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6.06.08 12:19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비장애인’인 선생님께서 어떠한 계기로 장애문제에 관심을 갖고 장애인운동에 연대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책을 통해 1996년 발생했던‘에바다복지회 비리사태’를 접하게 되어서, 선생님께서 장애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셨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계기에 대한 선생님의 구체적인 단상이 궁금합니다.

 


김도현 활동가(이하 김)> 에바다복지회 비리사태1)가 벌어졌을 당시 저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사실 저도 그때까지 장애인운동 현장을 직접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애문제를 운동적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특별한 각성이 없었어요. 선배들과의 소규모 세미나를 통해서 당시 한국 전체 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 졸업 학력 이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건데 왜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까라는 정도의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96년도 말에 에바다복지회 비리사태가 벌어졌고, 시설 내부에서 벌어진 비리나 폭행, 의문사가 드러나면서 원장이 구속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점차 잊어가고 있었죠. 그런데 97년도에도 에바다 투쟁을 시작했던 선생님과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해아래집’이라는 공동체를 꾸리고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걸 알게 되었어요. 끝나지 않은 에바다복지회 문제를 보면서 장애문제가 단순한 것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조직된 힘이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학교 다니는 내내 에바다 투쟁과 관련한 활동을 계속 하게 되었죠. 그 시기에는 어떤 면에서 제대로 된 장애인운동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물론 장애인단체는 많았지만 장애인단체가 다 장애인‘운동’을 하는 단체는 아니거든요. 사실은 장애단체 중 다수는 자조단
체나 이익단체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에바다 투쟁을 할 때도 지속적으로 결합한 장애인단체가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시민단체나 인권단체, 지역의 노동단체와 연대해서 투쟁을 했거든요. 지속적으로 투쟁에 결합했던 유일한 장애인 단위가 노들장애인야학2)(이하 노들야학)이었죠. 그러다 보니 저도 인연이 닿아서 노들야학 교사들과 식구들, 박경석 교장 선생님과친해졌죠. 학교 졸업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와중에 경석 형님이‘너 어차피 임용고시도 안 칠 것 같고, 뭐 할래? 여기서 같이 무언가를 도모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에바다 투쟁에서 만났던 노들야학을 통해서 장애인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진거죠.

서강> 사회운동의 주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그주체가 반드시 사회문제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장애인 운동을 하시면서 느꼈던 어려운 점들이 있었나요?


김> 소수자 운동이나 정체성의 정치라고 표현될 수 있는 영역에서 그러한 정체성을 지닌 대중들이 운동의 일차적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저는 장애인운동의 주체이기는 하지만‘내부적 연대자’로서의 주체이죠. 차이는 분명히 있죠. 노동자운동이든, 여성운동이든, 빈민운동이든 어떤 운동에서도 저는 당사자 중심이라고 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기본이기 때문에 운동의 목표는 아닌 거죠. 그 원리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목표인 것이지 그게 목표가 되는 순간 왜곡이 일어난다 는 거죠. 당사자 중심성을 가지고 무엇을 이룰지를 내세워야 하는데, 목표가 당사자주의가 된다면 왜곡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거죠. 비장애인인 제가 장애인운동을 할 때 겪는 어려움이라… 글쎄요.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는데 어떤 조직이든 뭔가 활동을 하는 거잖아요. 그럴 때 나타날 수 있는 갈등적 요소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소수자 운동과 비교해 보았을 때, 사실 장애인운동 내부에는 내부적 연대자들이, 그러니까 비장애인들이
