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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보는 것이 익숙한 시대의 이면: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을 보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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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보는 것이 익숙한 시대의 이면: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을 보고

thxzomarch 2025. 6. 12. 16:00

문화관찰자 정소영

 

<소년의 시간> 3화 중 한 장면 / 출처: 유튜브 ‘Netflix Korea’ 공식채널

 

넷플릭스 화제작 중 하나인 <소년의 시간>을 보았다. 4부작 영국드라마인데, 처음에는 회차마다 50-60분 길이를 원테이크로 촬영했다는 점 때문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기에, 매 테이크마다 배우와 스탭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갔을까 상상이 돼서 머리가 잠깐 아득해졌다. 큰 비용과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그 형식을 취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화면 속 공간이 긴장감으로 가득 찬 순간에 다른 화면으로 점프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떤 감각을 일깨웠다.

 

다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지점은 연출 방식이나 촬영 기법 같은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다. <소년의 시간>은 청소년들의 SNS 중독 문제, 기성세대와의 소통 부족 문제, 부실해진 학교의 관리시스템 문제, 과잉된 남성성(Hypermasculinty)에 의해 빚어지는 비언어적이거나 언어적인- 폭력 문제 등 현대사회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환기하는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시선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선에 의한 폭력에 초점을 두고 <소년의 시간>을 다루어보려 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왜 당신을 골랐지?”

 

이 드라마는 자신의 방 침대에 있던 13세 소년 제이미 밀러가 난데없이 자신의 집 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무장경찰들에 의해 체포되는 시퀀스로 시작된다. 방탄복을 입은 건장한 경찰들에 비해 소년은 왜소하고 취약해보일 뿐이다. 극의 초반, 제이미의 가족은 틀림없이 경찰이 실수한 거라 믿고 문을 부수거나 집안을 어지럽힌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제이미의 선택을 맞닥뜨린다. 제이미가 조사 시 동석할 보호자(appropriate adult),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엄마 대신 아빠를 고른 것이다.

 

드라마는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계속해서 관찰하게 할 뿐, 제이미가 왜 이런 선택을 내렸는지는 훨씬 더 이후에 알려준다. 제이미의 아빠 에디 밀러는 처음 맞닥뜨리는 이 모든 상황들이 혼란스럽고 두렵지만 아들에게 만큼은 그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으려 하는 강직한 인물이다. 그는 아들을 알몸수색하려는 경찰에게 강한 어조로 문제제기를 하거나, 압박감이 강한 취조 중간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믿기에- 쉬는 시간을 주겠다는 경찰의 제안을 거절하는 등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곧 제이미의 범행장면이 찍힌 CCTV를 당신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에디의 강직함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

 

아빠는 판단하지 않으니까요.”

 

3회 임상심리학자 브라이어니 애리스턴과의 독대 장면에서 브라이어니가 동석 보호자로 지정한 아빠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묻자, 제이미는 이렇게 답했다. 제이미는 왜 아빠가 판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전에, 판단하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타자의 시선은 나의 여러 가지 실존적 가능성 가운데 하나만을 대상으로 고착시킨다. (중략) 냉정한 객관성 그 자체가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든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평가란 현재의 나를 고착시켜, 나의 과거 혹은 미래가 그것을 보완할 여지를 아예 원천봉쇄하기 때문이다.

- 박정자, <시선은 권력이다>

 

<소년의 시간>에는 4회 전반에 걸쳐 시선에 관한 여러 관점(또는 태도)이 나타난다. ‘Miller Plumbing’을 운영하는 배관공인 제이미의 아빠 에디는 물리적인 시선 자체를 무례하다고 여길 때가 자주 있는가 하면, 2회에서 제이미의 친구 라이언은 타인의 시선을 받는 것(인기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제이미 사건의 담당 형사인 루크는 학교 방문 시 학생들이 자신을 간파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타인의 시선에 둔한 편에 가깝고, 루크와 같은 수사팀인 미샤는 모두가 가해자인 제이미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피해자인 케이티에 대해서는 점차 잊어갈 거라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제이미는 시선에 유독 취약한 사람으로 보인다. 제이미는 학생들 사이에서, 특히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케이티에게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 ‘involuntarily celibate’의 줄임말)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물론 놀림을 받았기 때문에 취약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브라이어니와의 대담 중에 제이미는 시종일관 상대가 왜 그 질문을 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자신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이야기를 했을 때 브라이어니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으면 발끈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케이티의 가슴 사진이 학생들 사이에 유출되었기 때문에 약해진 그녀가 자신의 데이트 제안을 받아줄 거라고 기대했다는 점에서 그는 타인의 시선이 개인의 생각과 지위 따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타자와의 만남은 내가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그가 대상이 되는, 시선끼리의 싸움이다. (중략) 나의 주체성을 거부하고 나를 물체로 규정하는 그를 나도 대상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 박정자, <시선은 권력이다>

