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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4호] 포스트코로나시대,‘로컬의 재발견’에대해 - ‘당진 아트투어’사례를 중심으로

논픽션 작가 우현선

 

코로나를 관통하면서 많은 사회 시스템이 ‘로컬’과 ‘언택트’를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두 키워드를 모두 관통하는 ‘거리두기’는 감염 예방수칙이란 의미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공존, 돌봄노동의 가치와 사회화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로컬의 재발견이다. ‘인 서울’을 향한 뿌리 깊은 갈망은 오래도록 지역 간 균형발전의 발목을 잡아 왔다. 자유경쟁과 능력주의로 점철된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로컬은 오래도록 아웃사이더로 여겨졌다.

 

일상의 여행화, 여행의 일상화


그러나 희망은 늘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다. 코로나 이전, 언제 한 번이라도 이렇게 지역 뉴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코로나시대에 가장 중요한 뉴스는 내가 사는 아파트 혹은 우리 아이의 학교, 학원에 확진자가 나왔느냐는 것이었다. 코로나19를 맞아 우리는 집, 일상, 동네를 새로 보게 되었다. 바야흐로 ‘슬세권’, ‘동네 상권’으로 상징되는 로컬 이상의 로컬, ‘하이퍼로컬’(Hyperlocal, 지역밀착)의 시대다. 


이는 여행 문화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인 여행객들은 자연히 동네 산책로를 시작으로 국내 관광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우리 동네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나,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싶은 것이다.  여기에 ‘여가 사회’로의 진입 이후 태어난 세대들이 여행 산업을 주도하는 20, 30대가 되면서, 이제 여행은 더 이상 특별한 휴가가 아닌 일상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여행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유명 관광지를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하지만, 더 이상 핵심 상품은 아니다. 특히 2030 세대들은 여행지의 유명 관광지보다 예쁜 카페와 숨은 맛집, 아담한 책방,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체험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여행의 일상화’ 혹은 ‘일상의 여행화’다. ‘한 달 살기’의 유행이 단적인 예다.


당진에서 진행된 ‘로컬의 재발견’


경기도와 맞닿은 서해의 작은 도시 당진에서, 지난해 새로운 로컬 여행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둥둥당당 소소한 모험’이라는 귀여운 부제가 붙은 이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은 ‘당진아트투어’다. ‘당진’, ‘아트’, ‘투어’ 세 단어를 나란히 붙여 지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여행의 정체성은 ‘아트’에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을 통해 당진을 본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미술관이나 전시관을 연이어 방문하는 데 그쳤다면, ‘로컬 재발견’의 한 예로 소개하기 적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진아트투어’는 당진문화재단에서 지역 안 밖의 문화기획자, 지역 문화연구자, 예술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과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모여 시작됐다. 이들은 약 7개월간 비대면과 대면 회의를 반복하며 당진을 함께 둘러보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을 통해 기획단은 당진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 역사, 공간에 대해 함께 알아보며 ‘무엇을 통해 당진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였다. 아티스트들의 이러한 연구의 구상과 실천 과정은 그 자체로 작품이었으며, 아티스트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된 당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한편 당진아트투어에서 이야기된 당진의 주요 정체성에 관한 키워드는 ‘포구문화’였다.

 

당진의 정체성, 왜 포구문화인가?


당진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도시다. 특히 서해에서도 리아스식 해안이 크게 발달한 지역으로 당진 앞바다라 불리는 아산만은 서해에서 가장 육지 깊숙이 들어온 만이다. 해안가의 큰 곶1)은 삼국 대 당나라를 오가던 무역항이었고 조선시대 충청도 이남의 세곡을 모아 운송하던 국영 창고(조창)였으며, 내포 지역 천주교와 불교문화, 동학과 3.1만세운동의 전파로였다. 한편 육지 깊숙이 모세혈관처럼 뻗어나간 물길은 서민들에게 요즘의 시내버스 노선과도 같았다. 육로가 발달하기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당진 사람들은 하루 두 번 오가는 바닷물의 흐름을 따라 집 앞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유학을 가고, 평택으로 소를 팔러 다녔다.


오래도록 지역의 안과 밖을 잇던 바다와 물길에 변화가 일어난 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곶과 곶 사이를 막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였다. 삽교천방조제와 석문방조제 등 대형 방조제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당진의 해안선은 큰 변화를 맞았다. 1960년대 156.3km에 달했던 해안선이 56년 후인 2016년에는 그 길이가 84.9km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이는 다시 말해, 상당 면적의 바다가 육지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연의 변화는 인간 삶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갯벌의 소실은 생태계의 위협과 파괴로 이어졌고, 육지가 된 갯벌위에 시작된 각종 산업 개발과 잇단 어업 보상은 어업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공동체의 와해를 불러일으켰다.


