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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5호] 현대무용은 오늘날 몸문화, 몸사상의 이상적 구현체

 

 

 

 

 

 

현대의 극장예술을 이끌고 있는 두 대표적인 예술 영역을 꼽아낸다고 하면 연극과 무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연극은 많은 경우 희곡, 혹은 대본이라고 하는 것을 매개로 주로 언어와 행동을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무용은 언어를 거치지 않고 바로 몸짓을 써서 인간의 감정이나 어떤 이미지, 혹은 사상을 전달한다. 물론 이 이외에도 음악과 연극의 결합체라 할 수 있는 고급스런 오페라와, 보다 대중적인 뮤지컬이 있겠지만(우리의 경우 창극), 두 영역은 예술 창조와 그 수용의 측면에서 그리 다양하거나 폭넓지는 않다 하겠다. 반면, 오늘날의 연극이나 무용은 매우 다양한 층위에 걸쳐 수용되거나 교육되면서 그 표현의 측면에서 놀랄 만큼 다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 특히 현대무용은 현대적 삶의 감성을 매우 민감하게 담고 분출하면서 역동적으로 변화해 가는 가운데 그 형태(혹은 스타일)를 일정하게 고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자주 컨템포러리 댄스라 칭해지기도 한다.

 

현대무용의 출현

 

현대무용(modern dance)은 역사적으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미국인이지만 유럽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사도라 덩컨이나 로이 풀러가 이런 예술운동의 선구자라 할 수 있고, 이어 미국의 루스 세인트 데니스, 헝가리인 루돌프 라반이 그 뒤를 잇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19세기 말까지 서구 극장예술을 크게 지배해왔던 고전 발레에 대한 저항 속에, 이국적이거나 때론 낭만적인 감성을 주로 발산하면서 세기말적인 분위기와 또 새로운 세기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나름대로 서정적으로, 또 시적으로 표출하는데 그쳤다. 이사도라의 유명한 맨발로 춤을 춘 자유로운 몸짓 전시나 로이 풀러의 거대하게 뒤감기는 스카프의 춤, 또 루스 세인트 데니스의 인도풍의 춤 등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하겠다. 이중 단지 루돌프 라반만이 어떤 과학적인 인식 속에서 서구의 발레와 다른 산업화의 문명 속의 어떤 표현적인 춤을 꿈꾸었을 뿐이다.

이 이후 1910~20년 사이에 오늘날의 현대무용으로 이해되고 있는 보다 기능적으로 조직화되고, 예술적으로도 매우 표현적인 춤이 등장하게 된다. 이 시대를 대표적으로 리드했던 이는 독일인 마리 뷔그만과 미국인인 도리스 험프리와 마사 그레이엄, 그리고 일본인인 이시이 바쿠이다. 마리 뷔그만은 스승 루돌프 라반의 체계적인 춤세계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독일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던 표현주의 사조를 받아들여, 가령 그녀의 솔로 마녀의 춤(1914)에서는 그로테스크하며 과격하고 신들린 몸동작을 보여주었고, 이어 토텐말(1930)이나 봄의 제전(1957)과 같은 춤에서는 코러스·가면, 그리고 연극적 구성 등을 써서 일견 합창무용극이라 할 수 있는 총체적 춤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모두 미국인들인 도리스 험프리나 마사 그레이엄은 각각 상승과 낙하, 긴장과 이완과 같은 동작 원리를 가지고 추상적이되 심리적이고, 극적인 춤을 만들었다. 한편 일본인 이시이 바쿠는 덩컨의 자유로움 춤사고와 뷔그만의 표현적 몸동작을 받아들여 자신의 춤을 무용시더 나아가 신무용이라 칭하면서, 1920년대 수인(囚人)과 같은 작품 속에서 보다 동양인적 몸동작으로 억압받고 있는 현대인의 존재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온 몸으로 표현하는 인간사

 

서구의 전통적 극장예술인 발레가 4~500년의 역사를 가지면서 특별한 움직임을 써서 동화적이거나 이국적인 소재를 환상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데 비해서, 20세기에 들어 독립된 극장예술로 발전하기 시작한 현대무용은 발레 예술의 부자연스런 인공적인 패턴의 움직임보다는 온몸의 표현성을 써서 인간의 존재성, 심리, 현대적 문명의 문제와 같은 보다 깊은 주제를 표현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연극만이 햄릿이나 오셀로와 같은 비극적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쓰지 않는 무용도 그와 같은 진지한 극장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당시의 현대무용은 입증하려 했던 것이다. 그 시기에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C. G 융이나 프로이트의 심리학, 당시 유행했던 표현주의 예술사조, 그리고 예술의 상징성과 기능성을 한껏 옹호했던 당시의 예술철학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겠다. 그래서 가령 마리 뷔그만의 춤에서 C. G 융의 심리학과 표현주의, 험프리의 춤에서 추상주의와 기능주의(대표적으로 그녀의 1928년 안무작 물의 연구1930년도 안무작 움직임의 드라마), 그리고 마사 그레이엄의 춤에서 프로이트의 심리학과 표현적 기능주의의 결합(1930년도 솔로 비애1947년 안무작 밤의 여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 같은 현대무용이 한참 주목을 끌면서 주요한 예술장르로 자리 잡아가던 시기를 예민하게 관찰했던 미국의 존 마틴 같은 춤비평가는 현대무용이 인간의 신체와 움직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인식을 갖고, 움직임을 통한 인간 감정과 심리의 전달(소통)을 꾀하며, 또 그 특유의 자유로운 형식성과 운동의 직핍성(다이너미즘)을 가지고 있는 것을 현대무용의 네 가지 특성으로 꼽아보기도 했다. 그와 달리 독일 같은 곳에서는 현대무용이 이전 시대의 예술과 다른 점은 공연자가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독특하게 인식하며 구성해가는 그 공간지각력에 있다고도 봤다.(그렇다면 이 다섯 가지 특성을 현대무용의 5원리라 볼 수 있겠다.)

