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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5호] 국가의 사이 공간에서 사유하기

 

 

국가의 사이 공간에서 사유하기

 

 

하용삼 _ 부산대학교 HK연구교수

 

난민과 국가경계


 9월 2일 터키 해변에 마치 엎드려 잠든 듯이 죽은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는 전 세계인들에게 슬픔과 충격을 주었고, 우리 모두에게 난민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난민은 우리에게 ‘국가경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그리고 ‘국가경계는 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이 물음은 바로 공간을 분할하는 경계들 중에서 가장 견고한 국가경계에 대한‘사유하기’와 연결되어있다. 사실 국가의 ‘물리적 경계’는 미리 그곳에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러나 동식물, 무생물(먼지, 바람, 물 등)은 국가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런 점에서 국가경계는 인간의 의미에 의해서 확정된다. 의미는 사유에 의해서 발생하지만, 사유는 언어에 의해서 가시화된다. 다시 말해 국가의 ‘의미로서 경계’는 말과 서류에 의해서 확정됨으로써 국가의 구성원은 다른 국가에 거주하더라도 말과 서류에 의한 ‘의미로서 경계’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국가의 ‘물리적 경계’가 국민의 ‘사유하기’와 무관하게 이미 그곳에 있고, 또한 국가의 ‘의미로서 경계(출생∙언어∙문화의 경계)’도 ‘사유하기’에 의해서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 그렇게 되어 있다.

 

‘물리적 경계’와 ‘의미로서 경계’


 근대 이후 국가경계는 국민국가의 모델에 따라서 물리적으로 견고하게 확정되었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죽은 노동으로서 자본은 국가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지만 이에 반해 살아있는 노동으로서 노동자는 설사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난민 혹은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경계는 단지 ‘물리적 경계’일 뿐만 아니라 ‘의미로서 경계’로 작용한다. 이는 국가의 동일자와 비동일자를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눈다.

 

 국가의 ‘물리적 경계’가 미리 그곳에 확정되어있듯이 국가의 ‘의미로서 경계’ 또한 국민의 의식과 무관하게 미리 국민의 내면에 각인되어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국가의 주권자로서 국민은 ‘사유하기’를 하지 않는 존재이고, 국민은 아우슈비츠의 칼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처럼 무사유의 인간일 뿐이다. 다시 말해 국가의 ‘의미로서 경계’는 국민의 ‘사유하기’와 무관하게 국가시스템에 의해서 미리 사유된 결과물을 국민의 의식에 각인시킨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의미로서 경계’를 사유하지 않는 한 인간은 ‘삶의 형태(form of life)’ (한 개인이나 집단에 고유한 살아가는방식이나 형태)를 가질 수 없으며 단지 ‘벌거벗은 생명(naked life)’(모든 생명체에 공통되는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일 뿐이다.

 

 최소한 복수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유와 그리고 그 사유의 현실태는 국가시스템의 사유결과물일 뿐이다. 즉 사유가 ‘사유하기’의 결과로서 드러난다면, 이 사유는 더 이상 사유의 잠재태∙가능성∙역량을 드러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시스템의 사유결과물로서 사유는 개인의 삶을 다양한 형태로 구성할 수 없게 한다. 즉 ‘나’의 의식이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국가(가정, 학교, 군대, 병원, 공장 등)의 사유결과물이 의식에 주입되어서 의식에 내면화되는 과정을 ‘나’의 ‘사유하기’인 것처럼 착각한다면, 나는 ‘사유하기’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유하기’는 외부사물과 인간에 대해서 국가의 사유결과물에 동화되어서 마치 ‘나’의 ‘사유하기’로 착각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유하기’를 멈추고 국가시스템이 ‘나’를 대신해서 ‘사유하기’를 한다면, 자본주의적 국가의 정치권력과 자본의 사유결과물로서 ‘나’의 사유는 비국민과 난민을 적 혹은 나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게 만든다.


