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2

장애인 입장을 이해시키는 연구, 제가 할 일이죠

입는 로봇 기술 연구팀, 공경철 교수 인터뷰

 

 

 

 

무적의 슈트를 입고 악당을 물리치는 영화 아이언맨을 보셨나요? 하지만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인간이 로봇처럼 옷을 입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입는 로봇 워크온으로 사이배슬론대회에 출전하여 세계 3위로 팀을 이끈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를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및 편집 양계영, 정재원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안녕하세요.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공경철(이하 공)> 서강대학교 2000학번입니다. 기계공학과로 입학해서 물리학과를 복수전공 했고요. 서강대학교에서 석사졸업 후 미국에 2006년에 유학을 가서 2009년에 박사 받고, 현재는 우리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있습니다. 분야는 제어전공을 했고, 응용 대상은 로봇입니다. 로봇공학은 융합 분야라서 로봇을 만들기 위해 기계 설계도 해야 하고, 제어도 해야 하고, 디자인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할 게 많아요.

 

서강> 제어 쪽으로 전공을 확정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셨어요?

 

> 학부 3학년 때부터 유학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본교에서 석사까지는 마치고 싶었습니다. 석사 전공분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유학을 잘 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는 교수님의 전공분야가 제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걸 하고 싶었어요. 대학원 갈 때 누구나 고민 많이 하잖아요. ‘대학원 가면 바로 취직해서 사회 생활하는 친구들에 비해 어떤 점이 나을 것인가하는 생각... 공부하는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는 회사월급 같은 기회비용도 생각이 나고요. 이런 여러 고민을 했을 때 제어분야가 제일 마음에 들더라고요.

 

서강> 교수님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교재를 직접 제작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많은 교수님들이 다른 사람이 쓴 책을 활용해서 강의를 하시잖아요? 저도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제 박사 지도교수님 강의를 듣는데, 직접 쓰신 교과서로만 강의를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다른 사람이 쓴 책으로 강의하면 말투나 문제 푸는 방식이 달라서 학생들이 헷갈릴 수도 있다고 하시는데, 뭔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교수가 되면 반드시 직접 만든 교재로 강의해야지 하고 다짐을 했지요.

그런데 학교로 돌아와서 진짜 해 보니, 직접 만든 교재라는 게 학생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출판된 교과서를 쓰면 미리 읽어볼 수도 있고 연습문제도 풀 수 있고 한데요. 그렇지 못한 경우에 학생들이 오히려 힘들 수도 있기도 해요. 하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제 열정을 알아주는지, 오타 가득한 교재라도 잘 따라와 줘서 즐겁게 강의하고 있습니다. 어설프더라도 매 강의마다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벌써 9권을 만들었어요. 매년 똑같이 강의하는 과목은 매년 교정을 하니 어느새 내용과 질도 많이 좋아지고,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자고 연락도 오는데 거절했어요. 굳이 그렇게 상업인 목적으로 쓰고 싶지는 않네요. 그냥 서강대에서 제 강의 듣는 친구들을 위한 특권으로 하고 싶어요.

 

 

[사진1]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 엔젤렉스(Angelegs)

 

서강> 장애인을 위한 입는 로봇 엔젤렉스(Angelegs)와 워크온수트(Walk-ON Suit)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 제가 석사 때부터 근력이 약화되어 걷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시는 노인을 도와드리기 위한 여러 기초 기술들을 연구했어요. 박사과정 중에도 계속 그쪽으로 연구를 했고요.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는 연구실 셋업도 해야 하고, 학생들 지원해 주려면 연구과제도 따와야 하고, 여러 할 일이 많잖아요. 교재도 준비해야 하고. 2011년에 서강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늦어져서 보조로봇을 활발하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가을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기초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로봇이 바로 엔젤렉스(ANGELEGS)라고 하는 로봇입니다. 근력이 약화된 노인이나 경미한 마비환자를 돕기 위한 로봇이지요. 비슷한 대상자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으로 일본의 HAL이라는 것이 있는데, 엔젤렉스는 HAL과는 달리 몸에 붙이는 센서 없이도 훨씬 자연스럽게 보조할 수 있어요.

반면에 워크온수트는 완전히 마비가 된 장애인을 위한 로봇이에요. 마비가 되면 움직일 수 없지만,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의도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그리고 균형을 잘 유지하게끔 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등 좀 더 민감하게 설계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요.

제 생각에는 엔젤렉스가 훨씬 더 많은 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고 더 실용적인 로봇이라고 믿었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어차피 조금 걷는 사람이 입는 거니까, 그 사람이 걷는 건지 로봇이 도와주는 건지 감흥이 별로 없는 거에요. 연구자가 다른 사람 눈을 신경쓰면 안 되는데... 그래도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실제로 감흥이 좀 있으려면 완전마비 장애인이 로봇을 입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걸어 다니고 하면, “!” 하잖아요. 근데 엔젤렉스는 그런 게 없었던 게 문제였나봅니다. 그런 면에서는 워크온수트가 참 많은 감동을 가져다줬죠.

 

서강> 그 후 워크온 수트를 제작하여 2016 사이배슬론 대회에서 3위에 오르셨어요.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많은 보람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 우리 연구팀이 엔젤렉스를 만들면서 장애인을 다시 걷게 하는 기술은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좀 더 감동이 있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감동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잖아요? 아직 장애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들의 눈에 뭔가를 보여줘야 해요. 그래서 작년 10월에 사이배슬론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나가보자 마음먹었어요. 제 연구팀하고 세브란스 병원의 나동욱 선생님이 의기투합을 했죠. 그렇게 워크온수트(Walk-ON Suit)를 제작했습니다. 워크온수트(Walk-ON Suit)는 장애인 선수뿐만 아니라 저희에게도 참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죠. 일단 로봇 없으면 못 일어나는 분들이, 로봇을 입고 일어나서 걷고 계단도 오르고 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런 기능적인 면도 좋지만, 저희가 가진 기술을 확실하게 홍보하고 각인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무엇보다 우리 서강대 학생들한테 세계 무대에 나가서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죠. “서강대학교에서 1등하면 세계에서 1등 할 수 있다이런 말을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데, 그래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잖아요?

사실 객관적으로 서강대가 로봇으로 유명한 학교는 아니에요. 아무리 한두 번 좋은 성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대중의 인식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아직도 서강대에도 기계공학과가 있어?”, “서강대에서도 로봇을 해?”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교수로 부임하고 7년째 되니까 저도 괜히 자격지심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세계 최고의 대회에 도전을 했지요. 처음에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팀들, 예를 들어 NASA에서 후원받아 출전한 IHMC,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러시아 등과 경쟁하려니 얼마나 긴장을 했겠어요. 대회를 통해 큰 자신감을 회복했던 게 제일 큰 수확이었고요. 우리 연구팀 모두다 똑같이 느꼈다고 생각해요. 정말 영광스럽게도 이제 어디를 가든 저희 연구팀을 알아봐 주십니다. 정말 감사하지요. 우리 서강대학교 대학원의 모든 학생들에게도 작은 응원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왼쪽 가슴에 서강대학교 마크 떡하니 붙이고 세계무대에 다녀온 그 기분을 우리 서강대 대학원생들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2] '사이배슬론' 대회에 출전해 세계 3위에 오른 공경철 교수 연구팀

 

서강> 사이배슬론 대회 참가 전후로 바뀐 지점이 있을까요?

 

>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수많은 신문기사와 방송에서 다뤄지고, 전국에 안 다닌 곳 없을 정도로 활발한 강연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다 좋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좀 더 연구에 대해 진지한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대회 전에는 그저 지금까지 연구해온 기술을 실제 장애인에게 적용한다고 하는 순수한 학자로서의 마음으로 설레었다면, 지금은 보다 많은 분들에게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아직 로봇을 혼자 입을 수도 없고, 넘어지는 것에 대비해 누군가 항상 따라다녀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이게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사실 장애인들은 단순히 걷고 싶어서 로봇을 입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주지 않고 스스로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로봇을 찾는 것이거든요. 예전에는 좋은 기술 만들어서 논문만 많이 쓰면 좋았는데, 이제는 실제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좀 더 부담스럽지만 훨씬 더 영광스럽고 의미있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강> 인상 깊었던 게, 교수님이 입는 로봇을 잘 만들려면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셨더라고요.

 

> 사람 몸에 부착하는 로봇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사람의 신체 근골격구조와 신경구조를 알아야 로봇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몸을 제대로 알아야 꼭맞는 옷을 만들 수 있듯이, 웨어러블 로봇은 사람을 이해해야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그런데 실제로 연구를 해 보면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공학연구팀이 책으로 혼자 공부하면 차라리 수월할 수도 있는데, 실제 연구는 의학연구팀과 치료사, 의지보조기기사분들과 다 같이 해야만 합니다. 문자 그대로 융합연구지요. 문제는 이분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에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참 다릅니다. 공학자들은 천 번의 실패 끝에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이고, 의사들은 천 번의 성공 중에 한 번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문제를 같이 풀어나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서강> 일상생활과 더 긴밀하게 로봇을 도입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인식 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제 기술 개발 지원에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은 없나요?

 

>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과제들은 연구자의 입장에서 진행된 것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아직 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 부족한 점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비장애인들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실제 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미 로봇 잘 만들어서 잘 걷고, 계단도 올라가고, 이 정도면 이미 다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기술의 내용을 잘 모르는 장애인들이 기술수요를 정확히 전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장애인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연구자들에게 잘 전달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끌어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강> 이해를 시키면 지원문제는 따라온다는 건가요?

 

> 그렇죠. 저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지원제도가 상당히 선진화되었다고 느끼거든요. 진짜 필요한 연구가 있다고 하면 충분히 지원 받을 수 있는 길은 많다고 생각해요. 수요자와 공급자의 입장에서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죠.

 

서강> 결과적으로 로봇공학은 단순히 연구의 대상이 아닌 로봇과 인간의 삶 사이의 이치를 파악하는데 힘쓰고 함께 나아가는 연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앞으로 교수님의 연구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 지난 2월에 서강대학교 로봇시스템제어 연구실의 스핀오프(Spin-off) 스타트업 기업인 ()SG Robotics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LG전자와 세브란스 병원과 각각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LG전자로부터는 대규모의 투자도 받았고요. 이제 연구실뿐만 아니라 기업, 병원들이 모두 함께 장애인과 노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재미와 보람,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굉장히 커진 상황이라 지금 당장의 이것저것 일을 벌리기 보다는 서강대학교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이제 기업의 대표로서, 제게 받은 관심에 보답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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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18:16

 

 

진실탐사그룹 <셜록> 이명선 기자 인터뷰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

 

다음 스토리펀딩에 위와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알았으니까 사직서 놓고 나가요

3년 세월을 정리하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허망함에 헛웃음과 함께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기자 준비 3, 기자였던 3년이 그렇게 1분의 사직서로 막을 내렸습니다

 

 

뭘까. 종편과, 사직서. 두 단어에 시선을 빼앗긴 저는 빠른 속도로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막내 기자인 저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과연 기자란 어떤 존재일까감춰진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 밝히고,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대리인이 바로 기자입니다. 그렇게 배웠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단 한번도 기자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서강대학원신문에서는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의 자신이 겪은, 종편의 실체를 알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명선셜록기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쉽지 않았을 듯한 선택의 순간들.

그때마다 스스로 어떤 의미를 추구해왔던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물음을 주는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를 만나

종편의 민낯과 삶의 의미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 및 편집 신윤희, 정재원

 

 

 

 

. “저는 오늘 종편을 떠납니다.”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신문의 기획은 각자가 추구하는 의미가 사회의 의미들과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묻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자님께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더 기대되네요. 반갑습니다.

이명선(이하 이)> 기획에 대한 질문, ‘과연 인생을 살면서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게 맞을까? 의미라는 게 뭘까?’를 듣고, 저는 아주 훌륭한 고민이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그런 고민조차 안 하니까 (언론이) 이 지경이 된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사실 이런 고민을 (기자들이) 술자리 같은 데서는 되게 편하게 말해요. “이게 언론이냐?”이러면서. “우리가 사실 돈 벌려고 기자하는 거지, ‘까지 들을만한 일이냐이런 말을 하는데. 이렇게 제가 (회사를 나오고) 아예 노선을 정해서 말하기 시작하니까 (그랬던 기자들도) 저를 비난하는 거예요. 이렇게 자성의 목소리가 내부에 있는 건 맞지만, 표면에 드러나기까지는 본인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데. 심지어 저를 지지하면서도 지지조차 대놓고 못하는 거예요.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개인의 사정은 다 있잖아요. 아이가 아픈 선배도 있고. 그러면 일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 또 생업이 달린 문제도 있고. 저처럼 경력이 단절될까 두려워하는 친구도 있고. 이해하려 하지만, (저를) 비난까지 하는 것은 화가 나더라고요. 이런 고민들은 계속 안고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특히, 언론인이라면 펜으로 사람 죽일 수 있는 (일이니까). 자기 성찰도 많이 하게 되고. 책이나 다른 사람 말에도 귀 기울여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고민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서강> 얼마 전 종편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스토리펀딩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셨어요. 스토리펀딩[각주:1] 기사를 올린 후 주변이나, 인터넷의 반응은 어땠나요?

> 먼저, 인터넷 반응은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초반에는 악플4-50%정도 됐던 것 같아요. “너는 왜 지금 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느냐.”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연재글 자체를 제가 (채널A)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썼어요.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회사에 있는 것과 나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러다보니까 피해자 코스프레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 ‘ 돈 벌려고 하느냐이런 비난도 많았고. 나머지 반은 그런 저의 행간을 읽으셨는지지금이라도 이렇게 고백하는 게 참 고맙다는 차원에서 응원을 많이 해주세요. (펀딩 금액도) 거의 하루만에 40%가 모였고, 빠른 시간에 70%까지 찬 것 같아요. 삼일 안에? 그것도 의외였죠. 저는 1화는 무조건 비판 받을 줄 알았거든요. 4화까지는 가야 아 그래도 얘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보다이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 초반부터 계획 의도를 알아주셨다는 점에서 감사했죠. (반면에) 저한테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욕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 사람들의 논리는 이거에요. 첫 번째는 왜 이걸(스토리펀딩)로 돈을 버냐’, 네가 고작 3년 일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냐’. 그리고 세 번째는 너도 3년 동안 같이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그러냐는 배신감? 그런 게 종합적으로 섞여있는 것 같아요. 그 모든 말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감당해야죠. 응원해주는 사람들은 어떤 구체적인 근거와 목적을 설정하고 저를 응원해주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슨 연유로 저를 응원해주시는지 잘 몰라요. 아마 시원한 것도 있겠죠. ‘누가 그래도 이걸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는데, 네가 말하는구나.’ 사실 한국 언론 자체가 문제에요. 종편의 민낯인거죠.

서강> 스토리펀딩 연재하시기까지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셨을 것 같아요. ‘내부 고발이라는 시선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시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그런데 제 글이 내부고발이라고 할 정도로 톤이 강한가요? 묻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100에서 10도 얘기 안했거든요. 지금 제가 쓰는 글은 제가 경험한 것만 쓰고 있어요. 타인이랑 엮여 있는 문제는 타인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100에서 10도 못 쓰겠는 거예요. 그런데 방송은 팀워크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제 이야기만 할 수 없는 거예요. 답답하죠. 오프 더 레코드로 할 이야기는 이만큼 있는데, 대놓고 쓰자니 쓸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글이 빈약해지고. 그러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돌려봤는데도 맹점이 생기고. 저는 누군가 내부고발을 하면 일단 박수쳐주고 싶어요. 다만, 정말 대단한 결정이지만 정신 승리 방법을 강구하셔야 된다고 조언하고 싶어요. 당신의 선택에 지지하는 사람 못지않게, 비난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왜냐하면 사람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싫음에 더 많이 휘둘리기 때문에. 그걸 외면하고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나갈 것이냐, 아니면 수용하고 그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소화시킬 것이냐. 이건 개인의 역량차원의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아요. ‘내부고발 힘들고 필요하지만. 글쎄요. 보호받지 못할 거다, 절대로. 그걸 감당하셔야 된다.’ 어렵네요.

서강> 종편기자가 된 후, 취재 시 시민들의 안 좋은 시선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셨어요.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는지. 억울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 뭐가 제일 억울하셨나요?

> 맞아요. 왜냐하면 나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이런 거죠. (기사를 쓰는데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100% 선택할 수 있었다면, 저는 제가 썼던 그 기사 안 쓸 거예요. 그런데 너 이 아이템으로 기사 알아볼래?”라는 (현재) 방식에서는, 정해진 옵션 안에서의 선택을 100% 자기 자유의지로 착각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친구들이 지금 (회사에) 대다수 남아있게 되고. 저도 취재하고 방향은 이렇다는 이야기는 하지만, 사실 쓸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어요. 그런데 한정적인 범위 내에서 제 자율성은 보장되는 거죠. 1-2년 차에는 그 자율성만 보였던 거예요. 3년차가 되니까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기사는 내가 100% 주도해서 쓰는 게 아니라, 위에서 판을 만들어 놓고 자 이 안에서 이 일은 네가 맡아서 해라였던 건데, 제가 그걸 몰랐던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나는 열심히 하는데 시민들은 왜 몰라주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3년차 즈음에는 (시민들이 제게 물건을) 던지든 욕을 하든, ‘당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 장면을 머릿속에 넣어야겠다. 언젠가 이 순간을 기억해야 할 순간이 오겠구나.’ 생각했죠.

서강> 그런 상황에서 발견하신 종편 보도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나요?

> 핵심은 시청률 지상주의’. 종편이 이미 과포화 된 언론시장, 즉 레드오션에 뛰어들다보니까 더 시청률, 특히 클릭유도처럼 [단독]을 막 붙인다거나, 시청률을 높이려고 어떤 방법이든 취하는 거죠. 종편 같은 경우는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이 주시청자층이 좋아할만한 걸 계속 만들어내는 거예요. 시청 층을 넓혀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요만한 파이에서 계속 타 방송사가 하던 방식을 조금씩 뺐어오는 식이죠. 아이템 선정이든, 패널 선정이든 다 그런 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고, 그게 핵심이에요. 그걸 경험해봤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종편은 조직적으로 나쁜 보도만 하려고 해가 아니거든요.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하다 보니까 구멍이 생기는 거고. 윗사람들도 그 결정권을 여유 있게 가지고 있지 못해요. 빨리빨리 해야 하니까 그런 거예요. 인력이 없는데, 시청률은 높여야 하고, 돈도 시간도 없고. 그러니까 (방송을) 쉽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게 된 거죠. 보수냐, 진보이냐를 떠나서 그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1년에 기사를 하나만 쓴다는 계획으로 만든 TFT도 있다면서요. 그만큼 기사 하나가 반향이 크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유의미하다는 생각으로 조직에서 도와주고 응원하는 거죠. 그러면 기자들이 일을 열심히 안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팀을 조직할 수가 없어요. 동료 기자들도 (자조적으로) “오늘 내가 인터넷 기사 몇 개 썼는지 알아?”, “내가 오늘 인터넷 기사 15분 만에 썼다이런 일이 너무 많아요. 실제로 (시간은 모자란데) 쏟아지는 보도 자료도 처리해야하고. 출입처도 문제인데다가. 그래서 더 공부를 해야죠. 현재 언론의 맹점에 대해서는 웬만한 언론인들 다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신문사 기자들은 바쁜 환경 속에서도 책 스터디도 하고 그런대요. 그런 바람은 확실히 있어요.

서강> 출입처 문제는 무엇인가요?

> 각 기자들이 나와바리[각주:2]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사회부는 경찰 팀으로 쭉 지역을 나누고, 국회는 여당/야당으로, 산업부는 삼성과 LG 등 기업별로 출입처를 나눠요. 나와바리를 나눌 때, “너는 노동분야 가져”, “너는 여성문제 가져하면서 키워드별로 구분하지 않아요. 사실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복지도 있을 거고, ‘정치당연히 들어가야 되고, ‘문화센터도 아이템이 될 거에요. ‘시청도 출입해야하고 뭐 이런 건데. 이 모든 걸 기관으로만 나누다 보니까 (문제가 되고), 출입처 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걸 깨는 언론사가 거의 없어요. 기관으로 나눠놨기 때문에 그 기관에서의 빈틈은 없지만, 권력자의 말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니까 계속 보수화되고. 예시가 있어요. 제가 (요즘) ‘간첩 사건을 취재하면서 유우성 사건을 다시 한 번 복기했어요. 이것도 결국 무죄 판결 났죠? 그런데 이분을 완벽하게 간첩으로 몬 게 종편이에요. 최근에 그걸 다시 보니까 기가 막힌 수준인 거예요. “(유우성이) 간첩인 건 분명하고, 연세대에 간 것도 다 계획 하에 꼼수를 부려서 간 거다.”이런 식인 거예요. 무죄 판결 났을 때, 그들이 이걸 사과했을까요? 아니에요. 이 사건도 국정원에서 나온 이야기를 받아 쓴 거예요. 기사를 보면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그 관계자가 누군지 (알 수 없죠). 어떻게 기사를 이렇게 쓸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뿌려졌더라고요. 이게 문제죠. 국정원에 출입하는 사람이 거기로부터 나온 이야기를 마치 단독인거마냥 내보내고 있잖아요. 최소한 유우성씨한테 (간첩이냐고) 확인은 했어야 하잖아요. 경찰에서 누굴 잡아서 보도 자료를 만들고, ‘용의자이런 식으로 표현하잖아요. 그것도 알고 보면 범인이 아닌 경우도 많아요. 이미 얼굴이 (기사에) 다 나왔는데무죄추정의 원칙이 다 깨지고 있는 거죠. 경찰의 발표조차 100% 믿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런 거에 대한 의심을 못해요. 이런 점에서 한국의 출입처 중심의 언론시스템은 문제가 많죠.

서강> 종편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종편이 바뀔 수 있을까요?

> 종편이 당장 없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종편이) 바뀔 것이냐? 조직이 선의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해요. 국가 차원에서 언론법을 완전 타이트하게 바꾸지 않는 이상은 비관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최순실 사태때 지상파 보도가 한 달 가량 늦게 나왔잖아요. 채널AKBS, MBC. 그런데 그것에 대해 과연 (방송사가) 사과를 했느냐. KBS, SBS는 성명서를 냈지만, 채널AYTN은 안 냈어요. 그것부터 사과해야죠. 자성이 먼저죠. 자성이 안 되는데, 바뀔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회의적입니다.

 

 

. 진실탐사그룹 셜록

 

서강>‘셜록의 설립 과정은 어떠했나요?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는지. 이런 대안언론을 생각하시고 종편을 나오신 건가요?

