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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48호] 학계 간 라운드테이블 — 융합,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라운드테이블

<각 전공분야에서 학계 간 융합을 바라보는 관점> 

 

진행 및 기록 : 박시은 서강대학교 대학원신문 편집장

토    론 : 안근영 미디어학과(05BOX 감독)

이찬주 신문방송학과

박지현 아트&테크놀로지학과

박연주 행정학과

이승은 서강대학교 대학원신문 편집위원

전건웅 서강대학교 대학원신문 수습편집위원

 

이번 라운드테이블은 서강대학원신문 148호의 주제 ‘융합’이란 키워드와 함께 기획된 ‘각 전공분야에서 학계 간 융합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아보며 진행해보고자 한다. ‘융합’이라는 단어 자체가 전공 분야에 따라 익숙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계간의 융합을 해야 한다고 배우며 공부하고 있지만, 기술 중심의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기술에 대해서만 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코딩(Coding)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융합인재’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코딩처럼 기술을 하나쯤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 부담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전공자들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융합이라는 용어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지 먼저 코딩에 대해서 운을 띄어보았다.

 

박시은(이하 신문사)> 융합을 각 전공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선 ‘코딩’과 관련이 없는 비전공자 같은 경우, 기술에 대한 융합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토론자분들께 코딩을 경험해 본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박연주> 저는 코딩에 대해 전혀 생각도, 접해볼 경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행정학과가 사회과학계열, 문과 쪽에 가깝다 보니까 코딩을 배우지 않습니다. 이제 대학교 학부생 1, 2학년 같은 경우 코딩을 필수 과목으로 배워야한다고 하는데, 저까지만 해도 그런 제도가 없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안근영> 코딩을 할 줄은 잘 모릅니다. 미디어아트 만들 때 기본적으로 프로세싱을 다뤄본 적은 있습니다. 그래서 코딩이 뭔지는 알지만 굳이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코딩을 배우면 당연히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서 좋긴 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작품을 만들거나 기획할 때 코딩을 잘하는 사람을 섭외합니다. 섭외할 때 이야기를 나누면서 실현이 가능한지 물어봅니다. 다시 말하자면, 코딩의 기본적인 것은 아는 상태에서 접근하는 거죠.

 

이승은> 우연한 기회에 과목을 수강하면서 코딩을 접했습니다. 1학기 때는 코딩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듣다가, 수업을 들을수록 비전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배워두면 확실히 쓸모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능동적으로 코딩을 배우는 것에 임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빅데이터 자격증도 같이 준비하고, 스터디도 하게 됐습니다.

 

전건웅> 융합이라고 한다면, 제가 생각할 때는 어떤 분야든 합치면 융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에서나 학교에서는 기술적인 프로그래밍이라든지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기술적인 융합만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공부와는 맞지 않고, 저한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대학원에서는 전부 프로그램을 다루고, 빅데이터에서도 융합을 해야 한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걸 꼭 해야 하나?’, ‘왜 해야 하지?’라는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신문사> 코딩을 주로 배우는 전공자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박지현>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했지만, 처음에는 성적에 맞춰서 전공을 선택했기 때문에 코딩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학과에서는 C언어부터 가르치는데 어려웠지만 하다보니까 적응이 된 거죠. 대학원 올 때는 코딩 말고 다른 쪽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아텍이였습니다. 그런데 아텍에서 코딩을 하면서 코딩이 저랑 잘 맞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부에서 코딩 교육을 내세우고 있는데, 저 학부 때 코딩 교육이 들어왔어요. 그때 제가 무용과 조교로 들어가서 코딩 교육을 했었습니다. 코딩 교육의 목적이 비전공자들에게 ‘컴퓨팅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건데, 지금 코딩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문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융합이라는 것이 꼭 그 기술을 갖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되는 거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인문사회 쪽 소양이 없으니까 그러한 소양을 가지려 하는 것이고, 비전공자는 컴퓨팅적 사고를 가져서 어떠한 흐름으로 되는지, 이렇게 서로 이해하는 게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안근영> 컴퓨팅적 사고란 무엇인가요? 컴퓨팅적 사고가 컴퓨터를 다룰 때 언어 능력의 차원에서 얘기하는 건지 더 나아가서 다른 방식을 얘기하는 건가요?

