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5. 21:55

정부가 ‘일로영일’(一勞永逸)을 내세운 호랑이 해의 봄도 어느 덧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오랜 안락을 향한 대한민국의 국책 사업은 땅을 파고 산을 깎는 반(反)녹색 성장을 지향하며 전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토건주의를 일선에서 비판하고 있는 필자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홍성태 (상지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교수)

한국이 토건국가의 덫에 걸려 고통 받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화와 고성장에 성공하고 ‘진정한 선진화’의 문턱에 이르렀으나, 토건국가의 덫에 걸려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토건국가란 무엇인가? 그것은 막대한 혈세를 탕진해 소중한 국토를 파괴하는 기형적인 국가, 투기와 부패의 만연을 초래하는 개발 국가를 말한다. 이러한 토건국가를 개혁하지 않는 한 ‘선진화’는 불가능하다. 토건국가는 토건족과 투기꾼의 배를 불리며 ‘토건망국’을 향해 질주할 뿐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이러한 토건국가는 ‘정관재언학’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토건복합체’에 의해 작동한다. ‘정관재언학’의 연합이란 정계, 관료, 재계, 언론, 학계의 연합을 뜻한다. 이 연합에서 핵심은 ‘정관재’이지만 민주화 이후 언론과 학계의 역할도 대단히 커졌다. 합법적 절차와 과학적 외양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토건사업을 옹호하는 언론과 학계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김이태 연구원의 충격적인 양심선언에서 잘 드러났듯이, 토건국가는 거짓을 과학으로 포장해 제시하고 선전하여 국민들을 세뇌한다. 따라서 토건국가의 개혁은 이러한 토건국가의 현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토건정치와 토건경제의 역학관계

한국에서 토건국가는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토의 대대적인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파괴를 좋은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의 확산과 파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세력의 형성이다. 이에 대한 극적인 사례가 곧 개발주의이다. 토건국가의 형성과정은 개발을 발전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개발주의의 확립과 맥을 같이 한다. 즉 개발주의에 근거한 막대한 혈세의 배분은 개발세력을 양산하였고, 이들 개발세력은 다시 개발주의의 확산과 토건국가의 강화를 강력히 추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의 정치는 토건정치를 기본으로 삼게 되었다. 

토건국가의 토건정치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일은 국토해양부를 비롯한 개발부서와 수자원공사를 비롯한 개발공사가 주도하고 있다. 토건국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첫째, 정계에서 주도적으로 토건사업을 결정하고, 그것을 개발부서와 개발공사가 실행한다. 둘째, 개발부서와 개발공사에서 토건사업을 제안하고, 정계에서 그것을 수용하고, 그것을 개발부서와 개발공사가 실행한다. 어느 경우에나 결국 개발부서와 개발공사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게 된다. 따라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토건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개발부서와 개발공사의 폐지는 토건국가의 개혁을 위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다시 말해 토건국가의 개혁은 무엇보다 토건 중심의 정부조직과 재정구조의 개혁을 뜻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토건정치를 떠받치는 것이 토건경제다. 물론 사회의 존속을 위해 토건경제는 일정부분 필요하다. 하부구조의 개발이 긴요한 경제성장의 초기단계에서 토건경제가 일시적으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토건경제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전체 경제가 크게 왜곡되기 십상이기에 경제성장에 따라 토건경제는 크게 감축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원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서 사회의 발전이 올바로 추구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토건경제는 국내총생산의 20%에 이르며 이는 OECD 국가들 단연 1위를 기록하는 수치이다. 

실제로 토건경제는 경제효과나 고용효과의 면에서 저열하다. 2009년 상반기에 토건경제에 31조원의 추가비용이 투자된 반면 일자리는 오히려 8만개나 줄었다. 토건경제는 약간의 ‘삽자루’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며, 토건경제로 고용증대를 이루겠다는 발상은 잘못됐다. 토건경제에 치중하는 한 복지경제와 문화경제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열릴 수가 없기에, 병적으로 과잉상태라는 평을 받고 있는 토건경제의 비중을 하루빨리 크게 줄어야 한다. 대신 복지경제와 문화경제 등 선진경제를 추구해야 한다.

