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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2호] 극우적 증오의 예언자가 된 목사들과 그 종교 본문
제3시대연구소 이사 김진호
3월 1일, 탄핵반대 집회에 십만이 넘는 인파(경찰 추산)가 모였다. 그 4일 전인 2월 25일엔 윤석열의 탄핵심판 최후변론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22년 전 3.1절에도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2003년 2월 25일, 그 직후다.
22년의 시차를 둔 두 3.1절 광장집회 사이에는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지리멸렬해진 보수세력의 재결집을 도모하는 대규모 광장집회가 열렸다. 그 집회의 이념적 기조는, 다양한 보수주의 중, ‘극우’였다. 그리고 이 극우 집회를 주도한 것은 개신교 극우인사들이었다. 22년 전에는 한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었고, 올해는 전광훈과 손현보가 중심이었다. 22년 전에는 시청앞 광장에서 범종교・사회단체를 망라하는 구국집회가 열렸고, 저녁에는 여의도에서 개신교도 중심의 구국기도회가 있었다. 올해 광화문 집회는 ‘초개신교’(trans-protestant) 성격의 전광훈이 주도한 집회가 열렸고, 여의도엔 개신교 성격이 뚜렷한 손현보가 전면에 있었다. 하나 더, 두 광장집회가 열리던 시절, 정국을 주도한 것은 개혁 혹은 진보 세력이었다. 한데 집회 이후 보수파가 결속해서 정국을 변화시키려는 기류가 강하게 일어났다.
1946년에도 있었다. 3.1절을 기리는 첫 번째 광장집회가 열리던 때, 미군정 조사에 의하면 여론의 향배는 ‘80 대 20’ 정도로 좌파가 압도하고 있었다. 한데 이 3.1절 집회는 우파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후 광장의 3.1절은 ‘극우의 시간’이 되었다.
여기에는 극우파의 프레임 전환이 한몫했다. 애초의 ‘항일’의 기억이 ‘반공의 기억’으로 대체됐고, 반공 투사(anti-communist fighters)는 ‘애국자’로 호명됐다. 이들은 ‘빨갱이’ 척결이라는 부름에 열렬히 응답했다. 척결 대상으로 지목된 ‘빨갱이’는 〈요한계시록〉의 ‘붉은용’(12,3)의 하수인으로 해석되었다. 그자들은 민족의 재앙을 초래할 자들이니 속속들이 색출하여 제거되어야 마땅하다. 해서 ‘애국자’들은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했다. 그렇게 학살된 민간인이 남한 지역에서만 9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와 한국전쟁유족회 조사결과) 1950년 당시 탈북자 총수가 60~80만 명 정도인데, 그중 반공성향이 좀더 강한 이들은 서북청년단에 가입했는데, 그 규모의 최대치 20만 명쯤으로 추산된다. 그들 중 학살에 적극 가담한 이들은 3~5만 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그 시대의 섬뜩한 폭력성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 이들은 잔혹한 학살자들로 서북청년단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한편 학살에 가담한 서북청년단원 중 상당수가 한경직이 담임하는 영락교회 청년부를 비롯한 몇몇 탈북자교회 소속이었다. 즉 개신교 신자들이 주축이었다는 얘기다. 이들이 출석하던 교회들은 증오를 부추겼고 증오를 가학적 행위로 표현하는 것이 신이 부여한 절대 사명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혹여 가해자로서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샤먼(shamanic healer)의 역할을 목회자들이 자임했다.
교회는 이런 학살자 역할을 두고두고 자랑했다. 신의 뜻에 누구보다도 충실했고, 그 덕에 대한민국이 건국했고, 기독교국가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나오게 되었다고. 그 대가로 교회는 국가로부터 갖는 특혜와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뜻에 부응해서 적의 절멸에 참여한 데 대한 보상이라고 믿었다.
