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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43호] 기억을 나누는 기쁨_박범준

기억을 나누는 기쁨

 

기억의책 편집자 _ 박범준

 

 

기억의책을 만들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70여권 기억의책을 만드는 동안 꿈틀 직원 수는열 다섯을 넘었고, 바다 건너 대만에서도 첫 번째 기억의책이 인생서책(人生書冊)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처음 시작할 때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즐겁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기억의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단지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아버지와 불화를 거듭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제법 당당하고 어른스러운 나였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늘 위축됐다. 나를 철없고 답답한 막내아들로 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 앞에 서면 긴장했다. 조리 있게 내 뜻을 설명하지 못했고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강변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일로 바빠 보이지 않다가 느닷없이 나타나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내 마음 속에 깊은 상처였다. 늘 힘들었고, 자주 불화했고, 그 속에서 깊은 좌절과 수치심을 느꼈다. 막연하게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낄 무렵 내 생에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1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와의 결별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제법 당당하고 어른스러웠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아내와 감정싸움을 할 때면 마치 아버지와 관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철없고 답답한 사람으로 돌변했다. 그때마다 어렴풋이 아버지와의 관계가 내 삶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실수가 쌓이면서 아내와의 관계는 점점 나빠져 갔고, 마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아픈 이별을 맞이했다.

살다보면 잘 맞지 않아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리석고 성숙하지 못한 나는 너무나도 아프게 헤어져야 했다. 그 뒤에 찾아온 것은 깊은 좌절의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좌절을 딛고 일어서던 무렵에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반드시 회복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더 이상 유치하고 미성숙한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했다. 너무나도 다른 세월을 살아오면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아버지와 나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차라리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관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느끼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제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다가 오랜만에 아버지가 말문을 여셨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하고 있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당시에 쓰기 시작한 책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아버지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너는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릴 거냐? 그런 책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어디 취직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나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철없는 짓이라고 비난하시는 것에 마음이 상한 나는 거친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예전 같으면 욱하고 성질을 냈겠지만 차분하게 내 감정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아버지, 저 이제 나이가 마흔이 넘었어요. 아버지가 제 삶을 인정해주지 않으셔서 답답해요.”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아버지가 조금은 내 뜻을 이해해 주시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의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내셨고, 나는 다시 한번 좌절하면서 자리를 떠야 했다.

혼자 방에 누워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대체 나의 삶을 인정해달라는 말이 뭐가 그렇게 화가 날 말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서운 생각 하나가 내 머리를 스쳤다.

마흔이 넘은 아들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말하던 그 순간까지 내가 일흔을 넘긴 아버지의 삶을 인정한 적이 있었던가?’

철이 들면서 아버지의 삶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 그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마흔이 넘도록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의 마음이 답답했다면, 일흔이 넘도록 아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제서야 아버지가 보인 분노를 이해하면서 혼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무렵 한 책에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대한 대화를 나누라는 조언을 들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가치관의 차이로 부딪히기 쉽지만,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버린 내 기억 속 아버지 모습이 아니라 천진난만하고 꿈이 많던 미래를 고민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년은 나처럼 생각이 많고 겁이 많았다. 미래는 불안했고 기댈 곳은 많지 않았다. 기억 속 나의 어린시절 혹은 내 주변 가까이 지내는 친구나 후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제서야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모습이 편안하게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내 꿈 중에 하나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었다. 운 좋게도 나는 30대에 그 꿈을 이뤘지만, 혹시 아버지에게도 그런 꿈이 있지 않았을까? 굳이 많은 독자를 만날 수는 없어도 상관없다. 누구에게나 자신 삶의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 의미 있을테니 말이다. 적어도 아들, 딸과 손주들은 그 책을 읽고 자신의 뿌리를 떠올릴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기록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담은 책이니 생애사라고 부를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이니 자서전이라고 부를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기억의책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다. 대단할 것 없고 특별할 것 없어도 한 사람의 기억을 그대로 담은 책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책을 만들자는 말씀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왜 또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꾸짖지 않을지..... 여전히 나에겐 아버지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먼저 제주해녀 할머니의 기억의책을 만들었다. 경험 없이 의욕만 앞선 책이었지만 함께 참여한 동료들에게는 소중한 경험과 큰 용기를 준 책이다. 딸을 여섯 낳고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얻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책이 한권 나오니 기억의책을 더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버지도 흔쾌히 책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 기억의책을 만들고 나서 아버지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용기를 내주지 않으셨다면 사라져버렸을 이야기들이 빛바랜 사진과 함께 책으로 남았으니 말이다. 아버지 책을 만들어서 처음 보여드리는 날 무척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찬찬히 살펴보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야 막내아들이 아버지 삶을 그대로 인정해드려요.’

