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강대 대학원

[109호]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박승일 기자 죽음을 말하는 건 항시 조심스럽다. 죽은 이에 대한 예의 때문이 아니라 남은 자에게 지속되는 기억의 고통 때문이다. 그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은 ‘무의지적 기억’ 속에 고이 잠들어 있다가 불현 듯 기억 속으로 소환되어 ‘네’가 죽었음을 지금-여기에서 확인 시킨다. 그 앞에서 남은 자는 말없이 흐느낄 수밖에 없다. 죽음이 슬픈 건, 그 죽음이 바로 ‘너’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너’의 죽음이기에, 정지용 시인의 마냥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림”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존재를 공백으로 만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 속 허무이다. 헌데 모든 죽음이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죽음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기억되는 반면, 어떤 죽음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 더보기
[109호] 벼랑 끝에서의 추락 -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 전국의 대학들이 공사 중이다. 낡은 건물이 리모델링되고 새 건물이 올라선다. 하지만 새롭게 늘어나는 공간들이 온전히 학문적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편의시설 유치라는 이름으로 수익시설들이 하나 둘 대학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학의 물리적 확장이 학문의 확장이 아니라 자본의 확장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체계 속에서 대학의 기업화는 가속화 되고 있다. 요란한 공사 터의 가장자리에 소위 시간강사, 즉 비정규 교수들이 비껴 서있다. 비정규 교수란 ‘시간강사를 비롯해 외래, 겸임, 객원, 대우, 강의 전담, 연구 교수 등 정년 보장을 받지 못하고 한 학기 혹은 일정 기간 동안 임용되어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소위 임시직 강사’를 말한다. 임시 고용직이기에 이들을 위한 대학 .. 더보기
[109호] 아내폭력과 『똥파리』 최지나 (여상힉협동과정 석사과정) 양익준 감독의 영화 『똥파리』는 보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가족’을 보여준다. 영화 『똥파리』 속 인물들의 가족은, 가족 개개인들이 평생에 걸쳐 지게 될 짐짝이나 다름없는 공포와 상처의 기억이다. 이는 가족이 결코 자원이 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며, 드러낼 수 없는 금기와도 같았던 ‘핵가족 이데올로기’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적나라한 재현에서도 젠더의 프레임을 적용하면 ‘아내 폭력’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영화 『똥파리』가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은 ‘가족만이 희망이다, 내 가족밖에 없다’는 식의 한국사회의 가족담론에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가족이야기를 재현하는 방.. 더보기
[109호] 학내 홈플러스 입점, 의견 충돌에 몸살 학내 홈플러스 입점, 의견 충돌에 몸살 효율적 공간조성 위해 구성원 힘 모아야 vs 원활한 학내 소통으로 갈등 해소해야 2009년 4월 13일 서강대학교 교수협의회(이하 교수협) 홈페이지에 ‘이사장님께 드리는 항의서한’이라는 제목의 투서가 올라왔다. 발신인은 당시 교수협의회 회장인 정요일 교수. 내용은 재단의 재정비리 의혹과 홈플러스 건립문제였다. ‘국제 인문관 및 개교 50주년 기념관’ 기공식을 4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 문제는 재단의 회계 문제를 지적하고 홈플러스라는 가시적 사안을 거론함으로써 학우들로부터도 큰 관심과 주목을 받았고 동시에 언론에도 보도됐다. 대학 내에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오는 최초 사례이기 때문이다. 대학 내부에 홈플러스가 입점한다는 소식은 2007년 5월 한 일간지의 기사를 통해 처.. 더보기
[109호] '말하는 입과 먹는 입' 저자 김항을 만나다 ‘종언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사유의 모색 "이 책에서 시도하는 것은 이들의 사유를 통해 자연 상태를 먼 과거나 밀림의 오지로 내쫒아 현재의 법-권리-국가를 투명하고 완결한 것으로 상상하려한 근대의 인간학을 뒤집어보는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뒤집기에는 국적이 있을 수 없다. 여기에 선보이는 글들이 씨름하고 있는 사건이나 텍스트는 물론 특정한 '국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거기서 추출된 것은 '인간'을 둘러싼 '정치적인 것'의 구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국민'인 한에서 '인간'일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근대적으로 분식된 정치사상은 여기에 들어설 자리가 없는 셈이다." 우선 선생님께서 책을 쓰시게 된 동기를 듣고 싶습니다. 일본 유학 중에 독특한 경험을 했어요. 독일이나 프랑스에 유학을 가면.. 더보기
