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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56호] 웹소설, 활자의 새로운 생존전략 - 원형과 클리셰의 기로에 서서

‘소싯적에 인소랑 팬픽 좀 읽어보셨다고요?
이제 보지만 말고 써보세요!
당신도 인기작가 가능해요
무조건 먹히는 성공 공식만 배운다면요!’

 

최근 SNS를 통해 위와 같은 광고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광고는 다른 콘텐츠에서 접하는 광고와는 종류가 다르다. 바로 웹소설의 콘텐츠를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닌, 웹소설을 직접 창작해보도록 독려하는 광고에 해당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웹소설 창작자는 직접적으로 수익을 내지 않는 사람을 포함하여 약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아직 10년도 채 되지 않는 역사를 지닌 웹소설은 이처럼 이용은 물론 창작의 측면에서도 전에 없이 가파른 속도로 성장
하고 있다. 이는 종이책의 위축과 더불어 활자 기반의 콘텐츠가 소멸할 것이라 주장하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민망한 상황일 수도 있다. 이번에는 이러한 웹소설의 발전 과정 및 현황, 그리고 그 특성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인터넷 소설에서 웹소설로

 

2010년대 초반까지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소설을 지칭하는 단어로 ‘인터넷 소설’이 사용되었다. 특히 2002년에 처음 등장했던 ‘귀여니’의 작품들과 그 영향으로 인해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독특한 문체를 지닌 연애 위주의 작품들은 소위 ‘인소’라고 불렸다. ‘인소’는 그밖에도 당시 유행하던 PC채팅의 어투를 사용하고 초성어 등을 사용
하는 특징을 지녔으며, 영화화 및 드라마화가 되면서 200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웹소설’이라는 단어는 네이버 포털 사이트에서 2013년 ‘네이버 웹소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처음 사용되어, 이후 인터넷상의 소설을 보편적으로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웹소설’이라는 단어는 당시 한창 성장 중이던 분야인 ‘웹툰’의 개념과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웹툰의 경우 인터넷을 의미하는 ‘웹’과 만화는 의미하는 ‘카툰’의 혼합으로, 이로부터 나온 웹소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생산, 유통, 소비되는 소설을 의미한다.

 

그러면 인터넷 소설과 웹소설은 이름의 차이만 있을 뿐 실질적인 차이는 없을까?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비되는 방식의 차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인터넷 소설의 경우 인터넷에서 연재 중이던 작품이 화제가 되어 궁극적으로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즉 이모티콘과 초성어의 사용 등 독특한 표현방법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종이책의 특성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작품 전체가 기승전결을 지닌 긴 호흡으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웹소설은 해당 작품이 연재되는 플랫폼에서 각 회차별로 구매(주로 대여 또는 소장으로 이루어져 있다)해서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모든 회차가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하기에 짧은 호흡과 빠른 전개를 중요시한다. 이처럼 인터넷 소설과 웹소설은 소비되는 매체에 따라 작품의 구성 또한 다른 특성을 지닌다.

 

 

웹소설의 성장과 규모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을 지닌 웹소설은 현재 어느 정도의 규모를 지니고 있을까?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 100억 원의 규모였던 웹소설 시장은 5년 동안 40배 가까이 증가해 2018년에는 4,000억 원을 돌파했으며, 이는 종이책 시장 규모의 약 2.5배 정도라 볼 수 있다. 또한 웹소설은 소설로 연재된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천 콘텐츠를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른 장르로 변용하는 OSMU(One Source Multi-Use) 전략에도 많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웹소설에서 웹툰으로의 변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드라마의 경우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된 ‘김비서가 왜 그럴까’와 네이버 웹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이 드라마화되어 성공을 거둔 사례 등이 있다. 그리고 웹소설에서의 변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콘텐츠들은 최근 세계 시장으로 규모를 확대해 나가는 등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 예상된다.

 

이처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웹소설이 연재되는 플랫폼은 현재 100개를 훨씬 넘는다. 이 중 대표적인 사이트를 알아보자면 우선 ‘문피아’와 ‘조아라’의 양대산맥이 자리한다. 두 사이트는 2000년대 인터넷 소설을 연재하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사이트로, 오리지널 작품만이 아닌 팬픽과 같은 2차 창작 작품 등 다양한 작품의 연재가 가능하다. 인터넷 소설부터 이어져 온 두 거대 사이트 외에는 거대기업의 자본과 마케팅 전략이 투입된 다음과 네이버에 대해 봐야 한다. 다음의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의 ‘네이버 시리즈’는 기업을 등에 업고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해 현재는 대표적인 웹소설 플랫폼이 되었다. 두 사이트는 단연 작품 광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특히 네이버 시리즈의 경우 최근 유튜브에서 배우들이 등장인물의 배역을 맡아서 한 광고와 김은희-장항준 부부의 광고로 이슈된 바 있다. 이와 같이 소수의 거대 플랫폼들이 웹소설 산업을 차지하는 가운데 현재의 다양한 플랫폼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사용할지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보인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 280 92893&memberNo=36383232&vType=VERTICAL

