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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28호]캄보디아와의 짧은 첫 만남

 

여행에 앞선 투덜거림

여행이란 무엇인가? 정적인 일상을 동적인 일탈로 바꾸려는 시도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조금 더 밀고가면 여행은 그저 허망한 일에 불과하게 된다. 이 지구를 포위한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어딘들 다른 곳이 있단 말인지. 그대가 지구의 끝으로 달아난들 해도 자본주의의 바깥은 없다. 이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 어딘가에 있다는 발상은 그래서 가련하다. ‘문명문화의 오지를 보여준다는 TV 프로그램들은 세속의 일상에 지친 시청자들의 낭만적 기대에 슬그머니 기생해서 존속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와 다른, 자유로운 삶의 ()문법을 지닌 이국땅. 이국의 풍경이 유혹하는 여행에의 기대감. 오지와 이국의 존재는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예감이 아니라 여행을 끝내고 또 다시 전혀 변하지 않는 일상을 하릴없이 회전시켜야 하는 슬픈 체념을 맛보게 한다. 그러건 말건, 시인됨을 연기하는 시인(?)들이 쓴, 견딜 수 없이 감상적인 여행기들은 장삼이사들의 애절한 낭만에 근거해 시장에서 부지런히 교환되고 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여행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고 감상과 낭만이 열에 들떠 있을수록 그 장면은 내게 더욱 더 슬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렇게 나 또한 여행에 대한 냉소를 여행에 대한 너무도 진부한 낭만적인 설렘의 알리바이로 써먹고 있는 것이다.

 

2014, 노동자들의 킬링필드

여행에 대한 그런 애증의 심리를 두고 골똘히, 그리고 멍청하게 시간을 때우면서, 캄보디아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상념 속에서 유영하다가 캄보디아에 대한 거의 전무한 지식을 떠올리면서 현지 상황에 대해 궁금해졌다. ‘캄보디아를 검색하고 얻은 언론들의 기사 내용은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캄보디아는 봉제 산업이 수출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한다. 봉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들인데 그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월급을 80달러에서 160달러로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80달러로는 한 달을 살아가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다. 봉제 노동자들이 노동쟁의에 나서자 프놈펜에 위치한 한미 합작 봉제 회사인 약진통상에서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캄보디아 외교부가 아니라 군 당국에 직접 보호를 요청했다. 공수부대가 출동했고 쇠파이프와 칼, 전기곤봉과 소총이 사용됐다고 한다. 그런 폭력 진압 탓에 공식적으로 5명의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분명 더 많은 다른 노동자들도 크게 다쳤을 터다. 그때 군인 또는 경비 용역의 어깨에는 태극 마크가 붙어 있었다. 한편, 한국 대사관에서는 군사 개입 사실을 자랑스레 드러낸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금세 삭제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1달러를 달라”, 캄보디아의 첫 표정

기대와 우려 속에, 나는 캄보디아로 향했다. 시엠립 공항에 내리자 계절은 뒤바뀌어 있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더운 여름에 추운 나라로 여행가는, 계절을 거스르는 여행은 애써 여행에 냉소적인 척하는 내게도 무척 유쾌한 일이었다. 캄보디아는 건기라 했지만 내 몸속의 감각 시계는 여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둑한 새벽의 여름 공기는 신선했다. 이국땅의 낯선 내음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

유쾌한 첫 발걸음은 금세 당혹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공항에서 비자를 만들고 입국 수속을 하는데 공항 직원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의도적으로 일을 늦췄다. 그리고는 분명한 한국어 발음으로 빨리빨리, 1달러!”라고 말했다. 비자 발급과 입국 수속을 빨리 처리해주는 대신 1달러를 달라고 요구했다. 어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모두가 1달러를 꺼내기도 했고, 공항 직원의 그런 행태에 불만을 표출한 사람들은 맨 뒷줄로 밀려나기도 했다.

나는 비자 발급 직원이 웃돈을 요구하는 것에 응하지 않아 비자 발급이 조금 늦어졌다. 마지막으로 입국 수속을 하는 직원 역시 1달러를 요구했는데 이번에도 나는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지문을 채취한다 어쩐다 하면서 입국 처리를 티 나게 늦장 부렸다. 입국 허락이 떨어지고 공항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녀석에게 욕설을 날려주었다. 그러면서도 괘씸한 놈에게 시원하게 엿을 먹였다는 생각과 함께 놈이 따라와 무슨 행정 보복이나 하지나 않을까 소심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공항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 불쾌한 에피소드가 어서 마음속에서 기억 속에서 가라앉기를 빌었다.

, 이곳은 말 그대로 후진국이로구나.’ 이 장면을 뒤로 하고, 나는 후진국에서 또 다른 후진국으로 오게 되었다. 공항 직원부터 여행자에게 웃돈을 요구하다니, 상상하지 못할 광경을 현실에서 대면하고, 말하자면 나는 뺨맞은 느낌이었다. 면사무소 서기에게도 늘 천대 당하고 뒷돈이 없으면 어디에서든 고달팠던 기억을 갖고 살던 어른들의 옛이야기가 이곳에서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것. 십 몇 년 전, 캄보디아에서는, 쿠데타 한 달 직후인 터라 경찰이건 군인이건 길거리의 외국인들에게 이유 없이 돈을 요구했다고 하니 공항에서만웃돈을 요구하는 지금의 캄보디아는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랐다. 그때 캄보디아를 여행했던 여행가 이지상 씨는 그의 여행기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에서 캄보디아 깡패들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 나라는 정부 자체가 깡패라고 지적했다. 그 말은 결코 캄보디아를 얕잡아서 함부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 지극히 냉엄하고 타당한 논평이었다.

