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8:40

이 * 이 글은 2011108일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에서 지젝이 했던 연설을 번역한 것이다. 새로 번역하기보다는 다수의 국내 번역본을 참고해서 오역을 바로 잡고 글을 매끄럽게 하는 데 치중했음을 밝힌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그들은 우리가 모두 패배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자들은 저 곳 월스트리트에 있습니다. 우리가 낸 돈으로 수십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은 것은 그들 아닙니까? 그들은 우리가 사회주의자라고 말하지만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는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밤낮으로 몇 주 동안 사유재산을 파괴한다 해도, 2008년 금융위기로 파괴된 사유재산의 양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피땀 흘려 이룬 그 사유재산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몽상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몽상가는 지금과 같은 방식이 무한히 계속될 수 있으리라 믿는 그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악몽으로 변해가는 꿈을 깨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파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스템이 스스로 파괴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목격자일 뿐입니다. 마치 만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고양이가 낭떠러지를 향해 다가갑니다. 끝을 지나서 디딜 땅이 없어졌는데도, 고양이는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계속 걷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그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고양이는 이미 추락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일을 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월스트리트 사람에게 “아래를 보라고!”라며 말하는 중입니다.

2011년 4월 중순에 중국 정부는 대안(alternate) 현실이나 시간여행을 포함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소설 등을 모두 금지시켰습니다. 이런 조치가 중국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대안을 꿈꾸고 있으므로 이런 꿈꾸기를 금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곳의 우리에게는 그런 금지조치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시스템은 우리가 꿈꿀 여지조차 주지 않고 우리를 옥죄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영화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이 종말로 향하는 스토리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쳐 모든 생물이 멸종하게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들은 자본주의의 종말만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 시절에 나돌던 구닥다리지만 매력적인 농담이 하나 있습니다. 한 동독 인민이 시베리아에 파견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내는 우편물이 검열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두었습니다. “암호를 정해 두세나. 만일 내가 파란색 잉크로 편지를 써 보낸다면, 그건 내가 쓴 내용이 사실
이라는 뜻일세. 만일 빨간색 잉크로 씌어 있다면, 편지 내용은 거짓일세.” 그가 떠난 지 한 달 뒤, 그의 친구는 시베리아에서 온 첫 편지를 받았습니다. 파란색으로만 쓰인 편지였습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굉장하다네. 상점은 질 좋은 음식으로 가득 차 있고, 극장에서는 서방에서 만든 유명한 영화가 상영되지. 아파트는 널찍하고 고급스럽다네. 여기서 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빨간색 잉크뿐이라네.”

바로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빨간 잉크가 없습니다. 우리가 갖지 못한 자유를 드러내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도록 교육 받습니다. 이를테면 테러와의 전쟁에서 강조되는 자유라든가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자유의 개념을 왜곡시킨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빨간색 잉크를 만들어 내는 것.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은 바로 그것입니다.

조심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과 사랑에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러나 축제란 원래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축제가 끝난 다음 날입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 뒤가 문제입니다. 그 때 어떤 변화가 생기겠습니까? 시간이 지난 뒤 당신은 오늘을 이렇게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아, 우리는 젊었었고, 시위는 대단했지.” 나는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을 그런 식으로 기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대안을 생각할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 아닙니까?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전히 실현 가능한 최선의 사회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긴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맞서야 할 문제들은 진정으로 어려운 것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회 체계가 자본주의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 겁니까?

기억하십시오.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닙니다. 문제는 시스템입니다. 당신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입니다. 또 적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에 물을 타려는 가짜 친구들에 대해서도 주의하십시오. 이들은 이 시위가 아무런 해가 없는 도덕적 항의에 그치도록 만들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마치 카페인 없는 커피, 무알콜 맥주, 무지방 아이스크림처럼. 그들의 노력은 커피에서 카페인을 빼내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깡통을 재활용하는 일, 자선 사업에 푼돈을 기부하는 일,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를 사면서 그 돈의 1%가 제3세계 기아 아동을 돕는 데 쓰이도록 하는 일 등을 하면서 도덕적 만족감을 느끼기에는 이 세상의 문제가 너무 크다는 점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노동과 포로에 대한 고문마저 외부에 위탁하는 세상입니다. 결혼알선업체들은 우리의 사랑마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에 참여하는 것 또한 남에게 맡겨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를 되찾고 싶은 것입니다.

만일 공산주의란 말이 1990년에 무너진 시스템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이 오늘날 가장 효율적이고도 무자비한 자본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중국의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지만,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당신이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이를 반(反)민주주의적이라고 매도하는 협박에 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혼은 끝났습니다. 변화는 실현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실현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미디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기술적인 면과 성적인 면에서 모든 게 가능해 보입니다. 달로 여행할 수도 있게 됐고 유전자 공학 덕분에 영생을 누릴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동물을 비롯한 그 무엇과도 섹스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나 경제 분야를 보십시오. 이 분야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부자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약간 올리고 싶다고 해 봅시다.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경쟁력을 잃는다고도 주장 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의료 체제를 갖추기 위해 돈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해 봅시다. 그들은 “전체주의 국가가 되자는 말이냐.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생의 삶을 곧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도 당장의 의료혜택을 위해서는 약간의 추가 지출도 허용되지 않는 세상. 이런 세상은 무언가 잘못된 곳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높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더 나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공산주의자라고 한다면, 그 말이 맞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공동의 것(the commons)을 고민한다는 점입니다. 자연에 대한 공동의 것. 지적 재산에 의해 사유화된 공동의 것. 유전공학에 대한 공동의 것. 우리는 이를 위하여, 그리고 오로지 이것만을 위하여 싸워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분명히 실패했지만, 공동의 것에 대한 문제는 남습니다. 그들은 여기 모인 우리가 미국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주장하는 보수 근본주의자들이 깨달아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란 무엇입니까? 성령(the holy spirit)입니다. 성령이란 무엇입니까? 자유와 책임을 가진 신자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된 평등한 공동체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성령이 임한 곳은 바로 지금 이 곳입니다. 저 건너편 월스트리트에는 신성을 모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이 있을 따름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뿐입니다. 제가 염려하는 유일한 점은, 우리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간 뒤, 1년에 한 번씩 만나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 때 우리 정말 대단했지.” 하고 추억에 젖어 회상이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겠다고 여러분 자신에게 약속하십시오.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욕망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욕망하는 것을 실제로 추구하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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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8:35

 


인터뷰 및 정리 박승일


“미래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역사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된 그때의 광경을 돌이켜봐야 한다. 한 시대가 저물고 혼돈이 찾아왔던 1970년대에, 인류에게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방향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일까?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인류의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다면, 지난 30여 년간의 세계사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막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Q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한 문제설정은 무엇인가요.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라는 물음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지금까지 신자유주의를 좁은 의미에서의 경제적인 흐름으로만 바라봤었는데, 그보다는 이에 대비되는 정치적인 시각에서 신자유주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이 정치라는 것을 국민 국가 내에서의 정치적 절차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천들로 환원해서 생각하기 쉬운데, 신자유주의 자체가 이미 전지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여러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거예요. 국민 국가뿐만 아니라 지구 질서까지 포함하는, 다시 말해 지구경제정치적인 시각에서 신자유주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정치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면 신자유주의라는 게 어떤 정해진 프로젝트가 일방적으로 관철된 것이나 혹은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적 필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대안들이 서로 경합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아주 어렵게, 하지만 어쨌든 다른 대안들을 물리치면서 전지구적으로 관찰되었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았는데 왜 막을 수 없었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죠. 이 물음 안에 답이 다 들어있어요. 만일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그 대안을 살펴보는 게 신자유주의가 저물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 시대의 대안을 마련하는데 가장 중요한 참고가 되지 않겠느냐하는 것이죠. 70년대 신자유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놓았던 대안들이 실행되지 못했다고 해서 3~40년 뒤인 지금 그걸 그대로 발굴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 때 신자유주의와 맞서는 과정에서 패배를 했다면 어떤 한계가 있었던 것인지 살펴봐야 우리 시대의 대안을 조금 더 지혜롭게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Q 서론에서 이 책의 목적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요.

첫째로 많은 경우 7~80년대 서구의 진보좌파 세력이 신자유주의에 투항했다고만 알고 있지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어요. 투쟁의 과정들을 망각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칠레와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사례를 다뤘어요. 다음으로 좌파의 문제점들을 들춰내는 것은 지금 우리의 대안을 짜기 위해서예요. 역사라는 게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뭔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실천한다면 새로운 상황들을 창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과거의 한계나 오류에 대해서 생각 외로 잘 모르는 측면이 있거든요. 잘 모른다는 것은 과거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한계를 들춰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봤던 거예요. 마지막으로 최종 결론과 연결되는 문제인데, 70년대 좌파의 한계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나치게 국민 국가라는 정치무대에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또는 과잉적응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좌파가 국민 국가의 집권세력이 되었을 때 자신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신자유주의는 지구 질서 차원에서 공격을 해오는데, 영국이나 프랑스 사례를 보더라도 지금 상식으로 봐서는 너무 답답할 만큼 국민 국가라는 정치 역학에 갇혀 있었거든요. 신자유주의가 서서히 몰락해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생활 세계’와 ‘국민 국가’ 그리고 ‘지구 질서’의 여러 층위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정치형태를 발명해내는 것이 좌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Q 1930년대 초 서구 좌파 세력들이 봉착한 ‘좌파 정치의 첫 번째 구조적 위기’란 무엇인가요.

러시아 혁명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서유럽에 보통 선거가 실현되면서 좌파 세력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좌파의 집권은 가능해진데 반해 노동자가 원하는 사회경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조건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의 국가와 달랐던 거죠. 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 역시 공황이 닥쳤을 때 자유주의 세력이나 보수주의 세력과 다른 형태의 경제정책을 펼치지는 못했던 겁니다. 물론 이들의 강령에는 사회주의니 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다 남아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먼 미래의 과제고 당시에 펼칠 수 있었던 정책은 자본주의 정치 세력의 정책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인플레이션 억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식이였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케인스주의 정책을 반대로 펼쳐야 했는데, 그러면 불황이 더욱 심화돼서 좌파 정당들을 지지했던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고 결국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다른 세력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공산당으로 돌아서면 그나마 나은 경우인데 심지어 나치를 지지하기도 했던 겁니다.

이게 다 20년대 말 30년대 초에 있었던 일이거든요. 저는 이게 ‘좌파정치의 첫 번째 구조적 위기’라고 봅니다. 제도적인 절차를 통해서 좌파정권이 집권할 수 있는 국민-대중적인 정치공간은 마련되었는데, 이를 통해 집권한 세력이 국민-대중적인 경제공간을 마련해낼 수 있는 여지는 아직 열리지 않았던 상황인거죠.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등장한 후에야 초국적인 케인스주의의 배경 속에서 각국이 국민 국가 차원의 케인스주의 정책들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됩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복지국가라 할 수 있는 국민-대중 경제가 전개되면서 첫 번째 구조적 위기가 봉합 혹은 극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한때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70년대 들어 초국적인 케인스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깨지고 세계 질서가 금융자본주의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위기로 도래하게 됩니다. 좌파 세력들이 두 번째 구조적 위기를 주체적으로 극복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끌려가면서 결국 이른바 제 3의 길로 정착되고 만 것이죠.

Q ‘구조 개혁 좌파’라는 말이 생소합니다. 이들은 기존의 좌파와 어떤 점에서 같고 또 다른가요.