> 일단 절대로 기자 다시 안 하려고 했어요. 이렇게 부끄럽게 할 바에는. 막판에는이직도 아니다, 완전히 이 판에서 나오자.’그러다가 출판사에서 잠깐 일을 했어요. 그때도 끓어오르는 무언가는 계속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전 오마이뉴스 기자인 박상규 기자랑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서, 그분한테 말했어요. “(저처럼) 이렇게 엎어진 청년이 도대체 몇 명일까.”당시에 박상규 기자가 스토리 펀딩에서 박준영 변호사랑 <재심프로젝트>[각주:3]를 하고 있었으니까, 이걸 아예 공적인 영역으로 그룹을 만들어서 싸움을 크게 해보자고 주변에서 제안을 많이 했나 봐요. “괜찮은 아이디어다.”그래서 멤버를 모집하던 와중에 제가 합류하게 된 거죠. 선배 입장에서는 방송 경험자도 필요했던 것 같고, 또 제가 봤던 보수언론 세계의 인사이트도 필요했겠죠. 이렇게 제가 했던 선택들이 누군가에는 하나의 메시지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언론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저는 안 할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니까. 그렇게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그런 제 선택이 하나의 메시지가 되면서 박상규 기자도 이런 선택을 한 사람이라면 함께 해도 좋겠다.’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서강> 셜록은 정확하게 언론사는 아닌 것 같아요. 종편과 셜록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 차이점은 일단, ‘개입이죠. 완벽하게 개입하는 거죠. 언론인이 가지고 있는 언론 규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보면 (언론인은) ‘관찰자로서만 있어야 한다고 하거든요. 그걸 깬 거예요. ‘욕해도 좋으니 우리는 깨겠다. 아닌 건 아니지 않은가?’ 뭐 이런 거죠. 물론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어디까지 개입할 것이냐. 아프리카에서 독수리가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사진 기억나세요? 그거 찍은 기자가 자살한 거 아세요?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기자) 본인은 언론인 원칙을 지키려고 했던 거죠. 기록한다는 의미. 그런데 그때 만약 관찰자여야 한다는 언론인의 규정을 깨고 아사 직전의 아이를 구하는 선택을 했더라면, 그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차선, 언론이 개입해서 분명한 노선을 가지고 싸워보자. 그게 기존의 언론하고 (셜록이) 다른 부분이죠. 그래서 저도 제 소개를기자라 하지 말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기자라는 직함에 대해서는 정말 고민이 많아요. 왜냐하면 이게 한국에서 규정하는 기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셜록은 설립과정 자체가 (언론과) 달라요. 박상규 기자가 박준영 변호사랑 이와 같은 일을 2년을 했죠. <재심프로젝트>. ‘무죄판결을 받아야 하는 과거의 사건들을 언론인들이 같이 싸운 거잖아요. 이 과정을 박상규 기자가 전부다 기록했고, 그 기록에 호응하는 대중들이 돈을 펀딩해줬고, 그 돈으로 재판에 계속 성공했죠. 그래서 셜록에서 기자는 글을 쓰고 알리는 거고, 거기에 대중들이 동조를 해줘야 프로젝트가 완성이 돼요.[각주:4] 일단 공을 던지는 거예요.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받아주는 사람의 힘으로 사건 해결까지 개입해서 싸워보자그겁니다.

서강>‘개입이라고 말해주셨으니까. 어디까지 개입하나요?  “아닌 건 아니지 않냐라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아니라고하는 부분, ‘이 사건은 우리가 개입을 해야겠다는 부분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판단인거잖아요. 그 판단 기준이 중요할 것 같은데, 기준이 있나요?

> 기준이라기보다대전제같은 건 있는 것 같아요. ‘과거사건이요. 과거에 해결이 됐었어야 할 문제를 관심 있게 본다는 거. “이건 다시 한 번 짚어볼 문젠데.” 하는 것들. 또 하나는 사람들의 인식을 깨는 문제에요. 예를 들어 어떤 청년이 막걸리를 훔쳤는데, 그 막걸리를 훔친 이유가 감옥에 가고 싶어서였어요. ‘이 청년은 왜 감옥에 가고 싶었을까.’그런 식으로 셜록 사람들 모두가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은사회적 약자’, 그림자에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이렇게 큰 틀에서는 계속재심사건을 할 건데. 재심이라는 것 자체가 되게 힘들어요. 사법부에서 판결까지 나온 걸 다시 뒤집으려면. 재심이 판결됐다는 자체로도 이슈가 돼요. 또 재심 판결은 한 번 했다가, 같은 이유로는 다시 재심 신청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박준영 변호사님도 재심사건을 준비하면 그 재심 신청서만 몇 개월을 써요.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무죄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재판부에서 재심을 결정해요. 그런 사건은 어마하게 많아요. 그래서 누가 봐도 이건 다시 심사든 아니면 재평가든, 법적으로 봤을 때는 재심이 될 거고, 선거법 같은 경우에는, 헌법과 굉장히 대치되는 부분이 많을 경우에, ‘이걸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어쨌든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에 대해 다시 뭔가 논의할 수 있게끔 하는 거죠.

서강>‘셜록에서 꼭 지키겠다는 기자님만의 취재 원칙이 있다면?

>‘대리기자안 되겠다. 다시는 (종편에서의) 그런 일 없을 것 같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취재하고 기사 쓰고 끝내지도 않을 거예요. 제가 채널A 있었을 때, [단독]이라고 자기 기사를 자랑스럽게 내보내도, 그 이후에 취재를 안 해요. 그럴 시간도, 역량도 없고. 긴 호흡으로 기사를 다루면서, 그 후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게 (기자의) 의무인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저는 기존의 언론이랑 다를 바가 없는 거죠. 제가 아쉬웠던 건 광화문에 채널A가 있는데, 채널A 데스크가 광화문의 시민 이야기를 제일 몰라요. 제가 물통을 맞는지, 마이크에 붙어 있는 (회사) 로고를 떼지 않으면 취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원성을 듣는지 등을 잘 몰라요. 아일랜드인 거죠. 그래서 소통은 의무인 것 같아요. 괴롭더라도 제가 계속 악플을 읽는 이유가, 분위기를 알고, 거기에 끌려가지 않게 중심은 잡되, 그쪽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잘못하고 있으면 달게 받고, 잘하고 있으면 힘을 받고. 또 저는 출입처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재 저널리즘이 문제가 있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고. 그래서 출입처가 아닌, 사이드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심지어 언어가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자). 누군가에게는 언어가 없어요. 자기가 왜 억울한지조차도 말씀을 잘 못하세요. 그걸 한참동안 듣고 제 호흡으로 정리하는 거예요. 그런 작업을 누군가 해야 되는 건 맞잖아요. 그래서 언어가 없거나, 힘이 없거나, 아니면 자기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커요. 그걸 계속 표면 위로 올려서 대중을 설득시키는 거죠.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대변하고 싶다는 것.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 의미와 무의미

 

서강> 스토리펀딩 글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이 와 닿았습니다. “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냥움직이면 되는 존재인가.” 어떻게 보면 나라는 존재를 굉장히 무의미한 존재로 만드는 시간들이었을 것 같아요. 기자가 되기까지. 기자님은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나요? 그리고셜록의 기자가 된 지금은,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인가요?

> 우선 저란 사람이 이렇게 생겨먹어서 이렇게 된 거지, 대단한 결심과 계획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거. 오히려 그걸 힘들어 하는 친구들한테 제 케이스로 용기를 주고 싶어요. 그래서 의무감은 있어요. 내가 잘해야겠다는. 나처럼 쉽게 선택한 사람들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저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한테, 나도 이런 노하우로 해왔다는 걸 전수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제가 잘해야 해요. 그래야 무의미가 의미있겠죠? 제가 잠깐 출판사에서 일했는데, 저는 거기서도 미움 받았었거든요.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시키지도 않은 일 왜 안했냐고 하면, “언제 시키셨죠?” 이러면 또 막 말대꾸한다고 막 그랬는데. 제가 거기서대리였어요. 대리라는 직함이 너무 싫더라고요. ‘도대체 나는 누구의 대리인인가. 대리기자가 싫어서 나왔는데’. 이 생각에 사로잡힌 거예요. 그래서 검색해봤어요. 대리 직함의 유래. 과장의 대리인이래요. 놀라운 건 뭐냐면, 과가 없는데 과장이 있어요. 그 출판사는 부만 나눠져 있거든요? 근데 과장님이라고 불러요. ‘과가 없는데, 왜 과장이라고 부르지?’과장이 없는데 내가 대리인거에요. ‘나는 도대체 누구의 대리인거지?’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직급체계? 그러니까 개인이 없는 거죠. ‘도대체 왜 이렇게 불려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의미라고 해야 하나? 그런 회의가 들면서 힘이 쭉쭉 빠지더라고요. ‘내가 대리기자 싫어서 나온 건데, 나를 이명선 대리라고진짜 하하 너무 인생이 웃기다.’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기분 나쁠 수 있겠죠. 대리라는 게 누구한테는 기쁨일 수 있잖아요, ‘와 내가 이제 사원에서 대리가 됐다’. 그런데 그런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개인을 대하느냐의 문제인거죠. 거기서부터 계속 삐딱한 거예요. ‘직함마저 불편할 정도면 나는 어디 가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다양한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도 옵션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서강> 그런 면에서 기자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분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세상의 관점에서)무의미한 것들을 추구하는 삶이 존중받으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정치인가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조금씩 균열을 내야죠.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요즘 재밌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머리를 탈색해야겠다. 기자의 이미지를 다 깨버려야겠다.’ 그것도 하나의 균형을 깨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처음엔 욕하겠죠. 기자면 재킷 입고, 안경 동그란 거 쓰고, 지금의 제 모습처럼 생각하는데 그걸 완전 깨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조금씩 균열을 내면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요? 개인의 차원에서는, 새로운 상황에 자기를 놓는 연습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게 무의미가 의미 있어지는 순간들이 계속 쌓이는 거잖아요? 제가 즐겨듣는 팟캐스트 중 하나가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인데, 거기서 김도인이라는 분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 했던 제안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예스맨이 되라. 영화 <예스맨>이 있대요. 어떤 상황에서도 예스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새로운 상황에 자기가 놓이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예스맨으로 살아가면서, 비관적이었던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이 영화에 쭉 나와요. 그것처럼 모든 사람들한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지만, 이것도 구조적인 문제죠. 과연 청년들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서강> 어려운 것 같아요. 개인이 자신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그런 일이 엄청난 결단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사회가 그런 걸 인정해주지 않아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고요.

> 그런데 의미/무의미가 나눠지세요? 저는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무의미하다’. 감히 우리가 이렇게 나눌 수 있을까요? 무의미가 의미를 가지려면, ‘의미가 없어져야 해요. 저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누군가한테는 그게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잖아요. 무의미하다는 것이 또 의미가 되고. 의미를 가지려면, ‘존중인 것 같아요. 삶에 대한 존중. 어쨌든 저는 제 삶에 대해서 이렇게 규정을 내렸는데, 칭찬도 많이 받지만 비판도 받는 거죠. “시스템에 의한 거고, 그게 효율적이다.” 그 사람들은 그게 의미인거에요. 저는 그게 무의미하다 생각한 거고. 그러면 도대체 나는 왜 이걸 무의미하다고 여겼냐. 글쎄 이것도 어려운데, 제가 전자공학 전공을 때려 친 이유랑 똑같아요. 부품이 되기 싫었어요.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안 행복할 것 같은 거예요. 엄마아빠가 준 이름 이명선이라는 걸 활용할 수 있는, 온전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을 해보고 싶다. 그 중 하나가 기자였고. ‘기자는 사람을 자주 만나고 글을 쓰니까, 성장이 될 거다.’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거죠. 다 소용 없었는데. 그래서 기자가 되기까지 (삶의) 의미는 란 사람으로 서는 거였어요. 온전한 나로 받아들여지는 것. 지금도 제가 생각하는 의미는 같아요. 나란 사람이 온전히 그냥 받아들여지고, 왜곡되지 않고, 복사되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거. 어쨌든 저는 계속 삶을 이 방향 저 방향 선택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큰 틀은 지식인이 되어야지이지만. 지식인이라는 말도 좀 웃기고,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물음을 주는 칼럼니스트. 그게 이제 제 꿈이에요.

  1. 이명선 기자는 지난 2월8일부터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독자들은 전 종편 기자가 종편의 문제를‘내부고발’한다는 취지에 긍정적으로 호응했다. 이 프로젝트는 5,000,000원을 목표로 2017년 4 월 23일까지 75일간 진행된다. (편집자주). [본문으로]
  2. 1. 새끼줄을 쳐서 경계를 정함. 2. (폭력단 등의) 세력 범위; 세력권. 이라는 뜻으로, 각 기자들이 취재하는 주 활동구역을 뜻한다. (출처 : 네이버 사전, 편집자주). [본문으로]
  3. <재심프로젝트>. 박준영 변호사와 전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가 스토리펀딩에서‘재심시리즈 3부작’으로 과거 사건의‘재심’을 이끌어냈다. 모아진 펀딩 금액은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 변론 활동과 박상규 기자의 취재비로 쓰였다. 이 중‘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윤기호 감독의 스토리펀딩을 통해 영화 <재심> (2017)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편집자주). [본문으로]
  4. 셜록’의 목표는“기자는 알리고, 독자는 퍼트리고, 전문가는 해결한다”이다. 일단 기사를 취재하면 실제 변호사와 함께 법적인 절차까지 간다. 이를 두고‘시민단체’가 할 일과‘언론사’가 할 일, 그리고‘변호사 그룹’이 할 일들을 한꺼번에 합쳐서 하는 놀라운‘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말도 있다. (편집자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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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2.14 16:15

 

 

처음 학부에 입학했을 때부터, 대학원생이 되기까지. 내가 목도한 청년들의 삶은 해마다 무언가 하나씩 ‘더’ 포기할 것을 강요받는 ‘N포 세대’의 모습이었다. 캠퍼스 곳곳에 붙는‘시국선언문’이 늘어나다, 급기야 ‘고장’나버린 대의정치를 대면하게 된 지금. ‘공생’의 가치 회복을 외치는 한 학자를 만나 한국사회의 가능성과 대안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재의 시∙공간이 매우 중요한 지점임을 역설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그녀가 한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아래의 대목을 통해 갈음하고자 한다.

우리가 매주 토요일 따뜻한 모자와 장갑을 준비하고 광장으로 나가는 것은 권력을 잘못 위탁하여 좀비와 흡혈귀처럼 될 것을 우려해서이며, 더불어 하는 시공간 속에서 스스로의 인간성을 회복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발명하기 위함이다. 급하게 가다 망하고 있는 나라는 이제 천천히 가는 것을 연습한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을 거쳐 봄이 올 때까지.1)


인터뷰 및 편집 신윤희, 양계영

 

 

Ⅰ. 현 사회의 문제점 - 혼용무도(昏庸無道)2)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선생님께서는 은퇴까지 40여년을 강단에서 교편을 잡아오셨습니다. 그동안 청년세대의 변화를 직접 목도하셨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청년세대가 시기적으로 어떤 변화를 보여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조한혜정(이하 조한)> (저는) 유학에서 돌아와 이른바‘386세대’인 79년부터 가르쳐왔는데요. 당시 대학은 사회를 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데모를 안 하면 병신 취급을 당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나름 공공에 대한 분명한 사회의식이 있었죠. 또한 성장과정에서 동네도 있었고, 친척들 속에서도 살았고, 친구들도 많아서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때로 작당하면서 조직하는 훈련도 되어 있었죠. 그래서 학습하고‘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였어요. 이른바 하면 된다는‘hot한’세대였죠. 90년대 학번에 들어오면 경제가 좋아졌고, TV도 컬러로 보면서 자랐고 대중음악과 PC통신 등으로 개별적 문화를 즐기는‘개인’이 생기기 시작해요. 이들을‘신세대’라 불렀어요. 그 세대나 80년대 끝물의‘개별화’된 세대에서, 서태지가 나왔고 인터넷의 대중화 물결을 타고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탈의 창업자들도 나왔고요. 이들은 굉장히 개별화되어 있고 독보적이고자 한 문화의 시대인들이고‘선배들은 어떻게 한다더라’이런 개념이 별로 없어요. 자기만 있으면 되는 거고, 독창적일수록 좋은 거고, 튀고 싶고. 그래서 대부분 자기표현을 한다든가, 문화적인 것, 고상해 보이는 일을 하고 싶어 했어요. 윗세대가 정치적으로 그랬다면 이 세대는 문화적으로 기성세대를 거스르고 싶어 한 욕망의 세대라 할 수 있죠. 그 세대가 잘 성장하면 한국사회가 제대로 성숙해질 것이라 믿었는데, 1997년 IMF 금융위기를 심하게 겪으면서‘겁에 질린’사회는 오히려 개발독재 세대와 비슷한 생존경쟁의 세대를 형성한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해서 나 혼자, 내 가족만이라도 살아남자는‘(신)자유주의자’들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른바 개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신자유주의 세대의 출현인 것이죠. 생존이 힘들 거라는 공포 속에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필독서로‘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그 중에는 자기계발서를 중독자처럼 읽으면서 공부 했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지금 대학원생들의 세대가 여기에 속하나? 2000년경부터 ‘세계화’에서 대학이 순위를 매기기 시작하고, 대학가서도 모두를 한 줄로 세우는 학점이 중요해지지요. ‘도태하면 죽는다’식의 승자독식, 초 경쟁 시대가 열린 거죠. 대학이라는 게 긴 시간성 안에서 길고 넉넉하게 보고 그 시공간에서 여유 있게 사유하고 토론하고 실험하는 곳인데, 스펙 쌓느라고 정신이 없고 살벌한 곳이 되죠. 이른바 더치페이 문화도 생기고요. 2000년대 중반부터 오찬호 씨의 저서 제목처럼‘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식으로, “나는 너무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안 한 애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대학에 들어오는 것은 부당하다”이런 식의 말을 공공연히 하는 이들도 생겨나죠. 엄마들이“놀러 다니지 마라. 몰려다니지 마라.”라면서 키웠다는데 사실 몰려다니는 것이‘사회’인 거거든요. 그렇게 해서 사회성이 전혀 없지만, 학교에서는 온순하고 고액과외 받으며, 엄마 시키는 대로 한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대학 입시도 잘 하고. 인사도 잘 하고, 놀랄 정도로 고분고분한 세대가 나오는데, 그래서 우리가‘cool’한 세대에서, ‘warm’한 세대로 (바뀌었다고 부르죠). 따뜻한 세대라기보다 눈치를 아주 많이 보고 기성세대와도 마찰을 빚지 않는 미지근한 세대랄까.대략 이런 이념형으로 세대분화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최근 이 양상이 또 좀 변하고 있어요, <노오력의 배신> 책에서도 썼지만‘스펙세대’가“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구나”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 몸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 불안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랄까. 그런 것들이 광화문 집회와도 연결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광화문 시민 집회 시∙공간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공부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 중요한 일들을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책 <노오력의 배신> 표지. (창비 제공)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조한혜정 선생은 “‘헬조선’사태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으로, 이 연구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또한 저자는 책에서“헬조선 담론은 망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고발이며, 이총체적 파국 상황을 해방적 파국으로 바꾸어내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시간과 자원, 그리고 자치적 삶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강>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은‘헬조선’담론, 수저계급론 등 부정적인 정서가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이 유달리 괴롭다고 하고, 분노와 혐오가 많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한> 우리를‘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선망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디가 먼저 망하냐. 사실은 세계 전체가, 인류 진화상으로 거의지구자체가, 망할 가능성이 높아졌잖아요. 기후변화도 모른 척 하고 있고. 그런데‘왜 한국이 유독 더 그러냐’고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가 신민지 근대성으로부터 시작했고, 굉장히 압축적으로 경제성장을 한 나라(라는 것이죠). 거기에‘기형성’이 있어요. 또 한편으로 기형성은‘불균형’일 텐데. 사람을 도구적으로 보는. 사람은 도구적인 존재이면서도, 존재 자체로 소통하는 존재인데. 소통하고 만나는 부분이 계속 무시되었던 거죠. 입시교육, 집, 가족까지도. 엄마와 아이가 눈 마주치면서 노는 것을 안 하잖아요. “너 공부했냐?”그런 식으로. 그것과 입시교육이 함께 가면서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이 온 거죠. 그러면서도 계속 우리는 ‘아파트 공화국’과‘입시 공화국’과‘보험 공화국’으로 산다고 이야기 했는데. 아파트로 돈 벌고,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고. 아파트가 계속 돈을 벌게 하는 식의, 토목, 토건 국가적인 발전을, 토건적 경제발전을 이명박 정부 끝까지 다 말아먹은 형편이고. 그러면서 ‘돌봄’이라든가, ‘상생’이라든가, ‘소통’이라는 영역은 싹 무시된 거죠.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성공과 출세를 위해) 정신없이 굴러온 거예요. 그때는 국가권력자들 뿐만 아니라, ‘386 세대’3) 민주운동을 한 사람들조차도, 자식들을 일류대에 넣거나, 외국에 보내거나 이런 것에 몰입을 했죠.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온당성과 제대로 가는 발전에 대해서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예요. 다 주식투자하고 펀드 하고, 어쨌든 돈만 제대로 벌고, 아이들 입시만 제대로 하고 나면, 보험만 들어놓으면 모든 게 다 보장된다, 이렇게 착각을 했던 거고. 그런 게 ‘세월호’나‘가습기 사건’을 겪으면서‘보험 들어봤자 그냥 죽을 것 같다’는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된 거죠). “우리가 전혀 보호받지 못 하는구나. 우리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구나.”현실을 직시하는 흐름이 생긴 거라고 생각을 해요.


Ⅱ. 문제에 대한 해결 - 종신불퇴(終身􂸝退)4)


서강> 한 인터뷰에서“인간 삶의 핵심은 협동과 관계 맺기”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현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관계의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조한> 학교부터 바뀌어야 되는 거죠. 학교부터 의논하고, 입시교육이 안 바뀌면 안 돼요. 그중에서도‘내신 성적’보지 말라고 해야죠. 내신 때문에 다 학교에 붙어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가족과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은 협동을 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학교는 입시제도에 걸려 있고, 부모들은 입시제도에서 일류대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일류대에 온 친구들은 일류대에 와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지만 대기업이나 이런 곳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죽어라 목매달고 있고. 또 대기업에 간 사람들은 가보니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 순환의 고리가‘겁에 질려서’계속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입시교육을 전폭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학교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들한테는‘바우쳐’를 줘야 해요. 그러면 그런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여서 (대안의) 학교를 만드는 거예요. 그게 실제로 일정하게 산업화하고 난 단계에서‘대안학교’가 생긴 역사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안학교를 못 하게 하죠. 혁신 학교와 같은 조그마한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사교육 시장과 학교가 이상한 형태로 결탁을 하고 있고. 선행학습과 내신 성적을 가지고 가는 한은 이게 안 바뀔 거예요. 그러면 학교를 일정하게 붕괴∙해체시켜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도 대안학교 쪽으로 영역이 열렸었어야 했는데, 우리나라가 지난 20년 간 그런 것들을 했었어야 됐는데, 기회를 놓친 거죠.