민주세력의 패착과 토건사업의 과잉

한국의 민주화는 세계적으로 놀라운 사례이다. 한국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기에 고성장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이 민주화에 실패했더라면 남미나 필리핀처럼 고성장을 이루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성장이 민주화의 동력이라면서 독재를 적극 옹호했던 근대화론은 분명히 틀렸다. 그런데 민주세력은 독재세력이 남긴 구조적 유산인 토건국가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 포로가 되고 말았다. 민주세력은 토건국가 정책을 강행해서 지지를 확대하고자 했고, 그 결과 오히려 독재세력의 기반을 강화해주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에 민주화 이후에도 토건국가적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고, 그 결과 국민들은 차라리 원조 토건세력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처럼 토건국가는 민주화의 성과를 크게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토건국가를 하루빨리 개혁하지 않는 한, 이 나라에 밝은 미래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토건국가의 문제를 지적한다고 토건업의 가치를 전적으로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자연 속에서 자연을 이용함으로써 존재하고, 토건은 자연을 이용하는 1차적 방법이다. 사회를 존속시키는 토건업의 근원적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는 셈이다. 문제는 토건업이 과잉상태에 이르게 되면 혈세를 탕진하고 국토를 파괴하고 부패를 만연시킨다는 점에 있다. 토건국가는 불필요한 토건사업을 나쁜 방식으로 강행해 토건업을 더욱 더 과잉상태로 만들뿐만 아니라 토건업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확산시킨다. 
 
토건국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한 때

토건국가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아주 많다. 전국의 모든 도시에서 늘 볼 수 있는 보도블럭 교체사업이 아마도 가장 흔한 예일 것이다. 자전거도로처럼 환경을 내세우고 추진되는 예도 적지 않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시화호 개발사업, 새만금 개발사업, 한탄강댐 건설사업, 경인운하 건설사업, 한강운하 건설사업, 그리고 ‘4대강 살리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4대강 살리기’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문제는 너무나 심각하다. 그 실체는 ‘4대강 죽이기’이자 ‘대운하 살리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운하가 아니라고 했으니 믿어야 한다거나, 훌륭한 계획을 세워서 법에 따라 잘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실제와는 동떨어진 강변일 뿐이다. 실제로는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강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건국가는 우리의 현재를 넘어 미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4대강 살리기’는 더욱 더 그렇다. 전국에서 수많은 전문가들과 성직자들이 ‘4대강 살리기’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이 참담한 파괴사업에 퍼붓는 막대한 혈세를 교육에 쓴다면, 한나라당이 약속했던 반값 등록금은 당장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끔찍한 파괴사업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이익을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을 주체가 현재의 대학생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대학생들이 ‘4대강 살리기’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국, 토건국가는 생태적인 차원과 경제적인 차원의 양 면에서 극단적인 ‘위험사회’로 귀결될 수 있다. 따라서 ‘4대강 살리기’와 같은 극단적인 토건사업마저 강행하는 현재의 토건국가를 개혁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는 ‘생태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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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4. 20:46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무릇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가장 중요한 공론장이다. 공론장이 닫혀있을 때, 민주주의는 질식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소통 부재’를 드러내는 상징이 바로 서울 광화문의 ‘명박산성’이다.

물론, 대한민국 한 복판의 네거리를 가로막아 섰던 명박산성은 촛불항쟁이 수그러든 뒤 사라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서울 용산 철거민들의 참사 앞에, 화물노동자들의 절규 앞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행렬 앞에 명박산성은 견고하게 서있다. 더구나 ‘공권력’이 그들을 ‘로마병정’처럼 지키고 있다.    

문제는 권력과 민중의 소통 공간이어야 할 언론이 되레 명박산성을 옹호하는 데 있다. 아니, 공권력을 부추기며 명박산성을 함께 지키는 데 있다. 청와대와 국회를 장악한 한나라당과 여론시장을 장악한 언론권력이 손잡고 아래로부터의 민중 요구를 철저히 억압하고 있는 게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당장 언론권력이 정치경제 현상을 다루는 보도를 짚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누가 보더라도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한나라당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심지어 보수적 언론학자들이 탄핵방송에 대해 ‘편파방송’이라며 참으로 편파적으로 분석한 보고서에서도 세 신문과 한나라당의 연관성을 적시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언론학회가 낸 ‘대통령 탄핵 관련 TV 방송 내용분석 보고서’(2004)가 그것이다. 보고서는 “언론 매체들은 그들이 대리하는 권력과의 공조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정파적 성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이른바 빅3으로 불리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의 후원자”라고 서술했다.

한나라당의 계보학


그렇다면 왜 한나라당과 세 신문은 ‘동맹관계’를 맺었을까. 한국 민주주의 전개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199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 중심의 신한국당을 이회창 후보 중심으로 이름을 바꿔 ‘신장개업’한 정당이다. 신한국당의 뿌리는 깊숙이 뻗어 있다. 김영삼 정권의 실정과 부패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 이름으로는 대선에 나서기 어려웠던 게 당명을 바꾼 가장 큰 이유다. 신한국당의 전신인 민자당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기존의 민정당을 김영삼의 민주당, 김종필의 자민당과 합당해 만든 정당이다. 본류가 민정당에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민정당은 어떤 정당인가. 1980년 쿠데타와 오월학살로 집권한 전두환이 만든 당이다. 민정당이 민주정의당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정치언어’의 기만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물론, 민정당 또한 갑자기 나타난 정당은 아니다. 그 모태는 박정희가 만든 공화당이다.  더 거슬러 가면 공화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잇닿아있다. 결국 당명이 그 시대 권력자에 맞춰 계속 재구성되어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노태우의 민자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그것이다.

