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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41호] 서강논문상_한글 “가로쓰기”에서 나타나는 서구중심주의(윤희수)

한글 가로쓰기에서 나타나는 서구중심주의

 

윤희수 _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의 문화로 변화한 동아시아

과거 세로쓰기 표기방식을 취했던 동양권은 근대 이후 서구문명을 접하며 점차 가로쓰기 표기법을 보편화해나갔다. 동아시아권이 약 500년 넘게 지속되어왔던 세로쓰기 필법에서 가로쓰기 필법으로 전환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의문이 들었다. 연구 결과, ··일의 가로쓰기 표기법 도입은 서구문명이 아시아에 들어온 근대 이후에 본격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공산 혁명 성공 이후,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그리고 한국은 미군정의 통치 이후 가로쓰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동일한 시기인 근대에 아시아 국가들이 일괄적으로 표기법을 변형한 이유를 찾고자 했고, 그 원인으로 서구중심주의가 있다는 논증을 해보고자 했다. 이 논문의 핵심은 한글의 표기법 전환 가로쓰기에 나타나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해 고찰해보는 데 있다.

언어를 표기하는 방법은 문자 체계의 기입 방향에 따라 상이하다. 일반적으로 표기법은 가로쓰기인 횡서와 세로쓰기인 종서로 나뉜다. 문자 표기 방향을 보면 동양 권은 ()’의 특성을 갖고 서양 권은 ()’의 특성을 갖는다. 한자문화권으로 분류되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아시아권 언어는 전통적으로 우 종서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의 문화를 갖고 있던 아시아권 언어는 점차적으로 의 언어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글이 현재 가로쓰기 표기법으로 전환된 이유에는 개화기 당시 서양인 선교사의 영향과 중국의 한자문화권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한국어 언어학자들의 소망에 기인한다.

 

표기법 변화의 역사적 배경

가장 먼저 한글 가로짜기를 표준화한 것은 미군정 교과서였다. 미 군정청 문교부는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조선교육심의회를 조직하여 한국교육의 이념으로 명문화된 홍익인간의 교육이념과 교육의 기본방침이 심의되었고, 미국과 같은 6·3·3·4 학제를 비롯한 교육제도에 대한 결의가 이루어졌다. 조선교육심의회에서는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새 교육에서 한자를 폐지하고 한글 가로짜기를 지정하는 한글전용방침을 결정하여 겨레의 교육을 실시할 것은 군정청 문교부에 보고하였고, 가로짜기에 대한 부칙을 추가하였다. 본래 목적이 미 군정청의 문교 정책 자문기구를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선 교육심의회는 미국식 학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물론 이전 종서표기법의 경우도 중국의 표기영향에 따른 것이었기에, 종서에서 횡서로의 표기법 변화는 단지 한국이 중심으로 여기는 국가의 변동에 따른 결과가 아니냐는 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즉 과거에 조선이 중국을 추종했다면, 현재의 한국은 미국을 추종하기에 표기법 또한 상응하여 따라간 것이라는 문제제기이다.

한글이 종서의 형태로 탄생하게 된 원인에 있어서, 당시 중국의 지배적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은 배제할 수 없지만, 500년의 시간에 걸쳐 한글이 세로짜기에 적합한 글자로 진화해왔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형태적 특징인 모아쓰기 구조와 글 줄 흐름성 등은 한자와는 무관하게, 한글 자체의 특성에 힙입어 진화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한글이 세로쓰기를 한 것에는 중국이 간접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근본적 원인으로 판단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한글은 한글문자 특유의 속성 때문에 세로쓰기를 채택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현재 한글의 횡서 표기법이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외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을 때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한국의 근대화 운동은 주로 서구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후에 한글학자로 성장한 이들의 대다수가 이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사회는 서구를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이러한 인지체계는 표기법의 변화에 따른 사회의 저항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한글의 맹목적인 서구화가 만든 폐해: 정간보

당시 한글의 표기방향을 횡으로 통일하는 이유는, 횡서, 종서로 혼재된 한국사회의 표기법을 한데 모은다는데 있다. 하지만 표기법의 통일을 꼭 횡의 방향으로 할 이유가 있을까? 이에 대해 한글학자 최현배는 서양의 산수, 대수, 기하, 삼각, 물리화학, 음악 등이 횡의 방향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한글의 표기법도 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의 전통엔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림1] 종서형태의 정간보

 

그 대표적인 예가 전통국악이다. 지금 우리는 서양악보에 너무나도 친숙해져서 왼쪽에서 오른쪽(횡서형태)으로 악보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위에서 아래로 읽어나가는(종서형태) 정간보라는 악보가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의 전통음악은 음계에 12율명을 사용하는데, ‘황종, 대려, 타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이라 불리며 붙임표, 숨표, 쉼표를 활용해 음악의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갖고 있다. 박자의 경우 정간보의 칸을 몇 개로 나누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국악은 세로 형태의 정간보로 표기될 때 제일 잘 명시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글의 표기법 전환에 따라, 정간보 역시 가로형태의 악보로 강제 변용되었으며 기존의 정간보 틀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 음악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시김새와 장단이다. 시김새로 인하여 유동적으로 음이 움직이며 진행하는 것이 특징인 우리 음악을 전혀 다른 음악 어법을 지닌 악곡의 기보에 적합한 서양식 오선보로 표기했을 경우 우리 음악을 평균율의 음악처럼 왜곡하여 인식할 우려가 있다.

(), ()이 발달한 우리 음악은 세종대왕이 정간보를 창안한 이래 박자 표기에 대한 언급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박이나 장단을 표기하는데 쉬운 기보체계를 두고 음악 생성이 전혀 다른 문화의 틀로 설명하는 데 그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 주장하는 음악의 3요소인 리듬, 멜로디, 하모니가 한국 전통음악에는 다른 이름으로 있고 악보에 쓰여진다. 하지만 그 동안 정악곡을 제외하고는 다른 장르의 우리 음악은 서양 기보법을 빌어다 썼다. 서양음악과 다른 우리 음악은 서양 기보법으로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을 여러 가지 보조 기호를 만들어 서양기보법으로 써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전통음악은 본질을 잃게 되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결론 및 제언

이와 같은 논의에 따라 필자는 당시 한글학자들이 횡서를 주장한 주된 이유를 서구의 유입과 그에 따른 서구중심주의의 결과라고 추정한다. 언어의 변화는 문화에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표기법의 변화가 일으킨 폐해 중 하나로는 위에 논의했듯, 한국 전통음악의 소멸성에 있다. 횡서표기법의 서양식 악보가 도입됨에 따라 종서 표기법이었던 기존의 정간보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악보가 되었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정간보라는 구체적 예시만을 다루고 있지만, 그 외에의 다른 문화적 소멸성 또한 존재할 것이라 추측한다. 따라서 한국고유의 문화를 되살리며 서구중심주의의 폐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이 수반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