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6. 4. 21. 14:20


장애 여성의 몸과 노동



김효진 _ 작가, 사단법인 활짝미래연대 대표 



일하는 장애 여성에게 화장실이란?

우리 단체의 회원중에 직업이 약사인 분이 있다. 그 분은 수십 년동안 약국을 경영해오다 의약분업 이후 이어진 경영 난때문에 약국을 그만두었다. 몇 년 정도 쉬다가 최근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면접을 보러가게되면 가장 먼저 화장실을 확인한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목발을 사용하다 나이가 들자 휠체어를 타게 되었기 때문에 화장실은 가까이에 있는지, 화장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 휠체어가 움직일 수있을 만큼 공간이 충분히 넓은지, 지탱할 손잡이는 있는지를 고려할 상황인 것이다. 하루 8시간이라는 근무시간 동안 최소 서너 번 정도의 출입이 원활해야 마음놓고 신변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근무조건이나 직장 분위기를 먼저 보는데 화장실이라니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는 직장을 고르는 기준 조차도 보통사람들과 좀 다르다. 어디 화장실뿐이랴. 출퇴근 시 이동과 접근부터 시작해서 점심 식사는 물론이고 업무상에서 남들과 다른 조건으로인해 다른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다. 일터라는 공간 자체가 장애 여성을 고려해서 설계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장애 여성에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는 근무시간은 전쟁일 수밖에 없고 일터는 전쟁터나 다름아니다. 그나마 이런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장애 여성은 혜택 받은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이 글에서는 일터에서의 근무시간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장애를 가진 여성의 몸이 어떠한 소외를 경험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러한 경험의 공유가 오히려“그러길래 누가 힘들게 일하래? 집에서 편히 쉬지.”와 같은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려는 논리로 역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또한, 늘 그래 왔듯이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한 개인들이 자기 계발 노력을 등한시 한 채 사회 탓하는 것으로 비치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입을 열어 발설(發說)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문제의 답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직업에 사람을 맞춰야 하는 기이함

장애 여성 중에는‘약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수천,수만 가지의 직업중 하나이니 약사 장애 여성이 있는게 뭐그리 특별하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하지만 장애여성의 직업군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장애 여성중 직업을 가진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적절 할 것이다. 장애 여성 중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나 그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직업이 약사이다. 사회참여 기회가 제 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장애 여성들의 선택지가 없었던 탓이다.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고 가족으로부터 최소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장애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문직업이 약사였다. 장애 여성의사를 본 적이 있는가? 손에 꼽을 정도가 있을 뿐이며, 의사 혹은 한의사를 하고 있는 장애 여성이 있다면 그녀들은 눈에 거의 띄지 않는 정도의 가벼운 장애를 가졌을 것이다. 대학교수는 이미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와 사회복지계의 오혜경 교수 정도이며 한의사, 변호사, 교사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최근 공무원으로 진출한 장애 여성들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왜일까? 원인을 찾아보기에 앞서 우리나라 장애 여성의 현황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 재가장애인(2011)은 모두 2,611천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남성장애인은 1,514천명이고, 장애 여성은 1,096 천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1년에 조사된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장애인의 성별 교육수준별 분포를 살펴보면, 장애 여성 중 무학이 22.3%로 장애남성의 5배 수준에 달하고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장애 여성의 비율은 5.8% 로 장애남성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는 장애 여성은 얼마나 될까?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15세 이상 장애인 중 남성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14%이고, 장애 여성은 23.90%로서, 남성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 이유는 장애 여성이 교육에서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교육 수준으로 인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탓에 개인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경쟁 위주, 능력 우위의 시장 논리가 관철되는 노동시장의 장벽을 돌파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장애 여성 취업자의 경제활동분야를 보면, 전체의 45.8%가 단순노무직, 서비스종사자 12.1%, 판매종사자 11.1%, 농림어업종사자가 11.1%순으로 나타났다. 장애 여성 취업자의 종사상의 지위에서도 임금근로자가 전체의 70.8% 이고, 17.4%는 자영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는 16.5%인데 비해 일용근로자는 상용근로자의 두 배에 가까운 33.3%에 달해 장애 여성 취업자의 고용 불 안정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장애 여성의 교육수준이 낮고 취업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으며 고용상태도 불안정한 이유는 우리사회에서 장애 여성의 몸이 장애와 여성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몸, 불완전한몸, 생산성이 낮은몸, 경쟁력 없는 몸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장애 여성이 그나마 진출 할 수 있는 전문직 종중 하나가 약사였다. 장애가 그리 심하지 않거나 가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장애 여성이라면 누구나 약사가 될 것을 권유받았을 정도이다. 필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릴 적부터 장애가 있는 몸으로는 취직하기 힘들테니 공부 열심히 해서 약사가 되라는 권유를 받으며 자랐다. 약사나 한의사가 아니면 앉아서 하는 자수나 양재, 한복 짓는 일이 좋을 것이라는 권유도 있었다.

