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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49호] 올림픽이 외국인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_김영주

올림픽이 외국인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

 

김영주 _ 일반대학원 심리학과 박사과정

 

4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 올림픽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열에 아홉은 ‘평화’, ‘화합’과 관련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올림픽의 개최 목적 역시 이에 부합한다. 승리보다는 참가에 의의를 두며, 국력이나 정치와는 무관하게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 바로 올림픽 정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 동안 이뤄지는 내용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평화의 메시지와는 조금 다른 장면을 목격하기가 쉽다. 가령, 개막식과 폐막식을 제외한 나머지 올림픽 기간에는 메달을 따내기 위해 선수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내내 이뤄진다. 메달과 승리에 대한 열정은 때론 집착으로 이어져 타국 선수들에 대한 맹렬한 비난으로 귀결되는 일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올림픽에서 이뤄지는 실제 내용은 승리를 놓고 벌어지는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올림픽의 이러한 경쟁적 특성은 그 본래 의도와는 달리 외국인에 대한 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궁금증을 갖고서 올림픽 기간 수행했던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는 올림픽이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회심리학 이론을 살펴본 후 실제 올림픽 기간에 진행했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올림픽 패러다임: ‘우리’ 대한민국 vs. ‘너네’ 나라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정의할 때 가지는 정체성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개인적 정체성으로, 이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특성에 기반하여 갖는 정체성이다. 다른 하나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갖는 정체성으로, 자기가 속한 사회적 집단에 비추어서 정의한 사회적 정체성이다.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개인적 특성에 기반하기보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 비추어서 자신을 정의하려는 경향이 더 높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그러한 긍정적 느낌을 높게 유지하려는 동기가 있다. 사회적 정체성 측면에서 이러한 동기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충족된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반이 되는 내집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내집단 편애(ingroup favoritism)를 보이거나, 내집단에 반대되는 구성원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외집단 폄하(outgroup derogation)를 통해 긍정적인 사회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정체성이 강할수록 내집단 편애는 높아지고 외집단 차별 현상이 두드러진다. 올림픽은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을 활성화하는 상황적 요인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개인 참가자이기보다는 각 국가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참가한다.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은 태극기나 애국가와 같은 국가 상징물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처럼 올림픽은 한 국가의 시민이라는 정체성, 즉, 한국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쉽게 활성화하기 때문에 내집단인 대한민국에는 편애적인 태도를 보이고 외집단인 다른 국가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커진다.

사회 정체성 이론은 현실적인 갈등 없이 그저 사소한 기준으로 집단을 나누기만 해도 내집단에게 편애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을 가정한다. 그 때문에 두 집단이 어떤 이익을 놓고 실제로 대립하는 상황이라면,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게 될 수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실집단갈등 이론(realistic group conflict theory)에 의하면, 한정된 자원을 놓고 두 집단이 현실적으로 대립할 때 집단 갈등이 생긴다고 본다. 실제적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하게 되기 때문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어 집단 간 갈등이 유발되는 것이다. 올림픽은 ‘메달’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얻기 위해 국가 간에 매우 치열한 경쟁이 열리는 장이다. 따라서 상대 국가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유발할 수 있다. 나아가, 여기서 촉발된 경쟁심과 갈등 인식은 실제로 한국에서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거나 한국 사회에 위협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드러내는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한국인 피험자를 대상으로 올림픽이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본 연구는 다양한 외국인 중에서도 동남아 외국인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다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인은 이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 중 베트남,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 수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많고,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외국인 집단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는 것이 실질적 함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이들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

연구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람들이 동남아 외국인에 대해 지니고 있는 태도를 올림픽 개최 이전에 측정하였다. 그 후 같은 측정 도구를 평창 동계 올림픽 기간에 또 다른 연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측정한 후, 두 측정값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어떤 집단에 대해서 갖고 있는 태도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따라서 가능한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하여 집단에 대한 태도를 관찰하는 것이 그 현상을 확인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동남아인에 대한 태도, 행동 의도, 그리고 실제 행동을 측정하여 비교하였다.

주요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동남아인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알아보는 질문을 두 기간에 측정하여 비교한 결과, 예상대로 올림픽 이전(개최 5개월 전)보다 올림 기간 중에 동남아인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혹자는 이러한 결과가 경쟁 때문이기 보다는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선수가 올림픽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대안 가설을 배제하기 위해, 국내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올림픽에서 꽤 좋은 성적을 거두는 중국인에 대한 태도도 측정하였다. 그 결과, 중국인에 대한 태도 역시 올림픽 기간에 더 나빠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올림픽에서 거두는 국가 성적이 부정적 태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국내 체류하는 동남아 외국인들을 돕고자 하는 행동 의도를 측정하여 비교해보았다. 연구 참가자들에게 비영리 단체 목록을 제시한 후, 기부하고 싶은 단체를 한 곳만 선택하게 했다. 이 중 한 곳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돕는 곳으로, 해당 단체를 선택하는 비율이 올림픽 기간에 더 낮아지는지를 확인했다. 연구 결과, 외국인 노동자 지원 센터에 기부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올림픽 전(개최 4개월 전)보다 올림픽 기간에 더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올림픽의 부정적인 영향이 얼마나 지속하는지도 알아보기 위해 올림픽 후(폐막 5주 후), 다른 연구 참가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 보았다. 그 결과, 외국인 근로자를 도우려는 의도는 올림픽 이전 수준으로 다시 높아졌다. 따라서 올림픽 기간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도우려는 태도가 낮아지지만, 그러한 태도는 올림픽이 끝난 이후까지 지속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연구는 실제 세계에서 나타나는 차별 행동을 측정하였다. 또한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한국인이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가진 외국인에게까지 확장되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캐나다인 조건을 추가하였다. 연구는 인종 정보(베트남인, 캐나다인, 한국인)만 다르고 모든 내용이 같은 세 가지 이력서를 제작한 후,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 글을 올린 총 501명 채용 담당자에게 무작위로 한가지 이력서를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력서 송부 작업을 올림픽 이전(개최 한 달 전)과 기간 중에 두 번 실시하여, 동남아인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하겠다는 응답이 올림픽 기간에 더 낮아지는지를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 올림픽 이전에는 베트남인을 채용하겠다는 답변과 한국인을 채용하겠다는 답변 간에 차이가 없었지만, 올림픽 기간에는 한국인을 고용하겠다는 응답이 베트남인 채용보다 더 높았다. 반면 캐나다인과 한국을 비교했을 때는 기간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올림픽 중에는 한국인에게는 우호적이지만 동남아인은 차별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우호적인 외국인 집단에게는 그러한 경향이 관찰되지 않는 점을 확인하여 외국인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있음을 일부 확인하였다.

 

올림픽은… 멀리서 보면 평화, 가까이서 보면 경쟁

지난 2018년 2월, 평창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은 여러 이유로 한국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주었을 것이다. 한 달 남짓 진행되는 올림픽을 즐기는 동안 그 시간을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쳐 준비해온 선수들의 열정에 감동하며 올림픽 정신을 새길 특별한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올림픽은 기대와 달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벤트일 수 있다. 올림픽 내내 이뤄지는 치열한 국가 간 경쟁, 금·은·동 메달로 정해지는 국가 서열, 매 경기 정해지는 승자와 패자 구분…. 이 모든 것들은 의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마음에 영향을 끼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일으키고 있었을 수 있다. 물론 본 연구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같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으로 인해 창출되는 다른 긍정적인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진짜 행동을 잘 예측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태도는 실제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의해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올림픽은, 멀리서 봤을 때만 평화스러운 이벤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