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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8호] 근본주의의 사회학

 

 

 

 

근본주의의 태동

 

20세기 초 미국에서 탄생한 근본주의는 조지 마스든이 지적하듯이 종교 운동이다. 근본주의는 가톨릭, 감리교, 장로교, 여호와의 증인 등과 같은 특정 종교집단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그보다는 제도화 되어있지 않은 운동’(movement), 더 나아가 여러 종교나 교단에서 나타나는 초교파적 경향을 가리킨다. 물론 자유주의적 개신교 교단, 가톨릭, 모르몬교 등 어떤 교단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모든 종교집단에 존재하는 현상은 아니다.

근본주의는 또한 근대의 사회현상이다. 낙관주의, 급진주의 등과 같이 어느 시대, 어느 영역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역사적 산물, 즉 특정 시공간에서 태동한 현상이다. ‘근본주의는 본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나타난 종교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일어난 종교운동으로, 다윈주의에 영향을 받은 사회와 교회의 개방적 흐름, 가톨릭이나 유대교를 믿는 이민이 급증하면서 생겨난 다원적인 종교상황을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사회변동에 직면해 초기에 미국에 이주해 자리를 잡은 개신교 세력이 기독교신앙의 근본적인 것을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성경의 영감설과 무오설을 강조하고, 따라서 성경 이외의 권위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으며, 전천년왕국주의(Premillenialism)를 신봉했다. 그 결과 불관용, 보수주의, 극단적인 이분법적 세계관과 같은 특성을 보였으며, 이들이 근대주의라고 부른 근대성과 근대적 변화를 극단적으로 거부하였다.

근본주의는 1차 대전 직후 미국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더욱 급진화하게 된다. 전후 심각해진 경제상황, 그리고 전쟁 분위기에서 형성된 애국심과 호전성은 이들로 하여금 당시 사회문제의 원인을 국내에서 찾게 만들었다. 자유주의 신학, 진화론, 사회주의가 바로 근본주의가 생각한 미국과 기독교를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2. 근본주의의 부활

 

근본주의의 탄생처럼 근본주의의 부활 역시 특정 시공간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192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퇴조한 미국의 근본주의는 1970, 80년대 전지구적 차원의 종교현상으로 부활하였다. 복음주의, 이슬람주의, 힌두근본주의 등 근본주의적 경향은 종교의 부활을 주도하였다. 중남미에서의 오순절교회의 성장은 이슬람주의와 더불어 비서구사회에서의 근본주의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오순절교회는 1900년 경 미국에서 탄생한 교단으로서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보수 교단이다. 종교의 구성 요소 중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는 종교집단으로서 이를 무기로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세계적으로 급속한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몇 개의 교단이 여기에 속한다. 중남미의 경우 오순절운동, 그리고 이와 유사한 흐름인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에 속하는 신자의 수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04.4%에서 199026.9%, 200528.1%로 늘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가톨릭 세계로만 인식되는 중남미의 또 다른 종교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에서 탄생해 기독교계에서 통용되어 오던 이 용어가 1980년대부터 이슬람세계의 극단적인 흐름에도 적용되었다. ‘이슬람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주로 중동의 정치상황을 설명하는 유력한 용어로 쓰였다. 아직도 외부세계는 이슬람근본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2001911테러 발생 이후에는 테러리즘, 알카에다, 빈 라덴 등 테러리즘 관련 용어가, 그리고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아랍 전역에 확산된 아랍의 봄이후에는 민주화운동이나 민주주의에 관한 용어들이 부상하였다. 이제 1950, 60년대의 아랍민족주의’, 1970, 80년대의 이팔분쟁이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이어 1980, 90년대를 풍미했던 시대의 키워드 이슬람근본주의가 그 독점적인 지위를 내려놓고 있다. 물론 테러 단체들이 종교적 담론을 구사하고, 튀니지나 이집트에서 아랍의 봄이후 정권을 잡았던 것이 이슬람 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이전과의 완전한 단절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3. 근본주의의 다양한 용법

미국적,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용어인 근본주의는 다양한 용례를 가지게 된다. 먼저 종교 영역에서는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유교 등 다른 종교의 유사한 경향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힌두근본주의 또는 힌두교민족주의로 불리는 흐름은 인도에서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갈등의 진원지가 되었고 유대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주로 조선시대의 경직된 유교문화가 현재 한국사회가 지닌 문제의 주요 원인이라는 시각을 담고 있다. 전술한 이슬람근본주의나 가톨릭의 통합주의는 가장 많이 사용되어 온 기독교 이외 종교의 근본주의 사례였다.

