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30

주체적 개인을 위협하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역설

- 참다운 공동체를 위하여

 

김재홍 시인 _ 2003<중앙일보>로 등단. 시집 메히아, 다큐멘터리의 눈발간

 

 

에피스테메(Episteme)나 아비투스(habitus)가 만일 우리 무의식 속에 잠재된 집단성에의 맹종적 태도나 다수성에의 몰입을 지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부정되어야 한다. 혹은 인간 조건의 보편성과 사고의 인접성에 대한 세밀하고 방대한 지적 성과를 충분히 사숙하지 않은 단순 추상화라면 이 또한 거부되어야 한다.

 

한때는 분화보다 총화가, 다양성보다 총체성이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던 때가 있었다. 대량생산과 박리다매의 수출 전략이 국가경제의 에너지원이 되던 산업화 시대의 기업에는 말할 것도 없으며 가난을 면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생존 과제인 수많은 가정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정보의 분출이 차별성과 개성으로 연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정보 권력에 대한 맹종적 태도를 야기하는 세태 속에서 분화와 다양성에의 요구는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다. 단일성이 아니라 다질성이, 통념이 아니라 개성이, 집단이 아니라 개체가 중요한 시대다. 우리는 누가 우리들에 더 가까운가를 찾기보다 자신의 고유성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오직 를 발견해야 한다.

 

개성적 군상들의 협화음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개별 연주자의 역량이 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수준 전반을 보장해 주는 기초가 되듯 한순간도 동일한 존재일 수 없는 각자의 외삽(extrapolation)되지 않는 개체성이야말로 우리 공동체의 참다운 동력이 되어야 한다.

 

내 눈으로 세상보기

 

신체발부의 주인으로서 나는 내 몸과 정신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모든 과정을 통제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생성되는 일체의 변화를 포함하는 당당한 주체다. 그러나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 정신으로 판단하며 내 몸으로 행동하는 상식적 생활이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의 물리적 조건이나 다른 주체들과의 이질적인 접면과는 별개로 나는 이미 해석된 정보의 범람 속에서 주체성 상실의 비극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식과 판단과 행동의 주체로서의 위상을 몰락의 길로 내모는 원인은 멀리 있지 않다. 매일 24시간 공급되는 신문과 방송, 포털사이트와 SNS 속의 정보는 그 정보 공급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미 우리 주체성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 거센 지원군으로 등장한 이른바 1인 미디어 시대의 폭주하는 해석들도 우리 주체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정보의 물량과 현란하고 선정적인 수사만이 아니라 근거가 부실한 선동까지 횡행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갈수록 의 위치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망과 모바일 서비스 수준을 가지고 있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역설로서 내 눈으로 세상보기를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절대 과제로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생산된 정보와 해석된 가치의 뿌리로 돌아가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어떤 사태의 기저로 파고들어가는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자체를 본질로 삼고 그에 핍진하게 육박해 들어가는 고역(苦役)을 마다하지 않는 의지가 긴요하다.

 

정보화 세계의 이른바 파워집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을 얻기 위해 들이는 무시무시한 집중력과 에너지 투입에 상응하는 우리의 주체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더라도 광우병 사태나 천안함 침몰,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건은 물론이고 일상에서 수시로 접하게 되는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1차 정보에 접근해 자신이 직접 해석하고 판단하겠다는 태도는 드넓은 네트워크 세계를 종횡사해(縱橫四海)’하는 미지칭의 정보 공급자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다시 세우게 할 것이다.

 

언표이론을 기반으로 한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에피스테메는 담론 형성 조건에 대한 시대적사회적심리적 지평을 선험적으로 추상화한 게 아니다. 오히려 한 시대의 방대한 연구 성과를 엄밀하게 분석한 결과이자 그에 따른 경험론적 분류학(고고학)의 총화에 가깝다. 때문에 그는 어떤 에피스테메가 득세했다고 해서 특정 시대와 문화의 모든 사람들이 그 노선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일상의 우리가 시시각각 봉착하는 판단 의탁의 비주체적 상황의 총합은 결코 에피스테메가 아니다. 푸코는 개성적 주체들의 천변만화(千變萬化)를 세세하게 살핀 끝에 그 기저에 흐르는 바탕을 포착한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어떤 압력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외부에 대한 신체와 정신의 계루(係累) 혹은 길항(拮抗)이다. 그런 면에서 아비투스는 분석의 결과이기보다 논리적 추론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제반 조건과 유기적으로 조응하고 변형시켜 나가는 필연적인 성향이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가 본 것은 인간 내면의 구조이자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비투스는 개성적 주체를 갈망하는 우리에게 명시적 부정의 대상이지 체념하며 받아들일 용어가 아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압력에 대응할 때 우리는 일정한 공유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해석된 정보가 아니라 그 원형질에 다가가 직접 해석하고 판단하는 주체적 행위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주인공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에피스테메와 아비투스의 생산자로 우뚝 서는 길이기도 하다.

 

허상의 주체와 실상의 주체

 

가령 주말 종로 통인시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장년과 초로의 시민만이 아니라 이십 대의 새파란 연인들과 한복을 차려 입은 아가씨들이라고 할 때 그 비집단적 집합의 원인은 통인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값싸고 맛있는 도시락이 아니라 오히려 음식 품앗이를 마케팅에 적용한 전통시장의 유명세에 자신을 던지는 비주체적 자기보호 본능에 가깝다.

 

 

[그림2] 주말에 통인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풍경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주말 통인시장은 더 이상 생필품과 식재료의 유통 창구를 본질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복궁에 인접한 시티투어 코스이거나 전통시장 체험장이거나 청춘들의 다소 특별한 데이트 코스에 가깝다. 또한 다수성에 터 잡으려는 불안한 현대인의 비주체적 볼셰비키(Bol’sheviki, 다수파) 의식을 만족시켜 주는 심리적 기제이다.

 

어떤 외부적 사태에 대한 인식과 판단과 행동의 주체성 상실이 정보화 시대의 역설적 양상이라면, 실상의 주체가 사라진 비주체적 자아의 원인은 내부적이다. 허상의 주체는 스스로 자신을 벗어나 타자를 향한다. 실상의 가 아니라 잠재적인 허상의 ’(타자)를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 좋아하는 유명 배우의 옷과 가방과 선글라스를 선망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유명 배우에 연결 짓는다.

 

좋아하는 운동선수, 선호하는 정치인, 신뢰하는 작가, 존경하는 학자의 이미지를 향해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가는 , 그러나 디지털 신호의 단속적인 절연상태(絕連狀態)와 같은 불안정한 영상에 투사된 허상 혹은 시뮬라시옹(Simulation)을 만날 뿐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나는 허상을 와 동일시하는 비주체적 로 전락하고 만다.

 

가령 타르드(Gabriel Tarde, 1843-1904)자아의 참된 대립은 비자아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또한 “‘있음’, 즉 갖기의 참된 대립은 있지-않음이 아니라 가진 것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주체의 성격에 대한 엄밀한 형이상학적 존재론이다.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다. 이미 누가 걸어간 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첫걸음을 떼는 그 길을 가는 존재이다. 내게 이미 속성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삶, 그것이 주체적 삶이며 허상의 자아를 실상의 주체로 만들어 주는 길이다.

 

나의 귀속 범위가 나에게 본질적으로 밝혀주는 것은 역전된, 일시적인 또는 잠정적인 귀속들이라고 하면서 우리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소유물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할 때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염두에 둔 것은 물론 모나드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에 관한 존재론적 문제이지만, 그것은 또한 도 알 수 없는 나의 어떤 가능성을 실행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일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기도 하다.

 

하나의 신체가 나의 모나드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모나드들이 나의 신체의 부분들에 귀속된다는 역전, 모나드들이 일시적으로 나의 신체에 귀속된다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가 이미 나의 부분으로 내게 잠정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가 다수의 타인이 형성해 놓은 어떤 틀을 맹종하지 않는 한 언제나 새로운 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가 된다. 그리하여 나의 고유한 소유물을 차츰 늘려가는 가운데 주체적 자아의 명석한 주름(pli)’은 공존하는 우리의 세계를 빛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가는 통인시장은 더 이상 비주체적 자기보호 본능의 플라시보 효과로서가 아니라 나의 참다운 주체성의 표현이 된다. 나는 이제 유명 배우의 옷과 가방과 선글라스와 상관없이 나를 표현하는 실상의 주체가 된다.

 

 

참다운 공동체를 위한 주체적 개인

 

판단을 의탁하고 행위를 위탁하는 주체 실종의 사회에는 건강한 공동체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가 사라진 우리를 용납할 수 없는 이유이다. ‘가 아닌 우리에 빠지는 순간 헤어나기 어려운 집단의 굴레에 갇힌다. 이런 유형의 우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 아닐 수 없다. 주체적 개인이 있어야 참다운 공동체가 성립된다.

 

해석의 정당성이나 공적 책임 의식보다는 조회수와 댓글에서 짜릿함을 느끼는 키치적 욕망만이 문제가 아니다. 또한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애써 해석과 판단의 주체가 되기보다 피동적 수용자에 그치고 마는 정보 수용자만을 탓할 수도 없다. 군사독재와 폭압적 권위주의 시대를 벗어나 권력 자체가 다기화(多岐化)된 민주화 이후 생활인들이 겪는 왜소증과 눈치 보기를 함께 지적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학사는 오랜 동안 의()와 사()의 전장이었다. 의미론과 표현주의 논쟁은 한 시대의 문학적 지평을 정의하는 큰 주제였기 때문에 치열한 쟁론으로 이어졌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궁이공(窮而公)’을 외치며 사륙변려체의 관습화된 복제 문학을 넘어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은 당시 흥기하던 사대부 계층의 청신한 개혁 기류를 옹호하여 귀족주의 체제를 벗어나려는 문학적 열망의 표현이었다. 이들의 고문 운동은 당나라 때 비롯되어 거금 400여 년 동안 지속된 치열한 논쟁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에게는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의 정신이 요구된다. 그 어떤 전범도 인정하지 않는 자아의 치열한 갱신의 태도야말로 개성적 주체를 가능하게 하고 이런 조건 위에서 진정한 다양성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다원주의는 주체의 공존이지 몰개성의 다기성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주체적 개인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전제가 아닐 수 없다.

 

할둔(Ibn Khaldūn, 1332-1406)해질녘 산들에 비치는 그늘처럼 마그레브 전체에 서서히 밀려오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이 그늘을 내가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알모라비데 제국(1056-1147)과 알모하데 제국(1120-1269) 등 강력한 국가가 흥기했던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북서부 아프리카 마그레브(Maghreb) 지역의 몰락 원인을 유목민들의 강한 야전적 움란(Umran, 한 집단의 생활·심성·문화 등의 총칭)이 위축된 데서 찾았다. 기번(Edward Gibbon, 1737-1794) 역시 로마의 군인 정신과 용기의 쇠퇴가 제국을 파멸로 이끌었다고 했다. 군사적 아사비야(asabiyya)든 유목민들의 강인하고 튼튼한 움란 바다위(badawi)든 그 기층에는 개성적 인간이 있었으며, 기번과 마키아벨리가 주목했던 로마인의 비르투(Virtu)도 그 근저에는 어디까지나 동시대를 힘차게 살아간 주체적 개인이 있었다.

 

참다운 공동체의 조건이 우리 각자의 주체성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영광의 터전을 위해 허상이 아닌 실상에 전착하며 이념이 아닌 실질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주체적 다원성이 민주주의의 근거가 되고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다시 미래를 개척하는 영원회귀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언제나 당당한 주체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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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8

헌법의 주체로서 광장의 국민에 관한 헌법해석적 검토

 

박찬권 _ 고려사이버대학교 법학과 조교수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나타난 광장의 목소리를 계기로 일반 국민들은 헌법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하는 촛불 집회와 이에 비해 소수였지만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집회에 모인 국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주장이 헌법을 수호하는 길이라 외쳤고, 탄핵 심판을 담당한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였다. 이제 국민은 헌법 제1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항만을 가지고도 그들이 국가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진정한 국민주권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미 도래하였다.

