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04 21:12

김정식 (서강대학교 과학커뮤니케이션 석사, 한국과학창의재단 창의리소스센터 과장)



일반적인 언어와 마찬가지로 과학용어도 역사적인 배경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과학용어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이다. ‘과학’은 물론, 물질, 물리, 원자, 분자, 전류, 세포 등 거의 대부분이 이에 포함된다. 과학용어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검증이 가능하다. 1883~4년 한성순보에는 星學(성학), 格致學(격치학), 養氣(양기), 輕氣(경기) 등이 쓰였지만, 1895년에 발간된 서유견문에는 각각의 용어가 天文學(천문학), 物理學(물리학), 酸素(산소), 水素(수소) 등이 쓰였고, 1920년 조선어사전에 실린 용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영향력 하에 놓여있을 때는 중국식 용어를 사용하다 일본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에 빼앗겼던 우리 것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물론, 과학용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1932년 조선어학회에서는 ‘한글’ 1권 4호에 우리 물리학 술어 384개, 수학 술어 108개, 화학술어 39개를 발표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용어로 물리학은 “몬결갈”이었다. 물질이 “몬바탕”이니까 “몬결”은 물질의 이치이고 “갈”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다. 작용은 “짓”, 반작용은 “되짓”이고 운동법칙은 “움즉의 끐”이다. 만약 우리용어를 계속 써왔다면 ‘물리학에서 뉴턴의 세 번째 운동법칙은 작용반작용법칙이다.’라는 말은 ‘몬결갈에서 뉴턴의 세 번째 움즉의 끐은 짓되짓끐이다.’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을 것이다.

해방 후 이러한 노력은 더욱 가속화 된다. 조선생물학회(‘45), 대한화학회(’46) 등이 생기면서 해당 분야별로 수차례의 술어제정사업을 하게 되고, 이로써 과학용어는 각 제정사업 당시의 용어제정원칙에 의해 변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제정노력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였다. 동일 개념에 대해 각 학회마다 다른 용어를 제정하면서 서로 충돌을 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Excited State를 물리, 화학에서는 ‘들뜬상태’라고 하는데 전자분야에서는 ‘여기상태’라고 하고 생물, 화공에서는 혼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용어표준화 작업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과학용어가 원활한 과학소통을 위해 아주 적절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학생들의 물리 단원에 대한 흥미도를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31%가 용어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일반 국민들 중에도 과학용어가 쉽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소통을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과학용어를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통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박용수의 ‘새우리말 갈래사전’을 살펴보면 최근까지도 우리는 ‘위(胃)’를 ‘밥통’이라고 불렀던 때가 있다. 그때는 심장을 ‘염통’, 자궁을 ‘아기집’, 신장을 ‘콩팥’이라고 했다. 역반응은 ‘거꿀반응’, 발열반응은 ‘열내기반응’, 흡열반응은 ‘열빨기반응’등의 말들이 있다. 여기에는 북한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많이 있다. 접안렌즈는 현미경에서 눈이 접하는 렌즈를 말한다. 이를 북한에서는 ‘눈쪽렌즈’라고 한다. 압력을 ‘누름힘’이라고 한다. 분명히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가? 문제는 이런 말들로 바꾸는 것이 저급해 보이거나, 우리말 갈래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식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당장 사용이 불편하여 일선학교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가장 크다. 그렇다면 소통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말로 소통할 생각을 버리고 몸과 체험, 문화로 소통해야 한다. 이것이 과학용어가 과학소통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이다.

1700년대의 박지원은 둥근 것은 반드시 회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둥근 땅이 회전하지 않는다고 하는 서양인들을 탓하였다 한다. 갈릴레이의 유명한 ‘지구는 돈다’라는 말이 1633년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시기적으로 그리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갈릴레이의 ‘지구는 돈다’는 알면서 박지원의 ‘둥근 것은 반드시 회전해야 한다’라는 말은 모르고 있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우리의 것이 덜 세련되었다고 느끼는 걸까? 그 아킬레스건이 바로 우리를 교육해왔고 앞으로도 우리 자손들을 교육시킬 과학용어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용어는 명확하다. 어쩌면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억지와 고질적인 겉치레로 본래 목적인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역사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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