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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7호] 탈근대성에서 정치철학으로

 

 

탈근대성에서 정치철학으로

 

 

홍철기_서울대학교 박사 과정

 

우리는 더 이상 탈근대성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가 말했듯이 우리가 애초에 그 본래의 의미에서 근대인이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면 근대인과 근대성의 액면가에 의존하여 이를 비판했던 탈근대성의 시대 또한 애초에 오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 이상 탈근대성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탈근대성의 시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역사철학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역사의 종언'이 시작도 되지 않았고 도래하지도 않았다면 우리는 '역사의 종언'의 시대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탈근대성의 시대가 '언어적 전환'과 함께 시작되었다면 그 시대의 끝, 혹은 그 시대가 도래하지도 않았음을 표시하는 그 다음 전환은 어쩌면 '정치철학적 전환'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근대성 이후'의 시대가 언어를 그 외부의 지시대상, 혹은 초월적이고 불변인 진리로부터 분리시키고 해방시키면서 시작되었다면 '근대성 이후'의 시대의 마지막에 도달한 것은 바로 '정치적인 것(das Politische; le politique; the political)'의 개념이 아닐까? 흔히 정치의 일상적이고 제도적인 양상 배후에 있으면서 우리가 '정치'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고 경험하는 대상을 규정하는 일종의 정치의 본질, 혹은 진리로 쉽게 오인되는 '정치적인 것'은 사실 현상과 본질의 문제라기보다는 내부와 외부, 혹은 그 양자 사이에 놓이는 경계의 문제이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내부와 외부의 관계로서의 '한계'의 문제가 바로 정치적인 것의 문제다.

 

탈근대성의 언어적 전환으로부터 우리를 정치적인 것의 '정치철학적 전환'으로 이끌어 준 가장 대표적인 사상가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일 것이다. 사실 아감벤 자신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해명하려는 시도를 명시적으로 거부한다. 그의 이와 같은 거부는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특히 이 개념을 명시적으로 정식화한 독일 헌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에 대한 국제정치적 독해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국가 사이의 전쟁 내지는 적대의 개념으로 환원함으로써 내부인 '우리'와 외부인 '그들' 사이에 마치 명확한 분리가 가능하다는 것과 같은 인상을 풍기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감벤이 보기에 정치에서의 내부와 외부의 문제는 결코 이와 같이 남김없이 외화되거나 내재화될 수 없다. 그의 정치철학, 혹은 반-정치철학의 중심개념인 '벌거벗은 생명(nuda vita)' 혹은 '신성한 인간(homo sacer)'은 바로 이와 같은 완벽한 외화와 내재화의 이중적인 불가능성을 나타낸다. 오히려 이들 개념은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려는 욕망이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불가능성 때문에 내부와 외부를 보다 강도 높게 중첩시키면서 그 결과 외부와 내부의 중첩은 서로를 가리는 '()'의 상태를 초래한다는 점을 보다 분명히 한다.

 

◀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정치철학, 혹은 반-정치철학의 중심개념인 '벌거벗은 생명(nuda vita)' 혹은 '신성한 인간(homo sacer)'은 바로 이와 같은 완벽한 외화와 내재화의 이중적인 불가능성을 나타낸다.

 

아감벤이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양 정치철학은 정치와 윤리를 인간 본성 외부에 놓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적이며 윤리적인 삶 혹은 폴리스에 고유한 삶(bios)과 언제나 동물적인 삶, 혹은 동물에서부터 인간, 그리고 신에 이르기까지 모두에 공통된 삶이라는 단순한 사실(zoē)은 서로가 서로의 외부에 놓인 채로 유지되어야 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제에서 성인 남성 시민에게만 허용되었던 정치참여는 바로 이러한 분리의 제도화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의 정치적 원리를 개인과 인구의 생명보존이라는 비정치적이고 따라서 사회적인 원리와 일치시킨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이래로 서로의 외부에 놓여있던 윤리적 삶과 생물학적 삶의 관계는 완전한 중첩을 향해 전개되었다. 삶이 곧 주권을 획득하였으며 주권자는 인민이라는 총체적 신체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원리는 현실에서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윤리와 생명의 중첩은 질서와 조화 및 진보된 유토피아의 실현으로 귀결되지 않았다. 반대로 정치와 삶의 결합은 우리가 양자로부터 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가능성의 조합을 만들어냈다. 정치와 삶의 분리의 양극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정치(혹은 최대한의 탈정치)와 최소한의 삶(혹은 최대한의 비-존재)만이 완전한 불확정성 속에서 중첩되고 결합되었으며 아감벤은 바로 이러한 결합의 양태를 아우슈비츠에서 관타나모에 이르는 강제수용소의 수감자의 삶으로부터 찾는다.

