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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6호] 한국사회 이주 인도인들의 종교적 실천과 문화 공동체의 재구성: 서울 베다 문화 센터의 사례 연구


경진주(종교학 석사)



1. 연구 주제 선정이유

이주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들에 관한 신문기사, TV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 특히 무슬림들의 경우 ‘과연 종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주 경험을 통한 이주민들 스스로의 종교성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변환’, ‘익숙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종교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관한 궁금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이 석사학위논문의 시작이 되었다. 

이주는 이주민들 스스로뿐만이 아니라 이들이 오가는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개개인의 종교 활동 그리고 종교 집단의 활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 간 혹은 지역 간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종교 역시 사람들의 이주와 함께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자는 1)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소수자의 입장에 처한 종교 2) 시민단체나 교회·성당 등 기존 종교단체의 도움 없이 이주민들 스스로 종교 활동을 해나가는 공동체 집단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참여관찰 연구를 시작하였다.

2. 연구 목적

보통 이주민들은 출신국가에 따라 이슬람, 가톨릭, 개신교, 불교, 힌두교 등의 종교공동체를 형성하고, 고국이나 이주한 지역의 종교단체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 이주민들이나 개신교 교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의 경우, 그들의 종교 활동은 공동체 형성이나 사회 · 문화적 필요 요건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교회나 성당과 같은 종교 단체는 때때로 이주민들을 위한 정치적 · 제도적 차원의 지원에 힘쓰는 사회 운동 단체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주민들의 공동체 연구에서는 종교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주민들의 삶 전반에 걸쳐 종교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종교적 실천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충분히 이루어져 있지 않다. 특히 무슬림이나 힌두 신앙을 가진 이주민들의 경우, 한국에서의 종교 공간이 부족하거나 거의 전무하고 그들 종교에 따른 음식규정이나 생활방식을 고수하기 어렵다는 점이 존재한다. 

연구자는 서울에 살고 있는 이주 인도인들이 힌두 사원을 형성하고 종교적 의례를 행하면서, 인도인으로서의 ‘문화 정체성과 공동체’를 재구성해나가는 과정을 분석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사원에서 활동하는 이주 인도인들이 특정한 조직형태로 구성된 ‘공동체’가 아닌, 모국어를 사용하며 푸자 의례를 드릴 수 있고 인도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인도, 즉 고향’으로 상상되고 이미지화된 ‘문화 공동체’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논의할 수 있었다.

3. 연구 방법

연구자는 2010년 2월부터 11월까지 총 10개월간, 서울에 위치한 힌두 사원인 ‘베다 문화 센터’에서 현지조사를 했다. 인도인들이 사원에서의 활동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들 삶의 의미구조를 포함한 심층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외부자의 입장’이나 ‘관찰자’의 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지조사를 시작한 처음 한 달 간은 그저 의례에 오가는 ‘외부자의 입장’에 머무르기만 했다. 낯선 환경과 언어는 연구자를 얼어버리게 했고, 수동적인 태도로만 일관하게끔 했다. 하지만 3월 경 라마의 탄신일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 때 사원 운영자 A는 한국 음식을 신께 드리고 싶다며 ‘잡채’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연구자는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잡채를 만듦으로써, A로부터 ‘라디카(Radhika)’라는 인도 이름을 얻게 되었다. ‘라디카’는 크리슈나의 연인 ‘라다(Radha)’의 애칭으로, 이들의 사랑은 ‘신과 인간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크리슈나’가 ‘신성’을 상징한다면, 크리슈나의 영원한 반려자 ‘라다’는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다’는 크리슈나에 대한 지고하고도 순수한 사랑을 하는 존재인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크리슈나의 신성 그 자체를 품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연구자는 물론 그 당시 단순히 ‘새로운 인도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수많은 ‘여자 인도 이름’ 중에서 위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라디카’란 이름을 부여받은 것은, 크리슈나 신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헌신을 최상의 삶의 가치로 여기는 사원 운영자가 연구자에게 보여준 ‘최초이자 최고의 호의’였다. 