 

박지현> 영어권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언어를 접하는 것처럼 코딩을 하는 이유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사건을 풀어나가는 구조나 문제를 접근하는 사고방식이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컴퓨팅적 사고는 한마디로 알고리즘 사고라 보시면 돼요. 언어적인 측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예를 들면, C언어만 배워도 다른 언어를 접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언어 체계, 흐름이 비슷하기 때문이죠. 알고리즘을 짰을 때 이것도 언어기 때문에 사고의 순서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할 줄 아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거죠.

 

신문사> 실제 삶에서 어떤 문제가 나에게 주어졌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죠?

 

박지현> 네. 저희 영역뿐 만 아니라 다 같이 무언가를 이야기 할 때, 서로 접근 방법이 다른 거죠. 저의 예를 들자면 지난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세 명이 있었는데 굳이 (분야를) 나누자면 문과, 이과, 예체능이었거든요. 문제 정의를 내리고 풀어나가는 진행 단계에서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찬주> 저는 정부나 대학에서 중점적으로 기술 위주의 융합을 강조하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과는 다릅니다. 물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무비판적으로 무용과 학생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융합이라는 게 종류가 여러 가지잖아요. 어떤 지식과 지식의 융합이라든지, 사회학과 물리학의 융합 이런 식이죠. 이러한 융합은 두 영역의 도메인 지식을 다 알아야지만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융합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기술을 이렇게 까지 강조하는 게, 인문사회 계열에서 시작할 수 있는 융합의 가장 기초가 그 전공자의 도메인 지식에 방법의 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학부 때 R이 어려워서 포기를 했었습니다. 대학원와서 다시 R을 배우면서 텍스트 마이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데이터 마이닝도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 전에는 회기 분석, 내용 분석 등 전통적인 방법으로 하던 것을 그런(코딩) 역량을 갖추니까 신방과에서 다룰 수 있는 연구주제가 훨씬 더 넓어졌습니다. ‘이래서 기술을 강조하나 보다.’, ‘이래서 이것(코딩)부터 시작하라고 하나보다.’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문제도 있겠지만 이런 목적들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문사> 실제로 행정학과에서의 코딩을 배워야 하는 필요성은 어느 정도나 되나요?

 

박연주> 아직까지는 전혀 필요성은 없지만, 요즘에는 초등학생들한테 코딩을 가르치거든요.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있어요. 저희가 예를 들어서 ‘인터넷’에 대해서 정확히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희끼리 다 공유하고 있는 지식과 가치가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코딩이라는 게, ‘약 20년 후쯤 되면 자연스럽게 코딩도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지식과 가치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자면 저희가 한글과컴퓨터, 파워포인트도 처음 사용할 때 배우지 않아도 그냥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것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제는 초등학생부터 가르치는 이유가 초등학생들에게 코딩에 대한 기본 지식과 가치를 주입을 시켜서 나중에 그들이 저희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그것을 다른 영역에 적용시켜서 사용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저도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거죠. 아직까지 코딩에 대해서 개념도 모르고,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있지만, 지금 여러분이 하는 얘기를 제가 거의 못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10년 후에는 인터넷을 모르는 80대, 90대 할머니처럼 나만 코딩을 못 알아듣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이 있죠.

 

전건웅> 전 기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에 비판적입니다. 이는 이윤 창출, 기업에 친화적이라 생각합니다. 취직을 하기 위해 기업에 맞춰가는 느낌이 든다는 거죠. 그것이 이제 융합이라는 걸로 포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코딩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계속 작용하는 거죠. 어떤 반항심마저 듭니다.

 

안근영> 저희 연구실이 기본적으로 융합하는 연구실이었습니다. 뉴미디어아트라는 용어가 처음 나왔을 때가 2000년대 초중반입니다. 제가 대학원을 처음 들어갔을 때 2011년도예요. 2011년도는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가 뜨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미디어아트가 궁금해서 배우고 싶었고, 원래 전공이 영화과이기 때문에 영화를 더 잘 찍기 위해서 대학원에 들어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서 느낀 것은 처음에 사람들이 ‘이게 대세다’라고 했지만, 실제로 10년이 넘고 나서(2010년 초중반) 미디어아트란 용어가 이제 흔한 용어가 됐습니다.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게 되고. 미디어아트가 처음에 나왔을 때는 예술과 테크놀로지, 미디어가 결합된 융합 학문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융합으로 새로운 아트워크(Artwork)를 만드는 장르였거든요. 지금은 융합이라는 자체가 전반적으로 다른 지향으로 가고 있죠.