보통의 아이들은‘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받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으레‘너는 다리가 불편하니까...’라는 말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장애 여성이 무얼 잘하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단지 장애라는 조건만을 앞세우곤 한다. 그런 이유로 지체장애 여성이라면 당연히 이 다음에 커서 앉아서 하는 일에 종사해야 한다고 여기게 마련이다. 시각장애 여성들은 시각장애인들 이 다니는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안마사 아니면 침술사, 역술사, 그것도 아니면 기껏해야 텔레마케터가 고작이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특수학교에서 치료와 직업교육에 한 정된 교육을 받고 이른바 적합 직종에 종사하는 것이 정해진 (?) 코스였다. 자신의 적성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한 두가지의 직업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이 기이함은 현대판‘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에 다름 아니다.






바쁘거나 아프거나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필자는 약사 혹은 한의사의 길을 걷지않고 문학도의 길을 선택했다. 그로 인한 대가는 혹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거의 10년 가까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실업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청년실업을 30년 전에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데 몸의 조건으로 인해 다소 제약이 있긴 하지만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 데도 번번이 채용을 거절당했다.

“몸이 불편한데도 열심히 밝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러나 편집 일이라는 게 앉아서만 하는 게 아니다. 복사도 해야 하고, 시장조사도 나가야 하고, 인쇄소에 나가 외근도 해야 한다. 비록 채용이 되지않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복사도 할 수 있고, 외근도 나갈 수 있다고 알려줘도 소용이 없었다. 남들 눈도 있고, 자신들의 마음이 불편해서 안되겠다고 했다. 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실력이 없거나 장애 외에도 뭐가 성격상의 결함이 있지 않나 하는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였다. 특히 가족들이 보내는 무언의 비난이 있었다. 그때 부모, 형제, 주변의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조건 탓에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한개 섬처럼 고독했다. 그렇게 이십대의 불안한 청춘이 덧없이 지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채용이 된 경우는 보통 재정이 어려운 회사여서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이 반드시 뒤따랐다. 일 할 기회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열악한 근무환경과 부당한 대우도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애 여성이 일터에서 가장 많이 하는, 할 수 밖에 없는 말이 아마도‘괜찮아요’‘할 수 있어요’가 아닐까 싶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데 어찌 괜찮을 수 있으랴.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힘들어요’‘아파요’ 라고 말하면 영원히 잊혀진 사람이될테니까.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다 보니 어느새 일중독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삶의 질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해고 1순위일 게 분명하기에 늘 불안정했고 승진 순서가 되어도 남자 후배에게 밀리는 게 당연했다.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소외는 더 극심해졌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보니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할 수 없었다. 그러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출퇴근의 어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후배 장애 여성의 경우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로 출근하던 길에‘왜 바쁜 시간에 돌아다니느냐?’며 혼을 내는 할아버지에게‘회사 가는 길’이라고 대꾸했다가 말대답했다는 이유로 매를 맞기도 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 니‘쓸데없이 왜 돌아다니느냐?’든가‘그 몸으로 얼마나 힘 드냐?’는 그런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대인관계에 제약은 여전히 있었다. 업무 외에도 동료들과 소원해지지 않기 위해 사내 운동회, MT 등을 열심히 따라다녔다. 그러나 장애 여성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중중의 장애 여성들에게는 먼 얘기일 수 있다. 게다가 언어 장애가 있는 장애 여성이라면 당장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에 애를 먹는다. 수화로 대화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구화를 하는 장애 여성이 알아들을 수 있도 록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에티켓을 알고 실천하는 동료가 얼마나 될까?

