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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3호] 소망과 깨달음에 관한 무대: <나무, 물고기, 달>을 관람하고

소망과 깨달음에 관한 무대: <나무, 물고기, 달>을 관람하고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남 영 임

국립창극단 <나무 ,물고기, 달>

들어가기 : 전통을 계승하는 현대 한국 무대예술, 창극

창극은 판소리를 재창조한 현대 음악극이다. 본래 창자와 고수로만 구성되던 판소리 일인극이 창극에서는 서양식으로 무대화되어 다양한 인물과 무대배경을 갖추게 된다. 현대인들은 창극을 통하여 그간 접근이 어려웠던 전통 한국 예술을 현대화된 모습으로 새롭게 음미 할 수 있게된다. 올해 가을, 국립극장 하늘에서 연행된 창극 <나무,물고기,달> 역시도 한국 전통예술의 매력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본 무대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수미산 꼭대기의 소원나무를 향해 떠나는 인물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현실에 구현하는 소원나무의 힘은 인물들이 수미산을 오르는 이유고, 비단 작품의 인물만이 아니라 관객들 역시도 일상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을 만한 마법 같은 능력이다.

 

공백과 대화를 통한 연출 미학

무대극의 매력은 서사와 서사를 연행하는 배우만으로는 무대가 성립하지 않는 지점에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무대를 보여주는가’인 연출이야말로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와닿는 중요한 볼거리가 된다. <나무, 물고기, 달> 역시도 연출에서 극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보여준다. 180도에 가까운 관객석에 둘러싸인 둥근 중심 무대는 오로지 나무를 상징하는 기둥 하나만이 세워져 있다. 배우들은 흰색으로만 칠해진 무대를 거닐면서 이야기 위 세계를 나아간다. 채워진 이야기와 반대로 채워지지 않은 공백의 공간은 관객에게 무엇이든 상상하게끔 하여,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다채로운 형상을 창조한다.

 

더욱이 연출은 판소리에 등장하는 소통의 전통 역시 재현하고 있다. 배우들은 공연이 시작하기 얼마 전부터 등장하여, 배정된 무대 위가 아니라 그 바깥의 관객석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무대의 경계를 허무는 이 움직임은 이야기 시작 전 눈도장을 찍는 단순한 소통에서 그치지 않는다. 선물을 전하는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그들의 소망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든, 혹은 그렇지 않든 관객들은 이 작은 소란에 자연히 자신의 소원을 한 번쯤 상상하게 된다. 관객들에게 주어진 소망 상상의 기회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등장인물의 여정에 관객이 한층 더 공감하게 하고, 이윽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사에 동행하게 만든다. 무대와 객석은 비록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을지언정, 처음부터 연출을 통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관객과 무대를 분리 하는 ‘제4의 벽’을 대체하여, 이야기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소통 방식은 한국 고유의 전통 연희의 매력을 계승하고 있다.

 

색과 무채색: 욕망 덧입기와 버리기

무대가 시작한 후, 흰 광대 옷을 입은 소리꾼들은 원경에서부터 점차 거리를 좁혀가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배경과 인물을 ‘설명하는’ 소리꾼들은 도창(導唱) 역할이 되어 소원나무와 그를 소망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 초점이 중심인물을 향해서 이동하면, 소리꾼들은 점차 외부인에서부터 이야기 내부인으로 탈피하기 시작한다. 그를 상징하는 행위가 옷 덧입기 행위이다. 앞에서는 그저 무대와 같은 흰색으로 일체화되던 배우들이 이제 색을 지니면서 배경과는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로 변한다. 다채로운 색 덧입기는 욕망의 발현과도 연결되어 있다. 배우들이 차츰차츰 색에 물들어갈 때마다 소원나무로 향하는 인물들 역시 늘어난다. 물고기는 중생의 구원을, 소녀는 가난의 해결을, 소년은 외로움을 달랠 형제를, 순례자는 깨달음을, 사슴나무는 사랑으로 꽃을 피우고 싶다는 소원을 말하며 여로에 참여한다.

 

등장인물들의 목적은 단 하나, 수미산 꼭대기의 소원나무를 찾아 소원을 이루는 일이다. 무대에 항상 존재하지만, 막상 인물들에게는 직접 닿지 않는 나무는 까마득하기까지 하다. 그처럼 먼 수미산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하여, 이정표 자체였던 물고기는 시련을 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길은 그처럼 고난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진 진정한 순간은 나무 도착 직후가 아니라, 색색의 욕망을 포기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소원은 욕망에서 싹을 틔우지만, 욕망만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절제한 욕망이 자신을 위기에 빠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행자들은 소원나무 앞에서 마음을 인식하라는 인도를 받는다. 마음 들여다보기는 본디 제 마음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행위며, ‘내’가 무엇인지 아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의 색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은 깨닫고, 또한 욕망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자만이 욕망에 파멸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줄곧 ‘내 마음’을 전혀 알 수 없던 순례자가 죽은 이유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 까닭에 연원을 둔다. 이처럼 무아(無我)를 깨닫는 춤사위에서 그들은 허물을 벗듯 옷을 벗고, 다시금 등장인물이 지녔던 색채와 욕망을 포기한다. 외피에 존재하는 감정이 벗겨지고 난 다음에야, 먼 위치의 서술자로 돌아간 소리꾼들은 인물들이 이뤄낸 소원들을 하나하나 전해준다.

 

나가기 : 소원을 이루는 방법에 대하여

따져본다면 인물들의 소원은 결국 여행이라는 노력 자체가 만들어낸 성취이기도 하다. 물고기는 소녀를 위한 희생에서 용이 되어 온 세상을 구원하고, 소녀는 물고기에게서 여행 그 자체인 여의주를 얻고, 소년은 함께 고생했던 소녀와 형제를 보고, 그리고 사슴나무는 여로의 끝에서 만난 달지기를 보고 사랑을 다시 깨닫는다. 소원나무를 찾아 떠났지만, 그들의 소망을 이뤄준 이는 무엇이든 이뤄주는 소원나무가 아니라 그 과정이며, 나아가서는 노력하는 나 자신이다. 3자를 통한 신비한 마법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이뤄진 소원은 다시금 관객들에게 삶의 자세를 깨닫게 한다. 우리가 욕망에 흔들리는 나무라면, 우리 역시도 욕망에 지 치게 매달리지 않고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