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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14호] 환상을 넘어서기

박휘진(중앙대 대학원신문사 편집장 /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한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물었다. “진보가 뭐야?” 건너편의 친구가 대답한다. “그건 뭔가를 새롭게 하는 거야. 기존에 있던 것을 없애거나 바꾸는 거.” 질문을 던진 여학생은 다시 물었다. “근데 우리나라 진보는 왜 그래? 4대강도 하지말자하고, 뭐든 반대하잖아. 진보 어쩌고 하는 총학생회도 구조조정 반대하던데?” 이는 필자가 지난 봄, 한 친구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 여학생의 물음은 무지의 소산인가 아니면 진보진영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결과인가. 그녀의 말만 놓고 본다면, 한국 내에서든 학교 내에서든 진보진영은 참으로 밉상이 아닐 수 없다. 능력도 없으면서 반대만 외쳐대니 말이다.

명실 공히 2010년 대학가의 핫이슈는 중앙대 구조조정이었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학교 측은 학생 3명에게 퇴학을 비롯한 중징계를 내렸고, 심지어 한 퇴학생을 대상으로 법원에 대학출입금지가처분신청까지 냈다. 처음부터 시행 목적과 과정 모두에서 문제가 많았던 구조조정이었지만 그것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끝내 개선시키지 못한 채 구조조정이 마무리 된 것은 학내 구성원의 ‘무관심’때문이었다.

부분적으로나마 학내 구성원들이 이번 구조조정에 가장 반대했던 부분은 문과대학을 비롯한 여러 학과들의 학부제 전환이었다. 학부제로 전환될 위기에 처한 해당 학과의 학생과 교수들은 이에 반대하면서 천막농성까지 불사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대에는 명백한 근거가 있다. 90년대 후반들어 국내 대학에 일사천리로 들어온 학부제는 그간 대학의 기초학문단위를 무너뜨리는 데 막대한 공을 세웠다. 반대로 경영학과 정원과 공대․약대․의대 등 산학협력 프로젝트 규모는 날로 커졌으며, 이들은 마치 주식의 효자종목처럼 대학(혹은 대학재단)의 ‘효자학과’가 되었다. 실제로 중앙대의 2011년 구조조정 정원조정안을 보면 전체적으로 인문사회계열의 정원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경영대의 정원은 대폭 늘어나, 나머지 기초학문단위의 인원감축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문과대학은 그토록 기초학문을 지키기 위해 애썼는가. 공부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기술이 최고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기초학문은 사회를 배부르게 한다. 이는 철학․물리학과 같은 기초학문이 모든 실용학문의 근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초학문은 곧 사회 그 자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윤율을 계산하는 경영학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시선과 방법을 기초학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

70년대 자본주의가 오랜 스태그플레이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자본은 수정자본주의를 내던지고 신자유주의로 뛰어들었다. 영국에서 신자유주의를 이끈 대처는 이런 말을 했다. “사회란 것은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만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의 헤게모니인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이렇게 사회를 내던지면서 자신의 번영을 꾀했다. 그 결과 세계는 어떻게 변했는가. 도심의 건물층수는 끝을 모르고 올라가가지만, 집중호우에 매번 절망에 빠지는 것은 반지하방에 사는 이들이며, 머지않아 그 반지하방도 빼앗길 처지에 놓인 그들의 세계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가려진 실재도 아닌, 명백히 드러난 실재를 우리는 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더 명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 실재를 무시하고 환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기업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면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 그리고 머지않아 가정을 이뤄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 세계의 전부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세계 어디에도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물론이요, 나를 둘러싼 사회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구조조정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우리는 학부제의 폐단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조조정안은 통과됐고, (유독 재단과 학교를 사랑하는 중앙인들이 많은) 본교 커뮤니티 ‘중앙人’에서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대학평가순위를 연신 언급하면서 재단과 구조조정에 의한 효과를 대학이 보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순위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GNP가 우리의 직접적 삶을 대변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대학순위평가나 재단전입금이 얼마인지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곧 나의 모습이라고 착각하는 환상을 벗겨내고 선명하게 드러날 우리의 실재를 봐야만 한다. 그것은 자본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치환시킨 나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이며, 자본의 구조가 양산해내는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은 현실을 새로이 분석해 낼 수 있는 이론의 힘을 기르는 것이며, 그것을 하는 것은 ‘공부’하는 우리의 몫이 되어야만 한다. 누군가 공부를 해야만 한다면, 그 이유는 여기서부터 찾아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