상식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좌파는 사민주의 아니면 혁명적 사회주의 둘 중에 하나에요. 그런데 서유럽을 중심으로 보통선거제도가 도입되고 나서 이 열려진 정치공간에 일정하게 적응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의제들을 끊임없이 현실정치에 도입하려고 한 세력들이 분명히 있었어요. 이러한 세력들이 사민당 좌파나 노동조합 좌파로 아니면 이태리 공산당이나 프랑스 공산당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 특성이 전반적으로 일치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통틀어 ‘구조 개혁 좌파’라고 표현한 거예요.

70년대 케인스주의가 위기에 몰렸을 때 이 위기를 새로운 질서로 만들려는 우파의 대안이 등장했는데 여기에 경합하는 대안들이 좌파 쪽에서도 제안됩니다. 그런데 사민주의는 대안이라고 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기존질서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기존의 케인스주의를 지키려고만 했거든요. 오히려 케인스주의를 적절히 극복하면서 70년대 등장한 신자유주의 우파와 정면으로 맞붙었던, 즉 기존질서를 바꾸려고 했던 좌파가 있었어요. 이들은 체제 바깥에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사민주의처럼 수동적으로 기존 질서를 고수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아니에요. 이런 이유로 이태리 공산당이나 칠레 공산당 아니면 영국 노동당 좌파나 프랑스 사회당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신자유주의의 황혼기인 지금,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중요하게 참고해야 할 흐름이 바로 이들이라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는 거죠.

“1970년대의 기본 전선이 꼴을 갖춰가고 있었다. 한편에는 국민 국가의 성취를 바탕에 두고 자본주의 극복의 방향에서 체제의 골간에 손을 대려는 구조 개혁 좌파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초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자본주의 복고의 방향에서 체제의 골간을 뒤집으려는 신자유주의 우파가 있었다. 승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이것이 수십억 지구인 하나하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결정적인 대결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Q 아옌데 정부가 제시한 <인민연합 강령>이란 무엇이고 이 강령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구조 개혁 좌파는 케인스주의를 부정한 게 아니라 오히려 케인스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이들이 추구한 국민-대중 경제의 건설은 사실 탈자본주의가 아니에요. 국민-대중 경제 건설, 흔히 복지국가라고 하는 것을 만드는 데는 동의한 거죠. 그런 점에서는 사민주의와 다를 바가 없어요. 하지만 이들은 이를 최종적인 목표로 본 게 아니라 그걸 디딤돌로 봤다는 데서 차이가 있어요. 디딤돌로 해서 탈자본주의 전망으로 가야 한다고 본거죠. 그 당시에는 국유화를 많이 얘기했는데, 도식적으로 말하면 케인스주의 + 국유화의 전망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칠레는 선거를 통해 집권하면서 서유럽보다도 먼저 구조 개혁적인 전망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칠레는 아직 복지 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대표적인 남반구 국가, 즉 반주변부 국가였어요. 왜 건설하지 못했냐하면 지구 질서 층위의 자본주의가 칠레 경제를 그런 방식으로 구조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칠레의 주요 수출원이 구리인데 거기서 나오는 수익의 대부분을 미국 자본이 가져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건설하기가 불가능했던 거죠. 국민-대중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칠레는 자본주의 그 자체를 건드릴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반주변부였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의식이 서유럽보다 먼저 등장했던 것이고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으면서 집권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인민연합 강령>은 남미판 케인스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요컨대 칠레 정부가 구리 광산을 완전히 국유화해야 한다, 여기에서 생기는 수익을 바탕으로 다양한 복지정책을 펼쳐야 한다, 단순히 구리 광산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제조영역에서도 국유화를 단행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인민연합 강령>의 핵심이거든요. 때문에 칠레의 경우를 70년대에 등장한 보편적인 구조 개혁 대안의 한 형태이면서 또한 유럽보다 먼저 등장하고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은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겁니다.

Q 칠레에서 시도한 구조 개혁은 실패했습니다. 이 가운데 드러난 구조 개혁 좌파의 한계는 무엇이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저는 칠레에 대해 정당한 발굴과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재평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요.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부가 쿠데타 때문에 실패한 것을 놓고 칠레 집권 좌파들의 실정이 누적돼서 결국 쿠데타로 인해 무너진 것이라고 보는 입장인 거죠. 그런데 저는 이러한 입장이 지나치게 결과 중심적인 평가라고 생각해요. 쿠데타가 일어난 것 자체가 다른 정상적인 정치과정을 통해서는 정권을 뒤엎는 것이 어려웠다는 방증일 수 있거든요. 구조 개혁 좌파의 시도가 일정 정도 성공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반대 세력이 쿠데타를 시도한 것이라고 역으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 세력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좌파 세력이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집권을 했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 구리광산 국유화 같은 정책을 통해 강력한 구심점을 구축했던 점은 분명히 성공한 측면이라 할 수 있어요. 다만 한계라면 그 힘을 보다 강하게 이어가는 측면에서는 취약했던 거지요. 우파 세력은 미국이라는 지구 질서의 핵심권력과 연계를 했기 때문에 국민 국가 내 거점이 상대적으로 취약했음도 불구하고 아옌데 정부에 맞서면서 결국에는 쿠데타까지 일으킬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렇다면 아옌데 정부는 국민 국가를 거점으로 하면서 동시에 지구 질서 차원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동원할 수 있었을까요. 1972년 정치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민중 권력의 여러 힘들, 예컨대 노동 현장 내에서의 노동자 자주권리 운동이라든가 지역에서의 주민자치 운동이라든가 이런 데에서 힘을 확보했었어야 했는데, 당시의 상황들을 보면 기대했던 것만큼은 유기적인 연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런 측면들이 구조 개혁 좌파의 한계가 아니었겠는가. 이점이 바로 생활 세계와 국민 국가 그리고 지구 질서를 아우르는 정치를 재발명해야 한다는 이 책의 결론과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Q 영국에서 구조 개혁 좌파가 시도한 ‘대안 경제 전략(AES)’의 성취와 실패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영국의 경우는 실패의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노동당이 74년 총선에서 승리할 때 내세운 공약 자체는 구조 개혁적 전망을 담고 있었지만 실제 집권하고 나서 펼친 정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이게 어떻게 보면 이미 사민주의적 정책이 일정하게 완성되어있는 중심부 국가에서의 좌파 세력과 칠레처럼 복지국가 건설 그 자체가 과제인 반주변부 국가의 좌파 세력이 갖는 차이라 할 수 있어요. 영국 노동당의 주류세력이 당시의 경제적 혼란 속에서 기존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틀을 소극적으로 유지하는데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구조 개혁 좌파 전망을 갖고 있었던 당내의 주변부 좌파 세력은 실질적인 정책 집행을 못하게 됐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1976년의 외환위기는 전지구적인 금융 네트워크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사실 영국은 성취라기보다는 실패를 중심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의 원인으로는 결국 노동운동과 같이 좌파의 대중적 기반이 되어야할 실천들이 그동안 사민주의적인 복지국가 틀 안에서 수동화, 체제화, 관료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구조 개혁 전망을 말 이상의 실천으로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영국의 실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국의 외환위기는 국민 국가 내의 거점만으로는 부족하며 자본의 초국적인 공세에 맞설 수 있는 민중 세력의 거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한 사례라 할 수 있어요.





Q 자본진영의 진지전이 승리를 거둔 이유는 무엇이고 이후의 변화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특히 영국의 IMF 위기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요.

칠레와 영국의 외환위기를 비교해보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어요. 칠레의 경우는 아직까지 금융자본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칠레에 대한 미국의 공세를 보면, 국무부나 CIA와 같은 전통적인 냉전 세력들과 칠레의 광공업에 투자하고 있었던 초국적 자본들이 주도가 됐었죠. 하지만 이들이 주도한 공세는 절반의 성공밖에 이루지 못했어요. 칠레 정부를 전복시키거나 굴복시키지는 못한 거죠. 때문에 쿠데타를 통해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사실 칠레는 약한 나라에요. 인구가 천만밖에 안 돼요. 그런데 이 나라에 대해서도 완전하게 본 떼를 보이지는 못한 거예요. 그런데 칠레 쿠데타가 73년 9월 11일에 발생했는데 불과 3년 뒤인 76년에 영국에서 IMF 외환위기가 발생합니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영국, 과거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었고 세계의 중심부인 이 나라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굴복을 시킨 거예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했냐는 겁니다.

중요한 건 공세의 주도세력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냉전주도세력이 아니라 새로운 세력, 즉 국제 은행가 네트워크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서독의 연방은행을 통해서 활동하는 초국적 금융 엘리트들의 네트워크가 작동을 한 거죠. 한 유서 깊은 국민 국가를 초토화시켜버리는 광경을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했던 겁니다. 사실 IMF는 없어질 수 있는 기관이었어요. 브레턴우즈 체제의 톱니바퀴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 체제가 붕괴된 뒤에는 용도 폐기될 운명이었거든요. 그런데 이후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IMF가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잔존하게 된 겁니다. 미국이 영국 정부에 직접 개입한다는 건 국가 간 전쟁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IMF를 통해서 개입한다면 실질적인 목소리는 미국을 통해서 나오더라도 마치 국제 사회가 한 나라의 금융위기에 올바른 처방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거죠. 바로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신자유주의가 정착이 된 건데, 가장 선구적인 사례가 76년 영국의 외환 위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Q 완전 고용과 복지 정책 대신 금융 시장을 중심으로 진지전의 지형이 변화한 것은 우파의 논의 틀을 좌파가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나요.

76년 말에 미국을 중심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는데, 카터정부가 케인스주의적인 정책을 복원하려고 하다가 이 상황에 직면하면서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상징적인 게 볼커(Volcker)라는 사람을 미국 연방준비제도(FRS, Federal Reserve System)의 의장으로 임명해요. 볼커는 의도적인 초고금리정책을 펼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성공합니다. 성공하지만 역으로 인위적인 경기침체 양상이 나타나게 되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초고금리정책의 피해를 중남미가 떠안게 되었다는 겁니다. 70년대에 금융자본은 남미의 군사정권들에게 굉장히 싼 이자로 떠안기다시피 해서 대규모 융자를 해줍니다. 이 돈으로 남미의 여러 나라가 경제정책을 펼쳤는데 갑자기 초고금리가 되면서 눈덩이처럼 빚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 외환위기를 맞이하게 되죠. 그리고 이 위기를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IMF의 요구에 따라 구조조정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남미 여러 국가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한 거예요.

이 모든 과정의 한 가운데에 ‘볼커 쇼크’가 있기 때문에 볼커 전환을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어요. 달리 말해 전지구적인 규범이 성문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전에는 완전 고용이나 복지 정책 혹은 냉전에서의 승리와 같은 여러 가치들이 공존하고 있었어요. 이런 가치들을 다 고려하면서 정책들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게 45년에서 75년까지의 상황이라면, 볼커 쇼크 이후에는 자유주의 경제의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화폐가치의 안정이며, 이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가치들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전지구적인 규범이 확립된 것이죠. 신자유주의의 출발이라 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좌파 세력이 프랑스의 미테랑 정권이었는데, 이마저도 83년에 항복을 하고 말아요. 결국 좌파 세력들이 우파의 틀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즉 제 3의 길 같은 노선이 등장하게 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 시대가 끝난 거지요.

“더욱 치명적인 것은 좌파 스스로 패배를 합리화하고 우파의 구조 개혁을 새로운 신념으로 추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최후의 저항자들이 앞다퉈 전향하는 순간, 새로운 지구 정치 경제 질서의 헤게모니는 완성되었다.”

