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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9호] 이 세상, 마지막 휴대폰

서진

이번 휴대폰 진동은 끈질기다. 받지 않으려고 가방 깊숙한 곳에 두었는데도 웅웅거리며 애타게 울리고 있다. 차라리 꺼 놓았으면 좋겠는데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가 올까봐 꺼 두질 못했다. 오늘 따라 소설이 써지지 않았는데 이런 방해꾼 까지 나타났으니 오늘은 종친거나 다름없다. 휴우, 한숨을 쉬고 휴대폰을 꺼냈다. 이리 저리 흠집이 난데다 액정도 금이 가 있다. 예전에는 이런 휴대폰을 스마트폰이라 불렀지만, 이제는 더미폰이라고 불리는 게 맞겠지. 요즘엔 누구나 바이오폰을 쓰니까. 이런 식으로라면 영원히 울릴 것 같아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어이, 더 이상 봐줄 순 없어.”

‘안녕하세요 고객님, GT 통신 상담원입니다.’ 이라고 말하던 아리따운 안내원은 어디로 가고 가래가 잔뜩 낀 험악한 남자의 목소리가 일주일 전부터 전화를 걸고 있다. 나는 편의상 이 남자를 '양아치'라고 이름 지었다. 성은 양, 이름은 아치. 이름을 짓고 나면 소설이 슬슬 풀릴 때가 많다.

“무료로 바이오폰 시술을 해준다고 했잖아. 요즘에 그런 구닥다리 휴대폰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뭔가 더 보상을 바라는가 본데, 너처럼 미꾸라지 같은 녀석들 때문에 휴대폰 서비스를 중단하지 못해서 통신사들이 손해를 보고 있단 말이야!”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양아치의 말투가 약간 누그러졌다.

“이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바이오 폰은 잃어버릴 염려가 없어. 머릿속에 간단한 칩만 넣으면 된다고. 배터리도 필요 없으니 얼마나 환경 친화적이야? 머릿속으로 통화하기 때문에 두 손은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소음도 나지 않아. 스마트 렌즈도 시술하면 입체 동영상도 감상할 수 있는 거 알지? 영화보다 더 실감나. 그 뿐인 줄 알아?”

나는 수화기를 귀에서 살짝 떼어 놓았다. 수십 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다. 영업사원답게 장점만을 늘어놓지만, 사실 단점도 있다. 배터리가 필요 없기 때문에 살아 있다면 언제나 전화기는 언제나 켜져 있다. 일부러 전화를 꺼 놓을 수 있지만, 휴대폰의 전원이 나갔다거나 가방 안에 두었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나의 위치 정보가 고스란히 통신사 서버에 저장된다는 소문도 있다. 철저한 기밀 보장이 된다고 하지만 개인 위치 정보로 범죄자를 잡을 수 있었다는 뉴스가 종종 뜨니까 안심할 수는 없다. 루머에 의하면 개인의 건강정보도 빼낼 수 있단다. 바이오폰이 있으면 심장발작 등의 위험한 상황 때 자동적으로 119에 연결되는 서비스가 있으니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GT통신에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몸이 어디가 불편한지, 누구와 사귀고 있는지, 언제 죽을 지도 예상할 수 있겠지.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여전히 양아치는 바이오폰의 장점에 대해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저...저기 저는 지금 휴대폰으로도 별 불편이 없습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남의 말을 못 알아들어? 너 때문에 통화하는데 목까지 아파야겠어? 이것 봐, 이제부터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겠어. 엄연히 이건 영업방해라고. 우리가 통화한지 한 달 정도 되었나? 그래도 매일 매일 통화를 하니까 어쩐지 친근한 기분이 들어서 그래. 동생이라고 여겨도 되겠지? 까짓것 형이라고 불러.”

이런 형을 뒀다면 매일 싸우다 된통 두드려 맞았을 거다. 그러고 보니 가끔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를 빼고, 요즘 가장 통화를 많이 한 것은 이 남자구나. 정말 형이라고 불러야 할  지도.

"나는 동생에 대해 조금 알고 있지. 이봐, 소설가가 직업은 될 수 없어. 좀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그러니까 구닥다리 스마트폰과 이별을 못하고 있지.”

“어...어떻게 제가 소설을 쓰고 있는지 아세요?”