 

헌법해석의 기준으로서의 국민주권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국민주권이 단순히 광장의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같은 국가기관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헌법원리이자 동시에 헌법해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무엇보다 국민주권의 헌법적 의미와 여기서 말하는 국민의 실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국민주권이란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 있고, 국가의 모든 권력들은 이념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귀결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국민은 헌법학에서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하여 설명된다. 하나는 이념적 통일체로서 국민, 즉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관념화된 전체국민이다. 주로 대의기관이 공익을 추구하는 의사결정에서 지향하는 추상화된 국민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국가기관을 구속하는 국민의 직접적 지시나 명령은 있을 수 없으며, 다만 자유위임의 원칙에 따라 대의기관은 자신의 객관적 양심을 가지고 그러한 국민의 의사를 추정할 뿐이다.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법적으로 실존하는 개개인으로서 국민이다. 주로 선거나 국민투표에 의한 주권의 개별적 행사로 나타나며, 이들의 주권행사는 대의기관을 구성하는 직접적인 결과로 경험된다. 그런데 우리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일반적인 헌법해석론에 따르면 전자, 즉 추정적 의사의 귀속주체로서 국민은 자연법적 이데올로기로만 볼 뿐 구체적인 헌법해석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어 민주적 정당성이 강하게 부여된 대통령과 국회의 의사결정에 대한 관계에서 사법자제의 법리를 낳아 헌법의 적극적 실현에 사법기능이 기여할 여지를 현저히 좁혀놓았다. 과연 그러한 헌법해석의 태도가 타당한가? 이를 논하기 위해 우선 헌법해석의 고유한 특징과 그로 인한 해석적 한계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헌법해석은 국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근본법칙인 헌법원리들로 규정된 헌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세부적인 내용으로 규정된 일반 법률과 달리 주로 원리로만 규정된 헌법조항은 그 해석이 매우 다양하고 개방적인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모습은 헌법의 가장 근본원리인 민주주의원리에 관한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관점과 태도로 민주주의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결론이 달라진다. 민주주의를 정치과정에서 지켜야할 규칙으로 이해하는 형식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다수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제정한 법률을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원리와 모순된다. 그러나 헌법적 가치실현을 위한 통치형태로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실질적 관점에서 종합한다면 국회의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통제는 소수자보호의 차원에서 자유·평등·정의 등 통합된 헌법가치실현을 위한 것으로 민주주의원리에 합치한다. 이렇게 동일한 제도적 상황을 동일한 헌법 원리로 평가하더라도 해석자가 어떠한 관점과 태도로서 이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헌법에 합치 또는 모순되는 서로 상반된 결과를 초래한다.

 

여기서의 모순이란 현실의 대상에 대하여 어떠한 헌법원리를 주장하는 것과 그러한 헌법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제되는 것 사이의 대립이다. 이는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과정 안에 내재된 모순으로 그러한 모순이 헌법해석에 의해 지양됨으로써 평가의 대상과 관련하여 헌법원리는 간접적으로 인정된다. 예를 들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효력이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좌우되는 앞의 경우 형식적 관점으로 민주주의원리를 분석한다면 헌법재판소가 다수결원칙과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 국회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현실의 제도적 상황은 헌법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를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하여 헌법원리가 주장된다는 점에서 모순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관점과 태도인 실질적 관점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원리가 재해석되고 규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형식적 관점과 실질적 관점에 따른 분석과 종합이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반복함으로써 민주주의원리는 전체적인 헌법체계 안에서 그 해석의 적정성이 확보된다.

 

 

국민과 주체성의 상관관계

이처럼 복수의 원리들과 관점들이 서로 모순되거나 배척됨이 없이 규범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상호 조화롭게 공존 하도록 헌법해석은 정합성을 이루며 진행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모순은 헌법원리 안에 또는 헌법적 평가의 대상 안에 이미 존재하는 모순이 아니라, 현실의 대상에 대하여 헌법원리를 실현하려는 의식작용에 있어서의 자기모순이다. 의식작용은 자기모순을 지양함으로써 동일한 자기의식으로 정립해 나가는데, 이는 주체성의 문제로 이것이야말로 헌법원리가 실현되는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공통의 매개이자 일반 형식이다. 여기서 현실의 대상에 대하여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모든 의식작용이 시작되므로 주체성은 헌법의 원천이 된다. 주체성에 있어 자기모순은 지양되어야할 쟁점으로 작동하여 해석의 대상과 관련한 또 다른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점에서 동일한 자기의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출발조건이다. 출발조건으로서 의식작용의 자기모순은 형식논리의 연역적 추론에 따라 그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자기의식의 전체적 지평에 의해 역으로 그 의미가 규정됨으로써 대상과 관련한 모든 헌법원리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실현되는 형태로 결론된다. 따라서 각각의 헌법원리들은 의식작용의 자기운동을 통한 주체성을 매개로 통합됨으로써 내적으로 연결되고 전체적인 헌법체계를 구성한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주체성이 누구의 주체성이냐라는 것이다. 국회나 헌법재판소와 같은 헌법기관은 헌법체계로부터 도출된 기관에 불과하기에 헌법의 원천이 되는 주체로 볼 수 없다. 결국 이들 헌법기관이 헌법을 해석함에 있어 지향하는 근본원리인 헌법 제1조로 다시 돌아가서 볼 때 주권의 주체인 국민과 그러한 국민을 구성하는 기본권 주체인 개인에게서 헌법의 원천이 되는 주체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 주체란 자유로운 의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위하는 실체를 말하며, 주체성은 이러한 실체가 자유로운 의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위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으로서 개인에 의해 이 주체성은 우선적으로 발현된다. 개인은 의식과 대상을 번갈아가는 순환과정을 통해 의식의 대상을 자기 동일화한다. 주체와 동일화하는 과정에서 대상은 존재 자체의 직접성이 부정되고 그 본질이 드러나는데 이는 주체의 입장에서 반성이다. 개인은 부정성을 지닌 자신의 반성적 의식작용을 진행함으로써 대상과의 자기동일성을 계속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작용이 진행되는 가운데 개인은 대상 안에 계속 머무르는 의식작용의 보편양상인 사태 자체를 경험한다. 사태 자체는 개인의 개별적 본성이나 주관적 의식과는 달리 대상을 매개로 추상적 형식을 지닌다. 개인의 주체성은 이 사태 자체를 토대로 대상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제 자기 동일화는 다른 개인들의 의식작용과 필연적 관계를 맺으며 발생한다. , 주체성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는데 그 최종형태가 바로 국민(das Volk)이다. 여기서 국민은 모든 개인들이 공동의 주체성을 형성·유지하며 동시에 각자의 개별적 의식작용을 실현하는 장으로서 하나의 시·공간을 의미하는 관념적 개념이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국민은 그동안 여러 정치·사회·문화·역사적 맥락과 결부되어 민족, 국민, 인민, 민중, 백성 등 각자 복합적 의미를 함축한 다양한 개념으로 불리어져 왔다.

 

국민의 주체성은 개인의 주체성이 공동체 차원으로 고양되는 것이기에 개인의 반성적 의식작용에 따른 부정성이 항상 수반된다. 이로 인해 공동의 의사를 새롭게 형성하는 운동이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으며, 자기동일성과 모순되는 제도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공동체 내 공적·사적인 모든 생활의 동화적 통합을 이루는 정신작용으로서 국민의 주체성이 드러난다. 동화적 통합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국민적 차원의 법칙과 원리는 각 개인들에 의해 공감되어 규범화되는데 이것이 헌법(die Verfassung)이다. 헌법은 국민의 전체적 통합과정으로 실현되는 것이기에 탄력적이며 동태적으로 작용한다. 한편, 통합과정으로서 헌법 안에는 그것이 지향하는 추상적 형식의 원리들과 그것의 이론적 구성물인 체계가 사태 자체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국민의 주체성은 이러한 원리와 체계를 정신작용의 근거인 동시에 지향점으로 삼아 끊임없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데, 이렇게 통합과정으로서 헌법 안에 내재한 추상적 형식의 규범이 헌법조문이나 헌법재판소의 판례로 공식화한 것이 실정헌법(das Verfassungsrecht)이다. 실정헌법은 현실을 일방적으로 도식화하는 규정된 체계가 아니라, 생동하는 정신으로서 국민의 주체성이 동태적인 헌법으로 드러날 수 있게 자유롭게 부유해 있는 개별 원리들의 체계로 존재한다.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하여

그러면 헌법과 실정헌법으로 발현되는 국민의 주체성은 국가와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Hegel에 의하면 세계정신이 출현하는 과정을 볼 때 기존의 세계정신과 새로운 세계정신 사이에는 내적 연속성이 없이 단지 대체되어질 뿐인데, 이는 국가를 통해 실체화된 국민이나 민족 정신들 간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세계정신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der Staat)의 상태로 들어가야만 객관적 실체를 확보할 수 있다. 국가는 특정 시점의 특정한 의사를 법률과 권력으로 정립함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드러낸다. 국가의 주체성은 국가조직의 정점에 있는 기관, 즉 행정부와 입법부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인적 집단에 의한 궁극적 결단이 곧 국가의 개체적 인격으로 간주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정점에 있는 국가기관의 의사결정은 국민의 주체성으로부터 독립하여 별도로 생성되기에 국가는 형식적으로 자신만의 주체성을 배타적으로 전개한다. 그러나 국가의 의사결정이 국가 내에서 대내적 보편성과 실효성을 담보받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최종 주체성인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가기관은 헌법과 실정헌법으로 발현되는 국민의 주체성을 자신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이라 한다.

 

국가조직을 구성하는 각 국가기관들의 특수한 의식작용들도 그들 각자 안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국민의 주체성을 의식하는 가운데 하나의 의사로 수렴되는 과정을 통해 국가는 유기적 조직으로 고양된다. 또한 국가의 의사결정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 각 개인들은 국가의 의사에 따르도록 스스로 내적인 규범의식에 의해 동기 지워지는데 이로써 국가의 법률과 권력은 사회심리적 실효성을 가진다. 이는 국가의 행위가 국민의 주체성에 의해 승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의 승인은 국가에 대해 무엇을 규정할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 기준으로만 작용함으로써 규정되지 말아야 할 것을 소극적으로 통제하는 역할에 그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하여 국민은 항상 소극적 지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헌법전에 규정된 선거와 국민투표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헌법가치를 수호하러 광장에 집결하는 현상을 통해 국민은 국가작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러한 적극적 의미의 국민은 각 개인들의 의식작용이 일정한 권위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주체성을 응집시켜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상태로 나타난다. 선거에서 주요 정당을 중심으로 국민의 의사가 수렴되는 현상이라든지, 매스컴의 보도나 일정한 사람들의 행위로 나타난 사실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광장으로 집결하는 현상은 국민이 공적인 현존으로 경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살과 피를 가진 개개인의 형태로 경험되는 구체적인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die Nation)은 시·공간의 장으로서 관념화된 국민, 즉 헌법과 실정헌법의 배후에 정신작용으로 존재하는 국민과는 구별된다.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은 특수한 자기목적적 범주를 형성하며, 그 범주 안에서 각 개인은 어떠한 권위를 중심으로 응집된 것만으로 상호연대를 이룬다. 이는 범주의 폐쇄성으로 이어져 다른 목적으로 범주를 형성하려는 타자의 주체성과 현실적으로 대립하면서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점에서 앞서 본 동화적 통합과정에 있는 의식작용의 장으로서 국민과 차이가 있다.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 안에 있는 각 개인은 자신의 특수한 정치적 실존을 의식하고,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규정하는 주체성을 지닌다. 최근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공적 사명을 가진 국민으로 광장에 참여하였고, 그것이 구체적 영향력을 지닌 현실상의 실체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그들의 집합체는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에 해당한다.

 

그러나 범주의 폐쇄성으로 인한 정치적 대립은 공동체의 분열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가공동체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의 배후에 그들 모두가 하나의 시·공간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관념화된 국민의 주체성이 동화적 통합을 이루는 헌법의 원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음으로써 상호 의사소통과 실천적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정신작용으로 국민의 주체성을 지속적으로 구성해 나간다. 이는 국민의 주체성 실현이 열려진 영역 위에 여론의 형태로 나타나는 점에서 공론이라 할 수 있다. 공적인 현존으로서 국민(die Nation)이 적극적인 모습을 띄며 범주의 폐쇄성을 통해 정치적 구분을 지운다 해도 각 개인의 반성적 의식작용을 수반하는 국민(das Volk)의 주체성이 그 배후에서 항상 작용을 할 때라야 국가 작용의 실질적 효력을 담보하는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된다. 개인의 반성적 성찰과 자유로운 표현은 그들의 이질적 주체성이 의사소통과정에서의 평등한 참여를 통해 국민의 주체성을 재정립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주체성을 원천으로 하는 헌법은 세대를 초월하여 동질성과 역사성을 지닐 수 있다. 실정헌법 또한 통합과정으로서의 헌법이 지니는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다. 따라서 실정헌법으로부터 도출되는 국가권력은 헌법적 가치실현의 원천인 국민의 주체성이 개인의 반성적 의식작용을 수반하여 항상 작용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분할한다. 국가의 민주적 정당성은 이러한 기능적 권력통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국민의 전체적 통합과정을 실현하려는 헌법의 동태적 작용으로 반영되는데 실정헌법은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워 이를 확보한다.

