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18

AI, 예술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정준모_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비평

 

 

인공지능예술의 현재

최근 뉴욕의 사진전문갤러리 메트로픽처스에서 미국작가 트레버 파글렌(Trevor Paglen, 1974~ )의 전시회가 열렸다. 컴퓨터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스스로 학습하면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내는, 아니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들의 보이지 않는 변화를 추적하는 전시다. 전시된 작품들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공부하는(Deep Leaning) 과정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이미지들을 추적하고 연구한 결과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컴퓨터 과학자들이 수 년 동안 스탠포드대학의 레지던시에서 협업을 통해 얻은 성과물이다. 이 성과물들은 컴퓨터가 학습과정에서 급증하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을 스스로 생성해내면서 예상할 수 없거나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을 채록(?),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되는데 우선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되는 부분 프로그램들을 모은 이미지와 컴퓨터가 판독 가능한 풍경, 그리고 컴퓨터가 스스로 만든 이미지들로 구성되었다. 그중에서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이미지들은 독일의 예술가 히토 스테이얼(Hito Steyerl, 1966~ )의 이미지 백여 개를 가져다가 다양한 얼굴 인식 알고리즘을 적용시킨 이미지와 함께 나이, 성별, 감정 상태 및 기타 특징을 읽고 만들어낸 프로그램을 함께 전시했다. 또 한편에는 철학자이자 혁명가인 동시에 정신과 의사이기도한 프란츠 파농(Franz Fanon, 1925~1961)이나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의 사진을 읽기위해 안면인식프로그램을 사용했다. 파농의 얼굴에서 파생된 또 다른 다양한 파농의 얼굴 표정은 컴퓨터에 탑재된 생체 인식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그 결과물들은 그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된 고유의 특성을 보여준다. 같은 이미지에서 각각 대립되는 환각적인 형상들을 만들기 위해 파글렌은 이미지들을 전조와 관념, 괴물, 꿈 등으로 분류하고 다시 이를 인식해 조합하도록 인공지능을 훈련시켰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인공지능은 점점 더 자기 혼자 스스로 으스스하고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새로운 이미지들을 첫 번째 인공지능과 함께 협업을 통해 생산해냈다. 이 전시에 출품된 비디오 설치작업은 일반적인 컴퓨터 속의 인공지능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 십 만개의 교육용 이미지들을 훈련을 통해 어떻게 사물과 얼굴, 표정과 행동을 익히는지 보여준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

늘 새로운 것에 목마른 예술가들에게 과학과 신기술은 충실한 동반자인 동시에 조력자였다.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가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것도 실은 그가 새로운 과학적 기법과 원리를 그림에 도입해 인간의 눈에 보이는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원근법 특히 선원근법과 명암원근법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또 해부학을 통해 인체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피부만 그린 것이 아니라 뼈대를 세우고 근육을 더해 인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의 상대성이론은 현대미술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예를 들면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유리의 집>(1939)은 빛의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 시간이 느리게 가고 길이가 짧아진다는 특수상대성의 원리에 의한 길이수축의 원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초현실주의자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의 작품 <기억의 지속>(1931)에는 움직임이 없는 쥐죽은 듯 고요한 해변에 시계가 나무에 늘어진 채 걸려 있다. 상대성이론의 정지된 시간의 개념이 보인다.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시공간이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입체파회화(Cubism)도 마찬가지이다. 백남준(1932~2006)의 작품도 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비디오아트는 1969년 일본 공학자 슈야 야베(Shuya Abe, 1932~ )의 도움을 받아 비디오 합성기를 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야베와 함께 만든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여러 비디오 영상 제작에 사용되었다. 비디오카메라나 다른 소스로 부터 최대 7개의 영상을 받아들여 실시간으로 편집이 가능했던 다재다능한 도구였다. 스캐닝, 색채변화, 녹화의 주요기능은 신시사이저의 건반처럼 빠르게 깜빡이는 화소단위 정보의 집합 영상을 전자적 메카니즘으로 직접 연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업적은 이런 기술적인 발명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 삶의 근원적 문제인 시간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도록 비디오라는 매체, 형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다.

이후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과학을 이용해서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이제 곧 인공지능이 많은 전문직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판사나 증권투자자들의 자리는 물론 의사들의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많은 예술가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고 있다.

하긴 하나를 가르치면 스스로 열을 아는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까지 갖춘 인공지능이 못 할 것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영국의 화가 헤롤드 코헨(Harold Cohen, 1928~ )은 이미 1973년 소위 아론’(Aaron)이라는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을 내 놓았다. 그 후 아론은 진화를 거듭해 1980년대에는 3D 공간에서 물체나 사람을 배치하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스스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발전했다. 아론의 그림은 1986년 코헨의 영국 테이트미술관에 기증되어 어엿한 미술관 작품이 되었고 1995년에는 경매를 통해 소장되기도 했다. 벤자민 그로서(Benjamin Grosser)는 쌍방향 대화형 그림 그리는 도구로 작업을 한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해지도록 상호 작용적인 경험, 기계 및 시스템을 구성하여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방식을 알려주어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그림에 영향을 주는 대화, 배경음악등 프로그램자체가 소리에 따라 반응하면서 캔버스위에 흔적을 남기도록 하고 있다.

음악에서도 작곡과 연주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야마하는 자동연주피아노 디스크라비에’(Disklavier)를 만들었고, 2012년에는 캐나다의 한 작곡가는 협업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당시 관객들은 사람과 인공지능이 작곡한 음악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예일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하는 도냐 퀵(Donya Quick)쿨리타’(Kulitta)라는 작곡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운드 클라우드로 공개해 사람이 만든 음악과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을 가려보라고 했다.

 

도구냐 예술이냐

인공지능이 인간이 만든 음악과 구분 할 수 없을 정도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실 작곡하는 인공지능 쿨리타의 경우 저장된 자료에서 규칙들을 분석하고 음계를 조합해 작곡을 하는데 이는 일종의 자기학습 방식으로 이 방식을 이용하면 클래식뿐만 아니라 여러 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기계시대 원본개념의 상실이 아니라 예술의 기본구조를 깨는 결과를 초래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컴퓨터 즉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한다고 하지만 이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은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끼고’, ‘이해해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한 작업이다. 인공지능이 좋은 음악을 만들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음악을 창조하기보다는 분석해서 조합하는 것이라는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젊은 새로운 음악가들은 쿨리타같은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론같은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도 사람이, 미술가가 애초에 만들고 창작해놓은 작품들로부터 학습이 시작되고 비롯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각으로는 예술이라기보다는 모방또는 복제의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 요즘 상업적인 영화나 음악의 경우 빅데이터를 분석해 이를 토대로 대중들이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들을 매우 정교하게 배치해 흥행과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과 어쩌면 닮아있다. 관객이나 청중들의 감상패턴이나 반응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분석해서 영화나 음악을 만드는 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작 하우스 오브 카드BBC 원작을 토대로 관객들이 원하는 감독과 배우를 기용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초단위로 분석해 흥행요소를 이어 붙인 것이다. 장면과 상황 즉 이야기를 엮었다. 소비자 성향 분석을 위해 기존 작품의 장면을 초단위로 분석할 정도로 치밀하다.

하지만 장르에 따라 다르지만 원칙적으로 음악의 경우 작곡 방식과 코드의 진행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라면 이 다른 장르상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이어붙이고 잘라 새로운 음악을 만들거나 편곡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창조가 가능하지만 컴퓨터와 프로그램은 다르다. 왜냐하면 사람은 비선형구조로 생각하지만, 프로그램은 선형구조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화가와 소설가, 음악가를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지만 절대적으로 인간의 감성의 영역인 동시에 비선형적인 예술의 영역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다. 사실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예술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라고 정의할 때 인공지능이 창작해낸 예술품들이 과연 종래의 미학적 관점과 태도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인간의 경우, 삶의 주변과 자연 등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등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그 과정과 과정마다 변화와 대응을 해나간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오직 완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작동하거나 아니면 완성되었다는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판단을 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학습을 해야 하는 과정이라면 결코 완성작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작업을 하는 중간에 나타날 수 있는 새로운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며, 영감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백남준에게 TVVCR 기술이 붓을 대신하는 도구였던 것처럼 인공지능은 예술의 도구 또는 조력자는 가능하겠지만 예술가를 대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과 외형이나 형식이 다를 바 없다고 하더라도 작품이라면 필히 갖추어야할 창조성과 예술성과 내면의 소리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넉넉하게 봐서 현대미술에서 사용되는 오마주(Hommage), 패러디(Parody), 차용(Appropriation), 키치(Kitsch)등의 하나로 정의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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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15

예술이란 시간과 공간속에서 자신의 존재로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

- 꽃처럼 나답게 피어나는 것.


손은정_ 플라워 아티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공대를 나왔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굳이 꽃을 배우러 가고. 그러한 과정은 어쩌면 남들에게는 너무 생뚱맞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내겐 공학을 하든, 글을 쓰든 ,예술을 하든,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을 걸쳐가는 좌표점을 찍어가는 방식과 프로세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표를 좋아한다. 내가 서 있는 공간과 시간에 ‘존재’를 표현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무엇인가, 어떠한 존재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인간은 끊임없이 증명해내고자 한다. 비록 한 점일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관계속에서든 시간 속에서든 밝혀내고자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딱 작년 이맘때 세운상가에서  ‘꽃, 시간의 강을 건너 시간과 만나다’ 라는 전시를 했다. 세운상가라는 우리나라 건축,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간’ 에서 그 ‘시간’을 꽃으로 표현해내는 작품이었다. 세운상가는 1968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당시의 타워팰리스였던 그 세운 상가는 전후의 빈민촌을 밀어버린 한국의 토지개발과 건축의 상징이라 할만큼 의미있는 곳이다. 산업적으로 보자면 세운상가는 우리나라의 IT와 기술 산업의 메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이 곳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시간’ 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는 것이다. 5층 중정에 장소를 잡았다. 햇빛이 들어오는 세운상가 5층 중정에 8층부터 5층까지 낚시줄을 이어 꽃들을 엮어 드리우고 시간의 흔적으로 탑을 만들었다. 세탁기, 텔레비전, 카세트 오디오 등의 80년대의 상징이던 가전들을 맨 아래에 버팀 삼아 그 위에 90년대 등장한 데스크 탑들과 뚱뚱이 모니터들 그리고 다이어트를 한 듯한 LCD 모니터들. 그리고는 그 위에는 나의 자랑이었던 1세대 아이팟, 폴더 폰, 시스코의 IP Phone 및 무선 Access Point 와 같은 2000년대 이후의 IT 장비들이 마치 탑처럼, 성처럼 그리고 무덤처럼 쌓여있고 그 군데군데, 부분부분을 각종  꽃으로 장식했다.  사실 그 꽃들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은 역시 ‘시간’ 이었다. 이제는 쓰지도 않을 그러한 기술의 흔적들은 그렇게 남는다 할지라도 ‘생명’ 과 사람의 흔적인 시간은 각기 다른 속도로 지고, 피고, 시들고를 반복하는 것을 전시 기간 1주일 동안 보여주고자 했다. 결국 시간의 한 시점에서 본다면 ‘기술’ 이란 것은 결국 정지해 있는 죽은 것이지만 생명은 매 순간 단 한번의 쉼도 없이 끊임없이 ‘살아 있는 것’ 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삶이란 것이 지극히 보잘것없고 무미해 보일지라도 얼마나 위대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또한, 꽃을 보이지 않는 낚싯줄로 꿰어 공중에 달아 늘어뜨린 것은 또 다른 기술로 인한 ‘공간’의 도래를 의미한다. 가상화와 클라우드를 통해 사이버 공간은 이제 또 다른 하나의 ‘공간’ 으로서 각자의 인격과 삶을 가진 공간이 되어버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개인은 각각의 얼굴을 가지고 서로 공중에서 연결된 듯 연결되지 않은 듯 ‘소통’ 하고 있다.