 서경식에 의하면 국가와 기업의 ‘공범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이권구조 안에 있는 국민 역시 피해자에 대한 정치적인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이권구조의 떡고물에 매달리기 위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면, 이는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다른 국가의 사람들을 차별받아야 되는 타자(비국민∙난민∙무국적자, 미개인 등)로 만들기 위해서 국가는 한편으로 공권력을 사용해서 비국민(식민지의 인민)을 국민으로 동화시키고자 한다. 또한 국민 중에서 일부(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집시 등)를 비국민으로 배제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동화될 수 있는 국민 혹은 배제하고 남은 국민에게 경제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한다. 이때 국민은 스스로 ‘물리적 경계’에 상응하는 ‘의미로서 경계’를 내면화하고 타자를 차별∙적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국민은 정치권력과 자본에 의한 폭력과 사유의 결과물로서 국가정책과 국가정체성을 맹목적으로 자신들과 동일시하게 되고 “스스로 사실을 알고, 생각하고, 입장을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 국민은 필사적으로 다수자에 편입되고자 할 뿐이고 자신의 사유∙권리∙힘의 자유를 정치권력∙자본에 의한 공권력∙시장의 자유에 예속시킨다.

 
 이렇듯 ‘사유하기’와 국가∙공동체의 사유결과물 사이의 차이는 ‘삶의 형태’와 ‘벌거벗은 생명’을 가르는 심연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양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국가의 외부자로서 ‘우리’ 혹은 ‘나’가 국가에 의해서 의미 부여된 외부사물들(민족, 국민, 국가, 국어 등)을 의심하면서 괄호에 넣음으로써 ‘나’가 외부사물을 지각하고 사유한다면, ‘나’는 ‘사유하기’를 통해서 외부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외부사물에 ‘삶의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가 자연적 태도와 신화적∙초월적 외부사물을 의심하면서 괄호에 넣는 경우에 ‘나’는 ‘사유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나’는 ‘사유하기’를 통해서 더 이상 국가에 의해서 의미 부여되는 ‘벌거벗은 생명’이 아니라 스스로 ‘나’의 삶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기 충족적인 국가의 내부자로서 내가 사유하는 것이라면 나는 스스로 ‘사유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에 의해서 의미 부여되는, 국가∙공동체에 의해서 통용되는 의미(공동체의 규칙∙관습∙생활양식 그리고 공동체적 서사에 의해서 구성된 의미)로 규정된 사유를 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스스로 ‘사유하기’는 국가∙공동체들 사이 공간(空間)에서 공동체적 사유(사유결과물)를 의심하는 것이다. ‘나’의 ‘사유하기’는 공동체적 사유를 의심하면서 괄호에 넣고 공동체들의 경계 혹은 사이 공간에서 타자∙난민으로서 ‘사유하기’이다.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국민

 

 근대 이전에 인간은 신분에 의해서 차별적으로 분화되었다. 그러나 근대의 인간은 상품(노동력 포함)의 교환에서 평등과 자유를 형식적∙법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그러나 법적 평등과 자유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본운동의 결과에 따라서 죽은 노동의 소유로부터 비 소유에 이르는 위계적 차별로서 부자∙빈자, 자본가∙노동자로 분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근대 이후의 인간은 평등과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에서 국가는 ‘의미로서 경계’를 토대로 국가의 ‘물리적 경계’의 확대로서 식민지를 통한 부의 확대를 추구한다. 다시 말해 정치권력과 자본은 군사적 폭력(국가권력)을 통해서 자국노동자들의 착취를 기반으로 다른 국가의 자원과 노동자들을 착취함으로써 다수자(자본가)와소수자(노동자)의 ‘의미로서 경계’를 동일화시키고자 시도한다. 예를 들어 남성 노동자로 구성되어있는 군대는 다수자와 소수자의 경계를 애국심으로 대체한다. 군대에서 각각의 소수자(자국노동자와 적국노동자)는 서로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어져 정치권력과 자본이 의미화한 가치로서의 국가, 애국심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게 된다. 근대국가가 노동자 군대를 동원해서 타국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은 ‘의미로서 경계’가 ‘물리적 경계’를 새롭게 재편하는 것이다.