국민의 주체성이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이루어짐은 실정헌법, 특히 여러 헌법조문에서 잘 드러난다. 헌법의 제정과 개정은 먼저 대의기관인 국회나 대통령의 발의가 있은 후 국회의 의결을 거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된다. 국가권력의 어떠한 행사도 이를 다시 한 번 통제하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특수한 국가기관의 주관적 의사가 국민의 주체성과 괴리됨은 없는지 반성적 고찰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국회의 법률제정과 개정 또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와 재의요구권을 통해 국민의 주체성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한다. 또한 대의기관에 임기제를 둠으로써 대의기관을 구성하는 개인이나 인적 집단은 그들이 판단하는 국민의 추정적 의사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진다. 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해 발현되는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구분과 대립은 대의기관이 대신 정치적 책임을 짐으로서 공동체의 분열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탄핵심판에 의해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도 촛불집회로 나타난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과 태극기 집회라는 다른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대립을 헌법기관의 정치적 책임으로 대체한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는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고 전체국민의 주체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완충적 성격을 지닌다.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 및 국가기관의 의식작용 배후에는 국민의 주체성이 작용하며, 그것을 원천으로 하는 동화적 통합과정인 헌법은 국가의 작용에 보다 완성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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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6

전능했던 주체와 무기력한 주체, 그리고 파상(破像)의 힘

 

 

임명현 _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석사, MBC 기자

 

아주 예전부터 나에게 허락된 인생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여러 번 살 수 있다면, 아주 주류처럼도 살아보고, 또 아주 비주류처럼도 살아보고, 권세와 쾌락 이기심을 추구하면서 살아보고, 신앙와 윤리 이타심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보고... 아니 최소한 두 번은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한 번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다른 한 번은 남이 살아보라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은가. 허황된 생각이었다. 내가 살 수 있는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나마 이 삶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평균 수명이라는 통계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100년을 갈 수도 있지만 당장 내일 끝날 수도 있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불만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내 삶은 연속성을 가지고 흘러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제도권 교육과정을 마쳤다. 21세기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에 입사했다. 사회부, 정치부, 스포츠취재부 등을 거치며 10여년을 보냈다. 흐름에 수동적으로 몸을 맡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순간순간 물꼬를 트고 물길을 잡는 선택은 내가 내렸다. 때때로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진력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성찰하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기획했다. 그렇게 앞으로의 삶도 살아갈 작정이었다. 다양한 분야에 풍부한 취재경험을 가진 좋은 기자가 되고 싶었다. 권력에 불편부당하고 낮은 자들에겐 친절한 뉴스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의미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그것이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삶에 대해 내가 가진 태도였다. 그렇게 살아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는 삶이고 싶었다.

 

2012년이 변곡점이었다. 그 해 이후 내가 저널리스트로서 그려가던 서사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파업이 있었다. 170일 간 벌어진 파업이었다. 그 파업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기자로서 나의 서사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종료되었다. 그 종료가 일시적인 것인지 영구적인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2017년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것만 분명할 뿐이다. 나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좋은 기자, 좋은 뉴라는 비슷한 꿈을 함께 꾸고 그렸던 선후배 동료 상당수가 유사한 처지가 되었다. 더 이상 MBC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좋은 뉴스를 만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은 자들이 만들어 방송하는 MBC의 뉴스가 좋은 뉴스인 것도 아니었다. 전혀 권력을 향해 불편부당하지 않았고 낮은 자들을 향해 친절하지도 않았다. 되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권력을 향해 친절했으며 낮은 자들을 외면하고 멸시했다. 세월호 참사 보도가 그 대표적 증거다.

 

이러한 MBC의 상황을 문제적으로 느낀 이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했다. 성찰했다. 헤게모니를 쥔 경영진이 바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말했다. 썼다. 일상적으로 그들과 교섭했고, 사내 게시판에 문제제기를 하는 글을 썼다. 성명서를 썼다. 피켓팅을 했다. 구호를 외쳤다.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말과 글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오히려 반격을 불렀다. 말하고 쓰는 이들이 보복당했다. 징계를 받고 뉴스의 외부로 배제됐다. 말하고 쓰지 않았던 자들은 이 광경을 보며 분노했지만 동시에 위축됐다. 말과 글이 힘이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행동에 나설 수도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이 패배한 파업의 후폭풍이었기 때문이었다. 말과 글뿐 아니라, 실천의 힘까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더 이상 성찰할 수 없었다.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의 언어로 인식하는 작업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성찰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한들 그 깨달음이 가진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획도 할 수 없었다. 말과 글은 물론 실천의 힘까지 상실한 상태에서 어떤 기획을 한들 그 기획이 우리의 문제 상황을 변화시킬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찰도 기획도 할 수 없는 상태, 이것은 파산을 의미했다. 좋은 기자, 좋은 뉴스를 향해 흘러가던 나와 우리의 꿈이 파산했음을 의미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더 좋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려가던 나와 우리의 서사가 파산했음을 의미했다.

 

나와 우리는 지난 몇 년 사이 너무도 극과 극의 주체를 경험해야 했다. 적어도 파업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MBC 내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느꼈다. 사주가 없는 공영방송, 그러면서도 정부가 직접 지분을 갖지 않은 공영방송이라는 지배구조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했다. 그것이 MBC였다. 어느 기업이든 사장은 나름의 지배적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사장을 월급사장이라고 불렀다. 사장이 가진 존재감을 체감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이후 모든 것이 해체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주체가 됐음을 절감해야 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주체였다. 좋은 기자가 될 수 없었고 좋은 뉴스를 할 수 없었던 차원을 넘어,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조차 분석할 수 없었다. 성찰할 수 없었다. 해봤자 소용이 없기에. 또 문제적 상황을 변혁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기획할 수 없었다. 해봤자 소용이 없기에.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전지전능한 주체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한 주체 모두를 동시에 경험했다.

 

전능한 주체였던 시절 나와 우리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근질근질한체질을 갖고 있었다. 마음 속에 그린 아이템과 기획안이 방송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선순환을 자주 목격했다. 뭔가를 해야만 했고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러나 무기력한 주체가 된 우리는 이제 뭔가를 하는 것이 불안한체질로 변화됐다. 해도 안 되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나아가 이것을 했다간 우리 모두가 끝장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불안하다. 그토록 전능하게 느꼈던 우리의 뉴스, 우리의 직업, 우리의 선배, 우리의 노조가 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를 논의하는 게 두렵다. 탄핵된 구 권력과 새롭게 등장한 신 권력, 그리고 사회 곳곳에 변화의 물결이 이는 것 같은 지금의 장면을 보면서도 뭔가 새로운 기획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

 

전능했던 주체였기에 타자의 탓을 할 수 없다. 우리가 패배한 것은 우리의 탓이다. 또 전능했던 주체였기에 우리의 구원을 타자에게 부탁할 수도 없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라는 주체는 전능한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주체다. 그렇기에 나와 우리에겐 외부가 없다. 이건 네 탓이라고 귀책사유를 돌릴만한 외부가 없다. 또 제발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눈물로 기원할 만한 대상으로서의 외부도 없다. 외부를 탓하고 외부에 구원을 위탁하는 우리 스스로를 여전히 수치스럽게 느끼는데, 외부를 탓하고 외부에 구원을 위탁하지 않고서는 이 무력한 주체를 탈피할 수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지독한 모순이 있을까?

 

엄기호(2016)의 관찰을 빌리면 외부가 없는 주체에게 가능한 것은 숨는 것뿐이다. 그의 표현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알처럼 웅크려 들거나 누에고치로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숨어서 바깥을 내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우리는 숨어 있었다. 각자에게 허용된 공간에 최대한 숨은 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최대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애써 스스로의 감정을 탈각화했다. 때로는 그냥 회사일 뿐인 MBC에 그동안 너무 내 인생을 쏟아부었다며 이젠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자 다짐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이질적 주체는 차단하고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소수와의 밀도를 끌어올렸다. 그런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삶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극과 극의 모순된 주체를 오간 우리가 지난 몇 년의 시대를 버텨낸 방법이었다.

 

다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9년 전 내심 전능한 주체로 보수정권의 시대를 직면했던 나와 우리는 이제 고갈되고 메마른 무기력한 주체로 새로운 정권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시대를 열기 위해 한국사회는 초유의 국정 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이라는 누구도 예상 못한 길을 헤쳐나와야 했다. 어떤 힘이 시대를 밀고 온 것인가.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상상력인가? 그 상상을 구체화하는 기획력인가? 아닌 것 같다. 김홍중(2016)의 개념을 빌면 나는 이 시대를 밀고 온 힘은 파상력(破像力)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파상이란 기왕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들이 충격적으로 와해되는 체험이다. 바로 나의 체험이었다. 좋은 기자, 좋은 뉴스에 대해 갖고 있던 기왕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가 산산조각난 체험을 했다. 또한 이것은 바로 한국사회의 체험이었다. 세월호 참사,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가깝게는 구의역 김군과 최순실게이트에 이르기까지, 국가공동체와 민주주의, 안전, 한 인간의 존엄 등이 파상된 체험을 우리는 일상화해왔고 그 파상된 조각, 깨진 꿈을 끌어안은 채 버텨왔다.

 

파상력이란 그러한 버팀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김홍중의 말대로 이런 파상의 시대에서 우리는 각자의 기획을 실천하는 행위자라기보다는 깨져나가는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겪는 자에 가깝다. 이때 행위가 갖는 힘이 있듯이, 겪는 것이 갖는 힘 또한 있다. 그 힘은 깨진 꿈과 아직 오지 않은 꿈 사이에 펼쳐진 이 지독한 가위눌림과 환멸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겪어내는 힘,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의 근거를 그 파편들 속에서 찾아내려는 자세다(김홍중, 2016). 나는 이러한 파상의 시대의 저항이라는 것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정치적이고 혁명적 행동이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제시된 정체성과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박명진, 1991)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해왔던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어있었지만, 무기력했지만, 그것은 말과 글이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강제하는 정체성과 통제를 체화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 끝에 찾아낸 실천 전략이기도 했다.

 

나는 그러한 버팀이 가진 힘을 긍정하기로 했다. 기획과 행위만큼이나, 버팀과 겪는 것이 가진 힘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시대 저마다 파상의 조각을 끌어안고 버텨온 내 자신과 동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스스로가 전능한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가 겪은 모순된 주체, 전능함과 무기력함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새로운 우리의 주체를 찾아야 하고 그 과정은 상상의 결과인 필연이 아닌 파상의 결과인 우연 속에서 어느 순간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버팀겪음의 힘이 황폐화된 내 삶의 무대, 공영방송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며 새로운 길을 뚫고 예기치 않은 희망이 생성되는 장면을 곧 목격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참고한 글>

김홍중. 2016. 사회학적 파상력. 2016. 문학동네.

박명진. 1991. 즐거움(Pleasure), 저항, 이데올로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社會科學政策硏究> Vol.13 No.2, 67-95p.

엄기호. 2016.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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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5

전문등반을 하는 여성들의 주체성

 

김세옥 _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 한국여성산악회

 

 

 

산에서 발견한 여성의 역사-산에도 여자가 있었다

등반은 무상(無償)의 행위이다. 올랐다는 사실외에는 어떤 보상도 없다. 물리적인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니까 반자본주의 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산에 간다. 등산에 입문한 후 나의 의문은 왜 목숨걸고 등반할까?’였다. 하지만 인류는 한계에 도전하는 위대한 본성으로 죽을 수도 있는 신대륙, 남극, 북극, 히말라야에 도전하며 인간의 대서사를 만들어왔다.

유산(遊山)을 목적으로 산에 가던 인류는 200여 년 전쯤부터 더 높이 오르겠다는 욕망으로 근대등반을 시작했다. 적지 않게 남아있는 조선 선비들의 유산기에서 알수 있듯 이전의 산은 도전의 장이라기보다 바이오필리아 적 즐거움을 주는 놀이터였다.

유럽에서도 눈과 얼음으로 싸여있는 높은 산들은 인간 접근을 불허하며 악마가 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한계와 위험에 도전해 온 인류는 1786년 알프스 최고 봉우리 몽블랑4810m에 오른다. 그것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8천미터 봉우리들에도 앞다투어 올랐다. 초기 고산등정은 경쟁적으로 대규모 물량을 쏟아 붓는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영국이 시기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에 맞춘 일에서 보듯 고산정복은 국력과시의 수단이었다.

 

오늘날 등산은 대중화되어 있지만 초기 등반은 많은 물자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만이 가능했던 귀족등반이었다. 일제시대 백령회로 비롯된 한국의 근대 등반도 친일혐의를 벗을 수가 없으며 해방 후에도 대학산악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런 등반환경은 젠더적으로 불평등한 여성들의 접근을 매우 어렵게 했고 등반욕망을 가진 여성들을 좌초하게 만들었다.

필자가 산과 등반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여 놀랍고 매력적인 등반역사에 빠져 있을 때 인간의 다른 역사가 그렇듯 여성의 역사는 보이지 않았다. 치열한 산의 역사속에 눈에 띄지 않던 여성의 희미한 발자국을 발견한 놀라움이 공부의 시작이었다. 척박한 등반환경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실천한 여성들의 역사와 궤적을 찾아낸 일은 여성학공부와 등반을 동시에 시작한 필자에게는 필연이었다. 남성중심의 산에서 여자들도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목숨걸고 등반한 흔적은 감동이었다. 등반을 인문학적으로 연구한 사례는 드물었고 등반하는 여성을 연구한 일은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등반은 남성의 전유였고 여성의 등반은 스캔들로 불리우기까지 했다. 등반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산악회 규율은 군대같은 상명하복이고 초기 산악회는 여자를 입회조차 시키지 않았을 만큼 등반문화와 조직은 여성에게 배타적이었다. 현재도 그리 달라지지 않은 풍토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등반 욕망을 추구하며 치마를 입고 산에 갔다. 발목까지 닿은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등반하는 여성들은 전복의 상징이다. 여성억압과 섹슈얼리티 통제의 상징인 치마를 입은 채로 산을 욕망하며 등장한 여성들은 여성 금기의 현장인 '산과 등반'에 균열을 내고 자신의 욕망을 실천했다.