서강> 질문의 논의를‘청년 세대’로 좁혀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노오력의 배신> 책에서 말씀하신‘청년 스스로 삶을 꾸려갈 시간, 자원, 삶의 공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조한> 제가 제시하는 것은 청년 자체가 스스로 너무 두려움에 가득 찬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이‘겁에 질린 주체’가 변화되는 데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니까“내가 굶어죽지는 않을 거야”라든가. 겁에 질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 이런 게 필요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5) 이런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냥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바뀌기는 힘들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은 사회적으로 청년부터‘시민배당을’주자. 저는‘기본소득’을 다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같은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다 빨려 먹혀버린 사회에서는 모두가 열심히 일했으니까 (사회가 보상해야죠). 그런 시민배당에 대한 논의가‘피터반스’6)라고 미국에서도 나오는데. 중산층이 이렇게 몰락한 사회에서는 답이 없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은“정말 가난한 사람한테 주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중산층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결국“너무 가난하고 불쌍하고 앞이 캄캄한 사람이니까 돈 준다”이게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이 땅에 물과 공기와 자연을 가진 우리 모두의 권리이고, 어쨌든 태어나면 ‘1’을줘야하는 거지,‘ 0’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그런 논리로 피터반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저는 그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문제는 (이제) 청년들이 풀어야 하는 거잖아요. 청년들이 기후변화 문제도 풀어야하고, 청년 배당을 어떻게 계산할까도 경제학적으로 풀고. 20∙30∙40대가 새로운 논리와 계산법, 인터넷과 글로벌 정보를 통해서 해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일단은 다 줘서, 그들 중 1%만 일을 하면 되거든요? 이건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 중 1%가 계산을 하고, 10%가 농사를 짓고, 10%가 음악을 만들고, 그러면서 자살도 안 하고, 서로서로 돕다보면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거예요. 그거 외의 대안은 없는 거죠. 이것도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처럼 공약 걸고 할 텐데. 그러면 안 돼요. 이런 것일수록 시민사회에서 제대로 실험해야죠.

서강> 선생님께서는“‘권력자가 문제’라고 백날 이야기해봐야… 시민이 지혜로워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건과 집회를 보면서‘시민의식은 높은데, 정치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많이하곤 합니다. 이런 상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조한> 권력자라는 게, 검사도 시민이자 권력자잖아요. 그러니까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검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모두가 전문가로서의 권력, 시민으로서의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는‘국민국가’라는 차원의 시스템은 일정하게 붕괴를 한 거잖아요. 우리가 정치권만 보면 계속 자기네 정권만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국민 국가 시스템을 일정하게 낙후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동안은 (그 시스템을) 가지고 가야하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개인 시민들도 똑똑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많이 나와 줘야 해요. 그래서‘기본소득’을 주든지 해서 그들이 시민이자, 전문가로서 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일단 (시민에게) 선물을 줘야 한다. 군대 같은 것도 사회에 대한 경험을 전혀 못 하게 했으니까. 6개월 마음대로 여행을 갔다 오라고 500만 원을 주든지. 저는 당연히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시 제도를 바꾸세요”라고 100번 이야기해도 안 하면 “그럼 돈 내놓으세요. 우리를 바보 같이 만든 것에 대해 배상 하세요”라고 청년들이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죠. 청년들이 그걸로 다 광화문에 나간다면 가능한 일이겠죠? 그러니까 시민들이 지혜롭다는 것은 서로 모여야 해요. 문제는 대학원 팀 모임을 해도 잘 모이지도 않잖아요(웃음). 모여서‘창의적 공공지대’를 만들어 보면 그게 얼마나 재미있고, 자기가 훌륭해지는지를 아는데,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잘 못하는 거죠).


 

Ⅲ. 공생적 삶을 위한 제안 - 공존공영(共存共榮)7)


 

서강> 한 학회의 키노트 스피치에서 선생님께서는 “투표가 정치적 의사결정이 아닌, 사회적 자기표현 행위가 된다”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대의’가 되지 않는 세상일 터인데, ‘누군가를 대신하여 무언가를 의논한다’는‘대의’가 가능한 것일까요? 그런 ‘대의’가 불가능하다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할까요?


조한> 지금 ‘박근혜 퇴진’이런 것도 다들 잔머리 굴리고 있는 거잖아요. 권력 장기 집권 하려고. 계속 시민들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줘야죠). 모여서 지속적으로 책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책을 꼭 읽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괜찮은 텍스트를 같이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고, 그 사람들이 (함께) 시위에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 동료가 있는 사람 이외에는, 사실 다 겁에 질려서 살 수가 없거든요. 이들은 같이 공부하면서 나가고, 같이 밥 먹고, 애도 같이 키우고. 그런 튼튼한 집단이 있을 때 (가능하죠). 얼마나 신뢰도가 높으냐, 신뢰지수, 소통지수 이런 게 바로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우리가 너무 개별화되어 있으니까 그럴 힘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서강> 결국 모여야 이야기도 듣고, 바뀌고, 이렇게 되는 건가요?

조한> 그런 거죠. 그런데 다 손해 보기 싫고, 그간에 만난 적이 없어서 그게 쉽지가 않아요. ‘우동사’8)라고 청년들이 모여서 70만원으로 살아요. 그 친구들은 같이 사는 게 너무 재밌으니까, 돈 쓸 일도 없고. 돈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 게, 커피 값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랬더니 그 중 한 명이 또 커피 가는 기계를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진짜 70만원이면 너무 재미있게 살고, 애기도 같이 키우고. 밥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밥하면 되는 거고, 청소 좋아하는 사람은 청소하고. 보통은 시장적으로“너 이만큼 했으니까 이만큼 이렇게 해”계산하며 살잖아요? 그런 걸 전혀 안하고 살다 보니까 삶이 완전히 달라져요.

 

서강> 방금 해주신 말씀이랑 연결이 될 것 같은데, 요즘 같이 개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정말‘연대’가 가능하냐는 질문도 받았거든요.

조한> 개개인이 중시되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개개인이 자기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연대는 내가 이렇게 접속을 했다가 싫으면 안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확실하게 있어야 되고,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되고, 협상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개인이 중심이 되는, 그야말로 개인의 욕구가 중심이 되는 게 ‘우동사’고.‘ 후기 근대적인 공동체’인 거죠. 옛날식의 공동체랑은 전혀 (달라요). 그래서‘공동체’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이건 차라리‘사회’라든가. ‘마을’인거죠. 공동체라는 말은 조심해야 될 것 같아요. ‘우동사’도 그렇고 별로 공동체가 아니에요. 각자 살아요. 각자‘모여서’사는거죠. 어떤 학생이 자기는 (그 말이) 싫다고. 5명이 있는 집에 사는데, 2명씩 살거든요 한 방에. 자기는 누가 기분이 안 좋으면 (그 사람을 위해) 감정노동을 해야 되니까. 싫다는 거예요. ‘우동사’에서는 5명이기 때문에 카톡으로“요새 누가 무슨 문제로 기분이 안 좋다. 그런데 나는 오늘 야근을 한다든가, 여유가 없다, 누가 혹시 시간이 되냐?”그럼 누군가“내가 볼 수 있다”고 이렇게 share를 하는 거죠. 그래서 공동체가 아니고, 개별적으로 지혜롭게 의논하면서, 여기서 핵심은‘매주 의논하는 자리’죠. 누가“화장실에 머리카락을 안 치운다, 나는 그걸 해야 하는데 내 친구는 안 한다”든가 그러면 계속 토론을 하면서, 그게 정말 걸리는 사람이 버리고 그런 식으로 회의를 하는 거죠.


서강>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자공공>과도 연결해서 설명이 가능할까요?


조한> 그렇죠. 자기가 있어야 자기를 돕잖아요. 자기를 도우려고 보니까 같이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더불어서 같이 살다 보면 나라가 생기는 거죠. public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그게 국가일수도 있고. ‘국민국가’는 인류의 긴 역사에 길어봤자 5세기? 500년밖에 안 되는 건데. 마치 국가를 가장 영원했던 것처럼 생각하게 한 그 이데올로기는 뭐냐? 그것을 지금 우리가 보는 거잖아요? 국민국가 시대가 이제 저무는 거죠. 한국의 경우에는 식민지 때문에 더욱 더 열정적으로 나라를 원했고. 나라를 위해서 죽겠다고 생각했던 거고요.

책 <자공공> 표지. (또하나의문화 제공)
‘자공공’(自共公)은“스스로 돕고 서로를 도우면서 새로운 공공성을 만들어 가는”것을 뜻한다. 조한혜정 선생은 이 책에서 돈으로만 연결되고, 서로를 미워하는 적대적인 세상과의 결별을 주장하고, 그 대안으로‘창의적 공공 지대’∙‘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를 제안하고 있다.

 

서강> 문화인류학자로서, 선생님께서는‘다양성, 공존’을 말씀해오셨습니다. 왜‘다양성’이 중요한가요?

조한> 인류도 진화하는 시스템이잖아요. 사회도 진화를 하는 거고. 진화의 핵심은‘다양성’이에요. 환경은 항상 바뀌는데, 바뀌었을 때 어떤 다른 게 선택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게 없다. 그러면 그 시스템은 죽는 거죠. 한국의 이 획일성과 입시교육이라는 게 적응력 없는 사회이자, 변화된 상황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못 갖게 한 부분인 거예요. 사회가 계속 가려면 그‘가능성’이 계속해서 생겨야 되는 거죠. 그래서 다양성은 정말 중요해요. 그게 하나의 하위문화subculture를 만드는 거죠. 그래서 사회 환경이 바뀌면 옛날의 mainstream이 더 이상 작동을 안 하게 됐을 때, 메인이 아닌 쪽에서‘이렇게 가면 되는 구나’라는 시도를 하고, 그게 (새로운)main이 되는 거예요.

서강> 나중에 메인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개체들은 지금은 다 마이너인 거잖아요. 물론 이게 존중이 되어야 다 같이 공존하는 사회가 되겠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고 다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듯한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한> 80년대 90년대는 홍대 쪽에 인디∙언더문화가 굉장히 활발했죠. 그게 행복하고 건강한 거예요. 그냥 내버려둘 수 있어야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버려 두질 않잖아요. 그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내버려둬야만 사회가 잘 가는데, 자기와 다른 걸 못 봐서 죽이고 싶다. 이거는 파시스트사회, 적응력이 전혀 없는 사회죠. 그 증오와 미움은 어디서 나오느냐? 자기가 열심히 살면 남 이사 뭘 하든 그게 뭐가 관련이 있겠어요?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는 모든 걸 희생하고 공부를 했는데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미운 거죠. 거기에다가 (사람들이)‘ 겁에 질려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망한 거죠. 그래서 “‘천천히’, ‘겁에 질리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모여서 같이 놀고, 즐기고, 서로를 고마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죠.

서강> 방금 말씀해주신 부분과 연결되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한 칼럼에서, 그런 문제적인 사회에서 우리 사회가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변해야 한다”9)고 하셨는데 어떻게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고, 그 길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조한> 이게 굉장히 근본적인 전환이거든요? 천천히, 어중간하게 하면 안 되죠. ‘천천히’라고 이야기한 것은, 광화문에 나갔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빨리 끝장을 내자. 대통령을 몰아내자.”그런 것으로 (지금의 문제
들이)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죠. 대통령이 하야를 하든, 쫓겨나든 하나의 사건일 뿐이고. 그 뒤에서 (누군가) 정치적으로 훈련이 안 되었음에도, 대통령을 만든 세력들이 있는 거고. 그런 것들을 우리가 다 알아가야 하니까, 천천히 가자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일종의‘숨을 쉬자’는 거죠. 지금까지는 숨을 안 쉬고 달려왔기 때문에. 서로 듣고, 지금까지는 안 들으면서 왔잖아요. 결론 내리고, 토론 하면“너 결론이 뭔지 빨리 말해”“논지가 뭐야?”그런데 때로는 논지를 이야기 안 하고, 돌아가면서 모두 다 이야기를 하면 가장 좋은 답이 이미 나와 있어요. 급하게 빨리 논지를 이야기하니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없고. 결론도 이상한 걸로 나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도 다 신경질이 나서‘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니까 차라리 혼자 앉아서 영화보고, 검색하고. 사실 그런 게 백번 낫잖아요. 사실 (그런 시간이) 전혀 아까운 시간이 아닌데, 대부분은 시간 아까우니까“빨리 컨펌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합시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도구적인 지식을 빨리 내놓으라고 재촉하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거잖아요? 의논을 하면서 가야하는데, 그걸 생략한 이 토건국가의 모습에서 탈피를 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즐겁게’가자는 것은 오래 가려면 분노와, 이상한 소문“애를 낳았다”느니 이런 가십들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거죠. 우리끼리 즐겁게 토론하면서 시대를 읽어가면서 가자는 거죠.

서강> 선생님께서는 페미니스트로서도‘성장’보다‘돌봄’에 강조점을 두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회가 돌봄의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요?

조한> 이 ‘성장, 돌봄’은 좋은 질문인데요. 끊임없이 경제가 성장하고, 내가 성장한다는 것은 근대 신화죠. 지금은 그 근대가 몰락한지 꽤 오래 된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살 거냐? 내가 죽지 않고, 미치지 않고, 좀비가 되지 않고 살 곳은, 나를 자살하지 않게 만드는‘주변의 사람들’뿐이라는 거죠. 내‘비빌 언덕’이 어디냐? 성장이 아니고 지속가능성. 나를 돌봐주는, 그리고 내가 돌보는, 그 관계망. 그게 없으면 살 수가 없다는 거거든요. 결국에 인간사회에 비빌 언덕이 있느냐, 그게 핵심이죠. 그런‘환대, 비빌 언덕’이 없어졌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광화문에 나가는 거고요.

서강> 요즘 저희에게 있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화두입니다. 노동현장에서, 집회현장에서, 연구공간에서 과연 올바르게 사는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선생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조한> 환대의 공간을 찾고, 청년들이 그걸 만들어야 되는 거죠. 우리 <또 하나의 문화>에서는 모임 하면서 텃밭 가꾸는 팀이 있고, 여성들 게스트하우스 하는 친구가 있고. 이렇게 느슨하게, 여차하면 공기 좋은데 가서 집단 이주를 할 수도 있고, 영화도 같이 보고 그런 소모임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 식의 모임들을 기웃거리다가 (참여하거나), 청년들이 원하는 것들도 만들기도 하고, ‘우동사’같은 데에도 기웃거리고. 그래서 저는 학생들한테“너희가 계속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려야 한다. 좋은 데를 만나면 거기 계속 붙어 있어라”고 하죠. 우리가‘곁불을 쬔다’고 하는데 일정하게 곁불을 쬐고, 남의 신세를 지고 그래야 하는 건데. 지금은 신세를 지면 안 되고, 돈도 그때 딱 계산해야 되고 이러니까. 친구도 못 만들고, 곁불도 못 쬐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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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조한혜정,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한겨레, 2016.11.22. (편집자주).
주2)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덮인 것과 같이 온통 어둡고 혼란스럽다. (편집자주).
주3) [386세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 말. ‘386’이란 용어는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386컴퓨터에서 딴 것으로, ‘3’은 1990년대 당시 30대를, ‘8’은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1980년대 학번을, ‘6’은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출처: 두산백과) (편집자주).
주4) 옳고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된다면 몸이 꺾이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편집자주).

주5)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페미니즘,마르크스주의,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저, 제현주 역, 동녘, 2016.09. (편집자주).
주6)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 (기본소득으로 위기의 중산층을 구하다)>, 피터 반스 저, 하승수 편, 위대선 역, 갈마바람, 2016.07. (편집자주).
주7) 함께 살고 함께 번영함. 함께 잘 살아감. (편집자주).
주8)‘ 우동사’는‘우리동네사람들’의 줄임말로 2011년 여섯 명의 청년들이 실험한 주거실험 공동체이다. 현재 인원이 늘어, 인천 검암동에서 30여명의 친구들이‘우동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다. (출처: 웹진 <지지봄봄> 19호,‘ 일상이 예술’인 공동체, <우리동네사람들>, 김진선) (편집자주).
주9) 조한혜정,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한겨레, 2016.11.22.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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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2.14 14:21

 

KBS <유머1번지>, 변방의 북소리, 회장님 우리 회장님, 영구야 영구야, 탱자 가라사대, KBS <개그콘서트> 그리고 tvN <코미디빅리그>까지. 여기 한 시대의 정치풍자웃음을 책임져왔던 이가 있다. 직접 만나보니 그의 직업만큼이나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었다.

웃음은 물과 공기다.” 돌아보니 그는, 그의 웃음 철학처럼, 우리 삶에 물과 공기를 선물하고 있었다. ‘웃을 일이 없는 세상에서 웃을 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퍽퍽한 국민들 삶에 한 평생 웃음을 선물해 온 장덕균 코미디 작가를 만나, 그가 전하는 웃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및 편집 신윤희

 

 

. 웃음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콘텐츠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습니다. (게다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중 웃음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선생님께서 웃음에 매료되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장덕균(이하 장)> 제가 어렸을 때, 70년대 우리나라의 기본적 삶은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때는 사실 풍족하지 않은 시대였고. 모든 면에서 여유 있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에 제가 행복했던 건,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이었어요. 코미디를 볼 때만큼은 저녁 반찬이 무엇이었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무엇이었든 상관없었고. 단칸방에 네 식구가 다 같이 살아도 상관이 없었어요. ‘웃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삶에 유일한, 절대적인 행복감을 주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 어린 나이에 TV속 배삼룡 선배님이라든가, 코미디언들의 웃음을 보면서 저기서 일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80년대 <유머1번지>라는 프로그램에서, 그 시절 국민을 가장 재밌게 해주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웃음이라는 것이 제 삶의 직업적인 것이 됐죠.

서강> 코미디 혹은 웃음이 가지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아마 코미디를 안했으면 삶에 의미가 없었을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상고를 진학했었어요. 우리 때는 실업계 학교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급이 되는 상고들은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 싸인 하나로 은행이나, 무역회사 같은 곳에 취업이 되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 소원이 상고 가서 은행 취직하면 얼마나 좋니?’ 그래서 일단 진학을 했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이게 내 길이 맞는 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판단으로 고등학교 등록을 안 한 거예요. 제가 스스로 인생을 바꾼 사람인거죠. 상고 갔으면 은행권에 취직이 되어서 어떤 삶을 살았겠지만, 전혀 다른 길을 온 거잖아요. 바꾸고 나서 앞으로 너 뭐할 거야?’ 고민을 하다 코미디 작가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그 어린 나이에 코미디 원고를 써서, 아무 신분도 없이 MBC라는 방송국을 찾아가서 당시 피디한테 원고를 보여주고, 작가로 데뷔했어요. (그런 일이) 전무한 일인데. 아무튼 제겐 절대적인 힘을 보여 준거죠. 코미디가. 그때 이쪽으로 길을 바꾸면서 생각한 게,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에 유명해지고 싶다근데 지금 두 가지 다 이뤘어요. (웃음)

 

 

 

사진2 | <코미디빅리그> 포스터. (tvN 제공)

장덕균 작가가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품은 <코미디빅리그>이다.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 붙는다. 17살이었던 장덕균 작가는 (그의 표현대로) 무모하리만치 직접 쓴 원고를 들고 MBC로 찾아갔다가 <청춘만세>라는 프로그램으로 데뷔한다. 후에 KBS <유머1번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으로 우리나라 최초로정치풍자 코미디를 시작한다. 정치풍자집 <YS는 못말려> 또한 최초의정치풍자 책이었다. 편집자주.

 

서강> 코미디/예능은 가장 트렌디하고 창의적인 분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야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일하셨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나름대로 유머감각(?)이나 아이디어를 얻으시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시다면?

> 공부해야죠. 개그에 대한 아이디어, 새로운 표현들을 쉬지 않고 계속 창출하려 노력했어요. 코미디를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는 게 아니고, 일과 후에 친구랑 술을 먹든, 잠자다가 꿈을 꾸든 항상 웃음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뭔가 저기에 아이디어가 없을까. 저는 볼펜하고 메모지가 제 주머니에 꼭 있었어요. 영화를 보러 가서도. 영화관 실내가 어둡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글씨가 안 써져도, 영화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메모를 하는 거예요. 그런 작은 메모지를 모아놓은 것들이 나중에 보면 포대자루로 2,3포대 있고 그랬어요. 그 메모에서 <YS는 못말려> 책이, 또 수많은 코미디 아이디어들이 나왔던 것 같아요.

서강> 작가로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 웃음이라는 게 어느 정도 절제된 선을 잘 지켜가면서 시청자들을 웃겨야 된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담아야 된다.’ 이 두 가지가 제대로 전달되었을 때 희열이 있죠. 우리가 공개방송 녹화를 하지만, 그 현장에서 그분들이 많이 웃어줬을 때, 그건 뭐 진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거든요. 그리고 또 방송이 나간 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 사람들이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요. (웃음) 지금도 언론매체에 실리는 거보다는 전철이나 길거리에서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이야기할 때, 따라하고 그러는 걸 봤을 때는, 정말 아 정말 이 맛에 하는 구나이런 생각을 (하죠).

서강> 작가로서 겪었던 슬럼프도 있으셨나요? 현재 하고 계시는 웃음에 대한 고민이 있으시다면?