“GT 통신이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다고 생각해? 한심하긴... 요즘, 누가 소설을 읽는다고 그런걸 써? 소설이 나오기는 하지... 하지만 영화나 게임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어. 독서는 고상한 취미생활이 된 지 오래라고. 내가 젊었을 때에는 종이책이 100만부가 팔리던 시절도 있었지. 상금이 꽤나 되는 공모전도 있었고 말이야. 요즘엔 종이책이 잘 나오지도 않잖아? 전자책도 소설은 잘 팔라지 않아.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는 건 어때? 내가 영화 쪽에 아는 사람이 좀 있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회유, 협박 전화를 받기 싫으면 당장이라도 집 앞에 있는 통신 대리점에 가서 해지 신청을 하고 바이오폰 시술을 받으면 그만인데 나는 휴대폰을 바꾸기 싫다. 누가 억지로 권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 겉으로는 나의 편의를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 협박하는 것이다.

엄마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보통 때엔 말을 잘 듣다가도 꼭 알 수 없는 것에 고집을 부린다고.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다가 2년차 때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고 공부를 그만 둔 것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나도 이치에 맞는 설명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냥,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믿음이 점점 강해졌을 뿐이다. 몰래 학교를 휴학한 나는 부모님 집을 떠나, 책상 하나와 작은 침대뿐인 반 지하 방을 빌렸다. 부모님에게는 집이 너무 멀어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다. 양아치의 말처럼 요즘 누가 소설을 읽나? 어쩌면, 내가 읽기 위해 쓰고 있을 지도 모른다. 돈이 될 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일단 첫 소설을 완성한 다음에 생각해 볼 것이다.

양아치의 전화를 끊고 나서 글이 술술 풀렸다. 하루에 원고지 스무 매 분량을 쓰는 것이 목표다. 이 정도 페이스로 쓰면 한 학기 내에 장편소설을 마감할 수 있을 거다. 실패하면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거다. 원고지 열다섯 매 정도를 썼을 때,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다.

“연구에 매진하는 것도 좋지만, 엄마가 병원에 있는데 좀 찾아오지 않으련?”

“죄...죄송해요. 요즘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지금 시간이 나니까 당장 갈게요.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그럴 것 까지는 없는데...내가 미안해지네... 음... 종이로 된 소설책이 요즘 있으려나 모르겠네.”

나는 헐레벌떡 샤워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환절기만 되면 엄마는 천식이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30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의 공기는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광화문에 내려 서점에 들렀다. 엄마가 처녀 시절에는 종이책으로 가득 찬 초대형 서점이었다지만 지금은 전자책 기기와 카페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한다. 한구석에 마련된 종이책 코너에서 할인판매를 하고 있는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골랐다. 엄마는 제인오스틴 팬이다. 전자책으로 그녀의 책을 모두 소장하고 있지만 종이책으로 읽어야 책 읽은 맛이 난단다. 어쩌면 내가 소설을 쓰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엄마의 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비싼 종이책을 계산하면서 말이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났다. 노인 전문 병원이라 그런지 유난히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많다. 아직 엄마는 휠체어를 탈 정도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늙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코끝이 찡해졌다.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3층까지 뛰어올라갔다.
6인실 병실의 문을 열었다. 다른 침대에는 방문자가 없었다. 다들 멍 하니 입체안경을 쓰고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 중 단 한명, 창가쪽 침대, 엄마의 자리에는 덩치 큰 사내가 앉아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엄마의 얼굴이 저렇게 환한 건 본 적이 없다. 누구지? 엄마 친구라고 하기엔 젊다. 어느 순간 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어서와.”

엄마가 말한다. 남자도 손을 흔든다. 마치, 날 잘 아는 친구처럼.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간다. 마치, 이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엄마의 침대에는 종이책 한권이 놓여 있다. 이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연구실에 이렇게 재미있는 선배가 있다고 진작 왜 말해주지 않았니? 내가 딱, 원하던 책도 사오셨어.”

엄마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말한다. 선배라니? 이사람, 처음 봤는데. 그러자 그 선배라는 사람이 말한다.

“뭐, 녀석이 좀 숫기가 없긴 해요. 연구실에서도 너무 조용해서 깜빡하고 밥을 먹으러 혼자 남겨두고 간 적도 있다니까요 어머니.”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양아치다. 머리가 쭈뼛하고 섰다. 어떻게 이곳을 찾아왔을까? 아, 나에 대해 조금 안다고 했지. 엄마가 말한다.

“그리 어정쩡하게 서 있지 말고, 앉아 녀석아. 그리고 말이야, 왜 아직도 바이오폰을 사지 않아? 네가 어디쯤까지 왔는지 확인도 못하잖아. 얼마나 기다렸다고?”

“아무튼 녀석이 특이하다니까요. 그렇죠 어머니?”라고 양아치가 대답한다. 병실이 떠나가라 웃으면서.

서진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제12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하트브레이크 호텔』등이 있으며, 한페이지단편소설(1pagestory.com)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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