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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7호] 팬 플랫폼과 아이돌 산업

영상문화연구자,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 강신규

 

팬덤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팬 플랫폼(fan platform)이 팬덤의 대표적인 활동무대가 되고 있다. 팬 플랫폼은 아이돌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 상품, 서비스를 소비하고, 팬 활동을 펼칠 수 있게끔 하는 온라인·모바일 기반 공간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공간이 갖는 대표적인 특징은 ‘올 댓 팬덤(all that fandom)’이다. 기존에 여러 채널로 분산돼 행해지던 팬 활동들은 이제 팬 플랫 폼으로 집중된다. 팬 모집·관리부터, 공지사항 전달, 자체 콘텐츠 유통, 온·오프라인 굿즈 판매 및 이벤트 예매, 그리고 팬과 팬 간 소통에 이르 기까지, 팬 활동 전반이 팬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진다.

  덕분에 대표적인 팬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위버스(Weverse)와 버블(Bubble)은 놀라운 산업적 성취를 이뤄가고 있다. 2019년 6월 출시 된 위버스의 매출액은 2019년 782억 원에서 1년 만인 2020년 약 3배 인 2,191억 원까지 증가했다. 2022년 매출액은 3,077억 원이다. 2019년 방탄소년단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2팀에 불과했던 입점 아티스트 는 2023년 6월 말 기준 94개 팀이 되었다. 2018년 12월 서비스를 선보 인 버블의 개발·운영사 디어유(Dear U)의 2020년 매출액은 130억 원 이었지만, 2022년에는 약 3.8배인 492억 원으로 늘었다. 동기간 영업 이익은 -4억 원에서 163억 원이 되었다. 2021년 11월에는 코스닥 상장도 했다.

  팬 플랫폼의 영향력은 산업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갈수록 더 많은 팬들이 팬 플랫폼에서 더 오래 머문다. 245개 국가·지역에 서비스 중인 위버스의 가입자 수는 2023년 5월 기준 약 6,500만 명에 달한다.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2023년 1분기 기준 936만 명으로, 3분기 연속 10% 이상 증가했다. 이용자당 월평균 이용 시간은 동기간 251분 인데, 이는 2022년 2분기의 155%가 되는 수치다. 버블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에 서비스되며, 2023년 1분기 기준 약 215 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했다. 2022년 4분기 170만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한 분기 만에 45만 명의 이용자가 버블에 신규 가입한 셈이다. 등장 이후 4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팬 플랫폼이 어떻게 산업적 성장 과 함께 팬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술들을 주변에서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팬 플랫폼의 강력함은, 다른 무엇보다 아이돌과 팬이 ‘직접’ 소통 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팬 플랫폼에서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구독하고, 그들과 자유롭게 글, 댓글, 프라이빗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적어도 플랫폼 안에서 아이돌은 손이 닿지 않는 존재, 환상의 존재가 아닌 셈이다. 아이돌의 환상을 가르고 나오는 친밀감이 팬들에게 셀링 포인트가 되고, 아이돌-팬 간 관 계는 팬 플랫폼을 매개로 전에 없어 가까워진다. 팬 플랫폼의 인기와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포털 사이트의 카페, SNS, 커뮤니티 사이트 갤러리/게시판 등 기존에 팬이 모이던 곳들의 인기와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팬 플랫폼을 통해 팬덤의 무대가 바뀌고, 그 안에서 새로운 방식·방향의 소통이 이뤄지며, 팬이 아이돌을 대하는 지각과 감각, 그리고 아이돌 및 그 콘텐츠의 의미를 구성하고 대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되어간다.

 

 

팬 플랫폼의 등장과 확산 배경

  그렇다면 팬 플랫폼은 어떻게 등장해서 인기를 얻고 있을까. 

  첫째, 엔터테인먼트사(이하 ‘엔터사’)의 영향력 증대와 관련된다. 아이돌 기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하 ‘아이돌 산업’)을 이루는 세 중요 주체인 엔터사, 미디어, 그리고 팬덤은 때론 서로 경쟁하고 또 때론 의존하며 산업과 문화를 유지·확장시켜왔다. 위버스가 하이브의 자회사인 위버스 컴퍼니에서, 리슨이 SM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인 디어유에 서 개발·운영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팬 플랫폼은 셋 중 엔터사와 미디어가 결합하거나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엔터사는 팬 플랫폼을 통해 연예를 ‘기획’하고 ‘매니지먼트’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보와 지식을 생산·유통하는 수단을 소유하고, 네트워크 환경을 적극 활용한 사업을 벌인다. 이용자가 모이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판매 가능한 요소로 채움으로써 수익을 올린다. 아티스트들이 직접 생산하거나 그들에 관련된 공식 정보와 콘텐츠를 배타적으로 소유·유통한다. 이용자가 공간의 이용 과정에서 남긴 데이터와 창작물을 내부자본화해 통 제·활용하기도 한다.