‘종교학을 전공하는’ 그리고 인도인들이 기억하기 힘든 한국 이름을 갖고 있는 ‘대학원생’에서 그들이 ‘크리슈나의 영원한 연인’으로 생각하는 ‘라디카’란 인도 이름을 갖게 됨으로써, 연구자는 마치 ‘크리슈나에 대한 라다의 사랑’과도 같이 ‘베다 문화 센터’를 향해 좀 더 적극적인 ‘참여자’이자 ‘내부자’의 위치에서 참여관찰 연구를 지속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라디카’라는 이름의 획득은 분명 지난 10개월간의 현지조사에서 ‘외부자’ 혹은 ‘관찰자’의 입장만이 아닌, ‘베다 문화 센터’에서의 관계망과 종교적 활동들의 ‘참여자’로써 그리고 ‘내부자’로써 연구자의 위치를 설정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는 연구자로 하여금 단순히 문헌연구를 통한 이론적 배경이 선행된 시각으로 연구대상을 보고, 듣고, 판단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오히려 연구대상들의 발화를 바탕으로 ‘왜’ 그리고 ‘어떻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함으로써, 각종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총체적인 연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했다.

4. 연구 결과

 ‘베다 문화 센터’는 인도에서 서양으로 전파된 힌두교 신종교 운동인 ‘ISKCON(이스콘, 하레 크리슈나 운동)’에 매료되어 신도가 된 A라는 인도인 여성에 의해 설립되었다. ‘베다 문화 센터’는 종교 의례가 있을 때에만 정해진 시간에 한시적으로 개방되는 공간이지만, 이주 인도인들의 ‘생일파티’나 한국인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요가’, ‘채식요리’ 등의 힌두 ‘종교/문화 프로그램’이 있을 경우 유동적으로 개방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사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초국가적 행위자들의 실천과 연결망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특성에 주목하여 ‘베다 문화 센터’를 아파듀라이(Arjun Appadurai)가 제시한 개념인 ‘트랜스로컬리티(translocality)’적 특성을 지니는 공간으로서 살펴보았다. 아파듀라이는 초국가주의적 행위가 단순히 ‘지역성(locality)’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지역’ 사이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트랜스로컬한 실천’은 마치 ‘제3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서 그리고 한 지역에 착근되어 이루어진다. 이는 ‘지역’이 더 이상 특정 장소 혹은 제한된 정체성이나 소속감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특정한 영토와 경계를 가로지르는 실천을 통해 장소와 정체성 그리고 더 나아가 공동체 성격까지 변화시키는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지역성의 생산’을 의문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트랜스로컬 공간’으로서 ‘베다 문화 센터’는 그 영역과 경계가 가변적인, 즉 인도인들의 고향과 이주한 지역 사이의 경계, ISKCON과 힌두교 사이의 경계, 그리고 힌두 종교적 정체성과 인도 문화적 정체성 사이의 경계를 초월하는 다층적인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이 ‘종교 공간’을 교차하면서 ‘고향’에 대한 이미지와 ‘공동체성’은 상상되고 변화한다. 이는 동일한 이주 인도인 공동체 내에서도 그간의 이주 경험, 출신 지역, 사용하는 언어, 학력 등 다양한 요인들에 따라 차이를 드러낸다. A를 비롯한 ISKCON 신도들에게 ‘베다 문화 센터’는 ‘ISKCON 사원’으로서 인식된다. 하지만 이주 인도인들을 위한 ‘종교/문화적 공간’이 부재한 한국에서, ‘베다 문화 센터’는 힌두 신앙을 가진 이주 인도인들에게 ‘힌두 사원’으로써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베다 문화 센터는 종종 사원을 방문하는 한국인 혹은 외국인들에게 ‘인도 문화’를 직접 경험하게 하고 보여줌으로써, 이주 인도인들로 하여금 힌두/인도 문화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글로벌 사회에서 ‘진정한’ 혹은 ‘순수한’ 힌두교는 무엇일까? 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었다. 이는 ‘인도’라는 문화적 상징과 정체성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종교적 · 문화적 다양성의 증가로 ‘종교나 문화를 통한 고유한 그 무엇’에 대한 가치와 기준은 점점 변화하고 있고, 이전과는 또 다른 이해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는 이주민들의 종교공동체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