많이 결합되어 있는 편이죠. 그건 두 가지 맥락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전통적으로 장애라고 하는 영역 자체가 운동을 통해 구성된 생태계였다기보다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형태의 단체가 많이 만들어졌던 측면이 있지요.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이건 굉장히 잘 들여다봐야 하는 데, 운동이라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여러 자원들이 필요하잖아요. 사회적 경험일 수도 있고, 학습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역량일수도 있고.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장애인들은 굉장히 많이 배제되어 왔다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그런 측면에서 또 비장애인의 연대가 필요한 영역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비장애인 활동가가, 누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활동에 있어서 실무적인 면이나 정보력, 활동력에서 장애인보다 더 많은 걸 갖게 되는 경우가 있죠. 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저 사람이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은 사회적 경험을 갖고 있고 더 많은 실무를 하기에, 운동이나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비장애인 중심으로 될 때 발생하는 갈등이 있을 수 있고요. 반면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실무자로서 일할 때 부담을 더 떠안게 되는, 약간의 미묘함이 사실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민주적으로 어떻게 잘 풀 수 있느냐가 그 단체가 건강하게 갈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인 것 같고요. 그런 지점 말고 원천적인 지점에서 제가 비장애인으로서 가지는 한계는 딱 그거에요. 내가 장애인으로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같이 공감하면서 발언을 했을 때 그때 발생하는 원천적인 한계 지점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저 같은 경우도 그런 점에 있어서 완벽히 자유롭지 않지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까 그게 제 고민의 화두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것보다 오히려 운동의 열악함으로 겪는 어려움이 훨씬 컸죠.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 드리자면요, 제가 2000년부터 노들야학을 시작했고, 예상도 못했는데 2001년부터 장애인 이동권 투쟁3) 이 시작되었어요. 1990년대 말에 거의 와해되었던 장애인운동이 이동권 투쟁을 시작으로 복원되기 시작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현장 투쟁의 조직, 동력이 다 와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동권 투쟁을 할때 중심이 될 만한 조직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장애인이동권연대라는 연대 조직이 꾸려졌을 때 전문적인 운동조직도 아닌 노들야학이 연대체의 간사단체 역할을했었어요. 상근자라고는 딸랑 한 명뿐인 조직이 말이죠. 그리고 2003년쯤 발산역에서 장애인 한 분이 지하철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시다가 추락해서 사망한 사고가 있어서, 제가 장애인 한분과 함께 광화문에서 선로 점거 투쟁을 했는데, 에바다 투쟁으로 집행유예가 걸려 있던 상태에다 괘씸죄가 플러스 되면서 그때 구속이 되었어요. 구속이 된다는 걸 알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경석이 형이‘야 너 내일 구속되지? 성명서 쓸 사람이 없다. 네가 규탄 성명서 하나 쓰고 들어가라.’이러는 거죠. 이게 재미있는 에피소드인데, 그래서 김도현 구속을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제가 스스로 쓰고 들어간 거죠.(웃음) 초기에는 장애인운동이 잘 구축되어 있던 상태가 전혀 아니었기 때
문에 뭐 하나하나가 다 정신이 없었어요.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활동가라는 면에서도 그랬고요. 사실 장애인운동을 이야기하면서‘세상이 장애인의 속도에 맞춰야한다. 변해야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세상의 속도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역으로 우리 내부의 속도가 너무 정신이 없었던 거죠. 그러면서 생겼던 어려움, 소통의 문제가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서강> 장애문제나 장애인운동에 있어서의 어려움들을 사회에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데, 오히려 기존의 주류 매체나 언론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보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매스컴이나 주류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는 장애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BeMinor4)(이하 비마이너)를 통해 알게 되는 사실이 많은데요. 발행인으로서 비마이너를 발행하게 된 계기와 비마이너의 취재방식과 운영방식이 궁금합니다.


