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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8호] 잔혹한 낙관주의 – 학문후속세대 담론 비판

  • 잔혹한 낙관주의 학문후속세대 담론 비판

 

 

 

 

 

 

출처: 프린스턴 대학 홈페이지


 

정민우_한국구술사연구소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위기가 있다면, 우리 시대의 위기 가운데 하나로 대학의 위기를 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국민적 쟁점으로 부상한 반값 등록금 의제는 개인화된 고등교육비 부담에 직면한 이른바 88만원 세대 대학생들의 고통이, 등록금과 교육 인건비에서 취한 이윤을 교육의 질 향상이 아닌 영리 사업으로 돌려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대학의 기업화와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촉발된 2011년 카이스트 사태의 핵심은 성적에 따른 차등화된 등록금 부담을 통해 경쟁 논리를 밀어붙인 대학운영에 놓여 있었다. 시장 가치와 경쟁 원리를 내세운 대학의 변화는 교육을 주관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 구조조정 방침과 맞물린다. 교수 연구업적과 학생 취업률 등의 수치를 기준으로 한 각종의 대학평가가 정부의 재정지원 및 대학의 상징적 지위와 연계되고, 낮은 평가를 받은 일명 부실 대학은 재정지원 제한은 물론 통폐합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2000년대 이후 급속화된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장려하는 편에서건 반대하는 편에서건 대학은 위기라는 긴급한 진단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위기진단과 각축하는 대안들은 대개 교과부와 대학, 그리고 교수를 그 주체로 상정하며 다른 대학 구성원들의 자리를 효과적으로 삭제한다.

나는 지식 장의 구조변동과 대학원생의 계보학, 1980-2012이라는 논문을 통해 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존재이나 비가시화된 주체로서 대학원생에 주목했다. 대학원생은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등록금을 지불하는 고등교육 소비자이나, 다른 한편 갖은 이름의 조교이자 간사, 연구보조원으로서 교수와 함께 연구 사업을 통해 대학 경쟁에 동원되는 하층의 지식생산자이다. 학계라는 비좁은 직업시장의 주변부에 자리한 산업 예비군이자 견습생으로서 이들은 지적 수련과 훈육을 통해 학문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새로운 전망을 밝힐 미래세대로 여겨진다. 요컨대 대학원생은 대학에서 만들어지는 지식의 소비자이자 생산자이며, 학문의 과거와 미래의 책임을 동시에 요청받는 가운데 현재를 살아가는 다중적, 잠정적, 과정적 존재이다. 까닭에 대학원생의 존재 조건은 진로모색을 통해 대학을 졸업하는 대학생이나 이미 대학에 안착한 교수들과 달리, 수련의 공간이자 향후 예비 직장으로서 대학의 변화에 보다 직결되어 있으며 또한 취약하다. 그러나 근래 대학의 위기라 일컬어진 일련의 변화가 대학원생에게 미친 영향은 학문적,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거나 논의되지 못했다. 이들은 간혹 전근대적 인권 침해의 피해자나 우울증을 앓는 집단으로 기사화되지만, 대다수의 대학원생은 침묵하며 오직 익명으로서만 한국의 대학원을 폭로와 고발이라는 형식을 통해 재현한다(예컨대 트위터 우골탑 옆 대나무숲계정).

대학원생에 관한 사회적 앎이 표피적이고 성긴 만큼이나 우리 사회는 대학 위기의 주요한 일부를 해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대학의 위기가 단지 대학 재정이나 운영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고등교육과 지식생산 제도의 위기를 일컫는 것이라면, 대학원생은 바로 그 지식생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경합하는 사회적 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의 고등교육 체제와 지식생산의 조건, 학문적 주체의 형성이라는 맥락 속에서 대학원생이라는 형상을 추적하고 재구성하면서, 무엇보다 2000년대 이후 대학 사회와 학문 세계의 구조적 변화들이 대학원생의 존재 조건을 어떻게 조형했으며 나아가 체계적으로 동원해 왔는지, 또한 그 사회적인 효과는 무엇인지를 인문사회과학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했다. 여기에서는 대학원생의 계보학(특히 4)의 주요 논의를 간략히 소개한다.