사진1 | 세운상가에 전시된 작품 ‘Cross Time with Flowers (2016)’


 즉 꽃을 통해 기술과 사람, 사람과 기술이 뒤얶혀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아우리는 ‘시간’ 이라는 것을 ‘세운 상가’ 라는 공간 자체가 무대가 되어 자연스럽게 녹여내고자 했다. 그러나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전혀 계산에 넣지 않았던 그 공간의 ‘사람들’ 그들이  작품안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세운상가는 우리같은 외부인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일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생계를 이어오는 기술자분들, 상인분들에게는 ‘생활’의 공간이다. 그곳에 외부인들이 들어와서 어떤 행위를 하는 일들이 반복되면 그들은 피로감과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막상 작품 하단의 기계들을 설치하는 동안에는 시큰둥하던 상가분들 그리고 기술자분들이 꽃이 등장하자마자 무언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향기를 맡으며 다가와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람’ 이 작품속으로 걸어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꽃! 아무짝에도 효용없고 관심도 없는 ‘꽃’ 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왜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가? 사람이 태어나도, 사람이 죽어도, 결혼이나 승진처럼 축하할 일이 있어도 반면 테러나 슬픈 일을 애도할때도 꽃을 준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감정을 하나의 어떤 ‘것’ 이 표현할 수 있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것도 그러한 복합적인 의미가 한 나라, 문화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것도 아주 먼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즉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함께 전달하는 유일한 것이 꽃이라는 생각에 그 의미를 알아내고 싶었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의 무의식에는 ‘꽃’ 이 어떤 식으로든 각인 되어 있고, 그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무관심하던, 무뚝뚝하던, 오히려 조금은 성가셔하던 세운상가 입주자 혹은 각 상가/회사에서 일하시던 분들은 꽃이 들어오면서 너무나 달라졌다. 그들은 미소와, 관심과 격려를 보내기 시작했고 과자를 사먹으라며 간식으로 주시는 분, 화장실을 쓰게 해주시는 분, 꽃을 설치하는 과정을 구경하시는 분, 질문하시는 분들로 갑작스럽게 부산스러워졌다. 24시간의 설치작업은 말 그대로 꽃처럼 마음들이 피어난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설치가 끝나고 오픈식이 끝났는데 어느 한 70대 어르신 한 분이 한참을 내 작품 앞에 서 계시는 것이다. 감사하기도 하고 혹시 마음에 안 드시나 싶기도 해서 다가가서 말을 건넸더니 이 작품의 작가냐 물으신다. 그렇다고 대답을 드리니

 “아 여기 말이야 시간을 표현할 수 있는 더 오래된 게 하나 딱 있으면 딱 좋을 텐데. 나한테 1940년대 진공관 라디오가 있는데 말이야. 그게 여기 중간에 딱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

 처음에는 이분께서 내게 진공관 라디오를 파시거나 대여하시려나 하고 오해를 했었다. 그러나 그 분은 정말 자신의 오디오가 그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내게 공짜로 그 80여년된 진공관 오디오를 빌려주셨다. 작품 중앙에 아이팟과 나란히 배치를 하니 ‘화룡점정’ 이 따로 없었다.

내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신 그 분. 그렇기에 그 자리에 IT의 시작이자 오늘날 자신을 여기 세운상가로 오게 한 진공관라디오가 ‘기술과 시간과 사람’ 을 이어주는 오브제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승근 오디오 기술장인. 그 분이야 말로 세운상가와 함께 한 사람 그 자체였다. 10대 시절, 진공관 라디오가 좋아서 배운 기술. 그때부터 지금까지 5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세운상가의 기술장인 . 나의 작품은 결국 그의 ‘시간’을 만나 완성 되었다.

 나의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는 ‘사람과 시간과 기술’ 을 꽃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사실은 세운상가의 ‘시간’ 의 강을 ‘기술(Technology)’이 엮어가는 과정을 꽃으로 표현하기 위해 처음에는 ‘세운상가’라는 건물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중심으로 담으려 했었다. 그러나 이 살아있는 공간에서 ‘시간’은 결국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 들로 인해 녹아나고 그들의 직간접적인 참여로 이 작품은 완성이 되었다. 작품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오래된 가전들을 내게 보낸 이들의 사연. 그리고 세운상가의 상인들과 기술자들의 이야기 소리, 미소 그리고 심지어는 진공관 라디오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과정 중에 그대로 꽃처럼 녹아 들어갔다. 

  ‘꽃, 시간의 강을 건너 시간과 만나다’ 는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지고,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과 기술을 담아내는 전시가 되었다. 아직도 긴 여운이 남는 이 전시는 아마 내 작품 생활에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장소의 시간성이 그대로 무대가 되고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꽃으로 표현되는 과정이 녹아 함께 설치가 된 이 작품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시간과 공간이라는 어떤 좌표 점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그것이 스스로에게이든, 사회를 향한 것이든, 자발적인 것이든 억지로 강요된 것이든 어떤 행위를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모든 ‘인간’ 은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내는’ 행위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이왕 해야 하는 것이라면 아름답게 해내고 싶다. 결국은 그것이 삶이고 , 삶은 그 하나하나가 예술 활동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다. 언젠가 질 꽃이라면, 피는 그 순간은 내가 최고인양 피어낼 수 있는 그런 꽃처럼 여한 없이 아름답게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그게 예술이지 다른 무엇을 예술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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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11

기업예술의 탄생

 

 

심상용_ 미술사학 박사,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교수

 

 

기업들에게 민주주의에서의 표현의 자유, 정당한 법의 절차, 혹은 정치적 대표성 등의 법적 권리를 주는 것은 일단의 계약서에 그런 권리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들에게 이러한 권리를 허용하는 의원들이나 판사들은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하거나 혹은 수퍼자본주의의 영향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사람들만이 그런 권리를 소유해야 한다.

 

 

기업국가한국

 

1997· 98년의 환란과 IMF 사태, 2008년의 글로벌 금융대란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기업은 국가운명에 상응하는 지위로 격상된 듯하다. 기업이 국가비전이요, 사회적 토대요, 민중의 철학이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선전이었다. 정부와 기업, 기업과 정부의 협력이 공공연하게 미화되고 도덕적인 것으로 포장되었다.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2012년 전체 기업 영업이익의 24.9%(39조원)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두 기업이 낸 것이다. 2009년의 16.9%에 비하자면 비약적인 증가세가 아닐 수 없다. 같은 기간 개별기업으로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이익 비중은 2009년 이후 두 배로 뛰었다. 이렇듯 짧은 기간에 국가의 경제 집중도가 위험수위를 오르내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었다.

기업 프랜들리 정부기업하기 좋은 나라등의 구호가 매일 저녁 뉴스를 타던 5년을 포함해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급격하게 기업국가로 재구조화되어왔다. 이 기간 동안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이윤창출을 내기 어려울 것으로 간주되는 공공영역의 기업이나 조직, 활동들은 급속하게 위축되거나 폐기되었다. 기업국가가 추구하는 가치와 실행의 목록은 이렇다. 경영진단이나 경영화의 이름으로 효율성과 민영화의 날을 갈고, 그 벼려진 것으로 공공영역과 활동들을 회복불가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들쑤시고, 그것들을 사적 수익의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Robert B. Reich에 의하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승리를 위해 민주주의를 쪼그라들게 하고, 소비자와 투자자의 근력을 키워 시민의 운동력을 박탈하는 국가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에 의하면 기업국가는 지난 30년 동안 우파가 최소정부라는 이름으로 추진해온 것인데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렇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국가는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하는 최소국가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국가)는 지나친 제약에 쫓겨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공공재(기간시설 및 과학기술, 교육에 대한 투자)조차 공급하지 못하는 국가, 지나치게 허약하여 공정한 사회구축의 전제조건인 소득재분배조차 시행하지 못하는 국가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정부의 규모는 전혀 줄지 않았으며, 기능적으로 심각하게 왜곡되어 부유층에게 푸짐한 선물을 내어주고 있다.”

기업국가 한국의 상황도 이에 못지않다.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는 한국에서 특권층·중상층이 아닌 사람으로 늙어가는 것은 처벌에 가까운 것이라 했다. 10대 그룹 대주주 10명에게 돌아간 주식 배당금이 70만 명 이상이 되는 공식실업자들이 받을 돈의 약 30%에 해당되는 이 사회에서 현대판 귀족사회의 부활을 본다고도 했다. 주로 현대미술의 V.I.P. 핵심 고객이기도 한 상위 1%의 평균 소득은 중위소득에 비해서도 22.6배나 된다. 반면 빈곤격차(poverty gap)는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나라다. 기업국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공성의 부재며 공공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다. 기업의 치열한 경쟁체계가 사회의 모든 기관과 조직, 개인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교육, 예술, 문화, 심지어 가정에조차 수익창출논리가 침투하고, 각 영역의 공공성과 자발성의 기반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기업국가에서 기업의 이익사냥을 벗어날 수 있는 땅은 단 한 평도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 공공영역은 준비된 경쟁자가 부재하다시피 하는 금싸라기 땅과 진배없다. 진출이 허용되는 순간, 막대한 이익이 기업의 차지로 돌아갈 것이다. 이들 기업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내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오늘날 대기업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특혜를 통해 차지한 돈의 일부를 공공영역을 수호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꺾는데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탁으로 한국의 교육과 문화는 분야는 이미 최소한의 공공성마저 담보하기 어려울 만큼 과도하게 사유지화 되어버렸다.

정부는 교육을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소수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도록 시장화 하는 사교육관련 기업들을 감시하는 일을 일찍이 포기해버렸다. 그 결과 공교육은 토대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교육이 기업의 쓸 만한 부품을 생산해내는 비인간적인 공정이 되도록 하는데 오히려 앞장서왔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이 기업국가, 교육방임정부에 의해 살인적 경쟁에 내던져지고 일찌감치 심신의 황폐화를 경험하게 된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불행을 떠안기는 것이 한국 공교육의 실체인 것이다.

대중문화는 몇 개 기업에 이익이 집중되는 독점구조로 급속히 이행되어 생태계의 교란은 이미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예술도 자본기계의 부속으로 급속하게 편입되어, 공공미술관은 민영화되고, 이론과 비평은 시장의 병참기지로 전락하고, 예술가는 브랜드화된 스타로 대체되었다. 작가건, 이론가건, 관장이건, 큐레이터건 심지어 감상자들조차 이익 지향적으로 인식하고 기업적으로 판단한다. 기업화된 개인이나 기업의 소장품 목록에 들고, 유능한 시장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 외의 다른 활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시장에서 성공한 예술이 진정한 예술로 선전되고, 구성원들은 이익과 효율성에 의해 서열화 된다. 이들 모두는 창작하는 빈곤층creating poor으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않은 채 경쟁 속으로 투입된다.

한국은 복수의 비엔날레를, 그것도 성대하게 치른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나라가 되었는데, 이는 비엔날레를 의사 기업쯤 되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인식이 한 몫 한 결과다. 비엔날레를 먹거리 산업의 전초기지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비엔날레의 이면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려는 시도는 매우 부족하다. 오늘날 글로벌 비엔날레들은 반자본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듯하면서, 실은 자본의 구동력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자본주의 벤처venture’로서 기능한다. 글로벌 거대 비엔날레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거나 앞으로 거래될 것들이 매우 특별한 가치 있는 것들이라고 믿게 만들기 위한 시장의 보조 추진 장치로 작동한다. 글로벌 비엔날레의 또 하나의 기능은 지구촌의 지역들에 예술의 글로벌 스텐다드를 유포시킴으로써 글로벌 시장으로의 편입을 용이하게 하는, 일종의 중앙화폐의 그것이다. 중앙은행 시스템이 중앙화폐 이외의 것들을 정크화폐로 낙인찍듯이, 지역의 예술과 미학에 불량 낙인을 찍는 기능인 것이다. 글로벌화가 지역 검열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글로벌 미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소수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오래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농담을 빗대어, 오늘날 경쟁적으로 치러지고 있는 글로벌 비엔날레들의, 현 시장 질서를 영속화하려는 위선적인 속셈을 폭로 한다. “그들- 글로벌 비엔날레들- 는 오늘날의 예술계가 자본주의 기계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말로 자본주의 기계의 일부이다!”

한국이 비엔날레라는 자본주의 기계를 통해 큰돈을 벌게 되는 일은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글로벌 비엔날레 체계가 미래에 큰 수익을 올릴 지도 모를 지역의 예술적 잠재력의 싹을 사전에 잘라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예술의 탄생

 

최근 대기업들이 예술의 전면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류韓流의 성공, 미술시장의 활성화 등으로 예술의 투자수익모델화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기업과 예술의 다양한 협력이 전례 없이 고무되고 있다. 국내의 영향력 있는 전시와 학술행사, 수상제도 등은 갈수록 소수 거대기업이나 대기업의 직·간접적 운영이나 후원, 기부등과 긴밀하게 결부되고 있다. 공공미술관 생태계 전반에서 비중이 큰 사립미술관들의 대다수가 재벌이나 거대기업 소속인 상황에서 예술에 미치는 이들 기업의 막대한 영향력이 그리 새로운 현상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미술관에 뿌리내린 대기업 안주인들의 손길이 힘으로 작동하는, 이를테면 재벌가의 미술관을 살펴보면 요즘 가장 잘나가는 작가의 답이 나온다는 작금의 상황은 이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특히 재벌 소유 미술관들의 활동이 발휘하는 영향력은 이전에도 남달랐지만, 그 힘의 작동방식에 있어 오늘날처럼 절대적이거나 포괄적이지는 않았다.