 

등반은 예측 불허한 자연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등반가 앞에 주어진 장애를 극복하는 운동이다. 생존이 어려운 고산이나 수천길이의 거벽 등 대부분의 등반지는 자연의 가혹함과 가변성으로 위험이 상존한다. 고도로 단련된 강한 몸과 정신으로 집중해도 위험한 등반에서 그 행위를 지속하게 하는 육체적인 행위성과 정신적 사유의 결집인 이 등반수행성을 등반가들은 '알피니즘'이라고 부른다. 물리적으로 강하고 제도적으로 유리한 남성들도 추구하기 어려운 '등반과 알피니즘'을 자신의 삶을 관통시키는 테제이자 세계관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등반가들이 존재했다. 등반에 매료된 여성들은 도제식으로 힘들게 등반을 배우며 '등반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림1] 치마입고 등반하는 초기 여성등반가

(출저: 메스너, 레인홀드,정상에서(2012) )

 

여성들의 서사-강한 등반가/인간/주체성

 

등반의 한계에 도전하고 남성 주도의 산 문화와 조직에 저항했던 여성들의 등반은 여성주체로서 수행한 등반이라는 역사성을 남겼다. 가부장적 조직과 문화를 수용할 수 없었거나 귀속이 불가능했던 독립적인 여성등반가들은 남성적 규범과 질서와 충돌하고 조정하는 한편 끊임없이 그 경계를 교란하고 전복을 시도하며 자신들만의 등반성을 구축했다. 삶의 경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산과 등반을 배치한 여성등반가들은 자신이 경험한 성차와 젠더적 경계의 모순을 갈등/전복/극복하게 된다.

70년대 여성 불모지의 산악지형에서 젠더/시대적 한계를 이겨내고 한국최초/여성/동계히말라야등정이라는 역사를 쓰며 안나푸르나8091m를 동계 등정한 김영자, 남성들의 세상과 불화를 마다하지 않으며 자주적인 등반을 추구하고 삶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최초의 여성/단독/동계/태백산맥종주라는 뛰어난 등반사적 자취를 남기고 "낮은 산"이라는 새로운 등반의 장을 제시한 남난희, 여성등반대라 할지라도 남성등반가들 지원하에 조직되었던 당시 풍토에서 자발작인 여성등반대를 조직하여 히말라야가 아닌 알래스카 맥킨리6194m를 자력으로 등반하여 여성/최초/자력/비아열대 등반이라는 기록을 남긴 <‘88년 여성 맥킨리등반대>, 뛰어난 체력과 등반력을 지니고 남성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위력으로 토왕폭 빙벽등반을 로프없이 단독등반한 전위적인 등반가 김점숙,

 

이들의 성취는 여성등반가도 한계 극복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전위적이고 첨예한 등반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생물학적 여성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여성등반가의 물리적 힘과 등반기술력을 증명한 전설과 신화였다. 그 신화는 후배 여성등반가들에게 미래와 변화의 꿈에 대한 명징한 메시지가 되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상처와 영광을 딛고 올라서 지금여기에서 나아감넘어섬을 도모하고 실현한다.

여성등반가들은 신화의 이면에 있던 배제의 상처와 젠더적 그늘을 걷어내고 스스로 주체가 되는 등반을 시작한다. 여성과 남성의 다른 문화, 관계, 소통, 몸 등의 차이가 여성등반가들에게 좌절과 부담으로 작동하여 남성들과 함께하는 등반을 거부하게 되고 여성들만의 등반과 연대를 모색하여 여성등반대를 조직한다. 강한 힘과 높은 등반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산 거벽 등반은 성격상 남성/여성은 리더/보조, 선등/후등라는 성별화된 이분법이 강하게 재생산되는 문화였다. 그러나 스스로 조직한 여성들만의 알파인 거벽원정대는 성차별적 질서와 위계를 흔들며 자신들만의 꿈을 실현한다. 2006년 조직된 아줌마등반대는 등반의 발원지 유럽을 거쳐 2012년 남미 파타고니아 피츠로이3405m를 아시아 여성 최초로 등반해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2013년 다시 파키스탄 트랑고 타워6286m를 올라 여성등반대의 위력을 과시한다. 이제 고산거벽도 여성들만으로 등반이 가능함을 세상에 보여준 것이다.

 

산에서 좋아하는 것(욕망)을 하며(실현) 잘 나가는 그녀들

 

한 사람의 클라이머cilimber가 된다는 것은 일상적인 몸의 단련으로 힘과 등반력을 높여서 산이라는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힘과 기술력을 체화한 힘센 몸을 지녔다는 의미가 된다. 힘이 생긴다는 것은 대상을 제압할 수 있는 강한 '몸적 파워'와 역경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이 동시에 견지되어야 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여성등반가들이 몸의 단련과 강화인식적 여성주체가 확장되는 경험을 말한다. 물리적 힘이 쎄어지는 몸적 임파워링empowering은 개별 여성등반가의 등반현실과 삶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등반'이 인류에게 주는 위로와 쾌락을 여성들도 즐기며 산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해왔다. 전문등반을 하는 여성들이 지니는 페미니즘적 의의는 성차와 젠더적 난관에도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가족/모성/결혼/로맨스 등의 이데올로기로 여성의 자발적 공모를 획득한 가부장제와 갈등하면서도 등반가로서의 욕망실현을 위하여 과감히 '비혼(非婚)과 비출산' 전략으로 젠더 역할을 조정했으며, '자발적 실업'과 자기자원의 개발로 등반 욕망과 생존을 구획하였다. 여성등반가로서 지닌 주체성과 행위성이 가부장적 시스템을 교란시킬 때 마다 억압과 차별과 소외가 노정되었지만 자신들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전면화하며 가족/연인/공동체 등 자신의 주변은 물론 시대와의 불화도 감행했다. 산과 등반에서 여전히 여성등반가의 욕망은 순조롭게 발현되고 있지 않지만 또 그런 만큼 여성주의 정치학적으로 의미를 지니게 되는 양가성을 가진다.

 

개별 여성이 억압과 장애 없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그것이 개인적 복지와 쾌락으로 구현되는 것이 여성주의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행위주체로서 자기욕망을 수행하고, 실존에서 배타적인 선택과 협상이 가능한 주체로 변화하는 것이 여성주의적 진화이다. 등반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높은 의지로 몸을 단련하고 고산/거벽을 등반하는 특수하고 힘든 과정을 수행하며, 그것을 통해 주체성을 획득하고 젠더 위치를 재배치하는 협상력을 보이는 여성등반가들은 젠더적 경계에서 다소 분열을 겪고 있긴 하지만 여성주의 실천의 주체이다. 자신의 힘과 주체성으로 등반욕망을 실천하고 있는 여성등반가들은 산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전문등반이라는 독특한 시간과 경험을 구성하며, '여성주의 정치성'을 구현하고 있다. 산이라는 현장에서 여성등반가들이 실현하고 있는 알피니즘은 여성주체성의 다른 이름이다.

 

 


주1) biophilia 인류는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친자연적인 유전인자 가지고 있다는 미국 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이론이다.

주2) 등반가들은 정복이라는 제국주의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예측할 수 없는 눈사태나 수천의 낭떠러지로 추락하여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인간의 존재는 대자연 앞에 절대 약하고 초라하다는 점을 절감하기 때문이고 신이 허락해야 잠시 다녀올 수 있다는 겸손함이 저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주3) 1808년 유럽 최고봉 몽블랑에 여성 최초로 오른 18세의 '마리 파라디스'를 남자들은 부추김과 대중적 명성을 얻기 위한 등반의 스캔들이라고 야유했다. 여성 최초 등정을 인정해주기보다 여성의 도전을 가십으로 취급하려는 남성우월주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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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19:46

 

 

 

몇몇 사상가들이 삶의 의미라는 문제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데에는 매우 일반적인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의미’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라는 점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질감이나 무게, 색깔 같은 사물들 자체의 특징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사물들에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이다. 양배추나 심박동 측정기 자체는 의미가 없다. 그것들은 우리의 대화에서 거론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인생의 의미』(2016)

 

 

 

 

'잃은 것을 찾는 삶'

 천주희

(문화연구자 겸 작가)

 

지난 10년 동안 대학()생으로 지불한 등록금은 약 5000만 원. 그중 2200만 원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스무 살에 독립한 후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학생 채무자이자 부채 연구자로 한국의 청년부채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가>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책노오력의 배신(2016)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2016)를 내고, <57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현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문화사회연구소운영위원으로 있다. 예술인 집단 문화창작공간 다락의 대표이자, 희곡 <눈물요정 시리즈: 지하철편>, <공터(共無地)>, <반딧불의 잔존>을 쓰고, 상연했다.

 

 

 

 

'나보다 옆에있는사람의 삶을 가꿀 수 있는 삶’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소속의 공익변호사)

 

 모든 인간이 가진 천부적인 존엄성과 내재적인 인권이 보장되는 정의롭고 그래서 평화로운 날이 오기를 꿈꿉니다.”

공익법센터 <어필>은 소송과 신청, 연구와 입법운동, 교육과 홍보, 국내외 단체와의 연대, 국제인권메커니즘 활용 등을 통해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다국적 기업의 인권 침해를 감시한다.

이일 변호사는 <어필>에서 난민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이 들어 앞이 잘 안 보여 책도 볼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을 때, 적막하고 메마른 곳을 음악이란 신비로 메꾸며 기타치고 노래하며 살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어필> 홈페이지 www.apil.or.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apilkorea

 

 

 

 

 '순간마다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

 

김종현

독립서점 <퇴근길 책 한잔> 대표

   

술과 책이 있는 독립책방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잠시 들려 맥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퇴근길 책 한잔>책맥(+맥주)’,‘ 북맥(book+맥주)’을 알린 곳으로 유명하다.

스스로를자발적 거지라고 부르며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게 대표의 원칙이며, 책방에서 영화 상영과 공연 등도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독서토론 모임인혁명적 책 읽기’,‘ 자발적거지모임등을 열기도 한다.

 

<퇴근길 책 한잔> 서울 마포구 염리동 9-60번지 1

영업시간 평일 2pm-10pm, 2pm-7pm (매주 일&월 휴무)

booknpub@gmail.com / 카카오톡 id : 퇴근길 책한잔

 

 

 

 

  ‘“이렇게살 수도 있겠네!”로도충분한 삶

윤이나

(작가, 기자, 평론가, 칼럼니스트, 편집장이자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사장)

 

 미쓰 윤혹은윤 알바20대를 버티고 보니 윤 작가, 윤 기자, 윤 평론가, 윤 칼럼니스트, 심지어는 윤 편집장으로도 불리는 오늘을 살고 있다. 보통은 무엇인가를 쓰는데, 그중 일부가 책미쓰윤의 알바일지로 묶여나왔다. ‘페미니즘 굿즈를 만들면서 여성 단체를 후원하는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치마사장으로 불릴 때도 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의 공저자로 페미니즘과 대중문화에 대해 썼다. 소녀는 아니지만 대체로 설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많이 말하고, 혼자 있을 때 생각한다. 어딘가에 속하지도 않고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 사람들이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는 존재로 사는 것도 그럭저럭 멋진 일이라고. 그래서 앞으로도 그냥 윤이나.

 

   

 

 왜곡되지않고, 온전한로 받아들여지는 삶

이명선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기자이자 칼럼니스트)

 

 2011, 방송이 출범하기도 전에 <채널A>공채 1기자로 입사했다. ‘공채 1기 개국 공신’. 한때 이 말은 자부심이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보다 회사 소개를 먼저할 정도로 애정을 다했다. “곧 개국하니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그러나 그곳에서 일한 3년 동안, 남은 것은 대리 기자였다는 부끄러움뿐이었다. 그 후 지난 2월부터,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 자신이 겪은 종편의 민낯을 알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 스토리펀딩에 올라오는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라는 제목의 연재물이 그것이다. “다시는 기자 안 하겠다고 다짐했건만 마음은 늘 언론 언저리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못다 이룬 참 기자의 꿈을 이루려 고군분투 하고 있다. “셜록은 심층-탐사 보도에만 집중합니다. ‘기자-변호사-전직형사가 함께 진실을 파헤치고, 기록하고, 해결합니다.”