Q 프랑스 구조 개혁 좌파의 대안인 <공동 정부 강령>은 무엇을 시도했고 왜 실패했나요.

정당하게 평가를 한다면 미테랑 정부가 81년에 집권하고 나서 1년 동안 펼친 정책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보다 급진적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의 중심부 국가가 은행의 대부분과 제조업의 거대한 그룹들을 실제로 국유화했던 겁니다. 물론 이 국유화에는 한계가 있어요. 사회당은 국유화를 통해 노동자의 자주권리를 실현시키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국유화를 하고 나서는 자본주의 내의 공기업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즉 국가가 경영진을 임명하면 그 경영진이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형태에 머물고 맙니다. 많은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이 더 이상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으로 넘어가면서 현재 신자유주의의 핵심에 있는 반면 프랑스는 국유화한 기업들을 계속해서 육성해나갔기 때문에 아직도 제조업이 살아있어요. 이런 차이들은 어쨌든 미테랑 정부가 구조 개혁적인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런 점들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프랑스 역시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81~83년 당시에 미국이나 서독이나 통화 가치 안정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게 기조였기 때문입니다. 케인스주의의 입장에서는 경기 침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적자 재정을 펼쳐야 하는데, 당시의 전지구적 질서에서는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한 인플레이션 억제가 주안점이었기 때문에 프랑스가 확장 정책들을 고수할 수 없게 되었던 거죠. 케인스주의가 교과서의 지위에서 이단의 지위로 추락하게 된 겁니다. 유독 프랑스만 이런 전반적인 흐름에 저항을 했던 거였어요. 그런데 모든 나라들이 의도적으로 긴축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한 나라만 확장 정책을 펼치다보니까 무역수지 악화라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결국 프랑스 역시 케인스주의적인 경기 확장 정책을 포기하게 되고 말아요.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가 정착되고 있는 마당에 프랑스라는 국민 국가 차원에서 프랑화를 고수하면서 케인스주의적인 경기 확장 정책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한계를 절감하면서 프랑스 좌파가 유로화 단일 통화에 앞장서게 됩니다.

Q 영국과 프랑스의 패배는 이후 세계 질서가 전개되는데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왜 이들은 자본 진영이 강요한 선택지 외의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나요.

만약 영국과 프랑스가 다른 대안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만들어졌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거예요. 영국과 프랑스가 중요한 나라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핵심에는 미국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미국의 변화에 따라서 지구 질서의 상황이 변동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가 당시에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과 완전히 다르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만일 영국의 노동당 정부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리고 프랑스의 미테랑 정부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신자유주의 지구화 과정이 정착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고 더 완만하게 진행되었거나 아니면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왜곡된 형태로 실현이 됐을 수도 있겠죠. 이런 가능성들은 분명히 있어요.

그렇다면 왜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는지 물을 수 있어요. 당시의 좌파 세력들은 그런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만일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엄청난 혼란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예컨대, 얼마 전에 그리스 총리가 국민 투표하겠다고 한 마디 했는데 전 세계, 특히 채권국인 독일이나 프랑스가 달려들어서 이틀 만에 없었던 걸로 만들어버렸잖아요. 이런 상황을 당시의 영국과 프랑스가 경험했겠죠. 여기에 맞서려면 70년대 초에 칠레가 경험했던 것처럼 대중 운동의 전면적인 부상, 다시 말해 좌파 정부와 대중 운동 세력이 유기적인 연계를 맺으면서 장기적인 혁명을 시도해야만 했어요. 장기적이고 혹독한 혁명의 과정을 겪어야 했는데, 차마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자신감이 없었던 거죠. 자신감이 없었던 중요한 이유는 당시 좌파가 생활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만약 대안적인 선택을 한다면 과연 노동 운동이 따라올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거예요. 신자유주의는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긴 역사적 선택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시장’과 ‘국가’ 보다 우위에 서야 할 ‘사회’ 자체를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구조’ 개혁의 여러 과제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닐까. 오늘날 이 ‘사회’는 자본-임노동 관계나 국가 관료 기구의 거대 체계로부터 자율성부터 되찾아야 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체를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점에서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는 기존 사회주의 운동에 부족했던 새로운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Q12 좌파 정치가 국민 국가에 지나치게 긴박되어 있었다는 역사적 한계를 지적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생활 세계를 바꾸는 정치와 지구 질서를 바꾸는 정치는 국민 국가의 정치와 어떻게 연동될 수 있나요.

새로운 정치를 발명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거대한 과제로 보이는데, 사실 20세기에 걸쳐서 좌파 운동이 만들었던 질서 역시 거대한 실천들의 결과였거든요. 보통선거제도를 도입하고 국민 국가를 만들고 독립을 쟁취하는 등 이 정도의 거대한 실천들이 21세기에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19세기에도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든다는 게 굉장히 거대하고 막연하게 다가왔었을 텐데, 20세기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점차 현실로 만들었던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국민 국가로 한정되지 않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만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어요. 몇몇 국가에서 케인스주의 정책을 복원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가 바뀌는 게 아니에요. 신자유주의 자체가 인류사적이고 문명사적인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그 정도의 인류사적이고 문명사적인 프로젝트가 가동이 되어야만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생활세계를 바꾸는 정치는 다른 게 아니라 생태주의나 여성주의의 문제의식을 이어 받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를 자본주의 변형에 적용한다는 건 결국은 생태 사회주의 혹은 녹색 사회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과 같아요. 구조 개혁 좌파의 중요한 인물인 앙드레 고르(Andre Gorz)가 생태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은 이렇게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거죠. 국민 국가의 정치를 재탈환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생활 세계의 정치를 복원해야만 한다는 거예요.

지구 질서를 바꾸는 정치는 가령 남미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다수의 국민 국가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서,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남미연합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공고했던 신자유주의 지배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가장 전위적인 세력이 되고 있거든요. 저는 이런 움직임들이 남미뿐만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던, 지구 질서를 바꾸는 정치가 다소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질 텐데, 이러한 움직임들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존의 국민 국가 정치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생활 세계와 이를 넘어서는 지구 질서의 실천들을 동시에 아우르는 변증법적인 과정으로 정치를 사고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국민 국가를 넘어서는 정치형태를 생각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에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틀을 만든 것은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지구적 차원의 지배를 관철시키는 틀을 만든 거잖아요. 반면에 좌파 세력은 그런 틀을 못 만들어왔죠. 그런데 남미의 경우 스스로 그런 틀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국민 국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남미 국가들의 공동 의지가 관철되는 틀을 남미연합이라는 형태로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지구 질서 차원의 틀을 만들어가기 위한 구상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남미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겁니다.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가장 앞서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Q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한창인 지금, 우리는 과거의 패배를 미래의 승리를 위한 실험으로 소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나요.


스웨덴의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Therborn, Goran)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의미는 있지만 탈자본주의의 전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준비되어 있지 못한 것 같다고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과거에 진보 좌파가 준비 했던 여러 대안 및 전망들과 비교해보면 미래를 준비하는 패러다임이 없는 게 사실이에요. 오랜 시간 동안 신자유주의를 경험하고 나서 자생적으로 여러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과거 맑스, 레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처럼 일정하게 정형화된 틀을 갖추지는 못한 상태에요.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하는 것은 이런 운동이 어떤 예측가들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전지구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촛불시위를 통해서도 경험했지만 대중은 인지적인 능력이나 혁명의 잠재적 역량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앞서 있는 상황이에요. 68 혁명도 TV를 통해서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지금은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한 인터넷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잖아요. 아주 빠른 속도로 저항주체 더 나아가 대안주체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이와 마찬가지로 속도를 내서 노력할 필요가 있겠지요. 한국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으로도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준비가 아직은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에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이 책을 쓰면서 여러 문제의식을 던진 이유도 이런 과제들을 급하게 하지만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몇몇 정책만 제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부자 증세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거나 은행 국유화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이런 건 아니거든요.

Q 앞으로의 신자유주의를 전망한다면요.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정책 패키지가 아니라 인류사적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어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로 신자유주의가 몰락기에 접어든 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다른 질서로 대체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기존의 대안은 몰락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그람시적인 위기 개념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세상을 지배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건 굉장히 무서운 얘기에요. 이 시간은 전지구적인 위기의 시기이기 때문에 1920~30년대의 대공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다만 이런 시대일수록 더욱 근본적인 대안이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커지기 마련이겠죠. 항상 종말론이 그렇잖아요. 무서운 종말의 가능성과 구원받을 가능성이 함께 온다는 것, 다시 말해 종말은 곧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하기에, 이 둘을 함께 볼 필요가 있는 거지요. 힘들지만 흥미진진한 시대가 우리 앞에 열려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존의 정치 형태를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스스로 발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국민 국가의 정치에 적응해온 과거 좌파 정치의 역사가 놓쳤던 정치의 또 다른 층위들을 환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또 다른 층위의 정치들을 국민 국가 수준의 도전과 결합시켜야 한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 제시한 도식을 따른다면, 그것은 곧 국민 국가의 정치를 생활 세계의 정치, 지구 질서의 정치와 (재)접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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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8:28

조성호 기자

특별한 서강을 만들기 위한 학자 출신 총장의 도전

2009년 6월, CEO이자 전국경제인연합 부회장 출신의 손병두 전 총장은 퇴임을 앞두고 가진 한 인터뷰에서 임기 동안의 성과를 ‘기업 경영의 도입’으로 요약했다. 한편 손 전 총장으로부터 13대 총장직을 이어받은 이종욱 현 총장은 취임하기 얼마 전 『춘추』(효형출판)라는 저서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외세에 의존해 민족을 망하게 했다는 식으로 주류학계의 비판을 받는 김춘추에게 ‘민족’ 개념을 강요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단일 민족’을 앞세우는 역사가들을 비판하며 ‘민족’ 개념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 그의 주장을 통해 서강에게 기업을 강요했던 손 전 총장과는 무언가 다른, 학교 운영에 있어 발상의 전환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2009년 4월, 총장 후보자들의 소견발표회에서 서강을 새로운 대학 모델로 만들겠다고 주장했을 때부터 그러한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009년 6월, 4년 공식 임기를 시작하며 마련된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특별한 서강 프로젝트’와 ‘산학협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당시 언론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한 세대인 25년 뒤를 내다보며 자유로움, 수월성, 국제화, 자율성 등의 가치들을 담아낸 ‘서강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가 “잘 모르는 분야”라는 이유로 산업혁력팀(과거 대외협력팀)에 맡기겠다는 ‘산학협력’이었다. 어떤 언론은 이를 얄궂게도 <이종욱 서강대 총장 “돈 버는 대학 되겠다”>라는 표제로 정리했다. 물론 산학협력 모델과 같은 수익구조의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등록금 없는 대학’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몹시 설레는 말이었다. 그만큼 ‘특별한 서강’은 파격적인 비전이었다. 학계에서 비주류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학교 운영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소수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는 생각은 결코 허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의 약속들은 임기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화되는 듯 보였다. 2009년 7월, 그는 교내 홈플러스 입점 계약 취소 의향을 삼성테스코 측에 전달했음을 밝혔다. 전임 총장이 뿌린 씨앗이었던 그 계획은, 삼성테스코가 신축 건물의 건축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대신 계약 기간 30년 동안 무상임대 형태로 홈플러스를 운영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학생과 교수 그리고 지역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후에 이 총장은 구청의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교수초빙으로 인해 당장 불거질 공간문제가 계약해지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정은 ‘캠퍼스 상업화’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거센 상황에서 대형 유통업체의 대학 내 첫 진출을 좌절시킨 사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 2009년 7월 산학협력의 첫 결실인 에스 메디(S-Medi)의 창업과 정부지원의 인공광합성 연구센터 유치 등은 산학협력 모델의 현실화 가능성을 앞당겼다는 점에서 그의 출발을 가볍게 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학자의 위기일 뿐 인문학의 위기는 아니라며, 전인교육을 통한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던 그가 경영과 인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정말로 잡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모아졌다. 이러한 이유로 학자이면서 동문인 그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임기 절반의 공과(功過)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
전직 고위 관료의 정교수 임용, 산학협력 구축을 위한 특단의 조치인가 임용 특혜인가.

