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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2호] 기업가주의적 도시 서울, 그리고 도시권 : 데이비드 하비의 논의를 중심으로

전지구적 세계화가 근대 국민국가의 폐쇄성을 해제함으로써 이른바 ‘평평한 지구’라는 낙관적 수사를 남발시키고 있지만 이 ‘매끄러운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은 여전히 자본뿐이다. 더불어 일상의 공간들에 해방적 가능성을 부여해온 포스트모던 담론들 또한 ‘장소마케팅’이라는 방식으로 자본에 쉽게 전유 되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신자유주의적 테제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이 한국적 양상으로 발현되는 지점을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필자의 논의를 옮겨보았다.



황진태(서울대 지리교육과 박사과정)

서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도시 중 한 곳이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서 서울의 역동성은 그 폭과 질에서 이전과는 수준을 달리한다. 산업화를 상징하는 청계천 고가도로가 무너진 자리엔 청계천이 복원되었고 근대적 건축의 대표적 경관이었던 건축가 김수근의 세운상가가 헐린 자리엔 초고층 랜드마크가 들어설 계획이다. 한국 근대스포츠의 발상지였던 동대문운동장이 헐린 곳에는 세련된 공원이 들어서는 중이며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서울시청사의 신청사 부지는 일제침략기에 세워진 구청사 부지로 선정되어 구청사 건물은 결국 허물어졌다. 이러한 대표적인 경관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현재 서울 곳곳에서 추진 중인 뉴타운사업과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건설까지 상기한다면, 동아시아에서 이 정도의 별천지도 찾기 어려울 듯하다. 이와 같은 서울의 역동성에 대한 해석에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존재하겠지만, 본 지면에서는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공간을 연구한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의 시각을 실마리로 서울의 이 격렬함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자본의 순환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역동성         

하비는 자본의 순환과정 내에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두 종류의 운동이 있다고 보았다. 이 두 운동이란, 항상적인 위기로부터 벗어나 이윤을 획득하기 위하여 더 나은 기술과 더 나은 입지를 찾으려는 자본의 이동성 Mobility 과 안정적인 기술력과 시장을 확보하면서 그 곳에 머물고자 하는 자본의 고착성 Fixity 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틀은 지구적 규모 Scale 에서 움직이는 자본을 조망하는 것에는 탁월하지만 구체적인 도시나 지역 규모에서 어떻게 그러한 이동성과 고착성이 발생하는 지를 설명하기에는 논의의 추상수준이 높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하비는 도시노동시장의 지리적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생산과 소비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자본의 고착성과 이동성이 도시 규모에서도 발생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틀을 토대로 서구도시들에 대한 경험연구를 시도하였다. 

하비는 전후(戰後)부터 70년대까지 미국에서 유지되었던 관리주의적 Managerialism 도시(케인즈주의를 바탕으로 시민을 위한 서비스 공급에 초점을 두는 도시)가 70년대 이후부터는 성장을 중시하는 기업가주의적 Entrepreneurialism 도시로 변화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70년대까지 관리주의적 도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안정적인 재정과 도시경제 성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시정부는 오일쇼크라는 지구적 경제위기의 영향 아래 재정파탄과 도시경제의 추락에 직면하게 되었고 마치 기업가처럼 도시를 운영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에 도시정부는 도시를 상품화함으로써 외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든다. 앞서 하비의 도식을 적용해 풀어보자면, 도시경제에 깊이 연루되어 쉽게 이동하기 어려운 고착화된 자본이 도시정부와 함께 도시경제를 살리기 위해 외부자본의 이동을 장려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유려한 디자인의 초고층 랜드마크와 함께 각종 도시 인프라가 건설되는 도시화 Urbanization 로의 이행이었다.

기업가주의적 도시로서의 서울

하비의 분석이 한국의 사례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이 한동안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발전주의적 국가 Developmental state 였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추동된 조국근대화는 노동자에 대한 권위주의적 억압에 기반 한 유혈적 테일러주의였다. 따라서 한국은 전후 미국과 유럽에서처럼 노동자와 자본 그리고 국가 간에 합의가 이뤄졌던 역사적 경험이 부족하다. 하지만 기업가주의적 도시로의 이행경로는 유사하다. 한국에서 기업가주의적 도시는 1980년대의 점진적인 무역 개방과 1987년 민주화 이후 활성화된 지방자치제 등으로 인해 도시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이양 받게 되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고, 서울시의 기업가주의적 정책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1997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개방속도는 보다 가속화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서 외자유치는 서울시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이명박 시장 임기에 설립된 서울국제금융센터는 97년 위기 이후 해외금융기관 유치를 위한 서울시의 적극적인 몸부림이었다. 당시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복원의 근거로 해외관광객과 해외자본을 유치하는데 있어서 그들에게 쾌적성 Amenity 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해외직접투자든 해외금융기관 유치든,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서울시의 이러한 노력들은 결과적으로 서구도시의 경우처럼 가난한 자들을 주변화 하는 상황을 야기했다(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발생한 노점상과 점포상인들의 주변화를 상기하라). 용산참사는 쇠락지역 건물들을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초고층 랜드마크와 국제업무지구를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기업가주의적 행태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예이다. 이처럼 하비의 분석에 기반 해서 볼 때 현재 서울의 역동적인 공간 변화는 순전히 이명박 혹은 오세훈이라는 특정 인물의 특성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안적 개념, 도시권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 공간 연구자들은 1990년대 자본주의 도시에 대한 대안적 이론으로서 장소마케팅 Place Marketing 을 국내에 들여왔었다. 장소 Place 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각각의 장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자는 장소마케팅의 주장은 모더니즘 철학의 동일성을 비판하며 차이를 긍정하는 신선한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장소마케팅은 용어 자체가 의미하듯 시장 Market- 에 의해 흔들리는 -ing 장소 Place , 즉 교환가치가 작동하는 공간을 옹호하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장소에 신화적 의미들을 부여해 장소를 지키고자 했던 장소 마케팅은, 외려 자본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소를 상품화하고 시민이 활동하는 사용가치의 공간을 외국인 관광객과 해외자본을 끌어오기 위한 교환가치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긍정하고 마는 역설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동아시아 도시들 간에 벌어지는 초고층 랜드마크 건설 경쟁에서 알 수 있듯,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향하는 디자인 정책은 서울시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또한 도시정부와 자본이 공모하여 발생하는 타자에 대한 배타적인 공세 또한 유독 한국 도시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최근 하비는 도시권 The Right to The City 을 제창하고 있다. 도시권이란 자본가들의 이윤을 축적하는 데 기여했었던 도시화 과정을 민주적으로 강력하게 통제하는 집합적 권력의 활용을 일컫는다. 도시권을 처음 주창했던 앙리 르페브르 Henri Lefebvre 는 현대 자본주의 도시에서 시민들의 만남과 대화가 존재하는 사용가치의 공간이 줄어들고 삭막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교환가치의 공간이 팽창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르페브르의 시각에서 볼 때, 교환가치의 공간을 전제하는 장소마케팅 또한 신자유주의 도시담론을 위한 전위대 이론인 것이다. 따라서 하비는 현재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도시 내에서의 투쟁들을 단결시킬 슬로건 내지 정치적 이상으로서 도시권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비가 제창한 도시권 개념은 여전히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도시권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노점상의 도시권, 노숙자의 도시권, 장애인의 도시권, 심지어 상류층의 도시권까지 도시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도시권에 대한 경험연구가 수반되어야만 보다 뚜렷해질 것이다. 앞으로 도시권 연구가 활발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