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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8호] 제주해군기지, 주권적 선택이 초래할 비주권적 결과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9월 하순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마을을 다시 찾았다. ‘살아있는 바위’ 구럼비는 거대한 펜스에 가로막혀 벌금과 체포를 각오하지 않는 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맨발로 그 바위 위에 서면 온몸으로 전해오던 생명의 소리는 굴삭기에 의해 요란한 죽음의 소리로 둔갑해버렸다. 평화롭던 마을공동체도 이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곳에선 찬반 주민들 사이에 멱살잡이가 벌어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여 거듭 묻게 된다. 천혜의 자연과 평화로운 마을을 파괴하면서 얻게 되는 국익이 무엇이냐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득실관계를 따져봐야 할 자리는 첨예한 이념 대결이 대신하고 있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해군기지 반대 세력을 “종북·좌파”, “김정일의 꼭두각시”, “대중(對中) 사대주의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국익’의 관점에서 제주해군기지의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기지 건설과 20여척의 대형 함정 도입·유지에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의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고, 한-중 간에 불필요한 군사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미-중 간의 패권경쟁에 한국이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는 이내 “반대를 위한 반대”, “유언비어” 등으로 일축되기 일쑤다. 하여 거듭 정부와 보수 진영에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 국익의 관점에서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따져보자고.

대한민국 국민치고 우리에게 생명선과도 같은 해양수송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의 이어도 영유권 주장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 점에 대다수 국민들은 동의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해군기지 건설은 우리에게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부담’이, 국가안보상의 긴급한 상황을 진화할 수 있는 ‘소화기’가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드는 ‘인화물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중 해군이 이어도에서 대치하면?

제주해군기지가 한중관계에 막대한 부작용을 초래해 국익을 위협할 수 있다는 가장 일차적이고도 직접적인 이유는 이어도 문제에 대한 해군의 대응 계획에서 비롯된다. 해군은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면 기동 함대를 배치해 이어도에서 초계 활동을 할 계획이다. 그런데 한-중 간 합의되지 않은 수역에 한국이 군함을 보내 초계 활동을 벌이면 양국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만약 중국 해군이 이어도에 출현하면 우리는 외교적 항의에서부터 군사적 맞대응까지 다양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반중감정도 고조될 것이다. 중국이 취할 조치도 이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이 먼저 해군 함정을 보내 양국의 함정이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은 외교적·경제적·안보적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미합의 수역에 함정을 보내 긴장 상황을 자초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여론은 결코 우리 편이 될 수 없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한국의 국가신인도 강등을 검토할 것이다. 중국 내에서는 반한감정이 일어나고 이는 한국 상품 불매운동과 중국인 여행객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대치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의 위험 부담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일본을 굴복시키는데 사용한 희토류 수출 중단이나 한국에 대한 여행 금지 조치 등 경제적 보복에 나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마도 어떤 정부가 되었든 미래의 한국 정부는 해군 함정을 철수시켜 사태를 수습하려 할 것이다. 이는 곧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을 둘러싼 협상력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어도 해양주권 수호를 이유로 제주 해군기지를 만들어 해군 함정을 파견할 때 자초하게 될 ‘확실한 위험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절실한 문제제기에 대한 토론도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해군기지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근거 없는 기우에 불과해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주권적 선택이 초래할 비주권적인 결과

또 한 가지 전략적으로 더욱 큰 부담이 따를 수 있는 문제는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어떤 형태로든 이용해 한중 관계가 크게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도를 둘러싼 대치 상황은 한-중 양자 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외교적으로 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미-중 갈등에 휘말리면 한국의 선택지는 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이라는 ‘주권적 결정’이 우리의 운명을 ‘타자화’하는 가장 ‘비주권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해군은 미국과 협의 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미국 예산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으며 이미 진해와 부산을 기항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할 가능성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협의 여부 및 미국 예산의 투입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SOFA)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미군은 한국 해군 기지인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는 원천적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SOFA 규정상 미군이 우리 시설을 활용하려면 관련 정부, 외교통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SOFA에는 “(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나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고 나와 있고, 이를 실증하듯 한미동맹 역사상 미국이 한국에 군사력을 유출입하는데 사전 ‘승인’을 받은 사례는 없다.

첨예한 이슈인 미사일방어체제(MD)와의 연관성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미국 주도의 MD에 참여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 해군기지와 MD는 무관하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정부는 미국과 함께 2년 전부터 MD 공동연구를 실시해오고 있다. 작년에는 한미 양국의 이지스함이 합동 MD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밀실에서는 오키나와와 괌을 방어하는데 한국이 기여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미국이 한국을 대표적인 MD 협력 국가로 분류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패트리어트 미사일 최신형인 PAC-3를 한국에 배치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3년부터 들여오기 시작한 PAC-3는 주한미군 기지인 오산공군기지와 군산공군기지뿐만 아니라 한국 공군기지인 수원기지와 광주기지에도 배치됐었다. 이는 필요할 경우 동맹국의 기지도 미군 군사력의 전개 지역으로 삼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제주해군기지가 한국 해군기지더라도 미군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진정 국익을 생각한다면

결론적으로 제주해군기지는 미국이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그런데 미국이 사용하려 하는데 한국이 못 쓰게 하면 한미동맹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 거꾸로 미중 군사 갈등 시 미국의 사용을 묵인하면 한국은 군사적으로 중국에게 위해 행위를 하는 셈이기 때문에 한중관계가 파탄에 직면하게 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이라는 주권적 선택이 우리의 운명을 타자화하는 비주권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 해군기지가 없으면 이러한 걱정은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해 해군기지 건설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중국의 한 전문가가 쓴 칼럼은 제주해군기지가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에 치명적인 위험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변강연구소 뤼차오(呂超) 소장은 9월 6일자 <환구시보> 기고문을 통해 “오늘날 한국은 중국인 관광을 통해 돈을 버는 동시에 그 관광객들의 고국을 무력을 통해 위협하려고 한다. 우리는 한국으로 하여금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며, “중국인들은 제주 관광을 거부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나섰다. 관변 학자가 중국 당국의 승인 없이 칼럼을 쓸 수 없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개인의 입장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처럼 제주해군기지가 한중관계에 중대한 불안을 야기할 소지가 대단히 크다. 과연 우리의 최대 무역상대국이자 외교·안보적으로도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중국을 등 돌리게 하면서까지 얻게 되는 국익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