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117호] '정신분석학'으로 알아본 이종욱 총장의 뇌구조 1

 


글 시야


정신분석학이란 말에 지레 쫄지 말자.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정신분석학이란 말을 쓴 까닭은, 허무맹랑이나 지레짐작이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 학문적 엄밀성은 잠시 접어두자. 하지만 이왕 정신분석학이라고 제목을 달았으니 비슷하게나마 논의를 이끌어 가보도록 하자. 우선 말하고 싶은 건, 이 글의 목적이 이종욱 총장의 뇌구조(MRI를 찍자는 건 아니니 무의식과 같은 말로 생각하자)를 심층적으로 파헤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종욱 총장이 여기저기에서 한 말 중에 빈출단어를 뽑고 그 단어를 네트워크 지형도에 배치시켜 일종의 의미구조를 파악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너무 ‘과학적’이지 않은가. 이런 과학적 방법으로는 단지 이종욱 총장이 한 말의 빈도수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여기서 실재를 포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아, 실재란 말이 나왔다. 흠, 실재는 상징계의 질서로 봉합할 수 없는 무엇, 그냥 여기서는 진실이라는 말로 대체하자. 상징계니 뭐니 줄줄이 사탕처럼 개념이 엮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엠피리컬한 과학적 방법으로는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을 알기 위해서는 증상이 필요하다. 그렇다. 이종욱 총장의 무의식을 알려면 부지불식간에 내뱉는 말이나 행동을 관찰해야만 한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에는 설명하기 힘든 난점이 있다. 분석자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 맞는 대답을 하면 당연히 이들 논의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되고, 반대로 맞지 않는 대답을 하면 이는 자신의 무의식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역시 정신분석학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자) 앗, 그렇다면 뭘 말해도 다 맞는다는 말인가. 반대로 뭘 말해도 반박할 수 없는 거겠네. 이거 괜찮다. 물론 정신분석학을 이렇게 이해하고 논문 쓰면 돌 맞는다. 하지만 이 글은 논문이 아니지 않은가. 한 번 분석해보자.

이거 하면 특별할까?

우선 이종욱 총장의 무의식적 구조를 이루는 부분 중 왼쪽 상단 부분을 살펴보자. 바로 ‘이거 하면 특별할까’라는 부분이다. 이는 일종의 강박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으로 나타난다. 특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충만한 반면 하는 행동은 특정한 행동의 반복인 것이다. 문제는 생각과 행동 사이에 인과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특별한 서강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만 하는 행동은 이와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특별한 서강을 이루기 위해 제안한 정책인 전인교육, 교수역량 강화, 산학체제의 경우 도대체 무엇이 특별한지 알 수가 없지만 계속 여기저기서 반복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인교육의 골자는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다중전공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다중전공이야말로 특별한 서강에 반하는 정책이 아니던가. 학부생 절반이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는 이 기괴한 현상이 왜 전인교육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인문대든 공대든 할 것 없이 죄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싶어서 자신의 전공을 최소학점만 이수한 채 콩나물시루 같은 경영대 과목을 듣는 것이 어디가 특별하단 말인가. 오히려 국민 전체가 CEO를 보편적 이상으로 삼는 비즈니스 코리아의 축소판을 서강대에 구현하고자 함은 아닌가. 전공자가 단 몇 명밖에 안 되고 심지어 교수보다 학생 수가 적은 학과도 있는데, 특별한 서강을 이루기 위해 이들 학과를 존폐의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인가 아니면 경영학 졸업자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률 때문인가. 물론 후자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또한 학생들을 위함보다는 사회 내에 서강대의 인적 자원을 배치하려는, 그럼으로써 연대, 고대만큼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싶은 지극히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서강대 취업률 전국 몇 위 같은 거 말이다. ‘경영학을 공부해서라도 취직해라. 그런데 그거 알아. 너처럼 취업하기 힘든 학과 출신이 취업할 수 있는 건 다 서강대만의 특별한 교육인 다중전공 때문이라는 걸?’ 이렇게 죄다 경영학을 공부시켜서 취업하게 해주니 학생 만족도가 몇 년째 1위일 수밖에. 경영대로 몰리는 학생 덕에 매년 수명씩 경영대 교수들이 충원되고 예산은 확장되는 반면, 학생들의 원래 전공 학과는 빼빼 말라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나는 ‘신자유주의적 특별함’이라 부르고자 한다. 물론 학생들의 불투명한 미래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임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대학을 시장질서의 흐름에 내맡기는 행위를 ‘특별함’이라는 수사로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차라리 뻔뻔하게 취업 잘 되는 교육이라고 선언하는 편이 덜 부끄럽다.

3대 사학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는 욕망

교수 연구논문, 1인당 교수비율, 영어강의비율, 외국인 교환학생 비율, 재정 등으로 평가되는 중앙일보 대학 순위는 앞서 말한 특별한 서강을 위한 정책들과 교묘하게 겹친다. 교수 역량 강화는 당연히 연구 논문으로 귀결될 것이고, 산학체제는 재정 마련의 교두보임이 자명하다. 언제까지고 동문 기부금에 목 맬 수 없지 않은가. 외국인 교환학생과 영어 강의 비율을 높이는 것 또한 표면적으로는 국제화 전략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사실 학교 순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결국 이 모든 증상의 근저에는, 물론 본인은 거부하겠지만, 3대 사학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무려 40년이 넘게 몸담은 학교가 연대, 고대가 아닌 성대, 한양대에 밀리다가 이제는 중앙대나 경희대 수준이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던가. 대놓고 쪽 팔리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들 학교를 경쟁 상대로 인정하자니 그야말로 서강의 몰락을 자백하는 셈이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 서서전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으름장을 놓는 한물간 호기로 보인다.) 여기서 ‘특별한 서강’은 ‘대학 순위’로 쉽게 전치된다. 

결국 특별한 서강이라는 안전한 방패 뒤에서 다시금 예전의 영광을 재현할 꼼수를 노릴 수밖에 없지 않는가. 여기에 동원되는 편리한 이데올로기가 ‘인문학’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문학 총장을 전면에 내세운 이후 서강대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반하는, 지성과 학문의 요람으로 스스로를 표상/재현(representation)하고 있다. 수업 시간 종소리 도입(이 글의 논지에서 벗어나지만 종소리는 정말 아니다)이나 공부하는 대학이라는 이미지 강화, 엄격한 학사 제도 등은 이러한 표상/재현 체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신자유주의와 인문학은 교착 불가능한가. 아니면 반대로 인문학이야말로 신자유주의와의 친화력을 통해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종욱 총장의 인문학적 기반은 신자유주의 질서와 만나 어떻게 스스로를 잠식해 들어가는가. 

지면 관계상 여기서 글을 맺자. 특별한 서강은 모든 서강인의 염원이다. 거대 사립대학이 성큼성큼 가는 걸음을 따라가지 않고 잔잔한 발걸음으로 소외되는 이 없이 다함께 걸어가는 게 특별함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이종욱 총장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는 최소한 인문학적 가치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던가. 부디 ‘특별함’이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음 호에서는 이종욱 총장의 뇌구조 중 아래의 내용을 분석해 볼 계획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경영대 교수 비리 사건에 대한 불편함
이번 학생회 왜 이래!
남양주로 가야 하는데... 돈이 없네...
소통은 무슨!
교수협의회는 왜 자꾸 딴지를 걸까.
기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