 

스토리 펀딩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

storyfunding.daum.net/project/13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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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19:24

세상은 당신의 ‘쓸모’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천주희 _『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저자

 

나는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연극을 한다. 언제부터 나의 경제활동과 창작활동이 분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의 노동이 경제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할 때부터, 어쩌면 나는 빈곤의 숙명을 애써 덤덤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석사과정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지식을 생산하든지 그것은 남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삶의 과제는 늘 생존 그 언저리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매 학기 값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졸업할 때쯤 덤덤함은 막막함으로 이어졌다. 여느 취업준비생처럼 여기저기 원서를 내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책을 썼다. 연구, 글쓰기, 공연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거나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그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다만, ‘원고료가 조금 일찍 들어왔으면..’,‘ 연구비가 조금 더 많았으면..’, 나의 글쓰기 노동이 조금 더 비싼 값으로 교환되지 못하는 것에 서운함을 느끼고는 했다.

   

의미 있음의 무의미함

 

어느 날, 서강대학신문 편집장이 연락을 해왔다. 이번 호에서 무의미한 것들의의미 있음에 대해 다루고 싶은데 원고를 써줄 수 있겠냐는 청탁이었다. 사회가 만들어 낸 의미로부터 빗겨 서서 다른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편집장은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의미, 그 가능성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루의 말미를 얻어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의미 있음과 무의미(의미 없음). 경제적 활동과 비경제적 활동. 둘 사이를 연결하는 쓸모와 쓸모없음.’나는 이런 단상을 끼적이며 지식/노동자의 쓸모에 대한 글을 써보겠노라고 했다. 오늘도 쓸모없는지식을 생산하느라 책상 앞에서 끙끙거리며 밤을 지새우는 우리의 이야기를 말이다.

의미 있음과 무의미함은 말장난이다. 의미란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의미 있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연구를 하는 나로서는 늘 의미 있는 것, 주류적인 것의 계보를 의심하고 질문하는 삶의 태도가 몸에 배어있다. 의미와 무의미함 사이에서 느끼는 불편함. 나는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것이 의미 있는 것인가, 의미 없는 것인가에서누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가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드는가.

예술가들은 때로의미 있음을 전복하거나 전유한다. 날이 풀려 친구들과 복정마을을 산책하던 중 나는 <무의미의 축제>라는 작품을 보았다. 길가 쇼윈도에 전시된 작품이었다. 작가는 점선들을 연결해서 그림을 그렸다. 작품을 바라보며 연신..”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이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잡힐 듯 말 듯 한 무/의미의 경계에서 점선을 따라가 보았다. 방안에 앉아 몇 날 며칠 점선 잇기를 하고 있을 작가가 떠올랐다. 만약 유명한 작가가 같은 행위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이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의미를 필히 담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독해 불가능성은 오롯이 관객 몫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혹은 이해했다고 믿는 판단으로 무의미성을 재단하기도 한다. 의미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데 행위자의 자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타인이 생각하는 의미, 이미 사회적으로 의미 있다고 가치가 부여된 것이 의미 있는 것이라 믿는다. 더욱이 그것이 권위나 권력을 지녔다면 의심의 여지가 들어 설 자리는 사라진다.

모든 행위에는 다 의미가 있다거나, 다 무의미하다는 것도 말장난이다. 그러니 이 말장난 같은 의미 있음과 의미 없음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행위에는 다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어떤 행위에 대해 의미부여를 했다면, 그리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긴다면 그것 자체가 의미이다.

   

쓸모없음의 쓸모없음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몸짓은 결국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인한다. 늘 목적어의 자리는 비워둔 채로, 우리는 마냥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대학도, 공부도, 논문도 무얼 위해 시작했고, 왜 하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늘 목적을 지닌 채 살지는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당장 눈앞에 놓인 삶의 과제들을 하나하나 수행하며 살다보니, 그렇게 살아져버리는 기이한 경험을 할뿐이다. 문제는 이 기이한 경험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기이한 경험은 생존, 경제, 독립, 자유, 지식, 생산 등과 같은 삶의 토대를 뒤흔들 때도 많다.

정말 대학에 가고 싶어서 진학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떠밀리듯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 부모와 선생님은훌륭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학만 나오면 밥벌이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이제 대학 졸업장만으로 밥 벌어 먹는 시대는 끝났다. 실업률은 날이 갈수록 치솟고, 웬만한 스펙으로는 경쟁이 안될 만큼기본스펙 자체 기준이 높아졌다. 한편, 하고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공부에 흥미를 느껴 오늘도 책의 안팎을 넘나들며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학이라는 공간은 밥벌이를 책임져주지 않으며, 지식활동에서 쓸모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활동이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노동중심사회에서 그 행위가 비노동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소 지식노동의 쓸모없음을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지식활동만 이럴까. 예술, 가사, 농사 등 이 사회는 비노동, 비경제적인 것을있으면 더 풍요롭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이라고 여긴다. 쓸모없는 일을 할 사람은 넘쳐나고, 언제든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누구나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 쓸모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활동에 유익한 존재로서 기능하는가, 못하는가에 따라 구분된다. 즉 그 활동이 돈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쓸모의 기준이 정해진다. 그런데 지식생산과 같은 일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필요하다. 10시간을 투여해야 겨우 글 한편이 생산된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숱한 시간을 책과 씨름하며 보낸 시간을 상상해보라. 고로 공부라는 행위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인 셈이다.

우리는 지식의 쓸모와 필요를 강조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쓸모없음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1년에 천여 명의 석사, 박사가 배출된다. 이미 배출된 학위자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말이다. 심지어 공공연구소마저 석사를위촉 연구원으로 고용해서 1개월 ~ 6개월 쓰고 버린다. 이미 노동시장에 석사 출신 대기자는 넘쳐나기 때문이다.

 

 

“‘현대화된 가난이 주요하게 가난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때는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알아차릴 수 없으며 그 본성 또한 파악하기 어렵다. 일상 대화에서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발전이나 현대화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면 그때까지만 해도 시장 경제에서 배제되어도 생존할 수 있던 이들은 구매 시스템으로 끌려 들어가 물건을 사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게 체계적으로 강요를 당한다. 이제부터 그들은 시장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가져다 살 수밖에 없게 된다. 학교라는 곳에 가본 적 없던 멕시코 오악사카주 인디언이 지금은 졸업장을 따기위해 학교에 끌려간다. 이들에게 졸업장이란 자신들이 도시인보다 얼마나 열등한지를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증서이다. 그나마 이 종이 한 장이라도 없으면 도시에 나가 빌딩 청소부 일도 할 수 없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 ‘필요가 현대화될 때마다 가난에는 새로운 차별이 하나씩 더 붙는다.”

-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중에서

 

 

우리의 지식생산 행위가 무의미해진 이유는 소비사회에서 쉽게 버려지는 상품과 비슷하다. 이반 일리치가 말하듯이, 우리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시장경제에서 주장할 때마다 가난의새로운 차별을 얻게 된다. 그것은 대학 졸업장이 어느덧 노동시장에서 필수적인 입장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상품의 범람. 그 안에서 어떤 상품의 쓸모를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사회. 이 속에서 대학은 학생을 소비자로 대하고, 대학교육은 상품이 되어버렸다. 하물며 지식생산물은? 상품은 교환하면 화폐 수익이라도 얻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 지식상품은 생산할수록 화폐로 교환할 수 없으며 오히려 돈을 지불하고 지식상품에 등록을 해야 한다. 지식을 생산하고,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이유는 더 이상 사회가 지식인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당신이 생산한 지식상품만 갈취할 뿐이다.

그러니 나의 쓸모를 찾기 위해 애써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없다. “나는 쓸모 있는 존재인가, 아닌가라는 질문 대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그 안에서 삶의 동력을 찾으면 된다.‘ 쓸모’,‘ 의미’,‘ 필요에 묶이는 순간, 리의 삶은 버려지거나 배제되는 삶보다 더 위태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린다.

   

좌표를 잃어버린 그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

 

갓 논문자격시험을 보았을 때, 학과 사무실에 서류를 제출하고 일주일 동안 쉬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논문을 쓰기 전에 여행도 좀 다녀오고 긴장도 풀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쉬는 날이 주어지니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여행을 가기에 주머니는 너무 가벼웠다. 학교 외에는 딱히 가야 할 곳이 없었기에 목적지 없는 외출이 두려웠다. 그때 우연히 연극 <사천의 선인>(베르톨트 브레이트 )을 보았다. 휴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은 그렇게 끝났다.

그해 내 나이 스물아홉, 나는 연극을 시작했다. 이후로 1년에 한 편씩 극을 쓰고 공연을 한다. 벌써 3작품을 올렸다. 작년에는 무용, 음악, 연극, 미술계 예술가들과 함께 <반딧불의 잔존>(2016)이라는 실험극도 상연했다. 첫 연출작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공연은 잘 마쳤다. 집과 학교만 알았던 내가 연구실 바깥에서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고, 사람을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이라 여겼던 지점에서, 새로움은 움텄다.

몇 년째 내 책상 위에는 윤동주의 <>이라는 시가 붙어있었다. 무얼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계속 길을 걷는 화자가 내 처지와 꼭 닮았다고 여겼다. 여전히 나는 그 시에서 위로를 받고, 또 다음날이면 무얼 잃어버렸는지 찾는다. 졸업 후에는 소속이 사라졌다. 독립연구자가 생존하는 것 자체가 기이한 한국사회에서 독립연구자로 산다는 것은 녹록치 않았다. 석사학위만으로 연구비를 지원받을 곳도 없고, 논문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글을 쓸 것이다. 비록 쓸모없는 글이 되어 잊힐지라도, 나의 삶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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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19:10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의 의미

 

 

이일 _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월요일 아침. 기상한다. 어젯밤 재판기일이 임박하여 밀린 서면을 쓰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지만 오늘의 일정은 소화해야한다. 씻고 나와 간단히 요기한 후 첫째 딸을 유치원 버스에 안전하게 태워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인사하여 보낸다. 시간을 체크하고 시내버스에 탄다. 다행히 종점 부근에서 출발해서 보통은 의자를 찾아 앉을 수 있다.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1시간여의 출근시간 동안 문서작업들을 추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와이브로 에그를 켜서 노트북이 와이파이 신호를 잡을 수 있게 한 후 지난밤 국내외에서 온 메일들 중 시급히 답해야 할 것을 답한다. 영어로 답하는 것에는 아직도 시간이 좀 필요하므로 급히 답할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한편 카톡과 왓츠앱 메신저 - 주로 외국인들이 사용한다 - 를 통해 연락이 온 구글 번역기를 통해 번역된 한국어, 영어 메시지, 아랍어 메시지도 함께 확인한다. 현재의 제도상 해결방안은 별로 없는데도 도움이 필요한 난민들은 여전히 많다. 우선 일들이 너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게 한 후 가능한 한 가지 정도의 문서작업을 택한 후 작업을 완료한다. 주로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A4 용지 1-2장 정도의 출입국관리 사무소에 보내는 의견서나 공문과 같은 것이다. 난민을 구금하지 말라고, 체류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출국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주로 그런 내용들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외국인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 가면 한없이 작아지고, 그 앞에서 공무원들의 권력은 너무나 무서워진다. 공무원들은 그들을 구금하고, 쫓아낸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미리 연락을 받고 온 통역선생님과 함께 새로운 난민 분을 상담한다. 기존의 여러 처분서나 서류들을 검토하고, 억울한 사정과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야기를 자세히 듣는다. ‘지금 어느 단계죠?’ 다행이다. 이의신청단계라서 아직 난민위원회에서 승부를 걸어볼 여지가 있다. 지금 난민사건에 대한 제도가 많이 꼬여서 1차 심사부터 법원 단계까지 문제가 많고, 특히 실제로 돌아갈 경우 박해가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를 확인받고 난민으로 보호받는 것이 소송단계에서는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면 어떻게든 소송 전에 승부를 보아야 한다. 난민 분으로부터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받지만 그래도 마음이무겁다. 이분에게는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나는 과연 잘 도울 수 있을까. 그래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웃는 얼굴로 또 보자고 인사한다. 내가 저 난민분의 지금 남은유일한 기댈 곳이므로 더욱 쾌활하게.

세월호의 상흔이 아직도 가실 수 없는 한국에서 조심스러운 비유이지만 한국에서 난민들을 옹호하는 활동가, 변호사들의 삶은 사실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승객들에게 구명조끼와 튜브를 던져서 뭍에까지 나오도록하는 것과 비슷하다. 배가 침몰하지 못하도록, 전쟁이 멈추도록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안전하게 구조되는 것을 바라는 것도 불가능하다. 해안가까지 행운을 따라 겨우 구조된 난민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다음의 삶은 막막하다. 인간의 삶은 난민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난민 이전에 인간이 있고, 꿈이 있으며, 미래가 있다. 그러나 여러 물리적, 법리적 어려움, 사회적 편견을 뚫고 활동가들은 결국 실패가 더 많은 구조를, 그 만큼 가슴 아픈 구조를 감행한다. 더없이 기쁘고 행복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가슴 아프고, 눈물을 보며, 고통스러운 때도 많다.

