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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9호] 바닥이다 싶을 때

표명희


모니터에 수상한 사람이 잡혔다. 지하층과 1층 복도를 기웃거리던 낯선 남자가 2층 복도 CC카메라에 다시 잡혔다.

“고시원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사장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궁시렁거렸다. 그가 장부와 계산기를 번갈아가며 들여다보는 내내 나는 CC티브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사내는 이제는 익숙한 태도로 T자형 좁은 복도를 감상이라도 하듯 천천히 오가기 시작했다.

“야, 어떻게 돈이 삼십만 원이나 차이 나냐?”

사장이 계산기를 내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월별로 종량제 쓰레기봉투 한두 장 차이나는 것까지 따지고 드는 사장에게 한 달 치 고시원비 빠뜨린 일이 용납될 리 없다. 퇴실 결정을 번복하며 나중에 재등록했던 학생 건을 깜박한 것이다. 어쩌면 사장은 그것이 나의 단순한 착오로 빚은 실수가 아니라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찜찜하다 못해 더러웠다.

“그 머리로 어떻게 시험 볼 생각을 하냐. 아무리 9급이라지만.”

입버릇처럼 하는 사장의 비아냥이 돌연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낙방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터였다.

“저 새끼 저거 미친 놈 아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내가 외쳤다.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겨갔다. 사내가 이젠 여학생 전용 층인 3층 복도에 나타난 것이다. 카메라 앞에 멈춰 서서 얼굴을 쳐든 사내는 군복색 잠바 차림에 검은 목도리가 얼굴 절반을 가린 게 꼭 복면강도 같다. 무슨 꿍꿍이인지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려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부리나케 사무실을 뛰어나간다. 수상한 놈도, 미친놈도 아닌 구세주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한달음에 3층을 올랐으나 사내는 오간 데 없다. 4층 복도까지 둘러보지만 굳게 닫힌 문들끼리 마주하고 있는 좁은 복도만 길게 뻗어있다. 겨우 한 사람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긴 T자형 복도. 바닥에는 실내화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갑자기 숨이 컥 막힌다. 교차 지점에 서서 좌우 복도와 길게 뻗은 중간 복도를 번갈아 둘러본다. 꼬질꼬질 때가 묻은 현란한 꽃무늬 실내화들의 T자 행렬에 현기증이 인다.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다시 한 번 복도를 살펴본다. 정체불명의 사내는 어디에도 없다. 설마 모니터 화면에서 헛것을 본 건 아니겠지. 사무실에서 받았던 열이 층간을 오르내리면서 제법 식었다. 이쯤이면 사장은 다른 볼일을 보러 갔겠지.

사무실엔 놀랍게도 모니터 화면의 사내와 사장이 마주하고 있었다. 

“승호야.”

뜻밖의 호명과 함께 목도리에 가려진 얼굴이 드러났다. 희고 매끈한 피부와 고운 선의 이목구비를 갖춘 귀공자 타입의 얼굴…… 어릴 적부터 가족들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온 8남매의 막내, 우리 집안의 마지막 애물단지 반백수 노총각 삼촌이다. -삼촌 떴다~ 지뢰 밟지 않도록 조심!! 며칠 전 사촌 형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퍼뜩 스쳤다.

“승호한테 이런 재미난 삼촌이 있는 줄 몰랐네.”

사장이 인사치레하듯 한마디 하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삼촌,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둘만 남자 내가 대뜸 따지듯 물었다.

“커피나 한잔 줄래?”

삼촌은 어물쩍 대답을 피해갔다. 사촌 형이 털어놓은 게 분명했다. 내 상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사촌형이다.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로 고민하던 내게 선뜻 공무원시험을 권유했던 이가 그였다. 이번 시험에서 그는 합격의 영광을, 나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아이슬란드라는 나라 혹시 들어봤냐?” 

커피를 홀짝이고 난 삼촌의 첫마디였다.

“가뜩이나 추운데 빙하의 나라는 또 왜?”

내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삼촌이 낯선 나라 얘기를 꺼내면 그 나라를 여행하고 싶다는 뜻이라는 것, 당연히 그에 따른 여행 경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고시원 엄청 크더라. 방이 백 개는 너끈히 돼 보이던데.”

말을 돌리며 삼촌은 모니터 화면을 흘끗거렸다.

“눈썰미 한번 놀랍네. 딱 99갠데.”

“내가 너네 사장 같으면 평생 세계 일주만 하면서 돌아다닐 텐데…….”

“하느님이 그걸 눈치 채신 거지.”

“승호, 너 되게 시니컬해졌다.”

“삼촌도 고시원 총무 노릇하면서 가족들 몰래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한번 해봐. 그러다 보란 듯 미끄러지고 나면…….”

더 말해 뭣하랴 싶어 대충 얼버무렸다. 삼촌은 빈 종이컵을 펼쳐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내내 쏘아붙이긴 했지만 삼촌과 마주앉아 있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삭막한 사무실에 배달돼온 공기정화 식물 화분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자린고비 사장이 염장 지르고 간 뒤라 더 그런지도 몰랐다. 

