덕스러움만을 추구할 때 결국 파편화된 관계만이 상처처럼 남고 말 것임을 걱정한다. 프랑스 사회에서의 결혼이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보다 확장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임을 이해한다면, 브뤼크네르가 주장하는 바에 따라 이혼이 남발(?)’하는 프랑스 사회에서 결혼이란 말의 격상은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사랑이 전지전능하다고 믿고 결혼에 뛰어든 자들이 사랑에 대해 겪는 실망감을 파혼 혹은 이혼, 관계의 절단으로 표현한다는 데에 있다. 프랑스 사회에서 사랑은 결혼의 필요조건이자 동시에 쉽게 결혼을 끝낼 수 있는 가능조건으로도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다른 결혼이란 (이미 결혼그 자체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실행되고 있으므로)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된 열정에 속지 않는 관계를 일컫는다. 어찌 보면 추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사뭇 진지하게 당부한다. 서로 세심하게 배려하며 각자의 일에도 열정을 다 할 것, 사랑의 경계를 뛰어넘어 우정 어린 관용, 상호 존중 등의 다양한 시도를 포괄하는 부부관계를 창조할 것. 감정의 문제를 너무 간편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결혼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결혼까지의 서사 뿐 만이 아니라 결혼이후의 서사 역시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으로 읽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서로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관계란 두 사람의 공동 세계를 구축하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관계이자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된 관계이다. 이 같이 저자가 제시한 다른 결혼의 상은,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 한창 진행 중인데다가 여전히 젠더 역할의 고정화가 분명한 한국 사회가 실현하기에는 멀고도 어려운 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결혼에 대해서 상상하기도 힘든 현실에 있는 우리들이 야기할 수 있는 미래상에 대한 예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결혼이라는 자장으로 조직할 수 있는 공동체 상의 다양성이자 동시에 사랑의 문법을 계속해서 발명해낼 수 있는 능동성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그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다. 하지만 용어의 규범적 의미에 엎드려 절할 필요가 없다고 저자도 말했듯, ‘결혼만을 꼭 해답으로 국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결혼이란 말 자체의 폐기 혹은 존속에 대한 논쟁을 위해서는 더 욱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혹은 거부가, 불편함에 대한 표시가 필요하다. 이는 당연하게 여기는 삶의 조건에 대해서 그것이 왜 당연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결혼, 에로틱한 우정』, 이혜원 옮김, 뮤진트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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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4.10 20:06

 

 

 

 

 

초록색 엄지(Green Thumb)와 몽상의 정치

-게릴라 가드닝, 화차(火車)에서 화차(花車)-

 

 

강지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국문과 박사과정)

 

 

혁명을 꿈꾼다면 문제의 핵심은 다시 공간

 

   처음 페이스북의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포스퀘어(Foursquare)’였다. ‘위치기반 소셜미디어 서비스(SNS)’ 포스퀘어는 지도에 자신의 위치를 체크인(check-in)하여 공유하는 서비스다. 체크인으로 자신이 다닌 곳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점수나 뱃지, 시장직 등의 보상을 획득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 구글 맵을 거부하고 오픈스트리트 맵을 택하면서 다시 화제가 된 포스퀘어의 사용자는 전세계적으로 500만 명에 이른다. 왜 사람들은 물리적 제약이 극복된 가상공간에 실제 현실공간의 위치를 상세히 기입하는 것일까. 아마도 포스퀘어를 사용하는 이면에는 자기과시욕이 포함된 자기표현욕구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학계의 연구 흐름을 보아도 공간이라는 주제는 다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정보기술과 커뮤니케이션기술이 공간 극복에 기여하면서 사회학에서 공간의 중요성은 자연스럽게 축소되었었다. 장 보드리야르, 지그문트 바우만, 니클라스 루만, 폴 비릴리오 등 이미 많은 학자들이 시간 범주로 대체되어버린 공간에 대해 작별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마르크스 슈뢰르는 최근『 공간, 장소, 경계』에서 공간의 하찮음에 대한 명제는 언제나 경제적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나오는 소리이며, 정치적인 맥락이 문제가 될 때면 언제나 공간결합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성의 재영토화는 새로운 정치적 공간의 발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작년 가을에 벌어졌던 월가 시위의 구호가 “Occupy Wall Street”였음을 떠올려 본다면, 정치는 아고라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국소화와 장소 고정화, 따라서 점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포스퀘어에서 장소의 점유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확장시키면 이는 사실 거리의 점거를 통해 정치적 투쟁을 관철시키려는 노력과 상당부분 맞닿아 있다.