[109호] 이명박 정권의 정체 ‘언론 독재’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무릇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가장 중요한 공론장이다. 공론장이 닫혀있을 때, 민주주의는 질식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소통 부재’를 드러내는 상징이 바로 서울 광화문의 ‘명박산성’이다. 물론, 대한민국 한 복판의 네거리를 가로막아 섰던 명박산성은 촛불항쟁이 수그러든 뒤 사라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서울 용산 철거민들의 참사 앞에, 화물노동자들의 절규 앞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행렬 앞에 명박산성은 견고하게 서있다. 더구나 ‘공권력’이 그들을 ‘로마병정’처럼 지키고 있다. 문제는 권력과 민중의 소통 공간이어야 할 언론이 되레 명박산성을 옹호하는 데 있다. 아니, 공권력을 부추기며 명박산성을 함께 지키는 데 있다. 청와대와 국회.. 더보기
[109호] 아감벤 : <호모 사케르>와 현재 진행형의 계보학 박진우 (파리 5대학 커뮤니케이션 사회학 박사과정) 아감벤 효과 라는 낯선 제목의 책 한 권이 처음으로 세상에 던져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이다. 고대 로마법 전통 속에서 ‘희생될 수 없는 존재’ 즉 제의에 바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를 죽여도 어떤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이 모순적 존재에 대한 논의는 모두에게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 이탈리아 철학자에게 ‘호모 사케르’라는 범주는 서양 정치철학의 근원적 패러다임을 질문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도구였다. 주권 권력에 의해 배제됨으로써 주권 속에 포함되는 이 모순적 존재, 이러한 ‘벌거벗은 생명’이 시민, 인권과 같은 서양 정치철학의 핵심 범주라는 주장은, 우리로 하여금 법과 주권, 정치와 근대 민주주의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게끔 해 주었다. .. 더보기
[109호] 지젝과 해방정치의 시차적 전환 한보희 (연세대 비교문학 강사) 주식회사 대한민국, 이 경제 일원론의 시대는 성공과 동시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경제다!”라는 구호는 더 이상 경제적 구호가 아니라 정치적 구호로 반전된다. 게다가 그 경제-정치적 구호에서는 묘한 종교적 근본주의의 냄새가 난다. CEO 대통령 이명박은 ‘생필품의 물가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라’는 개발독재시대의 명령을 내리고 (‘부시-너머’가 아니라 그저) ‘부시-이후’임이 나날이 뚜렷해지는 오바마는 시장주의 경제를 국가-시장주의 경제로 다시 쓰는 일에 매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민의 죽음으로부터의) ‘정치적인 것’의 재탄생 이 ‘되돌아온 중세’적 세계―신으로서의 자본-권력과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체제―의 법은, 마치 카프카의 법정처럼, 삶에 대한 직접적 명령처.. 더보기
[109호] 랑시에르 그리고 배역보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연극 박진우 (파리 5대학 커뮤니케이션 사회학 박사과정) 정치판은 당파적 이익들의 각축장이 된지 오래다. 68년 이후 부모, 선생, 지도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이민자들 탓에 공동의 가치도 흔들린다. 대중 소비사회에서 원자화된 개인들의 머릿속엔 사적 이익과 무분별한 욕망뿐이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묘사했듯이,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는 민주주의에 그 기원이 있다. 이것이 1980년대 프랑스에서 공화주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공통 통념이다. 그들은 레오 스트라우스와 한나 아렌트를 참조함으로써 정치적인 것을 한정하고, 공론 영역을 회복하고자 했다. 자크 랑시에르는 정치의 종언 속에서 정치를 되찾으려는 이러한 담론들과 대결하면서 그의 정치적 사유를 발전시켰다. 특히 아렌트와 랑시에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 더보기
[109호] 근대 국가의 계보학자, 푸코 서동진(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최근 우리는 새로운 푸코의 목소리를 경청하게 되었다.그것은 새로운 푸코의 초상과 함께 도착하였다. 그 푸코는 근대 정치 이성(합리성)의 분석가로서의 푸코이다. 이 때의 푸코는 에피스테메의 고고학자로부터 자아의 심미적 윤리의 전도사로서의 푸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것은 흔히 일군의 푸코 연구자들을 통해‘통치성’이론가로 특권화되기까지 한 푸코이다. 푸코는 이른바 통치성이란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근대 정치 이성의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자유주의를 분석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근대 국가의 계보학을 작성하는 일이었다.푸코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자유주의 세미나 3부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세미나를 연속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세미나에서 이뤄진 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