재벌가 사모님은 리히텐슈타인을 좋아한다같은 냉소 섞인 풍자에는 생각보다 함의가 담겨 있다. 기업예술의 전형적인 속성이 그 가운데 하나로, 예컨대 기업예술은 리히텐슈타인 같은 스타작가를 일관되게 선호한다. 분명 보편적 의미의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탈세나 비자금조성 같은 직접기여일 수도, 기업 이미지 개선이나 광고 같은 간접기여일 수도 있지만, 어떻든 기업이익에 부응하려면 스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익이 담보되지 않는 취향을 위해서는 결코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기업의 자발적 선행은 불가능한 개념으로, 기업은 좋은 일을 위해 좋은 일을 하지 않는다. 취향에 대한 존중과 자발적인 예술애호라는 요인이 전무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이 돈을 벌어주는 예술보다 상위의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므로 예술투자 기업은 블루칩 작가를 차지하거나 생산해내는 경쟁을 선동하고, 그들이 주류를 차지하도록, 그리고 안정적인 투자대상으로 자리잡는 시장이 조성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시장이 이미 안정적으로 구축된 작가들은 값이 오를 대로 오른 주식처럼 수익성이 떨어지므로, 기업은 갈수록 투자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신진작가들을 키우는데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블루칩 작가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미래의 스타-블루칩 작가들에 대한 집중은 투자의 변동성을 더욱 증가시키고, 그것은 다시 집중성을 높이도록 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경기가 자주 불황국면을 들락거리게 되면 기업들은 집중성을 더욱 높여 스스로 위험성이 낮은 활동만을 찾아나서는 회피효과를 강화한다. 절대다수의 작가들이 이 범주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만든 당사자인 예술투자기업은 이미 브랜드화되었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는, 사실상 대다수의 작가들에게 돈을 쓰는 것은 문화경쟁력을 떨어트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취향이라는 상쟁재로 인해 고도의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재가 있을 뿐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20117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이우환>전이 열렸다. 구겐하임의 아시아예술 담당 삼성 시니어 큐레이터알렉산드라 먼로Alexandra Munroe에 의하면, 전시의 취지는 한국작가 이우환을 세계적 인물이자 현대의 거장으로 조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삼성이 구겐하임에 제공해온 아시아관련 예술펀드가 아니었더라도, 한 아시아 작가의 세계미술에 대한 영향력이 구겐하임의 관심사가 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돈이 아시아현대미술에 대한 미술관의 관대함의 급수를 갑자기 높게 올렸을 거라는 것이 단지 추론만은 아니다. 이 사실이 전시의 보도자료에 명시되어 있다 : “이 전시는 삼성의 선도적인 후원으로 성사되었다.” 이는 그에 상응하는 선도적 후원이 가능하다면, 구겐하임의 큐레이터십이 여타의 작가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소신이나 평가를 조정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다.

20146월 알프레드 파크망Alfred Pacquemen 전 퐁피두센터 관장의 기획으로 프랑스 베르사유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던 이우환의 초대전에도 같은 맥락의 개입이 있었다. 기획자는 철과 돌이라는 두 물질이 충돌하는 효과가 이우환 조각의 핵심이라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전시만을 놓고 보자면, 이우환이 전시를 위해 직접 구입한 알프스 지역과 스칸디나비아 산 돌 만큼이나 베르사유의 중앙 홀에 삼성전자가 설치한 대형 초고화질UHD TV도 상징적인 요인이 아니었을까. 201388일자 <리베라시옹Libération>의 기사에서 베르사유의 까뜨린느 뻬갸르Catherine Pégard관장도 이와 관련한 베르사유의 확고한 입장을 밝힌다. "우리의 모든 행사에는 메세나가 같이 합니다.”

미디어들은 이우환이 베르사유에 초대된 두 번째 아시아 작가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세 번째다. 지난해 6월에서 9월 사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진전이 베르사유의 부속건물인 오랑주리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물론 유병언의 사진들의 베르사유 초대와 그가 베르사유에서 진행되는 물의 궁전의 숲행사의 유일한 메세나로서 기부한 14십만 유로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을 수 없다. 지난 2014612일 베르사유 박물관에서 진행된 뻬캬르 관장과 <연합뉴스>의 인터뷰에서 이 전시를 위한 유병언의 기부금은 5백만 유로로 언급되었다. 프랑스 외무장관 로랑 파비우스Laurent Fabius의 권유로 취소되긴 했지만, 또 다른 후원의 대가로 그의 사진들이 콩피에뉴 나폴레옹 3세 극장에서 열리는 음악회에서 전시될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기부에도 품격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그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오늘날 돈으로 살 수 없는 품격은 존재하지 않으며 돈이 품격을 가리는 것도 아니다. 전술한 인터뷰에서 "베르사유에 낸 유병언의 후원금이 공금횡령으로 조성된 것이라면 베르사유에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빼캬르 관장은 후원금이 문제가 있다면 베르사유는 책임자가 아니라 제1의 피해자"라고 펄쩍 뛰었다. 전시를 열 당시만 해도, 그 돈이 그토록 검은색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병언의 사진을 "평범함 속의 비범함"으로 극찬한 것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당시만 해도 그 작품이 아마추어 수준이라는 단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품격 있는 후원이 주는 명예와 로비로 사들이는 명예를 구분하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병언의 루브르 전시에 글을 쓴 사람은 박사학위 소지자로 1993년부터 파리 국립미술학교의 사진 큐레이터였으며 2010년부터 사진 분야의 전시를 책임지고 있는 안-마리 가르시아Anne-Marie Garcia. 아마도 유병언이 기부한 11십만 유로가 그렇게 하도록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베르사유의 뻬갸르 관장도 전직 기자로서의 필력을 살려 영원과도 같은 순간같은 시적인 표현을 동원해 이 훌륭한 사진작가를 찬양했다. 2012<꼬내상스 데 자르Connaissances des Arts>2013<보자르 Beaux-Arts>에서도 유병언의 사진을 테크닉이 뛰어난 걸작으로 평하는 뻬갸르 관장과 편집자 또마 슐레세르의 글들이 실렸다. 이 사태에 대해 베르나르 아스케노Bernard Hasquenoph는 탄식한다. “모두들 그의 케이크 조각을 원한다. 냉소만 나올 뿐이다.” 사실은 유병언의 케이크가 아니라 돈의 케이크일 것이다.

재력으로 인식을 조정하고, 로비로 예술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이 글로벌 현대미술의 판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어디든 공공연하게 확인된다. 한 때 명망을 누렸던 기관들조차 앞장서서 면죄부를 발행했던 중세 교회의 관례라도 따르듯, 후원이나 기부의 관행 안에서 액면가에 따라 구분되는 예술적 인정의 쿠폰을 주고받는다. 오늘날 예술투자 기업은 기부나 후원의 명목으로 포장된 로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싸움에서 우위를 장악하고 있다. 베르사유 박물관이 제프 쿤스나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상업적 키치작가를 끌어들였던 것도 이 맥락인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아스케노는 일갈한다. “() 소득원에 불과한 사람을 위대한 아티스트로 포장하는 데서, 우리는 현재 우리의 대표적인 미술관들이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모든 종류의 타협을 허용하는 윤리적 일탈의 기미를 본다.” 그럼에도 이를 단지 몇몇 기관이나 그 관련자들의 박약한 윤리성의 문제로만 다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정부와 기업, 공공선과 자본, 공공영역과 사유지 사이의 필수적인 균형 틀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다. 한국에서 여전히 구겐하임의 전시가, 모마의 컬렉션이, 테이트 모던과의 계약체결이, 베르사유 미술관의 초대가 우상화되고, 위대한 예술성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심급으로 작용한다는 것 역시 단지 한국예술의 낙후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균형틀이 깨져 심각한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문제다.

지난 20141, 한국의 또 다른 거대기업이 거액의 후원금의 힘으로 유럽의 또 다른 미술관과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자동차는 영국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과 11년이란 최장기 파트너십을 체결한 첫 번째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계약의 첫 사업으로 비디오 작가 고백남준의 작품전을 열기로 계약을 체결했고, 전시의 원활한 개최를 위해 미술관 측이 작가의 작품 9점을 구입하는 것도 후원하기로 했다. 선구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과의 관계가 현대자동차로선 손해보지 않는 비즈니스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적인 것으로 자주 오인되곤 하는 비즈니스적 성과에 의해 가려져서는 안 될 측면들이 있다. 후원금 계약체결이 테이트 모던의 학예팀을 움직여 백남준이 세계 미술사에 끼친 영향을 재조명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비즈니스적 성과에 의해 미술관이나 큐레이터의 우선적인 관심사를 조정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언제든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형성되는 의미를 여과 없이 가치화하는 한국예술 장의 관행을 내부적으로 채우는 자기기만과 허세 가 그것이다. 기업의 푸짐한 후원금 계약으로부터 오는 것은 진정한 예술의 성과와는 관련이 없는 기업예술의 장황한 레토릭일 개연성이 그만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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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09

해결하지 않는다. 함께 헤맬 뿐이다.

 

장현정_ 사회학자, 도서출판 호밀밭 대표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약 10년 정도 록 밴드 활동을 했다. 음악을 그만둔 뒤로 어쩌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문화연구, 철학, 미학 같은 학문도 기웃거렸지만 늘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딴따라라고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어떤 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보다 자유롭고 엉망진창(?)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나에게 학문이나 일은 낮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고 딴따라나 삶은 밤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 work-life balance'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낮과 밤도 균형을 이루면 좋은데 우리들 대부분은 밤에도 환하게 형광등을 밝혀놓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삶의 영역에서 밤을 밀어내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낮의 영역에서는 물론 답이 아주 중요하고, 그 답은 숫자 하나만 틀려도 사람이 죽거나 건물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라 아주 엄밀해야 했다. 하지만 밤의 영역에서는 반대로 답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의 영역에서는 답이 처음부터 없거나 혹은 아주 많은 답이 가능했다. 그리고 나는 밤을 더 사랑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면서 삶 자체가 우리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부여하는 엄중함도 경험했다. 나날이 늙어가는 부모와 나날이 커가는 아이들의 중간에 끼어서, 아마도 나에게 삶의 엄중함은 앞으로 더욱 크고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삶의 엄중함이란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내 직업이 무엇이고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자연처럼 냉정하고 차분하게 다가오고 흘러갈 뿐이었다. 그렇게 낮과 밤이 혼재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렴풋이 어떤 깨달음 같은 걸 하나 얻게 되었다. 그것은 눈이나 뇌로 확인하고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라서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느낌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게 함으로써 우리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아 마침내 고요한 삶으로 이끄는 요가처럼, 나 역시 어떤 이데올로기에 마취돼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고 다그치지 않았나 하는 서늘한 느낌.

요컨대, 시시각각 세계가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며 삶을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답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히 삶을 긍정하고 이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지만 자신의 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소수다. 돈을 벌기 위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 사람 자체가 좋아서 만나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서라면 사랑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새로운 걸 알게 될 때마다 가슴 설레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충만함을 느끼는 공부가 아니라 그저 좋은 대학에 가거나 출세를 위해 하는 공부라면 그런 공부가 사랑스러울 리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비쩍비쩍 말라갈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어려운 이치도 아닌데 왜 진즉 깨닫지 못했을까 싶다.

도구화된 것들, 지금 여기 내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늘 그 다음, 혹은 미래의 어떤 답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삶이란 우리를 우리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언젠가부터 인문학이 유행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에 단 하나의 답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아주 수많은 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이에서 기쁘게 헤맬 수 있는 용기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인문학에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도 오직 그것뿐이다. 단 하나의 답을 가진 사람이 모두를 향해 일방적으로 떠드는 독백 (mono-logue)’ 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답이며 그렇게 다양한 답 사이를 관통하고 가로지르며 서로가 기쁘게 헤맬 수 있는 이른바 대화 (dia-logue)' 의 세계로 향하기 위함이다. 주어진 틀에서 끊임없이 일탈하며 적극적이고 나아가 공격적으로 헤매되 각각의 악기가 모두 답이고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며 무대 위에서의 한순간 한순간에 집중하는 록 음악처럼 말이다.

