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고

[166호] 화를 다스리는 법

화를 다스리는 법

강용혁 한의성정분석학회 회장/한의사

[출처: pixabay]

 

분노는 핵폭발처럼 큰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 파급 효과는 한 개인을 넘어 때로는 가정으로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파급된다. ‘분노는 나의 힘’이란 말처럼, 때로는 선한 동기 유발과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통제되지 못한 분노는 파멸의 위기를 유발한다. 분노의 화살을 자신에 게 돌리면 우울, 불안의 문제로 둔갑하고, 세상으로 돌리면 집단적 투사나 범죄로 이어진다. 물론, 적절히 화를 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평생 화도 한 번 안 내고 사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화내야 할 상황에서조차 분노를 억압하면 시차를 두고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개개인이 자신의 옳음에서 비롯된 목표와 가치관이 있는 한, 타인과의 충돌이나 세상살이에서 분노는 피하기 힘든 내적 에너지다.

중요한 것은 분노의 양과 타이밍을 적절한 통제 범위 안에 둘 수 있느냐 여부다. 감정표현 불능처럼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도 적절한 통제가 아니다. 오히려 원자력을 응축시켜서 핵폭탄처럼 터지는 것처럼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분노의 양도 문제다. 작은 일에는 작은 크기의 화를 내고, 큰일에는 큰 화를 내는 것이 건강한 것이다. 그리고 분노의 정확한 번지수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가 폭발하고 난 뒤에 후회하고 자책하지만, 또 그러고 마는 것은 번지수를 못 찾은 결과다.

언뜻 “상대방이 세상이, 나를 자극하고 그럴만한 상황을 만들었 으니까, 내가 화를 낼 수밖에 없잖아요”라고 정당화한다. 그 원인을 내 (주체)가 아닌 상대나 세상(객체)으로 돌려버리게 된다. 진짜 원인은 꽁꽁 숨어버리고, 이 원인이 슬쩍 건드려지면 다시 폭발한다. 하지만, 적절히 통제되지 않는 분노나 짜증의 본질은, 객체(상대)가 아니라 주체 (나)에 은밀한 형태로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경우 화의 본질은 ‘자기 존재에 대한 보호와 방어’다. 갑자기 성격이 나빠져서 짜증이나 분노가 잦은게 아니다.

한방정신과의 근간이 되는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는, 화나 짜증을 의미하는 ‘노정(怒情)’은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일갈했다. 더 이상 이 대로 계속 참고 그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갈 마음이 식었을 때 나타나는 감정 에너지다. 예컨대, 남녀가 처음 연애를 할 때는 약속 시간에 한 시간을 지각해도 마냥 좋다. 아직 몸도 마음도 여분의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신호다. 하지만 나중에는 5분만 늦어도 짜증을 확 내는 것은, 이미 마음이 식었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부모나 배우자의 간병 과정에서, 간병인이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작은 말에도 짜증이 쉽게 나는 것도 마찬 가지다. 이미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 반응이다. 하지만, 머리 에서는 양심과 체면, 자존심 등이 이 같은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도록 가만두질 않는다. 힘든 공부나 승진, 사업, 자녀 교육 등 각자의 삶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들에 이런 내적 갈등들이 숨어있다. 그래서 포기할까 말까, 계속 하자니 힘들고, 포기하자니 윤리나 양심, 체면이 가만두질 않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내 몸과 마음이 이미 지쳤고 포기하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는 나쁜 사람, 못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다시 억압하고 견디는 과정에서 원인 모를 짜증이나 분노와 함께 신경성 질병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제 그만!’이라고 스스로 브레이크 신호를 보내서, 더 이상 자신에게 그 무언가의 부담을 주지 말아 달라는 긴급 신호인 셈이다.

30대 여성 A씨 예를 보자. A씨는 심한 두통과 속 메스꺼움, 어지럼증, 명치 답답함, 어깨 등 근육통, 불면증 때문에 한의원에 내원한 경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 하지만, 정작 병원 검사에서는 경미한 염증뿐이고, 진통제나 소화제 등 온갖 약물치료를 수개월째 반복해 왔지만 전혀 차도가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5살짜리 어린 아들에게도 심한 화를 폭발시키곤 본인도 깜짝 놀랐다. 아이가 놀고 나서 장난감을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다. 평소라면 그 냥 넘어갈 일에 왜 이렇게 심한 분노가 폭발한 걸까. 아이라는 객체가 아닌 A씨가 무엇에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쳤는가라는 주체의 상황 속에 답이 있다.

A씨는 직장에서도 승진했고, 업무관련 대학원 진학까지 한 상황 이다. 일도 공부도 학위도 다 잘 하고 싶다. 하지만, 정작 공부는 따라 가기도 버겁다. 그러나, A씨가 공부를 따라가지 힘들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다. 일도 공부도 열심히 잘해야 하는 ‘옳은 것’이라는 가치관 때문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쳤건만, 머리는 이를 외면한 채 계속 더 높은 이상과 목표만 꿈꾸는 것이 다. 그래서 능력을 키워 승진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학위를 따 두는 것은, 모두가 옳은 선택이니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다 보니 이것 때문에 지쳤고 이걸 적절히 줄이거나 중단하는 선택은, 나태하고 옳지 않은 것이란 이분법에 갇힌 것이다.

옳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에, 자신의 마음이 식었고 몸도 지쳤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조금 더 힘들게 만 드는 아이에게 엄한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남편 얼굴만 봐도, 친정엄마의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화가 치미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투사로 이어진다. 이처럼 은밀한 형태로 감춰진 분노의 번지수를 정확히 파악 하고, 분노의 양과 타이밍을 조절하지 못하면, 자신의 몸과 마음도 힘 들어지고, 주변에도 분노를 전염시키게 된다.

그래서 머리로는 ‘이렇게 심하게 화내면 안 되지…’라고 계속 자책 과 다짐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처럼 ‘분노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이 늪에 빠진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임시방편으로 화를 또 폭발시키게 된다. 결국 다짐이나 후회 자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왜 지쳤는가에 대한 기저 원인 분석과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언제부터 무엇으로 인해서, 누구와의 갈등으로, 왜 생겼는지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방어만 서두르기 쉽다. 그래서 주체보다는 객체로만 시선을 돌려버린다. 때로는 만만한 대통령이나 정치인, 연예인 욕을 하는 것으로 국면을 전환시킨다.

이런 과정에서 분노가 뇌의 과부하와 자율신경 과민반응을 거쳐 화병이나 각종 신경성 신체 증상이 생기고, 나중에는 그 증상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원인은 온갖 기계 검사를 다 해봐도 원인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화를 다스리는 법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특별한 명상 방법이나 음악, 미술 치료, 휴양지로의 여행 등 외부적인 솔루션만 찾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된 원인 찾기가 중요하다.

왜 심신이 지친 걸까? 이는 백 명이 다 다른 원인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이렇게 우울하고 화가 나고 불안하다’는 식의 방어적 이며 회피적인 선입견부터 허물어야 한다. 대신, 차분히 자신의 분노의 번지수를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감당 가능한 범위와, 감당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교통정 리를 해나가야 분노의 양과 타이밍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로 들어 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