   리처드 레이놀즈의『게릴라 가드닝은 이 시대에 혁명을 꿈꾼다면 문제의 핵심은 다시 공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책이다. 게릴라 가드닝이란 간단히 말해 남의 땅을 불법으로 꽃밭으로 가꾸는 것이다. 황량한 땅뙈기, 지루한 느낌의 거리, 버려진 틈새 등의 공간은 대신 을 든 게릴라 가드너들에 의해 꽃밭으로 바뀐다. 머리에 꽃을 꼽은 채, 진압 일보 직전인 군인의 총구에 꽃을 꽂아주고 있는 흑백 사진을 기억하는가. 1960년대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를 주동했던 히피들이 바로 이 게릴라 가드너들의 선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분노하기보다는 끝까지 낭만성을 견지함으로써, 현실을 파괴하거나 사라지게 하는 대신 감추어져 있던 비밀스러운 구석들이 햇빛 속에 얼굴을 들어 다른 현실을 발명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화사하며 향기로운 혁명은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김수영, 거대한 뿌리) 아는 이들에게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부러 순진한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텃밭 곳곳에서 피어나는 꽃을 통한 혁명이란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지만,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아름답게 추상화시켜버림으로써 급변하는 현실과 정면으로 분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오히려 차단시켜 버리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단어 아래 큰 틀이나 전체의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거시 정치적 기획은 필연적으로 지금 현실에서 숨 쉬고 느끼고 교감하는 모든 행위 양식과 변혁을 분리시키지는 않는가.

 

화차(火車)에서 화차(花車)

 

   한때 디자인 서울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부지런히 리모델링되던 우리의 도시는 어떻게 혁명과 만날 수 있을까. 강남 일대와 수도권 신도시를 근거지로 삼아 흉물스럽게 솟아오른 아파트들은 집을 편안한 주거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실거래가와 분양가의 차액을 통한 투기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대학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학교 앞 상권뿐만 아니라 캠퍼스 내부까지 온갖 음식 관련 프랜차이즈들과 고급 커피 전문점들이 침투해 들어온 지 이미 한참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강남역, 신사동, 신촌, 홍대, 이태원, 대학로 등 고도로 상업화 되거나, 이로부터 누락되어 재개발 지역으로 분리된 채 급격하게 슬럼화 되어가는 중이다. 이렇게 도시 공간이 상업화되거나 슬럼화되는 양극단 속에서, 자투리땅을 꽃밭으로 바꿔놓는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작업은 도시에 일종의 여백을 기입하는 일이 된다. 벤야민이 20세기 파리에서 산책자라는 인물 유형을 발견했을 때, 산책자의 무위(無爲)는 발달한 도시의 분업에 반대하는 하나의 시위라는 점에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다. 자연은 노동으로 생산되거나 소비되지 않고 오직 존재한다는 점에서 상품가치와 전시가치에 쉬이 동원되지 않는다. 도시 일상이 권력과 대기업의 손아귀에 놓여 상품화된 스펙터클을 생산하고 있는 가운데, 구석구석의 무용한 곳을 화단이나 텃밭으로 가꾸는 일은 우리의 꿈이나 욕망 혹은 판타지를 생산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공간적 변이를 도입하는 일이 된다.