먼저, 나는 대학원생이 속한 보다 너른 지식 장의 재편 속에서 대학원생의 물질적, 상징적 지위 변화를 살피려 했다. 2000년대 이래 지식 장에서는 시대를 관통하는 구심적 이론도, 새로운 이론이나 발화형식을 매개로 한 신진세력의 부상도 포착되기 어려우며, 오히려 전통적 의미의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주장이 제출되어 공명을 얻었다. 정체되거나 짜부라든 지식 장의 현실은, 갓 지식 장에 발 디딘 대학원생에게 젊은 지적 주체로서 자유롭고 실험적이며 때로는 무모하게 발화할 수 있는 장소들의 소실로 경험된다. 1998년 도입된 이래 대부분의 학술매체를 포섭한 등재학술지 제도는 투고의 자격과 기준을 완고히 책정하면서 대학원생의 투고를 제한하기 시작했으며, 또한 등재지 외부의 학술단체와 학술지, 필자 군을 고사시킴으로써 대학원생들이 다양한 지적 기획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을 축소시켰다. 때문에 오늘날의 대학원생은 특정한 이론적 모색이나 정치사회적 실천과 관련해 범주화되지 않는다. 이들은 한편에서는 학문적 삶의 불안정성과 연루된 문화백수, ‘잉문학도라는 이름으로 자조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와 대학의 고용 및 재정지원 하에서 갖은 이름의 조교이자 간사, 연구보조원으로서 노동한다.

다음으로, 대학원생의 학문적, 사회적 삶을 규율, 관리하고 나아가 통치하는 제도로서 학진 체제의 부상을 추적한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 출범한 국가 연구지원 및 관리기관의 전신인 학술진흥재단은 대학 평가제도와 차등적 재정지원의 연계를 통해 대학 사회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효과적으로 집행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BK21 사업은 구심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1999년부터 2012년까지 2단계에 걸쳐, 3조 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해 온 BK21 사업은 학술연구를 수치화될 수 있는 목적과 과정, 산출을 갖는 사업으로 전환시켰고, 학술매체와 연구자의 연구업적을 데이터베이스화하면서 지식의 국가화, 시장화를 추동했다. 학진 체제 하의 모든 지적 주체는 재정지원과 체계적으로 연계된 대학 평가를 위해 논문 편수를 비롯한 숫자들을 경영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학진 체제는 지식이라는 상품의 생산 및 유통방식을 재구조화하는 조치들만이 아니라, 지식을 둘러싼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평가와 인정, 보상과 배분을 통해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의 몸과 마음을 규율, 관리하는 헤게모니적 기획이다. 학진 체제는 지적 주체를 그 자신의 지적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체제 외부의 지적 장을 포섭하거나 고사시킴으로써 지식 장에서 지적 주체의 생존 그 자체를 통치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학진 체제가 유포하고 재생산하는 대학원생에 관한 주된 담론 형식으로서 학문후속세대담론의 효과를 분석하고자 했다. BK21 사업을 비롯해 한국연구재단이 운영해 온 수십여 개의 연구용역 사업 가운데 대학원생에게 지급된 인건비 규모는 해당 사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적지 않은 대학원생의 학업과 생계를 뒷받침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학진 체제는 지적 주체로서 오늘날의 대학원생이 탄생한 모태이다. 학진 체제 하에서 대학원생을 명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름은 학문후속세대로, BK21 사업의 출범 이래 학진과 한국연구재단의 여러 지원정책들을 거치며 유사한 명사들을 제치고 일반화된 범주로 자리잡았다. 학문후속세대 담론은 대학원생을 지식의 주체가 아니라 지식생산을 관장하는 국가의 지원과 관리의 대상으로 이해하면서, 고등교육과 지식생산 기구로서 대학원 제도의 구축이라는 사회적 의제를 급증한 고학력 인구집단에 대한 통치라는 인구적 의제로 전이시켰다. 나아가 이는 지식 장 안팎의 인구를 특권적인 학문세대와 그 나머지 학문후속세대로 분할하면서, 후자에게 전자로의 희소한 진입을 후속이라는 이름으로 약속하며 이들을 국가화, 시장화된 학술사업에 다양한 비정규 고용형태를 통해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소모한다. 따라서 후속은 대학원생에게 일어난 이러한 심화된 모순, 그리고 대학의 위기를 감추기 위해 반복되는 잔혹한 낙관주의의 수사라 볼 수 있다.

