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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4호] Tonight, We are Live - Six the Musical

 

출처: Manuel Harlan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오 유 선

 

 

Welcome to the Histo-remix

얼마 전, 교과서에서나 보던 구한말의 흑백 사진을 컬러 사진으로 복원한 게시물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일명 ‘부산 사또’ 짤로 떠올랐던 해당 사진은 약 130년 전, 선글라스를 끼고 가운데 앉아있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와 그 곁을 지키고 서 있는 포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세피아 톤의 원본 흑백사진에서 컬러가 입혀진 순간, 마치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문을 열자 총천연색 ‘오즈’의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사진 속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해당 사진과 더불어 최근 복원 기술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및 과거 서울의 일상 사진 등을 컬러로 볼 수 있게 되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 그들은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던’ 사람들이었지. 저마다의 인생을 살았던.


사진에서 그저 색채가 빠진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아득한 거리감이 형성되는데, 수백, 수천 년 전의 초상화와 조각으로, 혹은 몇몇 기록들로 역사서에 남아있는 인물들은 더더욱 한 명의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역사적 대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그들이 그림, 기록 등으로 남겨진 방식과 더불어 그 이름과 내용을 그저 외우고 시험 봤던 우리들의 경험이 이러한 느낌을 강화시켰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초상화와 역사책 속의 문장으로만 남아있던 사람들을 되살려서 무대에 세우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는 한 공연이 한국에 들어왔다. 바로 튜더왕가 최대 스캔들의 당사자, 성공회 설립과 여섯 번의 결혼으로 유명한 헨리 8세-가 아니라 그의 여섯 왕비들을 주인공으로 한 ‘Six the Musical’ 내한 공연이다. 수백 년간 그저 그들을 묶어서 일컫는 한 단어로만 불리어 왔음에 지긋지긋함을 느끼며 마침내 펜과 마이크를 잡은 여섯 왕비들1)은 오늘 밤, 그들의 공연에 우리를 초대한다. Welcome to the show to the histo-remix!


Seoul, Make Some Noise! 를 외치기까지


뮤지컬 Six의 오프닝 넘버 ‘Ex-Wives’에서 여섯 명의 왕비들은 자신들이 헨리 8세의 전 부인(Ex-Wives)들이라고 소개하고,그들이 공연하는 장소를 외치며 노래를 시작한다. 3월 22일 공연을 보러 간 날에도 그들은 힘차게 외치며 공연을 시작했다. Seoul, Make some noise! 그렇다면 우선 뮤지컬 Six가 서울을 외치기까지 거쳐온 과정을 간단히 되짚어보자. 때는 2017년, 케임브리지에서 학부 막학기를 보내고 있던 학생 토비 말로우(Toby Marlow)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 참여할 준비를하며 영문학 강의를 (아마)듣고 있었다. (아마)열심히 수업을 들으며 작품 생각을 하고 있던 토비는 화려한 드레스와 춤이 함께하는 팝 콘서트 컨셉의 뮤지컬을 떠올렸다. 토비는 곧바로 학교에서 함께 뮤지컬 소사이어티 활동을 하던 사학과 학생 루시 모스(Lucy Moss)를 찾아갔고, 둘은 극본, 작사, 음악을 함께 작업하며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 Six를 만들었다.


이후 뮤지컬 Six는 2017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 발표된 후, 그해 겨울 오프-웨스트엔드에서 첫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이후 2018년 영국 투어, 2019년 웨스트엔드 개막, 2020년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했지만 코로나로 브로드웨이가 셧다운된 후, 2021년 9월에 개막했다), 2022년에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음악상 및 최우수 뮤지컬 의상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드레스의 팝 콘서트라는 컨셉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히 구현했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힙한 공연 중 하나가 된 뮤지컬 Six는 2023년 3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내한 공연을 올리게 되었고, 내한 공연에 이어서 라이센스 공연 역시 예정되어 있다. 2022년 1월 브로드웨이에서 맨 끝줄 구석에 앉아 해당 공연을 보면서 내한 혹은 라이센스 공연을 간절히 바랐던 입장으로서 해당 공연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고, 1년 만에 ‘New York, Make some noise!’에  ‘Seoul, Make some noise!’를 들을 수 있었다(자막 덕분에 뒤늦게 웃긴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덤이었다). 머나먼 영국에서 시작된 여섯 왕비들의 목소리가 한국의 서울까지 도착했다.


