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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6호] 종교권력, 무엇이 문제인가?

 

 

종교권력, 무엇이 문제인가?

 

 

 

종교의 배타성을 타파하려는 노력은 현실에서 이벤트에 불과하다 사진출처_동아닷컴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종교와 종교성(宗敎性)

 

보편적 종교 개념의 정립은 쉽지 않다. 여러 종교를 가로지르는 유사성의 지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인간의 자기 이해가 출발점이다.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루덴스처럼 인간을 규정하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우리는 인간을 의미 지향적 존재로 정의한다. 인류의 문화와 역사란 의미존재인 인간이 스스로를 표현해 온 궤적인 것이다. 의미존재에 고유한 궁극적 관심을 인류가 특정한 문화적 문맥 속에서 실천해 온 양태가 바로 종교다(폴 틸리히). 이런 규정은 종교현상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을 넘어서 종교에 대한 탐구를 종교성에 대한 천착으로 진전시킬 수 있게 한다. 유신론과 무신론, 고등종교와 저급종교 등의 자의적 차이를 극복해 의미존재인 인간과 종교현상 사이의 불가분리성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 같은 궁극적 관심을 포기할 수 없는 한 모든 인간은 종교적이다. 전투적 무신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주장했던 마르크스주의조차 세속화된 종교와 공통점을 지닌다. 수많은 제도종교의 구체적 모습과, 의미 지향적 존재인 인간에 내재한 근원적 종교성이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인간의 의미지향성과 종교성은 상호 침투한다. 세속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종교의 재흥현상이 관찰되는 본질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갖는 종교성 때문이다. 세속화와 합리화가 증폭시킨 현대적 삶의 공허함속에서 궁극적 관심이 우리에게 엄습하는 것이다. 전통적 가치체계가 붕괴한 빈 터에 산업화의 물결이 폭풍처럼 밀어닥친 현대한국사회에서의 종교의 흥륭(興隆)은 그 극적인 사례다.

 

종교의 권력화와 종교성의 상실

 

의미존재의 개념은 문화사와 종교의 역사가 궤를 같이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인간존재의 유한성 가운데서도 죽음은 단언적인 무게로써 우리를 짓누른다. 삶의 일회성은 의미를 향한 몸부림을 그만큼 절박한 것으로 만든다. 의미지향성이 궁극적 관심이라는 형태로 조형되어 사회질서 내부로 편입될 때 제도종교가 출현한다. 대부분의 제도종교는 특정한 정치공동체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버팀목으로 오랫동안 기능해 왔다. 현대성이 추동한 세속화가 정교분리를 선포했지만 이런 버팀목 역할 자체가 사라지진 않는다. 국가종교로서의 유교의 역할은 과거의 일이지만 문화와 가치관의 지평에서 유교의 영향력은 소진되지 않았다. 구미의 경우에도 기독교는 의미와 정치적 실천의 강력한 준거 틀로 작동한다. 특정한 종교 안에서 작동하는 가치 체계와 준거 틀은 의미존재인 인간에 고유한 물음들에 대해 준비된 답변을 제공한다. 제도종교의 교리는 그런 물음과 답변의 정전화(正典化)인데, 이런 체계화는 그 종교를 승인한 정치공동체의 정신적 기반을 정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신정일치 체제에서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정교분리 상황에서도 느슨한 형태로 관철된다. 종교의 제도화가 공고해지는 것에 비례해서 궁극적 관심과 질문도 유형화된다. 궁극적 관심이 추동하는 존재론적 물음 자체가 정식화되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제도종교는 점차 현실권력의 하나로 자리 잡는다. 종교의식을 행하고 경전 해석을 독점하는 사제집단은 성스러움의 대변자로 부상하고 정치권력과 경쟁적 협력관계에 서면서 정체(政體)를 정당화하고 지배계층의 일원으로 자리를 굳힌다. 전통 시대 삶의 행로는 이런 제도종교의 틀 안에서 한계 지워진다. 그 틀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은 이단이나 사문난적(斯文亂賊)의 주홍글씨를 감수하거나 추방과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다. 모더니티와 세속화의 보편사적 의의는 이 한계를 부인하고 개인이 자발적으로 특정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선포했다는 데서 발견된다. 그러나 제도종교의 권력화는 인류 역사의 어느 시기에나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2차대전시 신권군주정(神權君主政)의 형태를 취한 천황제와 오늘날 북한의 주체사회주의는 사실상의 국가종교로서, 실체적 권력이 된 종교가 얼마나 퇴행적인지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역설적인 것은 종교의 권력화가 인간에 내재하는 종교성과 긴장관계에 서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종교가 현실권력이 될 때 종교를 출발시킨 종교적인 것에 대한 궁극적 관심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이는 제도화된 종교가 종교성을 상실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데서 극단에 이른다. 제도종교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갱신운동은 종교의 권력화를 시정하려는 자기 정화의 시도다. 이런 자발적 시도가 좌초할 경우 지배적 제도종교는 사회진화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하게 된다.

