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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7호] 새로운 공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도서관 공간, 문화를 담다-

의정부시 도서관 과장 박영애

 

도서관 역할과 공간

  공공도서관(이하 ‘도서관’)은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문화적 요구와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도서관의 역할은 도서관 공간 구성에 투영되며 시대별 공간을 통해 변화되어 온 도서관의 역할을 살필 수 있다.

  국내 공공도서관의 시대적 역할을 살펴보기 위하여 10년 단위로 나누어 보면, 도서관이 설립된 초기부터 1990년대까지 각 가정에서 충분치 않은 공부방 기능을 대신해 왔다. 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대는 컴퓨터의 도입과 인터넷의 발달로 기존의 공부방 기능과 함께 도서(종이책) 중심의 서비스에서 온라인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센터의 역할로 확장되었다. 2010년대는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함에 따라 문화적 향유를 통한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점점 높아졌다. 특히 2018년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시간 도입으로 인해 워라벨(work-life balance) 문화의 확산으로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일상에서 향유할 수 있는 평생학습 기반의 문화 공간 역할이 도서관에 추가되었다.

  시대별로 변화된 도서관의 역할은 도서관 공간으로 읽어 낼 수 있다. 1990년대까지는 공부방 기능인 열람실 중심의 도서관, 2000년대 는 인터넷 무료 이용 등 정보센터 역할을 위하여 디지털자료실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으며, 2010년대는 국민들의 문화욕구 충족을 일상에서 향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의 문화 공간들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도서관 공간에 미술을 담다

  미술관을 품은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미술도서관은 의정부의 미술문화 자원(백영수 화백, 신사실파*)을 연결하여 ‘도서관을 품은 미술관, 미술관을 품은 도서관’으로 국내 최초의 공공도서관과 미술관을 융합한 제3의 복합문화공간의 미술 전문 공공도서관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공공도서관의 역할과 차별화된 미술 분야의 공공재 플랫폼으로서 고가의 해외 예술 자료와 함께 자료 이용의 접근이 제한적인 MMCA와 SEMA의 전 시도록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 관람을 위한 전시관, 작가들의 작업 공간 등 미술관의 역할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 는 공공재의 가치가 돋보이는 도서관이다.

*신사실파: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 이규상, 백영수)

 

  단순히 미술 서적이 구비된 도서관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미술관이자,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공간을 디자인하 였으며, 생각의 영역까지 확장시키는 칸막이나 문이 존재하지 않 는 활짝 열린 도서관으로 미술도서관만의 공간 철학도 담아내었다. 또한 미술도서관은 문화예술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 필요한 영감을 얻고, 심미적 안목과 감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였으며, 도서관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이 축적되는 공간이 되고자 하였다.

  미술도서관 중앙 공간의 원형계단은 공간을 연결하고 시선의 높낮이에 따라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게 만들어 주며, 자유로운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우연한 발견을 통해 도서관의 가치를 다양하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1층에서 원형의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이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과 활짝 펼쳐진 공간을 만나게 된다. 기존 도서관의 어린이자료실과는 다르게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어린이존(Zone)은 공간 구성의 자유로움과 다양함으로 아이들의 생각을 자라게 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경험의 폭을 넓혀 준다. 특히 어린이자료 열람 공간과 일반자료 열람 공간은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어 다양한 세대가 함께 머물며 소통함으로써 아이들에게 경험의 크기를 확장시켜 준다.

 

출처: 의정부시 도서관 제공

 

  미술도서관에서 작품으로 만나는 또 다른 공간은 미술 전문 공공도서관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전시관이다. 이외에도 1층 과 2층에 소규모 공연이 가능한 개방형 공간의 Open Stage(A, B) 는 책을 읽다가 뜻하지 않게 공연을 마주하는 경험 하게 한다. 3층으로 올라가면 신진작가의 창작 공간인 '오픈 스튜디오'에 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으며, 강연회 등의 프로그램과 열람 공간의 기능이 복합화된 다목적홀, 전시연계 프로그램 등이 상시 열려있는 프로그램 존, 카페, 사무실 등의 공간도 만나게 된다.

  미술도서관은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 경험 외에도 개인전 이력 없는 신진 작가를 위하여 작품 활동에 필요한 재료와 함께 창작 공간을 지원하는 '오픈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큐레이터가 목표인 전공자들에게 진로를 결정하기 전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청년문화 예술 아카데미' 운영을 통한 인큐베이팅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또한 미술에 관심 있고, 미술을 전공한 시민들에게 문화적인 여가 활동의 장을 만들어 주기 위해 전시해설 사인 도슨트를 시민 자원 활동가로 양성하고 있으며, 관람자들에게 깊이 있는 전시 관람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미술도서관은 시민들의 꿈과 예술가들의 열정을 지원하는 공공재 플랫폼 역할을 위하여 시민과 전문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도서관 공간에 음악을 담다

  도서관에 음악을 담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음악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음악을 함께 듣는 누구나 경험이 공유되는 국경을 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음악을 담아 남녀 노소 그리고 언어가 다른 누구나 함께 공유하고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별한 도서관을 만들었다.

  ‘의정부음악도서관’은 20년간 축적된 「음악극축제」와 경기도 대표 축제로 성장한 「블랙뮤직페스티벌」의 음악문화자산을 도서관과 연결하여 의정부 고유의 정체성을 공간에 담았다. 음악도서관은 일상의 고품격 음악문화와 함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음악인재 발굴 및 인큐베이팅 역할을 통해 시민과 함께 성장 하는 음악문화 공공재 플랫폼이다.

  의정부는 반세기 동안 미군 부대가 주둔해 온 역사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도서관의 스페셜콘텐츠인 「블랙뮤직(재즈, 블루스, R&B, 힙합)」은 블랙계열 음악을 아우르는 장르로, 미군부대 클럽 내 미8군 쇼가 1960년대를 이끈 한국대중음악의 요람이었던 역사적 사실에 착안하여 음악도서관의 스페셜 콘텐츠로 발굴하였다. 또한 20세기 대중음악의 원천인 「블랙뮤 직」은 미군부대 주둔지역이라는 의정부의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역사적 사실을 의정부만의 역사문화적 특성으로 인식될 수 있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021년 6월 개관한 음악도서관은 1일 평균 1,000여 명(‘23.10)의 방문자가 줄을 잇고 있으며 호기심 가득 안고 찾아오고 있다. 도서관 입구를 들어서면 음악 전문 도서관답게 들어설 때부터 차별화된 공간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드비알레 5.5채널」 스피커가 들려주는 고품격 사운드가 모든 방문자들을 환영 한다.

  음악도서관은 공공재 플랫폼 역할을 위해 음악가를 꿈꾸는 예비 꿈나무와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다양한 형태의 공연 무대를 제공하며, 시민들의 여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음악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자료와 악기, 연습 공간을 제공해 준다. 또한 시민과 지역공동체가 함께 도서관 공간에 음악을 담아 새로운 도서관의 역할을 확장해 가고 있으며 그 가치는 온전히 시민들께 돌아가고 있다.

 

에필로그

출처: 의정부 도서관 제공

 

 

  공간의 경험이 삶의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시민들은 특별한 콘텐츠가 있는 도서관을 단순한 공부방으로 인식하지 않고 삶에 변화를 주는 가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도서관에 정수기가 없어도 불평하지 않고, 개방형 공간이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 또한 절제한다. 의정부 도서관의 공간 키워드는 개방, 연결, 교류, 소통 그리고 신뢰와 자율이며, 운영자의 감시와 통제가 없이도 공간의 경험을 통해 질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도서관 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