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57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미얀마 사람들 본문

기획

[157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미얀마 사람들

dreaming marionette 2021. 6. 29. 09:00

  군부 독재에 맞선 미얀마 민주화 봄의 혁명이 진행 중이다. 앞서 미얀마 군부는 국회 개원일인 지난 2월 1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 미얀마 군부는 군부가 소유한 방송국을 통해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군 최고사령관에 권력을 이양했다고 밝혔다. 민 슈웨 부통령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내각을 개각했고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현역 군인 등으로 이루어진 국가행정위원회를 결성했다.

 

  미얀마 군부는 국경 폐쇄, 여행 금지, 전자 통신 금지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봉쇄 조치를 강행했다. 군사 쿠데타 이후 미얀마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는 올라 국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국민의 건강을 물론 군부 탄압으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도 위협받고 있다. 특히 군부의 잔혹한 진압 과정에서 학교와 은행이 멈추고 전기와 물이 끊기는 지역도 발생하고, 실직도 늘어나며 미얀마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군부를 피해 국경 인근에 있는 숲에 은신하여 생활하고 있다. 군부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미얀마의 시민들은 군부의 폭력 진압으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 국가 지도자를 또다시 집에 가두다

  미얀마 군부는 먼저 국가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75)1)를 비롯한 민주주의 운동가들과 야당 지도자를 구금했다. 아웅산 수치(Daw 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은 지난해 11월 8일 실시된 총선에서 전체 선출 의석(1,117석)의 약 83%를 차지하며 승리했다. 친군부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은 71석 확보에 그치며 참패했다. 미얀마의 첫 문민정부가 열렸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통한 권력 이양의 근거로 지난 11월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2년 안에 총선을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얀마 군부는 NLD 지도급 인사들을 ‘반역자’로 처벌하기 위해 이들을 법정에 세우고 있으며, 정당 강제 해산까지 고려하고 있다. 


피의 일요일, 군홧발에 스러져간 생명


  지난 2월 28일 미얀마 군·경의 발포로 최소 18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했다. 해외 언론에서는 이를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고 불렀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AAPP: 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 따르면, 쿠데타 이후 최소 800여 명이 사망했고 4,000여명이 체포됐다고 한다. 미얀마 군경은 시민으로 구성된 시위대를 향해 실탄과 최루탄을 사용하며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거리에서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거나 총을 겨누며 유혈진압을 벌이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법원의 허가 없이 시민을 체포할 수 없도록 한 시민 보호법의 효력을 중단하며, 시위에 참여한 시위대를 마구잡이로 체포했다. 시위대는 초기에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헬멧과 마스크, 새총, 수제 공기총 등을 사용했으나, 군부의 폭력 진압에 대항하여 무장 시위를 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시위를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활동가에게 높은 현상금을 걸어 수배하거나 가족과 심지어 생후 20개월 된 아이를 인질로 삼고 있다. 군경은 활동가 체포와 무기 소지 적발을 빌미로 시민들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수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집 안에 있던 7살짜리 아이가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외에도 군부가 마을을 폭격하여 카렌족과 카친족 지역에서는 3만 명 이상의 마을 주민들이 이재민이 됐다.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은 안전과 건강, 주거지, 식수와 식량을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부에 저항하며 행동하는 미얀마의 시인들도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거리시위에서 총에 맞아 숨지거나, 괴한에 의해 몸에 휘발유가 부어진 채 불태워지거나, 군경에 끌려가 고문을 받다가 장기가 제거된 채 주검으로 돌아왔다. 숨진 저항 시인의 말처럼, 군부는 시민들의 머리를 쏘지만, 혁명은 미얀마 시민들의 심장에 살아있었다. 

 

미얀마의 세 손가락, ‘공포로부터의 자유’

  검지, 중지, 약지를 펼쳐 위로 향하게 하는 ‘세 손가락 경례(Three Finger Salute)’. 미얀마 시민들은 쿠데타에 반대하며, 초기에는 촛불·침묵 시위 등 비폭력 집회에 참여했다. 세 손가락 경례는 폭력적인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린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2012)>에서 등장한 제스처이다. 2014년 5월 태국 시민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세 손가락 경례를 처음 사용했으며, 미얀마 시민들도 반 군부 상징으로 세 손가락 경례를 사용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군부 독재와 죽음이라는 공포 속에서 두려움을 참고 용기를 내고 있으며,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미얀마노동조합총연맹(CTUM)의 18개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는 지난 3월 8일 이후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공무원, 은행원, 의료인 등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민불복종운동(CDM: Civil Disobedience Movement)의 큰 동력이 되고 있다. 군부는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무더기 해고와 체포를 자행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는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한 교사 12만 5천 명을 정직시켰다고 한다. 시민을 진압하라는 군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탈영하는 군인과 제복을 벗는 경찰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혁명의 물결은 온라인에서도 일렁인다. 미얀마 사람들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얀마의 현지 상황이나 군부의 폭력 진압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미얀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글을 올리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노래를 부르는 틱톡 영상을 올렸던 판 아이 프유(14)는 3월 27일 군 진압을 피해 도망친 시위대에게 문을 열어주다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미얀마 군부는 양곤 및 주요 도시에 인터넷을 차단하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등 통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국영 방송을 비롯해 해외 방송도 중단됐다. 미얀마의 통신법에는 정부가 국가비상사태일 경우 통신망을 단절시킬 수 있다고 한다. 미얀마 군부는 언론사 5곳의 면허를 취소했고, 국내 언론인은 물론  해외 언론인까지 체포·구금하고 보도를 막으며 언론의 자유마저 뺏었다. 쿠데타에 저항하는 인플루언서와 언론인, 연예인들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진술과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 형을 받고 있다. 군부의 정권 찬탈은 주권을 가진 미얀마 시민들의 의사에 반한 불법적인 행위이며,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을 향한 유혈진압은 공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다. 

