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125호] 건축, 건축학, 그리고 우리의 건축학 연구

 

 

 

1.

건축학(建築學)’이란 물론 건축을 연구하는 학문 분과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시 건축은 그럼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사전적으로 이것은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기술 혹은 예술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며, 더 쉽게는 집짓기 술()’이라 요약할 만하다. 하지만, 모든 정의가 다 그렇듯, 이처럼 딱딱한 규정만으로 건축의 의미를 포괄하긴 힘들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프랑스의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1887~1965)가 건축을 빛에 비추인 볼륨들의 능숙하고, 정확하고, 장려한 유희라고 서술함으로써 건축에 시적 울림을 부여한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종 언급되듯 아키텍쳐(architecture)’의 어원을 헬라어 아르케(arche: 사물의 근원)’텍토니케(tektonike: 구축)’의 합성으로 본다면(특히 김영철의 번역서 꾸밈없는 언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의 역자 후기를 보시오), 건축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사물의 근원에 대한 고찰과 구현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소 비약적인 필자의 서술은, 이것이 결국 건축학이 지향해야할 바를 드러내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 건축학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사물의 근원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바를 탐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꽤나 이상적인 가능성 말이다.

 

2.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그 가능성은 정말 이상적이다. 굳이 건축학을 특정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모든 학문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할 목표점이 바로 그것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건축학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극히 실용적이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건축학과는 건축가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건축가(建築家)’라 함은 건물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로서, 엔지니어로서의 구조공학자나 시공전문가와 구별된 의미를 담는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상당수의 우리나라 대학 건축학교육이 5년제 전문학위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면서 학생들에게 강도 높은 디자인 교육과 실무훈련을 요청하고 있다. (예컨대, 모든 학생들이 매 학기 전공필수로 수강해야하는 설계 스튜디오는 한 두 명의 튜터와 10명 내외의 소수 학생으로 구성되며, 다른 과목의 배 이상이 되는 학점과 시간을 배정 받는다.) 그간의 대학 교육이 실무와 동떨어졌다는(대학을 나와도 현장에 곧 투입될 수 없다는) 이유와 국제사회에서 건축사(建築士)’ 면허를 상호 인정할 만큼의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설계교육이 충실해졌다는 긍정성 이면에는 건축학과에서 환경, 행태, 도시, 역사 등 여타 교과목의 비중이 축소되고 실무에 종속된다는 그림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역사과목을 담당하는 필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매 학기 첫 시간, 두 가지 학습목표를 내세운다. 하나는 물론 학과 전체의 실용적 교육목표에 맞춰진 것으로, 건축역사를 두루 공부함으로써 건축설계에 필요한 실용적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하나는, 실무에의 적용 여부나 학과의 목표와 관계없이, 학생들이 건축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이해하고 그 역사를 비판적으로 논하도록 교육받는다는 것이다.

 

3.

학부가 비교적 단일한 초점을 가지고 교육을 꾸려가고 있다면, 건축학과 대학원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가치를 두고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교수 개개인의 전공과 역량에 따른 큰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건축가를 꿈꾸며 좀 더 심화된 설계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이라면 건축디자인을 계속해서 전공하게 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란 얘기다. 예를 들어 보자. 건물의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전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최근의 경향으로 건축환경공학이 매우 각광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구조나 시공 분야 못지않게 공학적 소양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라 하겠다. 건축계획학(이라 관습적으로 불리던 가설적 카테고리) 가운데는 건축공간과 인간행태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과가 있어, 노약자를 위한 건물이나 범죄예방 설계 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자문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개 건물의 범위를 넘어서서 도시 전체를 다루는 도시계획학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도시의 정책과 밀접히 관련하며, 신도시의 마스터플랜으로부터 낙후된 지역의 재생사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 손길을 뻗고 있다.

