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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성별 정체성 떠나, 군인으로 살고 싶었던 ‘사람’의 죽음

성별 정체성 떠나, 
군인으로 살고 싶었던 ‘사람’의 죽음

 양 아 라 기자

 

  성소수자가 사회에 존재하며 온전히 살 수 있는 ‘희망’은 제도적 차별과 혐오의 일상 속에서 삶을 포기하는 ‘절망’으로 뒤바뀌어갔다. 성전환수술로 군으로부터 강제 전역당한 변희수 하사는 지난 3월 3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성별을 떠나 군인이었고, 한 인간이었다. 변 하사의 죽음은 ‘개인의 극단적’, ‘안타까운 선택’으로 설명될 수 없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1897)에서 "자살 경향은 사회적 원인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그 자체가 집단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변 하사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군 공동체에 배제되는 차별을 겪었으며, 일상적인 모욕과 혐오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군의 강제 전역 처분은 결과적으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이자, 삶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트랜스젠더 군인의 강제 전역
절망 속에 사라져 간 생명

 

  앞서 육군은 변 하사의 성전환 수술이 고의적 성기 훼손에 해당한다며, 지난해 1월 22일 피해자를 강제 전역 처분했다. 군은 군인사법 제37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49조, 제50조, 제51조에 근거해, ‘양측성 고환 결손’, ‘완전 귀두부 상실 및 음경 발기력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로서 심신장애 3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육군이 명확한 법률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심신장애 요건으로 해석해 피해자를 전역 처분했다”며 “건강 상태가 현역으로 복무하기 적합하지 아니한 경우라고 볼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변 하사는 전역심사를 이틀 앞둔 1월 20일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전역심사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는 긴급구제도 신청했다. 당시 인권위는 사안의 긴급성을 인정하여 하루 만에 긴급구제 결정을 내리고, 육군본부에 전역심사위원회 개최를 3개월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육군은 권고를 무시하고 전역심사를 강행했고, 변 하사를 1월 22일 자로 전역시켰다. 변 하사는 같은 날 커밍아웃 기자회견을 통해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저의 성별 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후 변 하사는 지난해 2월 8일 육군본부 인사소청위원회에 재심사를 요청하는 인사소청을 제출했고, 육군은 같은해 7월 3일 인사소청 기각 결정을 내렸다. 변 하사는 지난해 8월 11일 전역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약 7개월만인 2월 28일 공판의 변론기일(4월 15일)이 정해졌다. 군에 계속 복무하고자 했던 변 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변호인단은 유가족의 뜻을 이어받아 복직소송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행복추구권, 직업수행의 자유 등 인권침해
차별과 폭력 최소한 방어는
자신을 감추는 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변 하사의 전역 처분과 관련해 “성 다양성을 병리학으로 보는 것은 국제질병 분류와 배치된다”며 “일할 권리와 성 정체성에 기초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도 지난해 12월 14일 변 하사의 전역 처분은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행복추구권과 직업수행의 자유 등을 침해한 전역 처분을 취소하여 피해자의 권리를 원상회복하고,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한 장병을 복무에서 배제하는 피해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입법, 사법, 행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국가기구이다. 그러나 육군참모총장은 성전환자의 군 복무에 대해 ‘군의 특수성’, ‘국민적 공감대’, ‘법적인 문제’ 등을 거론하며,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인권위에 밝혔다. 한국과 같이 징병제 국가이고 전시 상
황에 돌입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한 군인에 대해 성전환 수술, 호르몬 치료, 성형수술 비용까지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직업 군인에게 전역 처분은 직업 안전성뿐만 아니라 생계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2014년 연구용역보고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들의 ‘구직 포기’와 ‘직업 선택의 제한’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트랜스젠더는 고용 시장에서의 차별과 괴롭힘에 매우 취약한 집단으로 나타났다. 성전환을 위한 의료조치와 같은 트랜지션(이행) 과정에서 경제활동을 병행하기 어렵고, 성별 정정 이후 신분의 변동으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 소수자들은 학교, 직장, 군대 등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 보호하고 있다.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2014)>에 따르면, 정체성을 드러낸 트랜스젠더 12명 중 8명이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성소수자가 차별과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당해도, 인권 보호 및 차별 구제 정책은 여전히 미비하다. 특히 국가기관에 의해 발생하는 차별 및 인권침해는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며, 차별을 ‘금지’하는 기본원칙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2007년 법무부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7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철회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6월 발표한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차별 대응 정책으로 차별 금지 법률 제정에 국민 88.5%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시민”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인간’


  성소수자의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LGBTAI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무성애, 인터섹스, 퀘스처너)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된다. 그런데 성‘다수’자라는 말은 없다. 성소수자는 사회 구성원 가운데 소수이고,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쩌면 성소수자는 소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에 가시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차별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소수자의 존재는 언론 보도를 매개로 사회에 드러나곤 한다.  

 

  성소수자의 차별과 싸워오던 논바이너리(Nonbinary) 트랜스젠더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체 조직위원회 활동가는 지난 2월 2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시민이다. 보고 싶지 않은 시민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라는 마지막 글을 남겼다. 

 

  일부 정치인들은 표를 계산하며, 입 밖으로 국민 공감대를 운운하고, 반대할 권리라는 이름으로 공공장소에 나오지 못하게 한다. 보고 싶지 않은 시민으로 분리되는 것은 존재가 부정당하는 일이다. 성소수자를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결국 성소수자를 싫어해도 되는 집단을 만드는 차별적인 행위이다. ‘퀴어 축제’와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사회에 드러내는 일이며, ‘우리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라는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목소리이다. 


  게이 최초로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 하비밀크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밀크> (2008) 속 대사가 떠오른다. “희망이 없다면 삶의 가치 또한 없는 것입니다.” 변 하사는 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빼앗긴 것은 아닐까. 법과 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낡은 제도가 계속해서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차별을 겪는다. 변 하사가 겪었던 고통과 차별은 당연한가. 누군가가 고통스럽고 외롭게 서 있었던 곳은, 자기 자신 혹은 내 소중한 사람의 자리가 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로 판단하기 전에, 그는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문헌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2014.10.
국가인권위원회 2014년 연구용역보고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20년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
<유엔, 대한민국 정부에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 강제 전
역 관련 우려 서한 전달>.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2020.09.29.
<국가인권위원회의 변희수 하사 진정 인용 결정 환영 성명>. 2021.02.01.
<군 복무 중 성전환 군인에 대한 부당한 전역 처분>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2020.12.14.
<변희수의 내일을, 우리의 오늘을 함께 살아갑시다> 보도자료. 공대위, 2021.03.05.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 계획 및 복직소송 진행 계획 발표 기자회견 보도자료>.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 2021.03.15.
김승섭(2017).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김지혜(2019).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