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고

[166호] 한국 사회의 분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강수택

 

출처: freepik

 

 

한국 사회는 분열형 사회에 속한다. 분열형 사회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 주로 북유럽국가가 많이 속한 연대형 사회와 대조적으로 사회 분열과 갈 등이 지나치게 심해서 사회발전의 지체를 초래하는 사회다. 물론 사회 분열과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사회 안팎에서 압력이 발생하여 자연스레 사회적 균열이 발생하는데 이 균열의 정도가 커지면서 사회적 분화와 분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분화와 분열은 근대사회의 자연스러운 특징으로 사회의 새로운 하위 단위가 발생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적당한 정도의 사회적 분열이 창조와 혁신의 과정을 거쳐 사회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극단적인 분 열은 폭력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어 사회에 파괴적인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분화와 분열이 급속히 발생하여 새로운 사회 통합 원리를 마련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오늘날 사회적 분열뿐 아니라 갈등도 특별히 심한 사회가 되었는데, 한국 사회의 높은 분 열과 갈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여러 통계나 많은 연구자들의 사회적 갈등에 대한 국제 비교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사회의 분열상을 굳이 추상적인 통계 수치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주변 경험이나 언론 보도기사를 통해 일상적으로 실감한다. 사회의 분열상은 성별, 지역, 계급, 세대, 이념 등 사회집단 사이에서는 사회적 갈등 형태로 표현되지만, 개인에게서는 분노의 표출이나 공격적 행 동의 형태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국 사회에서는 무차별 범죄가 부쩍 자주 발생하고 있다. 범죄의 개인적인 동기와 배경은 다양하겠지만 범죄 전문가들은 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공통점을 사회적 고립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개인적인 불행과 처한 상황의 어려움 등을 배경으로 사회를 향해 무차별적인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 어린이 같은 사회적 약자가 주된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누구나가 무차별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물론 개인적인 불행과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이들은 스스로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거나 혹 은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여 사회를 향해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이런 불행한 상황을 견뎌 내거나 극복하는 데 힘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지지를 어디선가 찾을 수 있다면 이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곧바로 범죄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이들이 심한 고립감에 사로잡혀 이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일본에서 훨씬 더 일찍부터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정도로 빈번히 나타난 이 사회적 고립 현상은 오늘날 사회가 전반적으로 개인화되는 경향과도 관련 있다. 하지만 개인화가 곧 사회적 유대 혹은 결속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요된 전통적인 결속이 자발적인 탈전통적 결속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분열이 심한 사회에서는 개인화가 사회적 관계 혹은 결속의 단절로 이어지고,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는 사회적 지지의 상실을 초래함으로써 결국 고립이 심해진다.

 

이것과는 다른 형태로 한국 사회의 심각한 분열상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교육계를 중심으로 전 사회를 뜨겁게 달궈온 교사의 사망사건이 있다. 한국의 공교육 현장 붕괴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의 주요 구성원인 교사, 학생, 학부모 간에 신뢰가 무너져 정상적인 공교육이 이뤄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따돌림, 비난, 고발, 무관심 등 여러 비교육적인 행태가 매우 빈번히 교육 현장에서 발생해 왔다. 그 결과 매년 많은 학생이 왕따나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잃는 불행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7월 한 초등학교의 젊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괴롭힘이 교육 현장에서 매우 만연해 있음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교사의 사망사건은 특히 꿈과 열정을 갖고 교직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교사에게 한국의 교육 현장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붕괴하였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교사를 보호하는 제도의 미비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 자녀와 함께 학교생활을 하는 교사와 교우를 업신여기면서 철저히 자기 자녀만 생각하는 학부모의 인식에 원인이 있다. 문제는 이런 고립된 혹은 이기적인 자녀관을 갖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가 전국의 학교 현장, 특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널리 퍼져 있으며 경제력, 권력 등 사회적 힘을 많이 가진 학부모에게서 더욱 이런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들 학부모, 특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세대는 시장원리가 학교 교육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경쟁 중심의 학교 교육을 받았다. 치열한 대입 경쟁과 특목고, 자사고 등의 광풍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이들은 학교를 철저히 경쟁 교육의 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녀의 교우를 경쟁 대상으로 여기며 교사를 자녀의 입시경쟁력 향상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된다. 게다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승자의 위치에 오르는 데 성공한 학부모 중에서는 자녀 교우의 부모와 특히 교사에 대해서조차 경제적으로 승자의 관점이나 정치적으로 지배자의 관점에서 내려보는 경향도 발견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없는 승리를 추구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들은 어린 자녀의 교육 현장에서조차 자녀가 또래 및 교사와 건강하게 어울리며 교육받게 하기보다는 이들을 패자로 만들어서라도 자녀를 지키고 성공시키려 한다.