학자든 예술가든 기업가든, 자신의 일을 그 무언가를 위한 도구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교수가 되기 위해공부하는 삶, 명성을 얻고 유명해지기 위해만든 작품, 돈을 벌기 위해하는 사업..... 이런 삶들은 가치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다지 인문학적인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혼자 있는 시간에 더 바랄 것 없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그 무엇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우선 살아있다. 우선 살아있고, 그렇게 살아있는 자신을 의식하면서 시시각각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곱씹는다. 이들에게 삶이란, 주어진 규칙에 따라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이나 해답을 찾아야하는 시험 같은 게 아니다. 놀이다. 놀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거두지 않고 묻는다. 묻고 헤매고 기분 좋게 갈팡질팡한다. 묻고 헤매고 기분 좋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삶의 근육과 뼈가 단단해지지만 그 자신은 그러거나 말거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것을 위해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 시험에서 주어진 답은 하나일 테지만 학교 바깥에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하늘이나 바다, 일출이나 노을, 혹은 아이들의 웃음이나 어르신들의 주름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고 모두 똑같은 느낌을 받거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독재나 폭력은 특별한 개념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일상적인 말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모두가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게 독재고 폭력이다. ()인문학적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에 밴 습관이나 익숙한 사고방식이란 얼마나 완강한가. 요즘 인문학이 유행하니 이런저런 기관에서 가끔 특강을 할 기회가 있는데, 그럴 때 자주 받는 질문들도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인가요?”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꼭 이런 인문학 같은 것이 필요한가요?”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인문학을 빠르게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사실 나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처럼 들린다. 밤에 어울리지 않는, ()인문학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질문이라기보다 독백이기 때문이다. 질문이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답이 있는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 자신의 필요나 입장만 중심에 놓고 도구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라는 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이 오염됐기도 했지만 사실 검도를 배우든, 야구를 배우든, 최소한 나름의 분야마다 기본적인 태도와 룰은 있는 법이다. 답을 찾으려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돈을 벌겠다고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뭔가 어긋나 있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살아간다. 모놀로그의 삶 말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다이얼로그의 삶에 관한 것임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자기 안의 욕망을 자기증식 시키다가 마침내 자멸을 향해 나아가는 폭탄 같은 삶은, 인문학적 삶과는 상극이다. 몇 줄 좋은 문장을 읽는다고 삶에 윤기가 돌 수는 없는 일이다. 먼저 삶 자체를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어릴 때 록 음악을 사랑했던 이유는 음악 자체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그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태도가 멋있어보였기 때문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록 음악과는 별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스스로 딴따라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역시 바로 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니저러니 떠드는 것처럼 우리에게 실제로 무슨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 역시 그저 가장 자기다운 삶을 살고 싶고, 혼자 있는 시간에 충만하고 싶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태도일 뿐이다. 삶을 제대로 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삶은 여행 같은 것이라고들 말한다. 좋은 표현이지만 어떤 여행을 말하는 건지 가끔 궁금할 때도 있다. 여행은 일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빠듯하게 일정을 짜고 사진촬영을 끝내면 또 바쁘게 동선에 따라 이동하는 식의 여행이라면 그것은 이미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라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때의 여행은 삶을 위한 것, 질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욕망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일에 불과하다. 진정한 여행은 나름 준비를 하더라도 결국은 가서 헤매고, 헤매는 과정에서 한 뼘쯤 기존의 자신을 넘어서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삶이 여행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시시각각 긴장하고 또 그래서 한편으로는 설레는, 말 그대로의 여행에 가까운 걸까 아니면 스테이지마다 정해진 미션들을 수행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출장 같은 여행에 가까운 걸까.

나 스스로는 여전히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생각이나 습관도 10대 후반의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어느새 나이를 먹어 가족, 학생들, 직원들 등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압축적 성장을 비롯해 여러 중층적 이유로 구조적 모순이나 불평등도 심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한방에 무언가가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런 세상은 역사 속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안 올 것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정답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찧고 까부는 딴따라의 심정으로 더욱 자주 이렇게 되새겨본다.

해결하지 않는다. 함께 헤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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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09

소통이 힘든가요. 거울을 보세요.

 

임성민_ <지식인의 옷장> 저자, 경희대학교 의상학과 교수

 

타타타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1992년 가수 김국환이 발매한 타타타란 노래의 가사이다. 산스크리트어인 타타타는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걸 의미한 게 아닌데.” 자신의 의도가 전달되지 못해서 마음 상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없다. 느낌을 통해 추론할 뿐이다. 말이나 표정, 행동 등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예측하고 이러한 예측으로 서로를 대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법에 항상 화가 나 있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에 문제가 있을 확률은 1에 가깝다.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는 방법의 시작은 자신을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직접적이며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패션이다. 보이는 것은 쉽고 힘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 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패션이란 단어에 럭셔리한 브랜드들만 생각난다면 패션의 부분을 패션 전체로 보는 모순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패션은 자신을 알고 표현하는 것으로 애티튜드까지를 포함한다. 청순함을 드러내기 위해 흘러내리는 긴 머리를 조신하게 귀 뒤에 꽂는 것이 패션이며 터프함을 강조하기 위해 겉옷을 벗어 한쪽 어깨에 올리고 당당하게 걷는 것도 패션이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초창기에 패션관련 수업을 개설할 때 수업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 전공이 아닌 학생들에게 패션을 알아야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기 때문에 수업 제목을 패션과 나로 지었다. 이 수업에는 학생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오고 다른 학생들은 그 학생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하는 패션 크리틱시간이 있다.

처음에는 앞에 나온 학생이나 앉아 있는 학생들 양쪽이 어색해하고 패션에 대해 말을 해주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주저했지만, 서로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되니 서로 말해주라고 독려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패션에 대한 지적은 활기를 띤다. 예를 들어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남학생에게 안경대신 콘택트렌즈를 권하기도 하고 검정머리를 옅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가볍게 파마를 하는 것도 어울릴 것이라고 말한다. 또는 중학생처럼 보이는 여학생에게 백팩 대신 크로스 백을 추천하기도 한다. 작은 패션 아이템이 착용자의 예상보다 더 크게 타인들의 눈에 크게 띄기도 한다. 줄무늬 양말하나로 교실에서 패셔니스타로 등극되는 학생도 있었다.

 

패션 크리틱을 하다보면 교실 안이 떠들썩해지면서 학생들의 장난기가 발동되기도 한다. 유명인 누구를 닮았다느니 혹은 쉽게 할 수 없는 독특하고 과감한 스타일을 언급하며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루는 한 여학생이 앞으로 나오는 차례였다. 살집이 있는 몸매의 덩치가 큰 여학생이었는데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우렁찼다. 뱅헤어의 앞머리와 레이스가 달린 옅은 핑크색 원피스에 발목까지 오는 흰색 양말, 귀여운 핸드백을 맨 그녀는 일본의 하라주쿠에서 볼 법한 일본 스타일의 여학생이었다. 패션과 더불어 목소리와 말투의 애티튜드는 그녀가 독특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보이게 했다. 학생들은 어울리는 패션스타일을 말해주면서 다소 장난기 있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여학생은 재미있게 받아넘겼다. 그녀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수업을 이어서 진행하는 도중 그녀의 어두워진 표정이 보였다. 수업용 ppt를 보기 위해 조명을 어둡게 했지만 스크린의 빛이 학생들을 비추면서 교단에 있는 나에게는 앞을 향하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향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응했지만 내심 기분이 상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수업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시간에 그녀가 원하는 이미지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바라는 이미지를 형용사나 명사 등 간략한 단어 20개 정도로 나타내고 컬러와 이미지를 조합하는 것이다. 그녀가 가장 먼저 썼던 단어는 여성스러운이었다. 유명인으로는 여배우 손예진을 기재했고 컬러들은 분홍색과 화이트, 노란색 등 파스텔 풍의 연한 컬러들이었다. 조합한 이미지를 보니 그 여학생이 바라는 이미지는 그녀가 좋아하리라 예상했던 독특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아닌 여성스러운 이미지였다. 게다가 자신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이미지도 비슷하다고 기재했다. 그녀가 스타일링한 패션 아이템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레이스가 달린 옅은 핑크색 원피스는 과한 스타일은 아닌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스러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다소 덩치가 큰 그녀가 사용하다 보니 특징이 부각되어 나온 것이었다.

타인들은 그녀의 패션을 통해 그녀가 자신들이 예상한 성격이라 생각하고 그에 맞추어 대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 순간을 참아야 했고 마음 상해했다. 상대방은 그녀가 싫어서 했던 행동이 아니다. 사실 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들에게 호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럴 경우 패션 크리틱 시간에 지적이 많은 것이 아니라 거의 없다. , 상대방은 악의도 잘못도 없다. 사실 피해도 없다.

이것저것 이야기 해니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점이 많았다. 자신의 외모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패션 스타일링을 한다면 그녀가 바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네이버에 검색해서 그에 따른 패션 아이템인 하늘거리는 레이스’, ‘원피스’, ‘핑크색 플랫슈즈’, ‘작은 핸드백등 이런 식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고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녀의 장점이 부각되고 바라는 방향으로 표출되면서 타인과의 생활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학생들에게 레포트 표지에 자신이 예쁘게 나온 사진을 붙여서 내라고 한 적이 있다. 대부분 위에서 45도 정도의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뿌옇게 나온 사진이었다. 위에서 찍은 사진이어서 치켜떠진 눈은 실제보다 동그랗고 컸으며 턱은 갸름하게 나왔으며 뿌옇다 보니 피부는 하얗고 모난 곳 없었다. 학생들에게 이런 각도로 뿌옇게 처리한 자신의 사진이 왜 이쁘게 보이냐고 물어보니 자신처럼 나오지 않아서 마음에 든단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나오면 그 사진은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색하고 불편한 사진이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색한 모습을 타인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자신을 알고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꾸미라는 것은 단순히 멋을 내라는 것이 아니다. 가끔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좋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자신이 바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자신을 알고 이를 표현해야 한다.

 

 

가식과 컨셉

 

거짓으로 꾸민다는 의미의 가식(假飾)과 보여짐의 의도적인 컨셉을 동일시하거나 비슷하다고 오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가식이 무엇을 숨기려하는 행위라면, 컨셉은 드러냄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상반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에서 컨셉이란 단어는 여타의 다른 단어들보다 특히 많이 사용된다. 컨셉이 무엇이냐란 질문은 무엇을 의도하고 나타냈냐는 질문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패션에서 내추럴이란 단어를 사용한 내추럴 컨셉은 내추럴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진한 화장을 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화장을 하고 강렬한 컬러의 립스틱이 아닌 립글로스를 바르고 머리는 자연스럽게 포니테일로 묶는다. 사실 내추럴이란 단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다 깨서 부스스한 모습에 집에서 입는 편한 옷을 입은 모습이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이 드러나지 않으며 게다가 매력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컨셉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타인이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의도하는지의 방향을 타인이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2000년대 이후의 패션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은 스티브잡스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자신을 드러내는 컨셉을 고찰했다. 그가 즐겨 입는 일본 패션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의 검정색 터틀넥은 수십 벌을 입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와 크기를 찾은 것이다. 이 검정색 터틀넥과 함께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스니커즈는 대중에게 그를 나타내는 컨셉이었다. 그의 패션은 그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나타내 주었다. 대중은 그의 패션을 통해 그를 이해하고 소통했다. 편안하면서 전문적이며 또한 적극적인 스티브 잡스를 드러냈고, 이는 애플사의 수장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모습을 강조했으며 결과적으로 회사 전체의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로 인해 애플사의 이미지는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뿐만 아니라 터틀넥과 청바지, 스니커즈의 열정적이며 전문적인 스티브잡스의 이미지가 함께 하면서 회사의 이미지를 끌어올렸다.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것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시작이다. 고정된 이미지에 머물 필요는 없다. 시대는 변화하며 자신 또한 변화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나와 이미 한참 멀어져 있던 나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방법으로 자신을 대하면서 타인에게 드러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소통에 문제가 있었거나 혹은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정 유명인의 패션 스타일은 줄줄 나열하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어울리고 무엇이 어울리지 않는지에 대해 고찰해 본 적이 없다면, 자신을 매력적으로 상대방과 소통하고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그 어떤 게으름보다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손자병법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른 채 나를 알면 한 번 이기면 한 번 지며,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무조 패한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란 말이 나온다. 나를 알면 적어도 피해는 안 본다.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면 자신에게 좋은 향이 난다는 것을 알아서 자신감이 올라간다. 이 자신감의 애티튜드는 상대방에게 나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나를 알고 나에게 어울리는 패션을 취한 자! 천하무적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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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30

주체적 개인을 위협하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역설

- 참다운 공동체를 위하여

 

김재홍 시인 _ 2003<중앙일보>로 등단. 시집 메히아, 다큐멘터리의 눈발간

 

 

에피스테메(Episteme)나 아비투스(habitus)가 만일 우리 무의식 속에 잠재된 집단성에의 맹종적 태도나 다수성에의 몰입을 지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부정되어야 한다. 혹은 인간 조건의 보편성과 사고의 인접성에 대한 세밀하고 방대한 지적 성과를 충분히 사숙하지 않은 단순 추상화라면 이 또한 거부되어야 한다.

