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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3호] 한 국문학도의 문학관비평

한 국문학도의 문학관비평: 심훈기념관, 한무숙문학관, 영인문학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김 예 람

문학관에 들어서며

최근 국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눈에 서툴지 않은 장소로 자리를 잡아가는 곳은 문학관(Literary Museum)이다. 이제 서울의 문학관만 하더라도 한무숙문학관(1993년), 영인문학관(2001년), 한국 현대문학관(2007년), 윤동주문학관(2012년), 김수영문학관(2013 년), 그리고 국립한국문학관(2025년 예정) 등을 어렵지 않게 헤아릴 수 있으니, ‘문학을 전시하는 일’과 ‘전시된 형태의 문학을 감상하는 일’ 나아가 ‘문학전시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예술인 문학은 기본적으로 읽기의 대상이며, 시를 예외로 한다면, 문학관에서 단편소설 한 편을 완독하기 어렵고, 관람객이 기대하는 내용도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작가-독자’라는 전통적인 문학적 커뮤니케이션을 문학관으로 옮겨오면 그 의사소통의 주체는 ‘학예사-관람객’으로 바뀌게 되고, 논의의 중점 역시 큐레이터가 어떻게 기획력을 발휘하여 문학관만의 공간과 도구를 다각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종이책과 다른 문학적 경험을 선사하는가로 변하며, 표현에서도 그동안 문학과 독자를 중개했던 ‘문학비평’이 아닌 문학 큐레이션과 관람객을 중개하는 ‘문학관비평’이라는 글쓰기가 요청될 것이다.

 

이 글에서 임시로 사용하고자 하는 문학관비평이란 조어는 문학관 학예사가 기획한 전시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전시비평(展示批評)으로 아직 기획전보다는 상설전이 많은 한국의 문학관 풍토에서 연유한 것이다. 본 문학관비평은 올해 ‘심훈기념관’, ‘한무숙문학관’, ‘영인문학관’에서 열린 기획전과 상설전에 대한 것이지만, 갈래 미정의 글이나마 한 국문학도가 쓰는 한국의 문학관들에 대한 인상기라고 해도 충분할 것이다.

 

심훈기념관

심훈(沈熏, 1901~1936) 생가터는 서울 흑석동에 있지만, 기념관은 1932년 그가 낙향했던 당진에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 옆 한적히 놓인 필경사(筆耕舍)는 1934년 심훈이 직접 설계하여 『상록수』(『동아일보』, 1935.9.10.~1936.2.15.)를 집필한 곳인데, “우리의 붓끝은 날마다 흰 종이 위를 갈[耕]며 나간다./한 자루의 붓, 그것은 우리의 쟁기[犁]요 유일한 연장이다.”라는 시 「필경」의 구절처럼 그의 붓농사를 향한 조용한 성실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1)

 

심훈기념관의 상설전은 그의 서른여섯 생애사를 기준으로 동선을 취하고, 『상록수』, 「그날이 오면」과 같은 대표작을 중심으로 유품을 전시하여 관람객이 어렵지 않게 심훈이라는 작가를 이해하도록 되어 있다. 심훈기념관의 장점은 익히 알려진 심훈의 소설가, 시인, 기자로서의 면모 외에도 영화인, 방송인으로서의 모습들까지 다채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심훈은 1926년 『동아일보』에 금무단(禁無斷)이 촬영한 스틸컷과 함께 「탈춤」이라는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을 연재하여 새로운 장르를 시도한 바 있고, 같은 해 이경손 감독의 <장한몽>에 이수일  역을 연기한 영화배우였다. 나아가 심훈은 다음 해 손수 <먼동이 틀 때>의 시나리오 작가, 영화 감독을 맡았으며, 1931년에는 경성 방송국 조선어 아나운서, PD이기도 했으니 상설전이 부각하는 심훈의 다면적 면모가 작가에 대한 관람객의 선입관을 새롭게 하고, 훗날 그의 작품을 다시 읽을 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 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심훈기념관이 전시 외에도 문학관으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는 점인데, 2021년 심훈상록문화제집행위원회에서 새롭게 펴낸 심훈의 시집 『그날이 오면』, 2014년부터 문학연구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심훈선생기념사업회, 심훈문학연구소가 엮고 아시아사에서 펴낸 『심훈 문학 연구 총서』가 그 예들이다. 반갑게도 국문학계에서는 2016년부터 『심훈 전집』을 김종욱 서울대 교수, 박정희 울산대 교수가 엮고 글누림사에서 펴냄으로써 50년 만에 전집 작업을 이었는데, 여기에서 『심훈 전집 1』의 저본(底本)을 『그날이 오면』(한성 도서주식회사, 1949)이 아닌 검열본 『심훈 시가집』(1932)으로 삼았다는 일례로 보더라도 심훈과 그의 문학에 대한 이해는 문학 관전시로서 영구히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학술 담론 내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통해 꾸준히 갱신되는 현재적인 것이므로 문학관과 학계가 상호적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를 심훈기념관은 잘 보여준다.

