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4. 10. 20:17

 

 

 

삶을 짓는 소비

『즐거운 불편』을 참조하여

 

김나영 (문학평론가, 고려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소비하는 인간

 

   소비에 대해서라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소비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잉크, 당신이 쥐고 있는 종이, 하물며 우리의 시야를 밝혀주는 전등 역시 소비의 과정을 통과한 물질이다. 나아가 내가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아무렇지도 않게 취해왔던 대부분이 실상 소비라는 특별한 행위를 거친 것이라는, 이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일종의 당연함이라는 미명 아래 애써 외면해 왔을지도 모르겠다. 커피 한 잔이 나의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순간에도, 내가 간과한 노동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이다. 과연 그 노동의 땀방울을 무감각하게 마셔넘길 수 있는지, 어째서 그러한 사정이 당연함으로 수용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합의해야 할 것은 소비의 정의이다. 소비는 말 그대로 무엇을 써서 사라지게 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 무엇은 화폐나 물건처럼 가시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노력이나 시간처럼 비가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소비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 노력을 들이고, 물건을 사기 위해서 시간을 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에 대해서라면 무엇을 써서 없애버리는 표면적인 행위 이면에 그 행위를 추동하게 하는 욕망을 함께 이해해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소비하기 위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소비한다. 그리하여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을 갖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버린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소비는 생산과 완벽한 짝을 이루지 못한다. 공업화와 산업화의 급속한 발전 이후, 무엇이든 대량으로 생산하고 유통하게 되자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아도 소비하게 되었다. 불필요에 의한 소비라는 아이러니에 바로 그 욕망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사회는 넘쳐나는 물건을 소화하기 위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쏟아지는 광고는 이 물건을 갖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 비해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그 물건이 자기에게 어떤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소비를 계속한다. 그 물건을 가진 후의 공허함은 금방 다른 물건을 향한 욕구로 분출된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불필요를 공략하고, 그로써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을 거듭 노린다. 이렇게 소비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소비를 야기한다.

   대량으로 생산하고 대량으로 소비하는 와중에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은 점차 효율적으로 변화했겠지만, 이 효율은 다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러할 뿐이다. 효율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정성일 것이다. 무엇을 만들고 쓰는 일의 근원에 깃든 필요, 혹은 간절함과 그것을 누군가를 통해 충족할 때의 고마움 같은 것 말이다.

 

유혹하는 불편

 

   『즐거운 불편』은 부제가 알려주듯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이다. 일본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후쿠오카 켄세이는 <마이니치 신문> 서부 본사판 문화란에 즐거운 불편이라는 기획으로, 1년간의 실제 체험과 더불어 현대소비사회가 가져온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각계각층의 전문가들 열두 명과 함께 짚어보는 르포 형식의 대화를 2년간(19981~199912) 연재했다. 이 책은 그 글들을 보필하여 묶어 낸 것으로, 무엇보다도 쉽고 편하게 읽힌다는 장점을 갖는다. 책의 구성은 크게 실천편대화편으로 구분되는데, 좀 더 전문적인 입장 혹은 관점을 전제로 하는 대화편과는 달리, 소비사회에서 당면한 문제에 저자가 몸으로 직접 부딪혀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하는 실천편은 마치 한 편의 잘 쓰인 일기처럼 보일 정도다. 저자는 자동판매기에서 음료를 뽑아 마시지 않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가족이 먹을 만큼의 채소와 쌀은 직접 재배해서 먹는 등의 자발적으로 정한 불편한 소비 행위를 성과와 폐해를 가리지 않고 기록하여 보여준다. 때문에 독자는 그처럼 다른 소비의 준비단계에서부터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일종의 즐거운 결실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함께 하면서, 결국 저 불편하고도 즐거운 삶에 당장이라도 동참하고 싶은 거대한 유혹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유혹,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갖는 가장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주제이자 문제의식인 과연 소비와 행복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핵심에 깊숙이 닿아 있다. 유혹은 힘이 세서 어떤 자율이나 강제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만한 가능성을 갖는다고 저자도 말하고 있거니와, 그것의 힘이야말로 바로 행복과 소비를 함께 누릴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어째서 유혹인가. 유혹은 욕망을 전환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를 위한 소비로,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욕망을 막무가내로 가로막고 중지시키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가령 금욕에 대한 강제를 통해서라면 더 강력한 욕망의 추구나, 반대로 아무 것도 욕망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손쉽게 초래될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유혹이 필요하다. 이 책에 따르면 유혹은 이쪽이 훨씬 기분이 좋아라고 말하는 육체의 언어와도 같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하지마, 같은 금지가 아니라 계속 하되 같은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한 번쯤은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일이 유혹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소비 행태가 변화한다면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의 일상에 스르르 유혹을 느끼는 방식으로부터 가능할 것이다.

