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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11호]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과 그 떨림 속에 담긴 잔잔한 울림을 느끼고 싶습니다. 말 할 때마다 찡긋거리는 미간과 살짝살짝 내비치는 웃음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턱을 괴고 있는 당신의 얼굴이 그립습니다. 진실이 있다면‘나’에게도‘너’에게도 아닌 바로 나와 너‘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당신의 말이 한없는 진실로 느껴집니다. 나만의 바람일까요? 당신 또한 나와 같겠지요? 수많은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수많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우리’라는 허망한 일체감을 두지 않고 끝까지 ‘사이’로 남겨둔 채, 때로 말하고 때로 듣고 때로 그냥 머물고 싶습니다.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아직 들을 준비가 안 .. 더보기
[110호] 대학원, 낯설다 AM 3:19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공학관의 불빛이 물에 번진 물감마냥 멍울져있다. 창문을 열어 보니 큰 괴물처럼 눈을 번뜩인다. 다시 창문을 닫는다. 석사 4학기. 논문을 써야하고 진로를 정해야 하고 결혼도 생각해야 하는.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이 머릿속만 복잡하다. 공부를 시작할 때의 의지와 열정도 현실의중력과 관성에 의해 희석된 지 오래다. 무언가에 쫓기듯 하루를 살아내고 익숙한 일상을 소비한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얼치기의 희망도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는 어설픈 각오도 하얀 모니터 앞에 목을 길게 내밀고‘논문’이라는 것을 쓰는 동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꿈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현실적 고려 앞에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그 .. 더보기
[109호] 삶, 정치를 묻다. 노(老)스님이 몽둥이를 들고 제자의 머리 위로 흔들며 말한다. “이 몽둥이가 있다고 해도 너는 맞을 것이고, 이 몽둥이가 없다고 해도 너는 맞을 것이다. 만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너는 맞을 것이다. 이 몽둥이는 있느냐, 없느냐?” 질문은 답을 구속한다. 질문은 답이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물을 수 있는 자와 답해야 하는 자를 경계 짓고, 이 경계는 권력의 작동과 함께 영속화된다. 아담과 이브는 신에게 왜 선악과를 먹으면 안 되는지 감히 물을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먹는 것, 곧 힘에 대한 불복종이었다. 질문자와 답변자의 위치를 스스로 벗어남으로써 그들은 질문이 구획해 놓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견고한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신은 조급해하며 묻는.. 더보기
[108호] 소통을 허하라! 소통을 허하라! 서강에는 대학원 신문이 없다. 신문이 없다는 것은 각 단과대학의 소식을 간추려 전할 매체가 없음을, 연구동향과 성과를 알릴 수 있는 소통(疏通)의 장(場)이 없음을 말한다. 소통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단절을 낳고, 이러한 단절은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학문적 요구에 장애로 작동한다. 대학원의 목적이 지식인의 양성이라면, 그리고 이 지식인이 결코 고립된 영역에 한정된 기능인이 아니라면, 소통의 단절을 극복하고 틀지어진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소임이 아닐까. 때문에 신문을 만드는 것은 단지 하나의 매체를 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 그대로 서로를 통(通)하게 하는 길이며, 동시에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작지만 견고한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