 

한무숙문학관 <문학과 예술이 있는 공간>

서울 명륜동에 위치한 한무숙(韓戊淑, 1918~1993) 문학관은 독특하게 작가가 생전에 살던 전통 한옥을 개축하고 향정헌(香庭軒)이라 이름 붙여 개관한 곳이다. 한무숙문학관도 한옥 구조의 동선을 따라 여느 작가 기념관과 마찬가지로 육필원고, 초판본, 전집, 번역서, 예술 작품, 유품, 집필실을 전시함으로써 작가, 소설가로서 한무숙의 모습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올 가을 한무숙문학관의 <문학과 예술이 있는 공간>은 ‘화가’로서의 한무숙을 집중 조명한 전시로 작가가 문단의 중진이 된 이후에 그린 미술 작품들을 수장고(收藏庫)에서 가지런히 내 보인 신선한 기획전이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영인문학관의 <육필원고와 삽화展>처럼 근래 한국의 미술관, 문학관은 예술 작품이 글이면 글, 그림이면 그림과 같이 단일한 매체가 아닌, 그러한 매체들이 결합하는 방식으로도 제시되었다는 문제의식 위에서 전시를 기획해 왔는데, 한무숙 문학관의 기획전은 더 나아가 한 예술가가 창작한 그림과 글을 동시에 조명한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다. 비록 이번 전시에서는 소략하게 다뤄졌지만, 1937년 한무숙이 김말봉의 「밀림(密林)」 (『동아일보』, 1937.11.1.~1938.2.7.) 삽화를 그렸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향후 그의 예술 활동의 원점(原點)이라 할 ‘삽화가’로서의 한무숙의 면모를 조명해보고, 그것이 한무숙 문학과 맺는 상관성까지 탐색해본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영인문학관 <편지글 2022: 문인·예술가 편지展>

이어령(李御寧, 1934~2022), 강인숙(姜仁淑, 1933~) 부부가 개관한 영인(寧仁)문학관은 서울 평창동에 자리하고 있다. 이번 <편지글 2022: 문인·예술가 편지展>이 2001년 개관 이후 51번째 기획전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영인문학관은 드물게 기획전 중심으로 운영되는 문학관이며, 전시 공간도 1981년 이어령 교수가 동경 다다미방에서 「縮み」志向の日本人(學生社, 1982)을 쓴 코타츠 달린 책상이 놓여있는 ‘이어령의 서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특별전을 위해 쓰이고 있다.

 

이번 기획전은 문인, 예술가들이 주고받았던 서신들을 전시한 것으로, 보통 작품으로 간주되지 않는 편지는 전집에 적극적으로 실리지 않기에 자료의 희소성 차원에서 먼저 뜻깊지만, 무엇보다 그 소중함은 수많은 육필서간을 통해 일종의 문인 네트워크, 예술가들의 연결망을 파악할 수 있고, 관람객이 한국 근현대 문화계의 분위기를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관람 중에 발견하는 발신인과 수신인의 예상치 못한 교류로부터 문학사, 예술사의 미싱 링크, 뜻밖의 영향 관계를 시사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 고무적이다.