나는 이제 변호사로서 8년 차,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만 5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보통 사법연수원 수료 후 장교로서 근무하는 군법무관 경력도 합치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공익법센터 어필은 5가지 취약한 외국인들 즉, 난민,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 무국적자, 해외한국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조력하는 비영리 공익변호사 단체다. 5명의 변호사와 주로 대학생 인턴들이 함께 일한다. 다행히도 지금은 다양한 영역에서 공익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여러 단체들이 많이 생겨나서 그 인식이 조금은 바뀌고 있지만, 어필이 처음 생겨났을 때에는 단체의 설립 자체가 모험이었던 것으로 안다. 변호사가 -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정의, 양심과는 거리가 먼 직업과 같아 보이는 직종 중 하나인 변호사가 - 후원을 받으면서 비영리 법인을 세워 전적으로 공익활동,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다니.

이미 결혼을 하고, 어엿한 성인으로서 내 삶의 미래를 설계하고 결정할 수 있었던 나로서도 처음에 어필에서 공익변호사로서 삶을 시작하겠다고 하였을 때 부모님께 말씀을 아예 안 드릴 수는 없었는데, 부모님께서도 많이 걱정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판사도 할 수 있는데, 큰 로펌에 가서 돈도 벌수 있을 텐데, 네 꿈이 그렇다면 지지해줄 수도 있지만 몇 년만 법원에서 일하다가오면 안 되겠니?’부모님의 그 마음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조차도, 아무런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는 삶을 기꺼이 선택하는 것에 적잖은 고민이 있었다. ‘나 혼자라면 괜찮은데 가족들까지 잘 책임질 수 있을까’, ‘몇 년 동안은 괜찮지만, 내가 이 일을 평생 동안 변함없는 열정으로 할 수는 있는 것일까’. 결국 30대 초반에 나는 모험을 택하기로 마음먹어 어필에서 공익변호사로 삶을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먼 미래가 어떨지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앞에 놓인 과제들, 그리고 난민들 - 인간들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다. 현재까지는 단 한차례의 후회도 없다.

5년 전 선택의 기로에서 내렸던 나의 결심의 근거는 이렇다. 단 한번 살게 될 인생에서, 마지막에 후회할 일들로 시간을 채우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고 약간의 여가시간의 의미 있는 활동들로 부족함을 채우기 보다는, 매일을 채워갈 직업이 의미있는 활동들이 되면 더욱 좋겠다. 비즈니스 변호사로서 큰 기업을 변호하는 것은 왠지 나에게 맞지 않고, 판사로서의 삶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편을 들어주는 적극적 활동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당시에 내가 찾을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전적으로 소수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안정된 미래를 포기한 것에 대한 걱정, 경제적 여건에 대한 걱정들로 염려를 해주었고, 실제로 선택하기 이전에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당시의 염려는 지금 보면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고 확신한다. 걸음을 내딛기 전까지는 엄청난 것인 것 같았지만 막상 내딛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허상들이었다.

한국의 난민단체들의 연대체에서 대표로 일하며 정부와 줄다리기를 하기도 하고, 공항난민신청과 관련된 소송들에서 선례 없는 판시들을 받아내 제도를 바꾸기도 하고, 무엇보다 실패하고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 많은 난민들을 풀려나게 하고, 보호받게 하고 쫓겨내지 않게 도울 수 있었다. 더 크게는 서로 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한국사회의 구성원들로 어울러져 자신의 행복과 평화를 찾아갈 것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내가 신기루를 걷어내는 모험 없이 이런 삶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 나는 쉽게 결론을 내리거나,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경지에 아직 전혀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나의 삶, 함께 일하는 공익법센터 어필 동료들의 삶, 그리고 비슷한 선택들로 한국사회 곳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는 삶을 선택한 선후배 공익변호사의 삶들을 볼 때 분명하게 확신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인간의 삶의 의미는 나를 가꾸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가꿀 수 있도록 도울 때 분명하게 발견되고, 훨씬 더 풍요로워 진다는 것이다. 이웃을 잃고 개인에게 집중하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고도의 속임수다. ‘자신을 다듬고, 더많은 스펙을 가꿔서 기업이 찾을 멋진 상품이 되게 하라라는 메시지는 모두가 도달할 수도 없고,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거짓이다. 나의 행복은 붕괴된 사회 속 꾸며진 나를 거울 속에서 보는 나르시시즘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둘째, 거짓된 메시지의 거짓성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믿고 선택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더 많은 노력을 하고, 더 많은 스펙을 쌓고, 높은 연봉의 직장을 찾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전적으로 허구인데, 자본주의 사회가 조직하고, 인간의 인생에 대한 불안, 그리고 기댈 공동체와 사회적 가치가 붕괴되어 모든 책임을 오롯이 자신이 져야만 하는 상황이 함께 만들어 낸 허구다. 인간의 삶의 의미는 결코 그와 같은 곳에서 발견되지 않는데, 그 사실의 허구성은 균열을 내듯 도전하여 메시지를 비웃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이 주는 도전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세상 속 부정의에 분명한 균열을 내고 있고 그 균열이 만들어내는 작지만 분명한 정의와 평화를 목격하고 있다. 누구나 그와 같은 경험을 각자의 인생이 조직되어 온 맥락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3년간 한국사회는 줄기차게 노래를 불러왔고 빛이 가져다준 승리를 한국사회 전체가 집단적으로 목격해오고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이것은 개인의 삶에서나 사회 전체로서나 낭만적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다. 단지 빛에 대한 신뢰를 선택한 사람들만이 더욱 분명히 그 진리성을 깨닫게 되는 사실 말이다. 빛에 대해서 눈을 뜨지 않으면 주변에 어둠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공익법센터 어필은 난민,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 무국적자, 해외한국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며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는 세상에 대한 꿈을 꾸는 비영리 공익 변호사 단체입니다.

- 홈페이지 : www.apil.or.kr

- 페이스북 : www.facebook.com/apilkorea

- 후원계좌 : 국민은행 006001-04-263886 (공익법센터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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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18:59

물음을 참는 우리에게

 

 

 

김종현 _ 독립서점 <퇴근길 책 한잔> 대표

 

어려서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스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거리의 나무는 왜 저렇게 서 있고 사람들은 왜 저렇게 인사를 나누며 사람들이 숱하게 내뱉는 말들은 왜 하나같이 진실이 아닌 것 같은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책방을 열면서도 세상의 스스러움을 거부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책방에서 모든 것은 주인인 나의 취향대로 흘러간다. 들여놓는 책 종류부터 인테리어와 분위기, 영업시간, 손님을 대하는 태도까지 하나같이 주인의 마음대로다. 따지고 보면 손님이라고 해서 왕이 아니라 그저 값을 치르고 물건을 교환해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책방에는 진상 강퇴라고 크게 붙여 놓고 운영을 하며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우리 책방에는 주인장인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며 스스러운 세상에 대해 함께 물음을 던진다. 간혹 내가 여행을 가거나 책방을 비우게 되면 자발적으로 손님들이 책방을 대신 맡아서 운영하기도 하고 책방에 어울릴 것 같다며 화분을 가져 오기도 한다. 자본주의라는 거대 물결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돈을 좇아 경쟁하고 시기하리라 여기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책방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우리가 가지는 모든 물음은 위험하다. 특히나 그 물음이 삶과 세상의 본질에 맞닿은 것일수록 그 위험은 배가된다. 물음이란 정해진 답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며 적극적으로 그것에 대항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물음을 참는 훈련을 받고 자란다. ‘퇴근길 책 한잔이라는 작은 독립책방을 운영하는 나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밀려오는 아득한 물음들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머리를 흔들어 털어버리며 어느새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 내 주변 사람들과 세상은 나에게 물음을 터뜨릴 시간을 주지 않았고 대신 그 자리에 그들이 정해놓은 답을 집어넣을 뿐이었다. 함께 길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흔들림 없이 걷는 주변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또 한 번 머리를 긁적이던 물음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쌓여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물음이 터져 나왔고 주체할 수 없어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로 그 때부터였다. 나는 더 이상 이전의가 아니었다.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답을 집어넣으려는 손길을 거부하는가 된 것이다.

헬조선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며 그리 특별할 것 없는 30여 년의 시간을 보낸 내가 책방을, 그것도 베스트셀러 한 권 없는 독립책방을 운영하며 자발적 거지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며 살게 된 것도 바로 이물음에서부터다. 학창시절부터 제법 성인이라고 불리던 시절까지 제시된 답을 정확히 좇아가며 관문들을 넘을 때마다 어디선가 찜찜하게 다가오는 공허감을 느꼈다. 그리고 사회의 답에 맞추어 간다는 것이 라는 사람이 가진 색과 모양을 탈색하고 깎아내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때마다 느꼈던 공허감은라는 고유함이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갈 때마다 자아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의 신호였던 것이다. 결국 사회가 나에게 주입했던 답이라는 것은 내가 아닌,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고분고분한 하수인을 만들기 위한 훈련일 뿐이었고 나는 과감히 이를 거부하기로 했다.

현대사회는 과잉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넘쳐나고 또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이 말은 너도 빨리 목표를 세워. 그리고 그것을 달성해.”라고 치환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우리는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만든다. 지금보다 더 많이 그리고 열심히 하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바빠져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목표를 가져야 할 이유가 하등 없다. 학창시절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머뭇거림 없이 친구들이 명징하고 눈으로 그려지는 꿈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가끔 놀라곤 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스무 해도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팔십의 내 모습을 막힘없이 묘사할 수가 있지? 그리고 그런 것 하나 딱히 없는 스스로가 겸연쩍어지기도 했다. 그 당시 이야기하는 꿈이라는 것이 주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 변호사, 의사, 판사, 소위자 들어가는 직업을 갖는 것, 돈 많이 벌어 자식 낳고 잘 사는 것 등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들의 꿈이라기보다 그들 부모에게 좋은 자식이 되게 해주는 꿈이었다. 결국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이라는 것은 고민도 해보지 않고 그저 부모의 입맛에 맞는 꿈을 하나씩 마음대로 골라잡아 제 꿈이라고 둘러대는 것일 뿐이었다. 그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 상황을 넘기곤 했는데 물음을 마구 집어 던지게 된 요즘에 와서는 이와 같은 꿈이 가짜임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꿈 이야기를 믿지 않게 되었다.