> 이런 표현을 가끔 쓰는데 입맛이 없어서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어요. 다 즐겁게 먹으면 되는 거고. 제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좋아해요. 삶에 대해 누구나 고통이 있겠죠. 우리가 표면으로만 보면 저 사람은 아무 고민이 없다그렇더라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나보다 더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내재적으로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장덕균씨는 얼마나 유복한 가정에서 살아서 맨날 재밌는 일만 하고 살아왔느냐고.” 사실 제가 실제로 이런 삶을 살았다고 말하면 놀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말 저만 어렵게 산 건 아니겠지만, 네 식구가 단칸방에서 대학 초년생까지 살았으니까.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셨어요. 술만 마시면 집 다 때려 부수고. 어머니는 애들 교육시키려고 남의 집 가서 일도 하고 공장 다니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거기서 만약에 제가 내 환경은 왜 이럴까?’ 그랬으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못 줬겠죠. 이런 표현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태어난 것은 네 잘못이 아닌데, 이렇게 사는 건 네 잘못일 수 있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죠. 누구나 일을 하다 보면 자기 일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 때가 있겠죠. 그런데 거기에 빠져 있으면 결국엔 자기 손해가 아닌가. 더군다나 제가 우리 개그맨들한테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즐겁게 일을 해야 된다. (괴로워하면서) 시청자에게 우리 것 보고 웃으세요.’ 하는 건 옳지 않다고 하면서, 최대한 저 자신뿐만 아니라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즐겁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서강> 요즘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전통 코미디보다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더 많은 추세인 것 같습니다. 코미디의 위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코미디의 위기라는 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는 몇 년 전부터 이걸 전혀 다른 시각으로 봤어요. (코미디) 편수가 줄었을 뿐이지, (리얼 버라이어티가) 던져놓은 상황에서 출연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 ‘저들은 우스꽝스러운 짓을 할 것이다라는 것을 구성상에 넣는 게 리얼인데, 어떻게 보면 코미디라는 장르는 좀 줄었지만, 사실 코미디라는 원천소스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고 봐야죠. 어떻게 보면 버라이어티가 다 코미디화 되어서 그 숫자는 줄었을 수 있지만, 사실은 내제되어 있는 그 장르적 특성은 엄청 확대된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 코미디에서 활동하던 개그맨들이 리얼 버라이어티로 다 진출했잖아요. <12>김준호라든지, <무한도전>에 아직 정식 멤버는 아니더라도 오리지널 멤버로 활동하는 양세형이라든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위기라 볼 필요는 없고. 맨날 위기라고만 보면, 숨통이 막히는 건데. 어떻게 보면 오히려 활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서강> 코미디나, 예능과 같은 웃음을 소재로 다루는 콘텐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또 이들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 우리가 어떤 조직에 있든 맡은 파트가 있잖습니까? 그걸 잘해줬을 때 그 조직이 융성해지고 발전할 수 있듯이 웃음이라는 부분도, 방송에 교양도 있고 다큐도 있고 다 있지만 코미디는 웃음을 주는, 즐거움을 주는 부분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서양 속담인데 얼굴이 안주다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마찬가지로 예능에 나오는 사람들은, 술을 먹으며 친구와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듯이 시청자들에게 안주가 되는, 술 맛나게 하는 그런 의미로 존재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웃을 일이 없는 세상

 

서강> 요즘 20,30대가 가장 많이 듣고, 또 하는 말이 헬조선이라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삶이 고단할수록 웃을 일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작금의 현실에서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직업이 코미디 작가라 웃음을 매개로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런 제 자신도 웃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많이 따릅니다. 물론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 이외에도, 휴식을 취하거나, 개인적인 일을 볼 때, 또 사람들과 교류를 할 때도 역시 제가 쫓는 것은 웃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웃음이라는 것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어지는 웃음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웃는 웃음, 결국 물과 공기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에 웃음이 없다면 건조한 사막 같은 환경에서만 살아가야겠죠. 폭소를 터트리며 크게 웃는 것도 웃음이지만, 마음속의 어떤 조금의 기쁨이 일어나서 엷은 미소를 짓는 것도 웃음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처해 있는 환경이 힘들어, 큰 폭소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미소라도 지을 수 있는 그런 삶의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한 없이 건조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갇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서강> 웃음에 대한 형태가 다양하겠지만, 웃을 일이 없다고 할 때 흔히 정치를 많이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정치가 국민에게 어려움을 준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풍자가 특히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최초로, 그리고 꽤 다양한 정치 풍자 유머집을 발간하셨습니다. 정치 패러디(풍자 패러디)의 의미와 역할,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물론 이런 생각을 국민들이 다 하겠죠. ‘경제라든가 이런 부분이 어려워졌을 때, 팍팍한 삶의 숨통을 좀 트이게 하려면 위정자라든가,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쟁(政爭)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켜야 (되는 것이 아닌가).’ 말로만 일자리 창출이고 어쩌고 그러는 거는. 그냥 말에 그치고 있잖아요. 실제로 젊은 사람들이라든가, 또 나이 드신 분들의 재취업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제가 <YS는 못말려> 책을 쓴 게 벌써 23년 전입니다. 그 당시에 이런 바람은 있었어요. 정치인들도 여유 있는 조크도 좀 하면서. 여야가 대치하고 싸우더라도. 좀 더 유머러스한 표현,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하면 좋지 않을까). 23년이 지난 작금의 현실을 볼 때, 아직도 여·야는 시대가 어느 시댄데, 세상이 이렇게 바뀐 상황에서도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은 그런 대치와 막말을 서로 주고받고 있고. 사실 이런 모습들이 삶이 힘든 국민들을 더 짜증나게 할 수 있죠. 제가 이런 책들을 내면서 바람이 있었던 것은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이었죠. 항상 이야기하지만, 꼭 폭소만이 아니라. 그런데 지금 정치는 오히려 폭소를 주잖아요. 어이없는 웃음. ‘저 사람들이 정말 투표로 뽑힌 국회의원들인가?’ 생각이 드는, 수준 이하의 그런 것들을 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우리 국민들의 삶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이겠죠. 우리도 경제가 컸다고는 하는데. 정치적인, 혹은 어떤 정치인들의 행태는 아직도 국민들 눈에 미흡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3 | <YS는 못말려> 표지. (미래미디어 제공)

이 책의 서문에서 장덕균 작가는 다수 대중의 삶에 대한 욕망과 (정치권력에 의한) 사회·정치적 욕망이 위배될 때, 하나의 욕구불만으로서 정치 패러디가 생산된다.”고 했다. 편집자주.

 

서강> 정치풍자 유머집을 으로 발간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하고 술을 한 잔 먹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최고 권력층인 대통령을 가지고 정치풍자집을 내면 왠지 느낌이, 대박이 터질 것 같다.’ 생각하며 저 혼자 메모를 했어요. ‘나중에 써야지.’ 그런데 다음 날 술이 깨니까 그때가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절인데, ‘지금 내가 제목을 재미있게 지어서 가령 두환이는 골 때려이런 제목으로 책을 내면, 어디 끌려갔다가 두드려 맞고, 경부선 철로에 변사체로 발견되지 않았을까.’ 그때는 그런 의문의 죽음들이 많은 때였잖아요.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취임 연설을 하시더라고요. “위대한 문민시대에~” 저는 그 위대한 문민시대라는 말에 이제 됐다. 적어도 이런 책을 내도 누가 잡아가고 그러진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책을 출간하겠다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말리더라고요. ‘, 말이 그렇지 너 큰일 난다.’ 그래도 문민시대, 국민을 믿고. ‘국민들이 나를 보호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출간을 했죠. 그런데 기대했던 것에 10만 배 이상의 반향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책이 나온 게 모든 일간지 1면 톱 기사였고, KBS 9시 뉴스에도, 외신에도 보도됐어요. 아마 당시에 국민들은 그 책을 보면서, ‘이야, 진짜 민주화가 됐구나! 말로만 민주화가 아니라. 이제는 이런 책을 쓴 작가가 안 잡혀가는구나.’ 그런 실증을 제가 보여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강> 혹시 정치풍자를 하는 과정에서 외압같은 것을 겪기도 하셨나요?

> 없을 수가 없겠죠. 사실 권력자들의 주변과 그 밑에는 그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항상 있을 거 아닙니까? 정치 풍자 내용이 나갔을 때, ‘권력자들이 얼마나 안 좋아할까그런 눈치를 보겠죠. 권력 당사자께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내가 정치 풍자 대상이 되어도 좋다.’ 그렇게 말해도. 그 밑에 사람들은 아이고 또 그분 마음이 불편하시면 안 되는데하는 거죠. 가령 제가 많은 TV매체에서 그 시대의 정치 풍자를 할 때, TV 관리 책임자들이 넌지시 자기들 이야기는 안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경우나. 사실은 거론되는 거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5공화국때는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TV프로그램인데, 저희가 그 시대를 대놓고는 못 표현하니까 제1공화국 이승만 대통령 때 이야기를 빗대서, 그 시대 설정을 해놓고 요즘 정치를 풍자하려고 했었죠. 녹화 전날 리허설 리딩까지 다 하고, 녹화 당일 날 스튜디오로 갔더니 그 세트를 없애버렸더라고요. (웃음) 우리가 세트 뜯었다고 하는데, 밤새 세워놓은 세트를요. 결국은 마지막 단계에서 방송사 고위층이 이거 좀 안 했으면 좋겠다뭐 이런 것 때문에 (웃음) 세트가 없어졌더라고요. 녹화하지 말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방송을 아예 못 냈던 적도 있었고. YS 정권 때도 당시에 YS의 차남 되는 김현철씨 문제가 언론에 불거졌을 때에요. 그런 문제를 풍자하는 걸 했는데. 당시에 사극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고 있어서. 고전 왕실을 무대로 옮겨서, 그곳을 무대로 현실 정치를 풍자해보자. 그래서 17분인가 녹화를 했는데, 방송은 고작 2분 나왔어요. (웃음) 위에 사람들이 편집 전에 녹화된 테이프를 보고 야 이거 빼라, 저거 빼라하고 나니까 2분 남더라 이거죠. (웃음) 그래서 제 친구는 야 너 새 코너 한다고 해서 내가 보려고 했는데,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끝났더라.” (웃음) 2분밖에 안 나갔으니까 화장실 갔다 오니 끝난 거죠. 그러다 결국에는 그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졌어요. 그런 어려움들이 많았죠.

서강> 정치 풍자 패러디 코미디를 만드실 때, ‘풍자 유머(양보할 수 없는) 선생님만의 원칙이나 비결이 있으셨나요?

> 어떤 장르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정치를 풍자한다는 것은 내가 어느 한 쪽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런 것은 아니에요. 철저하게 국민적 시각에서. 국민이라는 게 생각이 다 다를 순 있겠죠. 그런데 중요한 건. 대다수의 국민이 가진 보편적 정서, 국민들이 정치를, 정치인들의 행태를 바라보는 바람, 그런 기준에서 씁니다. 그러니까 양쪽을 다 알아야죠. 한쪽에 편향되지 않게. , 풍자라는 게 장황하게 앉혀놓고 설명하면, 그건 풍자적 요소가 결여된 거잖아요. 풍자는 임팩트 있는 포인트를 잘 잡아서 던졌을 때 시청자들이 , 이거는 뭘 이야기하려는 거구나그리고 나도 이런 것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집었다.’ (생각하게끔 하는 거죠). 누구나 사실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답답함에서 풍자를 접근하는 거거든요. 작가도 그렇고. 그것을 보고 공감하는 독자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포인트를 제대로 집어서 압축성 있게 전달해주는 것. 제가 하는 일은 코미디니까. 거기에 거칠고 상스럽지 않으면서 피식혹은 큰 웃음 터트리면, ‘이야 이거 제대로 집었다.’ 이런 걸 작가로서 창출해냈을 때 혹은 독자나 시청자들의 반응이 왔을 때, 희열을 느끼며 정치풍자를 하는 것이거든요. 물론 그 문제 저변에는 우리 정치가 조금 더 나아져야겠다.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아야겠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있죠.

서강> 요즘 정치 패러디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치 풍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 TV라든가 어떤 매체로만 보면 옛날보다 사라진 게 사실인데, 사실은 요즘에 다른 매체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인터넷 포탈이라든가, SNS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래서 사실은 패러디가 많이 사라진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홍수를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해요. 하나로 집약되지 않은 것뿐이지. 지금은 풍자 전문 작가뿐만이 아니라, 일반인 중에도 대단한 풍자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재야의 많은 분들이 있어요. 옛날에는 사실 그들이 표출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묻혀만 있었잖아요. 지금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전문작가가 아니어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기존 단일 매체 ‘TV’라든지 이런 곳에서 정치드라마라든가, 코미디들이 없어진 상황이 됐는데. 이건 뭐 결국은 정책 당국자의 의지죠. 그 사람이 이런 게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시절엔 방송국 사장이 풍자를 왜 안 하냐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던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풍자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설사 대통령이 나를 풍자삼아서 해라고 말했어도 다 필요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실제로 표출할 수 있는, 매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장해주지 않으면 사실은 어렵죠. 현실이 그래요.

 

. ‘웃음이라는 이름의 가능성, 혹은 대안

 

서강> 웃을 일이 없는 심각한 사회현실에서, 웃음이라는 이름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웃음이 가능성이나 대안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어떤 형태일까요?

> 사실 저는 웃을 일이 없어이건 결국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이 없다고 생각해요. 무슨 이야기냐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웃으려고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그 웃음 속에서 행복감이라는 걸 (느껴야 되죠). 폭소는 아니어도 옅은 미소라도 지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은 남을 통해서, 재미있는 친구를 통해서, 저 코믹한 웹툰을 통해서라든가. 그리고 내 자신도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거든요. 내가 남을 도와주면, 그 사람이 좋아서 미소 지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웃음을 준 것이고. 사실은 그런 운동을 범사회적으로는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노력은 하면서 살아가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에요.

서강> 이렇게 웃을 일이 없다는힘든 시기일수록 웃음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특히 더 무겁고 커지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웃음을 생산하는 이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의무는 무엇인가요?

> 제가 외국에 나가보니까 현지에 있는 유학생들한테 저를 소개하면 코미디빅리그 너무 좋아합니다라면서 실시간 인터넷 채널을 연결해서 다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코미디빅리그> 출연자들이 지방 공연만 가도 전석이 다 매진되는데. ‘이민 가서 사시는 분들을 우리가 한번 찾아가보자.’ 그러려면 많은 경비들이 필요할 거잖아요. 그런 제 꿈을 이야기했더니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이 도움의 길을 만들 테니 한번 추진해보자(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계획을 실제로 외국에 가서 하려고 하는데 보러 오실 거예요?’하면 다들 표가 매진되고, 난리가 날 것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사실 상업적인 공연을 하려면 여러 번 공연을 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의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웃음을 만드는 이들의 의무라고 생각을 하고, 역할이라 생각해요. 저희도 순도 높은좋은 웃음을 드리려고 끊임없이 일주일을 고민하고 하니까. 이것을 더 적극적으로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뭔가 찾아가는 서비스를, 웃음을 가지고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서강> 순도 높은좋은 웃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 웃음에 욕심을 내다보면 조금 과한 표현이 들어갈 때도 있어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분이 있단 말이에요. 열이면 열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겠죠. 그러나 그 중 지양해야 될 것은 줄어야 된다는 말이죠. 불편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처음에 두 명이 불편했다고 하면, 다음에는 한 명 정도만. 이런 식으로 줄여나가는 거죠. 물론 이상점은 어느 한명도 코미디 프로를 보고 마음이 불편하거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하는 그런 웃음을 만들고자 하는 게 저희 지향점이에요.

서강>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 우선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코미디빅리그>가 시청자 여러분들의 사랑, 관심으로 뿌리를 내렸잖아요. 진짜로 감사한 일이고. 앞으로도 <코미디빅리그>라는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찬란한 코미디 프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려는 목표가 있어요. 또 아까 말씀드렸던 해외 공연. 전 세계에 우리 국민들이 다 있잖아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그분들 피부 가까이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실제 눈앞에서 (코미디를) 펼쳐줘서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다음 목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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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6.06.08 12:19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비장애인’인 선생님께서 어떠한 계기로 장애문제에 관심을 갖고 장애인운동에 연대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책을 통해 1996년 발생했던‘에바다복지회 비리사태’를 접하게 되어서, 선생님께서 장애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셨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계기에 대한 선생님의 구체적인 단상이 궁금합니다.

 


김도현 활동가(이하 김)> 에바다복지회 비리사태1)가 벌어졌을 당시 저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사실 저도 그때까지 장애인운동 현장을 직접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애문제를 운동적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특별한 각성이 없었어요. 선배들과의 소규모 세미나를 통해서 당시 한국 전체 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 졸업 학력 이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건데 왜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까라는 정도의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96년도 말에 에바다복지회 비리사태가 벌어졌고, 시설 내부에서 벌어진 비리나 폭행, 의문사가 드러나면서 원장이 구속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점차 잊어가고 있었죠. 그런데 97년도에도 에바다 투쟁을 시작했던 선생님과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해아래집’이라는 공동체를 꾸리고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걸 알게 되었어요. 끝나지 않은 에바다복지회 문제를 보면서 장애문제가 단순한 것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조직된 힘이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학교 다니는 내내 에바다 투쟁과 관련한 활동을 계속 하게 되었죠. 그 시기에는 어떤 면에서 제대로 된 장애인운동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물론 장애인단체는 많았지만 장애인단체가 다 장애인‘운동’을 하는 단체는 아니거든요. 사실은 장애단체 중 다수는 자조단
체나 이익단체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에바다 투쟁을 할 때도 지속적으로 결합한 장애인단체가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시민단체나 인권단체, 지역의 노동단체와 연대해서 투쟁을 했거든요. 지속적으로 투쟁에 결합했던 유일한 장애인 단위가 노들장애인야학2)(이하 노들야학)이었죠. 그러다 보니 저도 인연이 닿아서 노들야학 교사들과 식구들, 박경석 교장 선생님과친해졌죠. 학교 졸업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와중에 경석 형님이‘너 어차피 임용고시도 안 칠 것 같고, 뭐 할래? 여기서 같이 무언가를 도모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에바다 투쟁에서 만났던 노들야학을 통해서 장애인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진거죠.

서강> 사회운동의 주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그주체가 반드시 사회문제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장애인 운동을 하시면서 느꼈던 어려운 점들이 있었나요?


김> 소수자 운동이나 정체성의 정치라고 표현될 수 있는 영역에서 그러한 정체성을 지닌 대중들이 운동의 일차적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저는 장애인운동의 주체이기는 하지만‘내부적 연대자’로서의 주체이죠. 차이는 분명히 있죠. 노동자운동이든, 여성운동이든, 빈민운동이든 어떤 운동에서도 저는 당사자 중심이라고 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기본이기 때문에 운동의 목표는 아닌 거죠. 그 원리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목표인 것이지 그게 목표가 되는 순간 왜곡이 일어난다 는 거죠. 당사자 중심성을 가지고 무엇을 이룰지를 내세워야 하는데, 목표가 당사자주의가 된다면 왜곡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거죠. 비장애인인 제가 장애인운동을 할 때 겪는 어려움이라… 글쎄요.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는데 어떤 조직이든 뭔가 활동을 하는 거잖아요. 그럴 때 나타날 수 있는 갈등적 요소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소수자 운동과 비교해 보았을 때, 사실 장애인운동 내부에는 내부적 연대자들이, 그러니까 비장애인들이
많이 결합되어 있는 편이죠. 그건 두 가지 맥락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전통적으로 장애라고 하는 영역 자체가 운동을 통해 구성된 생태계였다기보다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형태의 단체가 많이 만들어졌던 측면이 있지요.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이건 굉장히 잘 들여다봐야 하는 데, 운동이라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여러 자원들이 필요하잖아요. 사회적 경험일 수도 있고, 학습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역량일수도 있고.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장애인들은 굉장히 많이 배제되어 왔다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그런 측면에서 또 비장애인의 연대가 필요한 영역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비장애인 활동가가, 누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활동에 있어서 실무적인 면이나 정보력, 활동력에서 장애인보다 더 많은 걸 갖게 되는 경우가 있죠. 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저 사람이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은 사회적 경험을 갖고 있고 더 많은 실무를 하기에, 운동이나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비장애인 중심으로 될 때 발생하는 갈등이 있을 수 있고요. 반면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실무자로서 일할 때 부담을 더 떠안게 되는, 약간의 미묘함이 사실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민주적으로 어떻게 잘 풀 수 있느냐가 그 단체가 건강하게 갈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인 것 같고요. 그런 지점 말고 원천적인 지점에서 제가 비장애인으로서 가지는 한계는 딱 그거에요. 내가 장애인으로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같이 공감하면서 발언을 했을 때 그때 발생하는 원천적인 한계 지점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저 같은 경우도 그런 점에 있어서 완벽히 자유롭지 않지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까 그게 제 고민의 화두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것보다 오히려 운동의 열악함으로 겪는 어려움이 훨씬 컸죠.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 드리자면요, 제가 2000년부터 노들야학을 시작했고, 예상도 못했는데 2001년부터 장애인 이동권 투쟁3) 이 시작되었어요. 1990년대 말에 거의 와해되었던 장애인운동이 이동권 투쟁을 시작으로 복원되기 시작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현장 투쟁의 조직, 동력이 다 와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동권 투쟁을 할때 중심이 될 만한 조직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장애인이동권연대라는 연대 조직이 꾸려졌을 때 전문적인 운동조직도 아닌 노들야학이 연대체의 간사단체 역할을했었어요. 상근자라고는 딸랑 한 명뿐인 조직이 말이죠. 그리고 2003년쯤 발산역에서 장애인 한 분이 지하철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시다가 추락해서 사망한 사고가 있어서, 제가 장애인 한분과 함께 광화문에서 선로 점거 투쟁을 했는데, 에바다 투쟁으로 집행유예가 걸려 있던 상태에다 괘씸죄가 플러스 되면서 그때 구속이 되었어요. 구속이 된다는 걸 알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경석이 형이‘야 너 내일 구속되지? 성명서 쓸 사람이 없다. 네가 규탄 성명서 하나 쓰고 들어가라.’이러는 거죠. 이게 재미있는 에피소드인데, 그래서 김도현 구속을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제가 스스로 쓰고 들어간 거죠.(웃음) 초기에는 장애인운동이 잘 구축되어 있던 상태가 전혀 아니었기 때
문에 뭐 하나하나가 다 정신이 없었어요.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활동가라는 면에서도 그랬고요. 사실 장애인운동을 이야기하면서‘세상이 장애인의 속도에 맞춰야한다. 변해야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세상의 속도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역으로 우리 내부의 속도가 너무 정신이 없었던 거죠. 그러면서 생겼던 어려움, 소통의 문제가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서강> 장애문제나 장애인운동에 있어서의 어려움들을 사회에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데, 오히려 기존의 주류 매체나 언론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보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매스컴이나 주류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는 장애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BeMinor4)(이하 비마이너)를 통해 알게 되는 사실이 많은데요. 발행인으로서 비마이너를 발행하게 된 계기와 비마이너의 취재방식과 운영방식이 궁금합니다.