오늘날의 대학원생들은 특정한 정치적 표식이나 문화적 코드가 아니라 학문후속세대라는 모호한 명사로서 뭉뚱그려진다. 과거 대학원생 주축 학술운동의 거름이 된 집합적인 도덕적 열정이나 인문사회과학의 토대로서 출판시장이나 대중독자가 해체되고 지식 공장으로 변한 대학에서, 국가와 기업에 납품되는 지식의 제조 공정을 새로운 보편으로 여기게 된 학진 체제의 대학원생은 이제 일련의 정치사회적 실천이나 이론적 모색이 아닌 생존 그 자체와 연관해서만 하나의 집단으로 묶여 이야기된다. 이들은 체제가 규범으로 권고하고 또 강제하는 생산성의 시간을 체현하며, 동시에 극소수에게만 주어질 후속이라는 약속과 그 그림자로서 파트타임의 시간을 곡예한다. 한편 이전 시대를 대학원생으로 살았으나 대학에 안정적으로 자리하지 못한 시간강사와 비정규 교수가 이 의아한 후속의 자리에 함께 초대된다는 점은 단지 직업시장으로서 학계의 수요와 공급의 일시적 불균형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후속을 산출하는 지식 장, 그리고 대학의 재생산 공식에 모순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대학은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미래의 지적 주체를 양성하는 제도이자 한 사회의 지식과 상상력의 조건을 마련하는 물적 기반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국가와 기업화된 대학의 복합체를 탄생시킨 학진 체제의 승리 아래 대학의 성격은 심대하게 변화했으며 그 구성원들의 학문적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학문후속세대라는 잔혹한 낙관주의의 수사의 후경에서 고통과 상실, 심지어 죽음을 짊어 진 대학원생의 현실을 톺아보며 대학의 위기를 달리 읽고자 했다. 고등교육과 지식생산, 인식과 생존이라는 삶의 전 영역에서 주변에 밀어붙여진 이 시대의 대학원생은 곧 우리 사회가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의 미래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서글프게 드러낸다. 대학원생이 한 사회의 지식의 미래를 투영하는 일종의 잠재태라면, 대학원생의 위기는 결국 대학의 위기 나아가 우리 사회 미래의 위기의 구심이다.

위기의 대안은 어디에 있는가? 미래는 어디에서부터 사유될 수 있는가? 간편한 정답은 시간강사 및 대학원생 처우 개선, 교수 선발의 투명성과 공정성 담보를 위한 일련의 제도개혁일 것이며 그에 관한 초상들은 이미 적잖이 제출된 바 있다. 그러나 나는 복합적인 현실로부터 말쑥한 대안을 궁구하기보다 정작 위기의 주체이자 대안의 주체 위치에서 탈루된 대학원생에게 정당한 자리를 부여하고자 했다. 국가 및 기업과 분리될 수 없이 얽힌 오늘날의 대학의 거대한 몸체를 단순히 과거로 되돌릴 수 없듯, 그 몸체로부터 탄생한 우리 시대의 대학원생들에게 교육 엘리트이자 예비 지식인, 행동하는 젊은 지성이나 지식 장의 신진세력이라는 과거의 대학원생에 관한 규범적 상을 탈맥락적으로 청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나치리만큼 소박하고 당위적인 답안일지언정 필요한 것은, 잔혹한 낙관을 거두고 따뜻한 비관 속에서 서로 다른 위치와 장소에서 목도한 대학의 위기들을 진솔히 나누고 그에 관한 더 많은 사회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후기

학부 전공 수업에서 친구들과 공동연구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동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종종 주고받던 농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박사 이후의 꿈에 관한 것이었다. 나중에 꼭 같은 학교에서 다른 과목을 강의하는 시간강사가 되어서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서로의 과거와 치부를 밝히고 험담을 일삼는 짓궂은 박사들이 되자는. 농담의 형식을 하고 있었지만 그 때 우리가 함께 꾼 시간강사의 꿈은 진지했다. 책 속 세상이 시시해지기 시작한 이십대 초반의 우리에게 세상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법을 뜨겁게 전달하려 한 것도, 우리의 시덥잖은 아이디어의 참신함을 발견해 인정을 수여하고 배움과 학습의 뜨거움을 알려 준 것도 갓 박사학위를 딴 시간강사 선생님들이었다. 그 때 우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잘 몰랐다.