 

한때는 분화보다 총화가, 다양성보다 총체성이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던 때가 있었다. 대량생산과 박리다매의 수출 전략이 국가경제의 에너지원이 되던 산업화 시대의 기업에는 말할 것도 없으며 가난을 면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생존 과제인 수많은 가정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정보의 분출이 차별성과 개성으로 연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정보 권력에 대한 맹종적 태도를 야기하는 세태 속에서 분화와 다양성에의 요구는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다. 단일성이 아니라 다질성이, 통념이 아니라 개성이, 집단이 아니라 개체가 중요한 시대다. 우리는 누가 우리들에 더 가까운가를 찾기보다 자신의 고유성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오직 를 발견해야 한다.

 

개성적 군상들의 협화음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개별 연주자의 역량이 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수준 전반을 보장해 주는 기초가 되듯 한순간도 동일한 존재일 수 없는 각자의 외삽(extrapolation)되지 않는 개체성이야말로 우리 공동체의 참다운 동력이 되어야 한다.

 

내 눈으로 세상보기

 

신체발부의 주인으로서 나는 내 몸과 정신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모든 과정을 통제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생성되는 일체의 변화를 포함하는 당당한 주체다. 그러나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 정신으로 판단하며 내 몸으로 행동하는 상식적 생활이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의 물리적 조건이나 다른 주체들과의 이질적인 접면과는 별개로 나는 이미 해석된 정보의 범람 속에서 주체성 상실의 비극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식과 판단과 행동의 주체로서의 위상을 몰락의 길로 내모는 원인은 멀리 있지 않다. 매일 24시간 공급되는 신문과 방송, 포털사이트와 SNS 속의 정보는 그 정보 공급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미 우리 주체성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 거센 지원군으로 등장한 이른바 1인 미디어 시대의 폭주하는 해석들도 우리 주체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정보의 물량과 현란하고 선정적인 수사만이 아니라 근거가 부실한 선동까지 횡행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갈수록 의 위치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망과 모바일 서비스 수준을 가지고 있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역설로서 내 눈으로 세상보기를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절대 과제로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생산된 정보와 해석된 가치의 뿌리로 돌아가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어떤 사태의 기저로 파고들어가는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자체를 본질로 삼고 그에 핍진하게 육박해 들어가는 고역(苦役)을 마다하지 않는 의지가 긴요하다.

 

정보화 세계의 이른바 파워집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을 얻기 위해 들이는 무시무시한 집중력과 에너지 투입에 상응하는 우리의 주체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더라도 광우병 사태나 천안함 침몰,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건은 물론이고 일상에서 수시로 접하게 되는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1차 정보에 접근해 자신이 직접 해석하고 판단하겠다는 태도는 드넓은 네트워크 세계를 종횡사해(縱橫四海)’하는 미지칭의 정보 공급자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다시 세우게 할 것이다.

 

언표이론을 기반으로 한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에피스테메는 담론 형성 조건에 대한 시대적사회적심리적 지평을 선험적으로 추상화한 게 아니다. 오히려 한 시대의 방대한 연구 성과를 엄밀하게 분석한 결과이자 그에 따른 경험론적 분류학(고고학)의 총화에 가깝다. 때문에 그는 어떤 에피스테메가 득세했다고 해서 특정 시대와 문화의 모든 사람들이 그 노선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일상의 우리가 시시각각 봉착하는 판단 의탁의 비주체적 상황의 총합은 결코 에피스테메가 아니다. 푸코는 개성적 주체들의 천변만화(千變萬化)를 세세하게 살핀 끝에 그 기저에 흐르는 바탕을 포착한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어떤 압력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외부에 대한 신체와 정신의 계루(係累) 혹은 길항(拮抗)이다. 그런 면에서 아비투스는 분석의 결과이기보다 논리적 추론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제반 조건과 유기적으로 조응하고 변형시켜 나가는 필연적인 성향이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가 본 것은 인간 내면의 구조이자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비투스는 개성적 주체를 갈망하는 우리에게 명시적 부정의 대상이지 체념하며 받아들일 용어가 아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압력에 대응할 때 우리는 일정한 공유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해석된 정보가 아니라 그 원형질에 다가가 직접 해석하고 판단하는 주체적 행위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주인공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에피스테메와 아비투스의 생산자로 우뚝 서는 길이기도 하다.

 

허상의 주체와 실상의 주체

 

가령 주말 종로 통인시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장년과 초로의 시민만이 아니라 이십 대의 새파란 연인들과 한복을 차려 입은 아가씨들이라고 할 때 그 비집단적 집합의 원인은 통인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값싸고 맛있는 도시락이 아니라 오히려 음식 품앗이를 마케팅에 적용한 전통시장의 유명세에 자신을 던지는 비주체적 자기보호 본능에 가깝다.

 

 

[그림2] 주말에 통인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풍경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주말 통인시장은 더 이상 생필품과 식재료의 유통 창구를 본질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복궁에 인접한 시티투어 코스이거나 전통시장 체험장이거나 청춘들의 다소 특별한 데이트 코스에 가깝다. 또한 다수성에 터 잡으려는 불안한 현대인의 비주체적 볼셰비키(Bol’sheviki, 다수파) 의식을 만족시켜 주는 심리적 기제이다.

 

어떤 외부적 사태에 대한 인식과 판단과 행동의 주체성 상실이 정보화 시대의 역설적 양상이라면, 실상의 주체가 사라진 비주체적 자아의 원인은 내부적이다. 허상의 주체는 스스로 자신을 벗어나 타자를 향한다. 실상의 가 아니라 잠재적인 허상의 ’(타자)를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 좋아하는 유명 배우의 옷과 가방과 선글라스를 선망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유명 배우에 연결 짓는다.

 

좋아하는 운동선수, 선호하는 정치인, 신뢰하는 작가, 존경하는 학자의 이미지를 향해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가는 , 그러나 디지털 신호의 단속적인 절연상태(絕連狀態)와 같은 불안정한 영상에 투사된 허상 혹은 시뮬라시옹(Simulation)을 만날 뿐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나는 허상을 와 동일시하는 비주체적 로 전락하고 만다.

 

가령 타르드(Gabriel Tarde, 1843-1904)자아의 참된 대립은 비자아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또한 “‘있음’, 즉 갖기의 참된 대립은 있지-않음이 아니라 가진 것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주체의 성격에 대한 엄밀한 형이상학적 존재론이다.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다. 이미 누가 걸어간 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첫걸음을 떼는 그 길을 가는 존재이다. 내게 이미 속성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삶, 그것이 주체적 삶이며 허상의 자아를 실상의 주체로 만들어 주는 길이다.

 

나의 귀속 범위가 나에게 본질적으로 밝혀주는 것은 역전된, 일시적인 또는 잠정적인 귀속들이라고 하면서 우리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소유물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할 때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염두에 둔 것은 물론 모나드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에 관한 존재론적 문제이지만, 그것은 또한 도 알 수 없는 나의 어떤 가능성을 실행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일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기도 하다.

 

하나의 신체가 나의 모나드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모나드들이 나의 신체의 부분들에 귀속된다는 역전, 모나드들이 일시적으로 나의 신체에 귀속된다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가 이미 나의 부분으로 내게 잠정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가 다수의 타인이 형성해 놓은 어떤 틀을 맹종하지 않는 한 언제나 새로운 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가 된다. 그리하여 나의 고유한 소유물을 차츰 늘려가는 가운데 주체적 자아의 명석한 주름(pli)’은 공존하는 우리의 세계를 빛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가는 통인시장은 더 이상 비주체적 자기보호 본능의 플라시보 효과로서가 아니라 나의 참다운 주체성의 표현이 된다. 나는 이제 유명 배우의 옷과 가방과 선글라스와 상관없이 나를 표현하는 실상의 주체가 된다.

 

 

참다운 공동체를 위한 주체적 개인

 

판단을 의탁하고 행위를 위탁하는 주체 실종의 사회에는 건강한 공동체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가 사라진 우리를 용납할 수 없는 이유이다. ‘가 아닌 우리에 빠지는 순간 헤어나기 어려운 집단의 굴레에 갇힌다. 이런 유형의 우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 아닐 수 없다. 주체적 개인이 있어야 참다운 공동체가 성립된다.

 

해석의 정당성이나 공적 책임 의식보다는 조회수와 댓글에서 짜릿함을 느끼는 키치적 욕망만이 문제가 아니다. 또한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애써 해석과 판단의 주체가 되기보다 피동적 수용자에 그치고 마는 정보 수용자만을 탓할 수도 없다. 군사독재와 폭압적 권위주의 시대를 벗어나 권력 자체가 다기화(多岐化)된 민주화 이후 생활인들이 겪는 왜소증과 눈치 보기를 함께 지적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학사는 오랜 동안 의()와 사()의 전장이었다. 의미론과 표현주의 논쟁은 한 시대의 문학적 지평을 정의하는 큰 주제였기 때문에 치열한 쟁론으로 이어졌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궁이공(窮而公)’을 외치며 사륙변려체의 관습화된 복제 문학을 넘어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은 당시 흥기하던 사대부 계층의 청신한 개혁 기류를 옹호하여 귀족주의 체제를 벗어나려는 문학적 열망의 표현이었다. 이들의 고문 운동은 당나라 때 비롯되어 거금 400여 년 동안 지속된 치열한 논쟁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에게는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의 정신이 요구된다. 그 어떤 전범도 인정하지 않는 자아의 치열한 갱신의 태도야말로 개성적 주체를 가능하게 하고 이런 조건 위에서 진정한 다양성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다원주의는 주체의 공존이지 몰개성의 다기성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주체적 개인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전제가 아닐 수 없다.

 

할둔(Ibn Khaldūn, 1332-1406)해질녘 산들에 비치는 그늘처럼 마그레브 전체에 서서히 밀려오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이 그늘을 내가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알모라비데 제국(1056-1147)과 알모하데 제국(1120-1269) 등 강력한 국가가 흥기했던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북서부 아프리카 마그레브(Maghreb) 지역의 몰락 원인을 유목민들의 강한 야전적 움란(Umran, 한 집단의 생활·심성·문화 등의 총칭)이 위축된 데서 찾았다. 기번(Edward Gibbon, 1737-1794) 역시 로마의 군인 정신과 용기의 쇠퇴가 제국을 파멸로 이끌었다고 했다. 군사적 아사비야(asabiyya)든 유목민들의 강인하고 튼튼한 움란 바다위(badawi)든 그 기층에는 개성적 인간이 있었으며, 기번과 마키아벨리가 주목했던 로마인의 비르투(Virtu)도 그 근저에는 어디까지나 동시대를 힘차게 살아간 주체적 개인이 있었다.

 

참다운 공동체의 조건이 우리 각자의 주체성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영광의 터전을 위해 허상이 아닌 실상에 전착하며 이념이 아닌 실질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주체적 다원성이 민주주의의 근거가 되고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다시 미래를 개척하는 영원회귀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언제나 당당한 주체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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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8

헌법의 주체로서 광장의 국민에 관한 헌법해석적 검토

 

박찬권 _ 고려사이버대학교 법학과 조교수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나타난 광장의 목소리를 계기로 일반 국민들은 헌법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하는 촛불 집회와 이에 비해 소수였지만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집회에 모인 국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주장이 헌법을 수호하는 길이라 외쳤고, 탄핵 심판을 담당한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였다. 이제 국민은 헌법 제1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항만을 가지고도 그들이 국가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진정한 국민주권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미 도래하였다.

 

헌법해석의 기준으로서의 국민주권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국민주권이 단순히 광장의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같은 국가기관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헌법원리이자 동시에 헌법해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무엇보다 국민주권의 헌법적 의미와 여기서 말하는 국민의 실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국민주권이란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 있고, 국가의 모든 권력들은 이념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귀결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국민은 헌법학에서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하여 설명된다. 하나는 이념적 통일체로서 국민, 즉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관념화된 전체국민이다. 주로 대의기관이 공익을 추구하는 의사결정에서 지향하는 추상화된 국민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국가기관을 구속하는 국민의 직접적 지시나 명령은 있을 수 없으며, 다만 자유위임의 원칙에 따라 대의기관은 자신의 객관적 양심을 가지고 그러한 국민의 의사를 추정할 뿐이다.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법적으로 실존하는 개개인으로서 국민이다. 주로 선거나 국민투표에 의한 주권의 개별적 행사로 나타나며, 이들의 주권행사는 대의기관을 구성하는 직접적인 결과로 경험된다. 그런데 우리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일반적인 헌법해석론에 따르면 전자, 즉 추정적 의사의 귀속주체로서 국민은 자연법적 이데올로기로만 볼 뿐 구체적인 헌법해석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어 민주적 정당성이 강하게 부여된 대통령과 국회의 의사결정에 대한 관계에서 사법자제의 법리를 낳아 헌법의 적극적 실현에 사법기능이 기여할 여지를 현저히 좁혀놓았다. 과연 그러한 헌법해석의 태도가 타당한가? 이를 논하기 위해 우선 헌법해석의 고유한 특징과 그로 인한 해석적 한계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헌법해석은 국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근본법칙인 헌법원리들로 규정된 헌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세부적인 내용으로 규정된 일반 법률과 달리 주로 원리로만 규정된 헌법조항은 그 해석이 매우 다양하고 개방적인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모습은 헌법의 가장 근본원리인 민주주의원리에 관한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관점과 태도로 민주주의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결론이 달라진다. 민주주의를 정치과정에서 지켜야할 규칙으로 이해하는 형식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다수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제정한 법률을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원리와 모순된다. 그러나 헌법적 가치실현을 위한 통치형태로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실질적 관점에서 종합한다면 국회의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통제는 소수자보호의 차원에서 자유·평등·정의 등 통합된 헌법가치실현을 위한 것으로 민주주의원리에 합치한다. 이렇게 동일한 제도적 상황을 동일한 헌법 원리로 평가하더라도 해석자가 어떠한 관점과 태도로서 이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헌법에 합치 또는 모순되는 서로 상반된 결과를 초래한다.

