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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58호] 괴담이냐, 실화냐 공포와 불안의 시대, ‘이야기꾼’의 등장

양아라 기자 

 

‘이야기꾼’의 입으로 전달된 괴담(怪談)은 허구와 진실 사이의 경계선을 넘어 특별한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괴담의 방송화. 지상파 방송의 공포 프로그램의 부활이다. 


 MBC <심야괴담회>는 시청자들이 응모한 괴담을 전해주는 ‘공포 괴기 토크쇼’이다. 올해 3월 11일 시험 방송으로 첫 방송 을 시작했고, 시청자들의 호응으로 정규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투고한 사연을 출연자들이 말로 전달 하고, ‘학교 괴담’, ‘군대 괴담’, ‘흉가 괴담’, ‘호텔 괴담’ 등 온라 인상에서 떠도는 유명한 괴담을 소개한다. 


 해당 방송은 시청자들에게 KBS 납량특집 드라마 <전설의 고향(1977)>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전설의 고향은 전국 각지에서 내려오는 전설과 민간 설화를 바탕으로 재 구성한 드라마 방식의 공포 프로그램이다. 대체로 이 프로그 램을 구성하는 에피소드는 망자의 원한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역사적 시대 배경에서 권선징악이라는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명 확한 교훈을 전해주었다. 이 밖에도 시청자가 겪은 공포 체험 을 드라마로 보여주는 MBC <이야기 속으로(1996)>, 공포 체험 과 초자연 현상 등 미스터리를 소개했던 SBS <토요 미스테 리 극장(1997)> 등이 있다. 지상파의 공포물은 방송 심의로 자취 를 감추었다. 공포물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납량특집’ 코너로 잠 시 다뤄지는 수준이었다. 

 

MBC 심야괴담회, “괴담꾼을 찾습니다”

 

 심야괴담회는 기존의 공포물과 달리, 시청자의 적극적인 참여 를 바탕으로 한다. ‘공포 스토리텔링 경연대회’ 형식을 이용 하는 것이다. 패널들은 항아리에서 꺼낸 노란 종이를 펼치고, 괴담의 제목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랜선 방청객이자 판정단인 ‘어둑시니’들은 사연을 평가 한다. 투표수만큼 방송 녹화 현장에 설치된 촛불이 켜진다. 사연 자는 ‘액땜 상금(44만4,444원)’과 촛불심사에 따라 최대 88만 8,888원까지 받을 수 있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자신이 겪은 무서운 경험담 혹은 타인에게 전해 들었던 무서운 이야 기를 응모한다. 

 

 패널과 게스트는 사연을 전하거나 경청하고, 자신이 겪었 던 무서운 경험담이나 타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괴담에 자신의 상상력을 결합하는 과정이다. 제작진은 ‘공포 영화’와 같이 배우들의 섬뜩한 연기와 깜짝 놀랄만한 영상으로 사연을 뒷받침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보낸 글은 패널의 입을 통해 ‘말’ 로 표현되며 공포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입체적인 영상으로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공포의 체감도를 높인다. 


 이 방송은 사연자의 음성, 사진, 현장 방문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실화’라고 이야기한다. 이때 사연은 ‘제보’의 성격 으로 변형되며, 방송은 ‘진실성’을 획득하기 위해 실화를 강조 한다. 시청자들은 괴담에 대해 ‘주작이다’, ‘소름 돋았다’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괴담은 비현실적인 것을 의미 있고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심야괴담회에 나오는 악몽, 불운, 죽음의 공포는 인간의 약한 고리를 들추어내고 공포에 감정 이입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 을 보는 사람들은 괴담을 통해 공포라는 감정을 공유한다. 인간은 직접 공포를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타인이 겪은 공포를 듣는 것을 즐기는 모순적인 일이 발생한다. 공포에는 수요층이 존재하며, 방송은 이러한 수요를 이용한다. 괴담은 공포를 즐길 수 있는 문화상품이 된다. 

 

 매회 이야기에는 귀신과 악령을 저지하며, 과거와 미래를 예측하는 무속인이 등장하고 있다. 방송심의 규정에 따라 방송 은 미신 또는 비과학적 생활 태도를 조장해서는 안 되고, 사주, 점술, 관상, 수상 등을 다룰 때는 이것이 인생을 예측하는 보편 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제작진은 이러 한 방송심의를 의식한 듯 ‘괴담 파괴자’를 이용해 사연에 제동 을 건다. <한국 괴물 백과> 작가인 곽재식 공학박사가 과학적 근거를 나열하며, 자연적 현상으로 인한 사연자의 착각, 오인 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괴담 파괴자도 어느새 이야기 에 빠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이 경험한 무서운 일이라는 실화 사이를 넘어, 이야기 로 구성된 괴담과 사회적으로 공식화된 실제 사건 간의 충 돌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해당 프로그램은 1999년 23명이 사 망한 ‘씨랜드 화재 참사’를 다뤘다. 방송 이후 유가족의 동의 를 충분히 구하지 않고 실제 사건을 괴담 예능의 이야깃거리 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청자들은 괴담을 듣고 싶은 것이지, 실제 사건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실제 범죄 사건을 이야기로 다루면서 기획 의도에서 벗어나 프로 그램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SBS <당혹사>, <꼬꼬무>...묘하게 빠져드는 이야기꾼의 힘

 

 괴담 방송과 달리, 과거 실제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지상 파 프로그램도 있다.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당혹사)>는 과거 ‘실제 사건’에 얽힌 ‘음모론’을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 이다. 당혹사는 두 번의 파일럿 방송 이후에 정규 프로그램 으로 편성되었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서 밝히고 있듯이, 음모론은 처음 엔 황당하지만, 그 근거들을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 빠져드는 힘이 있다. 당혹사는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에 서 비판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역사적 사건의 의혹과 미제 사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등에 대해서 계속해서 질문 을 던진다. 

 

 흔히 음모론은 근거가 없는 비합리적인 주장을 의미한다. 음모론은 마치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혹하게 만든다. 이 배후에는 누군가의 나쁜 의도와 목적을 위해 꾸며 진 전략이 숨어있다. 음모론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은 해결되지 못한 범죄, 역사적, 정치적 사건이다. 그러나 음모론 은 때로는 사안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해결되지 못 한 사건을 풀어내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방송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유하고 있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변주도 시작된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시즌2>도 듣는 방송이다. 꼬꼬무는 과거 실제 사건을 세 명의 ‘이야기꾼’이 다른 출연진에게 그날 의 사건을 1 대 1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화자는 청자 와 대면하여 이야기를 전달하고, 시청자들은 화자의 생동감 있는 이야기와 함께 청자의 반응에 주목한다. 해당 프로그램 의 반응은 범죄 사건을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피해자 들에게 다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기억해야 할 과 거 사건을 상기해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공존했다. 여 기서 주목할 점은 방송은 실제 사건을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 꾼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화면을 보지 않아도 되는 ‘듣는 방송’이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돌아다니는 괴담과 음모론 은 이제 방송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 19의 세계 대유행으로 개인의 삶은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고, 사 회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사회의 혼란 속에서 삶의 안전성을 위협받고, 불안과 공포는 삶 속에 스며들고 있다. 방송은 이야 기를 찾고, 불안과 공포를 담은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전해 지고 있다. 괴담은 사회적 감정과 심리가 반영되는 ‘구술문화’ 이다. 음모론은 사회적 혼돈이라는 땅에서 자라난다. 음모론 과 괴담의 저변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가 깔려 있고, 이를 다시 오락화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이야기가 방송에서 재구성되는 것은 사회적 메시지 공유이자 전승의 과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