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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6호] '대중음악과 분노-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 '

'대중음악과 분노-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 '

대중음악평론가 박 성 건

[출처: pixabay]

 

흥미로운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교회나 성당에서 찬송가(성가) 를 부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냥 예배를 보면 되지 왜 굳이 노래까지 불러야 하나? 사찰도 마찬가지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될텐데 굳이 목탁을 두드리며 노래처럼 불경을 독송해야 하나?

심지어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한 영화 ‘시스터 액트’에 등장하는 찬송가 ‘오 해피데이’를 부르는 신도들은 마치 나이트클럽처럼 춤을 추며 발을 동동 구른다. 신성한 곳에서 말이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자. 인류에게 음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분위기에 맞추어 음악을 듣거나, 그 옛날 좋아했던 노래들을 다시 들으며 위로받는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살아남 은음악들을 한번 나열해 보며 확인해 보자.

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현재 지구상에서 불리거나 연주되다가 살아남은 노래들은 각 지역의 민요들과 찬송가 그리고 클래식 음악들이다. 사실 민요와 찬송가는 유사한 점이 많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서는 바흐, 모차르트의 음악 등 유명 작곡가의 곡들이 현재 수백 년 넘게 사랑받고 있다. 참고로 노래에도 생명이 있다. 예를 들면 아이돌 음악은 평균 3개월 정도 된다.

아무튼 민요, 찬송가, 클래식 등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역사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인간에게 선택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좋아서 부르고 연주하다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하여 부르고 연주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민요는 수렵이나 농경 생활에서 노동할 때 함께 노래를 부르면 효율이 높았다. 찬송 가는 집단의식을 가지게 하여 종교집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참고로 현재 찬송가와 피아노의 발전은 중세 시대 거대한 부와 권력을 누렸던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적극적인 투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교황을 배출하는 등 교회를 이용했다. 클래식은 근대 귀족들이 자신의 지위를 수준 높게 유지하는 수단으로써 사용되며 지금까지 남은 것이다. 즉 음악은 사람이 취향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선택되어진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다소 황당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살아오면서 당신의 즐거움을 북돋아 주거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달래준 노래는 어쩌면 우연히 귀에 꽂히며 생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노래를 선택한 역사적 사건은 격동의 근현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스웨덴 노벨위원회 가 그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미국 가수 밥 딜런(Bob Dylan)을 지명하였을 때, 세계 각국에서는 반론이 들끓었다. 특히 “대중가수가 감히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느냐”며 불만이 많았다.

그렇다면 밥 딜런은 어떻게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오로지 상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에 집착했지만, 그는 명예와는 상관없이 20~30대를 노동운동과 반전운동에 투신한 인물이었다.

1950년대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대량생산이 되며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 반발하며 노동자들이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시위할 때 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밥 딜런은 노래가 집결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시위에 직접 참여해 노래를 부르며 인권과 노동에 관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세계 운동권 노래의 시작이다. 밥 딜런은 이후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참여하여 그의 대표작 ‘Blowing in The Wind’를 불렀다. 전쟁의 참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안다네’ 하며 노래 부른것 이 세계적인 영향을 미쳤고 훗날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된 것이다.

밥 딜런이 부르는 노래를 포크송이라고 부르는데, 포크송은 1970년대 들어 국내에도 영향을 미쳐, 김민기와 윤형주, 송창식 등의 쎄시봉 가수들이 탄생했다. 그중 기타 치며 팝송 부르는 것을 즐겼던 가난한 대학생 김민기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집에 돌아오던 도중 돈이 없어 길가 무덤가 옆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술이 덜 깨 눈을 떠보니 이미 해가 중천에 있었고 주변 풀잎에는 아침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는 강렬히 머릿속에 자리한 그날의 기억을 노래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1971년 서강대학교를 다니던 양희은이 불러 전설의 노래가 된 ‘아침이슬’이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격동의 1970년대. 군인들에 의해 짓밟힌 자유를 되찾고 싶은 한국인들은 ‘아침이슬’을 부르며 깊은 분노와 열망이 함께 담긴 회한을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굳이 ‘Blowing in The Wind’와 ‘아침이슬’을 불렀을까? 아마도 군홧발로 짓밟힌 좌절과 분노를 노래로 승화시킨 것이리라. 이제 돌이켜 보자. 이 노래들의 인기가 사람들의 취향의 문제인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노래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이 인류학적인 질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현대의 역사와 힙합의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보자.