 

고등교육과정에의 편입

 

이 같은 현대무용은 독일·미국·일본 등을 중심으로 1950년대 말까지 활발하게 번지며 독립적인 예술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면서 현대무용의 자유로운 창의성과 그 교육적 효과를 예견한 미국의 마가렛 두블러 같은 교육자들에 의해 인문대학 고등교육의 한 교과목으로 편입된다.(미국의 경우 컬럼비아 사범대, 위스콘신대, 뉴욕대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1960년대와 70년대 들어 나름대로 현대무용의 조직화된 기술적 테크닉과 그 속에 짙게 내재된 감정이입적 심리주의, 더 나아가 문학성에 반기를 드는 일군의 포스트 모던(후기 현대) 댄서들의 출현이 따르게 된다. ‘존재하는 모든 소리는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실험음악가 존 케이지의 사상을 현대무용에 적용하였던 머스 커닝햄과 그를 따르는 시몬 포르티, 이본 레이더, 트리샤 브라운, 스티브 팩스톤 등 일군의 젊은 안무가들은 존 케이지·커닝햄의 우연의 기법과 마가렛 두블러의 제자이기도 한 안나 할프린이 시도하고 있었던 즉흥의 기법을 받아들여 굳어진 현대무용을 보다 유연하며 자유스럽고, 또 일상적인 예술행위가 되게끔 했다. 더불어 그들은 해프닝, 퍼포먼스(아트) , 이웃 시각 예술에서 유행했던 사조도 받아들여 춤이 굳이 극장 안이 아니라, 또 굳이 전문무용수를 사용하지 않아도 공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런 가운데 1980년대 들어서는 현대무용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적 대중주의와 결합, 어느 때보다 더 친근하고 자유스러우며(민주적이며), 때론 탐미적이거나 아이러니컬한 공연 양식이 되었다. 스티브 팩스톤의 접촉즉흥춤, 루신다 차일즈나 로라 딘의 미니멀적 패턴춤, 메레디스 몽크나 필로보러스의 연극성과 풍자성을 이용한 춤(댄스시어터)이 그 예들이라 하겠다.

그 같은 미국 중심의 형식주의적인 포스트 모던춤에 대해 표현주의적 춤의 주요 진앙지가 되었던 독일과, 그것으로부터 적지 않게 영향받은 일본은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들어오면서 춤에 연극성과 퍼포먼스성을 결합한 매우 충동적이고 과격한 춤연극이라 할 수 있는 탄츠테아터’(독일) 및 몸미

학과 신화성의 결합을 꾀한 부토’(일본)와 같은 공연 형식을 발전시킨다. 그러면서 그들은 미국 중심의 가벼운 미학적 대중춤으로가 아닌, 춤이 현대 문명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그 속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되길 집요하게 시도했다. 얼마 전 작고한 독일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그녀와 그녀의 부퍼탈무용단은 수차례 내한 그들의 1982년 대표작 카네이션등을 보여주기도 했다)와 오노 가즈오, 신카이 주크, 다이 라쿠라 칸과 같은 일본 부토 그룹()이 거기에 속한다 하겠다.

 

현대무용의 대중화

 

한국의 경우도 그 같은 서구의 현대무용의 흐름을 비교적 충실히 받아들여 이시이 바쿠의 제자이기도 한 최승희가 첫 안무작 세레나데(무소르그스키 음악)1927년도에 발표하고, 1930년대 들어 한국민속춤의 개량과 함께 표현주의 계열의 춤을 국내에 선보이려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어 해방 이후 무용교육자 함귀봉, 무용평론가 문철민과 같은 이들도 (독일식)현대무용의 중요성을 인지, 그 체계적인 교육적 전파를 시도했지만 마찬가지로 단기간에 그쳤다. 그러다가 1960년대 들어 이화여대에 무용과(4년제)가 설립되어 현대무용이 주요 교과목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 이후 급속히 확대, 오늘날 50여 개 대학(2년제 대학 포함)과 여러 예술 중·고등학교를 통해 활발히 교육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그것이 일명 거리춤, 또 재즈·힙합을 포함한 방송댄스와 결합되면서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대중가수 PSY의 말춤도 어쩌면 광의의 현대무용으로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국내 예술춤계의 경우, 육완순과 같은 무용교육자, 홍신자와 같은 실험무용가, 컨템포러리무용단이나 툇마루무용단, 그리고 박명숙·남정호·전미숙·안애순·홍승엽·안은미·류석훈·LDP 등이 모두 이 예술적 흐름 안에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의 현대무용은 개인적 몸짓·사상 표현의 다채로움 때문에, 또 개인과 소그룹 중심의 간편한 활동 방식 때문에 어느 예술 장르보다 더한 예술적 표현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 더불어 최근 몸문화, 몸사상의 대두로 현대무용은 단순한 기술의 전시 그 수준을 넘어서면서 댄스시어터 혹은 탄츠테아터 양식의 공연에서 보듯 그것은 연극성·건축적 구성력까지도 껴안고 있는 종합적인 표현체가 되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