 

군부의 집권 보장하는 헌법

 

  미얀마의 시민들은 53년의 군사 독재를 경험했다. 군정 지배가 아닌 민주화를 열망하고 있다. 1962년 3월 2일 네윈 육군총사령관의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버마식 사회주의 체제로 통치한다. 미얀마는 1990년대까지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 1988년 8월 8일 수도 양곤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8888항쟁’, 2007년 황색의 가사를 입은 승려들이 주도한 ‘샤프론(saffron) 혁명’이 있다.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수천 명에 달하는 국민의 목숨을 빼앗았다.

 

  미얀마 군정은 미얀마의 사상 최악의 피해를 가져온 사이클론 나이기스(Nargis)의 재해 상황을 틈타, 2008년 5월 10일과 24일 두 차례로 나누어 신헌법 개정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강행했고, 5월 29일 신헌법을 공식 채택했다. 미얀마의 신헌법은 군부의 장기집권을 위해 과거 수하르토 대통령 집권 당시의 인도네시아식 정치구조를 모방했다. 2008년개정된 신헌법은 국가 비상시 군부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위임과 상·하원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하고, 의원 75%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헌법 개정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사실상 군부 독재의 장기집권을 보장하고 있다. 미얀마 안과 밖으로 군정이 영구집권을 획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외국인과 결혼한 자나 외국인 자녀 보유자의 정치참여 금지 등의 독소 조항은 수치의 피선거권을 제한했고, 수치의 측근인 틴초(Htin Kyaw)가 2016년 3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수치가 이끄는 NLD는 출범 당시 경제 개발, 헌법 개정, 평화협상 등 3대 개혁과제를 내걸었다. 그러나 2020년 초에는 136개 조항에 관한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4개 조항만 개정이 승인되었을 뿐, 군부의 정치적 역할이 명시된 모든 조항의 개정은 부결됐다. 미얀마 군부는 군사 쿠데타 이후 육군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의 정년 규정을 삭제했다. 이로써 정년 65세인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의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미얀마의 군정 지배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미얀마를 위해 기도를’ 

 

  미얀마의 국기의 삼색기 가운데 노란색은 ‘결속’, 초록색은 ‘평화’, 빨간색은 ‘용기’를 상징하며, 국기 중앙에 있는 하얀 별은 단일성을 의미한다. 미얀마는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135개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이다. 그동안 미얀마 정부와 소수 민족은 자치권을 두고 갈등과 무력 충돌을 벌여왔다. 미얀마 동부의 소수 민족 무장단체 카렌민족연합과 미얀마 정부는 충돌을 겪고, 2015년에 휴전협정을 맺었다. 지난 4월 16일 출범한 미얀마 민주진영인 국민통합정부(NUG: National Unity Government)에서는 연방군 창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진영과 소수 민족의 연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군부의 진압이 계속된다면 시위는 무장투쟁 등 내란으로 번져갈 위험성이 높다. 

 

  미얀마의 시민들은 로힝야 학살을 비롯한 소수 민족의 문제를 되돌아봐야 한다. 미얀마 서부의 무슬림계 민족인 로힝야족(Rohingya)이 포함된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은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미얀마 군과 교전을 벌였다. 수천 명의 로힝야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80만 명 이상의 민간인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떠났고, 유엔은 이를 “인종 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당시 수치는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강간·살인·학살을 막기 위해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방관했다고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받았다. NLD은 유권자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버마족을 의식하여, 군부에 의한 소수 민족의 탄압 문제를 눈감아 왔다. 미얀마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를 당했다. 당시 미얀마는 로힝야 학살 사건의 문제에 해결과 관련해 국제 사회의 개입을 내정 간섭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 사회의 도움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다. 미스 미얀마 대표인 투자 윈 릿은 5월 16일 미국 플로리다 하드록 호텔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 본선에서 ‘미얀마를 위해 기도를(Pray for Myanmar)’이라는 플래카드를 펼쳐 보였다. 국제적 차원의 무기 금수 조치와 군부 기업들에 대한 표적 경제 제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미얀마 사태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회부와 같은 국제 사회의 행동이 필요하다. 미얀마 군부의 가장 큰 수입원으로는 석유와 가스로 알려져 있다. 미얀마 군부와의 경제적 협력과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국제 사회의 압력과 함께 현 군부 독재 상황을 전복시킬 수 있는 강력한 내부의 힘이 필요하다. 미얀마를 구성하고 있는 소수 민족은 군부 폭력의 피해자이다. 군부 독재에 대항하여 소수 민족과 함께 연대한다면 그동안 미얀마의 숙제였던 민족 간의 화해와 통합의 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