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4. 20:22


조정환 (도서출판 갈무리 공동대표, 다중네트워크센터 공동대표)

안또니오 네그리의 정치철학적 혁신은 1963년, 자신이 속해 있던 이탈리아사회당에서의 탈당에서 시작된다. 그는 기독민주당과의 연정에 참가한 사회당이 노동계급에게 내핍과 희생과 노동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 사회주의와는 다른 방향에서 노동계급 해방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이 해방의 근거이기보다 노동자들에 의해 공격되고 파괴되어야 할 훈육의 체제라는 생각 위에서, 노동을 통한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것은 이후에‘노동거부’운동 으로 표현된다)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인 빠올라 메오 등과 함께 사회당을 탈당한 네그리는 이탈리아 산업복합단지인 마르게라 항구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자본론』세미나를 조직했고 이후 마리오 뜨론띠, 로마노 알꽈띠, 라니에로 빤찌에리, 쎄르지오 볼로냐 등과 함께『노동계급』을 창간하면서 이탈리아 노동자주의 운동의 중요한 일원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1968년 혁명은 프랑스를 비롯한 여타의 나라들과는 달리 10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실제로 해방구의 창설에까지 이르렀다. 노동자 기초위원회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이 실업자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생태운동, 반핵평화운동, 주민운동, 무장운동 등과 연결되어 이탈리아 권력 및 관료기구의 한 구성요소로 전화한 낡은 좌파운동과 대립했다. 이것이 1970년대 10년동안 이탈리아를 뒤흔든 폭풍이었다. 네그리는 이 폭풍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는 투쟁의 이 사회적 확산을 노동계급의 재구성으로 이해했다. 그는 1968년의 혁명이 공장 울타리를 넘어 학교, 가정, 사무실, 쇼핑센터 등 폭넓은 사회 속에 산포되는 노동을 보여줌과 동시에 저항력의 전사회적 확산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해석은 ‘대중노동자에서 사회적 노동자로’의 계급재구성 개념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1973년 이탈리아 공산당이 연정에 참가함과 더불어 노동자주의 운동의 구성원들이 크게 동요하여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네그리로 하여금‘아우또노미아’(자율)라는 이름하에 여성운동, 학생운동, 실업자운동, 동성애자운동, 이민자운동, 생태운동, 반핵운동 등과 보조를 맞추며 비의회적이고 비제도적인 혁명운동을전개할 수 있게 하는 이론적 토대로 작용했다.

네그리의 이론적 작업들

10년 이상 지속된 이탈리아의 혁명적 소요는 1979년 4월 7일의 대탄압을 계기로 잠복하게 된다. 네그리도 이때 알도 모로 수상 납치살해 사건의 주모자로 무고되어 기소되었다. 감옥의 네그리는 스피노자와 맑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권력의 시간과는 다른 구성의 시간을,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탐구한다. 이 탐구는 두 가지 과제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하나는 1970년대의 확장하는 운동에서 발명한‘사회적 노동자’개념을 구체화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노동의 사회적 산포에 대한 자본의 대응과 권력 재합성의 방향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네그리에게 1960년대 초 노동자주의 운동의 발명이라는 첫 번째 혁신을 넘어서는 새로운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셸푸코, 질 들뢰즈와 가따리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을 깊이 섭렵하고 페미니즘 운동의 적극적 문제제기를 수용하면서 비트겐쉬타인과 메를로 퐁티의 철학 속에 담겨있는 탈근대적 잠재력을 탐구해 나갔다.『야만적 별종』에서의 잠재력에 대한 탐구,『자유의 새로운공간』에서 코뮤니즘 개념의 혁신은 이 탐구의 성과이다.

제자이자 친구인 마이클 하트와 함께 수행한 1990년대 이후의 작업에서 네그리는『디오니소스의 노동』을 통해 산 노동의 창조적 힘을 다시 한 번 긍정했는데, 이것은 1960년대에 자신도 속해 있었던 노동자주의의‘노동거부’전략을 혁신하는 것이었다. 임금노동은 여전히 거부의 대상으로 이해되지만‘산 노동’은‘살아 있는 형식부여적불’로,‘살아 있는 시간에 의한 사물들의 형성’으로,‘사물들의 과도성, 그것들의 순간성’,권력 속에서 그것에 대항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활력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사유의혁신을 통해 네그리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1994년 사빠띠스따의 봉기, 1995~6년 프랑스, 독일, 한국 노동자들의 총파업, 1999년 씨애틀 시위, 2000년 아르헨티나 봉기,2003년 반전시위 등을 사회주의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21세기적 혁명의 시간들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주권 형태로서의 제국과 특이성들의 접속으로서의 다중

네그리는 2000년에 지구화, 금융화, 유연화, 정보화를 통해 작동해 왔던 신자유주의적 흐름들이 20세기를 지배한 제국주의적 주권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주권형태의 구축을 알려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에 ‘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제국’ 주권 하에서는 어떤 민족국가도 더 이상 단독으로 지배할 수 없다. 제국은 네트워크 권력이다.