우선 힙합을 사람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다른 단어로 표현하 면 무엇일까? 랩? 흑인? 비트박스? 모두 본질을 벗어난 단어들이다. 힙합은 한마디로 ‘분노’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분노의 음악인 힙합을 왜 세계의 젊은이들이 들으며 위안을 받고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자.

1,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이후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 시대 가 점차 가고 미국은 1970년대를 맞이했다. 이때 미국 연방정부는 재정 긴축 정책을 단행했는데 이 정책으로 저소득 가구가 몰락하였고, 미국 도심 주거지역의 사회 서비스의 고갈을 야기했다. 그런 과정에서 흑인들과 푸에르토리코인 등 소수민족들은 지역문화센터와 같은 공공기관의 지원중단에 불만을 품고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이 바로 뉴욕의 흑인 빈민가 사우스 브롱크스였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빈민가 청년들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방식은 평소에 즐기던 브레이크 댄스와 디제잉을 통한 랩이었다.

즉 사회의 분노를 말과 춤으로 만들어 노래를 통해서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1973년 8월 어느 날 DJ 쿨 허크(Kool Herc)는 랩과 파티를 열면서 음악을 끊이지 않기 위해 두 장의 LP를 동시에 사용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드럼이나 베이스 부분인 브레이크(break)를 반복적으로 틀어댈 때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 브레이크에 맞추어 멈추는 춤을 추는 사람들을 가리켜 비 보이스 (B-Boys), 비 걸스(B-Girls)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힙합과 비보이의 시초가 된다. 이후 힙합 뮤지션들은 빈민가의 어두운 현실을 랩으로 만들어 흑인사회에 배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흑인, 소수민족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기 시작하면서 세계 음악계를 제패한 것이다. 이러한 뒷골목에서 탄생한 힙합의 정신은 국내 젊은이들에게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부모찬스, 각종 반칙으로 기회를 잃어버리고 뼈를 갈아 돈을 벌어도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한국의 젊은이들은 분노의 랩을 쏟아내며 힙합을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힙합은 욕설과 디스, 스왝 등 거친 표현으로 일부만이 주류 가요계에 진출해 히트곡을 냈고 10대와 20대의 전유물이라는 꼬리표가 늘 있었다. 그런데 2014년 가수 자이언티는 택시 운전을 하며 가난을 이겨나가는 한 가정의 아버지의 아들의 마음을 랩으로 분사에 광범위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가 “행복하자”를 연발하는 후렴구는 갑질과 좌절, 고통속에 살아가는 국민들의 울분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이제 다시 한번 질문을 해보자. 인간에게 음악의 역할을 무엇일까? 힘들 때, 쉴 때, 운동할 때 ‘한때의 위안’의 역할만을 한 것일까?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고통스럽고 분노가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괜찮아 잘될 거야”로 시작하는 이한철의 ‘슈퍼스타’를 들어보라. 한결 마음이 좋아질 것이고, 실제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인간은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스스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실험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프리츠 스트랙(Fritz Strack) 연구팀은 입으로 볼펜을 잡는 방식에 따라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실험을 했다. 하나의 실험군은 이빨이 아닌 입술로만 볼펜을 물고, 다른 실험군은 입술에 닿지 않고 이빨로만 볼펜을 물게 했다. 그리고 피실험자에게 코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이빨로만 펜을 잡은 실험군이 더 많이 웃었다. 즉 스트랙은 사람은 “행복할 때 웃는 것만이 아니라. 웃었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음악을 통해서 삶의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위로받기 위해 음악을 선택했고, 그것이 히트곡으로 남았다고 역사는 말해주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가수 강산에가 노래하듯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들으며 어두운 현실을 직접 헤쳐나갈 필요가 있다. 왜 그러냐고?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도 그렇게 진화하듯 선택되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