#연재주기 #사이다패스 #장르의 고착화

 

이번에는 웹소설 작품들을 살펴보자. 웹소설은 웹툰, 웹드라마와 함께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콘텐츠를 즐기는 ‘스낵 컬쳐’에 해당한다. 웹소설은 모바일 환경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되고 있으며, 앞서 말했듯 매회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독자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빠른 전개, 가독성, 간결함을 주요한 특성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웹소설의 본질을 잘 나타내지만, 이로 인해 웹소설 시장에 몇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웹소설의 연재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네이버 웹소설 서비스가 시작된 초기에는 평균 주 2회 정도 연재되던 웹소설들이 빠른 전개, 간결함을 강조하며 최근에는 주 5회에서 심한 경우 주 7회까지 주간 연재 편수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매일 한 편씩 올라온다고 해도 웹소설 한 편을 보는 데에는 5분이 채 걸리지 않기 때문에 댓글을 보면 ‘2편씩 올려주세요’, ‘다음 화가 시급하다’ 등의 반응을 자주 볼 수 있다. 웹소설은 독자들이 매화 결제해서 보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들은 연재 주기를 점점 짧게 하면서도 매 회차에서 승부를 보다 보니 결국 전체적인 작품의 퀄리티는 낮아질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한 문제를 지닌다. 작게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오타 및 비문 검수, 크게는 매 회마다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하니 전체 내용 전개는 조화롭지 못한다는 한계가 나타날 수 있다.

 

짧아지는 연재 주기와 관려하여 웹소설의 독자들은 점점 ‘사이다패스’라 불리는 면모를 보인다. ‘사이다패스’란 작품에서 답답함을 느낀다는 표현인 ‘고구마’와 대비하여 통쾌함을 느낀다는 표현인 ‘사이다’에서 비롯된 말로, 조금이라도 전개가 답답해지거나 스트레스가 생기는 장면이 있으면 이를 못 견디는 성향을 뜻한다. 통쾌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인물의 갈등과 시련이 있어야 하지만, 최근 웹소설에는 이러한 장면이 나오면 바로 ‘하차합니다’ ‘또 늘어지네’ 등의 댓글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작가는 의도한 전개를 밀고 나가기 힘들어지며 개연성 약한 ‘사이다’ 장면들의 향연이 될 수 있다.

 

역시 위의 특성과 연결하여 웹소설 시장에서는 점점 장르의 고착화가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연재되는 웹소설들은 거의 비슷한 구조를 지니는데,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야기구조는 한 번 살았던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회귀물’과 책이나 다른 작품 속 인물이 되는 ‘빙의물’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둘 다 주인공이 이미 기존 인생(혹은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모두 아는 상태에서 이를 바꿔나가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귀물’과 ‘빙의물’은 현재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앞서 말했듯이 조금의 답답함도 참지 못하는 독자들의 성향에 최적화된 설정에 해당한다. 현재 네이버 웹소설의 장르 구분을 보면 ‘로맨스’, ‘로판(로맨스판타지)’, ‘현판(현실판타지)’, ‘판타지’, ‘무협’, ‘미스테리’의 6개 장르 중 판타지적 면을 지닌 장르가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 또한 이러한 웹소설 장르의 편향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원형과 클리셰 - 원형에 대한 고찰

 

웹소설은 분명 활자 중심 콘텐츠의 화려한 부활이라 볼 만하다. 웹소설은 10년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으며, 최근에는 책을 안 보던 아이들이 웹소설을 통해 활자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리뷰 또한 많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번 기사를 통해 점점 빠른 전개와 짧은 호흡에 익숙해짐에 따라 작품의 전체적인 퀄리티 혹은 웹소설 창작자의 자율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몇몇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웹소설의 현주소를 보며 ‘원형’과 ‘클리셰’의 기로에 놓여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형’이란 인류 역사를 통해 나타난 규범, 즉 ‘오리지널’한 것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클리셰’는 기존의 장치와 문법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자세를 뜻한다. 앞으로 더욱 발전할 웹소설이 ‘원형’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클리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 나 또한 웹소설을 애정하고 즐겨보는 한 명의 독자로서 웹소설의 미래와 관련하여 ‘원형’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해보며 본 기사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