한편, 필자가 연구하는 건축역사 역시 건축설계 및 상기 전공들과 깊이 관계하면서도 상당히 독립된 전공이라 하겠다. 좀 더 상술하자면, 건축역사는 흔히 건축이론이나 비평 분야와 함께 묶여 이야기되는데, 편의상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한국(동양)건축과 서양건축, 혹은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으로 구분되곤 했다. 한국건축에 대한 연구는 오랜 동안 전통 목구조에 대한 연구가 주조를 이루었고 문화재 연구와 연계됐었지만, 근래에는 전통마을과 역사도시로, 그리고 근대건축물 보존 문제와 현대 한옥의 가능성 타진으로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서양건축에 대한 연구는 연대기적 양식사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로부터 발원한 건축이론이 르네상스의 아이디어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발전돼왔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그러한 이론과 현대건축 디자인과의 관계성을 타진한다. 또한 서양 모더니즘에 대한 공부는 한국건축의 근대성이나 탈근대성을 궁리하기 위한 거울이 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현대건축을 해석하고 비평하기 위해서 현상학이나 후기구조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다양한 문화이론도 도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리 볼 때, 현대건축의 역사와 이론 전공은 다른 학문과의 대화에 가장 적극적인 분야라 하겠다.

 

4.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자문해보자. 건축학이란 무엇인가? 이제는 답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건축디자인이라는 실무를 뒷받침할 이론적 근거로서의 건축학은 반복된 실험과 수식계산이 요구되는 공학이기도 하고, 통계적 기법과 정부의 정책이 연관된 사회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축학의 역사·이론 분과는 실무의 토대가 되는 학문임과 동시에 실용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주장할 만한, 철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인문학 중의 인문학이기도 하다. 어떠한 학문이라고 다면적이고 복합적이지 않겠느냐마는, 건축학이야말로 최근 유행하는 말로 융복합학문의 전형인 셈이다.

허나 현실 세계의 사물의 질서는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말이 좋아 융복합이지 건축학은 관료화된 이 사회에서 푸대접 받기 일쑤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에서 건축학과가 공과대학에 속함으로써 학문 평가에 여타 과학기술 분야의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여기서 평가 기준이라 함은 논문출판 건수, 연구비 수주 액수, 특허 출원 건수 등 지극히 세속적인정량평가의 지표다. 이러한 기준의 근본적 출처는 아마도 한국연구재단의 학문분류체계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 건축학은 공학의 카테고리에 속박되어 옴짝달싹 못할 때가 빈번하다. (일례로, 건축학과에서 출판한 한국연구재단 논문은 최근의 BK사업과 같은 국가 연구과제에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공학 분야의 전공에서는 오로지 SCI급 논문만이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렇게들 목메시는 SCI급 논문을 관장하는 톰슨사가 건축을 인문학(Arts & Humanities)으로 분류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학문체계 가운데 건축학(뿐만 아닌 사실상 모든 학문)이 처한 난국의 꼬투리를 필자가 들춰낸 데에는 건축학의 입지를 다짐으로써 그 파이를 늘리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역으로 그 같은 학문의 종속적 관계를 경계하고 학문의 자율성을 주장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외부 연구비의 의존도를 낮추고, 행정적 간섭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혹자의 최근 외침은 무척 고무적인데, 사실 결코 새롭지 않다. 새롭지 않기는 매한가지나 과연 대학에서 학문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은 보다 근본적으로 보인다.) 건축학 가운데서도 특히 필자가 전공하고 있는 현대건축의 역사·이론·비평 분야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설령 필자의 세부분과가 건축학 전체를 아우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해도 말이다.

 

5.

실사구시의 시대요, 문사철이 잔뜩 위축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실리와 무관한(무관할 수 있는) 지적 호기심의 탐구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러나 기실 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할 만한 진정으로 실용적인방법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서두에서 제안한 사물의 근원에 대한 고찰이라는 건축학의 이상적 지향점은 추구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건축이 담는 인간의 삶과 역사, 건축으로 드러난 문화의 현상과 이데올로기는 많은 몽상가들의 해석과 비평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