 

사회적 약자의 심한 고립과 학교 구성원의 신뢰 관계 붕괴 및 분열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경쟁과 지배의 가치가 과도하게 강조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통합 원리가 마련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경쟁과 지배의 원리가 사회를 끝없이 분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 원리는 자본주의 사회, 즉 시장경제 체제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의 주도로 신자유주의 광풍이 분 것은 경제영역에서 시장경쟁 원리를 강화할 뿐 아니라 교육 같은 비경제 영역에도 시장경쟁 원리를 적극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광풍으로 변했다. 그 결과 사회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상층과 하층,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격차가 심해지고, 대량 실업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자살률이 증가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분열과 갈등이 크게 증대했다

 

이 중 한국사회에서 분열과 갈등을 일으켜 온 주된 원리로는 경쟁의 원리 이상으로 지배의 원리, 즉 정치적 권력의 원리가 중요하다. 지배의 원리는 시장의 원리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전 오랜 권위주의 체제에서부터 사회를 분열시켜 온 주된 원리였다. 권위주의 정권들은 강력한 국가권력을 장악하거나 유지하려고 이념대립, 지역갈등 등을 적극 이용했다. 게다가 분단 체제와 제왕적 대통령제는 한국 정치가 퇴로 없는 강한 권력투쟁과 이분법적인 대결 정치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의 많은 분열과 갈등은 오랜 권위주의 정부, 분단 체제, 제왕적 대통령제가 배경이 되어 정치적으로 조장되고 유지되어 왔다. 특히 이념 대립, 지역갈등 같은 것은 평소에 잠잠하다가도 선거철이 되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복되었다. 최근에 와서는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조차 정치적으로 조장되고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권력의 속성, 정치의 속성이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물론 정당, 정치인, 여타 정치집단의 목표는 결국 권력 장악에 있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하려는 목적과 방식이 중요하다. 정치세력이 공유하는 정치적 가치 혹은 이념을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전체 사회에 유익하지만, 이런 공공적 가치가 아니라 어떤 집단의 특수한 이익 추구가 목적이라면 해가 된다. 그리고 권력 획득 과정이 대결과 협력을 통해 국민 의견을 반영하고 상이한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이라면 사회의 통합에도 기여하겠지만 오직 현실적인 힘의 관점에서 분리와 대립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면 극단적인 사회 분열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권위주의 체제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분단 체제와 제왕적 대통령제 속에서 치열한 권력투쟁과 극단적인 대결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유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영역의 심각한 분열과 대립이 자연스레 사회적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연대형 사회는 대부분 유엔의 국가 행복도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있다. 이에 비해 2023년 한국의 국가 행복도는 조사 대상 137개국 가운데 57위에 불과하며 그것도 10년 전에 비해 16단계나 떨어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중에서는 35위로 튀르키예, 콜롬비아, 그리스 등과 함께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물론 연대형 사회들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취하지만 대부분 약탈형 자본주의 대신에 복지 자본주의 유형으로 시장경쟁 원리의 한계를 적극 보완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순수한 대통령제 국가는 없고 대부분 이념과 정책 지향적인 정당 체제를 바탕으로 내각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다. 내각제에서는 다당제가 자리 잡기 쉽기 때문에 복수의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할 수 있다. 이처럼 내각제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이 경쟁과 함께 협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시민사회 같은 비정치 영역에서의 연대형성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결국 한국 사회가 지나친 분열, 대립, 갈등을 극복하려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통합의 원리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한편, 이들 현상의 주요 원인인 지나친 경쟁과 지배의 원리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약탈형 자본주의를 복지 자본주의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생태 사회적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한편 사회적 경제로 시장경제를 보완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한반도 분단 체제를 평 화 체제로 전환하는 한편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해 내각제를 도입하면서 인물 중심의 정당 문화를 이념과 정책 중심의 정당 문화로 확장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연대의 정신과 가치를 널리 확산하면서 무엇보다 학교 교육체제를 경쟁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게 혁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민사회단체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여 전체 사회에 필요한 연대의 공급처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사회와 시민은 연대 정신과 가치의 잠재적인 원천이다. 그러므로 자본과 권력에 의해 오염된 정신과 가치를 다시 새롭게 하여 연대 정신과 가치의 원천 역할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