김> 사실 운동을 할 때 사회 구성원이 특정 사회문제에 대해 어떤 이해와 인식을 갖고 있는지는 굉장히 중요하죠. 이동권 투쟁을 처음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투쟁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좀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이동권 투쟁을 할 때는 선로를 점거한다든지, 버스를 점거한다든지, 도로를 막거나 행사장을 점거하는 등의 점거 투쟁들이 많다보니까, 이동권 투쟁과 관련하여 여러 인권단체들, 사회단체들과 연대를 할 때 일부에서는 이 측면을 우려했었어요.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투쟁 방식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만들어지면서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닌가 하고요. 그때 노들야학의 교장인 경석 형님이‘나는 오히려 욕을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욕을 한 바가지가 아니라 한 트럭이라도 먹어서 그런 식으로라도 이 문제가 이슈가 되어서 텔레비전 토론회라도 한 번 나왔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만큼 장애문제는 논의나 토론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담론 공간이나 언론에 대해서 굉장히 갑갑함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경석 형님이 그때 얘기했던게 자기 소원은 MBC 백분토론에서 장애문제로 토론이라도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지난 15년 동안 지상파 방송에서 매주 하나씩 의제를 선정해서 토론을 했지만, 그동안 장애문제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직접 비마이너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비마이너 창간초기에는 솔직히 장애인운동의 투쟁들을 알리는 것만으로 벅찼는데, 6년째 되어가니깐 어느 시점부터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하는 독자는 누구일까?’한편으로는 비마이너 매체가 장애인운동의 활동을 기록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장애문제
를 잘 모르고 관심을 갖지 않는 대중에게 더욱 초점을 맞춰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사실을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통해서 어떤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확실히 독자들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서강> 장애라는 개념이 규정되는 방식과 관련하여‘장애’의 주류적인 정의는 사회적인 담론을 구성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진 비장애인들에 의해서 뭉뚱그려서 정의되곤 하는데요. 그로 인해 육체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이‘장애인’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환원되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라고 규정되어 묶인 다양한 사람들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주체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김> 이 질문이 제일 어려운 것 같네요. 일단 정체성이라고 하는 게 어떤 역할과 연결되기도 하고, 내 몸의 차이와 연결되기도 하는 등 사람은 다양한 여러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그 중에는 강하게 느끼지 않는 것들도 많이 있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중에 어떤 것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있고, 중심적인 정체성으로 뾰족하게 솟아오르거나 부각되는 것도 있고.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정체성이 왜 중심적인 정체성으로 나타나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아마도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겠죠. 어떤 정체성이 부각되고 중심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사회적 억압이나 차별과 맞물려 있다면, 사실 이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형식의 정체성 표출은 어떤 식으로든 저항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체화를 의미하는 단어‘identification’에서‘identify’는‘확인하다’, ‘발견하다’는 뜻이 있거든요. 결국은 내 삶의 가장 중심적인 부분에서 어떠한 사회적인 차별과 억압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정체성이 구성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내가 장애인으로 살면서 차별과 억압이라는 걸 발견하고 확인했을 때 드러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표현은 저항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단순히 거리 투쟁과 같은 저항뿐만이 아니라, 연극 등의 예술적인 방식일 수도 있고, 글쓰기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일 수 있겠죠.