종교는 근대사회의 여러 영역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기억의 저장소’에 속한다. 특히 그리스도교는 더욱 특화된 기억의 장치를 갖고 있다. 주 1회 이상 반복되는 의례가 수천 년간 반복되었다. 어느 종교도 이렇게 짧은 주기의 집회를 일상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구조주의적 성서학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적 의례들은 ‘출애굽’ 같은 몇 개의 기억의 거점을 축으로 의미를 저장하는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새로운 체험이 끼어들어 기억을 업데이트하게 되더라도 기억의 거점을 매개로 해서 기억이 재구성된다. 가령 이스라엘은 ‘출애굽’이라는 기억의 거점을 경유해서 국가가 멸망하여 강제추방되었다가 훗날 귀향하게 되는 체험을 해석하게 되었고, 그리스도파는 예수의 죽임당함과 되살아남을 새로운 출애굽으로 해석하였다. 그리스도파에게서 예수는 새로운 기억의 거점이 되었다. 하여 많은 새로운 체험들을 해석할 때 예수를 경유해서 의미를 구축하였다. 그렇게 새로운 기억의 거점이 형성되면 기억공동체는 거대한 쇄신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반도에 유입된 개신교도 새로운 기억의 거점을 만들어냄으로써 한국개신교의 독자적인 주체의 요소가 형성되었다. 새 기억의 거점은 ‘반공이라는 증오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 그것으로 한국적 개신교가 탄생한다. 이 한국적 개신교 형성의 출발점에 이승만과 한경직이 있다. 그들은 막 해방된 한반도 남쪽을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운위되는 나라로 만들려 했다. 여기서 하느님의 뜻이란 절멸시켜야 할 ‘적’인 빨갱이를 향한 불타는 증오가 국가의 모토가 되고 사회의 질서가 되게 하는 것이다. 타자와의 화해와 상생이 아니라 적으로 해석된 타자를 절멸시키는 것이 모토이고 질서인 신념, 특히 좌파를 적으로 규정하는 신념을 극우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극우주의 신앙이 한국개신교의 기억의 거점이 되었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새로운 천 년대가 시작되었고 또 20여 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이 처음 시작하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처럼, 증오가 다시 불타오르는 사회가 되고 있다. 이때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세력이 친위쿠데타를 도모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한 지점에서, 이미 불타고 있던 증오의 신앙을, 그 기억의 저장고에서 한가득 꺼내온 일단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사회를 극심한 갈등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전광훈, 손현보 등은 이런 극우적 지도자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더 이상 개신교 내의 극우파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극우의 화신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극우주의의 격랑은 몇 가지 요소가 결합될 때 나타나곤 한다. 우선 사회가 극도로 양극화되어 절망계층이 분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그 절망의 수렁에서 헤쳐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의 이데올로기가 그들을 사로잡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이데올로기에 절망계층이 더 이상 설득되거나 속아 넘어가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를 더 이상 희망고문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종종 절망이 증오로 전환되는 감정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증오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면 그들은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를 한다. 한편 어떤 이들은 증오의 대상을 타자에게 ‘전가’시킨다.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은 종종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심리 상황에 놓이게 되곤 한다. 그런 이들은 일종의 증오범죄를 실행에 옮기는 이가 된다. 그 ‘전가’의 논리를 사회가 이해하지 못할 때 그 증오범죄를 사회는 ‘묻지마 범죄’로 해독하곤 한다. 하지만 그 범죄자는 사실 뜬금없이 전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내장하고 있는 편견과 차별의 대상에서 증오할 자를 찾는다. 한편 그런 증오를 타자에게 전가시키는 논리가 체계화되고 집단화되기도 한다. 극우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가 그렇다. 이때는 체계화시키는 논리를 만들고 집단적으로 증오의 행동을 조직해내는 자가 존재한다. 그렇게 증오서사의 해석자이가 조직가인 자는 증오로 주체화된 대중을 자산으로 하여 정치적 지분을 확보한다. 그런 자를 일컬어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가’라고 부른다. 종교학적으로는 ‘극우적 정치종교의 예언자/메시아’이고, 테러리즘과 사회변란을 논하는 영역에서는 ‘변란의 촉진자(facilitator of rebel)’라고 한다. 포퓰리스트든 극우 예언자든 변란 촉진자든 간에, 이들은 절망계층을 타자에 대한 학살자로 전환시키는 기술자다.
윤석열이 그런 자다. 하지만 개신교와 극우에 관한 이 글에선 전광훈과 손현보를 주목한다. 바로 이런 시선에서 말이다. 전광훈은 개신교 내의 연줄체계(social network system)에 따르면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출신이다. 또한 그는 감정의 과잉을 전문으로 하는 종교지도자로, 특히 ‘그리스도교적 샤먼’(Christian shaman)이라고 할 수 있다. 샤먼은 대개 친숙한 문화 코드 내에서 상징을 주술적으로 조작해내는 전문가다. 해서 그리스도교적 샤먼으로서의 전광훈은 한국의 무속적 요소와 집속된 개신교 부흥사다. 하여 좀더 감정 현상에 민감한 대중이 그의 영향권 아래서 극우적 행동주의를 주체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려되는 것은 테러리즘이 그들의 증오행위의 귀결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손현보는 전광훈과는 상반된 존재다. 그는 개신교 연줄망에서 인사이더에 가까운 존재다. 해서 그가 지도자로 부상했을 때 개신교계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그를 지지했다. 그들은 대체로 올드라이트 성향의 인사들이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그를 극우의 대열로 이끈 것은 미국발 신사도운동 계보의 정치목사들과 엘리트평신도들로 보인다는 점이다. (편집자 주: 신사도운동이란 전통 교회 체계를 넘어 사도와 선지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악한 영과의 전쟁을 강조하고 사회 영역에 대한 정복 등을 주장한다. 이 때문에 정통 개신교에서는 이단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신사도운동은 개신교 내에서 신구 갈등(old and new conflicts)의 핵심에 있다. 해서 그들은 올드라이트적 개신교 지도자들에 의해 이단시된 이들이다. 이 신구 갈등은 미국에서 트럼프 지지세력 내 개신교 분파 간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갈등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하여 손현보가 극우 지도자로 부상하는 데 중요한 기로는 이 신구 갈등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가와 연관이 있다. 아무튼 손현보의 예언운동은 엘리트계층이 좀더 중심이 되는 극우 현상으로 발전해 갈 가능성이 있다.
21세기 한국은 기로에 있다. 이들 극우적 예언자들이 준동하는 것은 절망계층이 희망 없는 세계 안에서 발버둥 쳐야 하는 비대칭적 사회변동이 낳은 파괴적 현상의 산물이다. 해서 지금 우리는 극우주의와 맞서야 하지만 동시에 대중이 절망을 증오로 전환시킴으로써 세상을 바꾼다는 극우적 속삭임에 빠져들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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