물론 각자 성향에 따라 자신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는 삶의 요소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신나게 춤을 출 때 즐거울 것이고, 또 누군가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힘을 얻기도 한다. 또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독서를 할 때 충만함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 보기에 그럴 듯한 꿈을 골라잡는 것보다 과연 나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가를 면밀히 그리고 깊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축구를 할 때 가장 즐거운 아이라면 축구를 평생 가까이 두고 할 수 있는 것 자체를 목표로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 가장 즐거운 일생을 살게 될 테니까. 그런데 사회에서는 이런 아이에게 박지성과 같은 축구선수가 되라고 말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가 박지성과 같은 선수를 꿈꿔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오히려 남 앞에서 박수 받고 주목 받는 것에 희열을 느끼거나, 아니면 돈 많이 버는 것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김연아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금메달이 갖고 싶은 아이들이 아니라 피겨 스케이팅 자체를 사랑하는 아이여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어야 할 것은 네 꿈이 뭐니?”가 아니라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혹은 너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니?”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이 단순한 명제를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잊고 사는가?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게다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이러한 실존적 자각을 하면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내가 50년 후에 죽는다고 하는 것과 당장 내일 죽는다고 했을 때 우리의 오늘은 어떻게 달라질까? 나는 서로 다른 이오늘이 다르지 않아야 충만한 삶이 라고 생각한다. 당장 내일 죽더라도 아쉽지 않은 오늘. 이런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보는 충만한 생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80년 혹은 100년가량의 삶을 미리 정해 놓고 그 안에 시간표를 짜듯 삶의 궤적을 채워 넣는다. 마치 미션을 설정하듯 몇 살에는 공부를 하고, 또 결혼은 몇 살이 적정하고, 노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라고 정해 놓는다. 초등학교 방학 때 만들던 원형의 시간계획표처럼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무도 모른.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은 시간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흐름 속에서의 존재를 주체적으로 행하는 것, 나는 그것을 인생 제 1의 가치로 둔다. 원대한 목표, 그마저도 남을 위한 목표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눈치 보여서, 혹은 남한테 미안해서 주저하지 않는다. 체면 차리고 자존심 세우기 위해 보고 싶은 사람 못 보고, 하고 싶은 것 못 하며 살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지금내가 살아있는 것만은 확실한 만큼 매 순간 좋은 사람들을 보고, 하고 싶은 말을 나누며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렇게 온전히 스스로 일상을 관리할 수 있는 자유, 바로 이것을 지켜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들은 많다. 자본주의라는 치졸한 시스템은 그 구조가 정해놓은 논리-이를테면 인간의 이기심-를 따르지 않고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의 인간적 존엄마저 위협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돈 없으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적정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팔며 이가 갈리는 자본주의의 치졸한 방해를 피해나간다. 우리 책방은 워낙 작아서 혼자 일을 해야 하며 결국 나는 1인분만큼의 노동을 통해 내 몸뚱이 하 나를 먹여 살린다.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만큼은 얻고 있다. 노동의 대가 이상의 돈은 분명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한 것이라고 믿기에 그 이상은 원치 않는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실존적 자각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 모두가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여 미래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금에 집중하며 살아간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는 박지성이 될 필요도 없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모두 유명 작가가 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비법을 알려주는 멘토가 아니라 내 안의 물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 맞는 친구이다. 어느 날 밥상을 앞에 두고 눈을 껌벅이며 밥그릇을 내려다보거나 신호등 앞에 서서 맞은 편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두 눈 질끈 감고, 하던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자기계발서나 토익책을 손에 들 것이 아니라 깊은 물음을 던지는 시 한 편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사회가 그렇게 주입하려고 하던 정해진 답이 아닌, 스스로가 묻고 찾아낸 답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답은 개개인 각자의 고유한 것이며, 당연히 어느 것도 오답이 아니다. 그저 각자의 답을 찾아 살아가고 그것이 서로의 고유성으로 인정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정해진 가치의 틀에 가두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를 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너른 광장에 서서 각자 가고 싶은 방향대로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물음을 참지 않아도 된다. 물어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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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18:47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윤이나 _ 책『미쓰윤의 알바일지』저자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음악상을 수상한 아티스트 이랑이 무대 위에서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이 퍼포먼스에 대해 온갖 논란이 펼쳐졌지만, 나는 그 논란들 보다는 이랑의 친구가 했다는 말이 계속 생각났다. , 명예, 재미중에 두 가지 이상을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라면 하지 말라고. 나도 그 기준에 따라 내가 하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 없다. 명예? 역시 없다. 재미는 사람들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일단 나에게는 있는 편이라고 해 두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별 다른 의미가 없는 일들을 계속 해나가도 되나?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 역시 이랑이 시상식 전에 SNS에 남긴 말을 곱씹게 되었다. “잡지 인터뷰나 촬영도 겉으로는 멋들어져보이나, 페이가 없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것은 정말 문제이다. 나는 잡지에 잘 나온 사진들만 남기고 굶어서 죽을 수도 있다.”도무지 남일 같지 않은 이랑의 수입만큼이나, 내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나는 첫 책을 냈다. 책 제목은 <미쓰윤의 알바일지>. 제목 덕분에천 개의 아르바이트를 거쳐야 정규직 된다는 얘기 아니냐등의 사소한 오해도 있었다. 물론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에 다녔던 20대 초반과 프리랜서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이후의 생활, 그리고 호주에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까지 담은 책이다. 이 모든 일들을 정규직이 아닌 상태라는 의미로 알바라고 지칭한 것인데, 아르바이트 경험을 에세이로 쓴 책이 별로 없기 때문인지 책을 내자마자 꽤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되었다. 대체로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는 터라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되는 경험은 낯설었지만 의외로 즐겁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일만 아니라면 그랬다. 일간 신문의 사진 기자들은 이를 보이며 활짝 웃는 표정을 정말 좋아한다. 몰랐던 사실이었다. 덕분에 “14년 알바 인생, 비참한 적 한 순간도 없었다같은 헤드라인 아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사진들이 커다랗게 실렸다. 그래서 이랑이 남긴 말을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나는 신문에 억지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들만 남기고 굶어 죽을 수도 있잖아?

그렇다. 이게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곤 하는데, 프리랜서는 직업군이 아니라 일의 형태다. 나의 경우 몇몇 기사에서는 비정규직이라고 호명되었지만, 사실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비정규직이나 계약직과는 거리가 멀다. 프리랜서란 이름 안의자유를 선택한 대신 불안을 같이 끌어안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기의 자유는 출퇴근의 자유 정도일 뿐, 제대로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면 일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보통의 직장인들에 비해 어렵다. 아주 단순한 예로, 나는 지금 이 글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세 시에 쓰고 있다. 주말이라니, 프리랜서에게 그런 건 없다고 봐도 좋다. 오히려 글을 청탁한 쪽이 월요일 오전에 작업물을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주말에 더 바빠지곤 한다.

그렇게 바쁘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버느냐면, 당연히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취재를 포함하기도 하는 신문, 잡지의 원고 청탁을 받아 칼럼, 기사, 에세이 등을 쓰고 받는 원고료에, 아주 가끔 TV나 라디오에 출연할 때 받는 출연료 정도가 더해진 게 기본 수입이다. 여기에 비정기적인 단기 프로젝트가 들어온다. 영화제나 영화 잡지, 방송 쪽의 기획과 원고쓰기를 하며 작가, 기자, 편집장 등의 이름으로 일정 기간 동안 맡아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현재는 비정기 페미니즘 굿즈 제작 프로젝트인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를 친구와 함께 꾸려가고 있고, 또 다른 지인들과 독립출판 프로젝트도 기획 중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얼마큼의 수익을 보장하느냐에 따라 한 달 수입이 결정되는데, 안타깝게도 수입이 보장되지 않거나, 얼마의 수입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팅과 회의는 필수적이다. 그러니까 11년 차 프리랜서인 윤이나는 남들이 보기에 자유롭게 다양한 일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한편, 깜짝 놀랄 만큼 들쑥날쑥한 수입 속에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나는 경매에 부칠 트로피도 없단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의미가 있는 일이 돈과 명예, 재미를 두 개 이상 충족시키는 일이라면 크게 봤을 때 나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맞다. 심지어 재미 면에서도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들을 잘게 쪼개어 보고, 그 일들 사이의 연관성을 보면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나타난다. 책을 내는 일은 내게 아주 약간의 인세를 주었지만 그래도 이름을 조금이나마 알리고, 지금 쓰는 이 글을 쓰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이 눈에 보이는 한 권의 책으로 묶이는 일은 내게 아주 특별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책을 낸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일들은 뚜렷하게 분리가 되지 않는다. 내 일의 어떤 부분은 돈이 되고, 어떤 부분은 명예가 되며, 또 어떤 부분은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 일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나에게 다음 기회나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내게는 그게 트로피고, 또 그 트로피를 팔아 서울 살이 한 달 월세를 내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실은 나는, 오늘도 누군가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하는 일들을 내가 찾은 재미와 의미 때문에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나중에 돈이 되면 물론 좋겠지만 당장 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일, 언제든 나의 선택으로 시작하고 또 끝낼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된 일, 만약 언제고 내가 트렁크 안에 내 삶을 구겨 넣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할 때 털어낼 수 있는 일들을.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불안이 동반된다면, 나는 기꺼이 끌어안고 가겠다는 쪽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일의 형식을 택한 사람들에게도 사회적인 안전망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면 한다는 것. 이 안전망은 사회 보험의 확대일 수도 있고, 기본 소득일 수도 있다. 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무조건 안정적인 고용 형태를 원하지 않는다. 4대 보험과 정규직에서 의미를 찾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그런 일자리를 보장해 주어야겠지만, 불안을 견디면서 일하고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이런 나, 우리에게도 사람다운 삶이 보장될 수 있는 테두리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누군가, 다른 이들이 뭐라든 상관없이 자기 자신만의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택하려고 할 때, 주저하다 포기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 이렇게 살 수도 있겠네하면 그걸로 됐다고 대답했다.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생활을 꾸려가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이런 사례가 쌓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수록 타인의 삶의 방식에 세상의 기준을 가져다 대며 의미가 있고 없고를 말하는 무례한 일들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뭐 하러 가방 끈이 길어야 하냐는 말도, 왜 때맞춰 취업하고 결혼하지 않느냐는 말도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야기하다보니 왠지 모르게 유토피아처럼 느껴지지만,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그런 세상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도록, 모두들 각자의 의미를 찾아가기를. 그리고 사실 의미가 없으면 뭐 또 어떤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군가 왜 남들처럼 살지 않고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에 시간을 쏟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줄 생각이다. 한 명 정도는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겠어요? 돈을 많이 벌면 물론 좋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애써 번다 한 들 떼돈도 아니잖아요. 내가 어떤 회사의 정규직 직원이라 해도 정리해고의 위험에서, 불투명한 미래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요? 심지어 사장도 아니잖아요. 국민연금 직원에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유의미한 소득은 아니네요라는 말을 듣는 개인사업자지만, 저는 무려 사장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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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3.06 15:27

‘11월 시민혁명’,‘ 광장’과 대의제를 생각한다

 

 

손호철 _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근실(근혜-순실)게이트’와 고장 난 대의민주주의


 “국민들이 선거 날만 주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18세기의 철학자 장 쟈크 루소는 현대정치, 현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최근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근실(근혜-순실)게이트’와 촛불을 바라보면서, 정치학자로서 가장 자주 떠오르는 것은 루소의 이 정의이다. 그렇다. 2012년 12월 19일 우리는 주권자로서 한 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 이후 지난 4년여 기간 동안, 다른 후보를 찍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까지, 온 국민은 박근혜의, 아니 최순실의 노예에 불과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국회는 어떠한가?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야당들 역시 분노의 촛불이 광화문 등 전국의 광장에 넘쳐나기 전까지는 기껏해야‘질서 있는 퇴진’,‘ 명예로운 퇴진’과 같은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었다. 아니 박근혜의 지지율이 4%로 떨어지고 국민의 80%가 탄핵을 지지하고 있고, 불과 15%만이 탄핵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친박은 말할 것도 없고 비박까지도 탄핵과 탄핵반대 사이에서 끝까지 동요했다. 한마디로, 국회는 자신들이 대표해야 할 주권자들인 국민의 민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만 했다.
 이 같은 국회를 탄핵으로 몰고 간 것은 광장의 힘, 광장에 모인 230만개의 촛불의 힘이었다. 이 같은 힘에 의해 기회주의적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비박도, 나아가 친박의 상당수까지도 탄핵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가 한국 국회사상 최고의 업적인 ‘역사적인 탄핵 가결’이다. 국회가 광장에 의해 탄핵을 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탄핵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키는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탄핵은 가결됐지만 근실게이트, 그리고 이에 대한 국회와 정치권의 대응은 우리로 하여금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인류는 민주주의의 효시인 그리스 아고라(광장)의‘직접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전통을 갖고 있다(물론 이것은 노예제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허나 인구가 증가하고 현대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어쩔 수 없는‘현대정치의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되어 왔다. 최근 들어 문학의 ‘재현(representation)’ 논쟁이 불붙고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의제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간헐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representation이 re때문에 불가피하게 대상을‘있는 그대로’presentation 할 수 없듯이‘대의’는 불가피하게 민의의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근실게이트는 이 같은 부분적 재평가를 넘어서 대의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도록 만들고 있다.
 이번 근실게이트에는 세 층위가 작동하고 있다. 가장 표층인 ‘사건사’적인 면에는 73년 체제(유신체제)와 최태민으로부터이어진 ‘유사샤마니즘’적 ‘고조선체제’ ("우리나라는 헬조선이 아니라 신정일치의 고조선이었네요”라는 한 제자의 표현처럼)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중간수준에는 87년 헌정체제, 즉 ‘제왕적 대통령제’가 작동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사회체제’가 87년 체제라고 주장하는 지적 지진아들도 있지만 8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의 97년 체제로 대체된 지 오래 이고 87년 체제 중 남아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87년 헌법에 기초한 헌정체제라는 ‘부분체제’이다). 가장 깊은 심층에는 단순한 정치적 권력남용을 넘어서 헬조선, 흙수저 신분세습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분노가 “돈 많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실력”이라는 정유라의 조롱과 맞물려 폭발한 것이다. 즉 가장 깊은 곳에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체제인 97년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지면관계상 논의를 소위 ‘정치’문제로 국한시키고자 한다. 논의를 정치문제로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우리의 문제는 단순히 박근혜를 몰아낸다고, 나아가 그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는‘87년 헌정체제’를 타파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설사 내각제로 정부형태를 바꾼다고 하더라도 탄핵과정이 잘 보여주듯이‘국민을 대표하지 않는 대통령의 독재’를‘국민을 대표하지 않는 국회의 독재’로 바꾸어놓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이번 문제의 핵심에는 루소가 고발한 대의민주주의의 근본적인 한계와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다.