 아감벤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붕괴되고, 그리고 평화조약에 의해 중부∙동부 유럽의 인구와 영토가 새롭게 재편됨으로써 난민이 대규모로 발생한다. 일시에 약 4백만 명의 유럽인들이 조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난민들은 다음과 같은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즉 국민 국가의 모델에 따른 평화조약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 국민조직의 인구 중 1/3이 일련의 사문화된 국제조약에 의해 보호받아야 하는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져야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국민국가는 국민(nation)과 난민, 시민과 인간 그리고 ‘삶의 형태’와 ‘벌거벗은 생명’을 상호 분리시키는 경계가 된다. 국가의 ‘의미로서 경계’ 안의 ‘국민-시민’은 국가에 의해서 인권이나 생존권을 보장받고, 귀속성과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국가의 ‘의미로서 경계’밖의 난민은 설사 합법적으로 국가의 ‘물리적 경계’를 넘었다고 하더라도 ‘벌거벗은 생명’이 된다.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는 경계를 넘어 두 번째 ‘삶의 형태’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비합법적으로 국가의 ‘물리적 경계’를 넘은 난민은 ‘의미로서 경계’ 안의 ‘삶의 형태’를 가지지 못한 ‘벌거벗은 생명’이 된다. 마찬가지로 수용소에 갇힌 난민과 전쟁포로 또한‘벌거벗은 생명’이 된다. 그러나 경계 밖의 사람들만이 ‘벌거벗은 생명’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 1789년 권리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3조: 모든 주권의 근원은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즉 권리선언은 국민이 주권자라고 선언한다. 실상 국민(nazione, nation)의 어원 나티오(natio, native)가 출생을 의미함에 따라서 이 선언은 국민이 바로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고대와 구체제(ancien régime)에서 벌거벗은 생명은 주권의 담지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1789년 권리선언 전까지 분리되었던 주권과 국민(벌거벗은 생명의 출생)은 권리선언에서 결합되어 벌거벗은 생명(국민)이 국민국가의 토대를 구성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과 난민은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지난 9월 터키 휴양지 보드룸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쿠르디의 시신. 쿠르디의 죽음은 테러와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난민의 문제를 수면 위로 부상시켰다. (사진출처: Rachel Clarke and Catherine E. Shoichet, CNN)(편집자주)

 


 사실상 국민이라는 용어는 “인민(people)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고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민과 동등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국민과 더불어 인민이라는 용어는 사용에 있어서 이중성을 포함하고 있다. 즉 국민과 인민은 다수자와 소수자 그리고 대문자 인민과 소문자 인민으로 대립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감벤에 의하면 인민이라는 용어는 “동일한 하나의 용어가 구성적인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동시에, 권리상은 아니더라도 사실상 정치로부터 배제된 계급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민이라는 의미의 양의성은 현실 정치의 장에서 인민의 본질과 기능의 양의성을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하는 경우에 “총체적이자 일체화된 정치체로서의 대문자 인민(Popolo, People)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현실적 토대를 이루고 있는 “가난하고 배제된 자들의 부분적이자 파편화된 다수로서의 소문자 인민(popolo, people)이 있다.” 국가는 법적∙형식적 자유와 평등에서 국적보유 소수자(홈리스, 비정규직 노동자, 소상인, 세입자 등)를 대문자 인민에 포섭되는 국민의 범주에 넣지만 현실정치의 장에서 국적 보유 소수자를 대문자 인민에서 배제되는 국민의 범주에 넣
는다. 실상 비국민∙난민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차별하고 정치적 폭력으로 통제한다. 즉 정치권력과 자본은 한편으로 국적보유 소수자를 ‘의미로서 경계(주권과 결합된 국민)’밖으로 밀어내고 다른 한편으로 ‘의미로서 경계’ 밖의 존재(난민과 불법체류자 등)를 ‘물리적 경계’안으로 포섭한다.

 소문자 인민은 구체제에서는 신에 속했고, 고대에는 정치적 삶(bios)과 대립되는 벌거벗은 생명(zo-e)이었다. 다시 말해 고대와 구체제에서 소문자 인민은 정치적 삶∙삶의 형태를 구성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반해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법적으로 주권이 모든 인민에게 속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소문자 인민은 빈곤하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 위한 정신적∙육체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따라서 소문자 인민은 자신의 경제적인 조건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정치적 주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서 소문자 인민으로서 국민과 난민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소수자로서 국민과 난민은 국적 보유와 상관 없이 인권이나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일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소수자로서 국민은 서경석에 의하면 “‘국민-시민’을 보호한다고 하는 근대의 약속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의 진실한 모습”이고 “이른바 좁은 의미의 난민으로서, 국경 밖으로 흘러나간다거나 더 나은 생활을 찾아서 떼 지어 이동한다거나 하는 일조차 불가능한 난민”이다. 국가공동체 내부에서 국민이 소수자가 되고, 소수자는 난민과 유사한 처지이기도 하다. 소수자로서 국민에게 국가는 ‘공동체 사이 공(空) - 간(間)’이 된다.