정부에서 말하는 융합과 코딩 교육의 문제점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지점일 거예요. 이것이 취업의 목적이고, 이윤 창출을 할 수 있는 건데,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의무교육이 되는 것도 역시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국영수과 위주로 공부하라고 배웠습니다. 원래 그 전에는 학문이라는 게 통합적으로 배웠거든요. 사실 다 배워야 합니다. 이걸 다 배워야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대학이라는 곳에 가서 세분화 시켜서 공부하는 거죠.

이게 과연 ‘지금 사람들에게 코딩이 융합적인 사고를 키우는 것인가?’라고 했을 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융합 분야에서 인터렉티브 아트를 강조했다가 지금은 그걸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앱 개발이라든지 이런 쪽으로만 치중을 해요. 저의 학부 사람들을 보면, 초기에는 아트, 작품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설치 작품이나 시각화 작품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 후배들을 보니까 졸업 작품으로 앱 개발을 하고, 즉 취업 위주로만 생각합니다.

융합이라는 것은 간학제적 학문에서 다학문(multidisciplinary)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고, 다양한 학문적인 접점을 찾아서 새로운 사고를 해보자는 지점을 찾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게 단순하게 코딩이 융합적인 사고를 키우는 데 있어서 좋다, 나쁘다, 이런 차원은 아닌 것 같아요. 당연히 코딩은 중요한 것이고, 하면 생각이 확장되는 게 맞죠. 사회 레벨에서 말하는 융합적인 사고와, 대학에서 말하는 융합적인 사고는 간극이 항상 있어요. 근데 정부나 사회, 기업에서 말하는 측면은 그 쪽이 맞을 거예요. 그래서 코딩 교육을 강조하는 거고, 코딩을 하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건데, 그렇게 따지면 코딩을 안배우면 불안하잖아요. 사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요. 코딩을 잘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과 의사소통만 된다고 하면, 즉 컴퓨팅적 사고력만 갖고 있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구현할 수 있게 소통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돼요. 그런 것에 대해서 저에게는 부담을 가지거나 조급하다는 게 사실 와 닿지 않습니다.

 

신문사>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어느 정도가 될까요? 코딩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의사소통하려면 어쨌든 그 분야에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배워야 하는 당위성은 그대로 주어지지 않을까요?

 

안근영> 어느 정도 깊이에 따라 다르겠죠. 예를 들면 제가 여러분에게 영화 용어를 쓰면서 이야기하면 못 알아들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를 일반적인 레벨까지 낮춰주고 얘기해야 하는 것인데, 어느 정도 그 개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할 때 설명 없이 쉽게 넘어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코딩에 대해 기본적인 것만 알아도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폭은 훨씬 넓어지는 거죠.

 

이승은> 저도 역시 코딩을 하면서도 거기(기업)에 끼워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언론사에서도 데이터 분석을 할 줄 아는, 코딩을 하는 능력을 갖추길 원합니다. 융합이 언론사까지 확장된 거죠. 하지만 막상 그 능력을 갖추고 가면 실제 전통적인 언론인들의 업무를 보는 것이 아닌 뉴미디어 팀으로 빠지게 됩니다. 기자의 타이틀을 가졌지만, 데이터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언론고시 준비와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능력까지 갖춰서 왔지만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노동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창조경제 때부터 융합이라는 단어가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가 압박감을 받고 있지만, 이를 저항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게 가장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항하고 싶은 입장입니다. 코딩을 배워보니까 좋기는 하지만, 속내는 얘기 나누다보니까 융합인재라는 것에 저항하고 싶은 입장인 것 같더라고요. 딜레마라는 말이 무엇인지 와 닿았습니다.

