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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6호] 원래부터 ‘그들’의 문화였던 문화는 존재하는가? : 탈식민적 관점에서 본 다문화적 관점

 

 

원래부터 그들의 문화였던 문화는 존재하는가? : 탈식민적 관점에서 본 다문화적 관점

 

 

민가영 /서울여대 교양학부 교수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다문화적 관점은 뭘까요?” 이 질문에 대해 가장 많은 대답을 차지하는 것은 다음의 대답이다.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요.” 원래부터 그들의 문화였던 문화가 존재할까? 본 글은 이 질문을 검토하고자 한다.

 

다문화적 접근은 각 국가, 인종, 민족, 지역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며 이에 대한 존중을 기본 정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 관점의 기본 전제인 문화 간의 차이가 바로 문화 제국주의라는 기본 전제에서 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화 제국주의는 문화 간 차이가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문명화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화 간 차이들의 위계를 구성하고 이를 국가 간 지배를 정당화 하는 논리로 사용해 왔다. 탈식민주의적 관점은 문화 제국주의의 전제가 되는 문화 간 차이는 주어진 것,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권력의 작동방식에 의해 구성된 것임을 주장하고 역사적 사실을 통해 입증해 왔다.( Mohanty, 2003; Narayan, 1997; Harding, 2007) 모더니티가 작동한 방식은 자신과 대립되는 타자를 창출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했고 따라서 모더니티의 작동 역사는 중심국에 의해 주변국의 문화가 타자로 발명되고 정의되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더니티는 관계적으로서만 작동가능하기 때문에 서구의 모더니티 작동은 비서구를 타자로, 과거로, 전통으로 발명하는 과정을 통해 작동해 왔다. 그리고 자신이 진입하고자 하는 사회의 문화적 환경을 연결고리로 삼아서 서구의 문명, 과학기술은 자신이 통합/지배하고자 하는 비서구 사회에 이식될 수 있었다(Giddense,1990; Narayan, 1997; Philip, 2003; Prakash,1999).

 

문명이라는 개념이 전통이라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개념임을 상기할 때 문명화를 명분으로 제국의 지배와 동화가 이루어진 과정 속에서 제국이 자신을 문명으로 정의하는 것은 그와 대비되는 타자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해졌다. 문명화 과정은 어떤 것을 문명으로 정의하기 위해 그것이 결여된 가치와 실천을 피지배국의 특수하고 고유한 문화와 전통으로 고착화 시키는 과정을 수반했다. 이 과정은 피지배국의 다양한 가치와 실천을 삭제하고 특수한 가치와 실천을 보편화 시켜 문화와 전통으로 만드는 동질화의 과정을 통해 가능해졌다. 동시에 지배국내의 다양한 가치와 실천을 삭제하고 특수한 가치와 실천을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와 전통으로 재현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졌다. 또한 식민지배 과정에서 수반된 전통과 문화의 발명 과정은 일방적 과정이 아니었다. 제국과 피식민국 엘리트들 간의 상호 공모와 협동 과정을 통해 피지배국의 특수한 가치와 실천들이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전통으로 귀착되었다.

 

 

Narayan(1997;2000)은 인도의 식민지 시기에 인도 내부에 존재했던 특수한 집단의 가치와 실천들이 어떻게 인도 전체의 본질적인 전통 문화로 발명되는지를 추적하면서 이러한 과정이 서구의 일방적 과정이 아닌 서구와 비서구 엘리트 간의 공모적 과정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제국과 피식민지 엘리트간의 공모를 통해 형성된 인도의 전통 문화가 후에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수용되면서 인도 문화로 구축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시기 인도에서 사티(sati-과부순장제도)가 영국 제국과 인도 엘리트들과의 협동을 통해 극복되어야 할 전통이자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진 과정은 식민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문명 분업이 어떻게 직접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도학자 마니Mani콜로니얼 시기에 영국과 식민지 인도의 엘리트들 간의 협상과 협동 작업의 산물로서 사티가 어떻게 전통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시기 당시 사티는 다양한 힌두 커뮤니티에서도 소수의 커뮤니티에 의해 채택되었던 주변화 된 관습이었다. 영국은 이를 법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식민지배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는데 이 때 영국 내부에는 사티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인도 내부에 불러올 저항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영국 정부는 특정한 지식인 집단을 선택하여 사티가 광범위한 종교적 승인을 가진 관습인지 아닌 지를 조사하도록 지시하였다. 결국 영국은 사티에 대한 공식적 지식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인도 내부의 다양한 지식들 중 누구의 어떤 지식을 중심으로 만들고 주변으로 배치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결국 특정 일부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사티는 인도의 전통으로서 구성되었다. 이러한 협동과정은 인도 내부의 이질적인 힌두 전통을 단일한 것으로 본질화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티를 토착적 전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로 사티가 커뮤니티에 따라 다르게 행해지고 다르게 해석되는 다양한 측면들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사티는 힌두 커뮤니티는 물론 이거니와 인도 전역에 보편적으로 등장했던 관습이 아니었다. 매리 데일리Mary Daily는 사티가 상층여성에서 시작되어 다른 카스트로 보편적으로 확대되었다고 말하지만 사티는 특정 카스트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실천이었다. 인도 내의 다른 커뮤니티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실천이었다. 더구나 인도 내부에 다양한 그룹들 간에 이러한 사티에 대한 도전과 비판이 제기되었다는 점은 사티를 둘러싼 인도 내부의 합의되지 않은 이질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국과 인도 지식인들 간의 협조적 과정을 통해 사티에 대한 다양한 종교적 해석들 중 일부의 해석들이 채택되었고 사티를 둘러싼 다양한 학설들 중 특정 일부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사티는 인도의 전통으로서 구성되었다. 이렇게 발명된 전통은 사티를 둘러싼 인도 내부의 이질적 해석과 실천- 계급, 카스트, 종교, 지리적 위치에 따른 다양성-을 보지 못하게 만들며 사티는 인도 전체를 대표하는 보편적인 전통으로 고착화 된다.

 

이처럼 탈식민주의적 접근은 어떠한 한 국가의 특수한 가치, 실천 등을 그 국가에 특수한 문화, 전통으로 이름붙이는 과정 속에서 문화적 차이가 발명, 구성되어왔다고 본다. 그리고 특수한 가치, 실천이 어떠한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로 이름 붙여지는 과정은 국가 간의 위계 속에서 이루어진 국가횡단적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보이고 있다. 탈식민적 설명은 식민지배가 국가별 위계 속에서 문화적 차이를 발명하는 과정 속에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피지배국에 고유한 전통과 문화는 문명의 위계를 성립시키면서 지배국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 하는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문화적 차이를 자연스럽게 전제한 뒤 차이에 따른 인정과 관용을 추구하는 다문화적 관점은 문화적 차이를 구성한 민족/국가 간의 권력의 위계를 재생산하는 위험성을 지닌다. 따라서 차이를 인정하고자 하는 방법이 차이를 형성하고 위계적으로 만든 메커니즘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각 국가의 전통과 문화로 부착된 가치와 실천들에 대해 식민주의적 위계 속에서 국가횡단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 구성된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즉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기에 앞서 각기 다른 문화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재현된 집단 내부의 이질성을 드러내고 그것들이 선택, 삭제되는 과정이 범주를 가로질러 어떤 식으로 상호 연동되고 있는 지를 읽어내는 방법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