 

케이티가 제이미를 SNS상에서 저격하기 시작한 것은 그 데이트 신청 이후였다. 케이티도 제이미만큼이나 시선의 힘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사건에 관계된 제이미, 라이언, 그리고 케이티를 통해 현대사회의 청소년들이 SNS로 인해 증폭된 시선권력의 자기장에 크게 영향받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길러지는 왜곡된 가치관은 당연하게도- 온라인 바깥의 현실사회에까지 끔찍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경고하는 것 같다.

 

다만 <소년의 시간>은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는 3화에서 끝나지 않고, 남겨진 제이미의 가족을 비춰주는 4화로 이어진다. 시점은 13개월 뒤이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이웃들의 끈질긴 시선과 온라인상에 얼굴과 주소가 알려진 것에서 비롯된 크고 작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에디의 차에 누군가 악의적으로 페인트칠한 ‘nonce’라는 단어는 자막에 강간범이라고 번역되는데, 제이미를 향한 말일 수도 있지만 아빠 에디에게 원인이 된 문제가 있었을 거라는 시선에서 쓴 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도 이러한 시선권력의 자기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온라인을 통해 커진 측면이 있지만, 타인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문화는 온라인만의 문제도 아니며 아이들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당신은 아빠가 안 그랬다고 말해야죠.”

 

제이미의 기억 속에는 아빠와 관련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아빠가 데려간 축구경기에서 자신이 형편없는 실력을 보였을 때, 아빠가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렸던 모습이다. 제이미는 그것이 아빠의 배려였을 거라고 말은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그때 아빠가 자신을 부끄러워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상처받았고, 그래서 그날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에디의 행동은 그는 어떤 순간에는 시선 자체가 무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제이미의 말처럼 배려가 맞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이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너무 잘 알아서(안다고 생각해서), 시선이 없는 순간에조차 어떤 시선을 느껴버린 것이다.

 

광인의 내부까지 비수처럼 꽂힌다는 점에서 시선은 심층적이지만 광기의 깊은 이유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한없이 표피적이다. 시선은 오로지 가시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광기를 단죄할 뿐 그 내부 깊숙이 자리 잡은 비밀을 탐사하여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 박정자, <시선은 권력이다>

 

심리학자 브라이어니와 제이미가 독대하는 3화가 <소년의 시간>의 백미라고 불리는 이유에는 조금만 어긋나면 물리적인 폭력이 발생할 것 같은 긴장감도 한몫하겠지만, 제이미가 조금은 짠해보이는 순간에조차 일관되게 단호한 브라이어니의 태도와 날카로운 질문들이 나에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제이미의 심연을 건드리는 브라이어니의 말들은 어떤 면에서는 제이미와 그의 가족들을 향했던 폭력적인 시선보다 더 잔혹하게 느껴졌는데, 그 뒤틀린 지각은 왜 생겨났던 것일까.

 

사회구조는 복잡해지지만 이미지는 단순해지고,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많지만 서로는 쉽게 오해해버리는 이 시대에,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은 가장 많이 떠오르지만 가장 적게 입밖으로 내뱉는 말이 되었다. 분위기를 망쳐버릴까봐, 상대방과의 관계를 망쳐버릴까봐, 혹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볼까봐 우리는 그 말들을 제법 성공적으로 삼켜내고 있는 것 같지만, 침묵 속에서 시선은 더욱 잔인해지는 법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눈앞의 상대를 더 끈질기게 바라보고, 날카롭게 질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