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4.10 20:06

 

 

 

 

 

초록색 엄지(Green Thumb)와 몽상의 정치

-게릴라 가드닝, 화차(火車)에서 화차(花車)-

 

 

강지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국문과 박사과정)

 

 

혁명을 꿈꾼다면 문제의 핵심은 다시 공간

 

   처음 페이스북의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포스퀘어(Foursquare)’였다. ‘위치기반 소셜미디어 서비스(SNS)’ 포스퀘어는 지도에 자신의 위치를 체크인(check-in)하여 공유하는 서비스다. 체크인으로 자신이 다닌 곳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점수나 뱃지, 시장직 등의 보상을 획득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 구글 맵을 거부하고 오픈스트리트 맵을 택하면서 다시 화제가 된 포스퀘어의 사용자는 전세계적으로 500만 명에 이른다. 왜 사람들은 물리적 제약이 극복된 가상공간에 실제 현실공간의 위치를 상세히 기입하는 것일까. 아마도 포스퀘어를 사용하는 이면에는 자기과시욕이 포함된 자기표현욕구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학계의 연구 흐름을 보아도 공간이라는 주제는 다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정보기술과 커뮤니케이션기술이 공간 극복에 기여하면서 사회학에서 공간의 중요성은 자연스럽게 축소되었었다. 장 보드리야르, 지그문트 바우만, 니클라스 루만, 폴 비릴리오 등 이미 많은 학자들이 시간 범주로 대체되어버린 공간에 대해 작별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마르크스 슈뢰르는 최근『 공간, 장소, 경계』에서 공간의 하찮음에 대한 명제는 언제나 경제적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나오는 소리이며, 정치적인 맥락이 문제가 될 때면 언제나 공간결합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성의 재영토화는 새로운 정치적 공간의 발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작년 가을에 벌어졌던 월가 시위의 구호가 “Occupy Wall Street”였음을 떠올려 본다면, 정치는 아고라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국소화와 장소 고정화, 따라서 점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포스퀘어에서 장소의 점유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확장시키면 이는 사실 거리의 점거를 통해 정치적 투쟁을 관철시키려는 노력과 상당부분 맞닿아 있다.

   리처드 레이놀즈의『게릴라 가드닝은 이 시대에 혁명을 꿈꾼다면 문제의 핵심은 다시 공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책이다. 게릴라 가드닝이란 간단히 말해 남의 땅을 불법으로 꽃밭으로 가꾸는 것이다. 황량한 땅뙈기, 지루한 느낌의 거리, 버려진 틈새 등의 공간은 대신 을 든 게릴라 가드너들에 의해 꽃밭으로 바뀐다. 머리에 꽃을 꼽은 채, 진압 일보 직전인 군인의 총구에 꽃을 꽂아주고 있는 흑백 사진을 기억하는가. 1960년대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를 주동했던 히피들이 바로 이 게릴라 가드너들의 선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분노하기보다는 끝까지 낭만성을 견지함으로써, 현실을 파괴하거나 사라지게 하는 대신 감추어져 있던 비밀스러운 구석들이 햇빛 속에 얼굴을 들어 다른 현실을 발명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화사하며 향기로운 혁명은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김수영, 거대한 뿌리) 아는 이들에게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부러 순진한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텃밭 곳곳에서 피어나는 꽃을 통한 혁명이란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지만,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아름답게 추상화시켜버림으로써 급변하는 현실과 정면으로 분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오히려 차단시켜 버리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단어 아래 큰 틀이나 전체의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거시 정치적 기획은 필연적으로 지금 현실에서 숨 쉬고 느끼고 교감하는 모든 행위 양식과 변혁을 분리시키지는 않는가.

 

화차(火車)에서 화차(花車)

 

   한때 디자인 서울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부지런히 리모델링되던 우리의 도시는 어떻게 혁명과 만날 수 있을까. 강남 일대와 수도권 신도시를 근거지로 삼아 흉물스럽게 솟아오른 아파트들은 집을 편안한 주거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실거래가와 분양가의 차액을 통한 투기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대학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학교 앞 상권뿐만 아니라 캠퍼스 내부까지 온갖 음식 관련 프랜차이즈들과 고급 커피 전문점들이 침투해 들어온 지 이미 한참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강남역, 신사동, 신촌, 홍대, 이태원, 대학로 등 고도로 상업화 되거나, 이로부터 누락되어 재개발 지역으로 분리된 채 급격하게 슬럼화 되어가는 중이다. 이렇게 도시 공간이 상업화되거나 슬럼화되는 양극단 속에서, 자투리땅을 꽃밭으로 바꿔놓는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작업은 도시에 일종의 여백을 기입하는 일이 된다. 벤야민이 20세기 파리에서 산책자라는 인물 유형을 발견했을 때, 산책자의 무위(無爲)는 발달한 도시의 분업에 반대하는 하나의 시위라는 점에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다. 자연은 노동으로 생산되거나 소비되지 않고 오직 존재한다는 점에서 상품가치와 전시가치에 쉬이 동원되지 않는다. 도시 일상이 권력과 대기업의 손아귀에 놓여 상품화된 스펙터클을 생산하고 있는 가운데, 구석구석의 무용한 곳을 화단이나 텃밭으로 가꾸는 일은 우리의 꿈이나 욕망 혹은 판타지를 생산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공간적 변이를 도입하는 일이 된다.