김> 사실 운동을 할 때 사회 구성원이 특정 사회문제에 대해 어떤 이해와 인식을 갖고 있는지는 굉장히 중요하죠. 이동권 투쟁을 처음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투쟁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좀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이동권 투쟁을 할 때는 선로를 점거한다든지, 버스를 점거한다든지, 도로를 막거나 행사장을 점거하는 등의 점거 투쟁들이 많다보니까, 이동권 투쟁과 관련하여 여러 인권단체들, 사회단체들과 연대를 할 때 일부에서는 이 측면을 우려했었어요.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투쟁 방식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만들어지면서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닌가 하고요. 그때 노들야학의 교장인 경석 형님이‘나는 오히려 욕을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욕을 한 바가지가 아니라 한 트럭이라도 먹어서 그런 식으로라도 이 문제가 이슈가 되어서 텔레비전 토론회라도 한 번 나왔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만큼 장애문제는 논의나 토론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담론 공간이나 언론에 대해서 굉장히 갑갑함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경석 형님이 그때 얘기했던게 자기 소원은 MBC 백분토론에서 장애문제로 토론이라도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지난 15년 동안 지상파 방송에서 매주 하나씩 의제를 선정해서 토론을 했지만, 그동안 장애문제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직접 비마이너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비마이너 창간초기에는 솔직히 장애인운동의 투쟁들을 알리는 것만으로 벅찼는데, 6년째 되어가니깐 어느 시점부터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하는 독자는 누구일까?’한편으로는 비마이너 매체가 장애인운동의 활동을 기록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장애문제
를 잘 모르고 관심을 갖지 않는 대중에게 더욱 초점을 맞춰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사실을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통해서 어떤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확실히 독자들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서강> 장애라는 개념이 규정되는 방식과 관련하여‘장애’의 주류적인 정의는 사회적인 담론을 구성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진 비장애인들에 의해서 뭉뚱그려서 정의되곤 하는데요. 그로 인해 육체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이‘장애인’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환원되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라고 규정되어 묶인 다양한 사람들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주체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김> 이 질문이 제일 어려운 것 같네요. 일단 정체성이라고 하는 게 어떤 역할과 연결되기도 하고, 내 몸의 차이와 연결되기도 하는 등 사람은 다양한 여러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그 중에는 강하게 느끼지 않는 것들도 많이 있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중에 어떤 것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있고, 중심적인 정체성으로 뾰족하게 솟아오르거나 부각되는 것도 있고.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정체성이 왜 중심적인 정체성으로 나타나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아마도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겠죠. 어떤 정체성이 부각되고 중심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사회적 억압이나 차별과 맞물려 있다면, 사실 이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형식의 정체성 표출은 어떤 식으로든 저항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체화를 의미하는 단어‘identification’에서‘identify’는‘확인하다’, ‘발견하다’는 뜻이 있거든요. 결국은 내 삶의 가장 중심적인 부분에서 어떠한 사회적인 차별과 억압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정체성이 구성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내가 장애인으로 살면서 차별과 억압이라는 걸 발견하고 확인했을 때 드러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표현은 저항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단순히 거리 투쟁과 같은 저항뿐만이 아니라, 연극 등의 예술적인 방식일 수도 있고, 글쓰기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일 수 있겠죠.

서강>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범주가 등장하고, 그것이 사회적인 배제와 낙인으로 작용하게 된 이유는 노동을 통한 생산의 극대화를 위해 표준적인 육체를 필요로 하는 산업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보시는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하는데요. 그나마 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하더라도 생산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당하는 장애인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한 번씩 장애인실태조사라는 걸 전국 단위로 해요. 이때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혹은 오해할 만한 통계 수치가 있어요. 노동과 관련된 걸 보면 장애인 실업률이 비장애인의 2배, 임금 수준은 절반으로 나와요.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실업률이 일반적으로 3~4%정도이고, 장애인 실업률은 이에 두 배라고 해서 7~8%로 표현되거든요. 100명 중에 7명 정도가 실업자라고 표현되는 건데, 문제는 장애인 같은 경우 2/3정도가 비경제활동인구예요. 이미 2/3, 60%이상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배제된 거죠. 그 나머지 부분에서 실업률을 잡으니까 7~8%정도의 실업률, 그러니까 92~93%의 취업률이 나오는 거죠. 사실 실업률, 취업률이라는 것이 장애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비경제활동인구를 빼지 않고 전체 노동 가능 연령 인구 중 취업한 사람의 비율을 따지는 고용률(employment to population ratio)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결국 장애인의 고용률은 35%정도가 되는 건데, 사실 이것도 허수가 많이 있죠. 어쨌든 문제는 장애인 중 2/3정도가 구조적으로 노동 자체에서 배제가 되어 있는 상황인데, 이에 대해
현 자본주의 사회가 적극적인 대책이나 방안을 제시하고 있느냐? 역사적으로 장애인이라는 범주 자체가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지요. 그래서 장애인 노동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접근은 상당히 근본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일단 한국의 경우 장애인 노동 문제를 다루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라는 게 있고, 이 법의 핵심은 장애인의무고용제도5)에요. 장애인들이 워낙 구조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있으니까 할당제를 두는 거죠. 현재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3%, 민간 기업은 2.7% 정도의 의무 고용률을 부과하고 있어요.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 게 사실 하나의 문제이긴 하죠. 그리고 의무고용제도 잘 안 지켜지는 것은 강제성이 약하기 때문이에요.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고용부담금을 내도록 하는데, 매년 변동이 되긴 하지만 이 고용부담금이 최저 임금의 60% 수준이에요. 그러다보니 대기업 일수록 그냥 법을 지키지 않고 부담금을 내고 말아요. 한국에서 고용부담금을 제일 많이 내는 기업이 어디냐하면 바로 삼성이에요.(웃음) 반면 프랑스
같은 경우 한국과 비슷한 의무고용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부담금을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을 해요. 중소기업은 최저 임금의 2배예요. 그들 입장에서는 의무고용제를 안 지키고 부담금을 내는 것보다 장애인을 고용해서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게 더 나은 거죠. 대기업은 최저 임금의 3배가 되요. 이런 방식으로 의무고용제가 강제성을 갖도록 하는것이 일단 1차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에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은 노동을 점점 덜 필요로 하게 되고, 노동을 축출해나가
는 양태가 벌어지는데,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시장에만 맡겨지는 게 맞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상식이 되는 최소 규범을 담는 것이 법이잖아요. 최상위의 법인 헌법이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라고 규정하는 것이 있어요. 교육과 노동. 저는 교육은 권리이면서 의무인 그 위상에 나름대로 걸맞게 굴러간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국가가 의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것을 공적인 영역에서 다룬다는 거죠. 교육은 공교육 시스템이 있고 플러스 알파로 사교육 시장이 있는 거예요. 그런
데 노동은 전부라고 할 만큼 그 대부분이 민간시장에 맡겨지죠. 그러니까 노동할 권리는 노동시장에서 각자 알아서 쟁취해야 하고, 공공근로나 사회적 일자리 같은 공공영역은 쥐꼬리만큼 플러스 알파로 덧붙여져 있고요. 그런데 노동 역시 헌법이 규정하는 권리이자 의무라면 교육과 마찬가지로 공적인 영역에서 보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적인 노동의 구축이 함께 가지 않으면 장애인 노동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동권 문제를 이야기할 때 교통약자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이때 장애인, 노
인, 임산부, 어린이 등을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노동문제도 노동약자라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지금의 노동약자는 장애인을 포함해서 청년이고 여성이고 이주민이고 청소년일 수 있죠. 즉 모든 이들의 노동이 보장되는 일종의‘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노동이 공적인 영역에서 보장되는 일종의 공공시민노동 체제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어떠한 목표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서강> 언젠간 지하철을 타다가 어느 부부의 옆에 서게 되었는데, 그 두 분이 수화로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보고 되게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왜 나는 수화를 교육받아본 적이 없을까’하고 자문해본 기억이 납니다. 장애계에서는 점자나 수화와 같이 각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다양할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사회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김> 방금 농인의 언어를 얘기해주셨는데, ‘언어권’이라는 걸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언어권이라는 개념은 다민족사회에서 소수민족이 자기의 언어를 지키는 과정, 나의 모국어를 가지고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걸 말하거든요. 그런데 언어권이라는 게 사실은 우리가 갖는 권리의 인식 체계 안에서는 자유권으로 인식이 되지요. 저의 경우라면 제 모국어인 한국어로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건데, 공권력이 나타나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저에게 영어만 사용해서 사회생활을 하라고 강제하지 않는 한 제가 제 언어권을 침해받을 일은 없죠. 그런데 동일한 어떤 권리가 다수자에겐 자유권인데 소수자에겐 사회권일 수 있어요. 이동권을 생각해 봐도 그렇죠. 이동권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자유권이죠. 그런데 어떤 장애인들에게는 이동권은 사회권이에요. 이미 대중교통 체계 자체가 비장애인의 관점에 맞춰져 있다 보니 어떤 유형의 장애인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해요. 이때 사회권이 되는 거죠. 언어권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농인들이 자신의 모국어인 수화 언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억압이 있었어요. 농인들에게 수화가 아닌 구화(口話)를 통해서 교육을 시키고 구화를 사용하도록 강요했거든요. 그래서 그 시기에 교육을 받은 농인 분들 중에는 상대방의 입술 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 독순(讀脣)을 하는 분들이 계셔요. 그렇지만 이게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또 자신의 모국어인 수화를 배울 기회는 잃어버리고 억지로 구화를 통해 소통을 하다 보니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지금은 그러한 억압적 정책이 철회가 되었지만, 농인들의 언어권에서 중요한 지점은 그것을 사회권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거죠. 즉, 단지 이제는 구화를 사용하도록 강요하지 않으니까 된 것이 아니라, 농인들이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적극적 정책이 필요하죠. 그렇기에 수화를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사회 서비스가 필요해요. 수화 통역이죠. 한국에 서의 활동보조서비스6)는 신체장애인들 위주예요. 활동보조 서비스가 영어로‘personal assistant service’, 즉 각 개인의 필요에 맞춘 개인별 지원
서비스거든요. 그럼 농인에게 필요한 활동보조서비스는 뭐냐 하면 자신의 언어권을 실현하기 위한 서비스죠. 우리나라 높으신 양반들이 외국 나가서 돌아다니면 그분들은 의사소통의 장애를 경험하지 않는데, 그게 그분들이다 영어를 잘해서는 아니잖아요. 그분들에게는 통역서비스가 적절하게 제공이 되니까 장애를 경험하지 않죠. 그런 식의 조치가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또 다른 측면으로 우리가 의사소통이라고 했을 때 잘 떠올리지 못하는 영역이 있는데, 그게 지적장애인이나 자폐성장애와 같은 발달장애예요. 그러니까 발달장애인이 지니고 있는 의사소통 체계나 방식이 또 다른거죠. 저는 어떤 면에서 보면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문제는 농인의 문제와 같진 않지만, 유사하게 볼 수 있는 지점도 많다고 생각해요. 법무부가 2013년 말부터 시행한 제도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진술조력인 제도라는 거예요. 발달장애인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형사절차상에서 불이익을 당할 확률이 높잖아요. 경찰 및 검찰조사 과정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또 형사와 검사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이러한 상황에 처한 발달장애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진술조력인이에요. 쉽게 말해서 한편에 발달장애인이 있고 다른 한편에 비장애인인 형사와 검사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이들의 소통을 매개해 주는 사람이 지원되는 거죠. 비장애인의 말을 발달장애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고, 또 발달장애인의 얘기를 파악해서 형사와 검사에게 전달하고. 진술조력인제도가 굉장히 괜찮은 제도인데,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하는 건, 발달장애인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형태의 매개자가 단지 형사절차상에서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거죠.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장애라고 하는 건 어떤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위치해 있는 거죠. 신체적 장애인이 버스를 못 타는 장벽은 그 사람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버스와 나의 몸 사이의 관계에 있는 거죠. 그 관계를 바꿔주면 장애가 없어지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지체장애인은 몸에 손상이 있어서, 장애가 있어서 버스를 못 탄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사실 의사소통의 장애도 그 사람의 몸에 있는 게 아니라 관계 안에 있는 거죠. 그 관계 안에 존재하는 장벽, 그게 사실 장애(disability)예요. 사회적 장애가 있고 신체적 장애가 있는데, 사회적 장애는 신체적 장애에 의해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사회적 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제도일 수 있고, 물리적 변화나 서비스일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구조를 바꾸거나 제도를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유권이 아
닌 사회권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죠.

서강> 사회적 차별과 억압, 배제를 당하는 장애인,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에게 필요한 것은 타자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깊은 공감과 그것을 위한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장애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근본적으로 어떤 새로운 답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제도와 개인의 감각, 감수성, 인식이 분리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맞물려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경석 형님이 장애인 인식 개선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비장애인들도 종종 그런 것처럼) 장애인도 불금이나 주말에 지하철 막차에서 오바이트하는 걸 보여주는 거라고 말해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장애인의 일상이 비장애인의 일상과 섞여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 교통에서부터 공부하는 교실, 직장 등의 공간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일상을 함께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식 개선이 된다는 거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일상의 공간으로 나올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죠. 두 번째로는 장애인 문제를 타자화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의 문제로,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가 중요하겠죠. 요즘 보험 광고를 굉장히 많이 하는데, 예전에는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위해서 보험을 들라고 광고를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라고 이야기하면서 광고를 하거든요. 어차피 우리는 생의 어느 시기에는 일정한 장애를 경험하며 살다가 죽는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고령화 사회가 되다보면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장애인과 같은 몸을 갖게 되고, 교통약자가 되는 거죠. 실제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영어권에서는 ‘탭’(TAB, the Temporarily Able-Bodied)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요. 누구나‘일시적 비장애인’, 곧‘예비 장애인’이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점이 지니는 한계도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그걸 평소에 생각하거나, 생각하고 싶어 하지는 않잖아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고 싶어 하지는 않거든요. 또 성차별의 문제를 생각해볼 때 이와 같은 관점으로 본다면 여성문제는 남성에게 무관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죠.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남성이 여성이 될 리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여성문제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과의 관계의 문제라고 인식해야 하는 거죠. 우리가 보통 여성문제가 해결이 되려면 남성이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이건 남성이 여성문제와 무관한 존재가 아님을 잘 드러내주지요. 그러니까 여성문제에 여성이 한 일방이라면 다른 한 일방은 남성이라는 거지요. 이 두 가지 지점을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결국 장애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비장애인 혹은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비장애인 남성인데 제가 장애문제와도, 여성문제와도 무관한 존재가 아닌 거죠. 이 양자를 같이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1) 최성창을 비롯한 최씨 일가가 사유화한 경기도 평택시의 에바다복지회가 운영하는 에바다학교와 에바다농아원, 에바다장애인복지회에서 벌어졌던 비리와 인권유린 사태.(출처:한겨레21,박래군의 인권 이야기)(편집자주)
2) 교육의 기회를 놓친 장애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확대하기 위한 취지 아래 1993년 개교. 노들장애인야(野)학은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차별받아온 척박한 장애성인의 삶을 비틀어 보고 억압된 현실에 맞서, 이를 변화시켜 낼 수 있는 당사자 스스로의 생각
과 실천의 힘을 기르기 위한 교육사업 및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음.(출처: http://nodl.or.kr/)(편집자주)
3) 이동권(Rights of Mobility)이란“어떠한 목적으로 이동을 할 때,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그 수단 및 동선을 확보함에 있어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2001년 1월 말, 수도권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수직형 리프트 추락사고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됨. 2004년 말 이동권이 하나의 권리로서 명시되고, 저상버스 도입의 의무화가 규정된‘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됨. (출처:<당신은 장애를 아는가>,김도현 지음, 메이데이, p.90~98)(편집자주)
4)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장애인이 처한 현실과 어려움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2010년 1월 창간된 인터넷 매체.(출처:http://www.beminor.com/)(편집자주)

5) 비장애인에 비해 취업에 어려움이 많은 장애인의 고용촉진을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주에게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의무
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담금을 납부하게 하는 제도.(출처: 고용노동부 홈페이지)(편집자주)
6) 활동보조서비스란 식사, 옷 갈아입기, 용변 보기, 씻기, 휠체어 오르내리기, 외출, 컴퓨터 작업, 전화나 대화 등 의사소통, 사무 등 다양한 일상 활동에서 어려움
을 겪는 중증장애인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는 유급의 인력이 활동 보조를 수행하는 것. 활동보조인에게 지급되는 급여의 재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
체가 마련.(출처: 위의 책, 김도현 지음, 메이데이, p. 145)(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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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6.04.21 13:24



인터뷰 및 편집 황민아, 양계영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감독님께서 작년에 기획하셨던 제17 회 서울 변방연극제1)의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니 굉장히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국가 폭력으로 발생한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자 한종선 선생님 이야기, 성노동자들의 연극, 기업화된 대학에서 억압받은 학생들의 이야기, 쪽방촌 사람들의 삶, 이중적 국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꼬마 화교인 이야기, 고정된 성적 정체성의 범주를 벗어나 있는 퀴어의 이야기 등 공연 프로그램 구성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임인자 예술감독(이하 임)> 변방연극제를 오랫동안 해왔어요. 제가 11년 간 변방연극제를 맡고 이제는 새로운 예술감독이 선임되었는데요. 변방 연극제가 처음엔 실험연극제의 정체성으로 시작했었기 때문에 어떤 주를 이루는 연극적인 문법과는 다른 것들을 추구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연극의 형식적인 실험들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져 있었어요. 연극이라는 게 사회에서 어떤 진공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탐색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놓여있는 위치나 그런 것들을 연극으로 담아내는 것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본격적으로 예술 감독은 2010년부터 맡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사회와 연극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도시’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많이 했어요.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장소의 기억들과 현재의 동시대성을 생각해보는 작업을 했었고요. 그러다가 2012년도에 연극 없는 연극, 정치 없는 정치라는 주제를 가지고 예를 들면 88년도에 초연한 광주 5.18을 다룬 < 일어서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광화문 광장에 초청해서 공연을 했었죠. 그리고 사카구치 교헤의 <움직이는 집>이라는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거주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워크샵 프로그램도 했어요. 2013년도에는 <숙자 이야기>라는 평택 기지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개막작으로 올리게 되었고요. 또 형제복지원 한종선씨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을 변방연극제에 올리게 되었어요. 특히 이 두 작품을 올리면서‘그동안 내가 경계라는 설정을 안과 밖을 가르는 것으로만 여기고 변방 연극제를 진행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변방을 안과 밖의 개념에서 최전방을 외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변방이란 안과 밖의 문제가 아니라, 안과 밖 그 밑에 깔린 압사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형제복지원 사건 같은 경우는 특히 감금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그래서 변방의 의미라는 것이‘그 안에 깔려 있는 것들’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변방 연극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있어서 경계의 모습을 단순히 이슈를 통해 찾는 것보다는 지속적으로 변방의 의미에 대한 화두를 던지면서도 예술가들의 작업들을 폭넓게 수용해나 가고, 누군가에게는 금기시되는 이야기를 비출 수 있는 통로로 변방 연극제를 기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서강> 제 17 회 서울변방연극제는 특별히 정부나 정책적 지원금에서 벗어나 순수후원과 모금을 통해 운영되었는데 이와 같은 운영방식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임> 사실은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문제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경계의 안과 밖을 오가면서 자유롭게 예술적인 주장을 해나가는 것에 있어서 정부의 후원이라는 게 바람직한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 요. 지원을 받는건 물론 좋은 일이에요. 사실상 예술의 공공성을 인정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지원하는 것이고, 그것이 굉장히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저항으로서의 목소리나 혹은 다른 목소리들을 낼 때, 정부의 지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게 바람직한가에 대한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도 정부의 지원을 완전히 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걸 바로 실행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올해 개막작으로 준비했던 성소수자분이 직접 제작하는 연극을 올리는데 있어서 공연을 올리지 못했던 일이 있었어요. 이런 경우 지금의 사회적 인식들, 특히 혐오 문제를 공연으로 담을 때 만약 예술가들에게 어떤 상황이 생겼을 경우 기획자로서 누군가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예술가들에게 제약을 가하는 것보다 예술가들과 함께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금으로부터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상당히 어렵잖아요. 그래서 작년 3월 달부터 모금학교를 다녔어요. 왜냐하면 그 전에 실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 전에는‘변방연극제라는 이름으로 모금을 하면 그래도 누군가는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모금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프로그램을 짜고,“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적 제작”을 표면하면서, 다른 방식의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서강> 예를 들어 17회 변방연극제 프로그램 중에서 성소수자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공연이 있잖아요. 이와 같이 타인의 작품을 빌려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연극과 달리 직접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공연, 연극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 가질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임> 사실 연극이 전문 영역임에는 틀림없어요. 그러나 연극의 무대가 연극배우들만의 영역이라는 생각은 굉장히 근대적인 생각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일상의 문제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전달이 될 때, 형식적인 것들이 예술사조를 타고 흐름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요. 지금 현대의 흐름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무대 위에 올라올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의 주체로 사건의 당사자들이 충분히 무대로 올라올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와 같은 작품이 그런 화두를 던졌다고 생각해요. 또한 <숙자이야기>의 양공주 서사 같은 것이 결국 우리 사회에 어떻게 다가오는가에 대한 문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 것 같아요. 단 한 번의 무대로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건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드러나지 않은 서사에 관한 무대가 좀 더 연극의 전문가들과 만나 형식화되고 다양화 되면서 하나의 목소리가 될 수 있고 동시에 예술 사조로서의 흐름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무대로 올라올 수 있고, 연극을 할 수 있죠.



서강> 개인적으로 함민복 시인의‘모든 경계는 꽃이 핀다’라는 시 구절을 좋아하는데요. 저는 애매모호한 경계의 속성을 통해 새로운 것에 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어서 경계 혹은 주변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감독님께서는 변방이나 주변성에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 바라는 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임>예전에는 경계를 정서적인 개념이나 지정학적인 개념으로 많이 판단했던 것 같아요. 사실 경계도 인식의 문제인데, 경계가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중심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자유롭고, 한편으로는 존재하고 있지만 감각되고 인식되어지지 않은 것들이 경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중국 단동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도시 자체가 중국과 북한을 잇는 일 때문에 발전을 하고 있더라고요. 중국 단동에서 무언가가 개입되면서 그 경계에서의 일이 중단이 되는 특수성을 보면서 경계라는 것이 앎이나 지식으로써는 지정학적인 부분이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행위나 그것 자체로써의 인식은 긴장감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래서 건강한 경계의 역할이 중요하기도 하고요. 모든 중심도 계속 흘러가야 되는 게 틀림없고, 경계 역시도 마찬가지이고요. 연극도 일반 드라마로 구성된 연극의 서사보다는 숨겨진 서사들, 인물들을 찾아내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것이죠.