일부가 서로 다른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일부는 로스쿨이나 대기업으로 흩어진 뒤 우리는 더 이상 그 때의 순진한 농담을 주억거리지 않는다.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삶은 한 겹 차이에 불과해서 어느새 그 꿈이 우리의 현실로 성큼 다가와 있으며, 그 현실이 때로는 아주 잔혹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진학한 학과의 대학원은 다른 몇몇 연구중심 대학들과 함께 BK21 사업단으로 선정되어 학술대회 개최와 해외학자 초청, 국제교류 등의 행사들이 끊이지 않았고, 나는 그 사업들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일했으며 그 대가로 학비를 면제받았다. 생활비가 더 필요했던 나는 그 외에도 한국연구재단에서 수주한 크고 작은 학술사업의 조교이자 연구보조원으로 일했고,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해 대학원에서 추가적인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내 동료들 역시 비슷한 식으로 생계를 꾸리며 학업을 이어갔다. 학위논문을 마치기까지의 롤러코스터 같은 급박한 과정 속에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은 별로 없었다.

석사논문을 쓰고 졸업장을 받은 뒤에, 대학원을 위해 유예한 군대에 자원했다. 장교로서 넉 달 동안의 훈련을 받으며 거의 모든 종류의 읽기와 쓰기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그 고된 침묵 덕분에 오히려 대학원에서의 쉼 없는 학업과 노동, 관계와 감정, 나아가 대학원이라는 제도 그 자체에 관해 성찰할 수 있는 거리와 시간을 얻었다. 인생의 역할모델이 될 만한 지도교수 아래에서 적지 않은 배움을 구했으면서도, 대학원생이던 시절 나는 늘 쫓기듯 성급하고 초조했으며 불면과 강박에 떨었다. 마치 오디션 쇼에 참가한 사람처럼, 동료들을 경계했고 시시각각으로 나를 평가하는 학계와 교수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틀림없이 대학원에 진학해 하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았었는데, 그것들 가운데 기억나는 것도 실현시킨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주위를 돌아보니 비슷한 시기 대학원에 진학한 유능한 동료들 가운데 다수가 대학원을 떠나 취업하거나 백수가 되었고, 일부는 유학을 떠났으며, 더 적은 일부만이 대학원에 남아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시간강사가 되거나 했다.

나는 친구들과 만나 종종 이 상이하고 불균질한 경로들에 관해,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대학원생으로서의 불안과 두려움, 슬픔과 분노에 관해 이야기했다. 한편으로 그것은 사회의 전 영역을 경쟁 원리에 의해 재구축하려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일어나는 대다수의 직업시장에서 비슷하게 관찰되는 것이었지만, 애초에 물질적 보상이나 편안한 삶이 아닌 앎의 추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소박하고 열정적인 우리, 단지 시간강사가 되어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던 순진했던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를 해석할 수 없어 함께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원생의 계보학은 일차적으로 급변하는 한국의 대학에서 대학원생으로 살고 있거나 살았던 나와 내 주위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였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함께 경험한 불안을 해독하려는 몸짓이었다.

이 글쓰기의 경험이 내게 앞으로 무엇으로 남을지는 불확실하다. 대학을 떠난지 오래된 탓인지 전형적인 논문식 글쓰기로부터 비껴난 글이 되었고, 학진 체제 하에서 대학원생의 주변화된 위치를 대학의 위기와 연결시키려 시도했지만 매끄러운 이론적 관점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이론적 주장을 개진하는 데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탓이다. 향후에 보다 역사적인 시야에서 한국의 대학 체제와 지식생산 구조의 변화 속에서 대학원생을 비롯한 다양한 지적 주체를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욕심이 남는다. 그렇기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글쓰기로 인해 (혹은 이 글쓰기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공부를 하게 되리란 사실이다. 교육과 지식의 거소로서 대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그 위기를 극복하는 끈질긴 희망과 대안적인 실험들 역시도 대학으로부터 지식이란 형태로 비롯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은 대학의 미래, 대학원생의 미래에 대해서는 부족한 결론을 내놓고 있지만, 적어도 그 불투명한 미래로 가기 위한 계기로서 유효하기를 희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