웃돈을 요구하는 관행조차 한국인들이 빨리빨리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어서 그들에게 웃돈을 주면서 생기게 되었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물론, 바보가 아닌 이상 근거 없는 그런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캄보디아의 유일 야당 대표인 삼랭시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서 캄보디아 공무원들의 한 달 월급이 100달러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은 캄보디아의 부패한 공무원, 군인, 기업가 들을 뇌물로 구워삶는데, 삼랭시는 그 돈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인들이 캄보디아의 사회악을 만들어냈다고 믿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캄보디아의 사회 부패와 구조적 모순에 편승하지 않는 길을 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가의 나라, 해질녘의 앙코르와트

씨엠립 공항에 내려서 캄보디아에서 ‘1달러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나가이미지였다. 나가는 크메르인의 신화에 나오는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왕이다. 힌두교 신화에서도 천 개의 머리를 가진 뱀 셰샤는 가장 위대한 나가이며, 바수키라는 나가의 왕도 등장한다. 뱀은 크메르인들에게 중요한 토템인 모양이다. 씨엠립 어디를 가든 이 나가의 이미지를 볼 수가 있다. 교각에도, 건축물에도, 신전에도 나가는 위엄을 자랑하며 일곱 개의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앙코르 문명은 캄보디아를 상징하며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이룬다. 이때 앙코르라는 말도 나가라라는 말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나가라는 말은 수도라는 뜻 이외에도 뱀이 살고 있는 용궁이라는 뜻으로도 풀이된다고 하니, 이 앙코르의 나라는 나가의 나라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는 셈이다.

내가 인식하고 그 유래를 아는 이 땅의 고유한 민족적 기호들이 많지 않아서겠지만, 며칠간의 여행에서 너무도 획일(?)적일 정도로 나가의 이미지와 많이 만났다. 캄보디아에 머물면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후배의 말에 따르면, 이 나라의 전통도 만들어진 것들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 고유의 전통이자 민속 상징이라고 하는 문화와 거의 무관하게, 그리고 무지한 상태로 살아가듯 이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도 그들의 전통과 단절되어 살아갈 것이다. 다만, 나가와 앙코르와트처럼 거의 기술 복제적인 방식으로 유포된 상징 이미지들 몇몇과 함께 더불어 그들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우물 속의 개구리가 스스로 멋진 생각을 해냈다고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제멋대로 추측을 해대고 있었다. 앙코르와트 인근의 (관광) 도시인 씨엠립에 머물기 때문에 유독 나가의 이미지와 앙코르라는 고유명사를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캄보디아인들이 전통을 발명하려 했을 때, 그들은 외부의 시선에 응답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앙코르와트처럼 외부의 열광적인 반응이 있었던 것들에 최우선적으로 주목했을 테다. 앙코르와트 등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체화해나가는 것은 상업적으로도 유용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이야말로 외부자의 협소한 상상력일까.

그것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도 마찬가지일 터다. 러시아의 문학평론가인 미하일 M. 바흐찐은 나를 타자에게 드러냄으로써만, 타자를 통하고 타자의 도움에 의해서만 나는 나 자신을 인식하고 나 자신이 된다.”고 했다.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만 종속된 인간이야말로 가장 비난받는 인간 유형이다. 하지만, 인간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근본적으로 타인 지향의 존재이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과 타인과의 대화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 속에서

앙코르와트와 그 외 여러 앙코르 유적군들을 둘러보면서 그 놀라운 건축물과 조각들에 경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캄보디아의 미술품을 빼돌리려다가 걸린 소설가 앙드레 말로의 탐욕이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한편, 제대로 보존되고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문화유산을 보면서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다. 농담 삼아 말하자면, 캄보디아에서는 발에 차이는 것이 바위가 아니라 유적일 정도였다. 실제로 앙코르 유적군에서 숲길을 걸어가다가 유적들이 자주 발에 차였다. 신전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허물어져 내린 석조 건축물의 일부가 굴러다니거나 흙속에 박혀 있었다. 이 과거의 압도적인 유산을 제대로 복원하고 유지할 만한 여력이 현재의 그들에게는 없어 보였다.

눈앞에 현전하는 앙코르와트만큼이나 앙코르와트에 대한 학자들의 숱한 추측과 가설들도 흥미롭다. 그들은 저 아름답고 신비로운 건축물을 앞에 두고 수수께끼를 풀고 있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학문과 상상의 영역에서조차 앙코르와트는 주로 외국 학자들의 의해 풀이되고 재창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너져 내린 과거의 찬란한 유적들은 현재의 캄보디아를 가리키고 있는 듯 했다. 선조들의 위대한 유산앞에서 그들은 더욱 초라해보였다. 킬링필드와 가난의 이미지가 캄보디아의 현재를 보여주는 지독한 스테레오타입 이미지라면, 앙코르와트는 찬란했던 그들의 고대 문명과 캄보디아의 영광이다. 그 둘은 격렬한 대조 속에서 영광과 비참을 서로 드라마틱하게 부각시키기도 하고 또 서로를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누군가의 여행이 단순한 관광이 아닐지라도 실제의 공간 이동이 아닌 마음의 여행보다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캄보디아를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동해본 일이 있는가? 캄보디아와의 짧은, 첫 만남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최초의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캄보디아를 향한 내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