 

사회문제가 된 한국종교의 권력화

 

제도종교가 종교의 본원적 목적에 봉사하기는커녕 말썽을 일으킴으로써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는 매우 심각한 사태다. 급팽창한 한국의 제도종교는 한국전쟁과 산업화 이후 옛것은 사라졌지만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총체적 혼란 상황에서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마음의 습관의 진공 상태를 채우는 역할을 했다. 이는 개신교를 위시한 제도종교가 한국시민들의 궁극적 관심과 의미지향성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공에는 항상 명암이 공존한다. 사회문제화한 제도종교가 종교의 본질인 종교성을 위협할 만큼 우심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종교는 일대 위기에 봉착했다. 개신교 일부 대형교회에서 벌어지는 목회자 세습논란과 추악한 비리들, 그리고 성직자의 세금납부 여부 등에 대해 기독교공동체 안과 밖의 반응이 엇갈리는데, 이는 사회통념과 일부 개신교단의 자기 이해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201310월 현재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 싼 여러 추문은 불교 최대종단 내부의 상황이 현실정치 못지않게 어지럽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한국종교가 드러내는 병적 사회문제에는 기복주의, 시장논리에의 부역과 현세적 물신주의, 배타주의, 체제지향성과 정교유착, 지성주의 등이 있다. 한국적 심성의 기저에 깔려있는 무속의 영향력은 참으로 막대해 외래종교들은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예외 없이 무교와 접맥되어 기복적 특성을 보인다. 이런 기복주의가 천민자본주의적 시장논리와 연결되어 현세적 물질주의로 나타난다. 한국종교들이 드러내는 배타성과 독단성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한국종교 특유의 반지성주의와 결합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일반 속인들의 사회에서조차 상식이 되고 있는 합리성과 투명성이 신앙의 이름으로 거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복적 물질주의와 배타적 반지성주의는 체제지향성으로 표현되어 정교유착을 낳는다. 이는 대중민주주의가 난숙해지면서 거대 제도종교가 막강한 현실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서 절정에 도달한다. 사회문제화한 종교는 이제 거대권력의 하나가 되어 성역으로 자리를 굳힌다. 정치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조차 희화화되고 재벌총수도 실정법적 처벌에서 자유롭지 않건만 성역화한 거대 제도종교는 신앙의 자유를 앞 세워 거의 초법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종교가 우리 사회 최후의 성역이 되고 만 것이다.

 

 

사진출처_연합뉴스

 

무슨 종교인가?’에서 왜 종교인가?’

 

종교현상은 사회의 합리성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신앙의 미명아래 탈사회적 종교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 실천도 사회적 실천의 부분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동의 가능한 가치준거인 인권의 존엄성, 평화와 사랑, 연대와 연민, 자유, 평등, 민주주의, 개방성과 다원성에 대한 존중, 생태주의적 감수성 등을 상기할 수 있다. 현대의 종교는 이런 보편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어야 마땅하다. 종교는 국가와 시장의 논리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성찰적 시민사회를 확장시키는 데 봉사해야 한다.

종교성으로 이해된 종교, 그리고 의미지향성과 궁극적 관심으로 정향된 종교는 모든 종류의 권력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둔다. 이는 종교권력의 등장이, 종교성의 진작이라는 종교 본원의 목표에 비추어 비판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종교적인 것의 존재이유는 줄어들지 않는다.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인간이 있는 한 종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궁극적 관심이 촉발시킨 문제 앞에서 해답을 궁구(窮究)하는 의미존재라는 뜻에서의 종교적 인간이다. 종교적 인간은 무슨 종교인가?’라는 질문 대신 왜 지금 여기서 종교인가?’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