   레이놀즈는 게릴라 가드닝이 도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REBAR’라는 예술창작집단은 도시 중심부 공공용지 가운데 70%가 개인이 소유한 자동차에 점령당해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주차장(parking space) 하나에 잔디를 깔고 나무를 세우고 얕은 울타리와 우아한 벤치를 설치해서 몇 시간 동안이나마 공원(park)으로 바꾸어 놓는 게릴라 가드닝을 행했다. 어떤 장난기 가득한 게릴라 가드너들은 생명력 강한 담쟁이라던가 느릅나무, 덤불과 같은 식물을 이용해 옥외광고판을 뒤덮어버림으로써 자본이 유발하는 시각 공해를 일시적으로나마 차단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드닝 작업들이 게릴라라는 말과 연계되는 이유는 가드닝한 곳이 합법적인 공원으로 발전되지 않는 한, 그들이 심어놓은 식물들은 결국 제거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아무도 명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도시 곳곳에 던져지고 심어지는 씨앗과 식물 폭탄들로 인해, 가열하게 생산과 소비를 추동해나가는 자본주의는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순간 신자유주의에서 피비린내 나도록 굴러가고 있는 화차(火車)는 화차(花車)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화분에서 선명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게릴라 가드닝은 전 세계를 아우르면서 단일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싸우는 하나의 통일된 운동이 아니라 수많은 자발적 조직들의 개별 활동이다. 이들은 공식적인 정치체를 형성하는 대신 비밀스러운 시간에 텃밭에서 흙투성이가 되기를 반복하며, 그 속에서 가능한 다른 세상을 모색한다. 이는 비범한 인물들이 사자후를 내뿜으며 선동하고 나아가는 정치가 아니라 사소한 문제에 매달리고 모호한 아름다움에 반하는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들의 몽상의 정치. 여기에 깃드는 아름다움과 유희성은 괴물과 싸우는 동안에 괴물을 닮아가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어막이다.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문(1924)을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산다는 것과 살기를 그친다는 것, 그것은 상상의 해결책이다. 삶은 다른 곳에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세계가 인간의 생각에 따라야지 생각이 세상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실주의 또는 현실주의가 현실의 무거운 조건들을 파헤칠 때,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해냄으로써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하려 했다. 그들의 무기는 오브제나 낱말들, 그리고 이를 의외의 방식으로 배열할 줄 아는 상상력이었다. 게릴라 가드닝은 원예에 재능 있는 초록색 엄지(Green Thumb)’를 가진 이들이 작은 삽과 씨앗, 모종을 무기로 각박하지 않은 또 다른 도시를 상상하며 행하는 이 시대의 초현실주의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비루한 삶을 끝장내야 할 이유를 계속해서 발견하면서도 동시에 삶에 집착하며 현실의 초극을 꿈꾸는 마음이 있다. 언제나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낮고 보잘것없는 것들임을 우리는 안다. 이 삶에 대한 믿음이 망가지면, 다시 저 삶에 대한 믿음을 가동하면 된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화분에서 선명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우리 눈앞에 다른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당신의 덤덤한 일상에도 부디 몽상을 허하라.

 

tip:『게릴라 가드닝』2부는 게릴라를 위한 활동 가이드로 이루어져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식물부터 저항력이 강한 식물, 생산력이 있는 식물 등을 자세히 소개해주는 데 이어 가드닝 도구, 가드너의 전투복, 작전 시간에 이르기까지 게릴라 가드닝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켜주는 지침들로 가득하다. 죽어가는 식물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해지지 않도록, 연구뿐만 아니라 온갖 잡무와 알바에 시달리는 대학원생들을 위해 여기서는 저항력이 강한 식물들을 살짝 언급할까 한다. ‘돌나물’, ‘안개꽃’, ‘눈꽃’, ‘헤베는 모두 가뭄에 강한 식물이며, ‘감자’, ‘근대’, ‘양파는 방치해도 잘 자라는 데다 먹을 수도 있는 생산적인 식물이다. 꼭 먹을 만큼 재배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독고진이 구애정을 생각하며 키우던 감자나,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진희가 진상이이라 부르며 키웠던 낑깡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기억하며 책상 위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도 좋겠다.

 

 

리처드 레이놀즈 지음,『게릴라 가드닝』, 여성훈 옮김, 들녘(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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