 

그렇다면 이 같은 아감벤의 사상이 왜 언어적 전환에서 정치철학적 전환으로의 이행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아감벤의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에 대한 비판에서 찾을 수 있다. 데리다 자신의 정치철학적 전환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텍스트 중 하나인 1989년의 뉴욕 강연 "법의 힘: 권위의 신비적 토대"에 대한 비판에서 아감벤은 언어적 전환과 정치철학적 전환 사이의 결정적인 분기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데리다의 뉴욕 강연과 아감벤의 정치철학적 전환에 있어서 공통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수수께끼 같은 텍스트 『폭력 비판을 위하여』(1921)이다. 아감벤은 특히 데리다의 벤야민 독해를 문제 삼는데, 데리다의 독해를 따라가게 되면 법, 혹은 언어의 외부로서의 삶의 문제를 개념화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데리다가 보듯이 법과 힘, 언어와 삶의 폭력적 공모관계가 아니라 법과 힘, 언어와 삶을 모두 중단시킴으로써만 결합시킨다는 주권의 역설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감벤이 보기에 데리다의 벤야민 독해의 결정적 오류는 법을 기표로 보고 삶을 기의로 치환하는데 있다. 그 경우에 삶은 기표 주위를 배회하는 유령으로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아감벤이 삶을 언어의 외부로 보는 관점에서 다시 언어를 삶의 외부로 보는 관점으로 단순히 대체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언어라는 내부에서 삶이라는 내부로 간단히 자리를 옮기는 것은 어떤 대안도 되지 못한다. 그에게 관건이 되는 것은 삶의 관점에서 법이라는 외부, 그리고 법의 관점에서 삶이라는 외부라는 부와 외부의 이중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삶, 혹은 신성한 인간이란‘법 밖에 묶여’있고 동시에 ‘법 안에 버려진’존재라는 역설적인 정식화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이미 법 밖에 묶여 있기 때문에 법으로부터 탈출을 선택할 수 없으며, 또한 동시에 법 안에 버려져 있기 때문에 법의 보호 또한 요청할 수 없는 이중의 중간상태이자 유예상태인 것이다.

 

 

 

▲ 칼 슈미트는 1925년 민주적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 이후

1929년 대공황이 닥치기 직전의 시기인 1928년 발표된『헌법이론』의 저자다.

 

 