서강>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범주가 등장하고, 그것이 사회적인 배제와 낙인으로 작용하게 된 이유는 노동을 통한 생산의 극대화를 위해 표준적인 육체를 필요로 하는 산업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보시는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하는데요. 그나마 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하더라도 생산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당하는 장애인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한 번씩 장애인실태조사라는 걸 전국 단위로 해요. 이때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혹은 오해할 만한 통계 수치가 있어요. 노동과 관련된 걸 보면 장애인 실업률이 비장애인의 2배, 임금 수준은 절반으로 나와요.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실업률이 일반적으로 3~4%정도이고, 장애인 실업률은 이에 두 배라고 해서 7~8%로 표현되거든요. 100명 중에 7명 정도가 실업자라고 표현되는 건데, 문제는 장애인 같은 경우 2/3정도가 비경제활동인구예요. 이미 2/3, 60%이상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배제된 거죠. 그 나머지 부분에서 실업률을 잡으니까 7~8%정도의 실업률, 그러니까 92~93%의 취업률이 나오는 거죠. 사실 실업률, 취업률이라는 것이 장애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비경제활동인구를 빼지 않고 전체 노동 가능 연령 인구 중 취업한 사람의 비율을 따지는 고용률(employment to population ratio)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결국 장애인의 고용률은 35%정도가 되는 건데, 사실 이것도 허수가 많이 있죠. 어쨌든 문제는 장애인 중 2/3정도가 구조적으로 노동 자체에서 배제가 되어 있는 상황인데, 이에 대해
현 자본주의 사회가 적극적인 대책이나 방안을 제시하고 있느냐? 역사적으로 장애인이라는 범주 자체가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지요. 그래서 장애인 노동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접근은 상당히 근본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일단 한국의 경우 장애인 노동 문제를 다루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라는 게 있고, 이 법의 핵심은 장애인의무고용제도5)에요. 장애인들이 워낙 구조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있으니까 할당제를 두는 거죠. 현재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3%, 민간 기업은 2.7% 정도의 의무 고용률을 부과하고 있어요.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 게 사실 하나의 문제이긴 하죠. 그리고 의무고용제도 잘 안 지켜지는 것은 강제성이 약하기 때문이에요.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고용부담금을 내도록 하는데, 매년 변동이 되긴 하지만 이 고용부담금이 최저 임금의 60% 수준이에요. 그러다보니 대기업 일수록 그냥 법을 지키지 않고 부담금을 내고 말아요. 한국에서 고용부담금을 제일 많이 내는 기업이 어디냐하면 바로 삼성이에요.(웃음) 반면 프랑스
같은 경우 한국과 비슷한 의무고용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부담금을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을 해요. 중소기업은 최저 임금의 2배예요. 그들 입장에서는 의무고용제를 안 지키고 부담금을 내는 것보다 장애인을 고용해서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게 더 나은 거죠. 대기업은 최저 임금의 3배가 되요. 이런 방식으로 의무고용제가 강제성을 갖도록 하는것이 일단 1차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에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은 노동을 점점 덜 필요로 하게 되고, 노동을 축출해나가
는 양태가 벌어지는데,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시장에만 맡겨지는 게 맞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상식이 되는 최소 규범을 담는 것이 법이잖아요. 최상위의 법인 헌법이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라고 규정하는 것이 있어요. 교육과 노동. 저는 교육은 권리이면서 의무인 그 위상에 나름대로 걸맞게 굴러간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국가가 의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것을 공적인 영역에서 다룬다는 거죠. 교육은 공교육 시스템이 있고 플러스 알파로 사교육 시장이 있는 거예요. 그런
데 노동은 전부라고 할 만큼 그 대부분이 민간시장에 맡겨지죠. 그러니까 노동할 권리는 노동시장에서 각자 알아서 쟁취해야 하고, 공공근로나 사회적 일자리 같은 공공영역은 쥐꼬리만큼 플러스 알파로 덧붙여져 있고요. 그런데 노동 역시 헌법이 규정하는 권리이자 의무라면 교육과 마찬가지로 공적인 영역에서 보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적인 노동의 구축이 함께 가지 않으면 장애인 노동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동권 문제를 이야기할 때 교통약자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이때 장애인, 노
인, 임산부, 어린이 등을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노동문제도 노동약자라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지금의 노동약자는 장애인을 포함해서 청년이고 여성이고 이주민이고 청소년일 수 있죠. 즉 모든 이들의 노동이 보장되는 일종의‘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노동이 공적인 영역에서 보장되는 일종의 공공시민노동 체제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어떠한 목표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서강> 언젠간 지하철을 타다가 어느 부부의 옆에 서게 되었는데, 그 두 분이 수화로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보고 되게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왜 나는 수화를 교육받아본 적이 없을까’하고 자문해본 기억이 납니다. 