Divorced, Beheaded, Died, 또다시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곧 시작될 - 글의 게재 시점에 아직 진행 중일 - 라이센스 공연을 고려하여 스포일러를 제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앞서 말했듯 여섯 왕비들은 본인을 헨리 8세의 전 부인들이라 소개하며 공연을 시작한다. 그들은 순서대로 각각 이혼당하고(아라곤의 캐서린), 참수당하고(앤 불린), 사망하고(제인 시모어), 다시 이혼당하고(클레페의 안나), 참수당하고(캐서린 하워드), 살아남은(캐서린파)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한자리에 모인 여섯 왕비들은 그들 중 가장 비참했던 왕비를 리드 싱어로 삼는 경연 아닌 경연을 시작하며,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그들의 살아있는(live) 이야기를 이어간다.

 

첫 번째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외도와 이로 인한 모욕을 모두 견뎌왔지만, 딸 메리(훗날 ‘피의 메리’) 이후 계속된 유산으로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헨리 8세가 이혼을 요구하자 단호히 말한다. ‘No Way!’라고. 헨리 8세의 이혼 강행 후 두 번째 왕비가 된 앤 불린은 딸 엘리자베스(훗날 ‘엘리자베스 1세’) 이후 역시 아들을 낳지 못한다며 다시 외도를 시작하는 남편에게 거침없이 할 말을 한다. ‘Don’t Lose Ur Head’, 이성을 잃지 말라고 끝없이 외치는 앤 불린(결국 본인의 머리를 잃는다). 세 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는 유일하게 아들(훗날 ‘에드워드 6세’)을 낳았지만, 출산 후 산욕열로 곧 사망한다. 제인은 생전에 헨리 8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들이 없었다면 사랑받지 못했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Heart of Stone’, 단단한 마음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제인 시모어의 사망 이후 다시 왕비를 찾아나서는 헨리 8세. 당대 최고의 궁정화가인 한스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클레페 공국의 안나에게 반해 네 번째 왕비로 청혼하지만, 초상화보다 못한 안나의 실물에 곧바로 결혼을 무효화하려고 한다. 결국 재산은 넘쳐나지만 잔소리하는 사람은 없는 비참한(?!) 운명에 놓인 안나는 궁의 주인으로서 모두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Get Down!’, 무릎 꿇으라고. 다섯 번째 왕비이자 생기 넘치는 소녀였던 캐서린 하워드는 (캐서린이 순수하다고 굳게 믿은 헨리 8세의 생각과 달리) 지금까지 만나왔던 남자들을 나열하며, 결국 그들이 바라던 건 다 똑같았다. - ‘All You Wanna Do -’며 환멸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노쇠해진 헨리 8세가 자신을 잘 간병해 줄 대상으로 선택했던 여섯 번째 왕비 캐서린 파는 그로 인해 첫사랑과 강제로 헤어져야 했던 기억과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해왔던 선택들을 되돌아보며 당신의 사랑은 필요 없다 - ‘I Don’t Need Your Love’ - 라고 말한다.


One of a Kind, No Category

뮤지컬 Six의 주인공들은 그저 이혼당하고, 참수당하고, 사망한 역사 속 왕비들이 아닌,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를 구축했던, 살아있던 사람들이었다. 결국 가장 비참한 사람을 리더로 뽑자고 시작했던 경연은 결말로 향하며 그 양상을 달리하게 된다. 여섯 명의 주인공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로 하는지는 공연을 통해 직접 그 선택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을 추천한다. 확실한 건 그들은 헨리 8세라는 한 남자의 아내들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모두가 각기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점이다(One of a Kind, No Category).


토비 말로우와 함께 뮤지컬 Six를 집필한 루시는 인터뷰를 통해, 사료들을 찾으며 어떠한 부분을 넣고 뺄지 선택하는 과정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답한 바 있다. 실제로 앤 불린의 경우 정치에 관심 없는 마냥 발랄한 인물은 아니었고, 캐서린 파 역시 섭정 기간 동안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실화 혹은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는 작품의 경우, 당연히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고, 모든 것을 보여줄 수도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할 때, 그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 내용을 만들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그러한 점에서 뮤지컬 Six는 충분한 고민과 노력으로 진지함과 유쾌함을 모두 균형 있게 담았으며, 이를 통해 역사 속 스캔들로만 남아있던 인물들은 새로 이 생명력을 얻었다고 느껴졌다. ‘오프닝-3명의 노래-전환-남은 3명의 노래-엔딩’이라는 넘버 구성과 각 왕비들의 모티브, 이를 통한 개별 넘버의 분위기와 극 전체의 분위기 또한 조화롭다. 해당 글이 게재될 때 한창 울려 퍼지고 있을 뮤지컬 Six 라이센스 초연 캐스팅의 목소리와, 라이센스 공연을 통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그들의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1) I’m done ‘cause all this time I’ve been just one word in a stupid rhyme, so I picked up a pen and a microphone - 넘버
Ex-wives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