외부로 유출된 내부, 혹은 내부로 함입된 외부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구조를 밝힌 것은 아감벤의 정치철학적 전환의 매우 중요한 공헌이지만 그의 (반)정치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춘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외부에 있는 내부, 혹은 내부에 있는 외부에 대한 사고는 분명히 새로운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아감벤은 이를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무매개적인 방식으로만 개념화하고 있다. 주권 권력은 벌거벗은 삶의 산출한다. 강제수용소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의미에서는 죽었지만 여전히 생물학적 생명이 유지되는 신성한 인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아감벤은 그에 맞서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단편 소설의 주인공인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가 나타내는 자발적이고 절대적인 거부, 혹은 행위중단의 모델을 정치철학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모델이 함축하는 다양한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모델로부터 인민 주권과 민주주의를 다시 고하고 재구성하는 과제가 간단히 도출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한 크게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정치철학적 전환이 일종의 민주적 전환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니체적 윤리, 즉‘약자들로부터 강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묘한 역설로 환원하는 일을 회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다시 윤리적 진리로 치환될 것이며 그것의 탈근대적 판본인 비상한 시기의 드문 파편적 사건으로만 한정되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에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최초의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이성으로의 회귀와 그에 따른‘이성과 수’, 혹은 비민주적 진리와 민주적 다수결의 단순 대립도 피할 수 없게 된다. 필자는 정치철학적 전환의 민주화의 한 가지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칼 슈미트로 되돌아가기를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칼 슈미트는 바이마르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비상대권 조항을 신학적 견지에서 정당화하는『정치신학』(1922)의 저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의 밑바닥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명백한 친구와 의 구분이라는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신화에 의존하는『정치적인 것의 개념』(1927/1932/1963)의 저자도 아니다. 따라서 '국가는 신이고 비상사태는 기적에 해당 한다’는 정치신학적 정식이나 적과의 무력투쟁의 가능성의 상존을 전제로 하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친구)의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는 권위주의적이며 호전적인 국제정치적 독해는 잠시 유보하기로 하자. 정치철학적 전환의 민주화를 위해 읽어야 하는 슈미트는 바로 1925년 민주적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 이후 1929년 대공황이 닥치기 직전의 시기인 1928년 발표된『헌법이론』의 저자다. 당연히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정치신학적이거나 국제정치적 독해를 시도할 수 있고 그와 같은 요소들이 쉽게 발견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종의 이론적 과잉, 혹은 잉여로서의‘민주주의자로서의 슈미트’라는 계기가 바로 이 책에 등장한다. 민주주의 헌법의 문제에 대한 슈미트 자신의 검토가 이론적 집요함과 명석함의 산물이라는데 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과잉 혹은 잉여’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헌법이론』에서 그리 길지 않게 서술된 민주주의 헌법의 이론이‘주권자는 상사태를 결정한다’는 위로부터의 권위주의나 친구와 적의 구분이 나타내는 아래로부터의 권위주의라는 양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설명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헌법의 이론은‘고르디오스 매듭’을 자르기보다는 다시 매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여기서 핵심은 다시 외부와 내부의 관계의 문제이며 특히 법의 외부와 내부의 관계의 문제다. 법의 내부가 헌법이라면 법의 외부는 비상사태가 아니라 인민주권 혹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혹은 인민주권이 헌법 외부에 놓여야 하는 이유는‘헌법의 근원은 헌법 자신’라는 순환논리, 혹은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서다. 헌법이 그 자체로 정당성의 근원이라면 그 헌법은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 헌법이란 이미 하나의 역설이다(여기서 우리는 이른바‘헌법 밖의 진보’라는 문제를 다시 사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역설은 이항대립의 모순으로 귀결되지 않는데, 슈미트가 보기에 헌법이란 자신의 외부인 주권자 인민과 최소한 세 가지의 양상의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특히 이와 같은 해석은 미국 정치철학자 칼리바스(Andreas Kalyvas)의 공헌이다]. 헌법은 헌법자체를 탄생시킨 운동, 혁명, 혹은 제헌권력의 주체로서의 인민, 즉 헌법 이전에 그리고 상위에 있는 인민과의 관계로 우선 정의된다. 이때 민주주의는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전적으로 헌법 외부에 놓인다. 둘째로 헌법은 자신의 내부에 유권자라는 형태로 인민이라는 외부를 내재화한다. 하지만 외부는 언제나 완전히 내재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민은 제헌의 계기가 지나고 나면 헌법‘곁에(neben)’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우리는 내부에 남아있는 외부로서의 민주주의를 다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저자 본인은 여기에서 멈춘다. 제헌권력의 절대 민주주의, 선거에서의 다수결, 그리고 양자 어느 쪽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민주주의의 세 번째 계기 사이에 관한 체계적 이론화는 결코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완전한 외화와 완전한 내재화, 형식과 실질,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라는 단순한 이항대립으로부터 구출하고 싶다면 그와 같은 이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