 

여기서의 모순이란 현실의 대상에 대하여 어떠한 헌법원리를 주장하는 것과 그러한 헌법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제되는 것 사이의 대립이다. 이는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과정 안에 내재된 모순으로 그러한 모순이 헌법해석에 의해 지양됨으로써 평가의 대상과 관련하여 헌법원리는 간접적으로 인정된다. 예를 들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효력이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좌우되는 앞의 경우 형식적 관점으로 민주주의원리를 분석한다면 헌법재판소가 다수결원칙과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 국회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현실의 제도적 상황은 헌법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를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하여 헌법원리가 주장된다는 점에서 모순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관점과 태도인 실질적 관점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원리가 재해석되고 규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형식적 관점과 실질적 관점에 따른 분석과 종합이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반복함으로써 민주주의원리는 전체적인 헌법체계 안에서 그 해석의 적정성이 확보된다.

 

 

국민과 주체성의 상관관계

이처럼 복수의 원리들과 관점들이 서로 모순되거나 배척됨이 없이 규범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상호 조화롭게 공존 하도록 헌법해석은 정합성을 이루며 진행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모순은 헌법원리 안에 또는 헌법적 평가의 대상 안에 이미 존재하는 모순이 아니라, 현실의 대상에 대하여 헌법원리를 실현하려는 의식작용에 있어서의 자기모순이다. 의식작용은 자기모순을 지양함으로써 동일한 자기의식으로 정립해 나가는데, 이는 주체성의 문제로 이것이야말로 헌법원리가 실현되는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공통의 매개이자 일반 형식이다. 여기서 현실의 대상에 대하여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모든 의식작용이 시작되므로 주체성은 헌법의 원천이 된다. 주체성에 있어 자기모순은 지양되어야할 쟁점으로 작동하여 해석의 대상과 관련한 또 다른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점에서 동일한 자기의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출발조건이다. 출발조건으로서 의식작용의 자기모순은 형식논리의 연역적 추론에 따라 그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자기의식의 전체적 지평에 의해 역으로 그 의미가 규정됨으로써 대상과 관련한 모든 헌법원리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실현되는 형태로 결론된다. 따라서 각각의 헌법원리들은 의식작용의 자기운동을 통한 주체성을 매개로 통합됨으로써 내적으로 연결되고 전체적인 헌법체계를 구성한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주체성이 누구의 주체성이냐라는 것이다. 국회나 헌법재판소와 같은 헌법기관은 헌법체계로부터 도출된 기관에 불과하기에 헌법의 원천이 되는 주체로 볼 수 없다. 결국 이들 헌법기관이 헌법을 해석함에 있어 지향하는 근본원리인 헌법 제1조로 다시 돌아가서 볼 때 주권의 주체인 국민과 그러한 국민을 구성하는 기본권 주체인 개인에게서 헌법의 원천이 되는 주체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 주체란 자유로운 의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위하는 실체를 말하며, 주체성은 이러한 실체가 자유로운 의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위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으로서 개인에 의해 이 주체성은 우선적으로 발현된다. 개인은 의식과 대상을 번갈아가는 순환과정을 통해 의식의 대상을 자기 동일화한다. 주체와 동일화하는 과정에서 대상은 존재 자체의 직접성이 부정되고 그 본질이 드러나는데 이는 주체의 입장에서 반성이다. 개인은 부정성을 지닌 자신의 반성적 의식작용을 진행함으로써 대상과의 자기동일성을 계속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작용이 진행되는 가운데 개인은 대상 안에 계속 머무르는 의식작용의 보편양상인 사태 자체를 경험한다. 사태 자체는 개인의 개별적 본성이나 주관적 의식과는 달리 대상을 매개로 추상적 형식을 지닌다. 개인의 주체성은 이 사태 자체를 토대로 대상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제 자기 동일화는 다른 개인들의 의식작용과 필연적 관계를 맺으며 발생한다. , 주체성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는데 그 최종형태가 바로 국민(das Volk)이다. 여기서 국민은 모든 개인들이 공동의 주체성을 형성·유지하며 동시에 각자의 개별적 의식작용을 실현하는 장으로서 하나의 시·공간을 의미하는 관념적 개념이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국민은 그동안 여러 정치·사회·문화·역사적 맥락과 결부되어 민족, 국민, 인민, 민중, 백성 등 각자 복합적 의미를 함축한 다양한 개념으로 불리어져 왔다.

 

국민의 주체성은 개인의 주체성이 공동체 차원으로 고양되는 것이기에 개인의 반성적 의식작용에 따른 부정성이 항상 수반된다. 이로 인해 공동의 의사를 새롭게 형성하는 운동이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으며, 자기동일성과 모순되는 제도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공동체 내 공적·사적인 모든 생활의 동화적 통합을 이루는 정신작용으로서 국민의 주체성이 드러난다. 동화적 통합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국민적 차원의 법칙과 원리는 각 개인들에 의해 공감되어 규범화되는데 이것이 헌법(die Verfassung)이다. 헌법은 국민의 전체적 통합과정으로 실현되는 것이기에 탄력적이며 동태적으로 작용한다. 한편, 통합과정으로서 헌법 안에는 그것이 지향하는 추상적 형식의 원리들과 그것의 이론적 구성물인 체계가 사태 자체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국민의 주체성은 이러한 원리와 체계를 정신작용의 근거인 동시에 지향점으로 삼아 끊임없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데, 이렇게 통합과정으로서 헌법 안에 내재한 추상적 형식의 규범이 헌법조문이나 헌법재판소의 판례로 공식화한 것이 실정헌법(das Verfassungsrecht)이다. 실정헌법은 현실을 일방적으로 도식화하는 규정된 체계가 아니라, 생동하는 정신으로서 국민의 주체성이 동태적인 헌법으로 드러날 수 있게 자유롭게 부유해 있는 개별 원리들의 체계로 존재한다.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하여

그러면 헌법과 실정헌법으로 발현되는 국민의 주체성은 국가와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Hegel에 의하면 세계정신이 출현하는 과정을 볼 때 기존의 세계정신과 새로운 세계정신 사이에는 내적 연속성이 없이 단지 대체되어질 뿐인데, 이는 국가를 통해 실체화된 국민이나 민족 정신들 간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세계정신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der Staat)의 상태로 들어가야만 객관적 실체를 확보할 수 있다. 국가는 특정 시점의 특정한 의사를 법률과 권력으로 정립함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드러낸다. 국가의 주체성은 국가조직의 정점에 있는 기관, 즉 행정부와 입법부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인적 집단에 의한 궁극적 결단이 곧 국가의 개체적 인격으로 간주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정점에 있는 국가기관의 의사결정은 국민의 주체성으로부터 독립하여 별도로 생성되기에 국가는 형식적으로 자신만의 주체성을 배타적으로 전개한다. 그러나 국가의 의사결정이 국가 내에서 대내적 보편성과 실효성을 담보받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최종 주체성인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가기관은 헌법과 실정헌법으로 발현되는 국민의 주체성을 자신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이라 한다.

 

국가조직을 구성하는 각 국가기관들의 특수한 의식작용들도 그들 각자 안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국민의 주체성을 의식하는 가운데 하나의 의사로 수렴되는 과정을 통해 국가는 유기적 조직으로 고양된다. 또한 국가의 의사결정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 각 개인들은 국가의 의사에 따르도록 스스로 내적인 규범의식에 의해 동기 지워지는데 이로써 국가의 법률과 권력은 사회심리적 실효성을 가진다. 이는 국가의 행위가 국민의 주체성에 의해 승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의 승인은 국가에 대해 무엇을 규정할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 기준으로만 작용함으로써 규정되지 말아야 할 것을 소극적으로 통제하는 역할에 그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하여 국민은 항상 소극적 지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헌법전에 규정된 선거와 국민투표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헌법가치를 수호하러 광장에 집결하는 현상을 통해 국민은 국가작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러한 적극적 의미의 국민은 각 개인들의 의식작용이 일정한 권위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주체성을 응집시켜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상태로 나타난다. 선거에서 주요 정당을 중심으로 국민의 의사가 수렴되는 현상이라든지, 매스컴의 보도나 일정한 사람들의 행위로 나타난 사실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광장으로 집결하는 현상은 국민이 공적인 현존으로 경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살과 피를 가진 개개인의 형태로 경험되는 구체적인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die Nation)은 시·공간의 장으로서 관념화된 국민, 즉 헌법과 실정헌법의 배후에 정신작용으로 존재하는 국민과는 구별된다.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은 특수한 자기목적적 범주를 형성하며, 그 범주 안에서 각 개인은 어떠한 권위를 중심으로 응집된 것만으로 상호연대를 이룬다. 이는 범주의 폐쇄성으로 이어져 다른 목적으로 범주를 형성하려는 타자의 주체성과 현실적으로 대립하면서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점에서 앞서 본 동화적 통합과정에 있는 의식작용의 장으로서 국민과 차이가 있다.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 안에 있는 각 개인은 자신의 특수한 정치적 실존을 의식하고,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규정하는 주체성을 지닌다. 최근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공적 사명을 가진 국민으로 광장에 참여하였고, 그것이 구체적 영향력을 지닌 현실상의 실체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그들의 집합체는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에 해당한다.

 

그러나 범주의 폐쇄성으로 인한 정치적 대립은 공동체의 분열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가공동체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의 배후에 그들 모두가 하나의 시·공간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관념화된 국민의 주체성이 동화적 통합을 이루는 헌법의 원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음으로써 상호 의사소통과 실천적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정신작용으로 국민의 주체성을 지속적으로 구성해 나간다. 이는 국민의 주체성 실현이 열려진 영역 위에 여론의 형태로 나타나는 점에서 공론이라 할 수 있다. 공적인 현존으로서 국민(die Nation)이 적극적인 모습을 띄며 범주의 폐쇄성을 통해 정치적 구분을 지운다 해도 각 개인의 반성적 의식작용을 수반하는 국민(das Volk)의 주체성이 그 배후에서 항상 작용을 할 때라야 국가 작용의 실질적 효력을 담보하는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된다. 개인의 반성적 성찰과 자유로운 표현은 그들의 이질적 주체성이 의사소통과정에서의 평등한 참여를 통해 국민의 주체성을 재정립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주체성을 원천으로 하는 헌법은 세대를 초월하여 동질성과 역사성을 지닐 수 있다. 실정헌법 또한 통합과정으로서의 헌법이 지니는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다. 따라서 실정헌법으로부터 도출되는 국가권력은 헌법적 가치실현의 원천인 국민의 주체성이 개인의 반성적 의식작용을 수반하여 항상 작용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분할한다. 국가의 민주적 정당성은 이러한 기능적 권력통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국민의 전체적 통합과정을 실현하려는 헌법의 동태적 작용으로 반영되는데 실정헌법은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워 이를 확보한다.