특별한 서강’을 만들려는 총장의 의욕은 산학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사정책상의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문제는, 논란이 늘 손 전 총장의 그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손 전 총장은 2008년 3월 출범한 국내 최초의 대학기업이자 기술지주회사·대학원·벤처금융회사가 결합된 산학클러스터인 ‘씨앗’(SIAT·서강미래기술연구소)의 초대원장에 장흥순(서강미래기술연구원 원장·터보테크 사장) 전 터보테크 사장을 임명했다. 그는 대표적인 벤처1세대로 각광받다가 분식회계로 2005년 12월 구속되고 2008년 1월 특별사면 된 바 있다. 또한 같은 시기, 비정년트랙 전임 연구교원이자 ‘씨앗’의 부원장으로 이철수 교수(기계공학과 교수 겸 산학협력 기술지주회사인 SGU홀딩스 CEO)를 임용하는 과정에서 교원인사규정을 어기고 정교수로 임명하려는 계약서가 작성됐다는 점이 교수협의회(교협)에 의해 지적됐다. 이 총장의 인사정책 논란은 바로 앞서 말한 ‘씨앗’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대표적 사례는, 2008년 7월 임용되어 각각 SIAT 산하 연구소들의 소장을 맡았던 전직 차관 출신인 오영호 교수(서강미래기술연구원·한국무역협회 부회장)와 반장식 교수(기술경영전문대학원 원장)를 이 총장이 2009년 10월 정교수로 임명한 것이다. 이들이 서강에 임용될 때, 장흥순 원장은 “대학의 기술사업화를 촉진하는 기폭제”이자 “대학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모델”의 시작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1년 만에 정교수가 되자 곧장 교협이 반발했다. 2009년 9월, 교협은 총장의 ‘특별한 서강’이 학교규정에 어긋난 ‘특별한 승진’을 의미하는지 성토했다. 2009년 11월, 총장을 대신해 조긍호 전 교학부총장이 “이번의 결정은 두 분의 풍부한 국정 경험을 교육 및 관련 사업에 접목하여 특별한 서강을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적 결정”이라 답했지만 교협은 학교 측이 임용의 근거로 내세운 ‘총장내규’의 시행지침(상시특별초빙)이 상위규정인 ‘교원인사규정’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이 총장의 행보는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을 불렀다. 교협의 2009년 12월 성명에 따르면, 총장은 2010년 8월 24일 보직자 회의에서 “이유 불문하고 통과시켜 주십시오.”라고 했으며, 2009년 12월 9일 긴급교수회의에서는 반장식 교수를 자리에서 일으켜 500억 원의 연구비를 따오게 한 분이라는 말로 소개하고 인사를 시키면서 교수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하였다. 2009년 11월 27일, 이 총장 체제에서 최초로 자진사퇴했던 조장옥 교수(당시 경제학부학장 겸 경제대학원장)는 <사퇴의 변>을 통해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인사’와 함께 ‘모욕적인 이 총장의 언사’를 사직의 이유로 들었다. ‘특별한 서강’으로 가는 길은 임용 특혜 시비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경영대 사태, 학교에 대한 명예 훼손인가 학내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인가.

‘산학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인사정책에 관련 논란이 잠잠해진 지 오래지 않아 ‘특별한 서강’은 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사건의 발단은 어김없이 손 전 총장 재직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5월,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부터 5년간 8250억 원을 투입해 해외 석학을 유치하고 첨단 분야 학과를 신설하여 세계 수준의 대학 경쟁력을 목표로 하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 육성 사업(WCU 사업)’의 시행계획을 발표한다. 2009년 4월, 1차 사업을 통해 사업단 몇 곳을 운영했던 서강은 WCU 사업의 2차 사업에서 사업단 1곳이 또 다시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다. 2010년 상반기부터 전 세계 경영전문대학원 중 처음으로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민재형 경영대학장·대학원장)에 신설되는 ‘서비스시스템경영공학과(SSME, 김용진 학과장)’는 5년간 수십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다. 경영대로서는 손 전 총장 때인 2008년 7월 중소기업청과 맺은 ‘현장 맞춤형 컨설팅’ 인력양성을 위해 연간 5억 원의 지원을 받기로 한 협약과 2009년 3월 ‘컨설팅MBA’ 과정의 신설에 이은 호재였다.

그러나 서강은 WCU 사업에서 2010년 2월 사업단 1곳이 퇴출된 데 이어 그 해 12월에 또 다시 1곳이 탈락하고 만다. 한편, WCU 사업의 총체적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사업의 정당성과 함께 관련 대학의 윤리성이 도마에 올랐다. 2010년 12월 현재 서강대에서 운영되는 WCU 사업단은 총 5곳으로 2009년 지원액은 26억8천9백만 원이다(‘WCU 사업단 유형별 평가 결과’). ‘경영대 사태’는 정부의 부실한 대학지원사업과 사업을 주도하는 교수, 이를 맹신하면서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실적에 목매는 대학, 무소불위의 교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경영대 사태’는 2010년 5월 경영대 교수 4명이 총장에게 같은 과 교수의 횡령 사실을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횡령 혐의를 받은 교수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컨설팅 관련 프로젝트를 수주 받아 컨설팅MBA 과정을 신설해 학과장을 맡았던 교수였다(<나랏돈 가로채고 제자 성희롱까지?>, 시사저널, 2010년 9월 1일). 감사에 들어간 학교 측은 혐의 일부를 밝혀냈고 그 교수는 같은 해 7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다. 그런데, 같은 달에 경영대 정교수 중 16명이 <이사장님과 총장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일부 교수들이 개인적으로 동료 교수들의 제자 학생들을 강압하여 스승의 행적을 조사하는 비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를 하였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사직서는 반려되고, 오히려 제보 교수들에 대한 재단 감사가 시작됐는데 그 과정에서 제보 교수들이 모욕을 당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재단 감사가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것을 문제 삼으며 월권행위를 했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학교 측이 감사결과의 공개를 거부하자 학교 차원에서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없다고 판단한 제보 교수들은 2010년 7월 횡령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들은 학내 성명서를 통해 “학교 당국이 조용히 잘 처리하여 당사자가 횡령한 연구비를 반환하고 학교를 떠나는 정도로 사건이 해결되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교수들에게 심각한 인신공격과 명예 훼손 등을 운운하며 협박성 루머를 퍼뜨리는 등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앞서 16명의 경영대 교수 명의로 발송된 서한의 내용을 반박하면서, 이번 사건을 경영대 내부의 파벌 싸움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자신의 비리 때문에 사직서를 낸 것을 파벌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일로 인해 대학 간의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비리가 있든 말든 연구비만 많이 따오면 잘못은 덮어줘야 한다는 것인지, 비리를 제보하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교수로서의 명성에 흠이 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사태가 외부로 확산되자 학교 측은 경영대 학장과 경영전문대학원 원장에게 관리 책임을 물어 보직 해임했지만 이는 학교 측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우려를 낳았다. 감사과정 중 제보 교수들이 학생과 동료 교수들에게 폭행·폭언을 했다는 진술(앞서의 ‘16명의 경영대 교수 서신’)이 나오자 이사회는 횡령 교수와 제보 교수들 모두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지만 제보 교수들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2010년 11월, 결국 학교 측은 횡령 교수와 그를 검찰에 고발한 제보 교수 중 한 명을 파면하고 고발에 참여한 나머지 제보 교수 세 명은 해임했다. 제보 교수들을 중징계하면서 학교 측은 ‘대학의 명예훼손(해교행위)’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2010년 12월, 법원은 제보 교수들이 낸 지위보전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1년 2월, 법원 결정에 이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소청심사위)는 정직·감봉 등의 경징계 결정을 내렸고 학교 측은 이에 불복해 중징계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며, 이에 제보 교수들 역시 맞소송을 냈다. 한편, 횡령 혐의로 약식기소 된 교수는 현재 정식 재판을 청구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11년 6월, 교협(박흥목 회장)은 <학교 당국의 교수단 억압에 대한 교수협의회의 입장>이라는 성명에서 “학교 당국이 내부고발 교수를 중징계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은 해당 교수들의 심적·물적 고통을 더하려는 악의적 의도”라고 비판했다. 6개월여 흐른 행정소송의 판결 결과는 2011년 12월 말에 나올 예정이다. 도덕성과 윤리성을 양보한 채 성장에만 매달리는 대학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경영대 사태는 ‘특별한 서강’에 대한 의문과 함께 과연 대학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도약을 향한 여정, 박차를 가하다.

이 총장은 넉넉하지 못한 재정 문제를 산학협력을 통해 극복하려 했으나 이 과정은 서강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이 총장의 활발한 대외활동은 ‘두 마리 토끼’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특히, 개교 50주년이었던 지난 2010년은 이 총장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2010년 4월, 학교 측은 서강 비전선포의 밤 행사와 함께 이루어진 기금모금 캠페인에서 현장 모금한 27억8000여만 원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103억8000여만 원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기금 마련의 노력과 함께 총장이 주목한 것은 공간 확보였다. 2000년부터 논의된 ‘파주 캠퍼스’ 계획은, 2007년 2월에 학교 측이 건립계획을 발표하고 파주시와 양해각서까지 체결하면서 성사될 것처럼 보였으나 땅값 상승으로 인한 재원 마련에 부담을 느낀 이사회가 2008년 캠퍼스 부지 매입 안을 부결시키면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2010년 2월, 서강대는 남양주시에 2015년 입주를 목표로 제2캠퍼스를 조성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해당 시와 체결했다. ‘남양주 캠퍼스’ 계획은 같은 해 10월 초, 자연과학부와 공학부 등 이공계 단과대학을 이전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내의 반발을 샀으며 이에 대해 학교 측이 해명하면서 조율을 시도했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2011년 11월, 교협은 성명을 통해 남양주 캠퍼스에 대한 정보공개를 위해 공청회를 요구했다.

이 총장의 공간 확보에 대한 열정은 남양주 캠퍼스 계획뿐만 아니라 당장 신촌 캠퍼스의 변화만 살펴봐도 실감할 수 있다. 2011년 9월 준공된 국제인문관(J관)과 산학관(TE)관은 서강의 공간 구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 건물의 준공식에서 이 총장은 “인문학부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지 않고 미래를 이끌게 되길 바라고, 떼이야르관을 통해 학문과 산업을 융·복합시킨 선도대학으로서 서강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취임 때부터 강조한 ‘특별한 서강’과 ‘산학협력’, 즉 인문과 경영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기반이 마련된 데 대한 만족처럼 보인다. 또한 J관 옆에 들어설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은 2013년 1월을 목표로 공사 중인 인공광합성연구센터 전용 건물이다. 이와 함께 2011년 12월 내 준공을 목표로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시전용학습관인 ’토마스 모어관’도 있다. 게다가 2011년 2학기를 마치고 착공되어 2012년 1학기 시작 전에 개·보수가 완료될 예정인 노후한 X관의 변화도 기대되는 서강의 변화이다. 이와 같은 공간의 모든 재편은 이 총장 취임 이후 본격화된 것이다.