 

이건웅> 요즘 문제가 많이 되는 게, 언론사에서 영상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뉴미디어 팀을 뽑아요. 그런데 그 팀들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언론사는 언론사 타이틀만 주고 유튜브에서 창출되는 수익금만 임금으로 줍니다. 오히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팀을 만들어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팀으로 만들고, 일을 많이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저항감이 생겼고, 배울 기회는 많았지만 코딩을 일부러 안배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굉장히 불안합니다. ‘나중에 다른 분야 사람들과 얘기 나눌 때 말이 안 통하면 어떡하지?’이런 생각도 드는 거겠죠.

 

안근영> 실제로 불안한가요?

 

박연주> 네, 솔직히 불안하죠. 행정학과에서 경제학을 배운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카르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용의자의 딜레마라고 하죠. 둘이 합쳐서 최악의 경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런데 이제 최적의 효율을 얻으려면 비전공자는 그것(코딩)에 대해 저항하고 전공자는 그 분야를 깊게 연구해서 발전시켜 나가고, 비전공자는 그것을 굳이 할 필요 없이 자신의 분야를 열심히 하는 거죠. 이게 아마 사회적으로 최적의 효율을 이끌어내는 방법일 거예요.

카르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저희도 이제 붕괴하게 되는 거죠. 비전공자는 코딩을 배우지 않으면 불안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배우게 되고, 이제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비전공자들도 불안하니까 같이 배우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찬주> 저는 체제에 복종하는 입장입니다.(웃음) 큰 저항감도 없었습니다. 대학원 올 때는 학문의 울림이 클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제는 졸업을 빨리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어요. 저는 사실 융합과 관련된 정책이 나오는 걸 보면서 알았죠. 기업들에서 융합을 원하는 구나. 그래서 저는 철저하게 거기에 맞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융합 쪽으로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제 방향에서는 거부감 없이 좋았습니다. 의견들을 들으면서 공감이 됐던 것이, 학계수준의 융합과 기업과 산업수준의 융합이 질적으로 많이 다르다고 하셨잖아요. 학교에서 융합을 강조하는데, 제가 하면서도 ‘이정도가 융합이라고?’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신방과에 데이터를 적용하는 게 융합이야?’ 어이없기도 했습니다.

요즘 마지막 학기 다니면서 논문을 쓰면서 (취업)원서도 넣고 있어요. 원서 쓸 때 자기소개서에 ‘신방과 전공생이면서도 데이터를 잘 다룰 줄 안다’를 어필하는데, 합격률이 괜찮은 거예요. 산업 수준에서는 이쪽 방향을 원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이 정도의 얕은 수준도 융합이라 하는 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학계수준에서 진정한 경계가 없어진 다학제간의 융합이 일어나려면 한참 멀었지만, 산업수준에서는 얕은 융합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안근영> 저는 그게 얕은 융합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융합이라는 것 자체가 얕고 깊은 게 어디 있겠어요. 두 가지 이상을 결합시킬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융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융합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거죠. 과거에는 그것조차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자체가 그전보단 우리가 발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라 생각해요.

기업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시키는 일만 합니다. 그렇게 융합을 크게 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공학 분야 친구들은 7년 이상 일하다보면 시스템이 바뀌죠. 시스템이 바뀌면 새롭게 해야 돼요. 하지만 일만 하다보니까 새로운 것을 배울 시간도 없고, 일만 하다 끝납니다. 7년으로 인생이 끝날 수도 있죠. 항상 공부해야 해요. 영상 쪽도 마찬가지인데, 트랜드가 계속 바뀝니다. 사람이 기술을 못 따라가요. 어린 애들은 더 잘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은 결국 사회가 조장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소모품으로 쓰는 거고. 공부를 오래한 사람들이 항상 얘기하는 것이 있어요. 본질을 어떻게 보고, 다루느냐의 문제거든요. 사실 본질은 비슷해요. 예를 들면 물리학자와 공학자, 철학자가 생각하는 지점이 언어와 의식이 다를 뿐, 생각은 비슷하거든요. 공통점이 다 있어요. 그 공통점 안에서 소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연구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에 대해서 세상 흐름이 어떻게 흐르는지만 알면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어요.

한정적으로 더 좋은 기업에 가야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면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걸 선택하는지에 따라서, 이게 옳거나 그르다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선택의 문제죠. 좋은 직장가고 싶어서 거기에 맞춘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명료하고 삶의 방향이 뚜렷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까 코딩을 안 배워서 불안하시다고 했는데, 마음이 아팠어요. 저도 매순간 불안하니까, 어느 순간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인드가 되더라고요. 세상에 안 불안한 사람이 없잖아요? 다 불안하니까 이러한 라운드테이블을 하는 거 아닌가요.