국민의 주체성이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이루어짐은 실정헌법, 특히 여러 헌법조문에서 잘 드러난다. 헌법의 제정과 개정은 먼저 대의기관인 국회나 대통령의 발의가 있은 후 국회의 의결을 거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된다. 국가권력의 어떠한 행사도 이를 다시 한 번 통제하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특수한 국가기관의 주관적 의사가 국민의 주체성과 괴리됨은 없는지 반성적 고찰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국회의 법률제정과 개정 또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와 재의요구권을 통해 국민의 주체성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한다. 또한 대의기관에 임기제를 둠으로써 대의기관을 구성하는 개인이나 인적 집단은 그들이 판단하는 국민의 추정적 의사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진다. 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해 발현되는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구분과 대립은 대의기관이 대신 정치적 책임을 짐으로서 공동체의 분열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탄핵심판에 의해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도 촛불집회로 나타난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과 태극기 집회라는 다른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대립을 헌법기관의 정치적 책임으로 대체한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는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고 전체국민의 주체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완충적 성격을 지닌다.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 및 국가기관의 의식작용 배후에는 국민의 주체성이 작용하며, 그것을 원천으로 하는 동화적 통합과정인 헌법은 국가의 작용에 보다 완성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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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6

전능했던 주체와 무기력한 주체, 그리고 파상(破像)의 힘

 

 

임명현 _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석사, MBC 기자

 

아주 예전부터 나에게 허락된 인생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여러 번 살 수 있다면, 아주 주류처럼도 살아보고, 또 아주 비주류처럼도 살아보고, 권세와 쾌락 이기심을 추구하면서 살아보고, 신앙와 윤리 이타심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보고... 아니 최소한 두 번은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한 번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다른 한 번은 남이 살아보라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은가. 허황된 생각이었다. 내가 살 수 있는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나마 이 삶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평균 수명이라는 통계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100년을 갈 수도 있지만 당장 내일 끝날 수도 있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불만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내 삶은 연속성을 가지고 흘러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제도권 교육과정을 마쳤다. 21세기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에 입사했다. 사회부, 정치부, 스포츠취재부 등을 거치며 10여년을 보냈다. 흐름에 수동적으로 몸을 맡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순간순간 물꼬를 트고 물길을 잡는 선택은 내가 내렸다. 때때로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진력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성찰하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기획했다. 그렇게 앞으로의 삶도 살아갈 작정이었다. 다양한 분야에 풍부한 취재경험을 가진 좋은 기자가 되고 싶었다. 권력에 불편부당하고 낮은 자들에겐 친절한 뉴스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의미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그것이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삶에 대해 내가 가진 태도였다. 그렇게 살아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는 삶이고 싶었다.

 

2012년이 변곡점이었다. 그 해 이후 내가 저널리스트로서 그려가던 서사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파업이 있었다. 170일 간 벌어진 파업이었다. 그 파업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기자로서 나의 서사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종료되었다. 그 종료가 일시적인 것인지 영구적인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2017년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것만 분명할 뿐이다. 나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좋은 기자, 좋은 뉴라는 비슷한 꿈을 함께 꾸고 그렸던 선후배 동료 상당수가 유사한 처지가 되었다. 더 이상 MBC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좋은 뉴스를 만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은 자들이 만들어 방송하는 MBC의 뉴스가 좋은 뉴스인 것도 아니었다. 전혀 권력을 향해 불편부당하지 않았고 낮은 자들을 향해 친절하지도 않았다. 되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권력을 향해 친절했으며 낮은 자들을 외면하고 멸시했다. 세월호 참사 보도가 그 대표적 증거다.

 

이러한 MBC의 상황을 문제적으로 느낀 이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했다. 성찰했다. 헤게모니를 쥔 경영진이 바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말했다. 썼다. 일상적으로 그들과 교섭했고, 사내 게시판에 문제제기를 하는 글을 썼다. 성명서를 썼다. 피켓팅을 했다. 구호를 외쳤다.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말과 글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오히려 반격을 불렀다. 말하고 쓰는 이들이 보복당했다. 징계를 받고 뉴스의 외부로 배제됐다. 말하고 쓰지 않았던 자들은 이 광경을 보며 분노했지만 동시에 위축됐다. 말과 글이 힘이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행동에 나설 수도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이 패배한 파업의 후폭풍이었기 때문이었다. 말과 글뿐 아니라, 실천의 힘까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더 이상 성찰할 수 없었다.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의 언어로 인식하는 작업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성찰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한들 그 깨달음이 가진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획도 할 수 없었다. 말과 글은 물론 실천의 힘까지 상실한 상태에서 어떤 기획을 한들 그 기획이 우리의 문제 상황을 변화시킬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찰도 기획도 할 수 없는 상태, 이것은 파산을 의미했다. 좋은 기자, 좋은 뉴스를 향해 흘러가던 나와 우리의 꿈이 파산했음을 의미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더 좋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려가던 나와 우리의 서사가 파산했음을 의미했다.

 

나와 우리는 지난 몇 년 사이 너무도 극과 극의 주체를 경험해야 했다. 적어도 파업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MBC 내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느꼈다. 사주가 없는 공영방송, 그러면서도 정부가 직접 지분을 갖지 않은 공영방송이라는 지배구조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했다. 그것이 MBC였다. 어느 기업이든 사장은 나름의 지배적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사장을 월급사장이라고 불렀다. 사장이 가진 존재감을 체감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이후 모든 것이 해체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주체가 됐음을 절감해야 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주체였다. 좋은 기자가 될 수 없었고 좋은 뉴스를 할 수 없었던 차원을 넘어,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조차 분석할 수 없었다. 성찰할 수 없었다. 해봤자 소용이 없기에. 또 문제적 상황을 변혁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기획할 수 없었다. 해봤자 소용이 없기에.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전지전능한 주체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한 주체 모두를 동시에 경험했다.

 

전능한 주체였던 시절 나와 우리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근질근질한체질을 갖고 있었다. 마음 속에 그린 아이템과 기획안이 방송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선순환을 자주 목격했다. 뭔가를 해야만 했고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러나 무기력한 주체가 된 우리는 이제 뭔가를 하는 것이 불안한체질로 변화됐다. 해도 안 되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나아가 이것을 했다간 우리 모두가 끝장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불안하다. 그토록 전능하게 느꼈던 우리의 뉴스, 우리의 직업, 우리의 선배, 우리의 노조가 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를 논의하는 게 두렵다. 탄핵된 구 권력과 새롭게 등장한 신 권력, 그리고 사회 곳곳에 변화의 물결이 이는 것 같은 지금의 장면을 보면서도 뭔가 새로운 기획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

 

전능했던 주체였기에 타자의 탓을 할 수 없다. 우리가 패배한 것은 우리의 탓이다. 또 전능했던 주체였기에 우리의 구원을 타자에게 부탁할 수도 없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라는 주체는 전능한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주체다. 그렇기에 나와 우리에겐 외부가 없다. 이건 네 탓이라고 귀책사유를 돌릴만한 외부가 없다. 또 제발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눈물로 기원할 만한 대상으로서의 외부도 없다. 외부를 탓하고 외부에 구원을 위탁하는 우리 스스로를 여전히 수치스럽게 느끼는데, 외부를 탓하고 외부에 구원을 위탁하지 않고서는 이 무력한 주체를 탈피할 수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지독한 모순이 있을까?

 

엄기호(2016)의 관찰을 빌리면 외부가 없는 주체에게 가능한 것은 숨는 것뿐이다. 그의 표현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알처럼 웅크려 들거나 누에고치로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숨어서 바깥을 내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우리는 숨어 있었다. 각자에게 허용된 공간에 최대한 숨은 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최대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애써 스스로의 감정을 탈각화했다. 때로는 그냥 회사일 뿐인 MBC에 그동안 너무 내 인생을 쏟아부었다며 이젠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자 다짐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이질적 주체는 차단하고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소수와의 밀도를 끌어올렸다. 그런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삶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극과 극의 모순된 주체를 오간 우리가 지난 몇 년의 시대를 버텨낸 방법이었다.

 

다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9년 전 내심 전능한 주체로 보수정권의 시대를 직면했던 나와 우리는 이제 고갈되고 메마른 무기력한 주체로 새로운 정권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시대를 열기 위해 한국사회는 초유의 국정 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이라는 누구도 예상 못한 길을 헤쳐나와야 했다. 어떤 힘이 시대를 밀고 온 것인가.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상상력인가? 그 상상을 구체화하는 기획력인가? 아닌 것 같다. 김홍중(2016)의 개념을 빌면 나는 이 시대를 밀고 온 힘은 파상력(破像力)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파상이란 기왕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들이 충격적으로 와해되는 체험이다. 바로 나의 체험이었다. 좋은 기자, 좋은 뉴스에 대해 갖고 있던 기왕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가 산산조각난 체험을 했다. 또한 이것은 바로 한국사회의 체험이었다. 세월호 참사,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가깝게는 구의역 김군과 최순실게이트에 이르기까지, 국가공동체와 민주주의, 안전, 한 인간의 존엄 등이 파상된 체험을 우리는 일상화해왔고 그 파상된 조각, 깨진 꿈을 끌어안은 채 버텨왔다.

 

파상력이란 그러한 버팀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김홍중의 말대로 이런 파상의 시대에서 우리는 각자의 기획을 실천하는 행위자라기보다는 깨져나가는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겪는 자에 가깝다. 이때 행위가 갖는 힘이 있듯이, 겪는 것이 갖는 힘 또한 있다. 그 힘은 깨진 꿈과 아직 오지 않은 꿈 사이에 펼쳐진 이 지독한 가위눌림과 환멸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겪어내는 힘,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의 근거를 그 파편들 속에서 찾아내려는 자세다(김홍중, 2016). 나는 이러한 파상의 시대의 저항이라는 것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정치적이고 혁명적 행동이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제시된 정체성과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박명진, 1991)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해왔던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어있었지만, 무기력했지만, 그것은 말과 글이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강제하는 정체성과 통제를 체화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 끝에 찾아낸 실천 전략이기도 했다.

 

나는 그러한 버팀이 가진 힘을 긍정하기로 했다. 기획과 행위만큼이나, 버팀과 겪는 것이 가진 힘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시대 저마다 파상의 조각을 끌어안고 버텨온 내 자신과 동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스스로가 전능한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가 겪은 모순된 주체, 전능함과 무기력함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새로운 우리의 주체를 찾아야 하고 그 과정은 상상의 결과인 필연이 아닌 파상의 결과인 우연 속에서 어느 순간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버팀겪음의 힘이 황폐화된 내 삶의 무대, 공영방송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며 새로운 길을 뚫고 예기치 않은 희망이 생성되는 장면을 곧 목격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참고한 글>

김홍중. 2016. 사회학적 파상력. 2016. 문학동네.

박명진. 1991. 즐거움(Pleasure), 저항, 이데올로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社會科學政策硏究> Vol.13 No.2, 67-95p.

엄기호. 2016.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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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5

전문등반을 하는 여성들의 주체성

 

김세옥 _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 한국여성산악회

 

 

 

산에서 발견한 여성의 역사-산에도 여자가 있었다

등반은 무상(無償)의 행위이다. 올랐다는 사실외에는 어떤 보상도 없다. 물리적인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니까 반자본주의 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산에 간다. 등산에 입문한 후 나의 의문은 왜 목숨걸고 등반할까?’였다. 하지만 인류는 한계에 도전하는 위대한 본성으로 죽을 수도 있는 신대륙, 남극, 북극, 히말라야에 도전하며 인간의 대서사를 만들어왔다.

유산(遊山)을 목적으로 산에 가던 인류는 200여 년 전쯤부터 더 높이 오르겠다는 욕망으로 근대등반을 시작했다. 적지 않게 남아있는 조선 선비들의 유산기에서 알수 있듯 이전의 산은 도전의 장이라기보다 바이오필리아 적 즐거움을 주는 놀이터였다.

유럽에서도 눈과 얼음으로 싸여있는 높은 산들은 인간 접근을 불허하며 악마가 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한계와 위험에 도전해 온 인류는 1786년 알프스 최고 봉우리 몽블랑4810m에 오른다. 그것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8천미터 봉우리들에도 앞다투어 올랐다. 초기 고산등정은 경쟁적으로 대규모 물량을 쏟아 붓는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영국이 시기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에 맞춘 일에서 보듯 고산정복은 국력과시의 수단이었다.

 

오늘날 등산은 대중화되어 있지만 초기 등반은 많은 물자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만이 가능했던 귀족등반이었다. 일제시대 백령회로 비롯된 한국의 근대 등반도 친일혐의를 벗을 수가 없으며 해방 후에도 대학산악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런 등반환경은 젠더적으로 불평등한 여성들의 접근을 매우 어렵게 했고 등반욕망을 가진 여성들을 좌초하게 만들었다.

필자가 산과 등반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여 놀랍고 매력적인 등반역사에 빠져 있을 때 인간의 다른 역사가 그렇듯 여성의 역사는 보이지 않았다. 치열한 산의 역사속에 눈에 띄지 않던 여성의 희미한 발자국을 발견한 놀라움이 공부의 시작이었다. 척박한 등반환경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실천한 여성들의 역사와 궤적을 찾아낸 일은 여성학공부와 등반을 동시에 시작한 필자에게는 필연이었다. 남성중심의 산에서 여자들도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목숨걸고 등반한 흔적은 감동이었다. 등반을 인문학적으로 연구한 사례는 드물었고 등반하는 여성을 연구한 일은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등반은 남성의 전유였고 여성의 등반은 스캔들로 불리우기까지 했다. 등반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산악회 규율은 군대같은 상명하복이고 초기 산악회는 여자를 입회조차 시키지 않았을 만큼 등반문화와 조직은 여성에게 배타적이었다. 현재도 그리 달라지지 않은 풍토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등반 욕망을 추구하며 치마를 입고 산에 갔다. 발목까지 닿은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등반하는 여성들은 전복의 상징이다. 여성억압과 섹슈얼리티 통제의 상징인 치마를 입은 채로 산을 욕망하며 등장한 여성들은 여성 금기의 현장인 '산과 등반'에 균열을 내고 자신의 욕망을 실천했다.