장애계에서는 점자나 수화와 같이 각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다양할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사회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김> 방금 농인의 언어를 얘기해주셨는데, ‘언어권’이라는 걸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언어권이라는 개념은 다민족사회에서 소수민족이 자기의 언어를 지키는 과정, 나의 모국어를 가지고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걸 말하거든요. 그런데 언어권이라는 게 사실은 우리가 갖는 권리의 인식 체계 안에서는 자유권으로 인식이 되지요. 저의 경우라면 제 모국어인 한국어로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건데, 공권력이 나타나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저에게 영어만 사용해서 사회생활을 하라고 강제하지 않는 한 제가 제 언어권을 침해받을 일은 없죠. 그런데 동일한 어떤 권리가 다수자에겐 자유권인데 소수자에겐 사회권일 수 있어요. 이동권을 생각해 봐도 그렇죠. 이동권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자유권이죠. 그런데 어떤 장애인들에게는 이동권은 사회권이에요. 이미 대중교통 체계 자체가 비장애인의 관점에 맞춰져 있다 보니 어떤 유형의 장애인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해요. 이때 사회권이 되는 거죠. 언어권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농인들이 자신의 모국어인 수화 언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억압이 있었어요. 농인들에게 수화가 아닌 구화(口話)를 통해서 교육을 시키고 구화를 사용하도록 강요했거든요. 그래서 그 시기에 교육을 받은 농인 분들 중에는 상대방의 입술 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 독순(讀脣)을 하는 분들이 계셔요. 그렇지만 이게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또 자신의 모국어인 수화를 배울 기회는 잃어버리고 억지로 구화를 통해 소통을 하다 보니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지금은 그러한 억압적 정책이 철회가 되었지만, 농인들의 언어권에서 중요한 지점은 그것을 사회권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거죠. 즉, 단지 이제는 구화를 사용하도록 강요하지 않으니까 된 것이 아니라, 농인들이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적극적 정책이 필요하죠. 그렇기에 수화를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사회 서비스가 필요해요. 수화 통역이죠. 한국에 서의 활동보조서비스6)는 신체장애인들 위주예요. 활동보조 서비스가 영어로‘personal assistant service’, 즉 각 개인의 필요에 맞춘 개인별 지원
서비스거든요. 그럼 농인에게 필요한 활동보조서비스는 뭐냐 하면 자신의 언어권을 실현하기 위한 서비스죠. 우리나라 높으신 양반들이 외국 나가서 돌아다니면 그분들은 의사소통의 장애를 경험하지 않는데, 그게 그분들이다 영어를 잘해서는 아니잖아요. 그분들에게는 통역서비스가 적절하게 제공이 되니까 장애를 경험하지 않죠. 그런 식의 조치가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또 다른 측면으로 우리가 의사소통이라고 했을 때 잘 떠올리지 못하는 영역이 있는데, 그게 지적장애인이나 자폐성장애와 같은 발달장애예요. 그러니까 발달장애인이 지니고 있는 의사소통 체계나 방식이 또 다른거죠. 저는 어떤 면에서 보면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문제는 농인의 문제와 같진 않지만, 유사하게 볼 수 있는 지점도 많다고 생각해요. 법무부가 2013년 말부터 시행한 제도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진술조력인 제도라는 거예요. 발달장애인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형사절차상에서 불이익을 당할 확률이 높잖아요. 경찰 및 검찰조사 과정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또 형사와 검사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이러한 상황에 처한 발달장애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진술조력인이에요. 쉽게 말해서 한편에 발달장애인이 있고 다른 한편에 비장애인인 형사와 검사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이들의 소통을 매개해 주는 사람이 지원되는 거죠. 비장애인의 말을 발달장애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고, 또 발달장애인의 얘기를 파악해서 형사와 검사에게 전달하고. 진술조력인제도가 굉장히 괜찮은 제도인데,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하는 건, 발달장애인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형태의 매개자가 단지 형사절차상에서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거죠.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장애라고 하는 건 어떤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위치해 있는 거죠. 신체적 장애인이 버스를 못 타는 장벽은 그 사람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버스와 나의 몸 사이의 관계에 있는 거죠. 그 관계를 바꿔주면 장애가 없어지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지체장애인은 몸에 손상이 있어서, 장애가 있어서 버스를 못 탄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사실 의사소통의 장애도 그 사람의 몸에 있는 게 아니라 관계 안에 있는 거죠. 그 관계 안에 존재하는 장벽, 그게 사실 장애(disability)예요. 사회적 장애가 있고 신체적 장애가 있는데, 사회적 장애는 신체적 장애에 의해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사회적 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제도일 수 있고, 물리적 변화나 서비스일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구조를 바꾸거나 제도를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유권이 아
닌 사회권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죠.