  둘째,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사업 주체로서의 플랫폼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플랫폼은 여러 사업자들의 정보나 콘텐츠를 모아 제공할 뿐, 정보/콘텐츠 회사가 아니다. 유튜브(YouTube)가 직접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게 아니듯, 팬 플랫폼도 직접 아티스트 정보/ 콘텐츠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들을 만드는 주체는 엔터사다. 기본적으로 플랫폼사는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한다. 입점사에게는 체계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이용자에게는 편안한 이용 환경을 마련해주는 일이 대부분의 플랫폼사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그렇다고 팬 플랫폼사를 단순히 기술만 지닌 회사라고도 보긴 어렵다. 언급했듯, 엔터사와 소유·운영 차원에서 밀접하게 관련되는데다, 플랫폼 자체가 아이돌 산업과 팬덤에 큰 영향을 미치며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freepik

 

팬 플랫폼의 작동구조

  팬 플랫폼은 팬들을 직접 모집하고 관리한다. 기존에도 팬 커뮤니티와 연계하거나 엔터사가 직접 팬을 모으고 관리하긴 했지만, 여러 채널로 분산되어있는 팬들을 일괄적·체계적으로 관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 팬 플랫폼(과 함께하는 엔터사들)은 팬들을 전보다 구체적인 집단으로 상상하고, 훨씬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 그 근간에는 이용자 데이터의 내부자본화가 자리한다. 기술기반 엔터사로서 팬 플랫폼은 이용자의 데이터를 플랫폼 구축 및 운영 전반에 활용한다. 데이터는 새로운 기술의 일부이면서 다른 기술들을 작동하게 하는 근간이다. 수많은 이용자들의 다양한 데이터가 팬 플랫폼에 축적된다. 이용자 데이터는 크게 구조화된 데이터와 비구조화된 데이터로 이뤄진다. 전자는 변하지 않는 것들, 명확하게 정의되고 검색되고 분석돼 오던 것들로, 성별·연령·지역 등을 포함한다. 후자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변하는 것들이며, 대체로 이용을 통해 발생하는 데이터 (이용시간·양· 횟수·위치, 이용습관 등)를 말한다. 축적된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쓸모 가 없고 그 안에서 의미를 캐낼 때 쓸모가 발생한다. 팬 플랫폼도 다른 대부분의 미디어 플랫폼처럼 이용자들의 욕구나 경향 변화를 포착해 적절한 콘텐츠나 상품, 서비스 등을 제공·추천하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 한다

  엔터사는 플랫폼과의 결합/연결을 통해 탑-다운 방식의 새로운 사이버스페이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팬 활동 전반을 펼치게끔 기획한다. 팬들은 그 커뮤니케이션 완성과정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함에도 (금전적) 보상을 얻지 못하고, 엔터사 또는 팬 플랫폼사는 이전에 여러 팬 커뮤니티를 통해 분산돼 있던 정보의 생산·유통구조를 독/과점하면서 팬들을 모으고 관리할 힘을 획득한다. 아티스트와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그리고 심지어 아티스트와 함께 하는 곳에서 자기표현 기회를 얻기 위해 팬은 플랫폼 안에서 활동하고 커뮤니케이션하지만, 그럴수록 플랫폼의 내용물이 두둑해지고 산업자본만 수익을 올릴 뿐이다. 결국 팬 플랫폼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를 만드는 대표기반이자, 앞에서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통해 아 티스트-팬(들), 팬-팬(들) 사이를 다면적으로 상호중개해 그들의 욕망을 부추기면서, 뒤에서는 팬들의 활동과 비/물질 자원을 흡수해 자본 가치화하는 신종 시장모델인 셈이다.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의 신종 시장모델로서 팬 플랫폼이 팬에게 영향력을 확산해 가는 과정은, 특히 기술이 영향력을 확산해 가는 자본주의 안에서 모든 종류의 사물이나 행위가 명시적으로 판매되지 않음에도 수입창출 자원이 되는 ‘자산화’로도 이해 가능하다. 자산화의 흐름에서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자산이다.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하에서 팬들의 감정, 욕구, 표현, 데이터 또한 산업자 본의 통제와 소유를 위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자산에 다름 아니다. 자산이 기획되고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감정, 욕구, 표현, 데이터뿐 아니라 팬들이 갖고 있고 만들어 내는 무엇이든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전환된 자산을 기술로 구현된 특정 공간에서 사고팔 수 있지만, 핵심은 그것을 사고 팜으로써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고팔 수 없던 것의 자산화를 매개로 경제적 차원의 임대료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 내 자산화는 새로운 수익원으로서 팬덤 자산의 형성, 그리고 그에 대한 통제와 소유를 가능하게 하며, 그 중심에는 팬 플랫폼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팬 플랫폼이 아이돌 팬덤에 미치는 영향