학내 구성원 및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 필요해

‘총장과의 대화’라는 소통 프로그램은 매 학기 꾸준히 지켜졌다. 그럼에도 이 총장의 소통 노력이 저평가되고 있는 것은 학내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소통 의지가 형식적인 프로그램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2010년 12월 실시된 ‘학교정상화를 위한 서강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설문조사’는 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재직교수 341명 중 200명이 응답한 설문조사의 문항 중 교내의 여러 사안(교원인사위원회 구성, 재단감사 업무, 교무위원회 구성, 남양주 캠퍼스 이전문제, 경영대 비리고발 교수 징계 등)과 관련하여 총장이 발휘한 리더십에 대해 ‘잘못한다’는 응답이 81.0%였다. 이러한 결과를 총장이 심각하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은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한편, 2011년 7월부터 40여 일 간 진행된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11월에 발표되었지만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학내 구성원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서강의 구성원들은 오직 언론보도에 의존해 대학들이 지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방식으로 등록금을 ‘편법 인상’ 해왔다는 사실에 분노할 뿐이었다. 이에 대해 기획처 관계자는 감사결과가 감사원만의 감사방식에 따른 것으로 어떤 학교라도 그런 식이라면 수입과 지출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감사결과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연세대와 달리 서강대는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감사원만의 감사방식’이 무엇이고 왜 서강대는 대응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꺼렸다.

총장 임기 중 빈번했던 산학협력 차원의 교류에 비해 ‘사회와의 소통’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 중 두드러진 사례는 2010년 11월,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80여개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G20대응민중행동’의 ‘서울국제민중회의’ 교내 개최가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된 것이다. 이에 대해 관련 단체는 <이종욱 총장에게 보낸 공개 서한 전문>에서 “국제시민사회의 의사소통이 지구촌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바를 평가절하하고 불온한 것으로 치부하는 듯한 총장의 판단은 우리나라 시민사회와 학계의 격을 실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는 총장의 침묵으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았다. 또한 2011년 9월에 별세한 이소선 여사(故 전태일 열사의 모친)의 분향소가 서강대 의기촌 앞마당에 설치된 것에 대해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철거를 통보한 사건 역시 소통의 측면에서 아쉬웠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분향소를 철거하러 온 학교 측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학생들이 분향소를 자진 철거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날은 많은 외부 인사들이 방문하는 국제인문관 준공식이 예정된 날이었다. ‘특별한 서강’을 세상에 뽐내기 위해서는 서강의 진짜 ‘특별함’은 감출 필요가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모든 문제가 총장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 중간평가를 목적하는 이 기사에서 하려는 말은 아니다. 개별 대학을 압도하는 ‘산학협력’의 거대한 흐름은 한국사회를 관류하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의 연장선에 위치해 있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가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산학협력중점교수’의 법적근거를 마련했을 만큼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임기 초, 이 총장이 내세웠던 ‘특별한 서강’이라는 이상이 ‘산학협력’이라는 방법론에 지나치게 매몰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 ‘두 마리의 토끼’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 총장은 역사학자로서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모든 학내 사안을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냉정 빠진 열정은 순전히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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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8:23

글. 사진 송주현 기자

 설렘... 우연히 마주치다 Cappuccino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일어나기가 힘든 걸까.
몇 분의 잠이 간절하지만, 이미 ‘오늘 해야 할 일’을 떠올린 기특한 기억력을 원망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졸음 섞인 눈가에 상큼하게 닿는다.
조용한 공간을 찾아 헤매다 골목 안쪽에 위치한 카페 ‘달달한 하루’에 들어선다.
따뜻한 햇살 때문일까, 여느 때와 달리 몽롱한 기분을 쉽게 떨치고 싶지 않아
부드러운 거품이 가득한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구석 자리를 찾아 앉는다.
우연히 발견한 예쁜 카페에 들어설 때면 마치 어릴 적 만화에 나오는 ‘마법의 문’을 통해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듯한 묘한 설렘이 느껴지곤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일상은 여전하지만 카푸치노 한 모금,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는 마법에 걸린다.
 



오랫동안 모니터를 보고 있으니 목이 뻐근하다.
목을 동글게 돌리면서 주위를 살펴본다. 
카페 저 편에서 책을 읽고 있던 사람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사람도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는 듯하다.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지 주변의 분주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잔잔한 음악과 진한 커피 향, 재잘거리는 목소리, 밝게 비치는 햇살 그리고 카푸치노
그도 나처럼 일상과의 단절을 통해 다시금 일상을 살아가는 위안을 얻는 걸까.

달달한 하루, 그에게도 달달한 하루이길.



카푸치노(Cappuccino): 에스프레소, 뜨거운 우유, 그리고 우유 거품으로 이루어진 커피. 여기에 코코아 가루나 계피 가루를 뿌려 먹기도 한다. 카푸치노는 카페라테에 비해 우유의 양이 훨씬 적은 게 특징.

달달한 하루: 서강대 남문, 횡단보도를 건너 걸어가다 보면 오른 편에 위치한 작은 카페. 진한 커피 향과 곳곳에 아기자기한 아이템이 눈길을 끄는 곳. 


 중독... 일상에 스며들다 Americano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이라면, 언제까지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지 못했을 때 이 말의 의미 역시 알지 못했다.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섞어 만드는 지극히 평범한 커피, 아메리카노.
커피의 달콤함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검고 쓴 물’

하지만 아메리카노를 진지하게 음미하다 보면,
커피콩의 원산지와 커피콩을 로스팅하고 그라인딩하는 정도,
커피 머신의 압력, 들어가는 물의 온도와 양 그리고
뜨거움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머그컵 등
이 모든 것들이 미묘하게 그리고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때 그녀가 말했던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이,
달콤한 말로 현혹하지 않지만 그 무던함으로 삶에 깊숙이 스며들 수 있는,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의 색을 간직한,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까.

때론 진하게, 때론 연하게,
언제나 내 어딘가에 그렇게 스며들어있는 사람.





아메리카노(Americano): 에스프레소에 끓는 물을 섞어 만든 커피


추억... 그 사람을 닮았다. espresso


작고 예쁜 컵에 담겨서 매력적인,
한 번에 마시기엔, 그 쓴 맛에 주저하게 되는,

어느 새 바닥을 드러내 아쉬운,
너무나도 빠르게 스쳐 지나가버린,

다시는 마시고 싶지 않은 고통,
쓴 맛이 쉽사리 잊히지 않아,

그 기억이 입가에 아련히 맴도는,
언젠가 또 다시 마시고 싶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쓰다.

쓰디 쓴 한 모금을 넘긴 후,
달콤한 케이크를 먹는 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위로이자
감내하지 못한 자의 배신이다.


에스프레소(espresso): 고압·고온 하의 물을 미세하게 분쇄한 커피 가루에 가해 추출해내는 고농축 커피의 일종.

카페 싯따, 숨도(soom do)
서강대 남문 쪽 하이마트를 지나 길 건너편에 위치한 카페. 카페를 문화 공간의 일부로 사용하며 커피와 책, 전시, 인문 강연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기다림... 세 시간이 흘렀다. Dutch Coffee

말이 없는 두 남녀가 서로의 시선을 피한 채 커피 잔을 만지작만지작 한다.
그들의 모양새가 흥미로워 나도 모르게 시선을 옮기 운다.
어떤 상황일까? 고백의 순간일까, 이별의 순간일까.
표정에서 읽을 수 없는 미묘한 긴장과 식어가는 커피를 보며,
아무리 쿨한 것이 좋다고 외치는 세상이지만 기다림과 떨림은 여전하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숨죽인다.
 
문득 어느 드라마에선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이 언제나 쿨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사람들에겐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어느 시점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과
돌이킬 수 없는 질주에 대한 후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이끌려
뜨거운 감성에 기꺼이 나를 맡길 수 있는 건, 열정이다.

그들을 보며 잠시 동안 떨림과 기다림을 공유하던 중,
모래시계처럼 생긴, 더치 커피 머신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계의 와인’이라는 애칭이 붙은, 더치 커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커피를 보며
기다림과 뜨거운 열정이 한편으로 참 많이 닮았다는 걸.

떨림과 기다림이야말로 나와 그대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상이 아닐까.
부러 쿨하려 하지 말고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깊은 향을 내듯 기다려보자.
떨리는 가슴을 안은 채.

더치 커피(Dutch Coffee): 원두액을 찬물을 이용하여 한 방울씩 오랜 시간 추출하는 워터 드립 커피

CaféSSONG : 신촌역 5번 출구에서 서강대 쪽으로 올라오는 길, 첫 번째 골목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사거리 귀퉁이에서 만날 수 있는 CaféSSONG. 전문 핸드 드립 카페로 다양한 커피와 곳곳에 앤틱한 소품들에 시선이 절로 머문다. 카페 한 켠에는 음악가들을 위한, 피아노 연습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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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7:59


재수

작가 재수, 첫 장편작업이자 졸업 작품 「모베러 블루스」로 제4회 국제디지털만화공모전(SICAF)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장편 차기작「Pipe City」를 준비하고 있으며,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즐거운 고군분투 중이다. 네이버 블로그 jessoo에서 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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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7:57

서진

이번 휴대폰 진동은 끈질기다. 받지 않으려고 가방 깊숙한 곳에 두었는데도 웅웅거리며 애타게 울리고 있다. 차라리 꺼 놓았으면 좋겠는데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가 올까봐 꺼 두질 못했다. 오늘 따라 소설이 써지지 않았는데 이런 방해꾼 까지 나타났으니 오늘은 종친거나 다름없다. 휴우, 한숨을 쉬고 휴대폰을 꺼냈다. 이리 저리 흠집이 난데다 액정도 금이 가 있다. 예전에는 이런 휴대폰을 스마트폰이라 불렀지만, 이제는 더미폰이라고 불리는 게 맞겠지. 요즘엔 누구나 바이오폰을 쓰니까. 이런 식으로라면 영원히 울릴 것 같아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어이, 더 이상 봐줄 순 없어.”

‘안녕하세요 고객님, GT 통신 상담원입니다.’ 이라고 말하던 아리따운 안내원은 어디로 가고 가래가 잔뜩 낀 험악한 남자의 목소리가 일주일 전부터 전화를 걸고 있다. 나는 편의상 이 남자를 '양아치'라고 이름 지었다. 성은 양, 이름은 아치. 이름을 짓고 나면 소설이 슬슬 풀릴 때가 많다.

“무료로 바이오폰 시술을 해준다고 했잖아. 요즘에 그런 구닥다리 휴대폰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뭔가 더 보상을 바라는가 본데, 너처럼 미꾸라지 같은 녀석들 때문에 휴대폰 서비스를 중단하지 못해서 통신사들이 손해를 보고 있단 말이야!”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양아치의 말투가 약간 누그러졌다.

“이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바이오 폰은 잃어버릴 염려가 없어. 머릿속에 간단한 칩만 넣으면 된다고. 배터리도 필요 없으니 얼마나 환경 친화적이야? 머릿속으로 통화하기 때문에 두 손은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소음도 나지 않아. 스마트 렌즈도 시술하면 입체 동영상도 감상할 수 있는 거 알지? 영화보다 더 실감나. 그 뿐인 줄 알아?”