서강> 근래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 과정에서 나타난 불투명성, 부산국제영화제에 외압을 가하고 있는 부산시, 지난해 문화예술위원회 제작 지원 작품으로 선정되었지만 외압을 받았던 연극‘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와 같이 각 예술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예술에 대한 외압과 검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현정부의 문제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지, 비단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덜해질 것인가와 같은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임> 사회는 굉장히 안전한 테두리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한 치라도 그 경계를 벗어나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문제라고 지정을 해버리는거죠. 그래서 누가 정의할 수도 없는 정의를 가지고 지금도 사회 에서 어떠한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여겨지고, 어떠한 생각은 삭제되고 밖으로 내쳐지는 거죠. 그래서 테두리 안에서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저 사람들이 왜 저러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러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욕심을 부리는 걸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인간은 안전한 테두리 안의 질서 속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감각하는 존재로서 경계를 넘어서 행동하고 사고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자유롭게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하는데 안전한 테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거예요. 이와 비슷한 독재와 검열을 그래서 저는 반대하는 거죠. 독재와 검열의 주체에 국가만 있느냐? 저는 공모자도 있다고 생각해요.‘저 사람들은 지저분해. 없어졌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이 사실상 이런 검열을 일으키는 것이죠.‘왜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려고 하지? 논란은 안 돼’와 같이 사회적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검열을 행한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런 태도는 사회를 아주 공고히하고 하나의 중심적인 질서를 추구하기 때문에 예술은 그것에 대해서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가장 자유로운 사유들을 제공함으로써 사회를 오늘과 내일로 이끌어가는 게 예술의 역할이잖아요. 예술적 상상을 통해서 사회의 중심 질서를 고착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 속에서 계속 질문하고 감각을 체현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예술이라 생각하거든요. 이게 어떤 이념의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원초적이고 중요한‘자유’라든지, 이런 것들이 가능하도록 같이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죠. 하나의 질서에 동조하는 공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죠. 그래서 예술이 되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그 보이지 않는 흐름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법이나 제도나 정치라는 것들이 참여의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문화나 생각들이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다고 봐야 되거든요. 그런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감각은 예술을 향유하는 행위로서 다른 것들을 감각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요하고요.



서강> 얼마 전 한국에서 예술인이라고 지정된 사람들의 평균 월급이 무척이나 적다고 보도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예술인을 위한 복지 정책의 필요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쟤네는 딴따라이고,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는데 왜 지원을 해주냐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사회적 인식과 정책적 뒷받침의 필요성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서 감독님의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임> 공연예술 같은 경우에는 문화 경제학에서는‘비용질병’이라고 해요.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물을 생산할 때 생산물에 필요한 돈을 지불하고 노력을 하면 이익이 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연예술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잖아요. 매일 연습이 필요한 공연 분야는 제조업과 같이 어느 정도 투자를 하고 나면 이익이 생겨나는 구조가 아니고, 계속적으로 투자를 해야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에요. 그러다보니 그 규모가 산업화된 구조가 아니라서, 가격과 산출물들을 생각했을 때 공연 때문에 연습하고 일한 비용이 티켓 가격으로는 나오지 않는 결과가 발생하는데 이게‘비용질병’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예술을 지원해야하는 이유가 발생하게 된 거에요. 특히 기초예술 분야에서는 산업적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는 비용질병이 발생하기 때문에 경제의 논리로만 봤을 때 기초예술 분야가 자연 도태되는 것이죠. 이러 한 문제 때문에 정부가 후원을 통해 지원하는 거거든요. 공연예술자체가 그런 경제학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우 및 여러 창작들이 자신이 일한 만큼의 수입을 가져갈 수 없는 것이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본 논리들이 예술복지법과 같은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프랑스 같은 경우는 사회 보장제로써 창작행위를 하다가 휴식을 할 경우에도 그것에 대한 실업급여가 나온다고 알고 있어요. 왜냐 하면 예술행위를 하게 되면 배우들은, 특히 누군가로부터 선택을 받아야만 일을할 수 있는데 그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요. 이처럼 예술분야가 실상은 불안정한 직업군이기 때문에 그 비는 시간을 국가가 지원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그것에 따른 세금의 납부라는 것이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고, 공동체 역시 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같이 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시급한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에 예술인 복지도 열악한 상태에요. 그리고 예술분야는 특히‘누군가는 굉장히 돈을 잘 벌고 있는데, 왜 예술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지?’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복지 정책과 같은 원리들이 승자독식이 아닌 고립된 사람들한테 주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승자독식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지원제도로 운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태이죠. 하나의 무슨주의로 얘기할 수 없는 사회의 복잡한 면모가 예술의 구조적인 불균형 문제에도 그대로 녹아나 있어요. 예를 들면 비정규 문제나, 여러가지 문제가 얽혀있는 판국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안에서 어떠한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가 중요하죠. 또한 편으로는 예술분야에는 도제식으로 운영되었던 전통이 있으니까, 사실 저 같은 경우에도 고백하건데, 축제를 운영하면서 인턴 분들한테 합당한 지급을 제대로 못한 적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 문제를 인식하 고 나서부터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그런 실수가 저한테도 역시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예술의 지원 문제들이 단순히 무엇인가를 진행하기 위 한 정책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에 얽힌 복합적인 문제들을 안고 함께 논의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 정부는 한류와 같은 엔터테인먼트적인 문화 산업들을 너무 강조하면서 그쪽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초 예술들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데, 기초예술이 없으면 예술의 내일은 없거든요. 지금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는 것들도 누군가가 고독하게 고뇌했던 시간들이 농축되어 하나의 무대로 만들어지는 거고 하나의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쌓인 시간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내일은 없는 거죠.


서강> 예술계가 외부적인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불공정 관행, 열정페이, 착취구조 등 문화예술계 내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모순 혹은 불합리에 대해서도 민감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 다. 혹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내부적인 노력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임> 내부적인 움직임은 있어요. 예술인소셜유니온(Artists Social Union)이라는 단체가 있고요. 청년 예술가분들은 청년 예술가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특히 요즘에는 예술대학을 다니는 학생들 같은 경우 무 분별하게 학과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는 하는데, 사회의 수요를 어떠한 정책에 대입해서 실행하는 경우이죠. 내일을 끌어다가 오늘을 사는 정책이 계속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오늘을 내일로 끌어가나가는 정책이 아니고. 계속 학생들을 오늘이라는 규격 안에 가두게 되면 학생들이 내일을 향해 나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느끼는 학생들이 같이 모여서 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사실 예술은 자기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없으면 사실 진정한 의미의 예술이 나오긴 어렵다고 봐요. 그게 있어야 진정한 딴따라도 되고. 그 수련은 보이는 수련도 있고, 보이지 않은 것도 있을 수가 있겠죠. 그런데 지금의 청년들은 수련을 할 수 있는 장의 제공으로부터 박탈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예술적 수련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아직 무르익지 않은 것을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냐고 하겠지만, 무르익지 않은 것들에 지원이 닿아야만 그 다음에는 스스로 성장해 나갈 수 있거든요. 예술감독이라고 하면 남들이 보기엔 잘 살거



라고 생각을 하는데, 저 역시도 축제를 하면 늘 빚을 지거든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계속 해야 되고. 예술을 해야만 하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되었든 예술가들의 흐름이 좋은 목소리를 만들 어내는 걸 기대해봐야죠. 단일한 주장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저는 좀 더 다각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어요. 연극인 분들도 연극인재단이 있어요. 물론 정부와 가깝긴 하지만, 민간인들이 만든 이후에는 자유롭게 긴급한 상황에도 지원할 수 있는 형태들에 대해서 고민을 해 나가고 있고요. 여러분들도 그런 자율적인 움직임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월급을 받으면 후원도 하시고(웃음). 그런 것들이 맞물려서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서강> 앞으로 진행하실 계획이 있는 프로젝트나 하고 싶으신 공연이 있나요?


임> 올해는 8월 달에 혜화동 1번지에서 8명의 연출가들과 함께 세월호 사건을 다룬 연극 시리즈를 할 생각이에요. 두 번째는 검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쓰고 하는 일을 작년에 했는데, 예술가의 본업은 작품으로 말 하는 것이니까 6월 달부터 10월 달까지 <권리장전 2016-검열각하>라는 시리즈로 약 20편의 작품이 검열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 발표가 이루어 질 예정이에요. 그래서 거기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연극인을 위한 재단을 만드는 게 제 꿈이지만 지금은 작은 지역을 연구를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작은 책방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1) 서울변방연극제는‘연극’이라는 공동체에서, 삶의‘무대’에서,‘온몸’으로, 이쪽, 저쪽이라는 경계 짓기를 너머, 배제되고 억압된 다양한 주체들의 존재가치 회복, 살아가기와 실천으로서의 예술, 우애와 환대로서의 만남과 토론을 통해 상실해버린 감각의 회복과 전환, 공동체에서의 새로운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2015년에 열린 제17회 서울변방연극제는‘변방은 최전방’이라는 시각에서, 최전방의 순수예술플랫을 통해“십오원오십전”이라는 주제어로 현재 한국사회에 제기되는 소수자와 혐오, 차별과 배제, 소외된 노동과 자본의 문제, 경계에선 주체들, 기업이 된 대학, 대감금의 역사 등 나와 다른 것에 대 해 혐오와 배제의 감정으로 넘쳐나는 한국사회 동시대의 구조와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출처:http://mtfestival.org/2015/intro0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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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12.08 01:31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콘텐츠를 만들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전달할 수 있는 영역은 무척이나 다양한데 그 중 방송사 예능 PD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권성민 PD(이하 권)> 어렸을 때부터 콘텐츠 만드는 일을 버릇처럼 해왔다. 만화 같은 것도 계속 그렸고, 소설 같은 것도 쓰고 연극도 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으니까. 그러다가 사실은‘피디가 꼭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마침 대학교 졸업할 시기 즈음에 MBC 예능 PD 공채가 떴고, 한 번 써봐야지 해서 써본 것이 입사로 이어졌다. 콘텐츠 만드는 일은 학생 때부터 늘 계속 해서 그런지 막상 예능국에 들어가 보니 엄청 새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처음 입사한 날이 2012년에 MBC노조가 170일 파업을 시작한 날이어서 예능국에서 이런저런 걸 느끼기에는 굉장히 어수선했다. 나도 얼마 안돼서 바로 파업에 참여하였다.

서강> 개인적으로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무한도전>을 즐겨본다. 얼마 전 <무한도전> ‘우토로 마을’ 특집을 보면서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와 사회적인 이슈를 동시에 다루는 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능프로그램이 재미와 사회적 이슈를 조화롭게 담아내어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권> 어렵다. 일단은 김태호 선배가 <무한도전>에서 사회적인 아이템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사람들에게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한 아이템을 한다고 해서 <무한도전>의 헤게모니가 무너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무한도전>은 탄탄한 기반 위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하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이고 자기 위로가 되는 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는 ‘이게 문제다. 이게 잘못됐다. 이게 개선되어야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특히 예능으로 풀기에는 어렵다. 사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영역에 있어서는 약자에 속하지만, 또 그 밖의 굉장히 많은 영역에 있어서는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빈곤한 남성은 경제적인 차원에 있어서는 약자지만, 젠더의 측면에 있어서는 어쨌든 남성의 영역(주류의 영역)에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빈곤의 문제를 다룬 콘텐츠에는 와 닿겠지만, 젠더의 문제에 있어서는 불편할 수 있는 거다. 기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송곳> 같은 드라마보다 <그녀는 예뻤다>, <응답하라 1988>를 더 보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희’를 위해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사실 예능은 시청자를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능의 본연은 어쨌든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거니까 그 본 기능에 충실 하는 게 맞고, 예능을 통해서 사람들을 교화하겠다는 태도는 굉장히 바람직하지 못 하다고 생각한다. 나영석 PD가 “한 번씩 쿡 찔러주는 역할을 하는 게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 또한 동의를 한다. 예를 들면 전혀 사회적인 예능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빠! 어디가?>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아빠! 어디가?>라는 예능이 할 수 있는 일은 ‘자. 아빠가 애들이랑 이렇게 놀고 있는 모습을 봐. 귀엽지? 사랑스럽지? 재밌지?’라고 보여주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사회에서는 이게 안 될까?’라는 질문이 따라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저렇게 못 하지?’라는 질문의 대답을 예능이 해줄 필요는 없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들은 위정자들이 해야 한다고 본다. 학자들이, 지식인들이 해야 되는 거다. 그게 예능이 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서강> 어떻게 보면 예능이라는 역할이 되게 쉽고, 얄미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능이 문제제기를 해놓고, 해결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게 예능의 한계라고 생각하는가.

권> 한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예능은 재미를 잃기 시작하면 그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게 예능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능한테 그걸 요구할 필요는 없다. ‘예능이 이렇게 재미있게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데, 좀 더 그러면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이야기할 수 있도록 뒤로 빠지지 말고 얄밉게 하지 않으면 안 되냐’ 물을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예능PD들한테는 그런 의무가 없다. 물론 언론인이긴 하지만 언론인이라는 타이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예능PD이기도 하다. 그건 대부분의 예능 PD들의 자의식인데 스스로를 ‘딴따라’라고 부르면서 조금은 자조하는 분위기도 있다. 예능PD는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라는 임무를 받고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대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역할에 충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예능 같은 포맷에서는 ‘어 쟤가 나를 가르치려고 드네?’라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 때 사람들의 마음에는 거부감이 훅-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는 (예능이) 조금 얄미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서강> 현재 타파스2)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제작하시는 웹드라마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웹드라마에서 염력을 쓰는 주인공 정규가 치안 유지를 위해 초능력을 쓴다는 설정만 놓고 보면 한국형 코믹 액션 히어로물 같다. 하지만 주인공이 놓인 사회적 상황은 다소 심각하다. 국가가 치안을 사유화한 상황,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상황 등 드라마의 사회적 상황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는가?

권> 일단은 그 드라마가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서 (웃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드라마 기획은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실태 고발을 위한 콘텐츠이다. 사람들한테‘이런 노사정 합의안이 적용됐을 경우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이 처하게 될 현실은 어떠할까’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기획의도였다. 그런데 그냥 노동이슈를 이야기하는 건 재미가 없으니까 일단 사람들이 보게 만들려면 어떤 요소를 넣어야 할까 하다가 ‘히어로물’같은 장르는 웬만하면 사람들이 보니깐. 별 재미가 없어도 특수효과가 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어~~”하면서 본다. 그래. 그러면 그런 요소. 대중들이 크게 지루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포맷에다가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이슈를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히어로 액션물로 설정하여 제작했다. 드라마에서 히어로 노동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짧게 총 4화로 기획을 하고 거기서 다룰 수 있는 메인은 실제로 임금 피크제가 시행이 됐을 때 어떤 방식으로 기업이 저성과자들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몰아붙여서 해고할 수 있는지를 히어로물을 통해 풀어보려고 했다.

 


서강> 방송사 시스템을 벗어나서 독립된 환경에서 콘텐츠를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오히려 더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었는지.

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일단 방송사 예능 쪽만 하더라도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 중 비정규직이 반 이상인 것 같다. 대부분 비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이다. 방송국은 어쨌든 콘텐츠 제작을 굉장히 오래 해 온 곳이니까 PD는 정말 딱 연출만 하면 된다. 연출하기 위한 모든 제반 조건들은 말만 하면 다 해주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연출 외적인 행정 요소들도 다 처리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PD들 중에서 자기 통장에 다달이 월급이 얼마 들어오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방송국 밖에 나가서 혼자 제작하려면 섭외부터 촬영, 효과, CG, 미술 등을 다 직접 해야 한다. 로케이션도 내가 직접 찾아가서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고. 또 방송사는 ‘음반저작권협의회’랑 저작권 계약이 되어있어서, 아무 음악이나 그냥 가져다가 쓸 수 있다. 그런데 방송사 울타리를 나오면 음원 하나 쓰는 것도 굉장히 큰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SBS, KBS, MBC처럼 시작부터 방송사였던 회사들은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곳이다. 그게 방송사 시스템의 장점이고, 반대로 단점은 방송사도 사실은 대기업의 조직 구성이라서 개개인이 지켜야 하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또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정말 해볼 수 있는 기회는 PD 정년 중에서 많아봐야 2, 3번이다. 나머지 기간은 기존에 있는 프로그램에 로테이션 들어가는 거고. 어쩌다 내가 하고 싶은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해도 프로그램이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여기저기서 간섭과 조직 구성원으로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엄격한 심의와 제작에 돈이 많이 들어가니깐 광고, PPL도 어쩔 수 없이 제작비 때문에 넣어야 한다. 나는 솔직히 제작비가 없으면 없는 대로 찍을 마음이 있는데 그게 회사 매출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내가 원치도 않는 광고를 얻어준다. 그러면 그걸 또 지켜야 한다.

서강> 방송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지금, 자유롭게 만들고 있는 콘텐츠는 무엇인가.

권> 사실은 MBC에 입사하기 전부터 늘 콘텐츠를 만들어왔기에 방송국을 벗어나서 콘텐츠를 만드는 경험이 엄청 새롭지는 않다. 옛날에 하던 것을 다시 하고 있는 기분이다.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를 만들기 직전에는 <트루맛 쇼>랑 <쿼바디스>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신 김재환 감독님이 지원해주신 제작비로 신촌에 있는 오래된 장소들, 그 공간에 있는 주인공을 통해 신촌 다양한 공간성을 드러내는 기획을 해보고 싶어서 <신촌 기억전>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을 했다. 현재 첫 편까지 만들었다.‘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술집이 있는데 그곳의 공간성이 조금 독특해서, ‘아름다운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한 편을 만들었다. ‘신촌 독다방’이라든지 이런 곳들을 하려고 섭외를 하고 있던 차에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를 시작하게 돼서, 잠시 중단한 상태이다. <신촌 기억전> 프로젝트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그래서 제작할 때 재미있다. 시간이 잘 간다. 일단 만드는 게 즐겁기도 하고. 사실 대본도 금방 써서 하루 만에 찍어서 이틀 만에 만들어서 냈는데, 그게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보다 반응이 훨씬 좋다.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는 사람들이 많이 보게끔 하기 위해서 생각한 요소를 일부로 맞춰서 기획을 한 작품이고 <신촌 기억전>은 그 반대였다. 사람들 반응을 신경 쓰고 만든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보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만든 <신촌 기억전>의 반응이 훨씬 더 좋더라. 기획의도라는 게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서강> <신촌 기억전>처럼 추억 어린 공간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재밌는 것만 하면서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화가 나는 일들이 많은 세상인 것 같다. PD님께서는 2014년 인터넷 사이트‘오늘의 유머’에 MBC 세월호 보도 형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서 정직 6개월 조치를 받으셨다. 세월호 사건은 PD님께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였는가.

권> 이 일에서 사람들이 느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비슷한 것을 느꼈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굉장히 좋지 못한 보도를 했던 방송사에 소속된 직원들 중 한 사람으로서 왜 그런 보도가 나갔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해고가 되고 나서도 어차피 영상을 만들 수 있으니까 하고 싶었던 말을 영상으로 계속 만든 거고. 세월호를 위해서 릴레이 단식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니까 같이 했던 거고. 사는 대로 살되, ‘야 진짜 이건 아니지.’싶은 것만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기로 어느 정도 가치관을 정립한 것 같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이상한 건지 내 생각이 바뀐 건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한국 사회 안에서‘솔직히 이건 아니지 않나?’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 사건에 대해서 의혹이 있는 부분들은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세월호 유가족들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고..... ‘..이건 진짜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MBC를 비롯한 언론사들의 보도들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났고 나 역시 MBC 직원으로서 MBC에서 그런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내부적인 상황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죄송하다고 말한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고 생각한다.


서강>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연대’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영상들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 해결을 위한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가 클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작 다르더라.


권> 연대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해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여기저기 고공농성을 하고 계신 노동자 분들 되게 많다. 언론에서 하나도 안 다뤄줘서 문제인 거지. 고공농성에 대해서 아무도 모른다. 관심도 없고. 그런데 수학여행 때문에 아이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침몰해서 죽었고, 여기에 좀 미심쩍은 게 있으니 설명 좀 해달라고 해도 사람들이 저렇게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세상인데 기업이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한 일에는 과연 누가 공감을 해줄까? 고공농성, 단식 투쟁은 어떻게 보면 사람들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측은지심조차 없는 사회인 것 같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람들을 억압하는 방법들도 바뀌었다. 옛날에는 곤봉을 휘둘러서 때려잡고, 고문실에 데려가서 물고문을 했지만 지금은 그냥 밥줄을 끊고 있다. 여기에 맞서는 방법들을 아직 사람들이 찾지 못한 것 같다. 밥줄을 끊어 놓고 ‘네가 무능한 거야’ 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사람들도 ‘그래 맞아. 네가 무능한 거야’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거다. 오로지 자기 계발서가 베스트셀러인 시대인 사회에서 저마다 자수성가의 꿈을 꾼다. 개인의 상황에서 봤을 땐, 굉장히 아름다운 상황일 수 있다. 먹고 자는 거 줄여가면서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본인이 열심히 해서 대가를 얻겠다는데. 그런데 오로지 나만 보는 게 문제이다. ‘그래 내가 지금 이렇게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있지만, 나중에 이 시간들을 아름답게 그리워하면서 바라볼 수 있는 나날이 올 거야. 보상받는 시대가 올 거야.’ 그런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니까 대가를 받지 못 하는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네 탓’으로 돌려버리는 거다. 즉 사람들은 ‘나도 언젠가 이 고통과 노력을 보상 받을 거야. 그런데 쟤는 지금 비정규직이야. 그럼 그만큼 노력을 안 한 거야. 그래서 보상을 못 받은 거야.’라고 생각을 하는 거다. 이런 관점에서 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구조를 개선해 달라고 하는 이야기는 무임승차가 되어버린다. ‘나도 비정규직이 되기 싫어서, 이렇게 굶고 2-3평 밖에 안 되는 고시원에서 잠 줄여가며 개고생하면서 살고 있는데, 너는 왜 비정규직이면서 그 정도 노력도 안 한애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떼를 쓰냐. 너는 나만큼 노력했니?’ 이런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거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야. 배가 그냥 침몰해서 죽은 거야. 왜 떼를 써? 정부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다. 한국 사회는 지금 그런 사회인 것 같다. ‘연대’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이 타인의 일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월호 사건에 분노하지만, 나는 감히 세월호 사건에서 아이들을 잃은 부모님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정말로. ‘네 일이라고 생각해봐.’ 라는 말만큼 힘이 없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일이 아닌데? 내 일이 아닌데 어떻게 내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다. 나는 내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할 수 있을 만큼만 해도 세상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자기 계발서 시대에 사람들이 개인의 탓으로 모든 원인을 돌리는 이유는 구조가 잘못됐다고 느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바꿀 수 있고, 내가 선택할 수 있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개인에게 집중하기 시작하고 구조를 안 보기 시작하는 거다. 그래서 무력감이나 좌절감이 굉장히 무서운 거다. 무력감이나 좌절감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에 눈을 돌려버리느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차피 세상에 영웅은 필요 없다. 사실은 영웅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내가 MBC문제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뛰어들 수 있는 건, 이게 내 일이 됐기 때문이다. MBC 노조파업에 170일 참여하게 된 것도, 이게 내 회사의 내 일이기 때문이다.