  팬 플랫폼이 꾸준히 양적으로 팽창하는 반면, 기존 팬 커뮤니티 구성원의 활동은 갈수록 축소 중이다. 관련 정보·콘텐츠, 굿즈 등을 독점 판매해, 창작자/콘텐츠와 수용자 사이의 채널을 일원화함은 물론이고, 팬들의 2차 창작활동에 대한 산업자본의 경계와 개입도 강화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차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산업자본이 대체로 특정한 상황, 아니면 비영리나 수익 전액 기부를 목적으로 유통·판매할 때나 정당성을 인정해 주는 상황이다. 산업이 주는 떡밥이나 먹을 뿐, 직접 창작물을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날이 줄어든다. 창작자/콘텐츠와 수용자 사이의 채널이 줄어들고 단일화되면서 남는 것은 창작자/콘텐츠와 자신 간의 관계다.

  팬 플랫폼이 주는 편리함이 팬들로 하여금 다른 팬들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아이돌을 위해 부지런히 활동하는 일도 줄인다. 결과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설사 불합리한 상황에서조차도 능동적인 집단행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남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과 관련 콘텐츠에 계속 열중할지, 독점화로 인해 계속 가격이 오를 확률이 높은 정보·콘텐츠나 굿즈를 살지와 같은 수준의 고민들에 대한 개인적인 선택뿐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 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경유해 자신을 표현하고, 일상에서 힘을 얻거나, 바깥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팬을 앞으로 계속 찾기가 쉽지 않아질 수 있다.

  그렇다면 팬 플랫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팬 플랫폼이 이제 막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팬 플랫폼이 어떻게 나아갈지를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시장모델이고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중이긴 하나,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는 단순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산업의 전략이 갈수록 정교화·복잡화되는 경향이, 아이돌 산업과 팬덤의 근미래에 보다 큰 영향을 줄 확률은 크다. 그리고 적어도 현 시점에서 그 중심에 있는 것이 팬 플랫폼임은 틀림없다. 설사 이후에 팬 플랫폼이, 그리고 팬 플랫폼의 수익 창출 전략이나 기타 사업전략들이 축소되거나 폐기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 전략의 심층에 자리한 산업의 욕망은 갈수록 팽창할 수밖에 없다. 산업주체에게 현 시점에서 가장 최신의 도구 중 하나인 팬 플랫폼이 어떤 방향과 형태로 아이돌 산업을, 팬덤을 바꿔나갈지 당분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강신규 (2022).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 폼과 팬덤의 재구성. <한국언론학보>, 66권 5호, 5~56쪽. 

박건 (2023. 4. 17). SM의 간판 NCT·에스파가 하이브 팬플랫 폼으로… 시동 건 K팝 플랫폼 협업. <중앙일보>. 

이지혜 (2023. 2. 16). 디어유, 사상 최대 실적 발판삼아 일본 공략 본격화. <thebell>. 

정은지 (2023. 5. 4). 덩치 커진 위버스에 광고 붙는다… 수익성 제고 ‘속도’. <뉴스1>. 

최은수 (2023. 5. 3). 네이버와 한지붕 하이브 ‘위버스’, 팬덤 플 랫폼 독주. <뉴시스>. 

최호진 (2022. 9). 글로벌 팬덤 플랫폼 ‘위버스’의 전략: “팬 커 뮤니티-커머스 활동을 한 곳에서”, K팝 팬들의 불편 경험 차단 한 ‘방탄 플랫폼’. <D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