 

신문사> 그렇죠. 그러한 불안감에서 시작됐습니다. 시대에서 요구하는 것이 나와 적합하다 느꼈을 때, 그것을 열심히 가꿔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사회에서 무언가를 강조할 때 불안감이 있고, 뒤처진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게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인데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내세우는 가치들에 의해서 걱정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은> 사회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이러한 얘기를 다뤄줬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엔 구조적인 문제가 부딪힐 수밖에 없잖아요. 신자본주의 형태에서 봤을 때는 유연한 노동 시장에서 한 사람에게 요구하는 역량이 계속 늘어 가는데, 그래서 정책을 다루는 사람이 이에 대해 얘기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죠. 그렇다면 덜 불안해할 수 있고요.

 

안근영> 우리나라 정치인 중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정부는 국가의 삶의 방향성을 정해줘야 하기 때문에, 지금 융합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간 것이고요. 융합이라는 타이틀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4차 산업혁명과 연결돼서 나온 겁니다. 기본적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거든요. 노동시장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도 외국의 싼 노동공장을 샀다가 다시 돌아오고 있잖아요. 그 이유는 글로벌 시대에서 다시 폐쇄적인 시대로 가고 있어요. 결국에는 생존의 문제인 것 같아요. 과거 글로벌 경제가 호황이었을 때는 상관이 없는데, 호황이려면 한쪽은 불행해야 돼요. 사실 미국은 군수산업으로 호황을 누렸었습니다. 이는 어떤 나라는 항상 전쟁을 해야 된다는 거죠.

전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우리 정부에서도 융합을 강조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우리가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고, 갖고 있는 것은 사람의 뇌밖에 없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을 때는, 지금 노동인구도 계속 줄고 있잖아요.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로 갖고 있기 때문에 명확한 답이 있다곤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이것은 어떠한 삶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융합적인 사고도 결국 먹고 살려고, ‘융합적인 사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가 나온 것이라 봅니다.

 

신문사> 마지막으로 앞으로 융합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각 전공분야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각 분야에서 어떻게 융합을 접하면 좋을까요?

 

박지현> 융합은 학문마다 영역이 다 다르잖아요. 서로 그것을 감수하고 의사소통할 때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내려놓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기술을 이미 배운 입장에서 융합을 접하는 거니까, 예를 들면 신문방송학과와 제가 같이 무언 갈 하고 싶으면 학문을 배워도 좋지만, 처음에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그 분야의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만 얘기해도 크게 와 닿거든요. 지금 제가 학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만 봐도 대학에 가려면 생활기록부에 코딩교육을 배웠다는 것을 쓰고 안 쓰고의 차이가 큽니다. 이정도로 사회가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로 학문에 대해서 이해하고,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너무 융합에 급하게 다가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전공자에게 코딩을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먼저 그 사람과 대화를 해봅니다. 저도 아텍에서 느낀 게, 가끔 프로젝트를 할 때 대화가 안 될 때가 있거든요. ‘왜 저런 방식으로 다가가지?’등의 생각이 드는 거죠. 그 한 단계만 넘어서도 충분히 나중에 코딩을 실질적으로 배우거나 할 때,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할 수 있구나’에 대한 벽이 조금 낮아지니까요.

 

이찬주> 저는 ‘왜?’라는 질문이 이미 스스로 정립된 상태에서 문과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길 하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산업의 인재로서, 아니면 내 연구를 더 풍성하게 하겠다는 학문적인 목적이든 목적이 스스로 정립된 다음에, 아예 두려움이 큰 사람이 (코딩을) 시작하려면, 이걸 C‘언어’라 하잖아요. 처음에 코딩 공부가 어려워서 스터디를 시작했을 때, 제가 한 학기 먼저 코딩을 공부해봤다는 이유로 강의식으로 맡아서 하게 됐었어요. 책임감이 생기니 어쩔 수 없이 코드를 뜯어보게 됐는데, 정말 영어를 처음 공부할 때처럼 문법이라 생각하고 왜 여기 괄호가 붙고, 이러한 함수, 파라미터가 왜 쓰이는지 등 하나하나 샅샅이 분해했어요. 두려움을 가지던 문과생이었던 제가 언어라 생각하고 배우니 보이더라고요. 외국어 하나를 배운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첫 번째가 방법이었다면, 인문사회계열 학생이 배울 때 자신의 도메인 영역에 대한 중심을 잘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코딩이 주가 아니잖아요. 그 도메인 지식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융합이 되고, 자신의 영역이 발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새로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두 가지 팁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의견을 들으면서 융합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가장 기초적으로 시작하기 좋은 융합은 자신의 지식 영역을 제대로 구축한 다음에 방법을 끌어다 오는 것이라 생각해요.