 

“공부하는 중이니 저금 아니해도 좋소. 학비가 곧 저금이오” 2) 라며 춘원 이광수가 장모와 살며 삼남매를 데리고 일본에 유학 중이던 그의 아내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 개업의인 허영숙에게 학비와 함께 띄운 편지, 법정 스님이 김채원 소설가에게 “채원이 아니면 아무도 못 쓸 그런 글을 쓰시오./만사람한테 한 번 읽힐 글이 아니라 한 사람한테 몇 번이고 읽힐 그런 글을 쓰시오”라며 격려하는 편지, 결혼 55주년을 맞아 김초혜 시인이 동갑내기 남편 조정래 소설가에게 “당신의 인내와 성실이 당신의 독자들과, 당신의 가족들을 행복하게 했습니다”라고 쓴 축하편지, 1981년 강인숙 교수가 전한 떡살 선물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가 한국인의 심미안에 탄복하며 보낸 감사 편지,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가 언론인 김성우에게 부친 편지까지 진정 어린 육필서간들을 읽는 일은 활자화된 책으로는 느끼기 어려운 커다란 감동을 준다.

 

한편 김승희 국문과 명예교수님께서 이어령 교수에게 보낸 편지처럼 전시에서 서강의 선생님들을 뵙는 것은 뜻밖의 기쁨이었는데, 김열규 국문과 명예교수님께서 주종연 교수에게 조르주 상드(George Sand)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에게 “상이라뇨? 그런 것은 애들에게나 주셔요!”라고 했던 말을 언급하며, “명색이나마 상이란 것으로는 소학교적 우등상보다 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이 상의 알파고 오메가임을 저는 믿고 있”기에 당신의 낙상(落賞)에 더는 괘념치 말라는 편지로부터 국문학계에서 민속학 이라는 전인미답의 영역을 개척하신 그분의 학문적 기품을 느낄 수 있었고, 더불어 이태동 영문과 명예교수님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영문학 M.A. 과정 어드미션을 축하하며 “우리들은 그들에게 능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Show them”). 너와 나,-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데 책 읽기를 계속해라!” 라는 메리 K. 패터슨 교수의 태평양을 건너온 편지는 당시의 설렘마저 느끼게 했다. 문학관 학예사의 섬세한 기획과 육필자료가 만나 안겨주는 현장감과 문학적 감동을 증명하는 전시였다.

 

문학관을 나서며

삼 년 전 ‘문학관학’이라 부를 만한 소중한 책이 인천한국근대문학관(2013년 개관) 함태영 학예연구사의 각별한 헌신 덕에 번역되었다. 동경 일본근대문학관 전 이사장 나카무라 미노루(中村稔) 의 『문학관을 생각한다』가 바로 그 책이다. 책에서 나카무라 미노루는 문학관의 사명이란 다름 아닌 문학연구자 같은 “제한된 소수 독자를 위해 도서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문학관의 본래 역할” 3) 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문학관들의 전시실과 수장고 면적 사이의 비율을 계산하여 그것이 최소 1:3을 초과해야 하며, 문학 학예사와 문학연구자의 인력풀이 호환되어야 하고, 문학전시의 궁극적 목표는 관람객을 문학독자로 만드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국립한국문학관 개관을 앞둔 한국의 문학관, 국문학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 글이 애초에 시도하고자 한 문학관비평의 핵심은 겉으로 드러난 전시비평이 아니라 문학관 수장고에 있는 문학자료를 향한 본질적인 시선에 있는 것은 아닐까. 훗날 횡보, 춘원, 상허, 구보 등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 문학관에 오르내리며, 문학관과 국문학계의 연결이 긴밀해지고, 문학관에서 연구서가 간행되며, 문학 학예사가 쓴 논문이 발표 되는 모습을 기분 좋게 그려본다.

 

1) 심훈, 「필경(筆耕)」, 『심훈 시가집』, 1932; 김종욱·박정희 편, 『심훈 전집 1 심훈 시가집 외』, 글누림, 2016, 46면.

2)  강인숙·김경희, 『편지글 2022: 문인·예술가 편지展 도록』, 영인문학관, 2022.

3)  나카무라 미노루(中村稔), 함태영 역, 『문학관을 생각한다: 문학관학 입문을 위한 밑그림』, 소명출판, 2019,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