 

탄핵가결 후, 더욱 광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촛불을, 광장을 주목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촛불을, 광장을 주목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단순히 박근혜를 몰아낼, 아니 이미 몰아낸 힘이 거기서 나왔기때문만은 아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계기와 가능성들을 이것들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박근혜 이후에 우리가 만들어야하는 ‘새로운 공화국’의 단초들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장은 근실게이트와 정치권의 무기력한 눈치 보기에 분노한 세월호 4.16연대, 민주노총, 참여연대, 교수연구자비상시국회의(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연구자 단체들로 구성된), 학생단체, 청소년단체등 전국 1500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밑으로부터 퇴진운동조직을 만들면서 조직화됐다. 그러나 광장을 메우고 있는 것은 일반시민들(한 시민운동가의 표현을 빌리자면‘자유로우면서 위태로운 시민들’)이었다. 구체적으로, 1500개 조직의 조직화된 참여자는 20만 명 수준으로 90%는 일반시민이라는 것이 퇴진행동 실무자들의 관측이다. 바로 이들의 힘이 주저하는 야권과 비박을 견인해 탄핵발의를 강제한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폭발한 것이다.
 하나 더 주목할 것은 ‘운동 내에서의 직접민주주의’이다. 우선 집회에서 정치인들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을 뿐더러 운동권의‘단상권력’도 약화됐다. 구체적으로, 주요 단체들의 대표들이 단상에 포진하고 의례적으로 발언을 독과점하는 ‘광장내의 대의제’, ‘운동내의 대의제’ ‘( 계몽된 전위’가 ‘우매한 대중’을 대신하여 투쟁을 주도하는 ‘대리주의’[substitutionalism])가 약화되고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발언권을 갖는 직접민주의적 계기들이 강화되고 있다. 하다못해 도올 김용옥이 광화문 주말 촛불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대중을 가르치는 식의 강의를 늘어놓고‘꼰대 폼’을 잡다가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사회자에 의해 쫓겨나듯 내려와야 했다. 일부운동권의 돌출적 행동에 대해서도 오히려 대중들이 나서서 이들을 비판하고 규율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계기들을 극대화하고 우리가 새로 건설할‘새로운 공화국’의 핵심구성 요소로 자리매김할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우리의 항쟁은 박근혜의 탄핵이나 퇴출로 끝나고 않고‘박근혜 이후’,‘ 분노 이후’가 더 문제라는 사실이다. 박근혜 퇴진 이후에 쟁점이 될 개헌으로부터 대선, 새로운 공화국 건설 등 더 중요한 문제들이 줄줄이 남아있다. 따라서 광장을 재정비하고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박근혜의 탄핵이 가결되었지만 광장이 바라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아니라 즉각적인 퇴진이다. 국정공백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광장은 계속 즉각 퇴진을 압박해야 한다. 또 박근혜가 다수를 임명한 보수적인 헌법재판소가 민의에 반하는 반역사적인 판결을 내리지 못하도록 광장은 헌재를 감시하고 압박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퇴진과 헌재 판결 이외에도 특검의 조사(국민의 80%는 강제수사를 바라고 있다)와 사법처리를 통해 전두환, 노태우처럼 박근혜가 감옥에 들어갈 때까지 촛불을 내려놓을 수 없다. 할 일은 거기에 끝나지 않는다. 박근혜를 대신하는 대안권력문제로부터 개헌, 새로운 공화국문제, 차기 대선까지 광장이 해야 할 일은 아직 산적해 있다. 탄핵이 통과됐으니 이제 광장을 접고 차후문제를 정치권과 헌재에 맡기자는 것은 한국현대사의 주요 항쟁의 비극들, 즉 5.16쿠테타로 끝난 4.19학생혁명, 광주학살로 끝난 79년 부마항쟁과 80년의 봄, 노태우정권의 출범으로 끝난 87년 6월 항쟁의 비극을 반복하는 것이다.

 탄핵의결로 사망선고는 간신히 피했다고 하지만 근실게이트와 탄핵과정이 잘 보여줬듯이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중병에 걸려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를 대신해 ‘대안권력’,‘ 대안정부’, 즉(박근혜지지자4%를뺀)‘ 96%의정부’를 사실상 광장이 대신해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탄핵을 받은 박근혜에 의해 임명됐고 박근혜∙최순실의 수족이었던 황교안 총리와 현 내각은 탄핵과 함께 그 권위를 상실했다. 따라서 국회가 이를 대신할 대안 권력 역할을 해야 하지만 탄핵과정을 보면 이들도 그럴 자격이 없다.
 국회의 자격부재는 탄핵으로 등장한 황교안 대행체제가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회는, 특히 야권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정국 주도권 싸움 때문에 탄핵이 가결될 경우 황교안대행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전혀 이에 대한 대안을 준비하지 않는 역사적 죄를 저질렀다. 즉 상대방 당이 추천하는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느니, 아예 황교안 체제가 낫다는 정파적 판단에 기초해 현 사태를 자초했다. 한마디로, 민의를 저버린 직무유기로 탄핵감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광장은 정치권에 황교안과 근실내각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도록 압박하고 이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켜 이들을 해임토록 강제해야 한다. 또 대안내각의 구성으로부터 정책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부와 국회간의 협의체 구성에 광장과 시민도 참여하여 이들의 야합을 감시하고 생생한 광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 등 박근혜정부에 의해 투옥된 노동자와 양심수를 석방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 항쟁지도부를 확대∙개편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의 광장지도부는‘박근혜퇴진’투쟁을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조직화하는 엄청난 역사적인 기여를 이미 했다. 그러나 현재의 지도부와 광장의 운동은 단기적인 퇴진운동에 적합할지 모르지만 장기투쟁을 이끌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특히 앞으로 벌어질 개헌정국, 대선정국 등 급변하는 정세에 효과적으로 개입하기에는 대표성과 효율성면에서 한계가 많다. 따라서 조직의 확대재편이 시급하다. 지금까지의 운동이‘박근혜퇴진’이라는 단일한 공동목표를 놓고 다양한 세력이 모인‘단결적’이고, ‘1차 방정식 투쟁’이었다면 앞으로의 투쟁은 다양한 입장이 대립하는 ‘갈등적’이고 ‘고차방정식 투쟁’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내부갈등을 조정해 통일된 노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민주적 대표성과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광장의 90%는 조직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일반시민’들이다. 따라서 주요단체들의 대표들로 구성된 현재의 지도부는‘운동내의 대의주의’라는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조직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일반시민을 지도부에 포함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김세균 서울대명예교수의 제안이다. 그는 일반시민들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개인가입과 민주적 선출원칙에 의해 부분별/지역별 비상국민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이들을 묶어 전국단위의 비상국민의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조직이 최대한 직접민주주의적 방식을 통해 앞으로 있을 주요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이 조직이 박근혜퇴진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 터져 나올 개헌, 나아가 문재인, 안철수 등의 분열이 자명해 보이는 대통령선거에서의 대선방침. 나아가 필요하다면 ‘국민후보’ 선출에까지 적극 개입하는 것만이 야권의 분열로 야기된 4.19학생혁명, 80년 봄, 87년 6월 항쟁의 비극의 반복을 막고11월 시민혁명을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다. 광장이 할 일은 단순히 박근혜정부와 그 부역자들을 퇴진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능하면서도 탐욕스러운 거대보수야당들의 ‘뻘 짓’을 감시하고 막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개헌이다. 현재가 개헌을 할 시점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현재 개헌을 얘기하는 세력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모든 악의 근원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면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다들 정략적 목적에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이번 탄핵으로 민심으로부터 어느 정도 면죄부를 았고 새누리당의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커진 비박이 철수의 국민의당, 김종인 등 더불어민주당 비문세력과 연대해 정계개편을 주도하고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럴 우 해방정국의 농지개혁, 87년 6월 항쟁 당시의 전두환∙노태우의 6.29선언(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요구를 수용한)같이 밑으로부터의 혁명적 요구를‘위로부터의 개혁’으로 흡수해버리는, 그람시적 의미의 (유사)‘수동혁명’(pseudo passive revolution)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이다.

 

개헌을 넘어서‘새로운 공화국’구상으로
 

 그러나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제 광장은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우리의 현실이 광장으로 하여금 단순한 근실게이트의 청산을 넘어서‘민주∙평등∙연대에 기초한 새로운 공화국’에 대해 고민하고 구상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헬조선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화국, “열심히 일하는 부모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현재의 광장을 일종의‘제헌의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정치권이 주장하듯이 제7공화국이 아니라 진정한 시민들의 바람에 기초한‘제2공화국’이다.

 따라서 개헌이 아니라 ‘새로운 공화국의 구성’이라는 시각에서 기본권으로부터 정부형태 등 이 문제를 고민하고 논의해 나가야 한다. 이제“대선이후 국회에서 차분하게 개헌을 논의하자”는 주장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설사 개헌은 선이후에 하더라도 새로운 공화국에 대한 구상은 당장 광장이 만들어 정치권에 이에 대한 개헌약속을 받아놓아 이를 제해야 한다. 대선이후 개헌을 논의할 경우, 과거와 마찬가지로 개헌은 정치권의 '그들만의 리그’의 개헌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화국의 구체적인 내용은 학자들이나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일반대중의 참여 속에 직접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채워져야 한다. 다만 그 방향은 우선 다섯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 소수자권리 등 87년 이후의 변화를 감안한 기본권의 업데이트와 강화이다. 둘째, 내각제, 집중화된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정부에 권력을 대폭 양도하는‘남한연방제’등 권력집중을 개선할 수 있는 정부형태에 대한 고민이다.
 셋째, 어쩌면 둘째보다 더 주요한 문제로 표의 등가성을 괴하고 사실상의 보수독점정치를 영속화시키는 선거제도를 비례대표를 강화하고 독일식 연동제로 개혁하는 것, 그리고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도시와 농촌사이에 선거구의 인구격차로 표의 가치가 세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 지만 반민주적인 선거제도로 인해 군소진보정당의 표와 대보수정당의 표의 가치는 4배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마디로, 대의민주주의 중에서도 아주 질이 나쁜 현재의 도를 최소한 '질 좋은 대의민주주의’로 고쳐야 한다.
 넷째, 민선공직자에 대한 소환제 강화, 시민발의제 등 고장 난 대의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수술하고 직접민주주의를 극대화해야 한다. 대중은, 시민은 위대하다. 그러나 촛불은, 광장은, 역사의‘광기의 순간’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가 문제가 많지만, 이를 폐지하고 완전히 접민주주의로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가 고장 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당이 잘못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보수정당들은 기본적으로 지역정당(거지부터 재벌까지 지역으로 모인‘초계급적 지역연합’)들로 제대로 된 책대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의 기능은 “(국회와 같은) 제도(정치)틀에서 사회적 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 거대 정당 중심의 한국의 제도정치는 다양한 사회세력들을 제대로 대의하지 못함으로써‘사회적 갈등의 조정’이라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대의의 위기’, ‘대의의 실패’의 과가 희망버스로부터 골리앗투쟁, 광화문 노숙투쟁 등 '거리의 정치’의 일상화이다. 그리고 그 극적 표현이 바로 현재의 광장이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를 수술하기 위해서는 정당제도의 혁이 시급하다. 다시 말해, 광장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불을‘정치적 주체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과 같은 자유주의적인 야당들도,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도 광장의 분노와 열기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모데스같이, 이들을 정치적 주체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새로운 진보적 프로젝트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일이다. 핵심은 현재의‘초계급적 지역연합’을 (지역을 넘어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함께 하는) ‘초지역적계급연합’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헬조선의 주범인 신자유주의(정확히 표현해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넘어설 수 있는‘포스트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의 피해자들은 세계적으로 브릭시트로부터‘트럼프반혁명’, ‘샌더스혁명’(트럼프반혁명과 샌더스혁명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두개의 출구, 즉‘반동적출구’와‘진보적 출구’이다)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의 11월 시민혁명도 어떤 면에서는‘한국판 브릭시티’‘( 코릭시트’)이자‘한국판 샌더스혁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주촛불집회의 한 청소년의 발언처럼 "내 안의 박근혜와 내 옆의 최순실에 분노하고 사람을 돈이나 자신의 소유물로 보지 않고, 사람을 돈과 이익으로 환산하지 않고, 독립된 존재로 보는 세상”, “어쩔 수 없는 경쟁 속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윤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시장과 재벌에 대한 사회의, 시민의, 광장의 통제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같은 공범들이다. 정리해고를 도입하고, 파견근로제를 확대하고, 한미 FTA를 추진하고, 쌍용자동차를 해외매각해서 헬조선을 만든‘원조 신자유주의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아니 과거는 과거라고 치자. 이들 자유주의적 야당들은 현재 여소야대의 힘을 가지고 있고, 헬조선에 대한 광장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헬조선 극복을 위해 필수적이고 자기들이 약속해온 법인세 인상을 포기한 세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따라서 광장이 주도하는 포스트신자유주의 구상이 필수적이다.

 사회적 통제, 시민통제가 필요한 분야는 재벌과 시장만이 아니라 사방에 널려있다. 언론, 사학(우리가 최근 생생하게경험하고 있는) 등 그 예는 끝이 없다. 그중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 검찰이다. 박근혜정부, 특히 십상시사건과 근실게이트에서 검찰이 보여준 행태는 검찰의 민주화, 검찰에 대한 민주적, 사회적 통제 없이는 의미 있는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폭로해주었다. 이번 기회에 시민대표 등이 검찰을 감독, 감시하는 검찰위원회를 만들어 검찰이 더 이상 정권의 주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11월 시민항쟁은 부마항쟁, 4.19 학생혁명, 6월 항쟁과 같은 비극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11월 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전한 의미의‘11월 시민혁명’,‘ 성공한 11월 시민혁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 특히 야권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촛불을 폄하했다. 그러나 4.19와 80년 봄,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이 보여주듯이 촛불을 꺼트리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야권의 뻘 짓이다. 이 같은 뻘 짓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촛불을 내려놓을 수 없다. 낡은 대의민주주의는 죽었다. 촛불이여, 광장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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