 

박연주> 제가 가장 비전공자에 가깝다 생각하는데, 융합에 대한 최소한의 이야기를 하려면 코딩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융합이란 것도 기본적인 가치관과 지식을 공유를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딩이라는 주제를 말했을 때 다들 어느 정도 이해와 지식을 가지고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이해가 안 되다 보니까 그렇게 되다 보면 전 융합 자체가 안 되는 거잖아요.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근영> 코딩이 기술적인 측면인데, 아까 말씀처럼 방법적으로 쓰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융합 학문에 대해 공부했던 입장에서 얘기 하자면, 결국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본질을 찾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미디어아트가 처음 나왔을 때, 인터렉션이 되는 것 자체에 사람들이 신기해했습니다. 상호작용 하는 것 자체가 첫 번째의 기술적 가치였는데, 어느 순간 그게 반복되다 보니까 어떤 학회나 비엔날레 같은 곳에 가보면 결국에는 기술 시연장 밖에 안 됩니다. 사실 거기에서는 본질이 빠지는 거죠. 콘텐츠를 어떻게 하고, 기술을 거기에 집어넣어서 콘텐츠를 부각시키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가치를 더욱 끌어내야 하는데, 이젠 새로운 기술 시연장 밖에 되지 않는 것 때문에 점차 미디어아트에 대한 관심사가 줄어들고 외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무엇을 만들 것이고, 어떤 가치관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건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본질에 대한 생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간에. 아까는 이유를 찾으셨고 어떤 방법에 대해서 말하셨잖아요. 다 맞는 얘기입니다. 저도 공부할 때 제가 다 했던 방법들입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고, 이건 왜 그렇지?’에 대한 의문들이 많이 생겼고, 그로 인해 첫 번째로는 시선이 많이 확장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영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엮어서 새로운 생각을 도출한다는 것 자체가 융합적인 사고입니다. 거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코딩도 마찬가지 일거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하셨고, 저도 얘기 나누면서 코딩 공부에 대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이러한 장들이 많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보면 더 좋은 방향으로 사고하도록 바뀔 것 같습니다.

 

이승은> 융합에 대해서 조금 찾아보다가, 러쉬(LUSH)가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왜 그랬을까 찾아보니 러쉬 측에서는 ‘더 이상 인스타그램으로 고객들과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는 직접적으로 고객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 개발할 것이니 인스타그램을 그만 하겠다’라고 처음으로 대기업에서 인스타그램이란 마케팅 도구를 안 쓰겠다는 의사를 표했어요. 이러한 반응을 계속 관심 있게 살펴보면서 관련된 책을 찾아봤는데요. ‘콘텐츠의 미래’라는 책에서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어요. ‘연결이 중요하다. 콘텐츠를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기업은 그것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콘텐츠를 먼저 만들어 놓고 사람을 끌어오는 게 아닌, 사람을 먼저 모을 생각을 하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학계에서도 그러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도를 하는 걸 보면서, 저는 무작정 융합이라는 걸 봤을 때 아무 감흥이 없었고, 낭만주의적인 담론만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여기서 융합에 대한 구체적으로 많은 의견이 나눠지는 걸 보면서 학계에서도 그렇고 많은 전문가들이 진정한 융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발전시키려 하는 노력이 있으니 마냥 불안해하고 우울해 하지만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웅> 저도 막연하게 융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제가 공부하는 것에 이러한 것들(융합)이 필요하고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데 코딩이라든지 프로그램이 필요하겠다 싶으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융합이라는 단어가 던져졌고, 그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면 스스로의 연구나 삶의 질의 향상에 의미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