 

등반은 예측 불허한 자연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등반가 앞에 주어진 장애를 극복하는 운동이다. 생존이 어려운 고산이나 수천길이의 거벽 등 대부분의 등반지는 자연의 가혹함과 가변성으로 위험이 상존한다. 고도로 단련된 강한 몸과 정신으로 집중해도 위험한 등반에서 그 행위를 지속하게 하는 육체적인 행위성과 정신적 사유의 결집인 이 등반수행성을 등반가들은 '알피니즘'이라고 부른다. 물리적으로 강하고 제도적으로 유리한 남성들도 추구하기 어려운 '등반과 알피니즘'을 자신의 삶을 관통시키는 테제이자 세계관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등반가들이 존재했다. 등반에 매료된 여성들은 도제식으로 힘들게 등반을 배우며 '등반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림1] 치마입고 등반하는 초기 여성등반가

(출저: 메스너, 레인홀드,정상에서(2012) )

 

여성들의 서사-강한 등반가/인간/주체성

 

등반의 한계에 도전하고 남성 주도의 산 문화와 조직에 저항했던 여성들의 등반은 여성주체로서 수행한 등반이라는 역사성을 남겼다. 가부장적 조직과 문화를 수용할 수 없었거나 귀속이 불가능했던 독립적인 여성등반가들은 남성적 규범과 질서와 충돌하고 조정하는 한편 끊임없이 그 경계를 교란하고 전복을 시도하며 자신들만의 등반성을 구축했다. 삶의 경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산과 등반을 배치한 여성등반가들은 자신이 경험한 성차와 젠더적 경계의 모순을 갈등/전복/극복하게 된다.

70년대 여성 불모지의 산악지형에서 젠더/시대적 한계를 이겨내고 한국최초/여성/동계히말라야등정이라는 역사를 쓰며 안나푸르나8091m를 동계 등정한 김영자, 남성들의 세상과 불화를 마다하지 않으며 자주적인 등반을 추구하고 삶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최초의 여성/단독/동계/태백산맥종주라는 뛰어난 등반사적 자취를 남기고 "낮은 산"이라는 새로운 등반의 장을 제시한 남난희, 여성등반대라 할지라도 남성등반가들 지원하에 조직되었던 당시 풍토에서 자발작인 여성등반대를 조직하여 히말라야가 아닌 알래스카 맥킨리6194m를 자력으로 등반하여 여성/최초/자력/비아열대 등반이라는 기록을 남긴 <‘88년 여성 맥킨리등반대>, 뛰어난 체력과 등반력을 지니고 남성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위력으로 토왕폭 빙벽등반을 로프없이 단독등반한 전위적인 등반가 김점숙,

 

이들의 성취는 여성등반가도 한계 극복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전위적이고 첨예한 등반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생물학적 여성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여성등반가의 물리적 힘과 등반기술력을 증명한 전설과 신화였다. 그 신화는 후배 여성등반가들에게 미래와 변화의 꿈에 대한 명징한 메시지가 되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상처와 영광을 딛고 올라서 지금여기에서 나아감넘어섬을 도모하고 실현한다.

여성등반가들은 신화의 이면에 있던 배제의 상처와 젠더적 그늘을 걷어내고 스스로 주체가 되는 등반을 시작한다. 여성과 남성의 다른 문화, 관계, 소통, 몸 등의 차이가 여성등반가들에게 좌절과 부담으로 작동하여 남성들과 함께하는 등반을 거부하게 되고 여성들만의 등반과 연대를 모색하여 여성등반대를 조직한다. 강한 힘과 높은 등반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산 거벽 등반은 성격상 남성/여성은 리더/보조, 선등/후등라는 성별화된 이분법이 강하게 재생산되는 문화였다. 그러나 스스로 조직한 여성들만의 알파인 거벽원정대는 성차별적 질서와 위계를 흔들며 자신들만의 꿈을 실현한다. 2006년 조직된 아줌마등반대는 등반의 발원지 유럽을 거쳐 2012년 남미 파타고니아 피츠로이3405m를 아시아 여성 최초로 등반해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2013년 다시 파키스탄 트랑고 타워6286m를 올라 여성등반대의 위력을 과시한다. 이제 고산거벽도 여성들만으로 등반이 가능함을 세상에 보여준 것이다.

 

산에서 좋아하는 것(욕망)을 하며(실현) 잘 나가는 그녀들

 

한 사람의 클라이머cilimber가 된다는 것은 일상적인 몸의 단련으로 힘과 등반력을 높여서 산이라는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힘과 기술력을 체화한 힘센 몸을 지녔다는 의미가 된다. 힘이 생긴다는 것은 대상을 제압할 수 있는 강한 '몸적 파워'와 역경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이 동시에 견지되어야 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여성등반가들이 몸의 단련과 강화인식적 여성주체가 확장되는 경험을 말한다. 물리적 힘이 쎄어지는 몸적 임파워링empowering은 개별 여성등반가의 등반현실과 삶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등반'이 인류에게 주는 위로와 쾌락을 여성들도 즐기며 산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해왔다. 전문등반을 하는 여성들이 지니는 페미니즘적 의의는 성차와 젠더적 난관에도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가족/모성/결혼/로맨스 등의 이데올로기로 여성의 자발적 공모를 획득한 가부장제와 갈등하면서도 등반가로서의 욕망실현을 위하여 과감히 '비혼(非婚)과 비출산' 전략으로 젠더 역할을 조정했으며, '자발적 실업'과 자기자원의 개발로 등반 욕망과 생존을 구획하였다. 여성등반가로서 지닌 주체성과 행위성이 가부장적 시스템을 교란시킬 때 마다 억압과 차별과 소외가 노정되었지만 자신들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전면화하며 가족/연인/공동체 등 자신의 주변은 물론 시대와의 불화도 감행했다. 산과 등반에서 여전히 여성등반가의 욕망은 순조롭게 발현되고 있지 않지만 또 그런 만큼 여성주의 정치학적으로 의미를 지니게 되는 양가성을 가진다.

 

개별 여성이 억압과 장애 없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그것이 개인적 복지와 쾌락으로 구현되는 것이 여성주의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행위주체로서 자기욕망을 수행하고, 실존에서 배타적인 선택과 협상이 가능한 주체로 변화하는 것이 여성주의적 진화이다. 등반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높은 의지로 몸을 단련하고 고산/거벽을 등반하는 특수하고 힘든 과정을 수행하며, 그것을 통해 주체성을 획득하고 젠더 위치를 재배치하는 협상력을 보이는 여성등반가들은 젠더적 경계에서 다소 분열을 겪고 있긴 하지만 여성주의 실천의 주체이다. 자신의 힘과 주체성으로 등반욕망을 실천하고 있는 여성등반가들은 산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전문등반이라는 독특한 시간과 경험을 구성하며, '여성주의 정치성'을 구현하고 있다. 산이라는 현장에서 여성등반가들이 실현하고 있는 알피니즘은 여성주체성의 다른 이름이다.

 

 


주1) biophilia 인류는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친자연적인 유전인자 가지고 있다는 미국 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이론이다.

주2) 등반가들은 정복이라는 제국주의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예측할 수 없는 눈사태나 수천의 낭떠러지로 추락하여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인간의 존재는 대자연 앞에 절대 약하고 초라하다는 점을 절감하기 때문이고 신이 허락해야 잠시 다녀올 수 있다는 겸손함이 저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주3) 1808년 유럽 최고봉 몽블랑에 여성 최초로 오른 18세의 '마리 파라디스'를 남자들은 부추김과 대중적 명성을 얻기 위한 등반의 스캔들이라고 야유했다. 여성 최초 등정을 인정해주기보다 여성의 도전을 가십으로 취급하려는 남성우월주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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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19:46

 

 

 

몇몇 사상가들이 삶의 의미라는 문제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데에는 매우 일반적인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의미’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라는 점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질감이나 무게, 색깔 같은 사물들 자체의 특징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사물들에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이다. 양배추나 심박동 측정기 자체는 의미가 없다. 그것들은 우리의 대화에서 거론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인생의 의미』(2016)

 

 

 

 

'잃은 것을 찾는 삶'

 천주희

(문화연구자 겸 작가)

 

지난 10년 동안 대학()생으로 지불한 등록금은 약 5000만 원. 그중 2200만 원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스무 살에 독립한 후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학생 채무자이자 부채 연구자로 한국의 청년부채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가>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책노오력의 배신(2016)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2016)를 내고, <57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현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문화사회연구소운영위원으로 있다. 예술인 집단 문화창작공간 다락의 대표이자, 희곡 <눈물요정 시리즈: 지하철편>, <공터(共無地)>, <반딧불의 잔존>을 쓰고, 상연했다.

 

 

 

 

'나보다 옆에있는사람의 삶을 가꿀 수 있는 삶’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소속의 공익변호사)

 

 모든 인간이 가진 천부적인 존엄성과 내재적인 인권이 보장되는 정의롭고 그래서 평화로운 날이 오기를 꿈꿉니다.”

공익법센터 <어필>은 소송과 신청, 연구와 입법운동, 교육과 홍보, 국내외 단체와의 연대, 국제인권메커니즘 활용 등을 통해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다국적 기업의 인권 침해를 감시한다.

이일 변호사는 <어필>에서 난민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이 들어 앞이 잘 안 보여 책도 볼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을 때, 적막하고 메마른 곳을 음악이란 신비로 메꾸며 기타치고 노래하며 살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어필> 홈페이지 www.apil.or.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apilkorea

 

 

 

 

 '순간마다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

 

김종현

독립서점 <퇴근길 책 한잔> 대표

   

술과 책이 있는 독립책방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잠시 들려 맥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퇴근길 책 한잔>책맥(+맥주)’,‘ 북맥(book+맥주)’을 알린 곳으로 유명하다.

스스로를자발적 거지라고 부르며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게 대표의 원칙이며, 책방에서 영화 상영과 공연 등도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독서토론 모임인혁명적 책 읽기’,‘ 자발적거지모임등을 열기도 한다.

 

<퇴근길 책 한잔> 서울 마포구 염리동 9-60번지 1

영업시간 평일 2pm-10pm, 2pm-7pm (매주 일&월 휴무)

booknpub@gmail.com / 카카오톡 id : 퇴근길 책한잔

 

 

 

 

  ‘“이렇게살 수도 있겠네!”로도충분한 삶

윤이나

(작가, 기자, 평론가, 칼럼니스트, 편집장이자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사장)

 

 미쓰 윤혹은윤 알바20대를 버티고 보니 윤 작가, 윤 기자, 윤 평론가, 윤 칼럼니스트, 심지어는 윤 편집장으로도 불리는 오늘을 살고 있다. 보통은 무엇인가를 쓰는데, 그중 일부가 책미쓰윤의 알바일지로 묶여나왔다. ‘페미니즘 굿즈를 만들면서 여성 단체를 후원하는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치마사장으로 불릴 때도 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의 공저자로 페미니즘과 대중문화에 대해 썼다. 소녀는 아니지만 대체로 설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많이 말하고, 혼자 있을 때 생각한다. 어딘가에 속하지도 않고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 사람들이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는 존재로 사는 것도 그럭저럭 멋진 일이라고. 그래서 앞으로도 그냥 윤이나.

 

   

 

 왜곡되지않고, 온전한로 받아들여지는 삶

이명선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기자이자 칼럼니스트)

 

 2011, 방송이 출범하기도 전에 <채널A>공채 1기자로 입사했다. ‘공채 1기 개국 공신’. 한때 이 말은 자부심이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보다 회사 소개를 먼저할 정도로 애정을 다했다. “곧 개국하니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그러나 그곳에서 일한 3년 동안, 남은 것은 대리 기자였다는 부끄러움뿐이었다. 그 후 지난 2월부터,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 자신이 겪은 종편의 민낯을 알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 스토리펀딩에 올라오는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라는 제목의 연재물이 그것이다. “다시는 기자 안 하겠다고 다짐했건만 마음은 늘 언론 언저리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못다 이룬 참 기자의 꿈을 이루려 고군분투 하고 있다. “셜록은 심층-탐사 보도에만 집중합니다. ‘기자-변호사-전직형사가 함께 진실을 파헤치고, 기록하고, 해결합니다.”

 

스토리 펀딩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

storyfunding.daum.net/project/13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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