“승호 네 방 구경 좀 시켜주라.”

삼촌이 종이컵으로 접은 새 한 마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삼촌을 지하에 있는 내 방으로 안내했다.

“수저통 속 숟가락처럼 다들 머리를 이쪽으로 하고 눕겠구나.”

삼촌이 침대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나는 침대 밑 방바닥에 다리를 뻗고 젓가락처럼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좁은 방이 그나마 덜 답답해 보여 손님이 오면 잘 취하는 포지션이다.

“너 저번 학기 휴학했다면서.”

삼촌의 말에 나는 다시 긴장했다. 그건 가족도 모르는 비밀이다.

“등록금은 엇다 썼냐?”

나는 바닥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설마 그걸 노리고 온 건 아니겠지? 내 등록금이 삼촌 여행 경비로 쓰였다는 걸 엄마 아빠가 알면 삼촌도 무사할 줄 알아?”

나는 다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내 반격이 만만치 않았던지 삼촌은 멀뚱멀뚱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너, 삼촌처럼 되고 싶어 그래? - 엄마 아빠가 나한테 곧잘 하는 말이다. 촉망받는 젊은이였던 삼촌은 어느새 집안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었다. 서른여덟이라는 나이에 아랑곳없이 삼촌에겐 불치의 방랑벽과 못 말리는 피터 팬 증후군이 있다.

“바닥에 너무 오래 엎드려 있었어.”

드디어 삼촌의 ‘바닥론’ 등장이다. 늘 여행의 명분이 되는……. 

-바닥이다 싶을 때, 그때가 기회야. 박차고 날아오를 때라고. - 삼촌의 신조가 우리에게 먹혀들던 때도 있었다. 그의 스무 살 시절 이야기는 사춘기의 내겐 찜질방에서 마시는 냉식혜 같았다. 대학 입시에 두 번째 낙방하고 실연까지 겹치면서 삼촌은 처음으로 삶의 밑바닥에 닿아 보았다고 했다. 사흘 밤잠을 설치며 고민한 끝에 그는 학원비를 챙겨들고 기숙 학원 대신 라즈니쉬의 나라 인도로 향했다고 했다.

-거기서 구루를 만난 게 아니라 국가부도를 맞았지. - 몇 개월의 여행 끝에 그가 만난 구원자는 바로, 아이엠에프였다는 것. 달러당 8백 원이었던 환율이 귀국할 무렵 2천원으로 오른 바람에 그는 반 년 간의 여행을 공짜로 하고 삼수 비용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불행처럼 행운도 한번 찾아들기 시작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는 것. 6개월간의 인도 방랑 체험은 여행기로 결실을 맺었고 그 책은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몇 개월간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더니 급기야 여대생 애독자와의 연애 건수까지 덤으로 생겼다고 했다.  
- 그 행운이 결국 삼촌 인생을 망쪼 들게 한 거 아냐. - 아빠는 삼촌의 영웅담에 혹해 있는 나를 신랄하게 일깨웠다.
바닥의 딱딱하고 찬 기운이 등으로 전해왔다.

“삼촌, 나야말로 지금, 바닥 중의 바닥이야. 알아?”

침대 위 삼촌은 어느새 코를 골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은 모두 6대의 카메라가 비추는 장면으로 나뉘어 있다. 그는 분주하게 그 여섯 칸의 화면을 옮겨가며 등장했다. 내가 아니라 그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체험 삶의 현장에라도 뛰어든 듯 그는 일주일째 이곳을 맴돌고 있다. 복도를 오가며 열심히 실내화를 정리하고 바닥의 휴지를 줍고 물품을 정돈한다. 또한 나를 위해 커피를 타주고 김밥을 사다주고 내 방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책상 위에 작은 다육식물 화분을 올려놓는 섬세함까지 보였다. 사장도 벌써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형만한 아우 없다더니 삼촌만한 조카 없네. - 그는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용의주도하고 집요한 빚쟁이 같다. 그가 지하 카메라 앞에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만 항복하지, 그래? 넌 이미 내 손 안에 들어왔어. 가증스럽다 못해 존경스럽다. 허황된 꿈을 향한 열정이 저토록 강할 수 있다니. 그것도 서른여덟의 나이에……. 조만간 나는 그에게 두 손 들고 말 것이다. 그가 2층 카메라 앞에서 또다시 브이 자를 그려 보인다. 그러더니 다시 분할된 모니터 화면을 분주하게 오간다. 순간, 어떤 깨달음이 내 뇌리를 스친다.

고마워 삼촌. 내게 기회를 줘서. 정작 여행이 필요한 사람은 삼촌이 아니라 나라는 걸 깨달았어. 그동안 고시원 잘 부탁해.

나는 잠든 삼촌의 머리맡에 쪽지를 남겨놓은 다음 챙겨둔 배낭을 메고 지하 방을 빠져나왔다. 처음 그가 모니터 화면에 나타났을 때, 그는 분명 내게 구세주 같은 느낌이었다.

표명희
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에 단편「야경」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3번 출구』,『오프로드 다이어리』,『하우스메이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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