또한 민족주의와 함께 유럽 사회주의의 영향이 강했던 이스라엘이 1980년대 이후 우경화 현상을 겪게 되는데 그 주역 중 하나가 유대근본주의였다. 유대근본주의를 필두로 한 배타적이고 퇴행적인 사고의 확산은 팔레스타인인들과의 공존, 그리고 이스라엘 사회의 민주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근본주의의 사례는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나 중동의 이슬람주의에 영향을 받은 단체들을 들 수 있다. 공히 1970년대 이래 빈곤, 기아, 내전, 질병 등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아프리카의 상황이 낳은 산물이었다.

근본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은 비단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태근본주의, 근본주의적 페미니즘과 같은 표현에서 근본주의는 모든 인간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이념만으로 설명한다거나 자신의 논리를 어떤 양보도 없이 현실에 적용하는 양상을 의미한다. 돌멩이나 풀 한 포기도 생명으로서 인간과 질적 차이가 없다거나 남성의 속성과 남성의 지배를 인간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으로 간주하고 우월한 존재인 여성에 의한 지배를 주창하는 경향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이념을 넘어서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사고나 행위가 극단적인 양상을 띨 경우에 근본주의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이제 근본주의는 대중적인 용어가 되었다.

 

(사진) (시계방향)

사진1 브라질 오순절 교회 신도들, 출처=기독교신문

사진2 무장한 이슬람 군인들, 출처=뉴데일리

사진3 아랍의 봄, 출처=flicker

사진4 노르웨이 기독교 근본주의 테러리스트 브레이빅, 출처=네이버블로그

 

4. 근본주의, 배제된 세계의 현세지향적 이데올로기

근본주의는 배제된 세계의 것이다. 배제된 세계가 지닌 세계로부터의 이탈이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열망의 표현인 것이다. 이슬람주의는 매우 이질적인 계급, 계층, 사회집단을 포함하는 현상이지만 주변적인 상황에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였다. 중남미의 경우에도 오순절교회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타격을 입는 광범위한 계층을 토대로 성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보면 근본주의는 비판적이기보다는 이 체제와 논리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 이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개인의 건강과 부, 그리고 국력을 중시하고 이를 현세에서의 신의 은총으로 여기는 개신교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현실주의적인 경향은 소위 새로운 이슬람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주의가 추구했던 국가권력 장악을 통한 이슬람 사회 건설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자 이슬람 정치세력 중 일부는 정당을 결성하거나 선거에 참여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다거나 시장개방으로 생겨난 경제적 기회를 이슬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무슬림 민주주의자’(Muslim Democrats)시장 이슬람’(Market Islam)과 같은 용어가 이 새로운 근본주의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5. 대안으로서의 근본주의

근본주의는 당대 현실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대안도 제시한다. 발전된 미국에서 그 대안이 종교적으로 올바른 상태로의 복귀나 사회의 도덕적인 교정이었다면 저발전 상태의 비서구사회에서 근본주의의 대안은 이와 함께 보다 실질적인 역할을 동반한 것이었다. 아랍세계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은 소위 이슬람 NGO’의 형태로 빈민구제나 재해복구, 교육문화활동, 의료지원 등을 담당했다. 아프리카에서도 근본주의 성향의 교회나 모스크는 대안적인 공동체로서 주민들에게 사회적 유대와 생존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발전에 실패한 국가와 경쟁하는, 또는 이를 대체하는 공동체로 기능하는 것이다. 중남미에서 오순절교회의 성장요인 중 하나는 질병을 치유하거나 물질적 축복을 받음으로써 사회적 능력과 무관하게,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이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현세에서의 즉각적인 물질적 혜택의 가능성에 대한 강조는 어려운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 민중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니는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사회와의 연관을 중심으로 근본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용법, 여러 지역에서의 경험, 그리고 근본주의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근본주의가 비판하는 현상이나 세력으로는 사회의 근대화와 세속화, 자유주의 성향의 교회나 신학, 사회주의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근본주의에는 배제된 세계의 현세적 절망과 열망이 담겨 있다. 적대 진영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현세의 고통이 가벼워질 전망이 불투명한 만큼, 근본주의 역시 지속될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라는 말처럼 근본주의 보다 근본주의에 투사된 현실을 바라볼 때이다.

 

 


1) 이 글은 근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사이에서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것이다.

2) 조지 마스든, 1997. 근본주의와 미국문화(박용규 옮김) 생명의 말씀사.

3) 광의의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으로 태동한 교파 모두에 적용 가능한 개념이지만 협의의 복음주의는 개신교 내에서 성경 이외의 권위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가리킨다.

4) 종말사상의 한 형태인 '천년왕국주의(Millenialism)'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millenium)' 개념에 기반을 둔, 행복과 평화와 풍요를 상징하는 천년왕국에 대한 열망을 가리킨다. 이 사상의 한 조류인 전천년왕국주의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나 천년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를 믿는 사람들은 현세에서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진보의 의의와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5) http://www.pewforum.org/2006/10/05/overview-pentecostalism-in-latin-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