네그리는, 주권의 이 새로운 형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는 식의 보수적이고 친체제적 함의를 전혀 담지 않은 채, ‘제국은 다중에 의해 불러내어진 주권형태’라고 말한다. 이것은, 제국이 오늘날 전 지구적 시민 전체의 삶-정치적 직물로 되었음에 대한 승인이면서도 바로 제국의 생존과 발전논리의 한 가운데에 투쟁과 대항의 힘을 새겨 넣으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제국이 다중의 디오니소스적이고 잡종적인 힘에 대한 이차적이고 반작용적인 포획 논리에 다름 아님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국의 한 가운데에서 그것을 불러온 ‘다중’은 누구인가? 이 개념이 1970년대 이후 네그리가 발전시킨 사회적 노동자 개념을 일국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한 것이자 내재적이고 미시적인 삶의 깊은 지평으로 심화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비물질노동의 개념은 사회적 노동의 개념을 풍부화시키는 주요한 고리이다. 노동은 사회 속으로 산포되면서 소통, 정보, 지식 등 비물질적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으로 전화하며 다른 노동형태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헤게모니적 역할을 수행한다.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는 결코 양적 헤게모니가 아니며 노동의 잠재력에서 나타나고 있는 측정불가능한 헤게모니이다. 비물질노동의 대두는 서비스업, 문화산업, 정보산업과 같은 새로운 산업형태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농업과 산업과 같은 물질노동을 비물질적 생산 네트워크에 편입시킨다. 물질노동과 비물질노동으로 구성된 총체적 생산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생성되는 주체성이 다중이다. 그러나 다중은 노동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과 같은 분화된 사회적 실체들이나 혹은 그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권에의 종속을 거부하면서 저항하고 투쟁하며 창조하는 특이성들의 접속으로 나타난다. 다중은 그 어떤 정체성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창조적 활동성들의 다양체를 의미하지만 그 활동들은 공통적 생산물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활동들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 창조적 활동성들은 공통적인 것의 새로운 재생산으로 회귀한다. 여기에서 노동은 삶을 돌보는 잠재적 힘으로서의 정동의 표현으로 된다. 코뮤니즘은 더 이상 사회의 상층에 현실적으로 옹립되어 있는 권력의 수준에서 정의되지 않고 이 내밀한 행동의 힘으로서의 정동의 수준에서, 잠재력의 수준에서 정의된다.

제국 속에서의 저항, 그리고 제국을 넘어서기

네그리는 이 잠재적 코뮤니즘의 힘이 제국의 그물망에 걸려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코뮤니즘을 현실화하는 문제는 제국의 권력을 장악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가 더 유효한 것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빼기의 방법이다. 여기서 빼기가 어떤 실재적 공간상의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권력이 부단히 더하기의 방법, 적분(積分)의 전술을 통해 작동하는 한에서 빼기는 저항과 분가분하다. 대탈출은 탈출을 가능케 하는 저항 없이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자본의 사회주의적 관리의 붕괴는 사회주의로부터 주민의 대탈출에 의해 가능해졌지만 그것은 1953년 동독 노동자들의 봉기, 1956년의 헝가리 노동자들의 투쟁,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중들의 투쟁, 1980년대 폴란드 연대노조의 투쟁과 같은 저항적 움직임들의 결실이었다. 네그리는 오늘날 저항이 이민의 법적 제한에 대항하는 전 지구적 시민권의 쟁취를 향해, 정동과 지성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대의 공통적 노동을 사적 전유질서화 하는 것에 저항함으로써 무조건적 보장소득의 쟁취를 향해, 그리고 현대의 생산수단이자 동시에 생산력인 지성, 소통, 정보, 정동에의 보편적 접근권의 쟁취를 향해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결코 제국을 강화하기 위한 제안이 아니다. 이것은 제국 속에서, 제국에 대항하며, 제국을 넘어서기 위한 집단적이고 공통적인 창조의 길에 대한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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