나는 수화기를 귀에서 살짝 떼어 놓았다. 수십 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다. 영업사원답게 장점만을 늘어놓지만, 사실 단점도 있다. 배터리가 필요 없기 때문에 살아 있다면 언제나 전화기는 언제나 켜져 있다. 일부러 전화를 꺼 놓을 수 있지만, 휴대폰의 전원이 나갔다거나 가방 안에 두었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나의 위치 정보가 고스란히 통신사 서버에 저장된다는 소문도 있다. 철저한 기밀 보장이 된다고 하지만 개인 위치 정보로 범죄자를 잡을 수 있었다는 뉴스가 종종 뜨니까 안심할 수는 없다. 루머에 의하면 개인의 건강정보도 빼낼 수 있단다. 바이오폰이 있으면 심장발작 등의 위험한 상황 때 자동적으로 119에 연결되는 서비스가 있으니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GT통신에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몸이 어디가 불편한지, 누구와 사귀고 있는지, 언제 죽을 지도 예상할 수 있겠지.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여전히 양아치는 바이오폰의 장점에 대해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저...저기 저는 지금 휴대폰으로도 별 불편이 없습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남의 말을 못 알아들어? 너 때문에 통화하는데 목까지 아파야겠어? 이것 봐, 이제부터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겠어. 엄연히 이건 영업방해라고. 우리가 통화한지 한 달 정도 되었나? 그래도 매일 매일 통화를 하니까 어쩐지 친근한 기분이 들어서 그래. 동생이라고 여겨도 되겠지? 까짓것 형이라고 불러.”

이런 형을 뒀다면 매일 싸우다 된통 두드려 맞았을 거다. 그러고 보니 가끔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를 빼고, 요즘 가장 통화를 많이 한 것은 이 남자구나. 정말 형이라고 불러야 할  지도.

"나는 동생에 대해 조금 알고 있지. 이봐, 소설가가 직업은 될 수 없어. 좀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그러니까 구닥다리 스마트폰과 이별을 못하고 있지.”

“어...어떻게 제가 소설을 쓰고 있는지 아세요?”

“GT 통신이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다고 생각해? 한심하긴... 요즘, 누가 소설을 읽는다고 그런걸 써? 소설이 나오기는 하지... 하지만 영화나 게임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어. 독서는 고상한 취미생활이 된 지 오래라고. 내가 젊었을 때에는 종이책이 100만부가 팔리던 시절도 있었지. 상금이 꽤나 되는 공모전도 있었고 말이야. 요즘엔 종이책이 잘 나오지도 않잖아? 전자책도 소설은 잘 팔라지 않아.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는 건 어때? 내가 영화 쪽에 아는 사람이 좀 있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회유, 협박 전화를 받기 싫으면 당장이라도 집 앞에 있는 통신 대리점에 가서 해지 신청을 하고 바이오폰 시술을 받으면 그만인데 나는 휴대폰을 바꾸기 싫다. 누가 억지로 권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 겉으로는 나의 편의를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 협박하는 것이다.

엄마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보통 때엔 말을 잘 듣다가도 꼭 알 수 없는 것에 고집을 부린다고.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다가 2년차 때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고 공부를 그만 둔 것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나도 이치에 맞는 설명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냥,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믿음이 점점 강해졌을 뿐이다. 몰래 학교를 휴학한 나는 부모님 집을 떠나, 책상 하나와 작은 침대뿐인 반 지하 방을 빌렸다. 부모님에게는 집이 너무 멀어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다. 양아치의 말처럼 요즘 누가 소설을 읽나? 어쩌면, 내가 읽기 위해 쓰고 있을 지도 모른다. 돈이 될 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일단 첫 소설을 완성한 다음에 생각해 볼 것이다.

양아치의 전화를 끊고 나서 글이 술술 풀렸다. 하루에 원고지 스무 매 분량을 쓰는 것이 목표다. 이 정도 페이스로 쓰면 한 학기 내에 장편소설을 마감할 수 있을 거다. 실패하면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거다. 원고지 열다섯 매 정도를 썼을 때,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다.

“연구에 매진하는 것도 좋지만, 엄마가 병원에 있는데 좀 찾아오지 않으련?”

“죄...죄송해요. 요즘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지금 시간이 나니까 당장 갈게요.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그럴 것 까지는 없는데...내가 미안해지네... 음... 종이로 된 소설책이 요즘 있으려나 모르겠네.”

나는 헐레벌떡 샤워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환절기만 되면 엄마는 천식이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30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의 공기는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광화문에 내려 서점에 들렀다. 엄마가 처녀 시절에는 종이책으로 가득 찬 초대형 서점이었다지만 지금은 전자책 기기와 카페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한다. 한구석에 마련된 종이책 코너에서 할인판매를 하고 있는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골랐다. 엄마는 제인오스틴 팬이다. 전자책으로 그녀의 책을 모두 소장하고 있지만 종이책으로 읽어야 책 읽은 맛이 난단다. 어쩌면 내가 소설을 쓰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엄마의 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비싼 종이책을 계산하면서 말이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났다. 노인 전문 병원이라 그런지 유난히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많다. 아직 엄마는 휠체어를 탈 정도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늙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코끝이 찡해졌다.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3층까지 뛰어올라갔다.
6인실 병실의 문을 열었다. 다른 침대에는 방문자가 없었다. 다들 멍 하니 입체안경을 쓰고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 중 단 한명, 창가쪽 침대, 엄마의 자리에는 덩치 큰 사내가 앉아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엄마의 얼굴이 저렇게 환한 건 본 적이 없다. 누구지? 엄마 친구라고 하기엔 젊다. 어느 순간 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어서와.”

엄마가 말한다. 남자도 손을 흔든다. 마치, 날 잘 아는 친구처럼.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간다. 마치, 이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엄마의 침대에는 종이책 한권이 놓여 있다. 이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연구실에 이렇게 재미있는 선배가 있다고 진작 왜 말해주지 않았니? 내가 딱, 원하던 책도 사오셨어.”

엄마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말한다. 선배라니? 이사람, 처음 봤는데. 그러자 그 선배라는 사람이 말한다.

“뭐, 녀석이 좀 숫기가 없긴 해요. 연구실에서도 너무 조용해서 깜빡하고 밥을 먹으러 혼자 남겨두고 간 적도 있다니까요 어머니.”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양아치다. 머리가 쭈뼛하고 섰다. 어떻게 이곳을 찾아왔을까? 아, 나에 대해 조금 안다고 했지. 엄마가 말한다.

“그리 어정쩡하게 서 있지 말고, 앉아 녀석아. 그리고 말이야, 왜 아직도 바이오폰을 사지 않아? 네가 어디쯤까지 왔는지 확인도 못하잖아. 얼마나 기다렸다고?”

“아무튼 녀석이 특이하다니까요. 그렇죠 어머니?”라고 양아치가 대답한다. 병실이 떠나가라 웃으면서.

서진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제12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하트브레이크 호텔』등이 있으며, 한페이지단편소설(1pagestory.com)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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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7:53

건망증
                       -박성우-

깜박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너무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 몸은
마구 담배를 피워댔다 유리창에 얼핏
비친 몸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옆에 앉은 손님이 말을 건네왔지만
내가 없었으므로 몸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산 없이 젖은 귀가를 하려 했을 때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웠다


 

바닥
-박성우-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린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 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괜찮아, 처음엔 다 서툴고 떨려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그대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핥았던가
아, 달콤한 바닥이여, 혓바닥

괜찮아, 냄새가 나면 좀 어때
그대 바닥을 내밀어 봐,
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
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바닥

그래, 우리 몸엔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박성우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거미」가 당선되면서 시 작품 활동을,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미역」이 당선되면서 동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거미』,『가뜬한 잠』,『자두나무 정류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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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7:50

표명희


모니터에 수상한 사람이 잡혔다. 지하층과 1층 복도를 기웃거리던 낯선 남자가 2층 복도 CC카메라에 다시 잡혔다.

“고시원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사장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궁시렁거렸다. 그가 장부와 계산기를 번갈아가며 들여다보는 내내 나는 CC티브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사내는 이제는 익숙한 태도로 T자형 좁은 복도를 감상이라도 하듯 천천히 오가기 시작했다.

“야, 어떻게 돈이 삼십만 원이나 차이 나냐?”

사장이 계산기를 내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월별로 종량제 쓰레기봉투 한두 장 차이나는 것까지 따지고 드는 사장에게 한 달 치 고시원비 빠뜨린 일이 용납될 리 없다. 퇴실 결정을 번복하며 나중에 재등록했던 학생 건을 깜박한 것이다. 어쩌면 사장은 그것이 나의 단순한 착오로 빚은 실수가 아니라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찜찜하다 못해 더러웠다.

“그 머리로 어떻게 시험 볼 생각을 하냐. 아무리 9급이라지만.”

입버릇처럼 하는 사장의 비아냥이 돌연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낙방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터였다.

“저 새끼 저거 미친 놈 아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내가 외쳤다.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겨갔다. 사내가 이젠 여학생 전용 층인 3층 복도에 나타난 것이다. 카메라 앞에 멈춰 서서 얼굴을 쳐든 사내는 군복색 잠바 차림에 검은 목도리가 얼굴 절반을 가린 게 꼭 복면강도 같다. 무슨 꿍꿍이인지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려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부리나케 사무실을 뛰어나간다. 수상한 놈도, 미친놈도 아닌 구세주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한달음에 3층을 올랐으나 사내는 오간 데 없다. 4층 복도까지 둘러보지만 굳게 닫힌 문들끼리 마주하고 있는 좁은 복도만 길게 뻗어있다. 겨우 한 사람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긴 T자형 복도. 바닥에는 실내화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갑자기 숨이 컥 막힌다. 교차 지점에 서서 좌우 복도와 길게 뻗은 중간 복도를 번갈아 둘러본다. 꼬질꼬질 때가 묻은 현란한 꽃무늬 실내화들의 T자 행렬에 현기증이 인다.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다시 한 번 복도를 살펴본다. 정체불명의 사내는 어디에도 없다. 설마 모니터 화면에서 헛것을 본 건 아니겠지. 사무실에서 받았던 열이 층간을 오르내리면서 제법 식었다. 이쯤이면 사장은 다른 볼일을 보러 갔겠지.

사무실엔 놀랍게도 모니터 화면의 사내와 사장이 마주하고 있었다. 

“승호야.”

뜻밖의 호명과 함께 목도리에 가려진 얼굴이 드러났다. 희고 매끈한 피부와 고운 선의 이목구비를 갖춘 귀공자 타입의 얼굴…… 어릴 적부터 가족들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온 8남매의 막내, 우리 집안의 마지막 애물단지 반백수 노총각 삼촌이다. -삼촌 떴다~ 지뢰 밟지 않도록 조심!! 며칠 전 사촌 형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퍼뜩 스쳤다.

“승호한테 이런 재미난 삼촌이 있는 줄 몰랐네.”

사장이 인사치레하듯 한마디 하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삼촌,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둘만 남자 내가 대뜸 따지듯 물었다.

“커피나 한잔 줄래?”

삼촌은 어물쩍 대답을 피해갔다. 사촌 형이 털어놓은 게 분명했다. 내 상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사촌형이다.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로 고민하던 내게 선뜻 공무원시험을 권유했던 이가 그였다. 이번 시험에서 그는 합격의 영광을, 나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아이슬란드라는 나라 혹시 들어봤냐?” 

커피를 홀짝이고 난 삼촌의 첫마디였다.

“가뜩이나 추운데 빙하의 나라는 또 왜?”

내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삼촌이 낯선 나라 얘기를 꺼내면 그 나라를 여행하고 싶다는 뜻이라는 것, 당연히 그에 따른 여행 경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고시원 엄청 크더라. 방이 백 개는 너끈히 돼 보이던데.”