60여 개에 이르렀던 당진의 크고 작은 포구 상당수가 자취를 감추었고 현재는 10여 개의 포구만이 남아 있다. 연평도 어선들이 몰려와 준치파시2)를 이뤘던 아산만의 황금어장은 관광지로 개발되었거나 산업단지로 조성되어 철강과 산업 물류를 실은 대형 선박들의 차지가 되었다. 오늘날 당진은 서해안을 대표하는 산업물류 거점 도시이자 관광도시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불과 50여 년 사이에 바다를 둘러싸고 큰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당진이 ‘해양도시’란 점이다. 당진은 내포(內浦)3) 문화와 해양, 농경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다채롭고도 고유한 문화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해양도시’. ‘내포 문화’를 빼놓고 당진을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당진아트투어의 핵심 주제어가 ‘포구문화’가 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역을 이야기하는 여행, 당진아트투어


다시 당진아트투어로 돌아오자. 2022 당진아트투어는 벚꽃이 만발한 4월 둘째 주에 진행됐다. 2회에 걸쳐 약 50명의 참가자들이 전국각지에서 칮아와 함께했다. 투어 종료 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당진아트투어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셰프의 상차림, 투어 전체에 깃든 예술, 아름다운 지역의 명소, 코로나 시대 여행에 대한 갈증, 봄날 특유의 설렘 등이 참가자들의 만족도를 높여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적 요소는 투어를 관통하는 지역에 관한 이야기, ‘스토리텔링’ 때문이지 않았을까.


당진아트투어 일정은 무심코 보면 지역 내 미술관을 중심으로 문화공간을 둘러보는 단체관광 같은 일정이지만 새로운 무엇이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하루 일정의 투어는 지역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스토리텔링’은 말 그대로 ‘이야기하기’다.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기’와 ‘이야기 주고받기’를 동시에 포함함으로  ‘나’와 '너'를 ‘우리’로 잇는 과정을 말한다. 당진아트투어 참가자들의 높은 만족도와 감동이 바로 여기에 있다. 투어 기획자와 아티스트들은 물론 참가자 모두는 당진아트투어를 통해 종일 당진을 함께 보고, 다시 보고, 깊이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와 내가 알거나 혹은 몰랐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주고 받았다.


정희기 작가와 김지민 작가의 콜라보로 탄생한 테이블웨어와 투어 마스코트 둥당이,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에서 출발한 정만영 작가의 ‘진과 곶’ 전시, 당진에 마지막 남은 100년 된 소금창고에 지역 식재료로 차려진 한 끼 ‘당진밥상’, 석문방조제와 현대제철의 건설로 마을 주민들이 모두 떠난 옛 포구에서 함께 차를 나누는 ‘이동하는 차 수레’까지. 지역과 아티스트, 아티스트와 아티스트, 지역문화연구가와 아티스트가 함께 나눈 이야기는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커다란 그물을 만들었고, 이는 다시 참가자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과 작업 어떤 요소요소에 닿아 작은 영감 혹은 리프레시(refresh)의 기회를 건지는 경험이 되었다. 나아가 또 다른 당진 이야기가 되었다. 잘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은 나의 이야기를 통해 너의 이야기를 불러내고 우리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나누는 로컬 스토리텔링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단순히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추가해 지역 관광의 매력을 더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로컬 스토리텔링의 지향점은 지역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를 안팎과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과정이며, 나아가 지방자치를 실천하는 밑거름이다. 당진아트투어가 갖는 의미와 앞으로의 발전 방향 역시, 여기에 있다. 또 이는 곧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로컬의 재발견’이라는 관점에서도 지역문화기획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올해 4월, 당진아트투어가 다시 돌아온다. 2023 당진아트투어는 지난해 기획된 큰 틀 안에서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참여로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당진은 4월이 가장 아름답다. 봄빛을 머금은 서해는 더욱 푸르게 빛나고 기름진 내포의 땅에는 여린 새순이 돋아나 생기를 띈다. 특히 4월은 1년 중 당진 바닷가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때이기도 하다. 당진의 별미, ‘실치’가 제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진아트투어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당진밥상’의 주재료가 ‘실치’라는 사실! 당진아트투어 신청은 당진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 본 원고는 당진시대 2022년 4월 22일자에 실린 필자의 칼럼을 수정 보완하여 작성하였음)

 

1) 바다를 향해 툭 불거진 지형
2) 바다 위에서 성어기에 각처에서 모여든 어민들로 형성된 어시장.
3) 내포지방은 예부터 가야산 주변의 열 고을을 일컬어 온 지명으로 지금의 충남도청이 들어선 홍성 내포신도시를 비롯해 예산, 당진, 서산과 더불어 아산, 태안, 보령, 서천을 말한다. 내포(內浦)는 ‘안개’의 한자식 표현으로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인 물가를 뜻하는데, 개의 벌판을 뜻하는 우리말 ‘갯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내포지역은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해 육지 쪽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지형이 많고 이곳을 따라 바닷물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안개’ 즉 내포라는 이름을 얻게되었다. 이 물길을 따라 곳곳에 크고 작은 포구가 발달하면서 안과 밖의 문화가 교차하면서 특유의 문화를 이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