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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21호]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성과와 한계, 어떻게 볼 것인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성과와 한계, 어떻게 볼 것인가?

 

신희영*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 (Occupy Wall Street; 이하 점거 운동’)만큼 미국 사회에서 화제를 불러모으며 지속되고 있는 운동도 드물다. 게다가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이 점거 운동만큼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다수의 미국인들의 일상사에 깊이 파고든 사회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 이와 같은 점거 운동이 일어난 것일까? 이 운동이 그렇게 확산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이 점거 운동은 어떻게 될 것인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기원과 전개 양상

이 점거 운동이 처음 촉발된 데에는 캐나다 밴쿠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애드버스터 (Adbusters)라는 진보적 성향의 시민 운동 단체의 역할이 컸다. 이 운동이 전개되기 이전인 2011년 여름 미국의 정가는 미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 감축과 부채 한도 조정 문제를 둘러싼 민주-공화 양 당의 논쟁에 좌우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애드버스터에 관여하고 있던 한 칼럼니스트가 블로그를 통해 미 연방정부의 예산 감축을 위한 특별 예산 위원회의 사무국 직원들 90 퍼센트 이상이 과거 월스트리트의 거대 금융 기업들 소속 로비스트들이었다고 고발했다. 만약 일반 시민들이 나서서 제 목소리를 내고 싸우지 않는다면, 예산 감축에 관한 논의가 불가피하게 소수(1%)를 위해 압도적인 다수(99%)의 이익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 약 20여 명의 젊은이들이 주코티 공원에 모여 텐트를 치고 노숙하면서 금융 위기를 발생시킨 거대 금융 기업들의 본사 앞으로 거리 행진을 벌이는 일들이 생겨났다. 바로 점거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도 뉴욕 시청 앞에서는 연일 시 정부의 긴축 예산 편성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회 운동들도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주도했던 초기 참가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점거 운동 선언문을 통해 자국 정부의 긴축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스페인 청년들이 벌이고 있던 공원 노숙 투쟁, 그리고 이집트 티히르 스퀘어 등지에서 벌어진 아랍권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 등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국내외의 주요 사건들을 모태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이후 급속하게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105일 전후에 점거 운동가들이 각계의 사회 운동 단체들과 연대하여 뉴욕시 전역에서 대대적인 거리 시위를 벌이는 데 성공하면서, 점거 운동은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로 파급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점거 운동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침체기를 맞고 있었던 미국의 전통적인 사회 운동, 특히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 점거 운동가들은 미국 금융 위기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거대 독점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서 노동 조합이나 지역 공동체가 운영하고 있는 소규모 협동 조합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또한 그들은 뉴욕시에 소재한 사립대학교 학생들과 연대하여 미국 고등 교육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과도한 학자금 부채 탕감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점거 운동가들은 기성의 노동 운동 단체는 물론 지역 운동 단체들과도 연대해서 지난 해 말 중요한 노동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던 대량 해고 문제(버라이존이라는 거대 통신 회사가 기술직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시킨 사안)를 회사로 하여금 철회하도록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뉴욕 시장과 경찰이 주코티 공원의 점거 운동 시설을 강제로 철거하여, 상징적인 점거 근거지를 잃은 뒤에도 점거 운동가들은 각종 실행 위원회별로 모여 앞으로 어떻게 이 운동을 이끌어 갈 것인가를 꾸준히 논의해왔다. 그리고 뉴욕의 긴 겨울이 끝나자마자 점거 운동가들은 예상밖의 새로운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거대 독점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그리고 불법적으로 집행해왔던 주택 차압 및 가압류에 저항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었다. 점거 운동가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정부로 하여금 대책을 만들라고 촉구하면서 가압류된 빈 집을 점거하여 불법적으로거주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그들 가운데 일부는 거대 은행 주주 총회장 안팎에서 은행 최고경영자들이 제안한 연봉과 성과급 인상안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소액주주들은 물론 기관투자가들과도 연대를 해 그 파급력을 높여나가고 있는 상태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조직 체계와 내부 동학

한두 차례의 집회나 캠페인을 벌이다가 조만간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벗어나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처럼 영향력 있는 발언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과 관련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을 열거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단일한 지도부나 견고한 핵심 역량이 없이 참여자들 모두가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며 행동에 옮기는, 따라서 대단히 유연한 행동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한두 명의 우두머리를 잡아가두거나 집요하게 탄압을 하면 금방 사라져버리는 전통적인 노동 운동 또는 학생 운동들에 비해 훨씬 더 유연하게 외부의 압력과 탄압에 대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다음으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단일한 지도 체계나 위에서 아래로 내리먹여지는 의사 결정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도 중요한 조직 운동적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점거 운동 안에는 수십 여 개의 실행 위원회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실행 위원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내부에 다시 수많은 내부 소모임을 만들면서 분화했다가 다시 어느 순간 거대한 한 집단으로 모이기도 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분기했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수많은 내부 실행 위원회들과 그 내부의 소모임들의 존재가 점거 운동이 각지로 확산되고, 그러면서도 또 공동의 실천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미국 각지의 점거 운동들은 내외부의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한데 모으고 반영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의 다양한 채널들을 유지하고 있다. 기존의 점거 운동에 동조하거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점거 운동을 조직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공간과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필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연락처를 주고받는 등의 활동을 벌이는 것은 점거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일상사이다. 이와 더불어 점거 운동에 동조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고 글로 쓰고 공유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 것도 매우 인상적인 장면들 가운데 하나다.

 

 

                            미국 시민들이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패러디한 '배드 포 아메리카'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성과와 한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까지 전개된 점거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점거 운동이 처음부터 어떤 단일한 목표를 내걸고 진행된 운동이었다면, 이 운동은 아직까지 아무런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운동은 실패한 운동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운동은 여러 석학들이 잘 관찰한 것처럼 지금까지 성공적이었고, 앞으로도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성장해 나갈 운동이다.

월러스틴과 촘스키는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미국 사회 전반의 논의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지극히 성공적인 운동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 점거 운동만큼, 미국발 금융 위기가 터지고 지금까지 세계 경제 전체를 이중 경기 침체(double dip recession)의 위험 속에 빠뜨린 당사자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과거의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운동은 없었다. 이 운동만큼 일반 노동자들의 127배에 달하는 보수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사회적 책임도 다하지 않는 금융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 - 이익은 사유화하되 비용은 철저하게 사회화시키는 바로 그 정치경제 엘리트들에 맞서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웅변해 준 사회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점거 운동만큼 월 스트리트 (Wall Street; 금융 자본)를 개혁하여 메인 스트리트 (Main Street; 중소 산업 자본과 노동자들)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금융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제2, 3의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준 운동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교육적 효과, 애초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처음 기획하고 전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한 참가자가 했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점거 운동이 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야기한 심리적 단절 (psychic break)’ 효과는 지금도 계속해서 미국의 시민 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신희영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정치학 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신사회과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경제학 석사, 박사). 현재 뉴욕시 소재 재정정책연구소(Fiscal Policy Institute)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