말을 돌리며 삼촌은 모니터 화면을 흘끗거렸다.

“눈썰미 한번 놀랍네. 딱 99갠데.”

“내가 너네 사장 같으면 평생 세계 일주만 하면서 돌아다닐 텐데…….”

“하느님이 그걸 눈치 채신 거지.”

“승호, 너 되게 시니컬해졌다.”

“삼촌도 고시원 총무 노릇하면서 가족들 몰래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한번 해봐. 그러다 보란 듯 미끄러지고 나면…….”

더 말해 뭣하랴 싶어 대충 얼버무렸다. 삼촌은 빈 종이컵을 펼쳐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내내 쏘아붙이긴 했지만 삼촌과 마주앉아 있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삭막한 사무실에 배달돼온 공기정화 식물 화분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자린고비 사장이 염장 지르고 간 뒤라 더 그런지도 몰랐다. 

“승호 네 방 구경 좀 시켜주라.”

삼촌이 종이컵으로 접은 새 한 마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삼촌을 지하에 있는 내 방으로 안내했다.

“수저통 속 숟가락처럼 다들 머리를 이쪽으로 하고 눕겠구나.”

삼촌이 침대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나는 침대 밑 방바닥에 다리를 뻗고 젓가락처럼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좁은 방이 그나마 덜 답답해 보여 손님이 오면 잘 취하는 포지션이다.

“너 저번 학기 휴학했다면서.”

삼촌의 말에 나는 다시 긴장했다. 그건 가족도 모르는 비밀이다.

“등록금은 엇다 썼냐?”

나는 바닥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설마 그걸 노리고 온 건 아니겠지? 내 등록금이 삼촌 여행 경비로 쓰였다는 걸 엄마 아빠가 알면 삼촌도 무사할 줄 알아?”

나는 다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내 반격이 만만치 않았던지 삼촌은 멀뚱멀뚱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너, 삼촌처럼 되고 싶어 그래? - 엄마 아빠가 나한테 곧잘 하는 말이다. 촉망받는 젊은이였던 삼촌은 어느새 집안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었다. 서른여덟이라는 나이에 아랑곳없이 삼촌에겐 불치의 방랑벽과 못 말리는 피터 팬 증후군이 있다.

“바닥에 너무 오래 엎드려 있었어.”

드디어 삼촌의 ‘바닥론’ 등장이다. 늘 여행의 명분이 되는……. 

-바닥이다 싶을 때, 그때가 기회야. 박차고 날아오를 때라고. - 삼촌의 신조가 우리에게 먹혀들던 때도 있었다. 그의 스무 살 시절 이야기는 사춘기의 내겐 찜질방에서 마시는 냉식혜 같았다. 대학 입시에 두 번째 낙방하고 실연까지 겹치면서 삼촌은 처음으로 삶의 밑바닥에 닿아 보았다고 했다. 사흘 밤잠을 설치며 고민한 끝에 그는 학원비를 챙겨들고 기숙 학원 대신 라즈니쉬의 나라 인도로 향했다고 했다.

-거기서 구루를 만난 게 아니라 국가부도를 맞았지. - 몇 개월의 여행 끝에 그가 만난 구원자는 바로, 아이엠에프였다는 것. 달러당 8백 원이었던 환율이 귀국할 무렵 2천원으로 오른 바람에 그는 반 년 간의 여행을 공짜로 하고 삼수 비용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불행처럼 행운도 한번 찾아들기 시작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는 것. 6개월간의 인도 방랑 체험은 여행기로 결실을 맺었고 그 책은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몇 개월간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더니 급기야 여대생 애독자와의 연애 건수까지 덤으로 생겼다고 했다.  
- 그 행운이 결국 삼촌 인생을 망쪼 들게 한 거 아냐. - 아빠는 삼촌의 영웅담에 혹해 있는 나를 신랄하게 일깨웠다.
바닥의 딱딱하고 찬 기운이 등으로 전해왔다.

“삼촌, 나야말로 지금, 바닥 중의 바닥이야. 알아?”

침대 위 삼촌은 어느새 코를 골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은 모두 6대의 카메라가 비추는 장면으로 나뉘어 있다. 그는 분주하게 그 여섯 칸의 화면을 옮겨가며 등장했다. 내가 아니라 그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체험 삶의 현장에라도 뛰어든 듯 그는 일주일째 이곳을 맴돌고 있다. 복도를 오가며 열심히 실내화를 정리하고 바닥의 휴지를 줍고 물품을 정돈한다. 또한 나를 위해 커피를 타주고 김밥을 사다주고 내 방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책상 위에 작은 다육식물 화분을 올려놓는 섬세함까지 보였다. 사장도 벌써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형만한 아우 없다더니 삼촌만한 조카 없네. - 그는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용의주도하고 집요한 빚쟁이 같다. 그가 지하 카메라 앞에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만 항복하지, 그래? 넌 이미 내 손 안에 들어왔어. 가증스럽다 못해 존경스럽다. 허황된 꿈을 향한 열정이 저토록 강할 수 있다니. 그것도 서른여덟의 나이에……. 조만간 나는 그에게 두 손 들고 말 것이다. 그가 2층 카메라 앞에서 또다시 브이 자를 그려 보인다. 그러더니 다시 분할된 모니터 화면을 분주하게 오간다. 순간, 어떤 깨달음이 내 뇌리를 스친다.

고마워 삼촌. 내게 기회를 줘서. 정작 여행이 필요한 사람은 삼촌이 아니라 나라는 걸 깨달았어. 그동안 고시원 잘 부탁해.

나는 잠든 삼촌의 머리맡에 쪽지를 남겨놓은 다음 챙겨둔 배낭을 메고 지하 방을 빠져나왔다. 처음 그가 모니터 화면에 나타났을 때, 그는 분명 내게 구세주 같은 느낌이었다.

표명희
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에 단편「야경」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3번 출구』,『오프로드 다이어리』,『하우스메이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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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7:47

윤이형



그녀가 열람실 문을 힘겹게 밀고 들어온 것은 12월 초의 어느 날, 폐관시간을 한 시간쯤 남겨둔 오후 다섯시 무렵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날따라 신착도서 목록 파일을 갈아엎느라 오후 내내 직원 모두가 커피 한잔도 못 마신 채 분주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일 대조작업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앞에 그녀가 서 있다는 걸 알았다. 

주의 깊게 둘러본 사람은 알지도 모르겠지만, 대학 도서관 열람실은 의외로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사이클 선수복을 입고 헬멧을 쓴 땀투성이 중년 아저씨가 독일 시인의 시집을 대출해가거나, 로리타 양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아가씨가 이종격투기 교본을 한아름 빌려간다거나 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어서, 나는 웬만큼 특이해 보이는 방문객과 특이한 대출 목록에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사람에게는 각자 사연과 개성이 있는 법이고,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장소니까. 비율로 따지자면야 두터운 수업 교재를 끼고 다니는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절대 다수였지만, 졸업한 다음이라도 이용료를 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대출증을 만들기만 하면 누구나 출입하고 자료를 대출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해도 그녀는 역시 좀 특별한 방문객이었다. 나는 내 앞에 선 방문객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털 달린 카키색 야상을 입은 그녀는 금방이라도 앞으로 쏟아져 버릴 것처럼 서 있었다. 얼핏 봐도 팔순은 넘었지 싶은 할머니였다. 아니, 아흔 살쯤 되시지 않았을까? 체구가 아주 작았고, 눈가는 오래된 우물처럼 검었다.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절대적 존재가 그 이마에 입술을 대고 삶의 정수를 꾸준하게, 남김없이 빨아들여버린 것 같았다. 뒤로 빗어넘긴 성긴 은발과 앙상한 손가락 마디. 생기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 쪽을 잠시 응시하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꺼냈다.

할머니의 손가락이 연보라색 애벌레처럼 움직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할머니를 800번대 서가로 데려갔다. 밖에는 함박눈이 오는 모양이었다. 할머니의 좁은 어깨에서 떨어져 내린 눈 알갱이가 카펫 위에 자국을 남겼다. 나는 책을 손에 든 할머니가 서가 옆에 놓인 책상 앞에 편히 앉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열람실 안에 틀어놓은 히터가 과해서 그런지 머리가 아찔하고 온몸이 휘발되어 버릴 것처럼 느껴졌다. 까마득한 윗 학번 졸업생일까? 은퇴한 노교수나 학교 관계자? 그도 아니면 혹시 손녀의 대출증을 빌려 들어온 동네 주민은 아닐까? 규정대로라면 그런 경우 신분을 확인하고 내보내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자리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너무 힘겨워 보였고, 입고 있는 낡은 면바지는 날씨에 비해 지나치게 얇은 듯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헤어지기 전의 마지막 겨울, 나는 그 책을 이 도서관에서 빌려 D와 함께 읽었다. 내가 먼저 읽은 다음 그녀에게 빌려주었고, 책을 다 읽은 그녀는 대출기한에 늦지 않게 내게 돌려주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정말 그 책을 함께 읽은 것일까? 그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D와 나 각자의 세계에 그래도 겹쳐지는 부분이 어딘가 있음을 기억해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 책은 어느 추운 나라의 작가가 쓴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었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남자주인공 앞에 어느 날 한 연약해 보이는 노파가 나타나 책 한 권을 찾아달라고 한다. 책을 다 읽은 노파는 도서관을 빠져나간다. 그녀가 실은 오래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주인공은 그녀가 사라져버린 뒤에야 깨닫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비틀린 채 흘러 그녀만이 세월의 포화를 받은 채 여전히 젊은 그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도서관을 뛰쳐나와 미친 듯 헤매지만 결코 그녀를 찾지 못한다.

나는 사실 그 이야기가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쩐지 자신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의 목 위에 오직 아내의 얼굴만을 그려 넣었다는 화가 워터하우스의 병적인 애착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미래라고는 없는 남자. 여주인공만 노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설정이 유치한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내가 D에게 그 책을 빌려준 건 단지 D가 그 작가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책을 다 읽은 D는 그 소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았다거나, 싫었다거나, 단 한 마디도.

그러니까, 실은 정말로 미래가 없는 것은 나였다. 나는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그 작가의 작품에 관해 얘기하던 1학년 때의 D를 좋아했고, 그녀가 노트에 끄적이는 모든 글들을 좋아했고, 그런 그녀를 타들어가는 가슴으로 지켜보던 그때의 나 자신을 어쩌면 그녀보다 더 사랑했을 뿐, 3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으며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은 호박 속에 굳어버린 벌레처럼 내 기억 속에만 말라붙어 있었다. 집안 사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D는 졸업을 한 후 곧바로 대우가 좋은 직장에 취직할 예정이었고, 나는 아직 몇 년은 학교에 더 머물러 있어야 했다. 군대 때문이기도 했지만 설령 도시 빈민처럼 살더라도 글을 쓰고 싶다는 꿈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상황이 반대였다면- 내가 현실을 선택하고, 그녀가 꿈을 지켜냈다고 해도 우리는 헤어졌을까? 나는 D를 미워하고 내 자신을 미워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하지만 그녀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기고, 우리가 더 이상 공적인 자리에서도 대화하지 않게 된 다음에도 나는 그녀가 언젠가 내게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학교를 떠났고 나는 캠퍼스에 남았다. 그리고 몇 년인가가 흘렀다.