   레이놀즈는 게릴라 가드닝이 도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REBAR’라는 예술창작집단은 도시 중심부 공공용지 가운데 70%가 개인이 소유한 자동차에 점령당해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주차장(parking space) 하나에 잔디를 깔고 나무를 세우고 얕은 울타리와 우아한 벤치를 설치해서 몇 시간 동안이나마 공원(park)으로 바꾸어 놓는 게릴라 가드닝을 행했다. 어떤 장난기 가득한 게릴라 가드너들은 생명력 강한 담쟁이라던가 느릅나무, 덤불과 같은 식물을 이용해 옥외광고판을 뒤덮어버림으로써 자본이 유발하는 시각 공해를 일시적으로나마 차단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드닝 작업들이 게릴라라는 말과 연계되는 이유는 가드닝한 곳이 합법적인 공원으로 발전되지 않는 한, 그들이 심어놓은 식물들은 결국 제거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아무도 명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도시 곳곳에 던져지고 심어지는 씨앗과 식물 폭탄들로 인해, 가열하게 생산과 소비를 추동해나가는 자본주의는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순간 신자유주의에서 피비린내 나도록 굴러가고 있는 화차(火車)는 화차(花車)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화분에서 선명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게릴라 가드닝은 전 세계를 아우르면서 단일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싸우는 하나의 통일된 운동이 아니라 수많은 자발적 조직들의 개별 활동이다. 이들은 공식적인 정치체를 형성하는 대신 비밀스러운 시간에 텃밭에서 흙투성이가 되기를 반복하며, 그 속에서 가능한 다른 세상을 모색한다. 이는 비범한 인물들이 사자후를 내뿜으며 선동하고 나아가는 정치가 아니라 사소한 문제에 매달리고 모호한 아름다움에 반하는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들의 몽상의 정치. 여기에 깃드는 아름다움과 유희성은 괴물과 싸우는 동안에 괴물을 닮아가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어막이다.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문(1924)을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산다는 것과 살기를 그친다는 것, 그것은 상상의 해결책이다. 삶은 다른 곳에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세계가 인간의 생각에 따라야지 생각이 세상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실주의 또는 현실주의가 현실의 무거운 조건들을 파헤칠 때,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해냄으로써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하려 했다. 그들의 무기는 오브제나 낱말들, 그리고 이를 의외의 방식으로 배열할 줄 아는 상상력이었다. 게릴라 가드닝은 원예에 재능 있는 초록색 엄지(Green Thumb)’를 가진 이들이 작은 삽과 씨앗, 모종을 무기로 각박하지 않은 또 다른 도시를 상상하며 행하는 이 시대의 초현실주의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비루한 삶을 끝장내야 할 이유를 계속해서 발견하면서도 동시에 삶에 집착하며 현실의 초극을 꿈꾸는 마음이 있다. 언제나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낮고 보잘것없는 것들임을 우리는 안다. 이 삶에 대한 믿음이 망가지면, 다시 저 삶에 대한 믿음을 가동하면 된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화분에서 선명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우리 눈앞에 다른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당신의 덤덤한 일상에도 부디 몽상을 허하라.

 

tip:『게릴라 가드닝』2부는 게릴라를 위한 활동 가이드로 이루어져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식물부터 저항력이 강한 식물, 생산력이 있는 식물 등을 자세히 소개해주는 데 이어 가드닝 도구, 가드너의 전투복, 작전 시간에 이르기까지 게릴라 가드닝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켜주는 지침들로 가득하다. 죽어가는 식물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해지지 않도록, 연구뿐만 아니라 온갖 잡무와 알바에 시달리는 대학원생들을 위해 여기서는 저항력이 강한 식물들을 살짝 언급할까 한다. ‘돌나물’, ‘안개꽃’, ‘눈꽃’, ‘헤베는 모두 가뭄에 강한 식물이며, ‘감자’, ‘근대’, ‘양파는 방치해도 잘 자라는 데다 먹을 수도 있는 생산적인 식물이다. 꼭 먹을 만큼 재배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독고진이 구애정을 생각하며 키우던 감자나,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진희가 진상이이라 부르며 키웠던 낑깡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기억하며 책상 위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도 좋겠다.

 

 

리처드 레이놀즈 지음,『게릴라 가드닝』, 여성훈 옮김, 들녘(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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