 

‘의미로서 경계’밖에서 타자로서‘사유하기’

 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논리적으로 공동체 사이 공간에서 공동체가 발생한다. 통상적으로 공동체가 ‘사이 공간’보다 먼저 발생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공동체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킨 것이다. 즉 사이 공간에서 타자들은 상호 계약에 의해서 공동체를 만들고, 이제 이 공동체가 앞의 사건을 의도적으로 망각하게 되면서 공동체의 신화가 시작된다. ‘사이 공간’과 공동체의 관계에서 볼 때 난민이 국민보다 선행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동체의 기원 신화에 상응하는 국민의 다수자(정관계 권력가, 자본가 등)는 공동체 내부의 타자(내부에 억압 받는 자)와 외부의 타자(난민)를 국가의 ‘의미로서 경계’에서 차별∙배제하면서 동시에 국가의 ‘물리적 경계’내부로 포섭한다. 다른 한편으로 내부와 외부의 타자는 공동체의 ‘의미로서 경계’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 공간’에 속해 있다. 다시 말해 국가공동체가 사이 공간에서 발생했고 또한 사이 공간에 떠 있다고 한다면, 국민이 국가의 ‘물리적 경계’안에 거주한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의미로서 경계’안에 속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이 더 이상 국가의 ‘의미로서 경계’에 속하지 않는다면 이제까지 공동체 사이 공간과 분리되어 있었던 국가공동체의 ‘물리적 경계’ 내부도 사이 공간과 더 이상 구별되지 않게 된다.


 사실 국가는 국민∙국어라는 ‘의미로서 경계’에 의해서 ‘물리적 경계’를 확정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국민∙국어의 연결고리가 깨어지면 국가는 공동체 사이 공간이 되고 국민은 난민∙무국적자가 된다. 그리고 국어는 문법(언어)이 아니라 은어가 된다. 즉 국민국가는 경제적 토대로서 비국민을 ‘의미로서 경계’에서 배제하고 동시에 ‘물리적 경계’의 내부로 포섭하는 한편 국적 보유 소수자를 ‘물리적 경계’ 내부에서 비국민과 동일하게 타자로서 차별한다. 이런 경우에 국적보유 소수자는 국가를 공동체 사이 공간으로만 체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민국가는 이념적으로 ‘물리적 경계’와 ‘의미로서 경계’를 끊임없이 결합시키려고 하지만, 실적으로 결합시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더 나아가서 국가∙국민∙국어라는 근대국민국가의 근본적인 토대가 흔들리게 된다. 이때 공동체 사이 공간에서 타자로서‘나’∙‘우리’의 ‘사유하기’는 국민국가의 토대를 의심하고 ‘의미로서 경계’로서 국가∙국민∙국어의 연결을 괄호에 넣게 된다. ‘나’는 더 이상 국가공동체∙국민국어의 동일자가 아니며 이것의 타자로 있기 때문에 공동체 사이 공간에서 난민∙은어사용자이며 사유의 잠재태로서 ‘사유하기’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국가공동체의 ‘물리적 경계’와 ‘의미로서 경계’외부의 타자이고, 타자로서 ‘나’는 더이상 국민으로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타자로서 ‘나’는 타자로서 난민을 환대하고, 환대받을 수밖에 없다. 즉 타자∙타자의 방언∙타자의 공간을 배려하는 윤리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위 글은 하용삼∙배윤기의“경계의 불일치와 사이 공간에서 사유하기”,「 대동철학」(제62집, 2013)에서 발췌 수정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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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히만은 독일의 나치스 친위대 장교로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및 독일점령하의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의 체포, 강제이주를 계획∙지휘하였다. 그는 1960년 체포당하여 이스라엘로 압송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1961년 12월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 재판을 직접 재판정에서 지켜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녀는 이 보고서에서 아이히만으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