기억의책을 만들기 위해 꿈틀이라는 이름의 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 꿈틀에 참여한 분들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실향민이신 아버지의 이야기가 궁금한 원성철 대표님, 어머니에게서 늘 너는 늘 남의 이야기만 쓰지 말고 네 엄마 이야기도 한번 써봐라. 엄마 이야기가 책 한권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권민진 부편집장님, 젊어서 아버지를 잃은 강민수 부편집장님, 인류학 석사로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논문을 쓴 오주해 작가님, 홍보영상을 촬영해준 인연으로 시작해 회사에 들어온 영상담당 김동언씨, 일인창조기업으로 어르신들의 옛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여는 일을 했던 박미혜 이사님 등등. 이제는 열다섯 명이 넘은 꿈틀 식구들은 책을 가장 잘 만들거나,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믿음으로 삶의 의미를 가장 잘 존중하고 삶의 이야기를 제일 잘 경청하는사람들이다. 그 힘으로 우리는 세상에 없던 부모님의 삶을 책으로 엮어서 남기는 일을 만들어왔다.

20179월에는 대만에서 만든 첫 번째 기억의책이 세상에 나왔다. 여행 중에 만난 대만 젊은이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나도 우리 할아버지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 소개로 알게 된 대만의 젊은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들에게 꿈틀이 추구하는 가치와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대만에서도 이런 일을 해보자고 설득한 지 1년여만의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첫 번째 기억의책이 나오면서 회사의 꼴을 갖추고 일이 시작되었다. 책을 만들 수 있는 팀이 짜여지고, 보여줄 수 있는 시제품이 나왔으니 대만에서도 곧 기억의책들이 하나 둘 세상에 나오리라 기대한다. 마침 11월에는 대만에서 첫 번째 기억의책 주문이 들어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가족의 기억의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인데, 어쩌면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욕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하나 뿐인 자신의 기억은 소중하다. 어르신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귀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무척 행복해하신다. 한 나절 동안의 인터뷰에 지칠 법도 하지만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동안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열정을 보여주시는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보다도 그렇게 누군가 앞에서 자신의 기억을 토로하는 순간 더 행복해하시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풀어놓는 동안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많은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들은 한 뇌인지언어학자는 그렇게 오래된 경험을 더듬고 언어로 구성하여 표현하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뇌인지언어활동이며, 그런 활동이 어르신들의 치매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의견을 주셨다. 2018년에는 어르신들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고 다른 사람과 나눔으로써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기억활동 교육프로그램을 산학협력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기억의책을 통해 가족들은 간접적으로나마 깊이 있는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것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나 스스로가 아버지와의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이다. 더 나아가서 장례식장에서 고인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고인의 기일에 가족들도 제사준비에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고인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추모하는 가족문화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2017년 꿈틀은 제주도 서귀포서 남원읍 하례리의 어르신 열 분의 기억의책을 만들었다. 한 마을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열 분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라면 마을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기획한 프로젝트다. 2018년에는 제주도 4.3사건 70주년을 맞아 4.3 생존자 약 백 분의 어르신 기억의책을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재일제주인등의 재외동포, 특정지역이나 직업의 경험을 공유하는 어르신들의 기억의책을 만드는 작업은 공동체의 역사를 개인 삶의 기억들로부터 구성하는 의미있는 작업이라 되리라 기대한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게임(The game of throne)를 보면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 있다.

아무도 너를 노래하지 않을 거야!”

중세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이 드라마의 원작소설 제목은 불과 얼음의 노래(The song of ice and fire). 그 세계관 속에서 노래란 이야기고 역사이며 곧 기억이다.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않을 거야. 너는 어떤 역사에도 한 줄 이름을 남기지 못할 거야라는 말이 귀족에게 또 기사에게 커다란 저주 혹은 욕설처럼 쓰이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굳이 영웅이야기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기억 받고 싶어 한다. 혹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기억의책을 만들면서 자신의 기억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기록이 세상에 남는다 사실에 행복해하는 많은 평범한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뜻을 같이 하는 좋은 동료들과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꿈틀은 더 많은 행복한 기억들을 함께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