이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건 다른 일들보다는 육체적으로 편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벌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게 영원히 나이 먹지 않는 꿈이었던 책들의 공간을 단순히 근육에 피로를 느껴가며 정리해야 할 하루치의 사물들이 있는 장소, 낭만이나 여유라고는 들어설 여지가 없는 관료적인 업무와 삭막한 밥벌이의 공간으로 바꿔놓음으로써, 나는 그녀로부터 버림받은 나와 나의 꿈을 모욕하고 저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송아지가 일어나 걸음마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두고는, 대출대 옆에 펼쳐진 취업준비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던 도서관은 곧 다른 많은 곳들과 다를 바 없이 지루하고 힘겨운 장소, 내게 간헐적으로 두통을 안겨주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쉽게도 말이다.

나는 어느새, 하나뿐인 열람실 출구 쪽으로 걸어올 사람이 D라고 믿고 있었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닮았나?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이목구비도 그랬지만 전체적인 인상도 닮지는 않았다. 그 할머니의 얼굴을 한 D를 상상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D를 만나는 일이 의미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늙어서 그렇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버린 그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그녀. 내게 매달리지도, 애원하지도, 아파하지도 않은 그녀. 그녀는 그 죄 때문에 혼자서 수십 년의 세월에 노출되어 풍화되어버린 것이고, 연유는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이런 식으로 그녀를 한 번 더 마주하게 되어 있다고, 오늘을 위해 지금껏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거라고, 나는 취한 사람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그녀를 놓쳐버리지는 않겠다고도.

폐관시간인 여섯시에서 십분이 더 지나도록 할머니는 열람실을 나서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조금 비틀거리며 그녀가 앉아 있던 800번대 서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 책의 줄거리를 머릿속으로 되감으면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주인공 앞에 어느 날 한 연약해 보이는 노파가 나타난다. 책 한 권을 빌려 읽은 뒤 노파는 도서관을 빠져나간다. 주인공은 그녀가 사라져버린 다음에야 깨닫는다. 그녀가 실은 오래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를 떠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 뒤 자신을 속이는 일을 거듭하면서 살다가 사고로 일찍 목숨을 달리한 자신과는 달리, 그녀는 여전히 세월 속에 살아남아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게 그 소설의 진짜 줄거리였다. 기억을 비틀고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의 죄를 떠나지 못하는 지박령의 이야기.

정말 그랬던가? 그녀에게 진심을 말할 용기가 없어 비겁하게도 책 뒤로 숨는 방법을 택하고, 그녀와 내가 사랑하던 도서관을 저주의 공간으로 바꿔버린 그 이상한 이야기 속 인물은 정말 나였을까? 그러니까, 살아 있던 어떤 순간에도 충분히 살아 있다고 느껴보지 못한 이 나일까?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아니, 애초부터 그 할머니는 정말 D였을까.

모퉁이를 돌았다. 서가 옆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책장을 넘기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여전히 조금 젖어 있는 그녀의 앙상한 어깨 위로 드리워진 가느다란 은발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살아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살아 있습니까? 정말로 이상하고 부조리한 부탁이지만, 부디 우리 둘 다 살아 있다고 말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대답을 듣고 싶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윤이형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검은 불가사리」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큰 늑대 파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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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7:45

정한아


죽은 사람도 꿈을 꿀까. 내가 물었을 때, 너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지. 창밖은 캄캄한 밤이었어. 너는 너무 많이 지쳐보였어. 온종일 차를 달려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왔지만,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았지.

너를 불편하게 할 마음으로 그런 질문을 한 건 아니었어. 나는 늘 네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지. 내가 하는 말은 대부분 너를 피곤하게 할 뿐이고 그럴 바에야 입을 다물고 있는 게 훨씬 낫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하기를 멈출 수가 없었어. 침묵은 두 사람 사이에 감춘 것을 모두 다 드러내는 법이니까. 그것이 너와 나 사이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와 선명하게 보여줄까 봐, 두려웠어.

어린 시절 그런 동화를 본 적이 있지. 춤추기를 멈추지 못하는 빨간 구두의 소녀 이야기. 소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 걸 알면서도, 춤추기를 멈출 수가 없어. 결국 소녀는 다리를 잘라내고, 구두는 미친 듯한 춤사위를 품고 멀리 사라져버리지. 나는 때때로 소녀의 남은 생에 깃든 침묵을 생각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노파가 된 소녀에게 자신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그건 아마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췄던 때일 거야.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비싼 값을 치른 것을 소중히 여기지. 그래, 죽음이 없다면 그 누가 삶을 사랑할 수 있겠어.
 
산등성을 얼마쯤 올랐을까. 멀리서부터 희미한 불빛이 보였어. 너는 내가 손짓한 곳을 바라보았어. 붉은색의 철문은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것처럼 입을 꽉 다물고 있었어. 문이라기보다는 막다른 벽처럼 보였지.

성문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얼추 삼사십 명이 되어 보였어. 하나같이 꾀죄죄한 옷차림에 바싹 마른 꼬챙이 같은 인상이었지. 대개 젊은 사람들이었어. 나는 그들이 대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것인지 궁금했어. 뭐, 우리와 마찬가지겠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거나, 그와 함께 온 사람이거나. 인파 속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번호표를 뽑았냐고 물었어. 그는 우리에게 34라고 적인 종이를 건네주었어. 문이 열리면 그 순서대로 들어가는 거라고, 순서를 어기지 말라고 했지. “문이 언제 열리는데요?” 네 물음에 남자는 싸늘하게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쳐다보았어. “그걸 누가 알겠소?”

그는 여기 도착한 지 한 달이 넘었다고 했어. 그러더니 먹을 게 있으면 조금 달라고 말했지. 나는 남자를 노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어. 하지만 그 사이 너는 남자에게 벌써 음식을 꺼내 주었어. 남자는 순식간에 한 덩이 빵을 먹어치웠지. 나중에 빵을 남겨두지 않은 걸 후회할거라고 하자 너는 “소용없어요.” 라고 말했지. “뭐가 소용없다는 거야?” “후회해도 소용없다고요.” 너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구불구불 늘어선 줄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어. 성문에서는 가장 먼 곳이었지. 우리 앞에는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커다란 짐 보퉁이에 기대 잠을 자고 있었어. 제 방 침대에라도 누운 듯 편안한 모습이었어. 계집아이의 앙상한 다리는 온통 멍투성이였지. 너는 말없이 그 아이를 내려다보았어.

너를 처음 본 건 작년 가을이었지. 처음 화실에 왔을 때, 너는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지. 대학 입시까지 남은 2년간 미대 실기 준비를 하고 싶다고 했어. 왜 미대에 가려고 하느냐 묻자, 너는 간단히 “어쩌다 보니까요.” 라고 대답했지.

너는 성실한 학생이었어. 매일 제일 일찍 나와서 붓을 빨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그림을 그렸지. 친구도 없이 홀로 다니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선생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겉모습이 쿨하거나, 말솜씨가 쿨해야 돼. 미대 졸업 후 곧장 화실을 열어 입시생들을 가르쳤지만, 나는 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 얼굴이 예쁘장하거나 말솜씨가 있었다면 좀 나았을 거야. 하지만 나는 어느 한 군데 쿨한 구석이 없었어. 늘 지나치게 심각하고, 복잡했지.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지. 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두려워했어. 늘 그 소리가 날 쫓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그런데도 왜 선생이 된 거냐고, 언젠가 네가 물었던 적이 있지.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는 대신 “어쩌다 보니까……” 라고 대답했어. 너는 조용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었어. 

 “어른이 돼도 달라지는 건 없군요.”

맞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어른이 되는 거겠지. 10여년 병상에 계셨던 어머니는 간병인의 손길을 견디지 못했어. 돌처럼 굳어가는 어머니의 몸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어. 텅 빈 집에 돌아와서 라면을 끓여먹고, 이틀이나 긴 잠을 잤지. 다시 잠에서 깨면 뭔가 다른 일들을 해보리라고 생각했어. 이를테면 긴 여행을 떠나거나, 제빵학원에 다니거나, 살사 댄스를 배우거나 하는 일들. 하지만 그 중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았어. 그래도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 병원과 학원을 오가면서 유기한 나의 청춘이 이미 시간의 풍화 속에서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거야. 그렇지만 오해는 하지 마. 그런 종류의 스릴을 느끼기 위해서 너와 도망친 것은 아니야. 사실, 너와 도망치기 시작한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어. 사실 떠나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한 것은 너였지.

너는 부모님이랑 자주 다투고, 매일 화실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남아서 그림을 그렸어. 부모님이 미대 진학을 반대한다고 했지. 학생들이 다 빠져나가고 텅 빈 화실에서 우리는 종종 라면을 끓여먹고, 화집을 꺼내 보고, 라디오를 들었어. 나는 네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라고만 생각했어. 너와 같이 있다가 집에 들어가면, 텅 빈 고요가 유독 견디기 힘들었지. 종종 너의 가족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 꼭 너와 닮은 사내아이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 그것이 내 첫 번째 욕망이었어.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 그 밖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

화실 여선생이 남학생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후 정확히 보름 만에 수업을 듣던 아이들이 전부 다 빠져나갔어. 미대 재학 때부터 꾸려온 화실 문을 닫는 데는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소문은 꽤나 악질이었어. 너의 부모님, 누나들이 직접 찾아와 이젤을 넘어뜨리고, 물통을 뒤엎고, 난동을 피웠어. 그들은 모르지. 진짜 관계라고 할 만한 것은 그 소란이 끝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네가 나를 가엾게 여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너는 손이 따뜻해서, 그 손이 몸에 닿으면 어느 새 노곤한 기분이 들곤 했어.

네가 도망을 치자고 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그러자고 했지. 그래, 우리는 도망을 쳤지.

아무도 우리를 판단하고, 손가락질하지 않을 곳으로. 얼마든지 오랫동안 붙어 있어도 좋은 곳으로. 나는 트렁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쑤셔 넣었어. 겨울점퍼, 담요, 휴대용 스토브까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둘 다 몰랐지. 처음 도망칠 때는 분명히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계속 도망치는 동안 점점 불확실해졌어. 그래, 우리 사이에 말로 소통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 더 줄어들었지. 하지만 도망치기로 선택한 것은 나였어. 그러니 끝까지 가보는 거라고, 침묵이 길어질 때마다 홀로 그렇게 되뇌었어.

빵을 먹으려고 할 때, 우리 앞에 쪼그리고 자던 여자애가 잠에서 깨어났어. 그 애는 반쯤 갈라진 목소리로 자기도 좀 나눠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 너는 망설임 없이 네 몫의 빵을 떼어 주었어. 빵을 다 먹어도 기운을 차릴 수가 없어서 우리는 자리에 나란히 누웠지. “물을 좀 마시고 싶어.” “이따가 떠올게요.”

나는 잠시 누워 하늘을 보다가, 네게 물었지. “너는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니?” “후회요? 그야 늘 후회스럽죠.” 너는 눈을 감고 있었지. 눈 위에 작은 조약돌을 올려놓고서. 나는 그 조약돌을 들여다보면서 “나와 함께 도망친 것을 후회하지 않니?” 하고 물었지. “하지 않아요.” 너는 눈을 감은 채 말했어. “선생님은 돌아가고 싶으세요?” “돌아갈 수 없어, 난.” “그럼 안 돌아가면 되죠.”

밤이 깊어지면서 별이 높이 떠올랐지. 근래 이렇게 빛나는 별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려는데, 너는 이미 잠들어 있었어. 나는 너의 눈 위에 놓인 작은 조약돌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지. 너의 꿈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 문이 도대체 언제쯤 열릴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을 청했어.
 
정한아
2006년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달의 바다』, 『나를 위해 웃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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