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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4호]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학교짓는 공무원 이선영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나니 그제야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SNS나 유튜브, 인터넷을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은 신나는 일상을 보내는 것만 같다. 여행을 떠나고, 신나는 액티비티를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만약 그런 것들을 좇는 것이 행복이라면, 현실의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다. 방향을 수정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행복해져 보기로.


나는 공무원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지만, 정작 공무원이 되고 나선 박봉에 일은 많다고 투덜대는 그 재미없는 공무원. 언제부터 공무원이 이렇게 인기 없는 직업이 되었나... 아쉬운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내가 공무원이 될 거란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데스크에 앉아 수많은 민원인을 상대하며 매일 반복되는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이라니! 그런데 나는 예상치 못하게도(?) 지금, 여기서 행복을 찾았다. 왜, 어떻게? 2022년 직업만족도 순위를 보니, 소득이든 행복이든 그 어느 분야에서도 공무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높은 순위를 차지한 직업이라 해도 ‘내가 저 직업을 가졌으면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직업이 없었다. 과연 내가 느끼는 ‘행복한 직업’은 무엇일까?


2023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스스로 매긴 주관적 행복도 점수의 평균은 10점 만점에 5.951점으로 조사대상 137개국 중 57위였다. 이 보고서는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사회적 지원, 기대 건강수명, 부정부패 지수 등을 들어 점수와의 연관성을 사후적으로 분석하지만, 점수 자체는 이런 요인들과 무관하게 오로지 설문조사 응답 데이터만 이용해 계산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 수준과 삶의 만족도 사이의 관계를 측정한 결과 행복의 상위 5개 요소는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것,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 정신 건강과 웰빙, 사회생활, 생활 조건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사람들이 대답한 행복하지 않은 상황 중 하나는 노동을 하고 있을 때, 또는 상사나 직장동료와 함께 있을 때라는 응답이 나왔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보면 직업의 종류보단 내가 만족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부와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관계가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우리는 하루의 1/3이라는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 깨어있는 시간만을 따진다면 그 중 절반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가족이나 친구보다 직장동료와 더 많이 만나고 대화한다. 누구에게나 직장은 불행의 공간일까? 사실 나는 출근을 하는 게 너무 신이 난다. 누구에게는 “일요일이 가장 설렙니다. 다음날 출근하니까요!”라는 말이 반어적 농담처럼 느껴지겠지만 나에게 있어선 사실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노잼(?) 직장일 것 같지만, 나는 여기서 행복을 찾았다. 과중한 업무, 장시간 근무, 실적의 압박 등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에너지를 나의 삶 가운데로 끌고 들어오진 않았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걸어오는 길에 바닥에 있는 쓰레기들을 줍는다. 작은 쓰레기 한두 개지만 내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스스로 칭찬하면 아침 기분이 한껏 즐거워진다.

<사무실의 아침햇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다. 아침 햇빛을 받은 블라인드가 사무실을 따뜻한 색으로 물들인다. 그 예쁜 색을, 그 찰나를 볼 수 있는 행운이라니. 팀장님과 동료들 모두 따뜻하고 유머가 넘친다. 우리 팀에서 나 스스로 어릿광대가 되기를 자처했더니, 일하는 걸음걸음이 신난다. 내가 던지는 농담에 사람들이 웃고, 동료가 일이 많아 힘들어하는 것을 같이 나눠서 할 때 깊은 유대와 서로 간의 고마운 마음이 싹튼다.

<공사현장의 가을>

사실 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사무직 공무원은 아니다. 사무공간보다 공사 현장에서 하늘을 보는 시간이 더 많고, 외부 사람을 만나 소통하는 일, 도면 설계에 맞게 건물이 잘 지어지는지 공사 감독을 하는 일이 주 업무다. 물론 진상의 민원인도, 잘 풀리지 않는 공사도 있지만, 동료들과 팀장님과 함께 웃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더 많다. 생각보다 걱정하는 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정말 퇴근도 신나지만, 출근이 더 신난다.


상담학 용어 중에 ‘스트로크(Stroke)’라는 단어는 언어적으로나 비언어적으로 교류를 할 때 주고받는 자극과 반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스트로크는 인간이 사회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동기유발 요인이다. 아동시기에는 신체적 접촉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신체적 접촉 외에도 다른 인정으로 대치하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미소나 칭찬, 얼굴을 찌푸리거나 야단치는 것이다. 그런 행동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존재를 인정해 주는 반응으로 읽힌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나 직장 또는 사회에서 서로 어떤 스트로크를 주고받는가에 따라 인간관계가 결정되고 나아가 행복이 결정된다. 이런 긍정적 스트로크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곳이 칼퇴근을 부르는 직장일지라도 나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긍정의 스트로크와 함께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인은 ‘내가 얼마나 그 일을 계속해서 하길 원하는가?’ 인 것 같다. 중학생 때 우연히 외국의 학교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TV에서 본 외국의 학교환경은 내가 경험한 것과 확연히 달랐다. 딱딱한 책상과 획일적인 학습공간이 아닌 물과 나무와 풀이 어우러진 생기 있는 교정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고 왜 우리 주변의 학교는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나중에 그런 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막연하지만 생기 있는 학교를 짓고 싶었다. 그 모습이 학교를 세울 수 있는 부와 권력을 지닌 이사장이든, 학교를 설계하는 건축가이든, 벽돌을 쌓는 작업자가 되든 상관이 없었다. 마음속 한편에 남아있던 그 생각 덕분인지, 지금은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그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이사장은 아니지만, 학교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거나 새롭게 학교를 세울 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이 사용할 공간을 탐구하고, 고민하고, 실현한다. 실제로 공사가 진행될 땐 벽 한 장, 마감재의 색깔 하나까지도 정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공간을 보고 오랫동안 만족감을 느끼고, 부족한 공간을 보고 다음을 기약한다. 학생들의 언어를 듣고 구현해주었을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에 그간의 힘든 시간을 보상받는다. 사실 요즘 나의 하루하루는 과거에 그렸던 미래의 모습이다.


어릴 때, 꿈이 무엇인지 물으면 사람들이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경찰, 선생님, 의사, 공무원 등등. 그 직업을 가지면 나는 꿈을 이룬 것일까. 꿈을 이루고 나면 앞으로 계속 행복한 것일까? 꿈은 어쩌면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의사가 되어 어떠한 삶을 살겠다는, 그런 문장. 직업이 그 자체로 목표가 되기보단, 그 꿈을 실현해 나가는 도구가 될 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공무원이기도 하지만, 건축장이가 되어가는 중인 ‘건축쟁이’이다. 또 평생을 그렇게 살고 싶다. 개구쟁이 같은 건축쟁이로.


매일 조금씩 더 성장해서 내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다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삶이 즐거워질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꿈을 좇는 걸음걸이가 무거울 수가 없다. 직장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직업이라는 뜻이고, 직업은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한다. 의무감으로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나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고, 만들어내는 일을 할 때 우리는 더 기쁘게 지속해서 일을 할 수 있다. 그 원동력이 나를 더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즐거운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듯이 우리도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받기 위해 의미 있는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이 일에서의 의미는 내가 찾아내고, 또 부여할 수 있다. 입사하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어떤 직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위치에서 어떤 행복을 찾고,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행동을 할 때 행복해지는지. 그렇기 때문에 한 번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직장인지 직업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나의 위치에서 내 몫의 일을 하는 것, 그리고 그 일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좋겠다. 그게 바로 출근이 기다려지는 이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