그런데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은 후보시절부터 당명을 바꾸는 ‘수고’를 했는데도 김대중 에게 패배했다. 한나라당이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단 한 번도 야당 경험을 해보지 못한 정당이어서 곧 공중분해 될 정당이라는 전망까지 거침없이 나오기도 했다. 집권자를 중심으로 ‘양지’를 찾던 무리가 야당에 계속 몸담을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한나라당과 언론권력의 밀월관계

하지만 한나라당의 해체 전망은 성급한 진단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국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변수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무엇일까? 바로 언론이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비록 김종필과의 연합(DJP)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헌정 사상 첫 평화적 정권 교체였다. 

그래서다.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정당성 없는 권력 주변에 들꾀던 정상배들에게는 정치적 위기였다. 권력과 오랜 세월에 걸쳐 ‘밀월 관계’로 온갖 특혜를 받으며 성장해온 언론들로서도 위기였다. 언론이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 집요하게 ‘지역감정’ 조장은 물론 ‘색깔’을 덧칠해왔기에 더 그랬다. 이미 언론 개혁의 사회적 요구도 언론계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한나라당과 언론권력이 손잡는 것은 필연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해관계가 같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살아나는 과정에서 언론권력은 튼튼한 동반자였다. 동시에 언론개혁의 사회적 압력에 몰리고 있던 언론사에게도 정치권의 한나라당은 기댈 ‘언덕’이었다. 게다가 한나라당과 언론권력 모두 정치활동과 언론활동을 통해 영남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지역정서를 교묘하게 부추기며 ‘악용’해갔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신문사 사주들의 천문학적 탈세 규모가 드러나 대법원 판결까지 났으면서도 그 신문들이 ‘건재’할 수 있었던 까닭도 탈세라는 엄연한 불법 범죄행위를 생뚱맞게 ‘언론 탄압’의 문제로 몰아간 한나라당과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실 언론권력은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신문사 진입장벽으로 인한 광고 독과점, 차관 특혜, 세제 혜택, 세무조사 성역과 같은 온갖 특혜를 받으며 대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언론권력은 박정희의 3선 개헌과 유신체제를 적극 찬양하고 나섰으며, 전두환 일당의 오월학살극마저 비호하고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추어올렸다. 다시 대통령 직선제로 바뀌었을 때 도 노태우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그들에게 김대중 정권의 등장이 얼마나 불편했을까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김대중 정권 말기에 불거진 아들들의 비리에 한나라당과 언론권력이 ‘환호’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언론 개혁에 대해 발언한 노무현 후보가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당선됐다. 더 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언론권력과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 내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철저하게 정파 대변기관으로 전락해갔다. 여론시장을 독과점한 언론권력의 도움으로 한나라당은 마침내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을 통해 청와대와 국회를 모두 장악했다.

언론독재 체제에 저항할 주권혁명의 필요성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한나라당이 국회까지 장악했는데도 언론권력의 정파성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데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해관계가 같기 때문이다. 세계적 경제 위기로 부익부빈익빈이 가속화되는 나라에서 이명박 정권이 극소수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정책을 무람없이 펴나가는 데는 바로 그 소수의 이익을 ‘국민 이익’으로 포장하고 있는 신문권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KBS에 이어 MBC까지 장악하려고 온갖 무리수를 두는 이유도, 신문권력과 재벌에 지상파 방송진출을 허용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손잡고 대다수 민중의 이익을 배제해나가는 한국의 정치현실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한낱 투표로 이뤄지는 게 아님을 여실히 입증해준다. 기실 언론권력과 갈등을 빚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조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추진한 사실에 주목하면, 그들 또한 언론권력이 설정해놓은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노무현이 걸어간 신자유주의 틀이 세계적으로 파산선고를 받았음에도 되레 더 노골적이고 폭력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자칫 국가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과 언론권력은 지난 10년 동안 진전되어 온 남북관계마저 파탄을 내는 데도 손잡았다. 

민주주의가 말 그대로 ‘민중의 자기 통치’라면, 단언하거니와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해가는 데 최대 걸림돌은 공론장을 뒤틀고 있는 언론권력이다. 언론권력이 공권력 사용을 독촉하며 이명박 정권을 사실상 ‘통제’해가는 오늘의 현실을 ‘언론독재 체제’로 개념화할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이 언론권력을 중심으로 ‘집결’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언론독재 체제에 맞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 나오는 민주공화국’을 구현하려면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데 직접 나서야 옳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촛불항쟁에서 확인한 ‘직접 정치’와 주권혁명의 고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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