   덧붙여, 언제나 유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를 전제로 해서만 발생한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소비사회라는 명명이 더욱 부정적인 이유는, 그 속에서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래만이 중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를 향한 욕망의 흐름 혹은 성질을 살짝만 바꾼다면, 오래 잊고 있었고 되찾으려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인간성을 다시금 회복할 계기 또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들려준 경험 중에 인상 깊은 것을 꼽자면,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친밀한 인맥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은 채 땅을 빌려주고 일손을 보태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그처럼 몸소 농사를 지음으로써만 알 수 있는 귀중한 사실이다. 또한, 저자는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것이 농사에 대한 온갖 잡다한 지식이 매끈하게 정리된 현대식 자료들이 아니라 선대의 지혜라는 점을 몸소 깨닫기도 한다. 지혜는 부모와 이웃 어른들이 그들의 삶에서 터득한 것들을 다시 후대의 피부로 물려주는 과정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몸소 서로에게 내어주는 마음, 그 교류의 장에서 이뤄지는 소비가 바로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더 없이 즐거운 소비일 것이다.

 

 

스스로 생산하는 행복

 

   말하자면 소비는, 써서 사라지게 하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쓸 수 있을 만큼 써서 닳아 없어지더라도, 그러한 소비 행위 속에서 소비되는 것의 가치는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비의 대상이 단지 물질일 뿐이라는 그릇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소비할 대상을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생산력에 동원되는 정신적인 가치들을 소비해 보는 일에서 알 수 있다. 교육이 아니라 유혹을 통로 삼아 전수되는 정신적인 것 내지 문화적인 것은 생각하고 느끼는 지혜를 동원하고, 그 지혜란 앞서 말했듯 소비되지 않는 소비재, 즉 쓰면 쓸수록 풍부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능동적으로 즐겁게 소비하는 일은,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즐거움을 생산하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제 3의 물결』의 앨빈 토플러가 썼던 프로슈머라는 말을 거듭 강조한다. 프로슈머는 프로듀서(Producer)와 컨슈머(Consumer)의 복합어인데, 토플러는 노동하지 않는 시간 동안 시장경제에서 벗어난 생산 활동도 겸하는 소비자의 존재 방식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니까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통해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 생산 활동에 매진하는 일이야말로 프로슈머의 소비 방식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것은 이 시대의 고질병이라 할 노사 갈등을 해소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만하다. 다수가 똑같이 적게 일하고 임금을 나누어 가진다면, 단시간의 집중력으로 인해 생산의 효율도 높아질뿐더러, 노동자 개개인의 임금은 줄어들지 몰라도 늘어난 여가시간 만큼 각자의 삶의 질이나 행복의 정도는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소득의 증가가 아니라 노동시간 외의 여유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좀 더 강력한 소비욕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에 진열된 수많은 상품들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감과 행복에 대한 소비를 갈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만족감과 행복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갖기 위해서 안달인 물건의 가격표가 아니라, 자기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 포기한 물질과 편리의 항목에 새겨진 값만큼 만족감과 행복이 생겨날 것이다. 당장의 작은 불편을 감수할 때 우리가 배불리 소비할 행복이 우리의 삶에 무성하게 자라날 것이라는 전망은 그저 단순한 긍정이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래된 스웨터를 입는다. 스웨터를 떠주신 외할머니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의 사랑과 정성은 낡은 스웨터에도 여전한 봄빛으로, 더한 따사로움으로 깃들어 있다. 스웨터를 짓는 일, 선물하는 일, 그것을 기억처럼 오래 입는 일과 같은 소비가 절실한 때이다. 그런 소비는 정성껏 우리의 삶을 짓는 일이고, 그 삶을 더없이 행복하고 소중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즐거운 불편』, 김경인 옮김, 달팽이(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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