 

서강> 2014년 MBC의 정직 6개월 조치에 이어서 2015년에는 예능국에 대한 웹툰을 SNS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MBC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으셨다. 언론 자유를 통해 사회 비판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방송사에서 제작자에게 내린 일방적인 해고 통보는 부당한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권> 해고 사유가 전혀 될 수 없는 일로 해고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대법원까지는 사실상 이긴다고 본다. 사실은 그 부분에 있어서 내 개인적인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MBC 방송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치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떤 공적인 역할이 나한테 주어진 부분이라고 생각을 한다. 따라서 내가 감당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어쨌든 언론인으로서 내가 감당해야할 영역이 생긴 것이니깐. 해고 무효 판결이 난다면 일단 복직을 해야 한다. 복직을 해야 하는 게 맞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MBC 현 경영진들이 얼마만큼 법을 무시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최종적인 확인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MBC로 돌아가서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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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성민 PD는 2012년 MBC에 입사했다. 2014년 5월 17일 권성민 PD는 인터넷 공간에 올린 글을 통해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MBC 보도를 비판했다. 그러자 MBC는 회사 명예 실추 등의 이유로 정직 6개월을 내렸다. 정직 종료 후 예능1국에서 경인지사로 전보 조치된 권성민 PD가 예능국 이야기를 다룬 '예능국 이야기' 웹툰을 페이스북에 연재하자 MBC는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권성민 PD에게 해고 조치를 내린 상태이다. (편집자주)


2) 한국탐사저널리즘 센터‘뉴스타파’에서 쉽고 재미있는 뉴스를 전달하고, 공감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페이스북 페이지이다. 현재 타파스에서 권성민 PD는 연출 및 제작을 맡고 있다. 타파스 유투브 링크 https://youtu.be/8vhnn0pTgF8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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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10.11 22:06



Ⅰ. <월간잉여>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우선 <월간잉여>에 관해 묻겠다. <월간잉여>를 만들게 된 계기, 왜‘잉여’인지 등.. <월간잉여>에 대해 모르는 본지 독자(잉여)들을 위해 설명해 달라.

최서윤 잉집장(이하 잉집장). <월간잉여>를 창간한 2011년 말 경에 지금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것처럼‘잉여’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저 역시 그 용어를 많이 사용하기도 했고, 그 단어가 어쩌면 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당시 언론사 입사준비를 한 지 2년 차가 되던 해였는데 계속 낙방하니까‘정말 잉여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제가 당시 미디어 환경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2030세대의‘필자’라고 발굴된 사람들 외에 직접 목소리를 내는 통로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2011년 말에‘일베’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잉여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내 또래의 청년세대 일부가 극단적으로 누군가를 혐오하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래서 비슷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논의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월간잉여>를 만들게 되었다.


서강. ‘잉여’를 위한 출판물이라고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청년세대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주로 실려 있는 것 같다. 청년세대가 즐겨 사용하는 인터넷 용어를 사용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이 많이 실려 있었다. 필진을 섭외할 때나 출판물을 기획할 때 읽기 쉽고 재미난 글을 모집하는 것이 잉집장님의 기획에서 중요한 부분인가?

잉집장. 저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은‘노잼’이기 쉬우니까. 1인칭으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서술한 글을 요새 말로‘썰’이라고 하는데, 썰을 푸는 것처럼 진솔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더 주목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일기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다른 사람은 이렇겠구나하는 헤아림과 사회 구조에 대한 깨달음까지 담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서강. 요즘‘설명충’, ‘진지충’처럼‘노잼’인 사람들을 놀리는(혹은 조롱하는) 인터넷 용어가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재미없게 살다보니 재미없는 것을 피하고, 재미있고 편안한 것만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잉집장. 재미는 여러 측면과 여러 부분이 있는데, 요즘 공격적이고 즉각적인 것만 재미라고 생각하는 점이 안타깝다. 각자가 재미를 느끼는 영역이 다르다. 저는 개인적으로 외모 비하나 여성 비하를 이용해서 웃기려고 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노잼이다. 어떤 때는 그것이 폭력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월간잉여>를 통해 어떻게 유머를 구사해야 효과적일까라는 고민을 한다. 잡지에서 위트가 느껴지기 바랐는데, 재미있었다고 말씀해주시니 그 점이 전달된 것 같아 좋다.


서강. 원고 모집 등 운영 방식은 어떠한가?

잉집장. 원래 <월간잉여>는 무가지였다. 광고를 통해서 계속 제작비를 담보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꿨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광고가 잘 들어오지 않아서 유가지로 전환했는데, 그 당시(2012년)에 최저 임금이 4860원이어서, 한 부의 가격을 4800원으로 정했다.1) 그런데 판매 수익은 제작비를 충당하는 정도이다. 이윤을 낸다거나, 잡지를 만드는 데 제가 투자하는 시간에 대한 비용적 보상에 대한 부분은 거의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원고료를 지급할 수 있는 수준의 수익이 안 됐다. 사실 예전에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잡지가 많지 않았고, 출판된 잡지라는 물리적인 결과 그 자체로 만족하는 분들이 계셔서 원고료를 안 드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덜 했다. 그러나 최근 매체도 많이 생기고, ‘열정페이’문제가 대두되기도 하면서 원고료를 못 드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마음이 무겁다. 특히 글을 반려할 때 너무 죄송하다. 원고료도 안 받는 걸 알고도 글을 주신 건데... 그래서 뭐라도 지급해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요즘 개인적으로 돈을 모으고 있다. 원고는‘이런 주제, 이런 키워드로 언제까지 글을 받겠다.’라고 홈페이지, SNS 등에 공고를 한다. 지금까지는 여러 주제를 포괄할 수 있도록 주로 키워드로 공고를 냈다. 거짓말, 전쟁, 봄, 호구 이런 식으로 말이다. 호구 같은 경우는‘9월호’여서 호9라고 했다(웃음). 그런데 아까 말한 것처럼 일기에 머무르는 글이나 이미 타 매체에 실린 내용의 반복이라고 여겨지는 글은 죄송하지만 반려하기도 한다. 가끔 주변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그럼그것에 대해서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마감일을 알려주고 손가락을 걸어서 필진 섭외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지키지 않으면 손가락을 자르러 가겠다.”고 협박을 하면서 말이다(웃음)2).


서강. 기다리는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매달 오프라인으로 만나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이며, 혹시 다음 호(18호)는 계획하고 있나?

잉집장. 우선 18호는 올해 11, 12월 즈음에 내려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간 원고료에 대한 부담과 걱정, 방향 등에 대한 생각 때문에 못 냈는데, 내년에 총선 등이 있고 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에 있을 일에 대한 여론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강. 서점에서 <월간잉여>를 사려고하니, 입고되는 곳이 소수일뿐더러 지정된 판매 장소를 제외하고는 구하기가 힘들다. 지방의 경우는 더욱 구하기가 힘들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유통이 되어 잉여들(소비자)과 만나게 되는가?

잉집장. 배본사와 계약을 하고 납품을 하면 편리하지만, 재고 공간과 자본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월간잉여>는 배본사와 계약을 하지 않고 소규모 독립출판사 몇 개와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만 보낸다. 요새는 기술이 좋아져서 디지털 파일을 인쇄소에 넘기면 인쇄를 해서 저희 집으로 보내준다. 그때그때 다르지만 보통 1천 부 이하로 찍는데 그러면 저는 그것을 일일이 가내수공업으로 포장해서 서점이나 독자에게 개별적으로 보낸다. 어떻게 보면 귀찮다. 그래도 저 같은 경우는 사업자등록과 정기간행물 등록을 해서 온라인 서점에도 입점을 할 수 있었는데, 소규모 출판물 같은 경우는 ISBN 코드가 없어서 소규모 서점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Ⅱ. 출판 문화


서강. 최근 독립 출판 혹은 소규모 출판, 대안 출판 등 새로운 형태의 출판물이나 출판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된다. ‘독립 출판’이 뭔가?

잉집장.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세미나와 전시회를 했었는데, 거기서의 정의는‘독립출판물 서점에 유통이 되면 독립 출판물이다.’라고 독립출판을 정의하더라. 독립출판 서점이라 함은‘유어마인드’같은 곳을 일컫는데, 소규모 출판물 제작자는 독립 출판물 취급점에 자신의 출판물을 판매한다. 이때 서점 주인은 또 다른 편집자가 된다. 자신이 셀렉팅을 한 것으로 서점을 꾸려놓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저는 각 독립서점의 의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독립출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창작자의 의도다. ‘이 책이 시장에서 얼마큼 팔릴 테니까 우리는 이 정도 예산을 써서 누구를 섭외하고 마케팅해서 책을 내자.’는 것이 기존 출판사의 상업적 기획 방식이라면, 독립출판은 그에 비해 상업적인 고려가 훨씬 적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에 더 충실하다.


서강. <월간잉여> 같은 경우에는 독립출판 가운데 부수를 많이 찍는 편인가?

잉집장. 그렇다. 아주 조금씩, 예를 들어 10~20부 정도만 찍어서 유통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보통은 300부 정도를 찍으시는 것 같다.


서강. 최근 독립 출판에 대한 대중의 주목과 관심, 많은 사람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독립 출판문화에 대한 잉집장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잉집장. <월간잉여>의 존재에서 동기를 얻고 용기를 내는 것은 아닐까?(웃음) 원래 사람들은‘누가 그런 걸 한다더라, 재미있다’는 말을 들으면 확 지를 수 있는 용기와 상상력이 생기는 것 같다. 최근 몇몇 사람들이 참여하고 재미있어 보이니까, 덩달아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 같다. 종이를 통해 물리적으로 잡는 감각을 느끼고 싶은 사람도 많아진 것 같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디지털 파일만 인쇄소에 넘기면 되니까 이전에 비해 제작 절차가 간편하다. 그렇지만 결과물을 받으면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자기 존재 증명을 스스로 하는 것이 자존감을 찾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끼고 노력을 증명하는 결과물은 맞는 것 같다. 저는 자존감이 낮은 편은 아니었는데, 2년 간 언론사에 입사하지 못하면서 자존감이 꽤 낮아졌던 것 같다. 그래서 저 스스로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욕구로 잡지를 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강. 독립 출판이 기성 출판문화와 다른 점은 무엇이며, 안타깝게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단점은 어떤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잉집장. 결국 선택을 받아야 하는 곳 입장에서는‘갑질’이라고 느낄 요소가 있지 않겠는가? 새로 만드는 출판물의 경우에는 서점에서 입고를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월간잉여>는 잘 팔리는 편이고, 서점에서 환영하는 매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산이 느리다. 일이 많고 바쁜 것은 이해하지만 두 달에 한 번도 정산을 안 해주는 것은 좀 섭섭하다.


서강. 정산을 몇 달에 한 번 받고 있나?

잉집장. 어떤 경우 6개월에 한 번 해준 적도 있다. 잘 안 팔려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경우는 정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에게 다 팔렸으니 추가로 출판물을 더 달라고 요청을 할 때이다. 언젠가 독립출판물의 정산과 관련한 글을 모 매체에 기고한 적이 있는

데, 글을 써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그 이후로 정산을 잘해주는 느낌이 들긴 했다(웃음).


서강. 그렇다면 독립 출판 시장의 시스템에서 개선되어야 하는 점과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점은 무엇인가?

잉집장.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 중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정산과 관련한 것이다. 독립 출판물이 워낙 다품종 소량 상품들이니까 매입, 판매는 물론 정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안 팔리는 책이라면 팔릴 때마다 정산을 하고, 잘 팔리는 책이라면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정산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규모 출판물 전문점 같은 경우 예산 문제나 시장성을 가늠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선매입을 해서파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소규모 독립 출판물의 경우, 제작자가 잘 되면 출판사도 잘 되는 얽힌 관계인만큼 서로를 생각했으면 한다. 기존에 있는 출판문화에 반대하거나 아니면 소규모로 이런 출판물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면 좋지 않을까? 서로 함께 잘 될 수 있는 방향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점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재미있는 시도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소규모 출판물 전문점 사장님들은 자신의 공간을 독자와 만나는 장이나, 워크숍 장 혹은 직거래 장터로 활용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신다. 대표적으로‘유어마인드’는 독립 출판물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언리미티드 에디션3)을 최초, 최대로 도입한 곳이다. 좋은 도전들을 하시는 것 같다. 이런 점은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서강. 종종 문학계의 권력, 출판 권력의 문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독립 출판 혹은 출판물은 이와 정반대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잉집장께서는 독립 출판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잉집장. 그런데 요즘은 '문학 권력' 같은 그런 권력들이 많이 해체되지 않았나? 사람들도 그런 데에 비판적이니까 점점 더 도태될 것 같다. 저는 이미 그런 권력들이 많이 해체됐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독립 출판이 등장한 것은 권력의 해체 과정을 드러낸 사례라고 생각한다. 기성출판물들도 독립 출판화되는 부분도 늘어나지 않겠는가? 실제로 요새 1000부, 2000부씩 기획해서 내는 책들도 많다고 들었다. 작은 시장들을 노리는 기성출판물들이 많아진다면 독립출판과 의도는 다르겠지만 다양한 결과물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강. 그러면 기존 문학, 출판업계가 가지고 있던 권력이 해체되고 있던 시점에 독립출판의 등장이 긍정적인 효과 혹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보시는 것인가?

잉집장. 그렇다. 앞으로도 클리셰가 되고 관습화되는 부분을 많이 깰 수 있는 기획이 독립출판에서 지속적으로 나올 것 같다. 기성출판의 문법이나 형식에서 독립출판물은 퀄리티가 낮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다르다고도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도 책이 나올 수 있구나, 재미있다."고 여기게 되면 기성 출판물에 영감에서 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한 여태껏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등단 과정을 거쳐‘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책을 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쳤다면, 이제는 작가가 되고 싶으면 자신이 원하는 책을 만들어서 출판하면 스스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이것도 기존 관습을 해체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결국 글로 승부를 볼 수 있고, 그것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선순환 될 것 같다. <읽어보시집>이라는 책이 최근에 많이 팔렸다. 저자인 최대호씨는 등단 과정을 거치진 않았지만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시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Ⅲ. 잉여 이야기


서강. <월간잉여> 외의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잉집장님의 글을 만나볼 수 있다. 언젠가는 기성 매체를 통해서만 잉집장님의 글을 접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잉집장님의 ‘기성 매체로의 진출’로 인해 <월간잉여>가 폐간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궁금증(혹은 우려)이 생기기도 한다.

잉집장. 월간으로는 아니라도 독자 분들이 계속 <월간잉여>를 원하신다면 계속 업로드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저는 이 잡지를 내는 것이 저의 단일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저를 구성하는 여러 정체성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저는‘세상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의 지점들이 분명히 있는 사람이고, 그 욕망의 지점을 환기하거나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활동들을 계속 할 것이다. 그 매체는 <월간잉여>나

‘페북 잉여짓’일 수도 있고, 어떤 문화 행사가 될 수도 있다. 저는 다양한 통로를 열어놓은 상태이다. 그때그때 제가 발견한 문제의 지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게 되면 그것을 할 것 같다. 어쨌든 원하신다면 드물게 내더라도 폐간은 안 하겠습니다(웃음).


서강. 우리 모두는 꿈꾸는 가치가 있다. 잉집장님께서 <월간 잉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잉집장. 세계 평화?(웃음) 그냥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존감을 낮추는 사회 구조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 적대하고 혐오하고, 편견을 갖는 것을 문제라고 느끼고 바꿀 수 있도록 논의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싶다. 또한 시스템을 바꾸자고 설득하는 작업도 계속 할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시스템은 돈이 원래 많게 태어난 사람들은 계속 많아지고, 적게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적은 돈으로 노예처럼 사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을 불안해하는 것이 부정의한 것 같다. 기술 발전이나 기계의 발달로 얻어지는 이윤을 비롯해서 많은 가치가 소수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총선과 대선 등 선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도록 새로운 구조,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의로운 것 아니겠는가?


서강. 본지의 독자들은 대부분 대학원생이다. 즉, 대부분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를 ‘학문’을 통해 이루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근래의 대학원에서 가치를 논하는 것은 진부하며 ‘노잼’이라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통해 본인이 꿈꾸는 인생의 가치를 이루고자 하는‘대학원생 잉여’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달라.

잉집장. 최근 대학 내에서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신분을 공통점으로 하여 대학 외에서도 뭉쳐지는 조직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예를 들면 <인문학 협동조합>과 같은 조직들이 있다. 여러분 내부의 공동체만이 유일한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지 않나? 사람들이 제일 비겁해지거나, 약해지는 것은 ‘이거 아니면 나는 갈 데가 없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이 아니어도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위로도 되지 않을까? 물론 저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웃음).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겠지만 소속 대학원 내부의 조직원하고만 교류하지 말고, 타 학교 대학원생들 간의 커뮤니티도 가입하고, 외부 조직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보시는 것은 어떤가? 위로도 되고, 학문적 자극도 얻을 수 있고, 고민이 있을 때‘외부인’이니까 해줄 수 있는 정확한 통찰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관계에서 해답이나 위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한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2012년 당시 4580원이었다. 2013년 최저임금이 4860원. (편집자 주)

2) 본지 편집장도 인터뷰 말미에 잉집장과 손가락을 걸었다. (편집자 주)

3)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은 2009년 1회를 시작으로 매년 진

행되어 온 아트북페어, 독립출판의 시장이다. (출처: http://unlimitededi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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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6.22 16:07


함께 만드는 도시


인터뷰 및 편집_채다희, 황민아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건축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비전문가로서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하면 미술이나 영상 등은 떠오르지만 건축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건축가이며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두 분야를 어떻게 아우르며 활동하고 있는지 소개해달라. 


하태석(이하 하)> 아시는 대로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사람이다. 하지만 건축은 도시 안에서 건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가의 아이디어는 그림, 드로잉, 모형 등으로만 남기도 하고 전시를 통해 공개되기도 한다.   

2010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전시를 할 때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누군가에 의해 탑-다운 방식으로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건축물로 구현하면 그곳에 사람이 들어가서 사는 것이 우리가 도시를 점유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좋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반대로 바텀-업 방식으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며 도시를 만든다면 개개인에게 맞춤화된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다이어그램으로 그리거나 모형으로 만드는 대신 실제로 스마트폰 어플에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입력하면 집이 나오고, 그것이 화면 안의 도시에 바로 반영되어 업데이트되도록 만들었다. 즉, 도면이나 그림이 아니라 관객이 참여하면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시스템이다. 어플과 디지털 프로젝션 미디어 룸, 변화하는 영상과 음악을 이용해 전시를 했는데, 이것을 예술계에서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라고 칭했다. 그 이후로 미디어 아트 전시회에 초대를 받으면서 미디어 아티스트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서강> 작품을 하면서 도시 계획이나 건축뿐만 아니라 음악을 활용한 점이 재미있다. 말씀하신 것처럼 관객이 입력한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도시가 구현되고 영상과 음악도 변한다면 고정된 전시가 아니라 관객에 따라 변화하는 전시가 될 것 같다.


> 그렇다. 참여를 기반으로 해서 형식적으로 인터렉티브한 미디어 영상을 만든 것이다.  그 이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당시 의뢰를 받아서 미디어 작업을 하기도 했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의뢰를 받은 케이스인데, 그때 했던 작업도 예술적 형식으로 표현했지만 내용은 건축이다. 

 


 <떠도는 기하: 콜렉티브뮤지움> 

2013년 11월 12일부터 2014년 3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프로덕션 SCALe의 인터랙티브 미디어작품. 완성된 건축은 형태를 위한 결정들이 축적되면서 드러나는데 <떠도는 기하: 콜렉티브 뮤지움>은 이 결정들에 사용자를 참여시켜 건축적 결과물들을 공유한다. (편집자주) 사진 제공_ SCALe


서강> 보통 건축이나 도시를 생각하면 누군가 설계를 하고, 여러 사람이 지은 후 그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터렉티브한 작업이 실제 생활에 적용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 인터렉티브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지어진 대상과 대상을 사용하는 사용자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축과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는 중간단계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작업들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건물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 사무실도 가운데가 육각형인데, 벽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이것을 어플로 조정하는데 여섯 면이 다 올라가면 큰 회의실이 되고, 다시 벽을 내리면 집중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사무실> 

건축사무소 SCALe의 내부 모습. 어플을 통해 제어되는 사무실 벽은 목적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사무실 내부 벽이 모두 제거되면 육각형 모양의 회의실 공간이 만들어진다. (편집자주) 사진 제공_ SCALe

서강> ‘젊은 건축가 포럼 코리아’의 위원장을 맡고 계시는데, ‘젊은 건축가’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 혹은 젋은 건축가로서 ‘기성 건축가’와 달리 추구하는 점은 무엇인가? 


> 보통 ‘젊은 건축가’는 주로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건축가를 말한다. ‘젊다’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으로는 20대 혹은 30대 초반까지이지만, 건축가로서 건물 하나를 지으려고 하면 마흔 전후가 되어야 의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50-60년대생 선배들은 우리나라 개발 붐 등을 겪은 세대이기에 혜택과 기회가 많았다. 젊었을 때 사무실을 차려서 30대 초반에 설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건축가들은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미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살고, 작은 집을 짓지도 않아서 큰 설계 사무소만 살아남는 시대에 건축계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최근 조그만 집들을 짓기도 하면서 젊은 건축가들이 많아졌다. 