서강> 사회적 차별과 억압, 배제를 당하는 장애인,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에게 필요한 것은 타자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깊은 공감과 그것을 위한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장애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근본적으로 어떤 새로운 답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제도와 개인의 감각, 감수성, 인식이 분리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맞물려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경석 형님이 장애인 인식 개선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비장애인들도 종종 그런 것처럼) 장애인도 불금이나 주말에 지하철 막차에서 오바이트하는 걸 보여주는 거라고 말해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장애인의 일상이 비장애인의 일상과 섞여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 교통에서부터 공부하는 교실, 직장 등의 공간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일상을 함께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식 개선이 된다는 거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일상의 공간으로 나올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죠. 두 번째로는 장애인 문제를 타자화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의 문제로,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가 중요하겠죠. 요즘 보험 광고를 굉장히 많이 하는데, 예전에는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위해서 보험을 들라고 광고를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라고 이야기하면서 광고를 하거든요. 어차피 우리는 생의 어느 시기에는 일정한 장애를 경험하며 살다가 죽는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고령화 사회가 되다보면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장애인과 같은 몸을 갖게 되고, 교통약자가 되는 거죠. 실제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영어권에서는 ‘탭’(TAB, the Temporarily Able-Bodied)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요. 누구나‘일시적 비장애인’, 곧‘예비 장애인’이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점이 지니는 한계도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그걸 평소에 생각하거나, 생각하고 싶어 하지는 않잖아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고 싶어 하지는 않거든요. 또 성차별의 문제를 생각해볼 때 이와 같은 관점으로 본다면 여성문제는 남성에게 무관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죠.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남성이 여성이 될 리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여성문제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과의 관계의 문제라고 인식해야 하는 거죠. 우리가 보통 여성문제가 해결이 되려면 남성이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이건 남성이 여성문제와 무관한 존재가 아님을 잘 드러내주지요. 그러니까 여성문제에 여성이 한 일방이라면 다른 한 일방은 남성이라는 거지요. 이 두 가지 지점을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결국 장애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비장애인 혹은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비장애인 남성인데 제가 장애문제와도, 여성문제와도 무관한 존재가 아닌 거죠. 이 양자를 같이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1) 최성창을 비롯한 최씨 일가가 사유화한 경기도 평택시의 에바다복지회가 운영하는 에바다학교와 에바다농아원, 에바다장애인복지회에서 벌어졌던 비리와 인권유린 사태.(출처:한겨레21,박래군의 인권 이야기)(편집자주)
2) 교육의 기회를 놓친 장애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확대하기 위한 취지 아래 1993년 개교. 노들장애인야(野)학은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차별받아온 척박한 장애성인의 삶을 비틀어 보고 억압된 현실에 맞서, 이를 변화시켜 낼 수 있는 당사자 스스로의 생각
과 실천의 힘을 기르기 위한 교육사업 및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음.(출처: http://nodl.or.kr/)(편집자주)
3) 이동권(Rights of Mobility)이란“어떠한 목적으로 이동을 할 때,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그 수단 및 동선을 확보함에 있어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2001년 1월 말, 수도권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수직형 리프트 추락사고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됨. 2004년 말 이동권이 하나의 권리로서 명시되고, 저상버스 도입의 의무화가 규정된‘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됨. (출처:<당신은 장애를 아는가>,김도현 지음, 메이데이, p.90~98)(편집자주)
4)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장애인이 처한 현실과 어려움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2010년 1월 창간된 인터넷 매체.(출처:http://www.beminor.com/)(편집자주)

5) 비장애인에 비해 취업에 어려움이 많은 장애인의 고용촉진을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주에게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의무
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담금을 납부하게 하는 제도.(출처: 고용노동부 홈페이지)(편집자주)
6) 활동보조서비스란 식사, 옷 갈아입기, 용변 보기, 씻기, 휠체어 오르내리기, 외출, 컴퓨터 작업, 전화나 대화 등 의사소통, 사무 등 다양한 일상 활동에서 어려움
을 겪는 중증장애인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는 유급의 인력이 활동 보조를 수행하는 것. 활동보조인에게 지급되는 급여의 재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
체가 마련.(출처: 위의 책, 김도현 지음, 메이데이, p. 145)(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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