NGO 활동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직장이었던 정부출연기관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구내식당에서 밥먹는 일이었다.구내 식당이 으레 그렇듯 식판에 먹을만큼의 음식을 덜어먹는 것은 양쪽 목발 혹은 휠체어 사용자에게 버거운 일이다. 매번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시작했고 부서 내에 도시락파가 하나 둘 늘기 시작해서야 점심시간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낙오할 거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도 힘들다고 엄살 피워도 아무 소용없으며 이겨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 때문에 계속 일에 매달리는 가운데 몸은 정직했다. 자신을 늘 채찍질하며 지나치게 긴장하고 휴식도 없이 과도하게 부려먹었기에 자주 몸이 반기를 들었다. 고열과 근육통을 동반한 몸살이 찾아올 때에야 하는 수 없이 쉬었다. 일상적으로 감기, 알 러지성 비염, 편두통, 위염, 혈액순환장애로 인한 팔저림 증세는 기본이었다. 바쁘지 않으면 많이 아팠다. 몸이 힘들다고, 더 이상 못버티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몸을 야단치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아름답지도 않으면서 왜 좀 더 강하지 않냐고, 왜 좀 더 분발해서 욕심껏 채워주지 못하냐고....

그렇게 부실하지만, 그나마 큰 고장없이 잘 지탱해준 몸을 홀대했다. 그 결과 지금 남들보다 훨씬 빨리 몸의 노화를 맞이하고 있다. 백세시대에서 이 몸으로 남은 45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아야 하는 과제를 눈앞에 둔 셈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과연 회사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장애가 있으니 역시 일도 시원치 않더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았을까? 그들은 아마도 건강하지 못한 장애인, 의존적이고 의지가 약한 장애인과는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자신들의 평소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변으로 밀리는 사람들

지금으로부터 20~30년 겪었던 필자의 경험이 지금 청년인 장애 여성들의 경험과 얼마나 다를까? 지극히 소수의 경증 장 애 여성들이 공무원이나 준공무원으로 진출하는 정도를 제외 하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 장애 여성 중에는 막상 취업을 해도 급여 수준이 매우 낮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꽤 있다. 수급자에서 탈락될 경우 의료비 등이 지원이 되지 않아 임금만으로는 병원비를 충당하기에도 모자라므로 수급자보다 더 불리해지는 상황이 발생해 결국 취업을 포기하고 만다. 그녀들은 제도라는 틀에 갇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기생적인 집단의 일원으로 자주 비난받는다. 한편, 양육을 지원 해줄 사람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거나 장시간 일을 해야 하는 직장에 취업하기를 포기하는 장애 여성의 문제는 비장애 여성의 취업 문제와 비슷하다.

하지만 장애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병행하며 겪는 차별은 훨씬 미묘하고도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무성(無性)으로 취급되는 탓에 장애 여성들은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성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에 시달리는 가운데 가사노동과 양육에 대한 부담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제도가 있지만, 저소득장애 여성에게 먼저 지원되기 때문에 일하는 장애 여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이유로 일터에서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도 장애 여성을 기다리고 있는 건 휴식이 아니라 가사와 육아라는 또 다른 노동이다.

요즘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가 생겨 사회참여를 위한 신변 처리나 이동 문제를 해결하는 중증장애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이 제도는 아직까지 기본적인 지원에 그칠 뿐 중증장애 여성들의 직업생활에 필요한 지원으로까지 원활하게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복지의 완성은 고용일 터인데, 중증장애 여성에게 고용은아직 먼 남의 이야기이다. 기껏해야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을 뿐이며, 그조차 10년 이상 일해도 간사라는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은 대부분 장애남성이며 국장은 거의 비장애 여성인 구도에서 장애 여성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돌 수밖에 없다. 장애와 여성이라는 신체적 조건의 위치성을 드러내는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활동가를 기다리며

마흔 살 무렵 인권운동에 뛰어든 뒤 20년 가까이 NGO 활동을 하고 있는 요즘 새로이 직면한 문제는 NGO 활동가와 사업주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활동가를 만나고 헤어졌다. 처음에는 열정만으로도 가슴이 뜨겁고 저절로 신이 나는 활동이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10년 전부터 복지에도 시장 논리가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NGO에도 4대 보험이 적용되었고 활동가들은 스스로를 직원으로 정체화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래서 단체의 대표는 어디에서도 이윤이 생기지 않음에도 함께 일하는 동지들의 급여를 마련해줘야 하는 이중의 짐을 지게 되었다. 그리고 수당과 상여금,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간단하게 노동을 착취하는 악덕 사업주로 몰리게 되었다. 이 경우 단체 대표가 활동비조차 받지 못하고 헌신하면서 부르짖는 운동의 가치나 철학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고 갈 길은 먼데 함 께 손잡을 수 있는 활동가는 사라진 현실에서, 활동가인지 사업주인지 나의 정체성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누가 이 길을 가라고 한 적은 없지만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눠줄 동지가 그립다. 장애 여성이라는 몸의 조건을 가지고도 더 이상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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