또한 기성 건축가들이 논했던 건축 담론들은 거시적이고 크다. 그들이 모더니즘, 한국 사회, 건축의 본질처럼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것을 강조했다면 최근 젊은 건축가들은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 스펙타클하고 철학적 깊이가 있지는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면 동네 커뮤니티가 활성화 될지,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지 등과 관련한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실제로 그런 의뢰가 제법 들어오기도 하고 본인들도 그런 일을 즐겨 한다. 젊은 건축가들이 건축에 접근하는 방식도 기성 건축가와 다르고, 개개인의 스타일이나 관심사가 다양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서강> 기성 건축가들은 국가가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큰 범위의 도시를 지어야만 했다면, 최근 젊은 건축가들은 이미 세워진 도시 안에서 어떻게 다양한 건물을 구현하느냐 이렇게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 그렇다. 얼마 전에 <어반 메니페스토>라는 전시를 하면서 젊은 건축가들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다. 일상성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최근 젊은 건축가들이 건축 외적인 일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건축은 ‘건물을 짓는 거야’라고 했다면 요즘에는 건물 안에 둘 가구도 디자인하기도 하고 제품이나 미디어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사실 디자인의 프로페션의 원조가 건축가이다. 공간, 건물이 큰 디자인이고 그것이 모인 도시가 가장 큰 디자인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처럼 보여도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서강> 아카이브와 포럼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건축물 전시나 역사를 구현하는 형식의 전시 등 건축을 새롭게 풀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건축가라고 하면 설계 현장에 있거나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건축가님께서 전시회 현장 등에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는 이유나 그 활동을 어떻게 전개하고 있는지 소개해달라. 


> 그동안 건축가들이 자기 영역 안에서만 갇혀 다른 크리에이터들, 예술가, 디자이너들과의 소통이 없었다. 이것은 건축 분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적용된다. 그것을 넘어서서 다른 분야와 연결하는 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2007년부터인가 이러한 기획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런 기획자가 드물었지만 지금은 훌륭한 기획자들이 많이 생겼다. 여러 분야가 함께 소통하며 자극을 주고받고, 콜라보레이션도 해서 더 좋은 작업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그런 기획들을 주로 했다. ‘젊은 건축가 포럼 코리아’도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3년 전에 ‘젊은 건축가 포럼 코리아’을 결성할 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젊은 건축가들의 역할이 미미했지만 우리 사회에 훌륭하고 젊은 건축가들이 많고, 그들의 작업을 같이 공유하고 알리자하는 취지로 컨퍼런스 파티 등을 시작했다. 형식에 구애받기보다는 기획의도가 여러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전시뿐만 아니라 컨퍼런스, 토크나 파티 등 여러 방식으로 표출되도록 진행하고 있다.


서강> 미디어 아트 <시간여행: 정동 1900(이하 ‘시간여행’)>의 경우 외국인 선교사의 구한말 생활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국내에서 이러한 미디어 아트 작업은 매우 생소한 작업일 것 같다. 시간적인 것을 공간에 푸는 작업, 역사적인 내용을 공간에 옮기는 작업이 어려운 작업일 것 같다.  이 작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 건축가나 작가로서 제 작품을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시 디자인을 의뢰 받아서 한 것은 ‘시간여행’이 처음이었다. 건축가는 공간을 다루는 사람인데, 뉴미디어에는 시간적 개념이 들어있다. 그래서 공간을 어떻게 시간적으로 풀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공간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시간여행’을 작업했다. 백 년 전의 공간을 컨셉슈얼하게 구현하여 사람들이 도시를 거닐면 그에 따라 공간이 반응하고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바닥에 지도가 있는데 지도 위에서 다른 위치에 갈 때마다 그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화면을 보여준다. 내가 서 있는 위치의 100년 전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여행: 정동 1900>

<시간여행: 정동1900>은 1890년~1910년 당시 정동의 모습을 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의 시각으로 재현한다. 전시장내의 축소된 정동을 거닐면 당시의 거리 모습이 전면에 펼쳐진다. (편집자주) 사진 제공_ SCALe


서강> 위 전시가 일반적인 건축물 전시하고 어떻게 다른 것인가? 


> 보통 건축 전시는 도면, 렌더링, CG, 컨셉을 설명한 다이어그램, 모형 등을 전시한다. 건축은 삼차원이고 크기 때문에 복잡하다. 한 눈에 볼 수 있으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 텐데, 가뜩이나 복잡한 것을 도면 등으로 전시하니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도면을 읽을 수 있으니까 도면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비전문가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비전문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모형을 만드는 데, 아시다시피 모형은 작다. 300분의 1, 500분의 1, 1000분의 1로 축소하고 위에서 모형을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건축은 공간감이 중요하다. 공간 안에 있어야 건축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지 위에서 본다고 해서 그 건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상상을 돕기 위해 그 공간에 들어 있는 것처럼 CG로 투시도를 그린다. 하지만 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데, 분절되어있고 투시도간의 관계가 설정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그것이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 악보만 전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건축가들은 평면을 보면 공간을 이해하지만, 건축에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관객이 컨셉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전달하기 위해서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는 것이다.   


서강> 그렇다면 건축물 전시는 비전문가에게 공개가 안 되는가? 


> 공개는 되는데 이해와 소통이 잘 안되니까 비전문가들의 호응이 별로 없다. 건축가들만 모여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서강>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전시가 대표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와 협업을 하신 작업인 것 같다. ‘사랑당: 푸른 빛의 전설’ 작업을 통해 이 전시에 참여한 것인가? 


> 그렇다. 제가 총 감독을 맡았고, 전시 중에 ‘사랑당: 푸른 빛의 전설’에 작가로도 참여했다. 이 전시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끼리 협업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취지였다. 그래서 각각의 팀에 건축가, 예술가, 과학자가 한 명씩 포함되어 팀을 이루었다. 재미있었다. 저희 팀에는 해양 바이오 과학자가 계셨는데, 그 분이 연구하시는 발광성질을 가진 미세조류를 건축 작업에 도입을 했다. 밤에 흔들면 빛을 발하는 생물 발광 미세조류를 이용하여 지역의 풍습을 담은 구조물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서강> 마을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사실 이 전설은 제가 쓴 것이다. (웃음) 이 작업이 재미있었던 것이 팀원들과 ‘전설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전설을 만들고 그것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아마 마을 사람들이 ‘어? 우리 마을에 이런 전설이 있어?’ 라고 했을 것이다. 당이라는 것은 제주도 민속 신앙인데, 작은 돌담을 쌓고 바다 앞에서 구복을 한다. 하나의 당에는 하나의 구복을 한다고 하더라. 이 당에서는 아이를 낳게 해주는 구복만 할 수 있고 저 당에서는 피부병을 고쳐주는 당이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당을 만들자‘고 해서 ’사랑당‘을 만들게 되었다. 




 <사랑당: 푸른빛의 전설>

2013년 건축가, 예술가, 과학자가 팀을 이루고 협업을 통해 자연과 미디어를 주제로 하는 공공예술 작품을 제주도 마을에 설치하고 공유하는 융복합 공공예술 프로젝트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에서 하태석, 권병준, 김대희가 제작한 지속가능한 조명장치. 바람이 불면 사랑당 건축물에 달린 캡슐을 흔들리고, 그 안의 미세조류들이 빛을 발한다. (편집자주) 사진 제공_ SCALe


서강> 건축 작업은 협동 작업이다. 건축가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과들과 협업을 많이 하시는데  진정한 의미의 협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건축은 전통적으로 혼자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예술가는 생각하는 사람, 그리는 사람, 물감 사는 사람이 다 같은데 건축 분야에서는 생각하는 사람(건축가), 벽돌 사는 사람(건축주), 짓는 사람(시공자)이 다 다르다. 건축가가 전체적으로 컨셉이나 공간을 생각을 하면 구조는 구조 기술사가, 전기 설비는 전기 설비 회사가 하고 기계 설비는 기계 설계회사가 하고 조경 디자인은 조경 설계사가 하고 심지어 인테리어를 별도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은 기본적으로는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협업하는 구도이다. 건축은 다른 분야보다 더 협업을 하기 때문에 협업을 잘하는 직종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업은 단순히 같이 일을 한다고 해서 협업의 질이 같다고 할 수 없다. 진정으로 협업을 하는 것은 두 개의 다른 영역이 만나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공간 안에 있더라도 하나의 공간으로 융합되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협업이 아니다. 따라서 초학제적인 접근을 통해 적극적으로 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협업을 할 때 시너지 효과도 발생하고 더 좋은 결과가 난다고 생각한다. 


서강> 협동 작업을 할 때 의견 충돌이나 윤리적인 문제 등을 마주하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어떤 분야에서건 협업을 할 때 가져야 할 소양과 자세를 조언해 달라. 


> 협동 작업을 할 때 가장 필요한 자세는 상대방과 상대방의 분야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건축가가 말하는 ‘커뮤니티’와 사회학자가 말하는 그 뜻은 다르다. 같은 단어라도 분야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그러므로 다른 분야간에 협동,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다. 제가 음악가와 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음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분들의 깊이만큼은 모르지만, 기본적인 것은 알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다른 분야를 이해하는 것이 협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 가장 좋고, 한 사람이라도 이해해서 함께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서로 다른 말만 하다가 부딪히게 될 것이다. 또한 협업을 할 때에는 역할이 분명해야 한다. 역할이 중복되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역할, 규칙 등에 대해 서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를 해야 한다.


서강> 건축가로서 도시의 미래에 관심이 많으실 것 같다. 개인적으로 꿈꾸는 미래의 도시나 건축은 어떠한 것인가? 


> 저는 사람, 사용자, 거주자가 주체가 되는 건축 혹은 도시를 꿈꾼다. 건축이나 도시가 먼저가 되서 사람이 들어가서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맞춰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려면 건축이 적응 가능성, 유연성, 상호작용 등을 갖추어야 한다. 나만의 자동차를 갖는 것이 상류층의 전유물인 것처럼 건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도 본인에게 맞춤화된 집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건축이면 좋겠다. 사람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고 거주자가 중심이 되는 건축, 그것을 통해 만들어진 도시가 제가 꿈꾸는 건축과 도시이다. 


서강> 마지막으로 더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 건축은 우리한테 사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부분의 도시민들은 하루의 90% 정도를 건축 안에서 살고 있고 알게 모르게 건축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본인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건축이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 처칠은 “사람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다시 건축에 의해서 형성된다. 학교 건물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짓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성적이 더 올라갈 수도 있고, 수업시간에 덜 졸수도 있다. 업무시설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올라갈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주거와 건축을 디자인해야 한다. 저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데에는 주거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마저 답답함과 소외감을 느끼고, 사회와의 단절을 경험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양재동에서 7년 정도 일하다가 이태원으로 사무실로 옮겼다. 양재동에서 일할 때는 외부에 비가 오는지 해가 떴는지 몰랐다. 그런데 사무실을 옮긴 이후 해가 지는 것도 보고 석양의 아름다움도 느끼고, 해가 좋을 때는 옥상에 올라와서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그것이 굉장히 즐겁다. 그게 건축의 힘이다. 누구나 건축물 안에 사는 만큼 거주자가 스스로 “우리 집은 왜 더 좋을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건축가와 공유하면 더 좋고 행복한 공간에서 살 수 있다. 사람들은 건축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지금 사는 바로 여기가 건축이다. 계속해서 보다 나은 공간을 꿈꾸면 언젠가는 자신이 그 공간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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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4.17 16:01


각기 다른 을(乙)의 목소리를 듣는 청년 노동조합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청년유니온이 출범한 지 5주년이 된 것을 축하한다. 청년유니온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달라.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이하 김)> 청년유니온은 2010년 3월에 출범했고 노동조합(이하 노조)이다.  서울, 경기, 인천, 대구, 경남, 부산 등 7-8개 지역에 약 1,000명 정도의 조합원으로 이루어진 전국 단위 조직이다. 

어떤 문제를 평가하고 진단하고 평론하는 것,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진단하는 것을 넘어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 유닛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청년유니온은 기존 노조가 청년 문제를 포괄하는데 한계를 드러냈다고 생각한 당사자들이 직접 유닛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서강> 청년유니온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또한 지난 5년간의 활동 중 활동 초기 목표로 한 것을 얼마나 이루었는가?

> 저는 창립하기 직전에 가입했고, 이 조직을 1년 동안 준비했던 팀이 있다. 제가 보기에는 이 팀이 어떤 한(限)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이 청년유니온을 만들 당시에 30대 초반이었고 지금은 30대 중후반이다. 당시 그들에게는 ‘이 문제를 이렇게 하다가는 망한다.’ 라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보시는 것처럼 밝고 유쾌한 느낌을 더 적극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이 절박함에서 표현이 다양하게 빠져나오는 것 같다. 이것이 없으면 표현이 나이브하게 된다.  

활동 초기 목표라고 한다면 이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시키는 것. 이것이 가장 주요 활동의 목표였다. 그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과 모델들을 만드는 것이 지난 5년의 가장 큰 목표였는데, 다 한 것 같다.


서강> 왜 ‘청년’이고, 절박함을 해결하는 수단이 ‘노조’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 경제위기라는 과정에서 경제위기가 모든 사회 구성원들한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청년세대에게 미치는 특수성이 있다. ‘청년세대들이 다른 세대들보다 더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노동 시장을 보면, 이미 노동 시장 안에 자리를 잡고 있던 세대가 경제 위기의 타격을 입는 것과 아직 진입을 하지도 못한 세대가 타격을 입는 것은 완전 다른 문제다. 이미 시장에 진입을 한 세대와 달리 경제 위기의 타격이 청년세대에게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그 동안 공기업에서 대기업에서 대졸 초임을 깎는 문제에 대해서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주체가 없었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도 자기 얘기는 아니지 않나. 저는 이런 문제를 청년이라는 키워드로 말하고 싶었다. 

청년세대의 삶의 문제는 낮은 소득의 문제, 주거비, 교육비, 등록금으로 대표되는 높은 삶의 비용과 그것을 메우는 빚이었다. 위와 같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문화적으로 박탈되고 이름이 삭제당하는 것을 보며 일단 소득과 고용안정에서 시작하자고 정했다. 

청년 세대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고민을 하다가 일본에 ‘수도권 청년유니온’이라고 저희보다 10년 정도 먼저 유사한 활동을 한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활동을 보고 ‘괜찮네, 가져와보자’라고 하면서 노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강> 청년유니온의 사업 내용이 대부분 규약에서 언급하는 여러 가지 권리(문화권, 인권 등) 중 노동권, 생활권 확보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다. 

> 권리라는 것이 다 맞물려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자.”라는 것보다 그 시기마다 부각되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에 집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표현상 드러나는 것이 이 두 가지에 집중된 것처럼 보이게 해석할 수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해석의 영역이고, 이것만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서강> 당연한 질문이지만 궁금하다. 청년유니온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규직인가? 그리고 ‘알바’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최저임금이나 4대 보험, 휴무수당 등을 보장하고 있는가?

> 참 어려운 문제이다. 사무실에서 근무하시는 분은 정규직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저희가 노동조합이다 보니깐 2년 동안 임기가 작동된다. 임기가 작동되는 기간 동안 집행부가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딱 정규직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1기, 2기 만들었던 사람들도 지금은 각자 다른 데서 일을 하고 있다. 각자의 현장에서. 그래서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임금 책정이라든지 최저 임금, 4대 보험은 다 적용되게끔 하고 있다. 기본은 하자는 것이다. 물적 토대가 취약해도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기본을 보장해야 일을 하며 힘들어도 스스로 의미와 보람을 찾아나갈 수 있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해야 하는 일에 비해서 물적 토대가 너무 취약하다. 청년이 특히 그렇지 않나. 어르신들은 돈 금방 모으시지만 젊은 사람들은 네트워크가 없다보니 돈 모으기가 매우 힘들다. 


서강> 위 질문을 한 이유는 청년유니온에 속한 조합원들이 대부분 청년이기 때문이다. 편견인지 몰라도 펀딩의 지속성이 약할 것 같고, 규모도 다른 조합에 비해 작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인 운영이라든가 재정 운영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 재정 상황을 먼저 말씀드리면, 지금 조합원이 1,000명 정도 있고 후원회원이 있다. 후원회원은 나이는 좀 찼지만 지지하고 싶다는 사람들인데, 약 450명 정도 있다. 그래서 회비 수입을 내면서 노조에 재정을 지원하는 사람이 약 1,400여 명 정도 된다. 

전체 수익을 놓고 봤을 때, 회비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80-90% 정도다. 전체 나머지 10-20퍼센트는 사업비로 충당하거나 지원 사업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예산 총액 대비 재정으로서는 건전성, 안정성의 비율은 생각보다 높다. 총 실링 자체가 작은 것이 문제다. 조직 전임자는 6명인데, 사실 전임자가 10명, 20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 저는 저희 사무실에서 ‘사장놈’이라고 불리는데 사장된 입장에서 이 자원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총 실링을 어떻게 늘릴까가 늘 고민이다. 그래도 예산 총액을 놓고 봤을 때 재정 안정성의 비율은 나쁘지 않다. 청년유니온에 많이 가입해주셨으면 좋겠다.


서강> 다른 노조에 비해 조합원들이 지니는 특징이 있다면?

> 일단 저희는 의사결정체계가 빠르다. 물론 기본 총회도 있고 여러 가지 의사 결정 기구가 있지만 의사 결정 속도나 사업을 집행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다. 다른 청년 단체들도 비슷할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청년’의 특징이다. 길고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피로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조직이 사이즈가 작은 것도 있을 것이다. 

청년문제는 어제 이슈가 오늘 이슈일 수 없다. 아침 신문을 보다가 이슈가 되기도 하고, 누구 얘기를 듣다가 화가 나서 일인 시위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작년 10월 달에 2년 계약직을 하시다가 정식 전환 안 되시고 돌아가신 분이 있다. 저희가 보도된 당일에 그 보도를 확인하고 그날 밤에 텔레그램을 작동시켜서 그 다음날 오전에 일인 시위에 나섰다. 사실 이 사안에 담당 노조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나중에 의사결정 갖춘 후 팀을 꾸려서 대응하기 시작하셨다. 대응을 시작하시면서 어떤 분이 저희한테 이렇게 말씀하셨다. 먼저 나서줘서 고맙다고. 자기 사업장의 문제지만 어쩔 수 없이 의사결정 구조 등의 시간차가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저희는 속도감이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대전제에 기초하여 토론이 폭넓기도 하다. 어떤 절차를 거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을 가동시킬 때 현실적인 감각을 통해 빠르게 작동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점이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강> 경제적인 측면 이외에 ‘청년’ 비영리단체로서, ‘청년’노조로서 활동하는 데 느끼는 어려움이나 한계가 궁금하다. 

> 엄청 많다.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누구나 말로는 청년을 말하니까. 저희가 제기한 가치나 내용이 있고 다른 단체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용이 있다고 했을 때, 자신의 해석 틀만 가지고 다 설명하시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저희가 한참 설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으신 것 같다. 시민사회나 노동조합이 많이 노쇠화하고 있다. 20년 전에 일했던 사람이 지금도 실무자다. 이런 것에 대한 위기감은 있는데 이 문제가 왜 안 풀릴까에 대한 고민을 잘 안하신다. 그런데 청년 유닛이 잘 뜨다보니 과도하게 의존하시는 경향이 있다. 지원은 없고 요구는 크다. 

첨언하면 저는 사회에서 청년을 부르짖는 현 상황이 사회가 청년들을 소모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지금 사회가 청년이라는 단어를 작동하는 방식이 이렇다. ‘장그래 살려야 된다.’고 비정규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내놓은 방안이 ‘노동시장이 이중구조화 되어 있고 정규직이 과보호되어 있으니 정규직을 과보호하면 비정규직 못 살린다.’는 워딩을 사용한다. 청년을 전형적으로 파는 것이다. 사실 비정규직을 살리려면 비정규직에 집중하면 된다. 여기에만 집중해도 할 일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안하고 정규직의 과보호를 중심에 두고, 정규직을 덜 보호해야 비정규직이 산다고 말한다. 분명 청년으로 대표되는 나를 살려주겠다는 것인데 나를 살려주겠다는 내용은 없고 남을 때려주겠다고만 한다. 저희는 우리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되묻고 싶다. 


서강> 그래서 청년 세대 스스로 늘 이슈가 되고 있지만, 뭐가 나아지는지 실감을 못하는 것인가? 

> 저는 이게 매우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슈가 뜨는데도 아무것도 안 되어있네.’라고 청년들이 느껴버리는 그 순간 말이다.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자기 삶을 쇄신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노력하고 사회적 조건이 받쳐준다면 내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믿음을 갖게 될 텐데, 최근 그러한 믿음이 다 삭제 당하고 있다.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회적 희망에 대한 믿음 자체를 상실해 버리면 사회는 작동하지 않는다. 


 

서강> 최근 청년 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늘었다. ‘열정페이’라는 단어나 드라마 ‘미생’ 등이 크게 이슈가 되었다. 이처럼 사회적 분위기 조성으로 인해 청년유니온의 활동이 탄력을 받았거나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청년유니온의 활동이 단체의 노력이나 활동보다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으로 인한 반사효과를 얻게 되리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어떤 주체 활동과 사회적 메시지는 상호작용한다고 본다. 청년유니온이 그동안 활동을 통해서 청년 일자리 문제가 지난 5년 동안 드러난 것이다. 예를 들어 저희가 보도자료 하나를 내면 그 다음날 되면 라디오 작가들이 전화가 온다. 저희가 제기한 것이 이슈가 되고 그 과정에서 각 주체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어난다. 그러다보면 라디오 작가들이 인터뷰 이후에 스스로 다른 아이템을 찾는다. 청년 관련 아이템 찾아서 회의한 후 저희에게 전화가 온다. 코멘트 달아달라고. 이런 것을 저는 이건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일 5년 전에 청년유니온이 없었더라면, 청년 문제가 터졌을 때 청년의 입장을 물어볼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 없었을 것이다. 저는 그래서 두 가지가 상호작용한다고 본다. 물론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면 활동을 할 때 탄력을 받는다. ‘장그래’ 봤냐. ‘열정페이’ 봤냐는 식으로 말하면 되니까. 그런데 반대로 저희의 사회적 책임도 같이 늘어난다. 






 ‘2014 패션업계 청년착취대상’을 시상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청년유니온과 패션노조. 디자이너 이상봉이 청년착취대상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출처: 시사IN, 2015년 1월 12일, 벌써부터 치열하다 ‘2015 청년착취대상’)


서강> 청년 세대를 위한 노조의 설립은 청년 세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순기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청년 세대와 비청년세대를 구분 지어 다른 세대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세대 갈등이라는 얘기가 말은 하기가 되게 쉽다. 직관적이니까. 앞에서 말한 예를 다시 이용하여 정규직 과보호와 비정규직의 상관관계를 세대 갈등을 들어서 설명하면 쉽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실제로 이 안에서 작동하는 디테일이 사라진다. 청년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정말 많다.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통해 자원을 투입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세대 갈등을 들이대면 소모적인 방식으로 가게 된다. 세대 갈등에 대응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